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형식의 변천과 영화의 집단성

『씨나리오』를 우리들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온것은 하루 이틀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물론 씨나리오라면 「스크린」에 영사될 영화의 대본임으로([컨티뉴의티]와는 다르다) 영화를 촬영한다는 현실적 조건의 제약을 받아왔던 조선에서「씨나리오」를 연구한다는 것은 마치 건축을 할 힘이 없는 설계도를 꾸미는 것과 같음으로 모두 자중하여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나 요즘같이 영화회사나 혹은 개인의 제작소가 자꾸 생겨지는 현상에는 이 문제도 당연히 토의되여야 할것이며 그렇지않아도 「씨나리오」가 연극에서의 희곡이나 음악에서의 악보의 위치를 차지한다는데는 우선 이론이 없으려니와 남은 문제는 예술적 장르로서 형식을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우수한 작품을 생산하면 스스로 해결될 문제이며, 일부 인사들이 자안(自眼)시하는 경향이었다고 하더라도 역사란항상 앞서가는 자만이 짓는 것이며 이것은 예술사회에 있어서도 또한 같은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씨나리오」의 문학적 특징을 말하기 위하여 영화에 대한 형식의 변천과정을 먼저 말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 있어서도 표현형식은 소설과 같이 처음은 설화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점차 추리해 온 것은 특히 최근의 예술「장르」전체를 통해서 표현되어있다. 즉 다시말하면 모든 예술부문이 기록적 형식을 취하고있다는데 주의하지 않으면안된다. 19세기의 방대한 소설문학의 가치도 결국 일언으로 말한다면 그것이 인간생활의 진실한 기록이였든 때문이 아니던가.

처음부터 소설은 「픽션」에서 발달해왔고 또 장래에도 소설은 설화형식을 아주 저버리지는못할것이다. 그러나 근대 소설문자의 역사는 차라리 이 설화체에 대한 반항일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한 말로 근대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그중에서 두개의 방법을 간취할수 있었으니, 그 한개의 방법은 『성격』에 또 한개의 방법은 『행동』에 이렇게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하여 후자의 「악손」 소설은 필연적으로 소설 본래의 영토인 설화형식에서 현재의 대중소설로 발전하는 일방에 「카락타」 소설은 인간의 개성을 내면으로 성찰하면서 심리소설로 향해갔으니 불란서에 있어서 「룻소-」의 참회록이 근세문학의 개인주의 문학의 기초인 자아란 것을 발견시키면서 소설은 점점 자서전적 고백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개의 중요한 사실은 자연주의 「리얼리즘」의 발생이다. 이것이 이때까지의 모든 「로-맨스」를 파괴하면서 현실에 충실한 기록으로 소설을 변모시키고 말았다.

이때에 소설문학이 기록적 경향을 취하면서 특정한 개인의 생애를 기록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개인주의 사상의 발달에 따라서 부인의 해방운동이 이 시기에 절규되던 때인만큼 여성의 운명이 주요한「테-마」로 된 것은 주의할 사실인 동시에 「보바리부인」이나 「여자의 일생」이 창작되였고 사회소설의 선구자인「조라」까지도 생물학적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일가의 몇대에 선한 운명을 「테-마」로 취급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문학이 시간적인 역사가 취급된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러면 영화에서는 어떠한가? 영화는 그자신의 시간적 제약때문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영화는 어떠한 점에서 「휴먼 다큐멘트」 일수 있느냐.

그것은 두말할 것없이 영화에 있어서는 개인의 운명보다는 집단의 운명이 주요한 「테-마」인 것이다. 수직적으로 역사를 말하는 대신 수수선(水手線)적으로 지리를 말하고 개인을 묘사하는 대신에 집단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집단의 심리와 성격과 운명이 묘출되어야한다. 그 한개의 적절한 예로서 영화 「아랑」을 본 사람이면 종래의 극이나 소설에서 보지못하던 새로운 문학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아랑」도를 휩쓸어 오는 호장한 파도! 바위사이에 씨를 뿌리는 주민들! 이것을 단순한 「엑소티즘」으로만 볼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생활의 「리얼리티」를 조그만한 과장도 없이 보여준것 박에 무엇이었던가!

