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잔을
그것은 뜻깊은 만찬이었읍니다. 차차 절박하여 오 는 사정은 다시 그로 하여금 제자들과 만찬을 함께 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때때로 이르는 믿는 자들의 아룀으로 말미암아,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제 사장이 지사(知事) 본디오 빌라도에게 참소를 하고, 갖은 힘을 다하여 그를 잡으려는 것을 알았다. 가롯 유다—그의 문도의 하나인—는 벌써 제사장에게 매수된 것도 알았다. 이틀 있으면 이를 유월절 전으로 그를 꼭 죽이려고 계획한 그것을 알았다. 오늘 이제로 가버나움이나, 막달라로 달아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손에 잡혀서 죽든지—다시 말하자면, 그가 아직 모든 괴로움을 뚫고 하여 오던 일을 성공 직전에 허물어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이것이 그의 앞에 놓인 운명이다. 전자를 취하자면, 십자가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찬 뒤에 취미(醉味) 좋은 포도주에 녹아서, 베드로에게 머리를 찍히우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예수는 저편에서 쿵쿵거리며 뛰어오는 발소리에 후덕덕 일어나 앉았다.
「선생님! 제, 제사장들이! 횃불—과 뭉치들을 가지고……」
「응? 사냥개같이 빨리 찾아내는 자들이로군.」
예수는 고즈너기 말하였다.
「베드로!」
「왜 그러십니까?」
「감람산으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는 그리로 갈께, 빨리!」
이 말을 좀 숨이 차게 한 그는, 가만히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날은 저물었지만 아직껏 회색 기운이 남은 빛으로 제사 준비로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고 케드론 시내로 향하여 이삼십 보 갈 때에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횃불 든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옷으로 보아서 그것은 제사장이었다. 예수는 빨리 몸을 담장에 숨겼지만, 그것은 결코 영리한 행동이 아니었다. 제사장은 횃불을 던지고 몸을 숨는 사람에게 달려왔다. 예수는 몸을 피하여 케드론과는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모두 세 사람의 발소리가 그뒤를 따르는 것을 들었다.
그도 이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머리에는 도망하는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힘을 다하 여 달아났다. 이리하여 이 모퉁잇길로 빠지고 저 사잇길로 빠지며, 담장을 넘고 지붕을 넘어서 달아나, 이 만하면 되었으리라 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면 제사장들의 발소리는 여전히 이삼십 보 뒤에서 그를 따랐다.
감람산으로 가는 다만 하나의 길인 케드론 시내의 다리에도 횃불잡은 사람들이 지켰다. 그러니까 그리로는 갈 수 없다.
예루살렘 성내를 몇 바퀴 돌았다. 저녁 먹은 지 오래지 않은 그는 숨이 탁탁 막혔다. 그의 몸은 솜과 같이 피곤하였다. 다리도 몽치와 같이 말을 안 듣게 되었다.
그의 걸음은 차차 완보가 되었다. 그러나 제사장들도 피곤하게 되었는지 역시 이삼십보를 두고 완보로 그를 따랐다. 쿵쿵쿵쿵! 완보로 달아나는 한 사람을 역시 완보로 몇 사람이 따랐다.
언제 끊일지 모르는 뛰엄뛰기를, 그는 어두운 길을 그냥 뛰었다. 그는 단 한순간이라도 잠이 자고 싶었다.
그는 눈을 감고 더벅더벅 걸었다. 이때에 만약 그로서 그자리에 덜썩 주저앉아 잠이 들었더면 제사장들도 이삼십 보 뒤에 거꾸러져 잤을지도 모른다.
제사장의 던진 돌 하나이 힘없이 도망하는 예수의 소매에 맞고 떨어졌다.
돌! 그 파랗게 된 얼굴에는 놀람과 무서움이 떠올랐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뛰었다. 걸음이 좀 빨라졌다. 꿈엣일과 같이, 그는 또 달아났다.
