抱擁[포옹]의 倫理[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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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이태 동안 지운은 학교에 나가 교편을 잡았다. 여성들과의 교제도 부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운은 결혼할 생각은 통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선가 불쑥 그 소녀가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은 기대를 전적으로 포기하지는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은 차차 여위어 가고 추억은 점점 산만 해졌다. 벌써 팔구 년이나 되는 낡은 기억이었다. 소녀는 확실히 죽은 것이라고 지운은 결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채정주와 이석란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 무렵이었다. 결혼이라는 문제를 별로 염두에 넣지 않고 지운은 이 두 사람의 여성과 사귀어 왔다. 정치외교를 전공으로 한다는 석란보다도 의학을 전공하는 정주의 착실성이 지운의 조용한 성품에는 좀더 어울리는 데가 있는 것 같았다.

대교로 영도다리 난간에서 영주는 조용히 별을 여러 번 쳐다보았고 광복동 네거리에서 석란은 꽃처럼 활개치기를 즐겨하였다. 정주를 만나면 지운의 마음은 고주넉히 가라앉았고 석란을 만나면 지운의 마음은 화려하게 들떠져 갔다. 정주와 같이 있을 때는 언제나 지운의 편에서 제안을 하고 리드를 해야만 행동이 있었지만 석란과 함께 있을 때는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앞장을 서서 움직여 주었다. 정주에게는 신경이 씌워졌지만 석란에게는 그것이 별반 필요치 않았다.칠 · 이칠 휴전과 함께 환도한 후에도 이 두 여성과는 쭈욱 교제가 계속되 었다. 그러는 동안에 지운은 어느덧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망각(忘却)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인간의 생리를 무한히 서글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삼대 독자의 결혼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는 늙어가는 어버이의 초조한 마음속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운에게 있어서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기도 하였다.

어떤 일요일, 지운은 석란과 함께 정릉 계곡을 걸어 올라갔다. 구월 하순의 일이었다.

이날 석란은 선명한 회색 투피이스에 화장을 다소 짙으게 하고 나섰다. 까만 비로드 리봉은 석란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날도 석란은 리봉을 달고 왔다.

『선생님, 나 오늘 일부러 화장을 좀 짙으게 하고 왔어요.』

『왜?』

『그 누구에게 좀 더 곱게 뵈일려구요.』

계곡을 따라 사오간 거리를 앞서서 걸어가던 석란이 홱 돌아서며 마네킨 인형처럼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어때요, 선생님? 이만함 미스코리아는 문제없죠?……』

지운은 웃었다.

『정말로 선생님 어때요?』

외국 영화를 남달리 많이 보고 자란 석란이다. 넌지시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창공을 반만큼 우러러 보는 포즈를 석란은 취하며,

『선생님, 멋지지?』

『아, 멋진 걸』

지운은 또 웃었다.

『예술적 향기가 저으기 높지?』

『칭찬은 제 입으로 하는 게 아니야.』

『노우, 노우! 제가 잘났다고 해야만 남도 잘났다고 보아 주는 거야요. 선생님은 현대적 성격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다소 부족해요.』

그것은 사실이라고 지운도 생각한다.

너 나 없이 모두들 자기를 내세우는 세상이 마침내 온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일종의 미(美)까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석란이의 소위 현대적인 성격의 일면을 말하는 것일는지 모른다.

『내가 인제 선생님과 결혼을 하게 됨 남편 교육에 톡톡히 힘을 써야겠어요.』

그러면서 석란은 두어번 쿡쿡 웃었다.

『허어?…… 석란과 결혼한다고, 누가 그런 말을 했어?』

석란의 그 한마디에는 정말로 지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운 자신의 입으로서는 그런 말을 단 한 번도 입밖에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선생님 보고 그러셨대요? 그저 나 혼자의 생각으로 그렇다는 말이야요. 그 생각을 솔직 명확하게 표현했을 따름이니까,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무방해요.』

『음 ─ 』

지운은 가벼운 신음 소리를 냈다. 정말로 솔직 명확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석란의 그러한 표현주의는 그때까지도 망설거리던 결혼 문제에 대한 지운의 마음을 거의 결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중요한 모멘트를 형성하고 말았다.

