일기
며칠 전부터 거리에 유숙하고 있는 순회극단의 단장의 딸인 여배우가 지난날 아침 여관 방에서 돌연 해산을 하였으나 달이 차지 못한 산아는 산후 즉시 목숨이 꺼져 버렸다는―근래의 소식을 우연히 아내에게서 듣고 나는 아침 내내 그 생각에 잠겼다.
여배우는 그 전날 밤까지도 무대에 섰다 하니 오랫동안의 불여의한 지방순회에 끌려 다니느라고 기차에 흔들리고 무대에 피곤한 끝에 그 참경을 당하였음이 확실하다. 어린 시체를 동무들과 함께 근처 산에 묻고 온 산아의 아비인 남배우는 울적한 심사를 못이기면서도 저녁 연극이 시작되려 할 때(낯설은 곳에 핏덩어리를 묻은 오늘 오히려 무대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누나) 탄식하고 그의 역편인 <아리랑>의 주연의 화장으로 힘없는 얼굴의 표정을 감추었다고 전한다.
열 일곱밖에는 안된 영락의 여배우와 그의 애인인 낙백의 남배우―나는 웬일인지 루놀망의 <낙오자의 무리>를 문득 생각하며 두 사람을 그 작품속에 「그 여자」와 「그」에게 비겨도 보았다. 학교에서는 훈화가 있어 학생들에게 관극을 금하였다. 나는 두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수록에 그 조그만 극단의 생활을 위협하는 결과가 되는 나의 「교육」의 직무를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 이날에 시작된 것은 아니나 이런 생각에서 오는 우울도 덮쳐서 나는 이날 유심히고 출근의 길이 울가망하고 싫은 것이었다.
기어코 좋은 일은 없었다. 나는 이날을 「흉일」로 기억하게 되었다.
아침 수업이 막 시작되려할 무렵에 급사가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직원실로 뛰어 들어왔다.
「열차가 전복했어요.」
영문을 몰라 모두 눈이 멀뚱했다.
「―남행 첫차가 지금 망간 성견 다리목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았어요. 연기가 시꺼멓게 피어 오르겠지요. 」
그 차에는 북쪽 근촌에서 오는 통학생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산변을 염려함보다도 먼저 거의 본능적으로 황급한 충동에 끌려 모두들 직원실을 뛰어나갔다.
운동장에서는 다리께가 멀리 바라보였다. 분명치는 못하나 엇비슷이 삐뚤어진 열차의 모습도 보이거니와 무엇보다도 시꺼먼 연기―어느 구석에서 그 많은 연기가 나왔는지 하늘을 구름장같이 한바탕 푹 덮었다. 까마귀의 떼 같은 그 불길한 연기의 덕지가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벌써 흉측한 변의 그림자를 엿보이고 있는 듯도 하였다. 고요하고 섬찟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겨우 통학생들의 안부가 머리속에 떠오르자 머리들을 모으고 불안스럽게 웅절웅절 지꺼이기 시작하였다. 꾀바르게 자전거로 현장에 달려가는 동관도 벌써 몇사람 나섰다. 이들이 가져올 정보를 기다리면서 한참 동안이나 여전히 웅절웅절하고 있는 동안에 난을 당한 통학생이 한두 사람씩 학교에 다다랐다.
물에 빠져 양복이 푹 젖은 이, 이마에 피 묻은 이, 턱에 혹을 붙인 이―전장의 부상병같이 이들은 각각 그 무슨 상처와 흔적을 가지고 힘없이 허둥허둥 교문을 들어왔다. 운동장에 이르기가 바쁘게 궁금히 기다리고 있는 동무들에게 포위를 당하여 버렸다.