이리하여 한참을 뛰다가 정신을 먹고 들으니, 제사장들의 발소리는 없어졌다. 여기 마음을 놓은 때는, 그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힘이 없어졌다. 그는 담장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그러나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는 거기 가지 않으면 안될 테다. 담장에 기대고 잠깐 쉰 뒤에 죽게 피곤한 그는 다시 담장을 붙들고 머리를 늘이우고 반쯤자면서 케드론 시내로 예루살렘 성문으로 향하였다.
겨우 다리에서 한 일 리 상류 케드론에 가한 성문 밖에 이른 예수는 다리에 아직 횃불이 보이는 것을 보고 절망하였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걱정하는 제자들을 생각할 때에 그는 물을 건너기로 결심하였다.
좁고 옅은 케드론을, 한 여남은 칸이나 흘러 내려가면서, 겨우 건너가 언덕에 기어오른 그는 곧 눈앞에 보이는 감람산으로, 한 걸음 가서는 쓰러지고, 두 걸음 가서는 넘어지면서 갔다. 그리하여 산밑에 이른 때에 그의 앞에 어두움 가운데 뜻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우뚝 나타났다.
「누구냐?」
예수는 곤하고 떨리는 작은 소리로 부르짖었다.
「선생님이시오니까?」
역시 곤한 소리로 그 어두움의 사람은 반문하였다.
「유다냐?」
「베드로 올시다. 선생님!」
「야곱은? 요한은? 다 어디 있느냐?」
「다 여기 왔읍니다. 선생님! 곤해서 자는 모양이외다.」
「자? 유다는? 가롯은?」
「아직 안 왔읍니다. 제사장한테나 갔는지……」
베드로는 곤한 가운데 비웃는 듯한 소리로 대답하였다.
예수는 좀 안심하고 거기 있는 바위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넘어져 있던 제자들도 일어나서, 그의 앞에 둘러앉았다.
「다리가, 몽치같이 뻣뺏해지고, 발은 성한 데가 없이 찢어졌다.」
예수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좀 주무시지요? 우리 옷 펴 드릴께요.」
이렇게 안드레가 말하였다.
「자?」
예수는 어렴풋이 물었다. 그의 머리는 무겁고 괴로왔다. 그러나 좀 뒤에 그는 잠에서 깨듯, 갑자기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였다.
「자? 잘 때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더라도 너희는 자서는 안된다. 모든 괴로움을 무릅쓰고라도 깊이 잠들어 꿈꾸는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너희의 직책이다.」
말을 끝내고 그는 앞에 놓여 있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지팡이삼아 쓰러지려는 몸을 다시 일으켜서, 겟세마네로 갔다. 제자들도 따랐다. 겟세마네에 이르러서 그는 곤하고 무거운 몸을 또다시 바위에 걸터앉았다.
「선생님!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예수가 또다시 주저앉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근심스러이 물었다.
「너희?」
한 뿐, 예수는 한참 먹먹히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는 갈릴리로 가라. 갈릴리 바다 가버나움 모래밭을 무화과 무르익는 갈릴리 해변으로……나는 거기서 너희들과 다시 만겠리라.」
「그럼, 선생님은? 우리와 따로 가시렵니까?」
베드로의 이 말에, 예수는 펄떡 놀랐다. 갈릴리 해변, 가 버나움 뒷 뫼에서 구을러 내려오는, 어린애 입술 같이 새빨간 무화과가 구으는—그 갈릴리 해변은 그에게 정다운 곳에는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과연 거기 가야 할 몸이었던가?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죽음을 바라고 있지 않나? 그 자기도 또한 죽음을 예기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아까 성내에서 여기까지 도망하여 온 그 꼴은 무엇이었던가?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음 속에는 아직 갈릴리로 도망하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지 않나?
「선생님! 갈릴리로 가시려면 함께 가시지, 왜 따로 가시렵니까? 우리를 버리시렵니까? 선생님밖에는 의지할 이가 없는 우리인 줄 모르십니까?」
선생이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참다 못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는 그냥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한참 뒤에 그는 조그만 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버려? 내가 환난을 만나면 오히려 너희가 먼저 나를 버리리라.」
「딴 말씀……산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의 거리가 벌판이 될지언정, 그런 일은—제가 장담하겠읍니다. 그런 일은 없으시리라고—」
「사람이 되어서는 이제 올 일을 단언할 수 없다.
