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필/사교와 음악
희세(稀世)의 대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연기를 모른다면 그 당시의 사교계에 있어서는 일대 치욕이었습니다. 그렇건만 그만치 유명한 파가니니의 연주를 한 번도 듣지 못한 어떤 귀족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까닭에 언제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만 벌어진다면 어쩔 줄을 모르고서 쩔쩔매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때에 마침 파가니니의 연주회가 열린다는 말을 들은 부인은 이번에는 애당초에 그의 스튜디오로 쫓아가서는 연주는 물론이려니와 이야기라도 한두 마디 건네보고 또 될 수만 있다면 무슨 기념품이 될 만한 것까지라도 얻어가지고 와서 사교계의 여왕 노릇을 해보겠다는 크나큰 야심을 품고서, 어떤 친구의 소개장을 얻어가지고는 연습소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연습소인만큼 보통 연주회 석상에서보다는 접근할 기회가 물론 더 많을 것이요, 또 그의 귀신 같은 묘기도 충분히 들을 수가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천재의 예술도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객실(客室)의 장식품이나 야회복의 금단추와 다를 것이 조금도 없이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아닌게아니라 귀부인은 자기가 미리 짐작했던 바와 같이 연습소에 가서 파가니니의 풍모를 숙친(熟親)하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날은 오케스트라의 연습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파가니니는 감독의 필요상 잠깐 나오기는 했으나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귀부인은 아무도 듣지 못한 파가니니의 연주를 자기 혼자서 들은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파가니니가 오케스트라 단원의 바이올린을 뺏아 들고 장난으로 두서너 번 피치카토(Pizziccato)하는 것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고 있던 부인은 그것이 정말 연주인 줄 알고 그만 그것에 감격하여 자만자족(自滿自足)했던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는 극장의 지배인은 귀부인이 모처럼 찾아와 있는데 파가니니가 아무것도 연습을 하지 않으므로 황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서 어물어물하면서 부인의 앞에 고개를 숙여서 공손히 인사 겸 사과를 했습니다. 부인은 지배인을 보자 끔찍이도 만족한 기색으로,
“오늘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세계에 둘도 없는 대천재의 기술이란 참으로 놀랍습니다그려. 정말 감격했습니다.”
하고 중언부언 늘어놓았습니다. 지배인은 너무도 의외의 말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그러나 부인, 선생이 오늘은 한 곡조도 연습을 안 하셔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하고 솔직하게 고백하자, 이번에는 귀부인이 대답할 길을 찾지 못하여 쩔쩔 매면서
“글쎄요…….”
하고 어물거리기는 했지만 그의 얼굴은 적이 붉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용기를 내어가지고 아주 예사롭게 둘러대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몹시 감격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듣고서도 이렇게 감격이 되니 만일 정식으로 연주를 하신다면 얼마나 훌륭할는지요…….”
- 파가니니(Niccolo Paganini)는 1782년 10월 27일에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출생하여, 1840년 5월 27일에 니스에서 사망한 세계 최대의 제금(提琴, 바이올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