「철교 위에 걸리자 날카로운 기적을 연해 울리며 차가 두어번 주춤주춤 서더니 한쪽으로 넌지시 휘어 떨어진단 말야. 섬찟하여 눈을 꾹 감고 몸을 옴크리고 있노라니 어느덧 차창이 발밑에 놓였고 물이 몸에 철렁철렁 찬단 말일세. 정신없이 창을 깨뜨리고 나와 보니 개천가 돌밭에는 벌써 쓰러진 사람, 정신없이 어릿어릿하는 사람, 난장판이야.」
흥분에 몰려 정신없이 지껄이던 학생은 문득 어디가 거북하여 졌는지 몸을 요동하기 시작하였다.
「―자세히 볼 여유도 없이 뛰어 왔으나 아마 죽은 사람도 여럿 될거야.」
하고 어릿어릿하더니 그 자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이 먼저 달려온 패들은 흥분된 판에 생기도 있고 겉에는 그닷한 상처도 보이지는 않았으나 기실 각각 그 어디인지를 크게 다쳐 나중에는 결국 모두 병원에 수용된 것이었다.)
남았던 직원들과 학생들은 일제히 학교를 나와 현장을 향하여 급히 달렸다. 행길에는 어느덧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마을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알 수 없이 수군거리고 수물거렸다.
도중에는 군데군데 조난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막대를 짚고 의관을 정제한 노인의 얼굴과 두루마기자락은 피투성이였다. 길가에 누워서 정신 없는 학생도 있었다. 눈을 흡뜨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두 대의 객차는 완전히 다리 밑에 떨어졌고 한 대는 다리를 건너 길 옆에, 한 대는 다리 어귀에 삐뚜름히 걸려 있었다. 떨어진 차체는 장난감같이도 무르게 땅에 닿은 편이 와싹 부서져 있다. 다리 위 철로는 튀이고 나무토막은 조밥이 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좁은 개천 양편 돌밭에는 수십명의 부상자가 마른 풀 위에 물건같이 되구 말구 놓여 있다. 조난의 현장―무시무시 엿보이는 한 폭의 지옥이다. 얼굴이 전면 피투성이인 것도 보기에 괴로운 것임을, 머리가 찢어져 뼈가 엿보이고 가슴이 뚫어져 피고 솟는 것이다. 피는 귀한 것이면서도 가장 흔하고 천한 것 같았다. 유리조각으로 입에서 코밑까지를 뚫리운 사람, 이마가 혹같이 부어나와서 얼굴이 이지러진 사람―육체가 물건의 취급을 받아 상자같이 배틀어지고 흙같이 으끄러졌다. 「하나님」은 사람을 물건 이상으로 귀여워하시는가.
의사가 오기까지에 학생들이 동원되어 응급 시중에 분주하였다. 중상자을 마른 풀 위에 눕히고 한 자리에 사오인씩 붙여 저고리를 벗어서 덮어도 주고 햇빛을 가리워도 주었다. 저고리가 피에 젖건 말건 그런 것 쯤은 관심 이외의 일이었다. 초자연의 도움을 빌기 전에 사람은 사람끼리 먼저 피차에 구원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위급한 자리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다.
한편 부상자를 일시 수용할 천막을 치고 있는 동안에 공의가 달려왔다. 뒤를 이어 도립병원에서 원장 이하 의사와 간호부 수십명이 달려왔다. 개천에는 다리가 놓이고 돌밭에는 약그릇, 주사도구 탈지면 등속이 널리고 소독약 냄새가 흘렀다. 들 복판에 별안간 사람의 살림이 시작되고 과학과 자연의 싸움이 열린 것이다. 여린 호박을 바늘로 장난치듯 팔과 가슴에 대중없이 주사 바늘이 나들었다. 굳은 살에는 바늘이 휘어지다가 부러도졌다. 그러나 그 꺼질 목숨이 확실히 주사로 말미암아 연장되고―구원되는 것이다.
