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10장
十
편집한양부의 남쪽을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 하류변(漢江下流邊)―
강 이쪽이며 건너쪽이며 할 것 없이, 서너 사람 대여섯 사람씩 몰려 서서, 무엇을 기다리는 듯이 강 상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안 오지?』
『벌써 오겠나?』
근처의 어부, 농군, 촌부 할 것 없이, 남녀 노소가 한 떼 한 떼씩 몰려 서서 공론들을 하고 있다.
『백 섬이라던가?』
『아니 오십 섬이라나보데.』
『오십 섬은? 스무 섬이야.』
『스무 섬만 치더라도 우리 집안이 이 년은 남아 먹을 걸세 그려! 돈도 흔한 사람들도 있지―』
『흔하지 않겠나? 매일 시골 생원들이 갖다가 바치는 것만 해두 수천 냥씩 된다네.』
『쉬! 허투루 못할 소릴세.』
말하던 사람, 금지당한 사람, 모두가 경계하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봄날 맑은 한강 물은 이런 상놈들의 평판을 담아 가지고 넘실넘실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나주 합하 양씨(羅州閤下梁氏)의 시반일(施飯日)이었다.
옛날 명종조(明宗朝)에, 대신 윤 원형(尹元衡)에게 난정(蘭貞)이라 하는 첩이 있었다. 간사하고 악착한 계집으로서, 뇌물을 즐기고 음사를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 난정이 일 년에도 두세 번씩, 밥을 여러 섬씩 지어서 실어 가지고 두모포(豆毛浦) 등지에 가서 강에 밥을 던졌다. 물고기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었다.
명종 시대의 윤 원형의 첩과 같은 길을 걷는 하옥 김 좌근의 첩 양씨도, 밥을 이십 섬어치를 지어 가지고는 오늘 한강에 던져서 고기들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떠나는 것이었다.
스무 섬이면 자기네 집안에서는 이 년을 먹고도 남겠다고 불평을 말하던 젊은이가, 이번에는 무슨 중대한 보고나 하는 듯이 함께 이야기하던(농군인 듯한) 친구에게 입을 가까이 대고 소근거렸다.
『아랫마을 차손이네 알지?』
『이 서방네 작은아들 말이지?』
『그래!』
『……』
『그 사람이 어쨌단 말인가?』
『알다시피 그 집에서는 작년 홍수에 농사를 통 망치고 사실 이즈음은 삼순구식하는 형편이 아닌가? 오늘 나온다네.』
『나오다니?』
『그……』
입을 더욱 귀에 가까이 대었다.
『물 속에 숨바꼭질해서 고기 밥을 건져 가겠다고 벼르데. 필시 나올걸!』
농부인 듯한 사람은 눈을 약간 크게 하고 친구를 돌아보았다.
『정말인가?』
『그럼!』
『흥!』
잠시 두 사람은 말을 끊었다. 농부인 듯한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웃마을에도 삼순구식하는 사람……』
『거진이지!』
『도둑놈들!』
또 말이 끊어졌다.
좀 뒤에 어부인 듯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나도 갈까 하네.』
『무얼?』
『한 치룽만 건진다 해도 얼만가? 사흘 고기잡이 해서 그걸 벌겠나?』
『고기밥 뺏어 먹는 셈일세 그려!』
『고기 잡아 먹고 고기밥 뺏어 먹고……용궁에서 알았다가는 그냥 안 둘 걸세.』
어부인 듯한 사람은 적적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하긴 김 대감 댁 밥을 이런 때 아니면 구경이나 하겠나? 많이 건져 오게.』
『암! 많이 건져 오다마다. 여보게, 창피한 말이지만 나는 오늘 조반도 아직 못 먹었네. 집에서는 어제 저녁도 변변히 못 먹었네. 그것 건지지 못하면 내일도 굶는 수밖에 없네.』
『고기 팔자만도 못 할세 그려!』
『도둑놈들!』
양씨의 시반선(施飯船)―
맨 앞에는 악공(樂工)들을 만재한 배였다.