그저 지내 보아야……」
「그럼 선생님, 선생님은 언제 갈릴리로 떠나시렵니까?」
「나? 글쎄, 언제나 떠나게 될는지……」
예수는 눈을 감은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흑은 영구히 갈릴리로 못 가고 말는지도 모르겠 다.」
예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고민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마에는 구슬땀까지 배었다.
「선생님! 그 말씀의 뜻은?」
예수는 대답 없이 지팡이를 의지하고 일어섰다.
「베드로! 깨어 있거라. 자면 안된다. 유다가 오면 내게 알게 해야 한다. 나는 저기서 기도드려야겠다.」
「그것은 걱정 마세요. 제게는 환도가 있읍니다.」
「환도?」
예수는 한숨을 쉬고 발을 옮겼다.
밤의 고요함을 찬송하던 벌레들이 그의 발소리에 놀라서 노래를 감추었다.
어두운 길을 더듬어서 그는 이전 한때 교도들에게 도를 강술하던 바위를 찾아가 앉았다.
지나간 일, 특별히 이즈음 삼 년(그가 도를 퍼치노라고 방황한) 동안의 일이, 주마등같이 그의 머리를 지나갔다. 모든 것은 꿈이었다.
—그는 옛적 수도자들을 본받아서, 사십 일 동안을 벌에서 음식을 끊고 도를 닦았다. 음식을 온전히 끊고 눈을 감은 뒤에 단좌(端坐)하여, 온갖 힘과 정신을 단 전에 모으고 있을 때에(처음 사나흘 동안은 몹시도 괴롭고 배고프고 졸음 왔으나, 그 기간이 지나서는 그의 영은 묘경에 들었다) 십여 일쯤 되는 날, 그의 머리가 환하니 터진 것 같은 것을 그는 깨달았다. 옛적 예언자들같이 자기도 인제부터는 능히 각 병을 고칠 수 있으며, 예언을 할 수 있다 깨달은 것이 이때이다.
—그의 장래는 목수로 그냥 있을 바는 아니다. 목수로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뛰어난 인격인 줄 자기로도 넉넉히 알았다. 그러면 자기의 기적과 지식과 머리로서는 아주 얻기 쉬운 권세 있는 왕자(王者)이냐? 혹은 도덕이 쇠멸한 이 사회를 한번 착하고 아름다운 사회로 뒤집을 개혁자냐, 주저하다가—아주 그로서는 잡기 쉬운—왕자의 권세를 내던지고 곤란과 핍박을 무릅쓰고 구세자라는 이름 아래서, 지금 이 길로 나오게 깨달은 것도 그때이다.
—세례 주는 요한과, 요단 강가에서 먼저 간 수도자들을 느낄 때, 처음 전도로 떠나서 제자를 얻을 때, 무화과 무르익은 산에서 무리를 가르칠 때, 혹은 성전을 더럽히는 무리를 가죽 채찍으로 내어쫓을 때, 또는 뱀보다도 간사하고 뱀보다도 영리하고 뱀보다도 지혜 있는 바리새나 사두 개 교인들의 연곡(曲)한 물음을 설파할 때, 젊고 용감하고 경건한 그의 마음은 바램으로 뛰놀았다.
—더우기, 몇 천 명의 문도를 모아 놓고 강도할 때나, 혹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각곳으로 떠나보낼 때에는 그의 바램은 거지반 이루어진 것같이까지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백 리 혹은 수천 리 밖에 있는 학자들이, 그를 그리워 지팡이를 끌고 그를 찾아올 때 같은 때는 그의 젊은 넋은 터질 듯이 기뻤다.
—애인 막달라 마리아와밟기 좋은 물에 젖은 모래 위를, 갈릴리의 바닷가를 거치던 것도 진실로 행복스러운 꿈이었다.
—사일 전에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의 뭇 사람들은 모두 성문 밖까지 마주나와, 자기네들의 옷을 벗어서 그의 길에 깔며 종려 잎을 두르며,
「호산나여, 호산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은 복되시이다.」
고, 미칠 듯이 기뻐서 그를 맞았다. 그것도 지나간 즐거운 꿈이었다.