제복을 입은 철도역원은 얼굴이 샛노래지면서 눈을 감은 채 「의사왔소? 의사왔소?」하고 구원을 불렀다. 겉에 상처가 없는 까닭에 분주히 돌아치는 의사의 눈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이 발견하고 「하, 이거 안됐소. 얼굴빛이 글렀소」하고 서두를 때에야 의사가 달려와서 침을 놓았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그는 벌써 외치지도 않고 얼굴을 괴롭게 찡그린 채 몸이 식기 시작하였다. 불과 몇초 동안의 기회를 놓쳤으므로 말미암아 과학도 그를 구하지는 못하였다. 좀더 빨랐던들 건졌을는지 몰랐을 것을―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할까. 그는 무엇보다도 「의사」를 외쳤으나 기어코 의사의 눈에 속히 띠이지 못하고 푸른 하늘 밑에서 식어진 것이다― 내일의 푸른 하늘을 더 볼래야 볼 수도 없이. 뱀에게 물린 「라오콘」과도 같은 괴로운 얼굴―그의 지난 날이 아름다왔다 한들 얼마나 아름다왔으랴. 그에게 더도 말고 아름다운 하늘을 하루만이라고 더 보였더면 !
중상을 입은 사람들은 눈을 감고 말 한 마디 없이 고요히 누워 있을 뿐이다. 맥박이 어지럽고 가슴에서는 내출혈의 피가 골골 끓었다. 거개 얼굴 모습이 이지러져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철도와 경찰서원이 주소 씨명을 물으러 돌아다닐 때에 물론 거기에 바로 대답할 능력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린 생도는 아우성을 치면서 상처보다도 도리어 주사를 무서워하였다. 부상이 대단치 않은 증거라고 의사는 다음 사람에게로 옮아갔다.
머리는 얹었으나 얼굴을 어린 여자는 괴로운 듯이 몸을 여러번 뒤쳤다. 들린 두 다리 사이로는 속옷과 넓적다리께가 사정없이 들여다보였다. 그러나 물론 그것을 여밀 여유도 없었다. 생명의 괴로움 앞에서는 그런 것도 사치한 생각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는―나 어린 신부였다. 바로 간밤에 신방을 치르고 이날 아침 급한 첫 근친의 길을 떠난 것이었다. 몸에 감은 새옷―그것은 신혼의 치장이었던 것이다. 머리맡에는 조금만 봇짐이 놓여 있었다.
그럭저럭 하는 동안에 그곳 일대는 장바닥 같은 혼잡을 이루었다. 근 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개천을 중심으로 하고 웅성거렸다. 마을과 근읍에서 달려온 정거장 경찰병원의 수많은 인원과 신문기자단이 현장에서 와글와글 수물거리고 개천 건너편 둑에는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이 첩첩이 담을 쌓았다. 다리 위와 아래서는 경찰서원이 호통을 하며 지휘와 장내정리를 하였다. 사진반 기자의 카메라가 군데군데 머물러 섰다. 한편 철교 위에서는 검사 이하 십여 명의 긴 행렬이 탈선된 지점을 임검하였다.
천막 속에 모조리 수용하는 한편 중상자로부터 차례차례로 도립병원까지 실어날랐다. 얼굴을 심히 다친 노인과 중국인 한 사람은 기어코 그 운반자동차 속에서 병원에 다다르기 전에 운명하여 버렸다.
집안 학생도 근 이십명 병원에 수용되었다. 이웃 고을에 시합을 갔다가 우승하고 돌아오던 정구선수는 타가지고 오던 우승기에 생각지 않은 피를 묻혀 피의 우승을 영원히 기념하게 되었다.
복작거리고 있는 동안에 한낮이 훨씬 넘었다. 학생들의 정리를 대강 마친 후 직원의 일부분은 학교로 돌아왔다. 행길에서는 빽빽이 들어선 사람의 틈을 비집고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 큰일을 치르고 난 뒤와도 같은 피곤이 한꺼번에 왔다. 지긋지긋한 기억에 얼굴의 표정이 무착스러워지고 심신이 나른하였다.
「한 치의 앞이 어둠이라더니 이것을 보고 한 말이야.」
검은 얼굴에 굳은 표정을 지니고 한 사람의 직원이 탄식하였다.