둘째로는 이십 섬의 밥과 무당 그 밖의 하인들이 탄 배였다.
세째로는 오늘의 주인 양씨와 가까운 친척들과 하인들이 탄 배였다.
맨 뒤의 것은 드나드는 아랫사람이며 영인 잡배며 하인들을 실은 배였다.
오정쯤 되어서 이 호화로운 일행은 밥을 고기에게 던져 주려고 운파 오 리의 길을 떠났다. 출발하는 근처 좌우편 언덕에는, 이 장관을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들 때문에 입추의 여지도 없었다.
삼현 육각의 부드러운 소리를 선두삼아 가지고, 구름같이 모여든 구경군들의 탄성, 욕설, 비웃음, 칭찬―가지각색의 비평을 뒤에 남기고, 네 척의 배는 무당의 공수를 기다랗게 물 위에 퍼치면서 둥실둥실 떠 나갔다.
그 배들이 언덕에서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던 이 근처의 많은 아이들이 와르르 하니 몰려들었다. 이십 섬의 밥을 강 언덕에서 지었는지라 눌은밥이며 부스럭밥이 그 근처에 꽤 많이 흐르고 널렸다. 이 근처의 가난한 여인이며 아이들은 그것을 주워 가려 모여들었다. 거기서 지키는 하인들의 욕설이며 매며를 무릅쓰고, 꿀에 모여 드는 개미떼같이, 이 굶주린 무리들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밥 부스러기를 주우러 모여들었다. 그리고 제각기 많이 줍기를 경쟁하였다.
언덕을 떠난 자선선(慈善船) 네 척은 특별히 바쁜 길이 아닌지라, 그다지 젓지도 않고 물의 흐름을 따라서 고요히 고요히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세째 배에 탄 오늘의 주인 양씨가 보아 가다가 몸하인에게 명하면, 몸하인은 즉시로 다른 하인에게로 전하고, 그 하인은 앞의 시반선으로 전하여 앞 배에 탄 복술이 축원을 드리고 그 다음에는 밥을 한 함지박씩 떠서 물에 던지고 하는 것이었다.
이 날의 주인 양씨의 얼굴에는 득의의 표정이 흐르고 넘쳐 있었다. 대단히 엄숙한 얼굴로 좌우 언덕에 있는 구경군들을 살펴보다가는, 생각난 듯이 몸종에게 시반을 명하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결을 날리며 밥이 물에 떨어져서 잠겨 들어갈 때마다 몸소 일어서서, 마치 그 밥이 물 속에 잠겨서 고기들이 맛있게 먹는 양이 보이는 듯이 만족한 얼굴로 물 속에 가라앉는 밥을 굽어 보고 하였다.
내려가다가 뱃사공이 어떻게 실수를 하여 노(櫓)로라도 철썩하는 소리를 내면, 양씨는 안색까지 변하며 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기들 놀라리라. 가만가만 저으라고 그래라.』
이 동정심 많은 여왕은 몸종을 시켜서 사공을 꾸짖는 것이었다.
소리가 안 나게―배가 흔들리지 않게―그리고도 또한 배가 물결대로 마음대로 흐르지 않게 강의 중심을 내려가도록―이 힘드는 역할을 맡은 사공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를 조종하였다. 실수를 하여 물 한 방울이라도 이 귀인들의 몸에 뛰었다가는 제 몸에 좋지 못한 일이 생길 줄을 잘 아는 사공은, 배에서 연하여 물로 던지는 허연 밥을 슬금슬금 곁눈으로 보면서 배를 젓지 않는 듯이 젓느라고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이 풍악과 열락이 자지러진 자선선(慈善船) 일행은 기름같이 잔잔한 한강을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이십 섬의 밥을 처치해 버리기 위하여―
좌우 언덕의 굶주린 촌민들은 이 위대한 사업을 경이의 눈으로 서로 수군거리며 구경하였다. 「아랫마을」이 서방의 작은아들 차손이는 스물 한 살 난 총각이었다.
