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옥갑야화
玉匣夜話
편집첫 번째 이야기
편집行還至玉匣, 與諸裨連牀夜語。 燕京舊時風俗淳厚, 譯輩雖萬金能相假貸。 今則, 彼以欺詐爲能事, 而其曲未嘗不先自我人始也。
三十年前, 有一譯空手入燕。 將還, 對其主顧而泣。 主顧怪而問之 對曰, 「渡江時, 潛挾他人銀。 事發, 倂已包沒于官。 今空手還, 無以爲生, 不如無還,」 拔刀欲自殺。 主顧驚急抱持, 奪刀問曰, 「所沒銀幾何。」 曰, 「三千兩。」 主顧慰曰, 「大丈夫獨患無身, 何患無銀。 今死不還, 將如妻子何。 吾貸君萬金, 五年貨殖, 可復得萬金, 以本銀償我, 譯旣得萬金。」遂大貿而還。
當時未有識之者, 莫不神其才。 五年中遂致鉅富。 乃自削籍譯院, 不復入燕。 久之, 密囑其所親之入燕者曰, 「燕市若遇某主顧, 當問安否。 須道闔家遘癘死。」 所親以說謊頗難之。 譯曰, 「第如此而還, 當奉君百金。」 旣入燕, 果遇某主顧, 問譯安否。 俱對如所受囑, 主顧掩面大慟, 泣如雨下曰, 「天乎天乎, 何降禍善人之家。 若是之慘耶,」 遂以百金托之曰, 「彼妻子俱亡無主者。 幸君還國, 爲我以五十金具幣設奠, 以五十金追齋薦福。」 所親者殊錯愣然, 業已謬言, 遂受百金而還。 其譯家已遘癘沒死, 無遺者。 其人大驚且懼, 悉以百金爲主顧薦齋。 終身不復爲燕行曰, 「吾無面目復見主顧。」
옥갑에 이르러 여러 비장과 침상을 나란히 하고 야화를 나누었다. 연경의 옛 풍속은 순박하고 도타워 역관 사이에선 비록 만금이라도 너그러이 빌려주었다. 오늘날에는 상대를 속이는 것을 능사로 여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다름 아닌 우리쪽 사람이 먼저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0년 전 한 역관이 빈손으로 연경에 들어갔다 돌아 나오면서 거래하는 가게 주인을 만나서 울었다. 가게 주인이 이상하다고 여겨 사연을 물었다. 역관이 대답하였다.
"(압록)강을 건널 때 다른 사람의 은과 옷감을 맡았는데 그만 발각되어 관청에 끌려가 몰수 당했고 이제 빈손으로 돌아가려니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하고는 칼을 빼어 들어 자살하려 하였다. 주인이 깜짝 놀란 마음에 칼을 빼앗으며 물었다.
"급하게 필요한 은이 얼마나 되오?"
"삼천 냥입니다."
가게 주인이 위로하며 말하였다.
"대장부가 홀로 몸이 없어 지는 것이 걱정이지 어찌 은을 걱정하시오. 지금 죽어서 돌아가지 못하면 처자식은 어찌하려고 그러시오. 내가 오늘 만금을 빌려줄 터이니 이것을 5년 동안 불리면 만금도 돌려 줄 수 있고 잃어버린 은도 갚을 수 있을 것이오."
이렇게 역관은 만금을 얻어 큰 재화를 벌어 돌아갔다.
당시 사람들은 그 사정을 알 지 못한 채 그저 신기한 재주로구나 하고 여겼다. 5년 동안 마침내 거부가 된 역관은 사역원에서 스스로 이름을 지우고 다시는 연경에 돌아가지 않았다. 알고 지내던 다른 역관이 연경에 가게 되자 이 역관은 몰래 그를 만나 부탁하였다.
"연경 시장에서 우연히 아무개 가게 주인을 만나게 되면 당연히 내 안부를 물을 터이니 꼭 집안이 전염병에 걸려 모두 죽었노라고 해주시오."
부탁 받은 사람은 이야기가 너무 황당하여 주저하였다. 역관이 말하였다.
"이렇게 만 해 주고 돌아오면 대가로 백금을 드리리다."
연경에 들어간 지인은 우연치 않게 가게 주인을 만났고 안부를 묻는 질문에 해 달라는 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소식을 들은 가게 주인은 얼굴을 감싸고 통곡하였고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면서 말하였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 착한 사람의 집에 화를 내리셨습니까? 말씀하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면,"
하고 말하면서 백금을 건네주며,
"그분 처자식도 다 죽어 상주도 없을 터이나, 다행이 그대가 귀국하면 50 금으로는 폐물을 마련하여 제사를 치러주시고, 나머지 50 금으로는 기일마다 제사를 치르는 비용으로 사용해 주십시오."
하였다. 역관의 지인은 혼란스러워 정신이 멍해졌지만 이미 거짓말을 한 것이 있어 백금을 받아 돌아왔다. 그 역관의 집을 가 보니 정말로 역병이 돌아 집안이 모두 죽어 대를 이을 유족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놀랍고 두려워 가져온 백금을 모두 내어 가게 주인의 이름으로 제사를 지냈다. 다시는 연경에 가지 않으면서 말하길
"내가 그 가게 주인을 볼 면목이 없다"
라고 하였다.