석란은 목에 걸었던 라이카로 다가오는 지운의 엄숙한 포우즈를 한 커트 찍고 나서,

『나 이 필름 커다랗게 확대 해 볼래요. 아주 커다랗게…… 전지(全紙)를 써서…… 솜털구멍이 숭글숭글 뵈도록.』

『그건 또 왜?……』

『선생님의 표정을 잘 한 번 연구해 볼려구요. 결혼 말이 튀어나온 그 순간에 있어서의 선생님의 그 엄숙한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걸 한 번 잘 검토해 봐야겠어요.』

무엇 하나 감추는 것이 없다. 석란의 말은 그대로 고스란히 석란의 마음의 풍경을 비쳐주고 있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밖에 안되는 마음 속은 모르는 거야.』

지운은 농담을 했다.

『정주 언니를 두고 하는 말씀이겠죠.』

『누가 또 정주씨를……』

『정주 언니는 고요하죠. 나는 다소 소란하구요.』

『잘 아는구먼.』

『정주 언니는 좀 찰거야요. 나는 다소 뜨겁구요.』

지운은 대답을 잃었다.『차서 얼어 죽는 것보담은 뜨거워서 데죽는 편이 현대적이겠죠.』

『또 자기 선전이야?』

『필요하다면 선전두 해야죠. 가만히 앉아서 얼어 죽기는 싫어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세상인데요. 선전 없이 진가(眞假)를 올리기에는 세상이 다소 무감각하지요. 남의 일에는 모두가 다 소경이구 귀머거린 걸요. 그러니까 제일은 제가 해야 잖어?』

석란은 곱게 웃었다. 웃으면서 지운의 팔 하나를 꼈다.

『누가 뒤에서 사진 한 장 찍어 줬음 좋겠네요. 정주 언니에게 좀 보여 주게요.』

『…………』

지운은 석란의 옆얼국을 후딱 바라보았다.

지운과 팔을 끼고 울툭불툭한 개천가를 걸어 올라가는 석란의 얼굴은 지극히 행복하였다. 그 행복한 자기의 모습을 정주에게 보이고 싶다는 석란이었다.

『석란, 그런 잔인한 말을 삼가해요. 그것이 경우가 바뀌어서 정주씨라면 그런 잔인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요.』

『그럴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말을 안한달 뿐이지, 감정은 마찬가지지 뭐야요? 감정을 숨기는 것이 과연 미(美)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과연 추(醜)냐? 그건 성격이나 시대의 문제라기보다도 인식(認識)에 관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해요. 좋음 좋고 나쁨 나쁘고 솔직하게 살다가 솔직히 죽음 되지 뭘 그러세요? 몇백 년 살으실려고?…… 원자탄 하나만 콰앙함 선생님도 없고 저도 없어요.』

팔을 꼈던 손이 미침질을 하면서 밑으로 내려갔다. 손과 손이 잡혀지면서,

『잔인도 현대적 성격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지운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럴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그걸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건 시대적 착오야요. 자기 행복의 솔직한 향유(享有)를 의미하는 것뿐이니까요. 남자고, 여자고, 요즈음 모두들 옷 차림이 화려해졌지요. 그 거짓 없는 행복에의 추구는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다른 계급에게는 확실히 일종의 잔인을 의미하는 거니까요.』

석란은 힘을 주어 지운의 손을 꼭 쥐어 보며,

『그러니까 결국 하는 수 없지, 뭐예요? 남을 생각해서 자기의 행복을 포기한다는 그러한 모랄은 이미 이 나라의 거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한낱 전설의 가치밖에는 못가질 거예요. 있다면 그건, 소설가 임지운씨의 작품 세계에서나 가끔 가다가 찾아 볼 수 있을 거예요.』

뚜렷했다. 그 뚜렷한 인생관을 한 편으로는 서글퍼하면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작자 임지운은 자기분렬(自己分裂)의 의식이 괴로와졌다.

『선생님!』

말과 함께 석란의 손가락이 힘을 주어 왔다.

『응?……』

『힘차게 살아요.』

『어떻거면 돼요?』

『좋은 건 좋고 싫은 것은 싫음 돼요.』

『좋은 건 좋고……』

『선생님, 솔직히 대답하셔야만 해요.』

『대답하지요.』

『나는 선생님께 한 번 안겨 보고 싶은데…… 선생님은 절 안아 보고 싶지 않으셔요?』

낙엽송이 한 무더기 총총이 서 있는 개천가 길이었다. 발 밑에 물이 흘렀다. 멀리 사람들의 그림자가 희득희득 보였다.

