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8장
八
편집봄―
길고 음침한 겨울이 가고, 어디선가 한 마디 노고지리 소리가 들리는 듯하면, 이 땅에는 홀연히 봄이 이른다.
이 땅에 이르는 봄에는 준비 기간이 없다. 길고 음침한 겨울, 그리고 어둡고 쓸쓸한 겨울에 잠겨서, 긴 담뱃대를 벗삼아 시민들은 모두 안일의 꿈에 잠겨 있을 동안 성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교외의 나뭇가지가 윤기가 돌기 시작한다는 기별이 들리는 듯하면, 이 땅에는 홀연히 봄이 이르는 것이었다.
서울의 집 제도는 방 안에 해가 미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남향으로 마루가 달리고, 방이라는 것은 마루를 통해서야 간접으로 바깥과 연하였는지라, 세상을 골고루 비치는 햇볕도 겨우 이 집의 마루를 스치고 지나가는 뿐, 방 안에는 들어올 기회가 없다.
해를 볼 수 없는 방 안―이 음침한 방 안에서 시민들은 길고 긴 겨울을 장죽을 벗삼아서 기름때 흐르는 얼굴에 눈만 반짝거리면서, 언제나 봄이 이를까 고대하면서 지낸다.
근방의 산을 모두 벗겨 온 수많은 솔잎이 연기로 화하여 시민들의 엉덩이 아래를 지나서 굴뚝으로 하여 하늘로 사라진다. 이 많고 많은 연기 때문에, 집이란 집, 기둥이란 기둥, 벽이란 벽은 겨울을 지내는 동안은 모두 시꺼멓게 덜민다. 기다랗고 시꺼먼 추녀 아래로 겨우 조금 내다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버이, 자식, 오라비, 누이 할 것 없이 혈색 나쁜 얼굴들이 한 방에 모여서 우글거리는 모양―그것은 흡사히 그림의 연옥이다. 높은 집을 허락하지 않고 높은 문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작다랗고 낮게 지은 집 안에는 비교적 거대한 체격의 주인인 시민들이 들썩거린다.
이 시민이 가진 집에는 뜰이 없고, 뜰이 있을지라도 나무가 없다. 이층집에서 생활할 권리가 없는 이 시민의 집들은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서 높은 곳에서 굽어 본다할지면, 일면이 거무튀튀한 먹물의 바다일 것이다. 거무튀튀한 기와와 검게 덜민 초가 지붕이 잇달리고 또 잇달려서, 이 시민의 가진 좁다란 길이며 좁다란 뜰은 추녀 끝에 가리어서 보이지도 않고, 고저(高低)가 없는 평균한 지붕 아래 감추어져 있는 이 시민의 생활처는 물결도 없는 커다란 먹물 바다일 것이다.
사멸(死滅)의 거리―이 거리에서 아침과 저녁에 불을 때느라고 뭉겨 오르는 연기만 없으면, 이 거무튀튀한 먹물 바다 아래 「사람의 생활」이 있으리라고는 누구나 뜻도 못할 것이다. 낙타(駱駝), 백련(白蓮), 목멱(木覓), 인왕(仁旺), 백악(白岳)의 등걸 속에 보호되어 있는 오십리 평방의 이 먹물 바다―그 안에는 오 서(署), 사십구 방(坊), 삼백 사십 동(洞)이 벌여 있고, 이십만의 생령이 그 속에서 사람의 가지의 희, 노, 애, 낙의 온갖 감정을 호흡하며 생활하리라고는 과연 몽상 외의 일일 것이다.
가늘고 기다란 담뱃대, 가늘고 기다란 목을 가진 술병, 가늘고 고불고불하고 기다란 거리의 길, 이것들은 모두 가늘고 약한 생활을 경영하는 이 시민의 심볼이다. 막걸리의 힘을 빌지 않고는 마음대로 크게 웃을 권리도 없고, 권리가 있을지라도 웃을 만한 기꺼운 일도 없고, 어둡고 음침한 생활만 계속되는 것이다.
이씨 사백 년 간, 그 동안에 한양은 망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서 한양 사람에게,
『너희는 돈 버는 방법을 아느냐?』
는 질문을 던질 것 같으면, 그들은 서슴지 않고 대답하리라.
『안다. 먼저 벼슬을 해야 한다. 그 뒤에 토색을 하면 저절로 돈이 생긴다.』
라고―음침한 방 안에서 장죽을 물고 이 시민들이 꾸는 꿈은 이런 것이다.
이 사멸의 도시(死滅都市) 한양은, 본시 고구려 때에는 북한산군(北漢山郡)이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한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려초에는 다시 이름을 양주(楊舟)라 고쳤다가, 고려 문종 때에 남경(南京)으로 삼고 목멱산에 궁궐까지 짓게 하고 충렬왕 때에 또 다시 이름을 한양이라 정한 것이다.
중 도선(道詵)의 예언에,
『장차 이씨가 왕이 되고 도읍을 한양에 정하리라.』
하는 말이 있었으므로, 고려 역대의 임금은 이것을 몹시 꺼리어서, 고려 숙종 때에 윤 관 등을 보내서 자세히 한양의 지세를 탐사시켰다. 그 결과에 의지하여 삼각산이 남산으로 뻗어 내려온 만경대의 한 줄기 백악(白岳)이, 도선의 비기(秘記)에 말한 바 그 곳이라 하여 이 곳에다가 오얏나무(李木)를 많이 심고, 이씨 성 가진 사람을 남경 부윤으로 보내고, 숙종왕은 매해 한 번씩 남경부에 순행하며, 남경부에 심은 오얏나무가 무성하면 잘라 버리고 무성하면 잘라 버리고 하여 이 한양주의 왕기(王氣)를 꺾기에 노력하였다.