두 번째 이야기
편집有言, 李知事樞, 近世名譯也。 平居口未嘗言錢。 出入燕京四十餘年, 手未嘗執銀, 有愷悌君子之風。
누군가 말하길 지사를 지낸 이추는 근래에 이름난 역관인데 평소 지내면서 돈 얘기를 입에 올린 적이 없다고 한다. 연경에 드나든 지 40여 년이 되도록 은을 쥐어 본 적이 없어 군자의 풍모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세 번째 이야기
편집有言, 唐城君洪純彥, 明萬曆時名譯也。 入皇城, 嘗遊娼館。 女隨色第, 價有千金者。 洪以千金求薦枕, 女方二八, 有殊色。 對君泣曰, 「奴所以索高價者, 誠謂天下皆慳男, 無肯捐千金者。 祈以免斯須之辱, 一日再日。 本欲以愚館主。 一以望, 天下有義氣人, 贖奴作箕帚妾。 奴入娼館五日, 無敢以千金來者。 今日, 幸逢天下義氣人。 然公外國人, 法不當將奴還。 此身一染, 不可復浣。」 洪殊憐之, 問其所以入娼館者。 對曰, 「奴南京戶部侍郞某女也。 家被籍追贓, 自賣身娼館, 以贖父死。」 洪大驚曰, 「吾實不識如此。 今當贖妹, 償價幾何。」 女曰, 「二千金。」 洪立輸之, 與訣別。 女百拜稱恩父而去。
其後, 洪復絶不置意嘗又入中國。 沿道數訪洪純彥來否。 洪怪之。 及近皇城, 路左盛設供帳。 迎謂洪曰, 「本兵石老爺奉邀。」 及至石第, 石尙書迎拜曰, 「恩丈也, 公女待翁久。」 遂握手入內室, 夫人盛粧拜堂下。 洪惶恐不知所爲。 尙書笑曰, 「丈人久忘乃女耶。」 洪始知夫人乃娼館所贖女也。 出娼館, 卽歸石星, 爲繼室。 比石貴, 夫人猶手自織錦, 皆刺報恩字。 及洪歸, 裝送報恩緞及他錦綺金銀 不可勝數。
及壬辰倭寇, 石在本兵, 力主出兵者, 以石本義朝鮮人故也。
누군가 이런 말을 하였다. 당성군 홍순언은 명나라 만력제 시기의 이름난 역관이다. 예전에 황성에 들어가 창기가 있는 여관을 가게 되었다. 빼어난 미모로 하룻밤 잠자리에 천금을 달라는 여자가 있었다. 홍순언은 천금을 내고 여자를 불러들였는데 보아 하니 열여섯 쯤 되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당성군을 본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제가 높은 화대를 부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천하의 모든 남자들이 째째한데 진짜로 천금을 내겠다는 사람은 없겠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순결을 잃는 치욕을 당하지 않고 하루 또 하루 넘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원래는 여관 주인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천하의 의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노비에서 벗어나 첩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랬습니다. 제가 이 창관에 온 지 닷새인데 그 동안 천금을 내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늘 다행히 천하의 의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께서는 외국인이니 법이 저를 측실로 삼지 못하게 막습니다. 이 몸이 한 번 더럽혀 지면 다시 씻어낼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홍순언은 불쌍한 마음이 들어 어쩌다 창관까지 오게 되었는 지 물었다. 여자가 말하였다.
"저는 남경 호부시랑의 딸이었는데 가문이 역적으로 몰려 스스로 창관에 팔려와 죽은 아버지를 속죄하였습니다."
홍순언이 크게 놀라며 답하였다.
"내가 정말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였구나. 지금 누이를 속량하여야 할 터이니 얼마를 내어야 하는가?"
여자가 2천 냥이라고 하였다. 홍순언은 일어나 그 돈을 내고는 기약 없이 헤어졌고 여자는 무수히 절하며 홍순언을 은혜로 맺어진 아버지라 불렀다.
그후 홍순언은 돌아왔다가 뜻하지 않게 다시 중국에 가게 되었다. 가는 길 양옆에서 여러 사람이 홍순언이 오지 않냐고 묻기에 홍순언은 이상하다 여겼다. 황성 근처에 다다르니 길 왼편에 성대한 장막이 펼쳐져 있는데 홍순언을 맞으며 말하였다.
"저는 석 대감이 맞이하라고 보낸 병사올시다."
석 대감의 집으로 가니 석 상서가 절하며 맞이하며 말했다.
"은혜로 맺은 장인이시군요. 따님이 아버지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손을 잡아 이끌며 내실로 들어가니 석 상서의 부인이 화려한 옷을 입고 집앞에서 절하였다. 홍순언은 황공하였으나 어찌 이러는 지 알 수 없었다. 상서가 웃으며 말하였다.
"장인이 오랫동안 딸을 잊고 지냈나 봅니다."
홍순언이 다시 살피니 옛날 창관에서 속량하여 준 여자였다. 창관에서 나온 뒤 석성의 측실이 되었다고 한다. 석가의 귀부인이 되었지만 손수 비단에 보은 두 글자를 자수로 새겼다. 홍순언이 귀국하게 되자 보은을 새긴 비단 자수 말고도 다른 여러 비단이며 금은을 보답으로 주었는데 셀 수도 없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석성은 병부에 있으면서 힘써 출병을 주장하였는데 조선 사람들이 본래 의롭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이야기
편집有言, 朝鮮商賈熟主顧鄭世泰之富, 甲于皇城。 及世泰死, 一敗塗地。 世泰, 只有一孫, 男中絶色, 幼賣塲戱。 世泰時夥計林哥, 今鉅富。 見塲戱中一美男子, 呈戱, 心慕之。 聞其爲鄭家兒郞。 相持泣, 遂以千金贖之, 與俱歸家。 戒家人曰, 「善視之。 此吾家舊主人。 勿以戱子賤之。」 及長, 中分其財而業之。 世泰孫身肥白美麗, 無所事, 惟飛紙鷂, 遊戱皇城中。
누군가 이런 말을 하였다. 조선 장사꾼과 거래하는 가게 주인 정세태의 부는 황성에서 으뜸이었다. 세태가 죽자 한 순간에 진흙 밭에 엎어진 듯 무너졌다. 세태에겐 자손이 오직 한 명 있었는데 빼어난 미남으로 어려서 연희패에 팔렸다. 세태가 살아있을 때 가게 점원으로 일했던 임가는 이제 큰 부자가 되었다. 연희패를 구경하다가 그 가운데 어떤 미남이 춤과 노래를 펼치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쏙 들었다. 누구인지 알아보니 정가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서로 만나 눈물을 흘리고 마침내 천금을 주어 연희패에서 빼내고는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안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렸다.
"잘 보아 두어라. 이분이 내 집안의 옛 주인이시다, 연기하는 광대라며 천하게 여기지 말라."
그가 성인이 되자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주고 가업을 잇게 하였다. 세태의 자손은 몸이 비대하고 희며 잘생겼는데 하는 일 없이 새매 모양의 연을 띄우고 황성 안에서 놀기만 했다고 한다.
다섯번째 이야기
편집舊時買賣, 不開包檢驗。 直以燕裝還, 照帳無少差謬。 有誤以白毳帽裝送者, 及歸開視, 皆白帽也。 自悔未閱。 丁丑兩恤, 反獲倍直。 然亦彼中不古之徵也。 近歲則物貨自裝, 不任主顧裝送云。
옛날에 물건을 사고 팔 때는 포장을 풀어 해쳐 내용물을 살피고 조사하지 않았다. 연경에서 꾸린 짐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와 장부와 맞추어 보면 어긋나거나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 번은 장부와 맞지 않게 흰 털로 만든 모자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돌아와 짐을 풀어 보니 모두 흰 모자여서 미리 열어 보지 않은 것을 자책하였다. 정축년에 두 번의 국상이 연다르자 가지고 있던 것의 값이 두 배로 치솟았다. 그러나 이 역시 인심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징후일 뿐이다. 요즘에는 물건을 스스로 포장하고 가게 주인이 꾸려서 보내 달라고 맡기지도 않는다.