나주 합하 양씨가 오늘 행하는 자선 사업에 뛰어 들어서 밥을 좀 도둑질해 내려는 더러운 생각을 품고, 그는 강 언덕 갈밭 틈에서 자선선이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차손이가 벌어 오는 밥을 받아 가려고 그의 늙은 어머니가 광주를 가지고 함께 갈밭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변에서 생장한 차손이는 헤엄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한강을 너덧 번은 넉넉히 왕래하며, 물 속을 숨바꼭질을 하여서라도 한 번쯤은 넉넉히 건너가는 것이었다.
『너 조반도 변변히 못 먹고 괜찮겠니?』
『걱정 마세요.』
『기운이 부족했다는……』
『도로 헤엄쳐 나오지요. 걱정 마세요.』
물에는 자신을 가지고 있는 차손이는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풍악 소리가 차차 가까워 왔다. 시반선 일행은 그들 모자가 숨어 있는 갈밭 앞 강을 천천히(일변 밥을 던지며) 흘러 내려갔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요.』
어머니에게 한 마디 당부한 뒤에, 차손이는 용감스러이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와스스, 스! 귀에 울리는 놀라운 물 소리를 들으면서 차손이는 강의 중심을 향하여 물 속을 헤엄쳐 나갔다. 아들을 물 가운데로 내보낸 늙은 어머니는, 이 전대 미문의 기괴한 모험을 감행하는 아들의 신상이 근심스럽기가 짝이 없어서, 거의 사색이 되어서 강의 사면을 두룩거리며 살필 때에 (그것은 이 노파에게 있어서는 무한히 긴 세월과 같았다) 아까 차손이가 물 속으로 사라진 자리에서 좀 하류쯤 되는 곳에, 물결이 잠시 괴상히 움직이다가 그 물 면으로 사람의 머리가 쑥 나왔다.
그러나 물 면에 얼굴은 내밀었지만, 차손이는 잠시도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얼굴이 백짓장같이 하얗게 된 그는 코를 찢어지도록 벌리고 씨근거리며 한참 숨을 돌리고 있었다.
한참 거기서 숨을 돌려 가지고 어머니 앞에 돌아온 때는, 차손이의 옆에는 물이 뚝뚝 흐르는 밥을 절반만큼 담은 자루가 끼어 있었다.
『후!』
아직 창백한 얼굴로 밥자루를 놓을 때에, 늙은 어머니는 귀여운 손자나 보는 듯이 자루를 채었다.
『핸 자루 못 되는구나!』
『더 넣을래두 숨이 막혀서 그만 왔어요. 또 한 번 가서 담아 오지.』
어머니는 자루를 열었다. 그리고 물에 젖은 밥을 광주리에 쏟았다.
『자, 자루 얼른 주세요. 또 한 자루 담아 오게!』
일변 밥을 한 덩이 입에 집어 넣으며 어머니가 쏟는 자루를 잡아 채었다.
차손이가 채는 자루를 어머니는 도로 뺏었다. 그리고 자루를 뒤집어서 한 알 한 알 붙은 것까지 털어서 광주리에 떨어뜨렸다.
『얼른 주세요.』
『가만, 아직 한 줌이나 붙어 있다.』
물에 던진 것을 주워 온 것이지만, 이 노파에게 있어서는 한 알 두 알이 아까운 모양이었다.
『한 자루만 더 얻어 오면 닷새는 걱정 없이 먹겠다.』
『이번에는 한 자루 가득 담아 오지요.』
차손이는 밥을 한 줌 또 쥐어 먹었다. 그리고 다시 물로 향하였다.
『좀더 내려가서 기다려 주세요. 지금 세째 배가 지나가는 그만치 가서 기다려 주세요.』
이러한 말을 남기고 이 총각은 다시 한 자루 얻어 오려 두 번째 물 속에 뛰쳐 들어갔다. 차손이는 물 속을 꿰어서 시반선 아래까지 이르렀다. 그 때 방금 시반선에서는 또 한 광주리의 밥을 물로 던진 때였다. 어른어른 차손이는 눈 앞으로는 허연 밥덩어리가 물 바닥을 향하여 헤엄치며 내려갔다.