이씨 조선의 역대 이 성계, 처음에는 고려의 궁궐인 수창궁에서 즉위하였지만, 고려의 구도에는 그냥 고려 왕조에 마음두는 구신들이 많으므로 도읍을 옮기기로 작정하고, 그 후보지로서 처음은 계룡산을 택하고 대궐 기공까지 하였다가, 계룡산은 그 지형이 좁고 토지가 더럽고 교통이 불편하고 물길이 멀어서 못 쓴다는 유근(柳覲) 등의 의견을 좇아서 한양으로 도읍을 고쳐 정하기로 하였다.
도읍을 한양으로 옮김에 임하여 태조는 정 도전(鄭道傳) 등에게 명하여함께 좋은 자리를 잡아서 대궐을 짓게 하였다. 삼각산이 흘러서 백악이 된 그 아래, 높기가 삼십 척의 돌담에 둘린 웅대한 궁궐―
基數移住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
이라는 글에서 따낸 경복궁이 이것이었다.
연침(燕寢)은 강녕전(康寧殿)이라 명명하고, 동소침(東小寢)은 연생전(延生殿), 서소침(西小寢)은 경성전(慶成殿)이요, 연침의 남쪽에는 사정전(思政殿)이요, 그 앞에는 근정전(勤政殿)이요, 근정문이 근정전의 정면을 장식하고, 융문융무(隆文隆武)의 두 문이 동서에 있고―동남서북의 큰 문은 동을 건춘(建春), 서를 영추(迎秋), 남은 광화(光化), 북을 신무(神武)라 하고, 각 문에는 누각이 있어서 그 위엄을 자랑하여,
『오 보에 일루(一樓)요 십 보에 일각(一閣)이라.』
는 아방궁은 따르지 못하지만, 이 삼천리의 통수자의 궁궐로서 부끄럼이 없도록 찬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씨 조선의 창업을 자랑하는 찬란한 궁궐도, 임진왜란 때에 그만 불을 일으켜서 거진 타 버렸다. 그 뒤에 중수를 하였지만, 그 뒤부터는 역대의 상감을 혹은 창덕궁이나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에 기거를 하고 경복궁은 빈 궁으로 지냈다.
「사멸의 도시」 한양부는 폐허가 된 고궁 때문에 더욱 쓸쓸히 보였다. 여기저기 무너진 돌담 틈으로는 잃어버린 연(鳶)을 잡으러 드나드는 소년의 무리까지 있었다.
봄―
이 도시를 둘러싼 높고 낮은 뫼에는 봄의 다사로움이 찾아왔지만, 사멸의 도시와 폐허에 가까운 고궁에는 쓸쓸한 봄이 찾아왔다. 그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정숙의 도시」였다. 외국인이 명명한 바, 「은사국인(隱士國人)」의 생활과 어울리는 외로운 거리였다.
왕도를 한양에 정하면서 왕실의 위엄을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꾸민 이씨 조선의 궁궐이 얼마나 찬란하였는지, 우리는 우리의 조상의 기록을 보기보다 오히려 남의 손으로 된 기록을 살펴 보자.
임진왜란 때에 왕은 멀리 북으로 피하고, 빈 한양에 입성한 왜장 가운데 나베지나 나오시게(鎬島直茂)의 기록을 보면 이러하다.
『조선 왕성의 형세 장관은 진실로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한다.
그 동으로 흐르는 강을 여강(麗江)이라 하고, 서으로 흐르는 강을 서강(西江)이라 하고, 남으로 흐르는 강을 한강(漢江)이라 하며, 북쪽에 있는 산을 북산(北山)이라 하고, 남쪽에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 하고, 서북쪽에 있는 산을 삼각산(三角山)이라 한다. 이 세 산에 둘린 그 사이를 산마루며 골짜기를 타고 칠 리가 넘는 성을 돌로 쌓아서 그 가운데를 낙중(洛中)이라 한다.
북산 아래는 남면(南面)하여 자궁(紫宮)이 있고 돌을 아로새겨서 그 벽을 만들었다. 무슨 전(殿) 무슨 각(閣) 그 수효를 셀 수 없고, 맑은 시내가 서으로 흐르는 그 위에는 돌 다리를 걸고 난간 기둥으로 석련화(石蓮華)를 세웠다. 다리의 좌우에 돌 사자(獅子) 네 마리를 안치하고 그 중앙에 여덟 자의 돌담을 쌓고 그 네 귀에는 또한 돌 사자 네 마리를 장식하였다. 그 뒤에 자진, 청량(紫震, 淸凉)의 두 전각이 있는데, 역시 돌로 기둥을 삼고 사면에는 상룡 하룡을 새기고, 유리(璃瑠)로써 기와를 만들고, 그 꼭두머리에는 청룡(靑龍)을 두르고, 금은으로 판을 만들어 붙이고, 주옥으로 장식하고, 천장과 네 벽에는 오색 필채로써, 기린, 봉황, 공작, 용호 등을 그리고, 층계에는 가운데는 돌봉황을 새기고 좌우에는 돌 학을 깔았다.