『누가 보면 어떻거나?……』

『붙들어 가지는 않겠지, 뭐.』

『그래도……』

『너무 봉건적이야요. 나는 명동 거리 한 가운데서 선생님께 한 번 흐뭇하니 안겨 보았음 일생에 한이 없겠어요.』

지운은 불현듯 걸음을 멈추었다. 무엇인가 거역 할 수 없는 정열의 불덩어리 하나가 격렬한 충동과 함께 지운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저기 사람이 오는데……』

지운은 등뒤를 돌아다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동경의 극한(極限)을 사람들은 정열이라고 불렀다. 그런 것이 석란의 두 눈동자 속에서 아우성을 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굳세인 포옹에의 절실한 동경이었다.

포옹을 동경하는 의욕은 지운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의 솔직 명료한 욕구가 도덕의 압력을 대담하게 배척하면서 석란의 입으로부터 힘차게 튀어나오는 순간 지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의 성질을 명확히 분석하지 못한 채 지운은 우선 대답을 해야만 했다.

『사람이 온대두……』

『음 어때요, 선생님? 누가 못할 짓을 한데요? 포옹쯤……』

진실에의 논리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포옹에의 갈망이 진실의 발판을 얻으면서부터 갑자기 절박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지운은 놀랐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명동의 딸 이 석란의 스무 세 살과 근엄한 철학자의 아들 임지운의 갓설흔 사이에 가로놓인 모랄(道德律[도덕율])의 거리를 발견하고 지운은 또 놀랐다. 이 두 가지가 채 분석하지 못했던 놀라움의 정체였다.

그러나 행동인(行動人) 임지운은 작가 임지운처럼 대담하지는 못했다. 작품 세계에 있어서는 그처럼도 대담하게 인간의 진실을 실천시켜 온 임 지운도 하나의 행동인으로서는 그 진실이 선(善)의 후원을 받기까지는 언제까지나 하나의 생생한 논리대로의 자세로서 머리에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좀더 저리로 올라가서…… 조금만 참아.』

지운은 석란의 손을 이끌고 계곡을 좀더 깊숙히 올라가기를 제안하였다.

『선생님은 참을성도 많으시나 봐. 올라갈 때까지에 안겨 보고 싶은 생각이 후딱 없어짐 어떻게요?』

그 말을 지운은 무척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석란은 무척도 무우디스트(氣分主義[기분주의])야.』

『그렇지만 무우드(氣分[기분])을 경멸해서는 안돼요. 기분이 있은 후에야 의욕이 생기는 거예요. 기분의 발판이 없는 의욕처럼 무서운 살풍경은 없을 거예요. 그건 이미 진실도 아니고 미도 아니예요.』

그것을 모르는 지운은 아니다.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지운은 마침내 석란을 품었다.

육체의 감각보다 먼저 지분의 냄새가 관능에 왔다. 예상 이외로 토실토실한 풍만한 육체를 가슴과 손길에 느낀 것은 그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목에 걸었던 카메라가 방해가 되어 제 손으로 석란은 등뒤로 넘겼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금 힘차게 안기워 왔다.

지운의 품은 생각하던 것보다 넓고 완강했다. 그 완강한 가슴에다 석란은 격렬한 몰부림과 함께 얼굴을 두어 번 부볐다.

석란은 세상이 갑자기 좁아진 것 같은 느낌을 불현듯 느꼈다. 사방이 한 자 넓이밖에 안되는 이 품안이 이 순간에 있어서는 온 세상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감미롭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아늑하고 탐탁한 느낌이 좀더 굳세게 왔다.

『사람이 다가왔어요! 인제 그만……』

지운의 도덕이 항거를 했다.

『괜찮아, 괜찮아! 옴 어때?…… 좀더 꼭……』

석란의 손길에 힘이 왔다. 명동 한 가운데서 안기워 보겠다는 석란이었다.

지운의 교양이 힘을 잃고 도금(鍍金)처럼 또다시 벗겨져 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십 미터 거리에까지 사람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부인을 동반한 스프링 코우트의 중년 신사였다.