그러면 문학하는사람이 편시라도 잃지못할 인간생활의 「리얼리티」를 「발작크」에서 다시 한번 검토하여보자.

「발작크」의 ‘그유명한 「싸뮤엘」 지방의 풍물묘사를 생각만 하여도 넉넉하다. 한사람의 얼굴을 그려내기 위하야 수십행을 써내리고 「싸롱」의 내부 하나를 그리기 위해서 삼사「페-지」를 허비한 것은 완전히 기록인 것이다. 그래서 붓끝은 차차로 대물「렌즈」가 할일까지 다하였고 자연주의의 묘사란 것은 붓끝에 의한 사진이 되었다. 그랬기때문에는 책상우에 떨어진 머리칼 한개나 사람의 코등에 솟은 사마귀의 빛까지 그리려고 고심을 한 것이다. 지금와서 본다면 그것은 보고기록이 사무적으로 요구하는 정확에의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설화의 흥미와는 별개로 생겨진것인 때문에 설화의 전개보다도 상상이 사실과 같이 정확하게 기록된다는데 목적이 옮겨졌다.

이럴때에 우리가 보고있는 것은 문필이란 수공업적 형식에 의한 사진인 것이다. 내계와 외계를 그냥 그대로 묘사하여 내려는 표현수법은 그것이 넉넉히 존재할 수 있던 그 사회의 생활과학의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의 원리가 사진을 목표로 했을때 그 원리를 규정한 과학은 사진을 부여하였고 따라서 사진은 자연주의의 원리의 가장 간단한 구체화였다.

사진의 발명에 따라 외계의 묘사에 관한 한 문필적인 수단에 의한 그 수공업적인 기록의 단계를 관통할 수가 있었고 사진은 자연주의의 소설이 그 설화속에서 가지고 나온 표현원리를 경공업적으로까지 해결하였다.

이렇게 과학적 기술이 자연주의의(혹은 회화까지도) 노력을 간단히 해결한 다음에 소설과 회화는 벌써 외계의 정밀한 모사만으로는 안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점에서는 사진에서 영화에의 그 과학기술적인 자연주의의 원리에 반대까지도 해보았다. 이런 반대의식이 「조라」나 「세잔느」의 뒤에까지 성장해갔을 때는 마침 19세기의 화려하던 자유주의가 종언을고하던 때였다. 과학은 융륭한 발달을 하였으나 그것은 외계를 옛날과 같이 지배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과학은 아주 딴 의미에서 존재하였다. 한때는 19세기구라파의 생산력을 그만치 고장시켰건만 그 다음은 20세기 구라파를 완전히 황무지로 만들었다. 이런 커다란 변화위에서 자연주의는 일방에서 사진이나 영화에 의한 너무나 간단한 외계모사의 발달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지를 빼앗기고 타방에서는 외계의 관찰기록이라는 과학적 자신까지 상부하기 시작했다. 과학적 자신을 읽은 자연주의는 전전 전후에 선하야 가장 혼란한 예술 운동을 통해서 고찰해 보는 것도 재미로운 것이다. 초현실주의나, 표현주의의 앞에는 외계는 옛날 그대로의 매력을 잃었을 뿐아니라 점점 회색의 세계로 몰락하고 말았다. 그럴때 대물 「렌즈」는 세계의 곳곳마다, 그 촉수를 뻐치면서 인간을 질식케하는 포연탄우(砲煙彈雨) 중에도 극히 냉정하게 관찰과 모사를 계속하면서 그 발밑에서 자연주의의 소설과 회화와 무대극 등이 전면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과연 자연주의만의 해체이었을까. 지금에 그 때를 회고하면 그것은 예술의 수공업적 표현 형식의 해체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영화가 단시간에 이만큼 대중화한 배후에는 다른 모든 예술수단도 변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부터 고도로 발달되어있던 생산 과학의 영향을 받아서 예술의 표현형식도 차츰차츰 기술공학적으로 되어졌다. 문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변화는 벌써 현저한 것이니 현실적으로는 적시대전의 영향으로 지금까지의 예술형식위에 변화가 온것이다. 이렇게하여 소설에 미치는 형식상의 변화와 전후의 영화예술의 급격한 발달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전쟁속에서 상상적인 설화형식을 버렸을때 영화속에서는 전쟁의 묘사에 관한 일종의 「멜로드라마」가 늘 성장하고 있었으니 이곳에서 처음 「씨나리오」문학은 이상한 첫길을 떠났다.