차손이는 거기서 숨을 내쉬었다. 꿀럭꿀럭 한 뭉기의 기포가 물 면을 향하여 올라갔다. 그것을 보면서 차손이는 몸을 뒤채어 물 바닥을 향하여 거꾸로 내려갔다. 그의 눈 앞에는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흐느적거리는 크고 작은 밥 덩이들이 물을 통하여 부옇게 보였다. 차손이는 자루의 입을 벌렸다. 그리고 연하의 몸이 떠오르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왼편 밥을 물 바닥에 있는 바위 틈에 꽂아 놓고 밥 덩이들을 자루를 향하여 몰아 넣었다. 그 근처에 흐느적거리는 덩어리 밥은 모두 자루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행히 헤어진 밥이 많기 때문에 자루의 삼분의 일도 되지 못하였다.
겨우 차차 숨이 답답함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자루가 너무도 곯았으므로 얼른 새 밥을 좀더 담아 가지고 돌아가려고, 차손이는 곯은 자루를 옆에 끼고 한번 발버둥이쳐서 하류로 물 속을 꿰어 내려갔다. 눈을 감고 하류를 향하여 물 속을 헤엄쳐 내려가던 차손이는, 무슨 기괴한 물건이 자기의 양 다리를 꽉 붙잡는 것을 알았다. 온 몸에 소름이 쭉 끼치며 보매, 부연 물을 통하여 벌거숭이 송장(?) 하나가 그의 다리를 잡은 것이었다.
차손이는 거의 공포와 경악 때문에 심장의 고동까지 멎을 듯하였다. 두 다리를 힘있게 버둥거리면 버둥거리느니만큼, 그 괴물은 더욱 힘있게 차손이의 다리를 잡고 붙안는다. 그 괴물은 차손이의 다리로 비롯하여 차차 차차 몸을 끄을어 당겼다. 그리하여 그것에게 붙안겨서 차손이는 공포의 눈을 겨우 들면서 마주 보매, 그것은 송장도 아니요 괴물도 아니요, 웃마을 사는 최 서방이었다. 역시 시반을 훔치러 물 속에 기어든 최 서방은, 불행히 발을 바위 틈에 끼우고 뽑지를 못하여 안달하다가, 자기 곁으로 빠져 내려가는 총각을 붙든 것이었다.
차손이도 그것이 최 서방인 줄 알고 최 서방의 하반신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의의를 짐작하였다. 그래서 최 서방의 몸을 마주 쓸어안고 발로써 물 바닥을 힘껏 버티었다. 그러나 최 서방은 발을 어떻게 끼었는지 옴짝하지를 않았다. 이제는 차손이는 숨이 답답하여 왔다. 힘껏 최 서방을 안고 땅을 버티어 보았으나, 빠지지는 않고 숨은 답답하고 하여, 자기 혼자라도 피해 가려고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최 서방은 죽을 힘을 다해서 차손이를 끌어안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물 속에서 두 개의 벌거숭이 동물은 서로 비비여 대며 다투었다. 그러나 최 서방까지 구하면 여니와, 차손이 단독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도록 최 서방은 차손이를 안고 있었다. 이제는 차손이도 숨을 더 돌릴 수가 없었다. 꿀럭꿀럭 차손이의 입에서 기포가 또 물면을 향하여 떠올랐다. 차손이가 답답한 가슴을 펼 때에 그의 폐와 위로는 다량의 물이 들어갔다.