중년 신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엉거주춤히 서서 한 무더기 총총히 선 낙엽송 사이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일단 걸음을 멈추었던 중년 신사가 다시금 걸어 올라오기 시작한 것과 지운의 시선이 석란의 파아마 위로 그쪽을 다시 한 번 돌아다 본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아 ─ 』

지운의 모랄이 당황을 하며 석란의 어깨를 홱 떠밀어 냈을 때는 중년 신사의 얼굴 표정이 빤히 바라다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운은 부끄럼으로 말미암아 얼굴을 붉혔다. 사십대의 그 점잖아 보이는 중년 신사의 얼굴이 불쾌와 조소의 표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며 옆을 지나갔을 때 지운의 도덕적인 감정은 어린애처럼 울상을 지었다.

더구나 동반인 삼십 이삼 세의 부인이 표정없는 얼굴을 일부러 지으며 후딱 외면을 하고 지나가는 모양을 보았을 순간 지운은 역시 자기네의 행동이 하나의 불미스로운 것으로 간주되는 세속적인 비난 앞에 머리를 수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상과 행동 순수성과 도덕률의 중간 지대에 어색한 태도로 엉거주춤히 서 있는 삼십 대의 작가 임지운의 눈앞에서 석란은 그러나 태연자약하였다.

아니, 태연함을 한 걸음 넘어서서, 신사와 꼭 같은 종류의 불쾌감과 비웃음의 표정을 석란은 노골적으로 나타내며 증오의 넘을 가지고 신사를 쏘아보고 있을 때였다.

『교양이라곤 손톱 만큼도 없는 것들! 세상은 말세가 되었소.』

자기네들 끼리 지나가면서 하는 신사의 중얼거림이 불행히도 석란의 귀에까지 왔다.

『뭐라고요? 교양이 없다고요?……』

석란의 표정이 격렬히 움직이었다.

신사가 돌아서며 걸음을 멈추었다. 외면을 했던 부인도 섰다. 신사는 여전히 비웃는 얼굴이었으나 부인의 표정은 다소의 놀람을 지니고 있었다.

『그랬소!』

굵다란 목소리가 위압을 하듯이 맞받아 나왔다.

『교양이 없다고? 그건 누굴 보고 하는 말이예요?』

『당신네들 보고 했소.』

이 불량배의 일족(一族)인 두 사람의 젊은 남녀를 신사는 확실히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도리어 교양이 없다고요? 그건 어느 편에서 해야 될 말인지, 잘 좀 생각해 봐요. 하기만 함 말인 줄 알아요?』

뒤로 넘겨졌던 카메라를 앞으로 돌려 메며 석란은 분명한 어조로 대들기 시작했다.

『허허?……』

신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연히 섰다가,

『그럼 우리가 도리어 교양이 없군요?』

『물론이지, 뭐야요? 당신이 만일 교양이 있는 신사람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가던가, 그렇지 않음 저편 쪽 솔밭 사이로 길을 비켜가던가, 그만한 상식과 아량도 없담 적어도 우리를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에 비웃음의 표정만은 띠우지 않았어야 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부인은 당신 보담은 훨씬 교양이 있는 분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부인께 지도를 좀 발아야 할 거예요.』

『허어! 당신이 나에게 도리어 설교를 하는 거요?』

신사는 기가막히다는 듯이 하늘을 우러러 허어하고 웃으며,

『세상은 교양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나 보오!』

했다. 그리고는 담배 한 꼬치를 여유 있는 태도로 끄집어 냈다.

생각하니, 실로 턱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다소의 반성 같은 것이 있을까 했었는데, 도리어 이편을 교양없는 사람이라고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의(道義)는 이미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이라고 신사는 처량한 심정과 함께 분노의 정을 금치 못했다.

『언어 도단이다! 젊은 것들이 한길가에서 부둥켜 안고 돌아가는 추잡한 행동을 연출하면서도 반성은 추호도 없이 교양의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훌륭한 논리가 튀어나온다는 말이요?……』

『뭐라고, 추잡한 행동?……』

석란의 빨간 입술이 파들파들 경련을 일으켰다.

『대답을 해요! 뭘 가리켜 추잡한 행동이라고 하는 거예요?』

석란의 본질주의적인 순수성이 마침내 발악을 했다.

석란은 분하고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아늑하고 탐탁한 품속 어느 구석에 추잡이 있었더냐? 거기에는 한 사람의 처녀로서의 감미로운 순정밖에는 아무런 것도 없었다.