예수는 피곤한 몸을 겨우 일으켜서, 그 바위에서 내려서 꿇어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괴로움이 연연히 새겨져 있었다.
—「여호와여! 제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느님이여! 당신은 왜 이리 저를 괴롭게 하십니까? 저는 아직껏 당신을 위하여 일하였읍니다. 당신의 뜻에 거슬린 일은 하나도 없은 줄 압니다. 당신을 위하여는 제 어머니와 막달라 마리아까지도 버려 둔 저입니다. 당신의 뜻을 퍼칠 곳이 있으면, 온갖 핍박한 곤란을 무릅쓰고라도 갔읍니다. 제가 마음만 내면 능히 얻을 온갖 영광도 당신의 뜻을 퍼치는 데 가로 거치는 것이 되리라 생각 할 때에, 저는 눈물을 떠 보지도 않았읍니다. 그런데 당신은 제 죽음을 요구하시니 웬일이오니까? 제 죽음 이 저 불쌍한 무리를 구원할 유일의 방책이란, 너무도 야속한 일이외다.」
「하느님이여! 여호와여! 바랍니다. 참으로 바랍니다.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이 참혹한 잔을 제게서 떠나게 하여 주십시요. 제가 이 쓴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고는 너무 혹독한 일이외다. 아멘!」
그는 일어나 앉았다. 고민과 고통이 그의 낯을 덮었다. 구슬땀이 뚝뚝 떨어졌다.
죽음? 삶? 사람에게는 그중 아프고 엄숙한 문제이나 그가 이제라도 잘만 피하면 살 도리가 없는 바 아니다. 죽음, 삶, 모두 그의 마음 하나에 달렸다. 정정 당당히 죽음으로 향할까, 몰래 도망하여 살기를 도모할까, 구슬땀에 젖은 그는 몸을 사시나무와 같이 떨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유다를 망보는 제자들 있는 데로 갔다. 제자들은 곤함에 못 이겨 모두 쓰러져서 잠자고 있다.
「베드로!」
그는 작으나 힘있는 소리로 찾았다.
「네? 아직 안 왔읍니다.」
베드로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것을 못 참고 잔단 말이냐?」
「안 자렸더니 그만……」
「네 몸이 약한 게다. 곤한 모양이다.」
하고 그는 발을 돌이키혀 말을 맺었다.
「그러나 깨어 있거라. 정신차리고 있거라.」
그는 또다시 아까 그 자리로 돌아왔다. 구슬땀은 멎지 않고 그냥 그는 꿇어앉아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또다시 기도를 드렸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여,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신 여호와여! 저는 괴롭습니다. 제 마음은 아픕니다. 제 앞에 이른 쓴잔으로 말미암아 저는 고민합니다. 당신은 구슬같이 흐르는 이 피땀을 보실 줄 압니다. 제 이 젊은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보실 줄 압니다. 온갖 고생과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던 이 예수가 지금 사시나무와같이 떠는 것도 보실 줄 압니다.」
「하느님이여! 저는 피할 도리가 있읍니다. 이 괴로운 잔을 쏟아 버리기는 아주 쉬운 일이외다. 이 감람산만 넘어서면, 예루살렘의 제사장들도 어찌할 수 없 는 줄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하느님이여! 저 미련한 백성들은 피를 요구합니다. 산 제물을 요구합니다. 인자의 죽음을 바랍니다. 잔혹한 것을 보지 않고는 깨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그들이외다.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는 끔찍한 피제물이 필요한 줄을 압니다.」
「그러나 제가 죽으면……제가 죽으면, 어린 양과 같이 모지고 씀을 모르는 저 제자는, 또는 돌볼 이가 없는 제 어미, 이 사람들을 누가 가르치고 누가 돌봅니까?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제 처지외다. 어찌 하오니까?」
그는 무겁고 떨리는 몸을 다시 일으켜서, 제자들 있는 데로 가 보았다. 피곤한 그들은 벌써 잠들이 들어 있다.