왕성의 형세 언어에 절하여 선경(仙境)이나 용궁성(龍宮城)이라고나 감히 칭할까. 낙인(洛人)이 말하기를 이 곳은 경기도의 감영으로 이백 오십 년 전에 개성서 이리로 옮겨 한양부라 부른다―』고.
소박(素朴)한 당시 일본의 성시를 보아 온 일본 장수들이, 오색이 영롱한 궁궐에 얼마나 놀랐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찬란하던 궁궐도 임진란 때에 불을 일으키고 그 뒤 얼마만큼 중수는 하였지만, 오랫동안 우로에 젖고 또 젖어서, 이제는 보잘 나위도 없게 되었다.
지금의 종친으로 뉘라서 이 고궁을 보고 다시 돌이켜서 옛날 태조의 위업을 생각할 때에 한 줄기의 눈물이 없이 지날 수가 있으랴!
왕실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외척들만 세를 쓰는 지금의 세상에, 이 고궁을 돌아볼 자 누구며, 이 고궁을 간수할 자 누구냐?
사멸의 도시 한양에서 주인 없는 이 고궁은 나날이 더덜미고 쓰러져 간다. 태조 업을 일으키고 한양에 도읍을 정하였음은, 당신의 후손으로 하여금 오늘날 이렇듯 영락에 울게 하고자 하였음은 아니거늘―
이 쓰러져 가는 고궁과 사멸의 도시를 눈 아래 굽어볼 수 있는―한양의 정기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백악에도 봄이 이르렀다.
필운대의 살구꽃도 북문의 복사꽃과 홍인문 밖의 버들을 화류장(花柳場)으로 꼽고, 봄이 되면 삼삼오오 때를 지어 그리로들 놀러 가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백악바위 틈에도 진달래는 송이송이 봄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백악의 평탄한 한 군데를 자리잡아 가지고, 앞에 간단한 주안을 벌여 놓고 봄을 따려는 두 사람의 탐춘객이 있었다. 사멸의 도시를 눈 아래 굽어 보기가 싫어서 모두들 다른 데로 봄을 탄상하러 가는데, 이 탐춘객은 남들이 찾지 않는 백악을 답청장(踏靑場)으로 삼고 여기서 봄을 즐기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사십이 조금 넘음직한 중늙은이, 또 한 사람은 겨우 소년의 영역을 벗어난 열 칠팔 살의 청년―
그들의 앞에는 간단한 주효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술도 들지를 않았다. 잠시 동안을 두 사람은 각각 제 생각만 하는 듯이 온통 회색 지붕 아래 감추어져 먼지만 무럭무럭 울리는 정숙의 도회를 굽어 보고 있었다.
한참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중노인이 스스로 술을 한 잔 부어서 들이켰다. 그리고 그 잔을 보자기 위에 도로 놓으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
『여보게, 성하! 어디 자초지종을 다 한 번 다시 말해보게.』
청년은 조심하였다. 그리고 성하와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은 타락된 공자 흥선군 이 하응―
한참 저편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던 성하는, 그 눈을 굴려서 흥선을 쳐다보았다. 흥선은 음침한 얼굴로 비기어 성하의 얼굴은 광채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의 차이의 탓뿐이 아닌 듯하였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상세히 여쭈어 보지 못했읍니다.』
『왜?』
『며칠 전에 대감께 그 분부를 듣잡고 어제 대비마마께 가서 그 말씀을 여쭈어 보았더니, 마마께서는 너는 왜 당찮은 말을 묻느냐고 하시는데 무어라고 더 여쭈어 보겠읍니까?』
『그럼……』
흥선은 무슨 말을 곧 하려 하였다. 그러나 잠시 주저하였다. 주저한 뒤에 드디어 그 말을 하였다.
『그럼, 달리 돌려서라도 여쭈어 볼 게지.』
『어떻게 말씀이오니까?』
흥선은 대답지 않았다. 대답지 않고 성가신 듯이 두어 번 코를 울렸다. 이 성가신 듯이 흥선이 코를 울리는 것을 성하는 미소로써 쳐다보았다. 한참을 흥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가 성하는 자세를 바로하며 흥선을 찾았다.
『대감!』
다시 흥선을 찾을 때에는 성하의 입 가에 떠돌던 미소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대신 얼마만큼 엄숙한 기분이 나타났다.
『대감께서는 시생을 어떻게 보십니까?』
『?』
『왜 마음에 계신 대로 말씀을 안 하시고 한 겹 감추어 가지고 계십니까?』
흥선은 그의 굵은 살눈썹 아래고 이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권문들을 찾을 때에 늘 그의 얼굴에 흐르던 비굴한 표정은 어디로 감추었는지, 그다지 표정이 없이 굽어 보는 그의 눈찌지만, 그 눈찌에는 사람을 위압하는 위엄이 있었다. 이 눈찌―위압적 눈찌를 성하는 감사한 듯이 우러러 보았다.
정월 초승, 흥선을 조대비께 안내한 이래로 조 성하는 자주 흥선을 찾았다. 흥선도 성하를 자주 불렀다. 종실의 당당한 공자이지만, 가난한 살림을 오래 하기 때문에, 지금은 사람이 여간 비루하게 되지 않았다는 흥선의 소문은 성하도 일찍부터 들었던 것이었다.