「그러니 다따가 닥쳐오는 천변을―사람의 운명을 헤아릴 수 있나.」
다른 한 사람은 얼마간 깨달은 듯한 어조였다.
「세상에 「마」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야.」
좌중을 돌아보면서,
「―일전에 노파가 치인 바로 그자리에서 하필 오늘의 변이 생기다니!」
나는 며칠 전 일을 생각하였다. 마을에 노파가 밭으로 아침밥을 이고 가노라고 가까운 길을 취한다는 것이 그 철교 위를 걷다가 차에 깔리운 것이었다. 노파는 눈이 어둡고 귀가 잘 안들렸다.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기차소리를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별안간 앞에 닥쳐오는 기차를 보고 기급을 하고 뒤로 돌아섰으나 물론 다리를 채 건너지 못한 채 중간에서 참사를 당한 것이었다. 다리 아래 산산이 흩어진 살과 뼈 중에는 잃어진 것이 많아서 대강 추릴 수밖에는 없었다― 동관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의 변과 이날의 변이 말하자면 일종의 암합이었다. 공교롭다면 그같이 공교로운 일도 드물 것이다.
「무꾸리라도 해 두었던들 오늘의 변은 없었을지도 몰랐을 것을.」
신교도다운 동관의 걱정이었다.(이들의 이 방면의 신념은 전통적으로 깊은 것이 있었다. 며칠 후 현장에는 천리교의 중이 와서 짜장 무꾸리를 하고 불의의 죽음을 당한 떠도는 넋을 위안하여 물리치는 행사가 있었던 것이다.)
때 지난 점심들을 풀었다. 표정은 검으면서고 식욕들은 여전하였다. 평일의 식욕으로 평일과 같이 먹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식욕은 참혹한 변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것인 듯하였다.
관련이 없다면―임검이 끝난 오후, 철교 위에서는 즉시 새 토막나무와 레일을 실어다가 파손된 개소의 회복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이것도 철교 아래 참경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불행한 주관을 본 체 만 체하고 현실의 객관은 언제나 쌀쌀하고 엄격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근처 신문사의 호외가 돌았다. <마의 철교>라는 커다란 제목이 어마어마하게 전하였다.
그럭저럭 해가 기울었다. 입원한 학생 중의 수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나른한 신경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전신이 톱날에 슬겅슬겅 긁히운 듯이도 맥이 없었다. 평소에 잊은 적 없던 여러 가지의 욕망과 야심조차도 간 곳 없이 곱게 사라졌다. 물질이니 사랑이니 목적이니―생명 이외의 욕망은 모두 사치한 야욕 같으다. 현재 살아있다는 기쁨이 여러 가지의 욕망을 일시 해소시켜 버린 것이었다. 생명의 기쁨―그것이 새삼스럽게도 끔찍한 행복이었다. 그러므로 평소에 극도로 괴롬을 받아오는 부채에 대한 걱정도 잠시 꺼져버린 듯하였다―입원한 학생을 보러 가야할 차비조차 없어서 아내를 이웃에 보내는 형편이면서도.
나갔던 아내는 잠간 있다 눈물을 담뿍 머금고 돌아왔다. 방에 들어오자 목소리를 놓고 엉엉 우는 것이다.
「젖달라는 어린애도 아니고―울기는 왜 울어.」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심사였으므로 나는 신경을 날카롭게 일으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빚장이에게 망신을 당했어요.」
「욕먹은 것이 무엇이 원통해― 불의의 변에 없어지는 사람도 있는데.」
「욕뿐인가요. 손찌검까지 한단 말예요.」
이자도 차근차근이 못 갚는 빚장이 여인에게 욕을 당한 것이었다. 빚장이―그것은 글자대로 채귀였다. 채귀에게 괴롬을 받는 것쯤은 「수양」을 쌓은 나에게는 벌써 예사였으나 미흡한 아내에게는 두통거리였고, 더구나 어버이에게도 맞아본 일이 없었을 아내가 남에게 손찌검을 당한 것은 기막힌 봉변인 것이었다.