대전은 모든 지식을 기술가 적이고 조직적 인것으로 만들었다. 전쟁에 의한 지식층의 이공적 훈련이 곧 예술의 형식에까지 반영한 것은 고이할게 없거니와 이러한 세례를 받고 난 자유주의의 소설은 그 수공업적 난관이 부정되었다는 것은 과학정신에서 출발한 자연주의가 바라고 있던 극점에서 온 것이다. 신즉물주의에 통한 보고기록의 형식은 자유주의의 양기(揚棄)하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벌써 상상에서 설화형식을 끌어내는 케케묵은 작법은 완전히 매력을 잃었다. 전쟁은 이점에서도 강력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란 것은 항상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서 살도함으로써다. 다시 말하면 전쟁과 같은 강도의 현실은 어떠한 공상적인 서술보다도 차라리 설화체일 수가 있는 까닭이다.

이때에 있어서같이 현재란 것이 귀중할 때는 없었다. 「레마크」나 「렌」등의 소설 가운데는 이 때문에 묘사가 부지중 현재의 연속으로 되있지 않는가? 그 가장 「현실」적인 장면에 사실의 살도I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현재의 살도하는 연속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하여 전쟁소설에서 뜻밖에도 보고 기록의 형식이 생겼다는 것은 어디로보든지 필연적이었으며 그곳에는 개성의 성격보다 집단의 운명이 그려지고 한사람의 심리보다는 군중의 상모가 표현되어서 그것은 완전히 서사시를 방불케한 신경지는 「씨나리오」의 장래를 암시한 것이지만은 소설이 문학을 사실의 시간적인 기대에 종속시키려할때 여기서 나온 것은 영화와 치사한 신즉물적인 행위이였다. 그것은 극히 시각적이며 청각적이었다. 오늘의 영화에서 심리적 묘사를 결했다고하는 문화인의 대다수는 문학속에서 벌써 개성의 서술적 형식이 여하히 변천되어가는가를 자각하지 못한 것뿐이다. 그나마 영화의 심리 묘사를 19세기의 자연주의 소설의 예에 비하는 것은 시대착오도 심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국시인 「C.D 루이스」의 재미로운 말을 들어보자. 「위대한 문학이란 것은 항상 「리얼리티」를 서사시의 「핏취」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중략) 장래에 있어서 서사시는 아마도 인간과 자연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투쟁을 보다더 명확하게 묘사해낼 것이겠지요. 말하자면 「지상」이나 「털키십」같은 위대한 영화를 보신 분들은 영화는 이이상의 아무것도 손을 대일데가 없으리라고도 생각하겠지요. 그렇게되면 소설이 앞으로 백년이나 혹은 그 이상 생명을 보장하리라고는 조금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이것은 결국 자서전 내지는 성격소설에서 출발한 근대 문학이 도달한 결과는 현대문명의 모든 착작삽(錯雜相)이 일개인의 내부에 철저적으로 흡수되어 분절되고 비판된 결과 개성적인 아무것도 남김이없이 전인간성적 문제 다시말하면 서사시에까지 발전되어온 것이란 견해는 정당한 것이다.