여섯 번째 이야기
편집有言, 卞承業之病也。 欲閱視貨殖都數。 聚諸夥計帳簿, 合籌之, 共銀五十餘萬。 其子曰, 「斂散煩, 久且耗, 請因而收之。」 承業大恚曰, 「此都城中萬戶命脉也。 奈何一朝絶之, 亟還之。」 承業旣老, 戒其子孫曰, 「吾所事公卿多。 獨秉國論, 爲家計者, 鮮及三世矣。 國中之爲財者, 視吾家出入, 爲高下。 是亦國論也。 不散且及禍。」 故其子孫蕃而擧貧窶者, 承業旣老, 多散之也。
누군가 이런 말을 하였다. 변승업이 병들었을 때 재산이 얼마나 늘었는 지 알고자 하였다. 회계장부를 모아 세어보니 모두 합하여 은 오십여 만냥이었다. 그의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거두어 들이고 나누고 하는 것도 번거롭고 오래두면 또 줄어들기도 할테니 이참에 모두 거두어 들였으면 합니다."
승업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 돈이 도성 안 일만 가구의 명맥이다. 어찌하여 하루 아침에 그것을 끊고 급히 거둔단 말이냐."
승업이 늙게 되자 자손들에게 당부하였다.
"내가 모신 공경 대부가 많다. 홀로 국론을 이끌고 가계를 위한 사람이 삼대를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나라 안에서 재산을 불리는 사람은 우리 집에 드나드는 재물을 보며 이윤의 높고 낮음을 정하니 이 역시 국론이라 할 것이다. 흩어 두지 않는다면 이 또한 화가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변승업은 자손이 많았지만 대개 가난했는데 승업이 늘그막에 재산을 흩어버렸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 허생전
편집余亦言有尹映者, 嘗道卞承業之富。 其貨財有自來, 富甲一國, 至承業時少衰。 方其初起時, 莫不有命存焉。 觀許生事可異也。 許生竟不言其名, 故世無得而知者云。 映之言曰,
許生居墨積洞, 直抵南山下。 井上有古杏樹, 柴扉向樹而開。 草屋數間, 不蔽風雨, 然許生好讀書。 妻爲人縫刺以糊口。 一日妻甚饑, 泣曰, 「子平生不赴擧 讀書何爲。」 許生笑曰, 「吾讀書未熟」。 妻曰, 「不有工乎。」 生曰, 「工未素學奈何。」 妻曰, 「不有商乎。」 生曰, 「商無本錢奈何。」 其妻恚且罵曰. 「晝夜讀書, 只學奈何, 不工不商, 何不盜賊。」 許生掩卷起曰, 「惜乎, 吾讀書本期十年, 今七年矣。」
出門而去, 無相識者。 直之雲從街, 問市中人曰, 「漢陽中誰最富。」 有道卞氏者, 遂訪其家。 許生長揖曰, 「吾家貧, 欲有所小試, 願從君借萬金。」 卞氏曰, 「諾。」 立與萬金, 客竟不謝而去。子弟賓客, 視許生丐者也。 絲絛穗拔, 革屨跟顚, 笠挫袍煤, 鼻流淸涕。 客旣去, 皆大驚曰, 「大人知客乎。」 曰, 「不知也。」 「今一朝, 浪空擲萬金於生平所不知何人, 而不問其姓名何也。」 卞氏曰, 「此非爾所知。 凡有求於人者, 必廣張志意, 先耀信義, 然顔色媿屈, 言辭重複。 彼客衣屨雖弊, 辭簡而視傲, 容無怍色, 不待物而自足者也。 彼其所試術不小。 吾亦有所試於客, 不與則已, 旣與之萬金, 問姓名何爲。」
於是許生旣得萬金, 不復還家。 以爲安城畿湖之交, 三南之綰口, 遂止居焉。 棗栗柹梨柑榴橘柚之屬, 皆以倍直居之。 許生榷菓, 而國中無以讌祀。 居頃之, 諸賈之獲倍直於許生者, 反輸十倍。 許生喟然嘆曰, 以萬金傾之, 「短國淺深矣。」 以刀鏄布帛綿入濟州, 悉收馬鬉鬣曰, 「居數年, 國人不裹頭矣。」 居頃之, 網巾價至十倍。 許生問老篙師曰, 「海外豈有空島可以居者乎。」 篙師曰, 「有之。 常漂風直西行三日夜, 泊一空島。 計在沙門長崎之間。 花木自開, 菓蓏自熟, 麋鹿成群, 游魚不驚。」 許生大喜曰, 「爾能導我, 富貴共之。」 篙師從之, 遂御風東南, 入其島。 許生登高而望, 悵然曰, 「地不滿千里, 惡能有爲。 土肥泉甘, 只可作富家翁。」 篙師曰, 「島空無人, 尙誰與居。」 許生曰, 「德者人所歸也。 尙恐不德, 何患無人。」
是時邊山群盜數千, 州郡發卒逐捕, 不能得。 然群盜亦不敢出剽掠, 方饑困。 許生入賊中說其魁帥曰, 「千人掠千金, 所分幾何。」 曰, 人一兩耳。 許生曰, 「爾有妻乎。」 群盜曰, 「無。」 曰, 「爾有田乎。」 群盜笑曰, 「有田有妻, 何苦爲盜。」 許生曰, 「審若是也。 何不娶妻樹屋, 買牛耕田。 生無盜賊之名, 而居有妻室之樂。 行無逐捕之患, 而長享衣食之饒乎。」 群盜曰, 「豈不願如此, 但無錢耳。」 許生笑曰, 「爾爲盜何患無錢, 吾能爲汝辦之。 明日, 視海上風旗紅者, 皆錢船也。 恣汝取去。」 許生約群盜, 旣去, 群盜皆笑其狂。 及明日, 至海上. 許生載錢三十萬, 皆大驚羅拜曰, 「唯將軍令。」 許生曰, 「惟力負去。」 於是群盜, 爭負錢, 人不過百金。 許生曰, 「爾等力不足以擧百金, 何能爲盜。 今爾等雖欲爲平民, 名在賊簿, 無可往矣。 吾在此俟汝各持百金而去, 人一婦一牛來。」 群盜曰, 「諾。」 皆散去。 許生自具二千人一歲之食以待之。 及群盜至, 無後者, 遂俱載入其空島。 許生榷盜而國中無警矣。
於是伐樹爲屋, 編竹爲籬。 地氣旣全, 百種碩茂, 不菑不畬, 一莖九穗。 留三年之儲, 餘悉舟載往糶長崎島。 長崎者, 日本屬州, 戶三十一萬, 方大饑。 遂賑之, 獲銀百萬。 許生歎曰, 「今吾已小試矣。」 於是悉召男女二千人, 令之曰, 「吾始與汝等入此島, 先富之, 然後別造文字, 刱製衣冠。 地小德薄, 吾今去矣。 兒生執匙, 敎以右手, 一日之長, 讓之先食。」 悉焚他船曰, 「莫往則莫來。」 投銀五十萬於海中曰, 「海枯有得者。 百萬無所容於國中, 况小島乎。」 有知書者載與俱出曰, 「爲絶禍於此島。」 於是遍行國中, 賑施與貧無告者。 銀尙餘十萬曰, 「此可以報卞氏。」