「어머니에게라도 맞은 셈 치지.」
유하게 아내를 위로는 하였으나 마음은 물론 아팠다. 빚 걱정도 새삼스럽게 났다. 여기 몇백원 저기 몇백원 거기 몇백원…찬찬히 생각하면 관계를 맺은 채권자의 수효만 하여도 다섯 손가락을 꼽고도 오히려 남았다. 병이 잦기는 하였으나 생활이 대중없이 사치한 것도 아니었다. 이태 동안의 생활의 결과에 몸서리가 났다. 여러 상점에 진 숫자까지 합하면 부채의 금액은 실로 놀라운 수에 올랐다. 매년 연말이 되면 일년 동안에 상점과 거래한 계산서의 수가 수백 자의 커다란 한 묶음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 많은 소비의 액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물론 알 바 없다. 고리로 낸 빚은 갚은 도리도 없이 항상 그대로 남아가는 것이다. 계산서의 묶음을 태워버릴 때 세상의 고리대금업자도 한 단에 묶어 함께 태워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났댔자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귀찮은 관계에서 속히 벗어나서 시원히 일도 하게 될 터인데 하고 나는 기적이라도 기다리는 듯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릴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염려 없어. 펴일 날 있겠지―돈이 생기거든 궐녀에게 가지고 가서 대거리로 보기좋게 볼을 갈겨 주거든!」
허울좋게 아내에게 말은 하였으나 이날은 몹시도 울가망하였다. 밖에서는 기차 사변, 안에서는 부채 사변, 이날은 마치 사변의 날같았다. 현실이 몹시도 가혹한 날이었다.
(흉일이다. 흉일이다.)
입밖에 내서까지 지껄여 보았다. 문득 아침에 소문 들은 순회 극단 일행의 사변이 또한번 생각났다.
아내와 나는 각각 의자의 뒷편 양쪽에 나누어 섰고 유라만이 의자에 걸어앉아 결국 삼각형의 아랫편 정점을 이루었고, 세 사람 가운데의 복판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반드시 그가 작고하여 버린 탓도 아니겠지만 이 사진에 나타난 유라의 자태는 그 어디인지 넋을 잃은 듯한 허수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도 눈에 정기가 없다. 삘딩의 창이 열려 있듯 두 눈은 다만 기계적으로 모르게 열려 있을 뿐이지 생명의 광채가 엷다. 흐린 가을날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약한 광선같이도 애잔하고 하염없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부수수한 것은 평소의 그의 치장의 취미라고나 할까. 세 사람이 사진에 나타날 때 한복판의 위치가 불길하다 함은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이 말과 유라의 경우와를 합하여 생각할 때 나는 무서운 암합에 마음이 어두워짐을 깨닫는 동시에 이 사진을 박을 때에 유라와 아내는 그러한 흉신을 알고서인지 모르고서인지 의자에 앉으라거니 뒤에 서겠다거니 하고 한참 동안이나 귀여운 실랑이를 쳤던 것을 생각하면 유라의 박명에 더한층 마음이 아프다. 그는 세 사람에 앞서 마치 세 사람의 악운을 휩쓸어 가지고 간 듯하다. 그가 그렇게 빨리 안 간다 하더라도 세 사람 사이의 평균한 안정은 결코 잃어지지 않았을 것을― 그는 생명을 조금도 염려하고 사랑할 필요는 없는 것을―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감상까지 우러러나와 유라의 짧은 생애가 한없이 애닯고 슬퍼진다.
유라가 작고할 무렵에 우리와는 생활상 사정으로 하여 지리적 거리가 멀었고 잠간 동안 교섭이 끊였었다. 이른 봄 어느 날 돌연히 유라의 부고를 받았을 때 일순 기가 막혔다. 기다란 전문의 조전을 치고 아내와 나는 연거푸 이틀 동안 여러 차례나 눈물을 쏟았다. 장지인 그의 고향에까지라도 가 보아야 할 처지였고 그것을 일시 생각도 하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하여야 할 나보다 더 적당한 사람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나는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애정의 표물―다량의 눈물로써 그의 죽음을 조상하고 슬퍼하였다.