그랬더니 섣달 그믐날, 자기의 악장되는 이 호준이 부러 자기를 불러서 말한 바에 의지하건대, 흥선군 이 하응씨는 결코 세상이 전하는 바와 같은 허튼방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이 전하는 바와 같은 여러 가지 기행(奇行)이 있는지는 모르되, 그것은 기행으로 볼 것이지, 세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전하는 바와 같이, 눈살을 찌푸리고야만 능히 말할 수 있는 비루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 또한 그런 일이 있다 칠지라도 그것은 무슨 다른 곡절 아래서 나온 일이지, 그의 인격과 품성은 고결하고 총명하기 당대에 드문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종반에 사람이 많고 많으되, 눈 있고 귀 있고 손 있는 이는 그이 한 분만이시다. 호방(豪放)하고 작은 일에 구애하지를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결코 상린(常鱗)이 아니니라. 종반 가운데 국운을 회복할 만한 역량을 가진 분은 흥선 대감밖에는 없으리라.』
호준은 사위에게 이렇게 흥선의 인물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성하가 조 대비의 조카임을 이용하여, 흥선군을 조용히 조 대비께 뵈올 기회를 지어 주기를 부탁하였다.그 때를 기축으로, 그 뒤에도 성하는 여러 번 흥선 댁을 찾았다. 여러 번 찾으며 찾은 때마다 관찰하고 연구한 바에 의지하건대, 흥선이라는 인물은 도저히 그 속을 알아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비굴한 행동 비굴한 말을 예사로 하는 인물이었다. 그 수모를 받으면서도 대관 댁이며 대신 댁을 그냥 지근지근 찾을 때에 그의 얼굴에 떠도는 비굴한 미소―그것을 한낱 연극으로는 결코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오래 가난에 젖고 또 젖어서, 그의 제이의 천성이 된 비굴한 성품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대체 그 비굴하게 구는 것이 한 개 연극에 지나지 못하다면, 그 때 받은 수모 때문에 이를 갈면서 분해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수모를 받은 뒤에마다 이를 갈면서 분해한 뒤에도 이튿날만 되면 또한 여전히 지근지근 그들을 찾는 것은, 속이 썩고 또 썩은 인물이 아니면 하지 못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썩고 또 썩은 인물인가 하면, 또한 때때로는 엄격하고 추상 같은 그의 일면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의 둘째아들 재황을 데리고 조용히 이야기라도 하는 기회를 어떻게 엿보면, 그런 때에는 흥선의 얼굴에 있는 엄숙하고 경건한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의 면을 가지고 있는 흥선의 어느 면이 참말 그의 면인지, 성하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놀라운 야망을 품고 있는 흥선은 한 개의 명우(名優)인가?
혹은 가난에 젖기 때문에 속의 속까지 썩은 가련한 공자인가?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마음이 강직하기 짝 없는 이 호준의 눈에 들어 호준의 애서(愛?)가 된) 성하는 벌써 어른을 능히 잡아 먹을 만한 뱃심과 기백을 가졌던 것이었다. 이 성하가 흥선이라 하는 인물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세밀히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결과, 몸을 의탁할 만한 사람이면 자기의 몸을 의탁하려고.
수일 전 성하가 흥선을 찾았을 때에 이런 말 저런 말 끝에, 흥선은 성하에게 한 가지의 일을 부탁하였다. 즉 다른 일이 아니라 성하가 조 대비께 뵐 기회가 있거든 그 때에 조 대비께 동궁 책립에 대한 의향을 내탐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세자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지, 혹은 종친 중에서 누구를 동궁으로 책립하려고 비밀히 그 인선을 하는지, 그것을 내탐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머리를 교묘히 돌려서 얼른 듣기에는 무심히 하는 말같이 하였으므로, 성하도 그 날은 무심히 듣고 그럽시다고 응낙을 하였던 것이다. 오늘 탐춘을 겸하여 이 백악에 오른 것은 그 때의 그 부탁에 대한 회답도 겸하여서였다. 잠시 무거운 눈찌로 성하를 내려다본 다음, 흥선은 슬며시 머리를 돌렸다.
『자네게 한 꺼풀 감추는 것이 무엇 있나?』
『아니올씨다. 비록 아직 철 없는 성하입니다만 그만 눈치까지야 왜 없겠읍니까?』
머리를 돌리고 있는 흥선의 눈은 경계하는 듯이 두어 번 섬벅거렸다. 섬벅거리던 눈이 굴러서 성하에게로 돌아올 때는, 거기는 기괴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자네 말을 도무지 알 수가 없네. 그러면 이 흥선이 동궁이 되고 싶어 그런 운동을 하겠나? 당찮은……』
그 뒤를 이어서 흥선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성하는 보았다. 너털웃음으로 속여 버리려는 흥선이로되, 그 밑에 숨어 있는 커다란 실망을―성하의 회보에 어떤 기대를 분명히 품고 있다가, 시원하지 못한 대답을 듣기 때문에 초조해하는 것을―
『대감, 다시 말씀드립니다. 대감께서……』
그러나 흥선은 성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성하에게 등지고 두어 걸음 아래로 내려갔다.
『이러한들 어떠라리 저러한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가느다란 소리로 그의 조상 태종이 고려 충신 정 몽주를 시험하던 시조를 읊어 보다가, 홱 몸을 성하에게 돌이키며,
『성하!』
하며 찾았다. 그 갑자기 찾는 흥선에게 황급히 성하가 머리를 들 적에 흥선은 말을 계속하였다.
