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필/천직은 불가피

헨델은 의사가 될 뻔하고, 바그너는 화가가, 슈베르트는 교육자가, 슈만은 법률가가 될 뻔했읍니다. 그 밖에도 음악으로 대성한 거장들 중에, 초년에 있어서는 얼토당토 않은 딴 길로 들어가려던 사람이 많이 있었으니,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베르디도 또한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베르디가 유소(幼少)했을 적에 그의 소속된 교구의 승려 세레티 사(師)는, 이 천고에 유명한 작곡가로 하여금 승려를 만들려고 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교회에 성실히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 사가 예배를 주장(主掌)할 때에, 마침 풍금 주자(奏者)가 유고(有故) 미참(未參)했으므로, 베르디는 자기가 풍금을 대주(代奏)한 일이 있읍니다. 평시보다 다른 이 아름다운 풍금의 소리에 신부는 몹시 감동되어, 예배가 끝난 뒤에 그는 풍금수를 찾았읍니다. 급기야 만나 본즉 그는 틀림없는 베르디 소년! 신부의 놀라움은 의외라기보다도 거의 기적에 가까왔던 것입니다.

본시 이 소년은 자기가 항상 음악을 몹시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려는 그로 하여금 신학으로 방면을 고치게 하기 위하여 음악을 중지시키려고 애써 오던 터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음악을 연주한 사람이 과연 이 소년에 틀림이 없다면, 신부도 일찌기 개심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네가 탄 곡조는 누구의 것인데? 대단히 듣기 좋던데…”

하고 묻는 신부의 말에, 베르디 소년은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악곡도 아무것도 없이 즉흥적으로 자작(自作) 자연(自演)한 사실을 고했읍니다. 그때에 신부는 길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아아, 나의 충고, 나의 소견은 모두 잘못 되었던 것이다. 너는 신부가 될 까닭이 없는 사람이다. 꼭 음악가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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