往見卞氏曰, 「君記我乎。」 卞氏驚曰, 「子之容色, 不少瘳, 得無敗萬金乎。」 許生笑曰, 「以財粹面, 君輩事耳。 萬金何肥於道哉。」 於是以銀十萬付卞氏曰, 「吾不耐一朝之饑, 未竟讀書, 慙君萬金。」 卞氏大驚, 起拜辭謝, 願受什一之利。 許生大怒曰, 「君何以賈竪視我。」 拂衣而去, 卞氏潛踵之。 望見, 客向南山下, 入小屋。 有老嫗, 井上澣。 卞氏問曰, 「彼小屋誰家。」 嫗曰, 「許生員宅, 貧而好讀書, 一朝出門不返者已五年。 獨有妻在, 祭其去日。」 卞氏始知客乃姓許, 歎息而歸。 明日悉持其銀往遺之。 許生辭曰, 「我欲富也, 棄百萬而取十萬乎。 吾從今得君而活矣。 君數視我計口送糧, 度身授布, 一生如此足矣。 孰肯以財勞神。」 卞氏說許生百端, 竟不可奈何。 卞氏自是度許生匱乏, 輒身自往遺之。 許生欣然受之, 或有加則不悅曰, 「君奈何遺我災也。」 以酒往則益大喜, 相與酌至醉。
旣數歲, 情好日篤。 嘗從容言五歲中, 何以致百萬。 許生曰, 「此易知耳。 朝鮮舟不通外國, 車不行域中, 故百物生于其中, 消于其中。 夫千金小財也, 未足以盡物。 然析而十之百金, 十亦足以致十物, 物輕則易轉。 故一貨雖絀, 九貨伸之, 此常利之道, 小人之賈也。 夫萬金足以盡物, 故在車專車, 在船專船, 在邑專邑, 如綱之有罟, 括物而數之。 陸之產萬, 潛停其一。 水之族萬, 潛停其一。 醫之材萬, 潛停其一。 一貨潛藏, 百賈涸, 此賊民之道也。 後世有司者, 如有用我道, 必病其國。」 卞氏曰, 「初子何以知吾出萬金而來吾求也。」 許生曰, 「不必君與我也, 能有萬金者, 莫不與也。 吾自料吾才足以致百萬, 然命則在天。 吾何能知之, 故能用我者, 有福者也, 必富益富, 天所命也。 安得不與, 旣得萬金。 憑其福而行, 故動輒有成。 若吾私自與, 則成敗亦未可知也。」 卞氏曰, 「方今士大夫欲雪南漢之恥。 此志士扼脆奮智之秋也。 以子之才, 何自苦沉冥以沒世耶。」 許生曰, 「古來沉冥者何限, 趙聖期, 拙修齋, 可使敵國, 而老死布褐。 柳馨遠, 磻溪居士, 足繼軍食, 而逍遙海曲。 今之謀國政者, 可知已。 吾善賈者也。 其銀足以市九王之頭, 然投之海中而來者, 無所可用故耳。」 卞氏喟然太息而去。
卞氏本與李政丞浣善。 李公時爲御營大將. 嘗與言委巷閭閻之中. 亦有奇才可與共大事者乎。 卞氏爲言許生。 李公大驚曰, 「奇哉, 眞有是否, 其名云何。」 卞氏曰, 「小人與居三年, 竟不識其名。」 李公曰, 「此異人, 與君俱往。」 夜公屛騶徒, 獨與卞氏俱步至許生。 卞氏止公立門外, 獨先入, 見許生具道李公所以來者。 許生若不聞者曰, 「輒解君所佩壺。」 相與歡飮。 卞氏閔公久露立數言之, 許生不應。 旣夜深 許生曰 「可召客。」 李公入。 許生安坐不起, 李公無所措躬, 乃叙述國家所以求賢之意。 許生揮手曰, 「夜短語長, 聽之太遲。 汝今何官。」 曰, 「大將。」 許生曰, 「然則汝乃國之信臣, 我當薦臥龍先生, 汝能請于朝三顧草廬乎。」 公低頭良久曰, 「難矣。 願得其次。」 許生曰, 「我未學第二義。」 固問之, 許生曰, 「明將士以朝鮮有舊恩, 其子孫多脫身東來, 流離惸鰥 「汝能請于朝, 出宗室女遍嫁之, 奪勳戚權貴家, 以處之乎。」 公低頭良久曰, 「難矣。」 許生曰, 「此亦難彼亦難, 何事可能。 有最易者, 汝能之乎。」 李公曰, 「願聞之。」 許生曰, 「夫欲聲大義於天下而不先交結天下之豪傑者, 未之有也。 欲伐人之國而不先用諜, 未有能成者也。 今滿洲遽而主天下。 自以不親於中國, 而朝鮮率先他國而服, 彼所信也。 誠能請遣子弟入學遊宦, 如唐元故事, 商賈出入不禁, 彼必喜其見親而許之。 妙選國中之子弟, 薙髮胡服, 其君子往赴賓擧, 其小人遠商江南, 覘其虛實, 結其豪傑, 天下可圖而國恥可雪。 若求朱氏而不得率天下諸侯, 薦人於天。 進可爲大國師, 退不失伯舅之國矣。」 李公憮然曰, 「士大夫皆謹守禮法誰肯薙髮胡服乎。」 許生大叱曰, 「所謂士大夫, 是何等也。 產於彛貊之地, 自稱曰士大夫, 豈非騃乎。 衣袴純素, 是有喪之服。 會撮如錐, 是南蠻之椎結也。 何謂禮法。 樊於期, 欲報私怨而不惜其頭。 武靈王, 欲强其國而不恥胡服。 乃今欲爲大明復讎, 而猶惜其一髮, 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 而不變其廣袖, 自以爲禮法乎。 吾始三言, 汝無一可得而能者, 自謂信臣, 信臣固如是乎。 是可斬也。」 左右顧索釖欲刺之。 公大驚而起, 躍出後牖疾走歸。 明日復往, 已空室而去矣。
或曰. 此皇明遺民也。 崇禎甲申後多來居者, 生或者其人。 則亦未必其姓許也。 世傳, 趙判書啓遠爲慶尙監司, 巡到靑松。 路左有二僧相枕而臥, 前騶至呵之不避, 鞭之不起, 衆捽曳之, 莫能動。 趙公至停轎問, 「僧何居。」 二僧起坐, 益偃蹇, 睥睨良久曰, 「汝以虛聲趨勢, 得方伯乃復爾耶。」 趙公視僧, 一赤面而圓, 一黑面而長, 語殊不凡, 乃下轎欲與語。 僧曰, 「屛徒衛. 隨我來。」 趙公行數里, 喘息汗流不止, 願小憩。 僧罵曰, 「汝平居, 衆中常大言, 身被堅執銳當先鋒, 爲大明復讐雪恥。 今行數里, 一步十喘, 五步三憩, 尙能馳遼薊之野乎。」 至一巖下, 因樹爲屋, 積薪而寢處其上。 趙公渴求水, 僧曰, 「此貴人, 又當饑也。」 出黃精餠以饋之, 屑松葉, 和澗水以進。 趙公嚬蹙不能飮。 僧復大罵曰, 「遼野水遠, 渴當飮馬溲。」 兩僧相持痛哭曰, 「孫老爺, 孫老爺。」 問趙公曰, 「吳三桂起兵滇中, 江浙騷然, 汝知之乎。」 曰, 「未之聞也。」 兩僧歎曰, 「身爲方伯, 天下有如此大事而不聞不知, 徒大言得官耳。」 趙公問僧是何人 曰, 「不必問。 世間亦應有知我者。 汝且少坐待我, 我當與吾師俱來, 與汝有言。」 兩僧俱起入深山。 少焉日沒, 僧久不返。 趙公待僧, 至夜深。 草動風鳴, 有虎鬪聲, 趙公大恐幾絶。 已而, 衆明燎炬, 尋監司而至。 趙公狼狽出谷中。 久之居常悒悒恨于中也。 後, 趙公問于尤庵宋先生, 先生曰, 「此似是明末總兵官也。」 「常斥我以爾汝者何。」 先生曰, 「自明其非東國緇徒也。 積薪者, 臥薪之義也。」 「哭必呼孫老爺何。」 先生曰, 「似是太學士孫承宗也。 承宗嘗視師山海關, 兩僧似是孫之麾下士也。」