『이러한들 어떠하리, 저러한들 어떠하리. 성하 자네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모양일세 그려? 상감께는 후사가 없으시겠다, 석파에게는 아들이 있겠다. 석파는 왕실 친척이겠다, 여차하면 석파의 아들이 동궁에 간택될지도 모르렷다, 이런 생각으로 내가 자네에게 그 당부를 한 것 같이―자네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가 보이? 그러나 생각해 보게. 석파의 맏아들 재면이는 자네도 알다시피 천치야. 둘째아들 재황이도 애는 그다지 천치는 아니지만, 본시 천하게 길러나기 때문에 기역자 인 다리도 변변히 못 그리고, 장기라니 돈치기나 연 올리길세그려. 사기를 펴 보아야 돈치기 잘 하는 엿장사 흉내 잘 내는 임금이 다는 기록이 어디 있나? 나는 폐인, 술이나 먹고 투전이나 하고 쌈하다 매나 잘 맞고―그런 대원군이 있다는 기록이 어디 있나? 종실 친척이니깐 내가 동궁에 관해서 물어보면 자네는 그렇게 오해하기도 쉽겠지만, 나는 인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술망나니일시. 사십 년을 술과 투전으로 허송한 내가, 이제 늙마에 무슨 다른 꾀를 하겠나? 며칠 전에 자네에게 부탁했던 것은, 그저 말말 끝에 한 것이지, 무슨 다른 뜻이 없네. 인간 칠십은 고래희라는데, 반 팔십을 술로 허송을 했으니, 아아! 나는 과시 가련한 인생이로군―』
그 뒤에는 쓸쓸한 웃음―
『자, 한 잔 부어 주게. 모두 웃고 지낼 일일세. 나같이 웃고 지낼 일이야. 그 김가들한테 갖은 수모를 다 받기는 하지만, 그냥 모든 체하고 나 먹을 술이나 얻어 먹었으면 그뿐 아닌가? 수모한다고 가지를 않으면, 배 굶을 놈은 나뿐일세 그려. 안 간다고 그 놈들이 칭찬할 것도 아닐 일, 지근지근 찾아가면 공술잔이나 생기거든. 그것만해도 득이 아닌가?』
이런 말을 천연히 하는 흥선의 뱃속에 과연 별다른 배포가 있을까? 이것은 자기의 그 배포를 감추고자 하는 한 개의 연극일까? 성하는 차차 혼란되어 가는 마음을 억제하기 위하여, 잠자코 저편 아래 음침히 누워 있는 회색 바다―사멸의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참 잠자코 저편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상하는 드디어 한숨을 쉬었다.
『대감, 바른 대로 말씀드리리다. 어제 마마께 뵙고 동궁 간택에 관해서 어떤 의향을 갖고 계신지 대비마마의 의향을 여쭈어 보에 대하여 더니, 마마께서는 직접 거기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계시고, 대감의 둘째도령 명복(命福―재황의 애명) 아기씨가 무슨 생이냐고 물으시기에 아마 금년에 열 살인가 아홉 살인가 된다고 여쭈었더니, 음영특하다는 말은 나도 들었다 하시고는 다른 말씀을 하시고 마십디다.』
흥선은 이 말을 들었는지? 적어도 귀담아 들었는지 성하의 이야기를 듣는 듯 안주만 연하여 집어먹고 있었다. 만약 흥선으로서 뱃속에 어떤 다른 배포라도 갖고 있다 하면, 승하의 이 말은 결코 거저 넘기지 못할 말이었다. 지금 종실의 어른이요, 세자 책립을 종묘에 복고할 자격을 가진 유일 인인 대왕대비가, 흥선의 둘째아들의 영특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는 것은 중대한 의의를 가진 것으로서,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장래 어떤 방면으로 사건이 진전될지, 그것은 예측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의하여 들으면 이런 중대한 의의를 가진 말이 승하의 입에서 나왔거늘, 그것을 당연히 들었을 흥선은 못들은 체하고 그냥 술에만 정신을 두는 것이었다.
만약 흥선으로서 그 말을 듣고도 심상히 여긴다면, 흥선은 세상이 전하는 바와 같이 별로 속도 없는 한 치인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흥선이 성하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의의를 알고, 그리고도 이렇듯 표면 천연히 「술밖에는 자기를 끄으는 아무 물건도 세상에 없다」는 듯이 자기의 온갖 감정과 표정을 죽여 버리는 것이라면, 흥선은 사람의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아직껏 흥선의 마음을 따져 보기 위하여 감추어 두었던 진상을 흥선에게 말하고, 거기서도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 성하는, 흥선의 얼굴에 움직이는 표정이라도 보려고, 눈을 들어서 흥선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흥선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 표정도 보이지 않고, 일심불란히 질긴 편포만 씹고 있는 것이었다.
경하는 흥선을 진맥하기를 드디어 단념하였다. 오래 사귀는 동안―그리고 자기의 심경을 모두 흥선에게 사뢴 뒤에 저절로 차차 알아질 것이지, 흥선과 같은 수수께끼의 인물을 단시간 내에 알아내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줄을 깨달았다. 조급히 알려면 알려느니만큼 부득요령의 결론밖에는 얻을 수가 없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 세상이 흥선을 비평하는 비평 이상으로 흥선을 알지 못할 것을 알았다.
흥선을 단시일 간에 알아보려던 노력을 포기한 성하도, 흥선을 본떠서 땅에 편 암주 보자기에서 편포를 한 조각 찢어서 입에 넣고 후물후물 씹기 시작하였다.