그 감미로움을 이 사십대의 사나이는 징그럽게도 추잡이라고 보는 것일까?…… 정녕 그렇다면 그 보는 눈이 삐두러진 것일 따름이지, 그 눈에 비치는 실체(實體)는 어디까지나 순결하고 맑은 그것이 아니었던가!

가장 진실하고 가장 아름답고, 한 걸음 나아 가서는 성스러움까지를 느끼던 자기네의 순수한 애정의 표현이 이 위선의 탈을 쓴 사십대 사나이의 입으로부터 더럽고 추잡하다는 형용사로서 불리워졌다는 것은 전체 미혼여성들의 순결한 애정을 모독하는 괘씸한 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처녀들의 아름다운 순정을 위하여 그것을 한낱 추잡으로서 관념하고 추잡으로서 실천하여 온, 이 위선의 사나이에게서 받은 모욕은 반드시 보답을 해야만 되었다.

『그래 당신네들의 행동이 추잡하지 않다는 말이요?』

담배 연기를 호기있게 내뿜으면서 신사는 빙그레 웃었다.

『무엇이 추잡했어요? 어디 어느 대목이 추잡했다는 말이야요?』

석란의 추궁이 날세게 맞받아 나왔다.

『아이, 그만 두고 인제 가요.』

옆에 섰던 부인이 민망스럽다는 듯이 신사의 팔소매를 잡았다.

그러한 생각은 지운에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운의 작가 의식은 다소 잔인할이만큼 두 사람(두 세대라고 지운은 본다)의 논쟁을 관찰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여전히 침묵을 지키면서 부러진 나무그루 하나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꺼냈다.

처음에 느꼈던 부끄러운 생각은 이미 지운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다소 불미로웠다고 얼굴을 붉히던 생각도 이제는 점점 희박해가면서, 어느덧 자기가 순수성을 옹호하는 이석란의 세대(世代)에 가담하기 시작한 자기의 심정을 차차 발견하고 있었다.『여기는 침실이 아니요. 한길가요.』

『여기는 종로 네거리가 아니예요. 숲 사이에요. 우리는 포옹 이상의 것을 한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침실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어요.』

『어쨌든 당신네들의 무교양은 통행인을 불쾌하게 만들었소.』

『어쨌든 당신네들의 몰상식은 다른 제삼자의 행복을 파괴하였소.』

『대단히 흥미로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앉았던 나무 그루에서 몸을 일으키며 지운은 비로소 논쟁에 참가하였다.

지운이가 논쟁이 참가하는 것을 보고 신사와 석란은 각각 기대를 달리하고 있었다.

『어디 당신 좀 말해 보쇼.』

하고 신사는 지운의 개입을 환영했고,

『선생님은 잠자코 계셔요.』

하고 석란은 지운의 발언을 막았다. 입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지운을 석란보다 지식이나 언변이 낮은 사람으로 보고 신사는 환영했고, 지운이가 입을 열면 신사에게 금시 머리를 숙일 것만 같아서 석란은 막았다.

『어쨌든 선생, 그만하시고 어서 올라가시요.』

지운은 미소와 함께 점잖게 권했다.

『아니, 그렇지 않소. 당신은 당신대로 의견이 있을 것이 아니겠소? 이 당돌한 여성의 말이 옮으냐, 내 말이 옳으냐?……』

『물론 나로서의 의견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구태어 여기서 이야기 하여 논쟁을 더 계속시킬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서 부인을 모시고 올라가시요.』

지운으로서는 결말을 이미 짐작했었기 때문에 그 이상 논쟁을 계속하는데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요 그렇지 않소. 똑똑히 좀 들어 봐야겠소. 아무리 오늘날 세상이 부패하고 풍기가 문란하다고는 하지만 그쪽에서 도리어 이쪽을 논란하고 공격할 만큼 이유가 당당하다고는 믿을 수 없소. 보와하니 노형의 나이도 지긋하오. 이 당돌무쌍한 여성의 교양을 위해서라도 노형이 잘 지도를 해야만 할 것이요.』

석란은 한두 번 쿡쿡 웃었다. 당돌무쌍하다는 말이 우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나에게는 이 학생을 지도할 만한 능력이 없읍니다.』

『뭐, 학생이라고?……』

『그렇습니다.』

『음 ─』

신사는 석란의 아래 위를 한참 동안 훑어 보면서 저으기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지었다.