그가 작고하기 두어 달 전 서울서 고향으로 내려가던 도중 원산에서 띄운 엽서가 내가 받은 마지막 편지가 된 것이었다. 생각컨대 그때에 벌써 그의 병은 어지간히 쇠약하였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병세에 관하여서는 일언반구의 보고도 없었다. 슬퍼야 할 편지가 늘 즐겁고 명랑하였다. 아내의 어리석은 오해로 말미암아 근 반년 동안이나 끊였던 우리와의 교섭이 다시 시작된 것은 그 전해 가을부터였다. 나는 그에게서 번번이 기다란 편지를 받고 오랫동안 가라앉았던 정서가 다시 피어 올랐다.
그의 장서는 나에게는 한 기쁨이었다. 아내에게도 같은 정도의 애정을 나누어 어떤 때에는 동성애적 열정이 서면에 넘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내가 한 상자의 능금을 선물로 보냈을 때에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기쁨을 표현하여 왔다. 이곳까지 한번 다녀가겠다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기어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따라서 교섭이 부활된 후 한번도 유라와 만나지 못하고 가버린 것이다.
병 때문에 괴롭기도 하였으련만 편지에는 단 한 마디도 비치지 않았다. 그 몇해간 가지가지의 수난에 둘러싸였던 그이므로 여러 가지 핍박한 심경에도 무던히 괴로왔으련만 편지는 끝까지 명랑하였다. 그가 이곳에 올 것을 믿고 그 날은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그 대신에 참혹한 부고가 온 것이었다. 여러 장의 편지와 한폭의 넥타이, 이것이 그가 나에게 남긴 유물(唯物)적 유물의 전부가 된 것이다. 그가 받은 수난의 한 토막을 기록하려는 것이 소설의 목적이나 세상에는 부당한 수난― 더구나 여자인 까닭으로 이유 없이 받는 당치 않은 수난이 많은 것 같다. 자유의 행동에 공연히 비난과 구속을 받게 되고 그러므로 마음의 자유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빛나야 할 모처럼의 생활을 가엾게 말살하지 않으면 안될 경우가 있는 듯하다. 더구나 연애의 행동에 있어서의 이러한 부당한 수난의 희생은 심히 가엾은 것이다. 유라의 꼴이 한없이 측은하다. 나는 부당한 수난에 항의하려는 것이다.
유라의 학교 시대와 여점원 시대를 나는 모른다. 다만 잡지사에 기자로 있던 그의 마지막 시대를 알 뿐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적 용약 시대의 생활은 알 수 없다―고는 하여도 그의 그러한 생활의 일단을 흘깃 엿볼 수 있었다. 내가 그를 만나게 된 첫 번이 공교롭게도 바로 그의 그러한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어느 날 친히 다니는 서점에 앉아서 주인과 다니는 학교의 파업의 주모자로 끌려간 그의 여동생의 뒷일을 궁금히 여기고 있노라니 한 여자가 뛰어 들어왔다. 흥분되고 황급한 양이었다. 여름 옷이 고름이 떨어졌고, 머리가 풀려서 흩어졌다. 눈이 새까맣고 코가 앙칼져 몹시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바로 소문의 유라였던 것이다. 서점 주인의 동생의 파업을 배후에서 지휘하고 조종하였다는 탓으로 여러날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주인과의 회화를 나는 옆에서 타인적 태도로 들을 뿐이었으나 그의 용모에서 오는 인상이 마음속에 몹시도 진하게 엉겼다. 물론 그자리는 인사도 없이 그대로 헤어졌으나 그후 얼마 안되어 그는 나에게 처음으로 원고를 청하러 왔다. 이때부터 사귐이 시작되었다. 원고를 청탁하고 나의 셋방에 자주 찾아왔다. 같이 거리에 차 마시러 가는 걸음도 잦았다. 이지적이었으나 다정하였다.