이 때였다. 아직껏 힘없이 차손이의 허리를 쓸어 안고 있던 최 서방의 팔 힘이 좀 풀리는 듯하였다. 그래서 차손이가 몸을 빼어 낼 때에는 아직껏 그렇게 힘써도 단단히 박혀 있던 최 서방의 발도 저절로 바위 틈에서 빠져 나왔다. 차손이는 한편 팔로 최 서방을 안은 채, 단 발로 물바닥을 힘있게 찾다. 두 개의 벌거숭이는 시반선 일행이 방금 지나간 물면을 향하여 떠올랐다. 물 면을 향하여 떠오른 두 개의 벌거숭이는, 양씨의 하인들이 탄 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아니, 구조되었다기보다 잡혔다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었다. 오늘의 신성하고 엄숙한 놀이를 더럽힌 고얀 놈으로서두 벌거숭이는 하인들의 배에 끌려 올라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때는 벌써 가련히도 최 서방은 물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저세상으로 마지막 길을 떠나고, 차손이도 아직 채 죽지만 않았지, 물을 많이 먹고 정신을 잃은 때였다. 최 서방의 시체와 차손이를 건져 올린 하인들은 시반선 일행을 떠나서 급급히 언덕으로 갖다 대었다. 그리고 거기다가 송장과 반송장을 내려 놓고, 사내 하인 셋이 내려서 지키기로 하고, 배는 그내로 일행에게로 따라갔다. 거기서 내린 하인들은 최 서방의 시체를 먼저 흔들어 보았지만, 물을 잔뜩 먹었기 때문에 배가 남산같이 된 최 서방은, 이제는 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완전히 떠난 것이었다.
모퉁이 모퉁이에서 오늘의 위대한 놀이를 구경하고 있던 근방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양반 댁 하인의 호령으로 근방 사람들이 차손이를 거꾸로 달고 두드리고 한 결과, 차손이는 많은 물을 토하고 겨우 회생되었다.
『지독한 도둑놈!』
물 면에 떠오르면서 기절할 때까지 차손이는 자루를 그냥 끼고 있었으므로 차손이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하인들은 알았다. 차손이가 깨어나기가 무섭게 하인들은 차손이를 발길로 차면서 지독한 도둑놈이라 욕하였다.
이튿날은 나합의 엄명을 들을 하옥 대신의 영으로 이 「지독한 도둑놈」을 포청에 내렸다. 뿐만 아니라, 차손이의 늙은 부모와 형과 형수―그의 온 집안까지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다. 나주 합하의 노염은 여간 크지 않았다. 엄숙한 놀이를 깨뜨린 데 대한 분함, 자기의 신성한 눈으로 벌거벗은 상놈의 시체를 본 데 대한 분함, 자기의 겸인이며 하인들의 배에 잠시나마 송장을 태웠던 데 대한 분함, 엄숙한 시반을 도둑질해 낸 행사에 대한 분함―이런 모든 일 때문에 합하의 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래서 이 하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상놈과 그의 일족을 당장에 박살을 하라고 하옥에게 엄명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나주 합하의 충복인 하옥일지라도 이 「지독한 도둑놈」과 그 일족을 박살까지는 할 만한 죄목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을 절충하고 타협한 결과로서, 이 중대 범인을 주범은 태형 백 개, 일족들은 오십 개씩을 때려서 내쫓기로 하였다.
양씨는 매우 불만족하였지만 드디어 하릴없이 여기 승복하였다.
이리하여 이 차손이는 시반을 도둑질하려던 죄로 엉덩이 뼈가 부러지도록 매를 맞고, 그의 가족은 그 밥을 바란 죄로 오십 개씩의 태형을 받고, 그 위에 자기네 조상 이래로 살아 내려오던 그 동리에서까지 쫓겨나게 되었다.
또한 최 서방은 도둑질도 채 하지 못하고 용왕의 노염을 사서 직접 피해자 양씨가 벌하기 전에 용왕께 극형의 벌을 받은 것이었다.
『천벌을 받기는 받았지만도, 그런 고약한 놈들이 어디 있어. 대체 밥을 도둑질한댔자 몇십냥 몇백 냥어칠 도둑질해 내겠다고, 천벌도 모르고 그런 무서운 짓을 한담.』
양씨는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이렇게 술회하고 하였다. 이 술회를 듣는 사람은 모두 머리를 조으며 천벌의 무서움을 탄식하였다.