그것이 또 석란은 우스워서 쿡쿡 웃으며,

『양공주 쯤으로 알았나 봐. 후훗……』

그러면서 석란은 무성한 송림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음, 배움의 집에 있는 사람이……』

『당돌무쌍해요?』

『하핫……』

지운은 웃었다. 신사 옆에서 부인도 시무룩했다. 웃지 않은 것은 석란과 신사 뿐이었다.

『그래 노형의 연륜으로 저런 애숭이 하나를 옳은 길로 지도하지 못한다는 말이요?』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나 자신 확고한 지도 정신을 갖지 못 했으니까요.』

신사는 이번에는 지운의 아래 위를 다시 한 번 쭈욱 훑어보며 개탄하였다.

『음, 세상은 완전히 돌고 말았다! 노형도 그것을 모른다니……』

『사물을 보는 눈과 생각하는 과정이 서로 다르니까요.』

『눈이 다르다?……』

『그렇습니다. 선행은 이곳을 한길가라고 완강히 규정을 지었지만 이 학생은 이곳을 숲 사이라고 완강히 주장하였지요.』

『길 옆이면 한길가가 아니요?』

『송림이 이처럼 총총히 서 있는 데니까 숲 사이가 아닙니까?』

『그것은 궤변이다!』

『이 학생의 입을 빌면 선생의 주장도 궤변이 되겠지요. 선생의 한길가라는 관념에는 종로 네거리 같은 인상을 다분히 강요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학생의 숲 사이라는 관념에는 심산 유곡을 의미하고 있을는지도 모르니까요.』

『음, 확실히 궤변이다. 해방 이후, 이런 종류의 궤변을 나는 젊은이들의 입으로부터 수없이 많이 들어 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동양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을 무자비하게 파괴하였을 뿐이다. 음 ─ 』비분 강개의 빛이 신사의 얼굴을 어둡게 덮기 시작하였다.

미풍 양속의 파괴자로서 비분 강개하는 신사의 어두운 얼굴을 지운은 일종의 동정의 넘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상 지운은 이론으로는 석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지금까지 자기가 지니고 있던 모랄리티(道義感[도의 감])의 붕괴를 서글퍼하는 심정이 쭈욱 꼬리를 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동시에 행복의 파괴자를 아름다운 정열과 투명한 논리를 가지고 규탄하여 마지않는 이석란의 신선한 생태(生態)에 대하여 깊은 이해와 동감의 념을 금치 못하는 것도 또한 지운으로서는 사실이기도 하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강렬한 매력과 낡은 것에 대한 무한한 애석(哀惜), 혁명에 의 동경과 진통에의 애착, 파괴와 보수(保守), 모험과 안식, 불안과 평온의 중간 지대에서 삼십 대의 작가 임 지운은 허둥지둥 신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노형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오? 여기가 한길가요? 숲 사이요?

……』

이 신사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 대단히 좋아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송림 사이에 오솔길이 한 줄기 났을 따름이지요. 선생은 선생대로 종로 네거리 쯤으로 생각하고 어서 올라가시요.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달라서 그러는 거니까요.』

『무슨 말을…… 보는 눈은 다 똑같을 것이요. 다만 노형의 편에서 궤변을 논하고 있는 것 뿐이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운은 비로소 정색을 하였다. 지운의 어조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정열을 띠워왔다. 신사의 태도가 지나치게 집요하다.

『선생은 남녀의 포옹을 보는 순간, 침실을 연상하는 인격밖에 갖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일는지 몰라도 이 학생은 그러한 욕망도 체험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연상조차 불가능했을 거요. 그것으로 곧 침실을 연상하는 선생의 인격이야말로 이 학생의 순결성을 모독하는 추잡 이상의 추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야아, 선생님, 멋지네요!』석란이가 옆에서 손벽을 치며 응원을 했다.

『여보, 어서 올라가요!』

부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신사의 팔소매를 힘차게 잡아 끌었다. 이러다가는 자기네 규방이 드러날는지도 몰랐다.

『아, 가만 좀 있어!』

신사는 잡힌 팔을 뿌리치며,

『도리어 내 인격이 추잡하다고?……』

신사는 모욕을 느끼며 외쳤다.