나 또한 윤영이란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변승업의 부에 대해 이런 말을 하였다. 그 재산이 모이게 된 까닭은 따로 있는데 부유하기가 나라 안에서 으뜸이었지만 승업의 시대에 와서 조금 줄었다고 한다. 그 재산이 불어나기 시작할 때에는 무슨 운명이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허생의 일을 보아도 이상하다고 할만 하다. 허생은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서 윤영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허생은 묵적동에 살았는데 남산 기슭에 바로 닿았다. 우물 위로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고 사립문은 그 나무를 향해 열려 있었다. 몇 간짜리 초가집은 비바람을 가리지 못했지만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할 뿐이었다. 처가 그를 위해 바느질을 하여 겨우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다. 하루는 처가 너무나 배가 고파 울며 말하였다.
"여보 평생 과거 시험도 치르지 않으면서 글은 읽어 무엇하오?"
허생이 웃으며 말하였다.
"내 독서가 아직 미숙하오."
처가 말하였다.
"장인이 되는 것은 어떤가요?"
허생이 답하였다.
"물건을 만드는 것은 애초에 배우지 않았으니 어찌하겠소."
처가 말하였다.
"장사를 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허생이 말하였다.
"장사는 본전이 없는 걸 어찌하겠소."
처가 화가나 꾸짖었다.
"밤낮으로 책만 읽으면서 겨우 배운 것이 어찌하오 이니, 장인도 못하고 상인도 못하면 도적이 되는 건 어떤가요?"
허생이 책을 덮고 일어서며 말하였다.
"안타깝구나. 내가 원래 10년을 기약하고 책을 읽었는데 이제 7년인 것을."
문밖을 나서니 서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곧장 운종가로 가서 시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한양에서 가장 부자가 누구요?"
변씨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야흐로 그 집을 찾아가 허생이 길게 고개를 숙이고 말하였다.
"내 집이 가난한데 잠시 작은 시험을 해 볼까 하여 그대에게 만금을 빌리려 하오."
변씨는 "좋소" 하고는 만금을 내주었다. 손님으로 왔던 허생은 고맙다 말도 없이 가버렸다. 집에 있던 자식들과 손님들이 허생을 보아하니 허리 끈의 실이 이삭처럼 삐져나오고 신고 온 갖신은 뒤꿈치가 뭉개졌으며 갓은 찌그러지고 도포엔 그을음이 묻어 있는데 코에선 묽은 콧물마저 흘렀다. 손님이 나가고 나자 모두 크게 놀라 말하였다.
"대인께서는 저 손님을 아십니까?"
변씨는 모른다고 답하였다.
"오늘 아침 허공에 던지듯 만금을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고는 이름도 물어보지 않다니요?"
변씨가 답하였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구나. 무릇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뜻한 바를 구구 절절 늘어놓으며 먼저 신의를 내세우지만 얼굴 빛은 부끄러워하며 비굴하고 했던 말을 반복하기 마련인데, 저 손님은 옷과 신발은 비록 낡았지만 말은 간결하고 시선이 매서우며 얼굴에 일부러 꾸민 표정이 없으니 재물이 없어도 자족하는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시험이라는 것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 손님을 시험하여 보려는 것이다. 주지 않으면 그만 이지만 이미 만금을 주기로 하였으면 이름은 물어서 무엇하나?"
이때 만금을 얻은 허생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안성은 기호 지방의 교통 요지로 삼남으로 향하는 길머리이다. 허생은 이곳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대추, 밤, 감, 배 따위의 제수에 쓸 과일과 석류며 귤, 유자 등을 모두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모조리 사재기하자 나라 안에 잔치며 제사에 쓸 것이 남지 않게 되었다. 허생에게 물건 값의 두 배를 받고 팔았던 상인들은 거꾸로 열 배의 값을 주고 되사게 되었다. 허생은 한숨을 쉬며 한탄하였다.
"만금을 들여보니 나라의 얕고 깊음을 판단할 만하다."