그러면 서사시와 소설에는 어떠한 구별이 있어야하느냐 하면 그것은 물론 후자가 얻은 특정한 개인을 추구하고 개성을 묘사하는데 반해서 전자는 집단적인 문제를 취급하는데 특징이 있는 것이다. 이에 문예대사전의 기록을 잠깐 빌려보면「서사문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비개성적 문학인 것이다. 그것은 서정시나 성격소설이나 성격극같이 개성을 중심으로 하는 일없이 집단 민족 국민 계급」을 중심으로 하고 개인의 의식이 아니고 집단의 의식에 따라서 관통된다. 서사문학은 그 때문에 그 내용은 보다 위대한 문학이고 개물이 아니고 전체에 속하며 고립이나 분열이 아니고 종합에 향한다. 그래서 서사문학의 동기 혹은 흥미는 개인의 슬픔이나 기쁨이 아니고 집단의 운명이며 이것을 지배하는 것은 개인의식이 아니고 집단의식인 때문에 서사문학은 개성속에 몰입하거나 취약하는 일이 없이 가장 건전한 기욕으로써 외

계의 집단생활에로 나아간다. 즉 그것은 내면적인 혹은 내향적인 문학이 아니고 외면적 혹은 외향적인 문학인 것이다. 운운」이 설명은 그 자체가 최근의 우수한 영화에 적용되지 않는가. 이러한 집단전체가 힘을 합하여 건설적인 목적을 향해서 투쟁하는 서사시적 「테-마」가 영화에서 발전하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이러한 영화의 기록적 성질이나 서사시적인 표현기술은 최근 각국의 영화에서 현저하게 볼수가 있게 되었다. 바로 얼마전에 우리가 본 영화「대지」같은 것은 가장 적절한 예의 한개다. 「펄·벅」의 소설「대지」는 말할 것도 없이 「아란」이란 한 여성이 주요한 「테-마」로 되어있는 것이고 영화「대지」는 그것을 각색 촬영한 것이지만은 「아란」의 운명을 그려내는데 있어서는 소설같은 것은 이 영화에 멀리 미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왕룽의 일가가 부심하는 그 운명은 소설에 있어서는 결국 소설적 내용인 것이었고, 영화에와 같이 울려지지는 않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다년간 중국에 있으면서 흉년도 보았고 약탈도 보았지만은 울지는 않았다. 물론 중국에는 사억만의 민중속에 그 반수가 왕룽이라면 나머지 반수가 아난이다. 그리고 모두 그 동양적 아니 중국적인 인종의 운명에 얽매여 어쩔수없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하여 내 머리에 들어온 「아란」의 기억은 내 종생에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 영화「대지」에 있어서 가장 생생한 「리얼리티」를 느끼게한 장면은 무엇보다도 기근의 대군이 기차를 향하여 살도하는 장면과 약탈때문에 군대가 내동하는 곳과 황충의 대군이 글자 그대로 운하같이 습래하는 곳이었다. 그런 장면에는 왕룽 일가의 운명보다도 중국민중 전체의 운명이 놀랄만한「리얼리티」를 가지고 보는 사람들을 육박하는 것이다. 그중에도 황충의 대군과 필사적으로 싸우고있는 민중의 웅자(雄姿) 이러한 자연의 폭위와 싸우는 때에 개인간의 사소한 감정적 투쟁같은 것은 전체를 위하여 소멸되고 사람들은 모두 일취단합하여 당면의 적을 퇴치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과 자연과 투쟁하는 장대한 서사시가 있고 영화예술의 기록적 우월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같이 중국을 테마로 하여 [정복자]를 세상에 보내준 불란서의 작가 앙드레·말로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소설가는 인간의 =심리적 숙명= 을 창조했으나, 보고문학은 인간의 두상에 더욱 무겁게 덮어씌인 숙명을 폭로하고 정리하고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그는 [보고문학의 필요]에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자신의 문학이 벌써 수행한 것이 아닌가. 영화예술에 있어서는 그 숙명과 사(死)에 직면하여 투쟁하는 의지와 힘의 표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영화 [아랑] 이나 [대지] 같은 것은 가장 대담하게 우리들의 힘찬 흥분으로 끌고가는 것은 자연과 생사의 일록에서 투쟁하는 인간의 생존본능의 강렬한 표현외에 다름이 없다.

여기에서 서사시가 갖는 건설적인 명망성과 유유한 [괴테]의 [산상의 정숙]보다도 [드라마틱]하고 소장한 의지와 행동에 [리즘]이 표현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현대와 같은 가열한 현상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나 여하간 영화에 본질이 여기에 가로 놓여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점은 이상에서 소개한 영화를 산출한 [씨나리오]가 문학적으로 수행한 것임을 알아두는 것은 한갖 사도를 담당한 자만의 광영은 아니다.