봄날 따스한 볕은 이 두 불우(不遇)의 공자 위에 고요히 내리비치고 있었다.
흥선과 조 성하가 백악에서 내려온 것은, 봄날의 짧지 않은 해가 멀리 인왕산 마루에 넘실넘실할 저녁때였다. 사멸의 도시 한양도 겨우 움직이기 시작하여, 집집마다 뽑아 내는 저녁 연기가, 가뜩이나 거무튀튀한 이 도시를 더욱 음침하게 만들고, 많은 부엌 며느리들은 시민의 양식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히 왕래할 때였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 흥선은 먹다 남은 부스러기 안주를 모두 다시 보자기에 싸서 간수하였다. 남은 부스러기라 하나, 마른 안주 몇 점밖에 없는 것을 찬찬히 싸서 그것을 허리에 찼다. 가난에 젖은 흥선으로서는 예사로이 하는 노릇인지 모르지만, 같이 일반으로 부유히 지나지 못하는 조 성하의 눈에조차 창피한 노릇이었다.
성하는 흥선 댁까지 흥선을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잠시 들어와서 저녁이나 같이 하고 가라는 것을 사양하고 흥선 댁 문 밖에서 흥선께 하직하였다.
싱거운 답청(踏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하인들을 뒤에 달고 흥그러이 취하하여 사인교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이 날에, 흥선과 성하는 똑똑한 정신으로 (흥선조차 그리 술도 먹지 않고) 다시 아침에 떠났던 이 도시로 돌아온 것이었다.
흥선을 흥선 댁으로 들여보내고 혼자 된 성하는, 처음에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였으나, 마음이 유난히 뒤숭숭한 것이 집으로 돌아가기도 싫으므로, 그의 발에 온 권리를 맡겨서 지향 없이 거리거리를 헤매기 시작하였다.
흥선이라 하는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한 의문이 그의 온 머리를 덮었다.
단지 한 술망나니에 지나지 못할까?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감쪽같이 속이는 놀라운 명우(名優)일까? 단지 한 주착 없는 술군으로 보잘 때에는, 그 의견을 부인하는 몇 가지의 증거가 그의 머리에 휙휙 지나갔다. 자기의 장인 이호준은 강직하고 사람을 볼 줄 아는 인물이다. 그 이 호준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적에는, 칭찬할 만한 무슨 곡절을 가졌을 것이다. 정월 초승, 성하 자기와 오서도 반해 조 대비께 잠행을 했을 때도, 단지 주착 없는 술군일지면 거기서 망신스런 몇 가지의 행동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흥선의 언행은 비록 궁중 예의에는 벗어난 일을 하였을지라도, 눈을 찌푸릴 만한 망신스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야인비례(野人非禮)라고 너그러이 볼 만한 행동은 하였지만, 더러운 인물로 볼 만한 미루한 행동은 하지를 않았다. 권문 김씨를 앞에서 늘 흘리던 비굴한 미소도, 조 대비의 앞에서는 흘리지 않았다. 「하하하하!」그 때의 야인의 야성적 웃음을 궁중 예의에는 벗어났을지 모르나, 어디까지든 호활하고 천진한 야인이었다.
―흥선군은 소문과 달리 재미있는 사람이라.
고 조 대비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만큼, 그는 첫눈에 대비의 마음을 샀다.
그런 일면을 가진 그가 세상에 나와서는 한 잔의 막걸리를 위하여 비굴한 웃음을 연하여 웃으며, 한 점의 안주를 위하여 갖은 수모를 받으며, 권문 세가들을 지근지근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창피를 창피로 알지 않고,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두 가지의 면을 가진 괴인의 진정한 정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이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풀려고, 성하는 머리를 깊이 가슴에 묻고 황혼의 거리를 방향 없이 왔다 갔다 하였다. 저녁 짓는 연기가 숨을 쉬기조차 힘들도록 가득해 있는 이 어둠과 냄새와 더러움의 거리를―
성하는 우뚝 섰다. 맞은편에 무슨 시커멓고 커다란 것이 벌리고 섰으므로―
눈을 들어 보니, 지향 없이 황혼의 거리를 헤매고 있던 성하는 어느덧 남대문에 당도한 것이었다. 아래의 문에서 위의 누각으로 성하는 차차 차차 눈을 높이 올렸다. 차차 올라가던 눈은 숭례문(崇禮門)이라 쓴 커다란 현판에 가서 멎었다.
그 호활 뇌락(豪?牢落)한 필적의 현판을 잠시 우러러 볼 동안 성하의 낮에는 차차 미소가 나타났다.
필적의 주인인 양녕 대군(讓寧大君)―태종의 맏아드님으로 일찍이 세자로 책립이 되었다가 폐사된 양녕 대군―
어렸을 적에 읽은 역사상의 사실이 걸핏걸핏 성하의 머리 한편을 스치고 지나갔다.
―양녕 대군은 태종의 맏아드님으로, 일찍이 세자로 책립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님 왕의 마음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자기의 세째 동생 충녕 대군(忠寧大君)에게 있음을 알고, 양녕은 아버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미친 체하고 치인(痴人)의 흉내를 내었다. 이리하여 아버님의 노염을 사서 폐사가 되고, 동생 충녕 대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어서, 후일 태종의 뒤를 이어 제 사대의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이 분이다.