이어서 칼, 호미, 마포, 비단, 면포를 들고 제주로 들어가 말총을 모조리 모으며 말하였다.
"몇 년 안에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망건의 가격이 열 배로 뛰었다.
허생이 늙은 뱃사공에게 물었다.
"바다 밖에 사람이 살만한 빈 섬이 있는가?"
뱃사공이 있다고 말했다.
"일전에 제가 바람에 떠밀려 곧장 서쪽으로 사흘을 갔는데 하루를 빈 섬에서 묵었지요. 아마도 사문과 장기 사이 어디쯤 입니다. 꽃과 나무가 저절로 피고, 갖가지 열매가 절로 익으며 고라니와 사슴이 무리를 짓고 헤엄치는 물고기도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더군요."
허생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자네는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게 부귀를 함께하세."
뱃사공이 이 말을 쫓아 동남풍이 불자 그 섬에 함께 갔다. 허생이 높은 곳에 올라 살펴보고는 서글피 말하였다.
"땅이 채 천리가 되지 않는구나. 무엇을 하기가 어렵다. 땅이 비옥하고 물 맛이 좋으니 부잣집 늙은이는 만들겠구나."
뱃사공이 물었다.
"빈 섬에 사람이 없는데 누구와 함께 살려고 하십니까?"
허생이 답했다.
"덕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법일세. 덕이 없음을 두려워 해야지, 사람이 없음을 어찌 걱정하는가?"
이때 변산에는 도적 무리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지방에서 군졸을 풀어 쫓아내고 사로잡으려 하여도 할 수 없었고, 도적들도 노략질을 나갈 수 없어 굶주리고 있었다. 허생이 도적 떼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두목에게 말하였다.
"천 명이 천금을 노략질 하면 얼마씩 나누나?"
이 말에 사람들이 모두 두 귀를 기울였다. 허생이 말했다.
"자네들 처는 있는가?"
도적 무리가 없소 하고 대답하였다.
"밭은 있는가?"
도적들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처도 있고 밭도 있으면 누가 고생하며 도적질을 하겠소?"
허생이 말하였다.
"그럴만도 하군. 어찌하여 아내를 얻고 집을 장만하고 소를 사서 밭갈이를 하지 않는가? 도적이란 이름을 벗어 버리고 살면 처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 쫓기고 잡히는 걱정 없이 행동하면 오래도록 옷이며 먹을 것이 넉넉할 것인데."
도적들이 말하였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돈이 없을 뿐이오."
허생이 웃으며 말하였다.
"자네들 도적이라 하면서 돈이 없어 걱정하나? 내가 그대들을 위해 변통해 주도록 하지. 내일 아침 바다 위에 붉은 기가 보일 터인데 모두 돈을 실은 배이네. 자네들 마음대로 가져가게."
허생이 도적들에게 이렇게 약속하고 떠나자 도적들은 모두 미친놈이라며 웃었다. 다음날 바다에 가보니 허생이 30만 냥을 싣고 왔다. 모두 크게 놀라 엎드려 절하며 "오로지 장군님 명을 받드나이다" 하였다. 허생이 도적들에게 힘 닿는데 까지 가져가게 하자 앞다투어 돈을 짊어 졌으나 한 사람이 백 냥을 다 지고 갈 수가 없었다. 허생이 말하였다.
"너희들의 힘이 백금도 들 수 없으면서 무슨 도적이라 하느냐. 지금 너희들이 평민이 되려 하여도 잡아야 할 도적 명부에 올라 있으니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겠구나. 내가 여기에 있을 터이니 너희는 각자 백금을 들고 가서 여자 한 명과 소 한 마리를 구하여 오라."
도적 무리가 "알겠소" 하고는 흩어졌다. 허생은 2천 명이 한 해 동안 먹을 식량을 구하여 놓고 기다렸다. 도적들이 다 돌아와 더 이상 뒤처진 사람이 없게 되자 모두 배에 실어 그 빈 섬에 들어갔다. 허생이 도적을 모두 쓸어 담아 가자 나라 안의 사람들이 마음을 놓았다.
이런 다음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나무를 쪼개 울타리를 삼았다. 땅의 기운이 이미 온전하여 백 가지 열매가 크고 무성하였다. 묵정밭과 새밭을 가리지 않고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피었다. 3년 동안 먹을 것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장기에 싣고 가서 팔았다. 장기는 일본에 딸린 고을로 31만 가구가 살았는데 그 때 큰 흉년이 들어 있었다. 가져간 곡식으로 구휼하고 은 백만 냥을 벌었다. 허생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제 작은 시험을 해 보았구나."
이어서 허생은 남녀 2천 명을 모두 불러 모으고 명령하였다.
"내가 처음 그대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에는 먼저 부를 쌓은 후 문자를 만들고 의관을 새롭게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땅은 좁고 내 덕은 얕아 떠나야 하겠다. 아이가 태어나면 수저는 오른손으로 들고 하루라도 먼저 난 어른에게 먼저 음식을 드시라 양보하도록 가르치라."
남은 배를 모두 불사르고 말하였다.
"나가지 못하니 들어오지도 못하겠지."
은 오십만 금을 바다 속에 던지며 말하였다.
"바다가 마르면 가져가는 사람이 있겠지. 백만금이면 나라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데 하물며 작은 섬에서야."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모두 함께 배에 실어 나오며 말하였다.
"이 섬 만이라도 화근을 끊어야지."
이어서 나라 안에 들어와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두루 돕고도 은 십만 냥이 남아 말하였다.
"이것으로 변씨에게 갚을 수 있겠군."
변씨를 만나러 가 말하였다.
"그대는 날 기억하시는가?"
변씨가 놀라며 말하였다.
"그대의 용모와 낯빛을 보니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구려. 만금을 모두 잃었나 보오."
허생이 웃으며 말하였다.
"재물로 체면치레 하는 것은 그대들의 일이오. 만금이 어찌 도를 살찌우겠오."
이렇게 말하고는 은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어주며 말하였다.
"내가 하루 아침의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독서를 마치지 못한 채 부끄럽게 그대에게 만금을 빌렸소."
변씨는 크게 놀라 일어나 절하며 사양하고는 십분의 일 이자만 받겠다고 하였다. 허생은 크게 화내며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나를 장사치로만 보는가?"
옷자락을 떨치고 가버리자 변씨는 몰래 그를 쫓아갔다. 멀찌감치 바라보니 남산 기슭으로 향하더니 작은 집으로 들어간다. 어떤 할미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길래 변씨가 물었다.
"저 작은 집은 누구 집이오?"
할미가 답했다.