그러면 다시 여기 한번 언급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소설에 있어서의 작중의 인물과 독자와의 친밀관계는 이상에서 일단 자명되었다 하더라도 영화에 있어서는 어떠하냐.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소설이상으로 보는 사람들의 화중의 인물과 접근시킨다. 이것은 내가 말하기 전에 [잔·에프스타]는 이렇게 말한다. = [고뇌는 손이 닫는 곳에 있다. 만약 내가 손을 버리고 내심이여 너는 나에게 만져질 수 있다. 나는 이 고뇌의 속눈썹을 헤아려보마, 그러면 나는 너의 눈물을 맛볼수도 있다. 한때의 사람의 얼굴이 내 얼굴에 이다지도 가까이 와본적은 없다.]= 고 이때부터 화중의 인물과 객관과의 친밀관계는 시작되었다. 아무리 값싼 작품이라고 해도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도취한 적이 있었다면 영화의 독특한 비밀은 뜻밖에도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리얼리즘]의 마병(魔兵)도 여기에 ??伏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들의 이성과 판단을 마비시키는 감각적 표상이며 육체적인 압필도 된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에는 작중인물은 일종 상징적인 작용을 가지지 않은 영화에서는 특정한 이름을 가진 개인은 소멸되고 만다. 다만 그림속에 사람과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그것은 인간 일반에 환원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화중의 인물과 공간지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미개인들에게 영화를 보이면 정면으로 돌진해 오는 물체를 피해서 달아난다고 한다. 그야 우리들 문화인도 기차가 정면으로 맥진해오면 그다지 좋은 기분을 갖지는 않는 것이다. 비행기의 날개에「카메라」를 장치하고 곡예비행을 하면 우리들은 비행사와 함께 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 극과는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가 있다. 「극은 항상 인간의 의지의 투쟁을 주제로서 취급해왔다」고 말한 「뿌륜체-ㄹ」의 이론은 너무도 유명하지마는 극에 있어서는 인간의 상극의 「모-멘트」가 어느 정도까지 높아가면 거기서는 그만 막이내려지고 관객들은 모두 「스모킹룸」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연극보다도 투쟁은 격렬하고 일층 심각하다. 그러한 예로는 「작크페데」의 「미모자관」을 보자. 그곳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때리는 장면이 있다. 매우 연극적이면서도 거기에 막은 내리지 않는다. 이뿐아니라 「깽」 영화나 개인과 개인의 투쟁뿐아니고 집단과 집단의 투쟁하는 장면 작열한 「스펙다-클」이 전개된다. 이러한 수없는 영화의 특성에 관한 기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매우 본능적인 표현에 영화가 우수하면서도 소설보다 개인개인에 접근하기 용이하고 연극보다 집단적인 강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의 형식적 특징을 말하려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형식적 특징은 인간 본능적인 「센서낼리즘」에의 도취나 「파나치시슴」에로 구사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개인주의가 붕괴하고 집단이해가 대립 격화해오면 이 영화적 특징은 흔히는 선전매개체로서 유력하게 쓰여지는 때가 있음으로 교양있는 사람의 일부에서는 영화의 예술성까지를 부정하는 경향도 있으나 그것은 아직 외국의 얘기이고, 인간과 자연의 사이에 투쟁을 묘출하는 한 진실로 위대한 예술영화 양심적인 영화를 제작하려는데는 이런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자연의 폭력앞에서 전인류의 생존본능은 강력한 의지로 전화해야 「히로이슴」은 곧 「휴머니즘」으로 승화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가장 양심있는 이땅의 젊은 「씨나리오」 작가의 출현을 기다려 완성될 것이며, 기성문예의 각색이나 「오리지날 씨나리오」거나 무엇이나 관계없고 적어도 [씨나리오」 문학을 건설하는데는 「씨나리오」라는 영화예술의 문학에의 접근이 아니고 문학의「씨나리오」에의 접근이래야하며 씨나리오 문학은아무런 데로 구애될것없이 예술적으로 독립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개개의 문제는 기회있는대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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