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필/이별의 소야곡

‘이탈리아의 꽃’ 이라고 칭찬을 받던 명가수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가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춘 지 2개월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던 중에 오직 한 사람, 베니스의 청년 귀족만은 혈안이 되어서 그의 행적을 찾았던 것입니다. 베니스의 방방곡곡은 물론이요, 멀리 나폴리와 로마까지에도 허다한 사람을 보내서 대수색을 했습니다.

여기에 깊은 사정이 숨어 있었을 것은 물론입니다. 갑자기 종적을 감춘 스트라델라의 품에는 아름다운 ‘로마의 꽃’ 올덴샤라고 하는 여자가 안겨 있었던 것입니다.

올덴샤[1]― 그 여자는 로마 귀족의 애랑(愛娘)으로, 이 이탈리아 청년 귀족의 연인입니다. 부모의 반대도 듣지 않고 이 두 귀족의 청춘 남녀는 몰래 몰래 베니스의 한구석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고서는 환락이 끊일 줄 모르는 밀월의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청년 귀족은 물론 행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단조로운 생활에 차차 피로를 깨닫게 되자, 그는 자기의 연인을 당시의 명가수인 스타라델라에게 보내서 노래 공부를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올덴샤의 음악 재주는 나날이 진보되어 갔습니다. 아름다운 연인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소야곡(小夜曲)! 이것은 단조로운 두 동지의 생활에 확실히 큰 위안이 되었고 신선한 맛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저물어가는 황혼, 물위에 흔들흔들하는 곤돌라의 등불을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고요히 아리땁게 부르는 소야곡의 달콤하고도 센치한 맛. 그것은 나의 졸필 단문으로 그려낼 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 귀족의 행복도 그다지 오래 계속되지는 못했습니다. 연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운 노래를 듣는 자가 자기 이외에도 따로 있음을 그는 과연 몰랐던 것입니다. 매일 밤 창 앞, 달빛 아래에서 부르고 듣는 이 소야곡이 점점 이별의 비가(悲歌)로 변해가는 줄이야 꿈엔들 어찌 생각했겠습니까. 어떤 날 저녁때 연인의 돌아옴이 너무도 더딤을 기다리다 못하여, 청년 귀족은 스트라델라의 집 문 앞에까지 이르렀을 때에, 그는 그제야 비로소 짓밟히고 꺾여진 자기의 몸을 찾아내게 된 것입니다.

🙝 🙟

절망과 비탄과 거기에 함께 떠오르는 극도의 분노가 귀족의 손으로부터 자객을 내놓게 한 것은 수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월여(月餘)를 나폴리에서 보내고, 다시 수삭(數朔)을 로마에서 허송한 자객은 드디어 스트라델라의 종적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젊은 주인의 원수를 갚고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게 될 이날, 자객은 성(聖)요한 사원 안에 몸을 숨겼습니다. 주인의 원수 스트라델라가 이날 밤 이 사원 안에서 상연되는 오라토리오(성가극(聖歌劇))에 출연하게 된 것을 탐지한 까닭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자객은 이 같은 결심으로 기회만 엿보면서 단검의 자루를 힘껏 쥐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일어난 아름답고도 장엄한 음악 소리는 어느 틈에 그의 흥분된 머릿속에 평화와 행복의 신의 가르침을 부어주고 만 것입니다. 숭고하고도 신비로운 음악 소리는 더러움에 물든 이 지상으로부터 그를 구원해 내서, 차차로 청정(淸淨)하고 거룩한 하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힘껏 쥐었던 단검은 그의 손아귀에서 흘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높고 낮고, 크고 가늘게 흐르는 음악 소리는 지상과 천국을 왕래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자객은 자아를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거기에는 미움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슬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신을 두려워하고, 신의 영광과 권력을 찬미할 뿐이었습니다.

음악은 그쳤으나 그는 오히려 머리를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비로소 신을 보고 천국을 안 것입니다. 감격에 넘친 그는 벌벌 떨리는 몸을 일으켜 가지고 스트라델라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그가 여기까지 쫓아왔던지를 그는 숨김없이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두 남녀의 몸에는 자기 이외에도 또다른 위험이 절박해 있음을 깨우쳐주었습니다.

기적!

이것은 정말 큰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위기일발의 두려운 순간에서 벗어나온 스트라델라와 올덴샤는 그 이튿날 아침 일찍 로마를 떠나서 토리노란 곳으로 몸을 숨겨 버렸습니다.

🙝 🙟

첫째번 자객에게 실패를 본 베니스의 귀족은 곧 다시 제2의 자객을 보내어 두 남녀의 뒤를 추격하게 했습니다. 토리노에 은신한 스트라델라는 얼마 동안은 외출을 절대로 하지 않고 온 낮 온 밤을 집 안에 틀어박혀서 아름다운 연인을 품에 안고 평화롭고 행복스런 날을 하염없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는 동안에 그들은 어느덧 위험이 자기네의 뒤를 쫓음도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름다운 햇빛과 저녁 노을이 비낀 길거리가 몹시도 그리워졌던 것입니다. 스트라델라는 그래도 만일을 염려하여 올덴샤만은 집에 남겨두고, 자기 혼자서 황혼의 거리를 거닐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끝없이 행복스러웠습니다. 젊고도 아리따운 연인과의 포옹, 고요하고 평화스런 낙일(落日)의 자연미! 그는 드디어 위험이고 무엇이고 다 잊어버리고, 기쁨과 즐거움만이 가슴에 넘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애인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던 중이었습니다. 5,6 보만 더 가면 자기의 은가(隱家)인데, 바로 이때에 그의 등뒤에서는 어떤 자의 날카로운 독인(毒刃)이 번쩍였던 것입니다. 평화스런 길거리에는 갑자기 일장의 선풍이 일어났습니다. 모기떼처럼 모여드는 군중의 부르짖음에 놀라 뛰어나온 올덴샤는 자기의 연인이 참혹히 죽어 넘어진 꼴을 보자 그 자리에 혼도(昏倒)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으로 그의 상처는 치명상까지 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연인의 정성이 지극한 간호를 받으면서 겨우 조금씩 기동을 하게 되자, 그들은 제노바로 다시 여행을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그가 작곡한 가극의 첫 무대가 열리게 되자, 아름다운 연인은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목숨을 구한 스트라델라의 전도에는 또다시 예술의 아침빛이 비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두 남녀는 즐거운 미래를 꿈꾸며 서로 축복하여 제노바의 여사(旅舍)에서 즐거운 생활을 계속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아, 그러나 즐거운 미래의 꿈은 그야말로 꿈에 지나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기뻐하고 축복하던 두 사람의 연남(戀男) 연녀(戀女)는 그날 밤에 어떤 독인에 가슴을 찔려서, 차디찬 시체만이 침상 위에 영원한 침묵을 남겨놓게 된 것입니다.

참혹! 그야말로 참혹한 죽음이었습니다.


  •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Alessandro Stradella)는 17세기의 유명한 이탈리아 성악가 겸 작곡가입니다. 이상한 것은 그의 생사의 연월일과 장소가 모두 불명하고 또 그의 경력에 관하여서도 애매한 점이 많습니다. 후인의 추정에 의하면 그는 1645년 경에 나폴리나 혹은 베니스에서 출생했다가,[2] 1681년 7월 6일 이후에[3] 제노바에서 사거(死去)했으리라고 합니다.
  1. Ortensia. 위키백과에는 Agnese Van Uffele로 돼 있다.
  2. 1643년 7월 3일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3. 1682년 2월 25일

라이선스

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