"허생원 댁이오. 가난한데 글 읽기만 좋아하다 어느 날 아침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은 지 5 년이 되었오. 처만 홀로 살면서 집 나간 날을 제삿날로 삼고 있다오."
변씨는 그제서야 손님의 성이 허씨인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왔다. 다음날 받은 은을 모두 들고 찾아갔으나 허생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내가 재물에 욕심이 있었으면 백만냥을 버리고 십만냥을 갖겠소? 내가 이제 그대에게 생활을 의지하려고 하오. 그대가 때때로 내 먹을 양식이나 보내주고 내 몸을 재어 옷이나 맞춰주면 평생 그것으로 만족하오. 재물 때문에 고생하느니 이게 좋지."
변씨가 갖가지 방법으로 설득하였으나 소용없었다. 변씨는 이때 부터 허생의 살림을 보살피면서 종종 스스로 허생의 집을 들렀다. 허생은 기꺼이 받으면서도 지나치다 싶으면 불쾌하게 여겨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내게 재앙을 남기려는가?"
술이라도 들고 가면 크게 기뻐하며 취하도록 함께 마셨다.
이렇게 몇 년이 흘러 서로 정이 든 뒤에 어떻게 5년 만에 백만 냥을 모았는 지 캐묻자 허생이 말하였다.
"쉬운 일이오. 조선의 배는 외국으로 다니지 못하고 수레도 나라 안을 다니지 못하니 갖가지 재물을 생산하여도 그 안에 머물며 그 안에서 소비되오. 천냥은 작은 재물이라 모든 재물을 독점하여 마르게 하기엔 부족하지만, 이것을 열로 나누어 백금씩이면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소. 물건이 가벼우면 옮기기도 쉽기에 한 품목이 손해를 보더라도 아옵 품목은 이득을 보게 되니 이렇게 이익을 바라는 것은 소인들의 장사법이오. 만냥을 가지고 하면 재물을 독점하여 마르게 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수레면 수레, 배면 배, 고을이면 고을 모두를 그물로 훝어 내듯 재물의 수가 얼마가 되든 묶어 모을 수 있소. 육지에서 나는 만 가지 산물도 하나로 챙겨두고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산물도 하나로 챙겨두고 약재가 만 가지라도 하나로 챙겨두어 어느 재화고 쟁여두게 되면 백가지 품목이 다 씨가 마르게 되오. 이런 방법은 도적이나 하는 것이오. 후세에 누구고 간에 내가 한 방법을 쓰면 반드시 나라에 병이 들 것이오."
변씨가 물었다.
"처음에 그대는 어찌 내가 만금을 내어 줄 것이라 여기고 나를 찾아와 구하였소?"
허생이 말하였다.
"반드시 그대일 필요는 없었소. 만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내어 줄 사람이 있지 않겠소. 나는 스스로 내 재능이면 백만금을 모을 수 있기 충분하다고 여겼으나 운명은 하늘에 달린 것이니 나라고 어찌 그것을 알겠소. 그러니 나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부가 더욱 쌓여 더 큰 부자가 되는 것도 하늘의 운명일 터인데 그렇다 보니 만금을 쉽게 얻은 것 아니겠소. 그 복을 빌려 행동으로 옮겼으니 하는 일 마다 성공하였소. 만일 내 스스로만 하였다면 성공이나 실패 역시 알 수 없었을 것이오."
변씨가 물었다.
" 지금 사대부들은 남한산성의 치욕을 설욕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지사라면 취약한 것은 누르고 지혜를 떨쳐 일어나는 것이 추상 같습니다. 그대와 같은 인재가 어찌하여 스스로 고통스레 어둠에 잠겨 한 평생을 마치려 하십니까?"
허생이 답했다.
"옛부터 어둠에 잠긴 사람은 한정 없이 많소. 호를 졸수재라 하였던 조성기는 적국에 사신을 보낼 수 있을 정도였지만 (벼슬을 하지 않고) 베옷 입은 한미한 사람으로 늙어 죽었소. 반계거사 유형원은 군대의 식량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바닷가나 거닐다 갔소. 지금 국정을 도모하는 사람들로 말하면 알만하다 하겠소. 나는 장사나 잘하는 사람이오. 벌어들인 은으로야 구왕 도르곤의 머리라도 사겠소만 바다에 던져버리고 온 것은 쓸 곳이 없었기 때문이오."
변씨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돌아갔다.
변씨는 원래부터 정승 이완과 가까왔다. 이완은 당시 어영대장이었는데 저잣거리 동네 안에 혹시나 큰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숨은 인재는 없는가 묻곤 하였다. 변씨가 허생이란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이완은 크게 놀라 말하였다.
"기이하구나.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이름은 어찌 되는가?"
변씨가 답하였다.
"소인이 3년을 함께 살았으나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이완이 말했다.
"그런 이인이라면 함께 가보세."
밤에 이완은 말몰이꾼을 물리치고 홀로 변씨와 함께 허생의 집으로 걸어갔다. 변씨는 이완을 문밖에 세워 두고 혼자 먼저 들어가 허생을 보고는 이완이 오게 된 까닭을 말하였다. 허생은 들은 척도 않고 말했다.
"그저 그대가 차고 온 병이나 풀어 놓소."
그러고는 서로 술을 나누어 마셨다. 변씨는 이완이 밖에서 이슬을 맞는 게 민망하여 수차례 말을 꺼냈지만 허생은 응하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허생이 말했다.
"손님을 들여도 좋소."
이완이 들어와도 허생은 앉은 채 일어서지 않았다. 이완은 몸 둘 바를 몰라하다가 이내 나라에서 현명한 이를 구한다는 뜻을 풀어 말하였다. 허생은 손사래를 치며 말하였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 듣기에 지루하오. 그대는 지금 어떤 관직을 하고 있소?"
"대장이오" 답한다.
허생이 말하였다.
"그러면 그대는 나라에서 신임받는 신하구려. 내가 마땅히 와룡선생을 천거할 것이니, 그대는 조정에 가 삼고초려 하라고 청할 수 있소?"
이완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다 말하였다.
"어렵소. 다음 계책을 일러주시오."
허생이 말했다.
"나는 아직 다음 계책이란 것을 배우지 못하였소."
계속해서 물어오자 허생이 말하였다.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 하여 (나라가 망하자) 그 자손들 여럿이 동쪽으로 와 정처없이 떠돌며 홀아비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소. 그대가 조정에 청하여 종실의 여식들을 두루 시집보내고 훈신과 척신의 권력과 부귀를 빼앗아 그들을 머무르게 하자고 할 수 있는가?"
이완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다 말하였다.
"어렵소."
허생이 말하였다.