『그렇습니다. 남녀 칠세에 자리를 같이 하지 않던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가 손만 잡아도 추잡을 느꼈지요. 그러나 오늘날, 종로 대로상에서 행하여지는 남녀의 악수에서 선생은 추잡을 느낍니까?』

『부둥켜 안고 돌아가는 것과 악수는 성질이 다르다!』

『마찬가지요. 선생은 과대 표현을 하여 부둥켜 안고 돌아간다고 했지만 우리들은 조용한 포옹 이상의 것은 하지 않았소. 그거야 말로 중인 간 시중에서 부등켜 안고 돌아가는 오늘의 사교춤은 어떻게 생각하시요?』

『그것도 추잡이다!』

신사는 사교춤의 경험이 있다. 거기서 신사는 추잡을 느낀 것이다.

『반 나체가 되어 부둥켜 안고 돌아가는 오늘의 발레춤은 어떻게 보십니까?』

『번거벗고 무대에서 뛰어다니는 것 말이요?』

『그렇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절반 벌거숭이가 되어서 포옹 이상의 고혹적(蠱惑的)이요 선정적인 율동을 되풀이하지요.』

『음 ─ 』

신사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발레 무용을 이 신사는 한 두 번 보아왔다. 그러나 거기서 추잡하다는 생각을 별로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이 아니요?』

신사의 입에서 예술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을 지운으로서는 적지않게 다행으로 여기면서,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하셨읍니다. 우리들의 포옹도 하나의 예술이었으니까요.』

『야아, 선생님 더 멋진 말씀만 하시네요!』석란은 어린애처럼 좋아라고 손벽을 치며,

『포옹은 예술이다! 얼마나 좋은 말이예요!』

했다.

『여보, 그만하구 인제 올라가요.』

자기의 남편이 천지난만한 이 젊은 불량배들에게 붙잡혀서 하나의 놀림감이 되어가고 있는 양을 불현듯 느끼며 그렇게 말했으나 신사는 신사대로,

『당신은 좀 가만 있어요. 그래 당신네들의 행동이 예술이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연애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예술을 의미하고 있지요.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발레 무용의 기본적인 정신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만일 남녀의 애정의 교환이 선생의 지론대로 하나의 추잡을 의미한다면 오늘의 발레 무용에서도 선생은 추잡을 느꼈어야만 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신사는 무엇인가 항변을 계속하려 했으나 논리의 궁핍이 앞을 칵 막았다.

『선생은 참으로 위대한 맥시미스트(格言者[격언자])세요? 연애는 인생의 예술이다! …… 오오, 원더풀!』

석란은 정말로 지운이가 좋아졌다. 말이 별로 없는 그저 온순하고 의젓한 인품으로만 알았는데, 이처럼 인간의 기미(機微)를 샅샅이 통찰할 수 있는 예지(叡知)의 소유자 더구나 남녀의 애정을 예술에까지 끌어 올리고 있는 연애 찬미자인 사실이 석란을 더우기나 황홀케 하였다.

『선생의 도덕적 감정은 남녀간에 행하여지는 오늘의 악수를 하나의 예의로서 허용을 하셨고 발레 춤은 하나의 예술로서 감상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하였읍니다. 남녀 칠세에 부동석하던 옛날에는 남녀가 단둘이서 하등의 사무적인 용건 없이 이러한 으슥한 산골을 찾아 올라간다는 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명히 하나의 추잡을 연상시켰읍니다.…… 그러나 오늘의 선생은 추잡감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내 아내요. 야합인줄 알았소?』

대꾸에 궁해 있던 신사는 모욕이나 받은 것처럼 분연히 대답하였다.

『아, 그러십니까! 행복한 가정을 가지셔서 보는 눈에도 대단히 아름답읍니다.』

지운의 말이 다소 야유조로 들렸는지 신사는 대들 것처럼 억세게 물어 왔다.

『당신네들은 대체 무어요?』 『우리도 야합은 아닙니다. 이 학생은 나의 약혼자입니다.』

『음 ─』신사는 이제는 최후의 답변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멀지 않아 선생도 오늘의 사교춤을 예의로서 허용하게 될 것이고 종로 한 가운데 가 아닌, 조그만 오솔길을 가진 송림 속에서의 저희들의 행복을 조소의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게 되시지요. 자아, 악수를 합시다.』

『싫소!』

내밀어진 지운의 손을 무시하고 신사는 부인과함께 획 돌아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