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곤강 시집 빙화 기타
북레뷰를 쓰는 풍습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몰라도 대관절 써야 한다는 의무를 느낄 때는 여간 거북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간행된 책자가 시(時)일 때 더욱 그러하다. 그 시가 한 편씩 잡지 기타 정기 간물(刊物)에 거재되었을 때 벌써 한 편의 죽품으로서 현명한 비평가들에 의하여 제대로 금새를 따져서 공문서처럼 처리가 된 것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 내가 써야 할 부분은 결국 책의 장정은 어떻고 체제는 어떻다는 출판 문화 그것에 관해서 내 비위에 알맞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몇 마디 말을 나열함녀 족할 것 같으나, 막상 쓰려고 붓을 들고 보면 역시 내용을 보살피는 게 무난한 모양 같다.
그런데 기왕 나에게 이런 평을 쓰라고 하면 할 말 꼭 해야 할 것은 여름에 이찬(李燦) 씨로부터 그의 제 3시집〈망양(茫洋)〉이 간행된 월여에 시집과 사신(私信)을 정중히 보내고 잡지에 신간평을 쓰라는 것이었으나, 그때 벌써 누가 어느 신문에 쓴 것을 본 듯이 생각되었고, 또 그때는 잡지가 시인에 그런 봉사를 하는 것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쓴댔자 벌써 신간평이 아니라서 마침내 침묵했다는 것이다.
이에 윤곤강 형의 제 4시집인 〈빙화(氷華)〉가 출판된 뒤에 만나는 친우마다 한결같이 말하는 감상을 들어봄녀 시체(詩體)가 몸시 변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 말에는 별로이 경탄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도리어 당연한 결과로서 3년 전 그의 제 2시집 〈만가(輓歌)〉의 신간평을 쓰면서 〈대지〉의 작자로 알려진 그의 〈만가〉의 반반분의 시풍은 그의 제3, 제4시집이 나온 오늘의 시체(詩體)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었다. 그렇다고 내 예언이 적중한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게 아니라, 이 시인의 시 경지가 시체(詩體)에 응결되어 감과 한가지로 더욱 원숙해 간 자취를 더듬어 볼 때 한층 더 감격이 느껴지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대지〉나 〈만가〉 반반분에서는 시인 자신의 영혼이 도처에서 직접으로 넋두리하고 있는 반면에 이 〈빙화〉는 처음 책장을 펼치면 Memorie --〈황혼〉에,
- 구름은 감자밭 고랑에
- 구름자를 놓고 가는 것이었다.
- 가마귀는 숲 넘어로
- 울며 울며 잠기는 것이었다.
- 마슬은 노을빛을 덮고
- 저녁 자리에 눕는 것이었다.
- 나는 슬픈 생각에 젖어
- 어둠이 물든 풀섶을 지나는 것이었다.
고 '것이었다'를 연발하면서 시와 자신과에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생각'하는 여유를 갖고 고요히 읊어 본 것이다. 〈호수(湖水)〉나 〈마을〉에서도 같은 수법으로 되었고, 〈언덕〉은 그와는 달라도 애송하고저운 한 편이며, 폐국의 끝 절에
- 외로운 사람만이 안다.
- 외로운 사람만이 알어......
- 슬픔의 빈터를 찾아
- 족제비처럼 숨이는 마음
이렇게 절절이 호소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빙화〉의 끝 연 한 줄에 '용이 솟아난단다'는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은 이 시인의 대부분을 정복하는 이미지로서 나의 뜻 같아서는 용은커녕 미꾸라지 한 마리도 안 나와도 무가내하(無可奈何)이고 실은 이 경지를 깨끗이 떠나는 데 조선 시의 한 단계가 경신되는 것이다.
이 밖에 김남인(金嵐人), 김해강(金海剛) 공저로 〈청색마(靑色馬)〉가 나오고 이기열(李基烈) 저서 〈낙서〉가 있다 하나 필자의 안두(案頭)에 없으며, 〈청색마〉는 앙드레 말로의 예술적 조건의 분류에 속하는 것 같다. 대방가(大方家)의 곡진(曲盡)한 평에 사양해 둔다.
--- 한성 도서 주식회사 발행, 정가 1원 30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