"이도 어렵다 저도 어렵다 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그대가 할 수 있겠소?"
이완이 "듣겠소" 하였다. 허생이 말하였다.
"무릇 천하에 대의를 알리고자 하면 천하의 호걸과 먼저 교류하지 않고서 이룰 수 없소. 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면 먼저 간첩을 보내지 않고서 성공할 수 없소. 지금 만주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었소. 우리 스스로야 중국과 친하지 않다 하지만, 조선이 다른 나라들 보다 먼저 복종하였기에 저들은 믿고 있소. 당나라 때나 원나라 때의 옛일 처럼 자제를 유학 보내고 신하들이 건너가며 상인들의 교류를 금하지 않겠노라 정성들여 청하면 저들은 반드시 기뻐하며 허락할 것이오. 나라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변발시키고 호복을 입혀, 군자는 과거를 보게 하고 소인은 강남으로 장사를 보내, 그들의 허실을 살펴보면서 호걸들과 결의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고 나라의 치욕도 설욕할 수 있을 것이오. 주씨를 구하여 보겠으나 그러지 못한다면 천하의 제후를 이끌고 새로운 황실을 하늘에 천거하여야 할 것이오. 나아가 대국의 스승이라 할만하고 물러나도 백구의 나라라 존경받을 것이오."
이완이 멍하니 있다가 말하였다.
"사대부가 모두 예법을 삼가 지키는데 누가 변발 호복을 수긍히겠소."
허생이 크게 꾸짖으며 말했다.
"이른바 사대부란 것이 무엇인가? (오랑캐로 불리는) 이맥의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니 어리석기 그지 없구나. 저고리며 바지를 희게 하여 입으니 이것이야 말로 상복을 입는 것이요, 상투를 송곳마냥 모아 올리니 이것이야 말로 남만의 상투다. 어찌 예법이라 부르는가? 번오기는 개인의 원한을 갚으려 자신의 머리 내놓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았고, 무령왕은 나라를 강하게 하려고 호복 입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지금 대 명나라의 복수를 하려는 마당에 그깟 머리카락 한 올을 아까워하고, 이제 말을 달리며 창칼을 휘두르고 활과 돌을 날리려 하면서도 넓은 소매는 고치지 못한다고 하니, 이것을 예법이라고 하는가? 내가 세 가지 방도를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스스로 신임받는 신하라고 하니, 신임받는 신하란 것이 이런 것인가? 죽어 마땅하다."
좌우를 둘러보며 칼을 찾더니 베어버리려 하였다. 이완은 크게 놀라 일어서서 뛰쳐 나간 다음 병에 걸린 듯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가보니 빈집만 덩그라니 남고 없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허생도 명나라 유민이라고 한다. 숭정 갑신년 이후 많은 명나라 유민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허생도 그리하였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허생의 성씨도 허씨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전하기로는 판서 조계원이 경상감사가 되어 청송을 순행하는데 길 왼편에 중 두 명이 서로를 베고 누워있었다. 앞서 말모는 사람이 고함을 질렀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채찍으로 쳐도 일어나지 않고 여럿이 달려들어 붙들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조계원이 가마를 멈추어 세우고는 어디 사는 중이냐고 물었다. 두 중이 일어나 앉아 더욱 거만하게 굴며 오래 흘겨보더니 말했다.
"너는 헛된 명성으로 실력자를 쫓아 방백의 자리를 얻어 그 지방에 가고 있구나."
조계원이 중을 보니 한 명은 붉그스름한 얼굴이 둥글게 생겼고 한 명은 거무스름한 얼굴이 길쭉하게 생겼다. 하는 말이 벙상치 않아 조계원은 가마에서 내려 말을 나누고자 하였다. 중이 "뒤따르는 호위는 놔두고 우리를 따라 오라"고 말하였다. 조계원은 몇 리를 따라가다 숨이 차고 땀이 그치지 않자 쉬어가자고 청하였다. 중이 욕을 하며 말했다.
"네가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는 늘상 큰 소리를 치며 몸에 갑옷을 두르고 창을 짚고 마땅히 선봉에 서서 대 명나라를 위하여 복수하고 치욕을 씯겠다더니, 이제 몇 리를 걷는데 한 번 걸음에 열 번 숨차하고 다섯 걸음 걸으며 세 번 쉬자고 하니 어찌 요동과 계주의 들판을 말달릴 수 있겠느냐?"
어느 바위에 다다르자 나무를 집으로 삼더니 땔나무를 구해 쌓고 그 위에서 지냈다. 조계원이 목이 말라 물을 구하니 중들은 "이 귀한 분이 또 당연히 배고프다 하겠군"하고는 누런 좁쌀을 꺼내어 솔잎을 갈아 넣고 개울물에 섞더니 먹으라고 주었다. 조계원이 이마를 찡그리며 먹지 못하고 있으니 중들이 다시 크게 꾸짖었다.
"요동 들판은 물이 멀다. 갈증이 나면 말 오줌이라도 마셔야 한다."
두 중이 서로 부여 안고 "손 대감, 손 대감"하며 통곡하였다. 조계원이 까닭을 물으니 이렇게 답하였다.
"오삼계가 진강에서 거병하고 강소, 절강이 어수선한 것을 아는가?"
"듣지 못했습니다" 하니
두 중이 탄신하며 말하였다.
"네가 방백이 되어 천하의 대사를 듣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큰 소리만 쳐서 관직만 얻었구나,"
조계원은 중들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다. 답하기를,
"물을 필요 없다. 세간에서는 우리를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는 여기 조금 앉아 우리를 기다리거라. 우리 스승님을 모시고 돌아와 너와 얘기하겠다."
두 중은 함께 일어나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조금이라고 하였는데 해가 저물었지만 중들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조계원이 중들을 기다리다 밤이 깊었다. 풀들이 흔들리며 울고 호랑이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리자 조계원은 너무 무서워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 때 사람들이 횃불을 밝히고 감사를 찾아오자 조계원은 낭패를 보고 골짜기를 나왔다. 그 뒤 오래도록 지내면서 속으로 늘 불안하였다. 훗날 조계원은 우암 송선생을 만나 물었다. 송선생은 말했다.
"이는 아마도 명나라 말의 총병관일 것이오."
"늘 저를 배척하며 너라고 부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동국의 승려가 아닌 것을 밝히고자 한 듯 하오. 그 땔나무는 와신상담의 뜻이고,"
"곡을 하며 손 대감을 부른건 어찌 보십니까?"
"태학사 손승종일 것 같소. 손승종이 산해관에서 군사를 이끌었으니 두 중은 손승종의 휘하에 있었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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