「베드로!」
「네? 아직 안 옵니다.」
베드로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이만 것을 못 참고 또들 잔담……만약 이 뒤에 더 큰 괴로움이 이르면 어찌들할테냐?」
이 말만 하고 그는 기도하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두 팔로 머리를 응키고, 그는 또 고민하였다.
그는 자기의 잔혹한 운명을 원망하였다. 그리고 운명을 저주하였다. 찬란히 빛났지만 불행하였고, 바램으로 찼었지만 만족지 못한 자기의 짧은 생애까지, 뉘우침에 가까운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귀로는 수없이 사람이 갈길을 잃어버 리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어두움에 헤매는 무리 의 애원을 들었다. 그들의 길을 비칠 빛이 나타남을 바라는 목마른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그들이 능히 믿을 만한 헌신적 행동의 증거를 요구하였다. 바꾸어 말하자면 지도자의 희생적 열성을 요구하였다. 그들을 깨울 만한 종소리를 요구하였다.
피땀은 그냥 흘렀다. 그는 더욱더 고민하였다. 그로서만 약물에 자기 얼굴을 비치어보았더면, 얼굴의 빛이 시꺼멓게 되고, 다른 사람같이 늙어진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좀 뒤에 그는 마침내 마음을 정하였다. 한참 흘린 눈물이 그의 마음에 여유를 생기게 한 것이다.
그는 다시 기도를 하려고 꿇어앉았다.
「여호와여! 알았읍니다. 인제는 깨달았읍니다. 제 몸을 미련하고 눈 어두운 무리를 위하여 산 제사로 내어놓겠읍니다. 그럴 것이외다. 저는 너무 이 몸에 집착했읍니다. 그러나 만인을 어두운 데서 구하여 내 는 데 필요하다 하면 요만 것을 무엇을 아끼리까? 뜻대로 하겠읍니다. 아멘!」
예수는 일어났다. 용감하고 경건한 그의 넋은 뛰놀았다. 아까의 고민과 피곤은 어느덧 없어지고 새로운 용기가 그의 몸에 찼다. 그는 일어서서 제자들 있는 데로 갔다. 제자들은 곤함을 못 이겨 또들 잠들어 있다. 그는 가만히 베드로의 곁에 가 앉았다.
「………」
「아직 안 옵니다.」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않았다.
「음, 이젠 마음 놓고 자라, 내 마음도 결정되었다.」
「네? 결정?」
「응, 다 그럴 것이다.」
「그럼 갈릴리로 가시렵니까?」
「아니!」
요한과 야곱과 그밖 다른 제자들도, 차차 일어나 앉았다.
「사마리아로?」
「아니!」
좀 있다가 베드로는 절망의 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디로?」
「십자가로!」
예수는 침통한 소리로 고즈너기 말하였다.
「십자가로? 십자가!」
야곱이 벌떡 일어서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산 제사를 요구하는 이에게는 재물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너희들한테 이야기했지?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내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기 위하여는 내가 십자가로 가야겠다. 내 한 목숨을 바쳐서, 시방 장래 할 것 없이 몇억만 사람이 구원된다 생각하면, 아주 싸고 쉬운 것이다. 오히려 기뻐할 일이 아니냐?」
잠깐 모두들 먹먹하였다. 그뒤에 요한이 물었다.
「그래도 우리는 선생님! 선생님이 없으면 우리는 어찌합니까?」
「너희? 마음만 든든히 먹고 나아가면 두려운 일이 없느니라.」
「선생님! 그러시지 말고 이제라도— 선생님, 갈릴리 로 가세요. 갈릴리로……」
이렇게 말하는 요한의 목소리는 떨렸다.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갈릴리로?」
예수는 손을 들어 서편 쪽을 가리켰다.
「저기 보아라!」
거기는, 케드론 다리 있는 데쯤, 횃불 든 사람의 무리가 지저거리면서 이리로 오는 모양이 보인다.
이것을 보고 베드로가 벌떡 일어섰다.
「이놈! 제사장들이—」
「가만히 않아 있거라. 모든 일이 순서대로 되어간 다.」
예수는 고즈너기 일어섰다. 그 얼굴은 용감과 경건으로 빛났다. 그는 횃불이 오는 편으로 고즈너기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