『대감마님, 살려 줍시오! 갑자기 동리를 떠나면 어디가서 붙어 살겠습니까?』
뜰에 꿇어 앉아서 애원을 하는 것은 「지독한 도둑놈」이 차손의 늙은 아버지 이 서방이었다. 이 서방의 곁에 손을 읍하고 서서 이 서방의 애원할 때마다 허리를 굽실거려서 맞장구를 치는 것은 흥선댁 하인 누구였다. 대청에 긴 담뱃대를 물고 앉아서 이 애소를 듣고 있는 것은 무력한 공자 흥선이었다.
나주 합하의 엄명으로 동리를 쫓겨나게 된 이 서방의 일가는, 너무 딱하여 생각다 생각다 못 해서 그들이 가진 다만 한 가지의 방책을 써 보기로 한 것이었다. 즉 그들의 먼 일가가 흥선 댁에 하인으로 있는 것을 결련하여 흥선군에게 애소를 해서 피해 보려는 것이었다.
흥선의 무력을 그들도 모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짚이라도 붙들려는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으로, 흥선에게라도 한 번 매달려 보려 함이었다. 이 이 서방의 애소를 흥선은 다분의 곤혹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종실의 한 사람으로서 흥선은 무론 하옥의 집도 자주 찾아 다녔다. 얼마만큼 호인적 기품을 가지고 있는 하옥은, 젊은 재상들같이 노골적으로 흥선을 모멸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의 이 일은 하옥의 일존뿐으로 좌우될 성질의 사건이 아니었다. 하옥의 뒤에 숨은 양씨의 마음으로라야 결정이 될 것이지, 하옥은 그 처결권을 가지고 있지를 못한 것이다. 영의정 하옥이로되 영의정의 지배자가 또 그 뒤에 있는 이상에는 영의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 먹을 게 없어서 고기 밥을 도적해 먹는담?』
흥선은 담배를 떨어 버리면서 이렇게 을러 보았다.
『황송하옵니다.』
그래도 자기를 사람이라고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하는 이 서방을 볼 때에 사실 가엷었다. 그리고 거기 따라서 자기의 입장이 더욱 괴로웠다.
걱정 말아라, 무사히 만들어 주마―이렇게 안심시키고 싶은 생각은 얼마나 많았으랴? 일개 시골 기생―아무리 지금은 당당한 영의정 김 좌근의 총애를 받는다 할지라도, 역시 소실에 지나지 못하는 양씨의 세력이 너무도 큰 데 대한 미움도, 새삼스러이 흥선 마음을 더 아프게 하였다.
「奪民之食 施江魚 奪此與彼之禍 不亦甚於 鳥鳶?蟻 之問乎」
옛날 윤 원형의 첩 난정(蘭貞)의 일에 대하여 사가(史家)가 욕한 그것과 꼭 같은 양씨의 일을 정면으로 비평할 수조차 없는 자기는 무력한 공자였다.
이 서방은 연하여 땅에 머리를 조으며 애원하였다. 흥선은 연하여 긴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렇게 한나절을 무위히 앉아 있다가, 흥선은 벌떡 일어나서 침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 뒤에 청지기를 불러서,
『이 서방이란 놈을 끌어다가 문 밖에 내쳐라.』
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이 서방이 하인들에게 끌리어서 나갈 때에, 흥선은 문을 방싯이 열고 초연히 끌리어 가는 이 서방의 뒷모양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 서방을 그냥 내쫓은 흥선의 마음은, 쫓겨나가는 이 서방의 마음보도다 더욱 아팠다.
『음!』
―태조 강헌황제폐하(太祖康獻皇帝陛下)! 당신은 당신의 후손이 지금 이렇듯 가슴 찢어지는 듯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을 아시나이까? 찢어지는 듯하옵니다. 이 당신의 피를 물려받은 가슴이……
흥선은 눈을 깜박일 줄도 잊은 듯 묵연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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