당시 양녕 대군은 아버님의 노염을 사기 위하여 어떤 행동을 취하였나?
부왕의 부름을 있을지라도,
『몸에 탈이 있어서 못 가겠읍니다.』
고 핑계하고 산과 들에 사냥을 다니던 양녕― 사월 파일날, 대궐의 담을 넘어 나가서 잡배들과 관등을 다니던 양녕― 달밤에 궁을 벗어나서 부랑자들과 짝을 지어 비파를 뜯으면서 거리로 헤매던 양녕― 잡놈 잡년들을 궁 담을 넘겨서 세자궁으로 끌어 들여 놀고 덤비던 양녕― 남의 아리따운 첩을 궁으로 뺏어다가 같이 즐기던 양녕― 허튼 소리를 흉내내며 대궐 뜰을 돌아다니던 양녕― 글을 읽으라면 굴은 안 읽고 다락에 놓은 새덫(鳥械)만 바라보고 있던 양녕―
이런 일들로 부왕의 노염을 사서 양녕은 뜻과 같이 폐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양녕의 사실 인격이 이렇듯 치인이었던가?
양녕이 폐사되매, 양녕의 동생 효령 대군(孝寧大君)은 형이 폐사가 되었는지라 자기가 당연히 세자가 될 줄 알고, 열심히 책상을 대하여 독서를 하였다. 이 모양을 본 양녕은 발길로 효령의 책상을 걷어찼다. 그리고 놀라서 쳐다보는 효령에게 은근한 소리로,
『어리석은 동생아, 충녕(忠寧)이 있다. 세자는 충녕이 될 것이다.』
고 깨쳐 주었다. 효령은 비로소 맏형 양녕의 속뜻을 알고, 궁을 벗어나서 절간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태종은 일찍이 금중(禁中)에 감나무를 심고 상완하였다. 어떤 날 그 감나무에 새가 앉아서 감을 쪼고 있었다. 그것을 본 태종은 좌우에 명하여 누구 저 새를 쏘라고 하였다. 그러나 꽤 멀리 감나무에 앉은 새를 쏘아 맞힐 자신이 있는 사림이 없어서, 모두들 먹먹히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사람이,
『동궁(양녕) 한 분밖에는 맞힐 이가 없소이다.』
고 하였다. 태종은 양녕을 불러서 쏘게 하였다.
과연 양녕은 첫 살로 명중시켰다. 양녕의 하는 일을 모두 밉게만 보던 태종도 여기에는 만족히 웃었다.
이것이 능히 치인이나 광인이 넉넉히 할 일일까?
글을 싫어한다는 평판이 높은 양녕의 필적은, 호활 뇌락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시원한 감을 일으키게 한다.
「讓寧爲世子 淫於聲色 不務學業」
이라 한 양녕이 어디서 그런 달필을 자아내었나?
그런지라, 뒷날 문종과 단종의 대를 지나서 이씨 조선 대흥의 명군 세조가 등극을 하고서, 무능하고 무책하고 지벌 권세만 자랑하자는 모든 왕족이며 대신을 모조리 없이할 때에도, 양녕 대군뿐은 그 화를 면할 뿐 아니라, 틈이 있을 적마다 세조는 친히 양녕 대군을 청하여서 그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치인이란 일컬음을 듣고 글을 싫어하였다는 기록을 남긴 양녕의 숭례문 현판의 필적은 뚜렷이 이 도시의 출입구인 남대문에 걸려서, 이래 사 백년 간 그 아래를 통과한 수 없는 사람에게 그 호활한 필적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황혼의 남대문을 장식한 옛날 현인의 필적을 우러러 볼 동안, 젊은 성하의 눈 가에는 감격의 엷은 눈물까지 보였다. 치인의 형세를 하고 미친 사람의 형세를 하여, 그 한때 생애를 모호히 한 옛날 현인 양녕 대군의 필적을 우러러볼 때에 성하의 머리에 다시금 떠오르는 것은 흥선의 인격이었다. 양녕이 미친 행세를 할 때에, 뉘라서 그것을 한낱 연극이라 간파하였나?
「讓寧雖失德廢嗣 晩年能隨時自晦」
라 하여, 젊은 시절의 실덕을 모든 사가는 시인하였다.
그것을 연극으로 보지 않았다.
『술망나니!』
『주착 없는 인물!』
『투전군!』
『비루한 사람!』
『치인!』
『상갓집 개!』
이런 수 없는 창피한 명칭으로 불리면서도, 그래도 그것을 싫다 하지 않고 그냥 지근지근 대관들을 찾아 다니는 흥선은, 사실에 있어서 치인으로 볼 인물일까, 혹은 옛날의 양녕과 같이 어떤 필요상 자기의 신분과 패기와 포부와 심정을 남에게 감추기 위하여―그리고 감춤으로써 자기의 일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세상을 모호히 하는 술책으로 볼 것인가?
―대감! 대감의 심성을 이 성하에게뿐은 감춤 없이 알려 주십시오. 성하는 영리하옵니다. 영리하면서도 또한 신과 의를 지킬 줄을 아옵니다. 지금 상서롭지 못한 세상―종실의 권위는 발 아래 떨어지고 외척들 때문에 삼천리의 강토와 수천만의 생령은 도탄의 괴로움에서 우옵니다. 종실 가운데서 한 현인이 나타나서 큰 청결을 하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는 이 나라가 꺼져 없어질 모양이옵니다.
