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용기를 내고 일어나라.”
그는 피곤하여 길 복판에 쓰러진 동행을 분려奮勵시킨다.
온 천지는 회색 분위기로 변하고 고요히 고요히 잠들어 간다. 앞에도 뒤에도 험한 산맥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온 겨울 동안 침묵이 계속되어 고요하고도 무서운--사람의 그림자도 구할 수 없는--산중이다. 눈은 세상을 정화시키려는 듯이 대지를 포옹하고 요 십여 일 간은 통행이 절무絶無하였던 것같이 도로를 전연 분간할 수 없다. 깊은 눈 구덩이에 새로운 도로를 개척하면서 그들은 진행하였다.
금절성金切聲으로 부르짖는 찬바람은 날카로운 칼날을 가지고 협박하고 모든 것은 전율한다. 새의 무리도 어느덧 폭신한 둥우리 속에 다 돌아가고 세상은 물속같이 고요하여졌다.
그의 목소리는 떨린다. --사나운 재별관裁別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한 소나무는 마저 마저 넘어져 가면서도 독한 바람과 암투暗鬪하고 있다.
일생을 위하여 진실하고 격렬한 쟁투를 침묵 속에서 계속하고 있다. 눈바람은 그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발은 점점 뒤로 퇴각하는 듯도 하다. 그들은 광막한 벌판도 표박漂迫하고 높은 절벽 위로도 헤매이고 꽤 쓸쓸한 묘지 부근도 방황하였다. 그러나 더 걸을 수는 없다. 안색은 푸르러지고 감각은 마비되고 발은 더 떼어놓을 수 없다. 그 자리에 한 사람은 또 정신을 잃고 그만 쓰러져 버렸다.
그에게는 이제 동행을 일으킬 힘도 안 남았다. 다만 자기들의 운명을 알아주는 듯한 별을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푸르고 처참한 웃음을 띠인 별은 오히려 공포의 염을 일층 더 일으켰다.
그러나 모든 절망, 전율, 공포의 염이 이제는 도리어 그의 굳세인 의지를 환기시켰다. 용기를 흥분시켰었다. 태연히 부르짖는다.
“동무야 일어나라. 가자. 오, 우리는 가야 한다……그렇다, 우리는 가야 한다.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의 감각을 잃을 때까지 가야 하겠다.”
“나는 더 갈 수 없다. 나의 발은 감각을 잃은 지가 오래다. 오---춥고 어둡고 어렵다!”
“그래도 가야 한다. 이 고개를 넘어가자. 행복의 고개를!”
“행복의 재는 너무도 험하다.”
“물론 험하나 우리의 생애에는 험하고 적막인 길이 많다. 그리고는 반복된다.”
“오---춥고 어둡고 어렵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한다. 어디까지라도, 아무리 하여도 우리는 여기에서 체재할 수는 없다. 깊은 암흑의 바다에서 헤매일 수는 없다. 밝은 곳으로 광명으로 돌지하여야 한다. 나아가자! 동무야, 자 나의 손을 붙잡아라!”
그들은 역시 걸음을 계속하였다.
---무거운 보조步調로.
눈바람은 간단없이 휙휙 컹컴한 그믐밤 속에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