첫소설을 써가지고 왔을 때에 나는 대강 수정한 후에 제목을 고쳐 주었다. 그 소설을 준 잡지의 원고 전부가 그 달에 압수를 당한 까닭에 그 소설이 즉시 세상에 나가지는 못하였으나 그때부터 그의 소원이 소설을 배우겠다는 것이었다. 소설교수의 임무가 나에게는 과한 과제였으나 근심할 것도 없는 것은 그는 반드시 소설을 배우러만 온 것도 아닌 까닭이다. 실행은 못하였으나 더울 때에는 가까운 바다에 해수욕 가기를 자청도 하였고 가을이면 성북동의 포도원을 찾았다.
토오키의 <파리의 지붕밑>을 본 후에는 가끔 능치 못한 나의 기타아를 졸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물론 그의 나와의 접촉면만을 볼 뿐이었지, 나와 떨어져 있을 때의 그의 생활은 나의 알 바도 아니었다. 나와 만날 때에 나에게 보여 주는 두터운 우정을 받아들이면 그만이었다. 지금의 아내인 나의 약혼자가 시골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의 표정을 잘 살피지는 못하였으나 우리들이 결혼하였을 임시에 잠간 동안 그와 사이가 뜨게 지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시 사이는 여전하게 회복되었다.
이 무렵에 남의 생활을 엿보기에 어두운 나에게도 유라를 에워싸고 도는 몇사람의 존재가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그들에게 대한 유라의 애정의 정도는 헤아릴 수 없었다. 확실히 안정을 잃고 서성거리는 눈치는 보였다. 어느 날 유라는 나를 찾아왔을 때에 말이 났던 김에 잡지사 같은 편집실에 있는 한 사람의 동료의 호인적 성격을 찬양한 일이 있었다. 추운 겨울에 몸까지 불편하여 온 아내는 명절을 앞두고 잠간 고향에 가 있기로 하였다. 아내를 보내는 날 밤 유라는 잡지사의 그 동료를 정거장까지 데리고 나와 떠날 시간을 앞둔 차 속에서 황망히 나에게 소개하였다. 이가 유라의 그후 생활에 비교적 중대한 뜻을 가지게 된 인물임임은 후에 알았다.―동료의 호인적 성격을 찬양하는 외에 그에게 관한 더 자세한 것을 유라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고 성격을 찬양함이 반드시 사랑의 표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물론 두 사람에 관한 소문만은 가끔 나의 귀를 스쳤으나 세상에 소문같이 어리석고 겸연쩍은 것은 없는 줄을 잘 아는 나였다. 무엇보다도 또렷한 애정의 목표를 둔 사람으로서의 유라의 나를 대하는 태도에 선명한 것이 없었다. 물론 애정의 표식이 있다고 공연히 나를 미워하고 배반하라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나를 대할 때의 태도는 적어도 사랑하는 이를 둔 사람의 태도는 아니었다. 사랑을 가진 사람이 사랑에 골몰할 때에는 적어도 일정한 기한 동안은 그 외의 사람에게서 구할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며 또 없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대한 태도의 설명을 나는 그의 마음 안테나가 여러 갈래인 탓이라는 것보다도 그의 잔약한 마음의 탓으로 돌려보내고 싶다. 그 잔약한 마음이 실로 수난의 괴롬을 가져온 것이며 부당한 비극을 빚어낸 것이다.
아내가 고향으로 내려간 후로는 유라가 나를 찾아옴이 확실히 더 잦았고 그의 심사도 저으기 자유로운 듯하였다. 하루는 아랫목에 펴놓은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찬몸을 녹이면서 무슨 이유 무슨 생각으로인지 그가 잡지사에 있게 된 후로의 몇가지의 수난을 비교적 자세히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직접 그의 입에서 그의 생활을 듣기는 처음이었으므로 나는 적지 않은 흥미와 동정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를 귀찮게 군 몇사람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도 유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