―대감! 대감은 과연 현인이옵니까? 혹은 세상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한 개의 치인에 지나지 못하옵니까? 만약 대감으로서 사실에 있어서 현인이시고, 지금의 대감의 하시는 일이 모두 신분을 모호히 하시기 위한 술책이시라면, 성하에게만은 대감의 심정을 일러 주십시오. 성하 비록 어리고 무력하오나 대감의 앞에서 최후의 힘까지 다 쓰오리다.
황혼의 남대문―벌써 꽤 어두워서 눈에 힘을 주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현판을 우러러보며, 성하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옛날 현인의 휘호한 활달한 필적은 이 성하의 마음을 알아보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커다랗게 걸려서, 그가 사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자기의 아래를 통과한 수 없는 사람을 굽어 본 그런 무표정한 태도로 성하를 굽어 보고 있었다.
근 반각이나 그 아래 서 있다가 성하가 자기의 무거운 발자국을 뗄 때는, 성하의 양 뺨에는 희미하나마 눈물이 흐른 자취까지 있었다. 이십만의 인구를 감춘 장안은 고요히 고요히 밤의 장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밤은 차차 전개되려는 것이었다.
『나도 어떻다고 단언할 수는 없네.』
그 날 밤 조 성하가 자기의 장인 이 호준을 찾아서, 거기서 또 다시 장인에게 흥선군의 진정한 인격을 묻자 호준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떻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만치는 말할 수가 있네. 즉 자네도 알다시피 이전에 그 분은 사복시 제조(提調)로 계시고 나는 그 아래 주부로 있을 적에 친히 뵙던 그 분과, 지금의 대감과는 판이하게 달라. 강직하시고 활달하시고, 작은 일에 구애하지 않으시고, 가난을 가난으로 아시지 않더니, 이즈음은 그 날의 강직이 다 없어지시고 가난에 시달린 한 생원님같이 되시지 않았는가. 사람의 천성이란 그렇게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니. 이전에 그렇게 강직하시던 이가 갑자기 지금같이 변하신 것이, 첫째로 머리를 끄덕이지 못할 일―그 밖에 또 한 가지, 자네도 대감 댁에 출입하면서 보았지만, 그 댁 둘째 도령이 가난에 젖기 때문에 동리 허튼 애들과 돈치기나 하며 연이나 날리면서 놀지만, 인사 범절이며 학문 지식이 금중(禁中)에서 성장한 아기씨들보다도 훨씬 낫지 않은가> 이게 모두 흥선군의 교훈에서 나온 것일세 그려. 술이나 잡숫고 투전판이나 찾아 다닌다는 소문이 높은 대감이, 어느 겨를에 무슨 필요로 그렇듯 후사 교훈에 힘을 쓰시겠나? 이런 것으로 보아서 대감의 그―소위 주책없다는 일이 모두 지어서 하시는 일이 아닌가 하네.』
『네, 저도 그렇게 보았읍니다. 그렇게 보기 때문에 무슨 하교라도 계시면 견마의 힘을 다 쓰려는데, 대감께서는 저를 당초에 믿지 않으시고, 여전히 제게 향해서도 세상을 대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하십니다.』
성하는 쓸쓸한 듯이 장인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
『그것은 자네게뿐 아니라 내게도 그러시네. 벌써 십 년 지교가 있고 사돈의 의가 있는 내게도 그러시니까. 아직 젊은 자네에게 왜 마음을 보이시겠나? 자네도 그만치 알고 모든 일을 나무럽게 알지 말고 꾸준히 그냥 모시게. 상린(常鱗)이 아닐세. 상린이 아니야. 언제까지든 못 가운데 계실 분이 아니고, 구름만 얻으면 능히 하늘을 보실 분일세. 대비마마께서는 어떻게 보시나?』
『마마께서도 제가 뵈올 때마다 흥선군의 안부를 물으시는 품이 나쁘게 보시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것 보게. 웬만한 지자(知者)는 사람으로 여기시지 않는 대비마마께서 그렇게 보신다니, 이게 상린의 염이나 낼 노릇인가?』
그리고 호준은 머리를 뒤로 높이 젖히면서 혼잣말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종실의 가장(宗室家長)과 종실의 용(龍), 적지 않은 풍운이 일어날 것이로다.』
어서 일과저! 성하는 축수하였다. 자기도 왕실의 척권의 한 사람이요, 더구나 현 종친의 어른 되는 대왕 대비를 연분삼은 척권이지만, 김대비의 척권되는 김씨 일파의 너무도 푸르른 세력에 눌려서 손 하나 들썩할 자유도 없는 조 성하는, 그 김씨의 세력을 미워하는 심정에서도 하루바삐 종실의 가장과 종실의 용의 악수와 활동을 바랐다.
조 성하가 장인 이 호준의 댁을 하직하고 나선 것은, 야반의 인견은 이미 울고 거리에는 드문드문 포교나 순라군의 무리밖에는 보이지 않는―밤도 이미 깊은 뒤였다.
그 날 밤 자리에 들어가서도 성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남대문에 높이 걸려서 그 활달한 필적을 사백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자랑하는 「崇禮門」의 석 자가 불 끄고 누워 있는 그의 눈앞에 연하여 어릿거렸다.
―대감! 양녕 대군이 됩소사. 결코 세상이 평하는 바와 같은 대감이 아니시기를 바라옵니다.
성하는 때때로 소리까지 내어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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