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2장
自然敎室[자연교실]
편집1
편집강좌를 끝마친 학생들이 가벼운 흥분과 함께 교정으로 교문을 흩어져 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버스 정류장을 향하여 열을 지었고 그 중 얼마는 영화관에서 갓나온 직후처럼 넓은 교정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얘 저 솔개도 아마 연애를 하는 거지?』
잔디밭 위에 학생들이 대여섯 명 누워 있었다. 그중 하나가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응, 임학준 교수의 강의처럼 아주 점잖은 연애야.』
까만 리봉이 웃지도 않는 얼굴로 대답을 했다.단풍이 들기 시작한 학교 뒷산 위에 솔개 두 마리가 유유히 떠 있었다. 한 놈이 가는데로 다른 놈도 따랐다. 그놈이 돌면 또 따라 돌았다. 그러나 조금도 조급한 데가 없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비잉비잉 돌고만 있다.
『점잖아! 저게 암만해두 갓 쓰고 담뱃대 물던 양반들의 연애야.』
까만 리봉이 또 한 번 감탄을 했다.
『석란인……』
『응?……』
두 손목을 포개여 베고 반듯이 누워서 드높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이 석란(李石欄)은 까만 비로드 리봉의 보드라운 촉감을 손가락 두 개로 향락하면서 대답을 했다.
『저런 한가스런 연앤 석란이 구미엔 맞지 않을 거야.』
『흐응……맘대루 들 생각하렴.』
그러는데 둘 건너 저편 쪽에 누워 있던 학생 하나가 무엇이 우스운지, 혼자서 깔깔 웃고 있다가,
『춘삼월 눈 녹을 무렵, 고양이들이 연애를 하지 지붕마루에서, 담장 밑에서……뜯구 차구……석란의 구미엔 그런게 맞잖아.』
했다.
『하하하핫……하하하핫』
코라스단의 바라에티를 가지고 높고 낮은 웃음소리리가 일시에 터져나왔다. 그 맑고 명랑한 웃음 소리 ─ 그것은 젊은 생명력의 자연적 발효(醱酵)를 의미하는 청춘의 찬미가와도 같았다.
『마음대로들 생각하려므나!』
석란도 같이 따라 웃다가 다시금 새침해 지며,
『그렇지만 너희들, 현대의 연애에는 그러한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너도 연애 강의냐?』
『암, 그렇지! 알아 듣지 못하겠음 미스터 사아드나 미스터 마조호에게 물어 봄 되지.』
『어려워 지는구나, 점점 더……. 그게 누구냐? 미군 장교들이냐?』
『아이구, 맙소사! 대학 졸업반이 웃겠다, 웃겠어!』
석란은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며 임교수의 엄숙한 음성을 흉내내는 어조로 무대에 선 배우처럼 내려 엮었다.
『연애는 청춘의 심볼입니다. 학생 여러분, 연애를 합시다! 진실하게 아름답게 연애를 합시다! 그리하여 훌륭한 연애의 이력서를 쓰기로 합시다! 에헴 ─』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또 깔깔 웃어댔다. 웃어대면서,
『이석란 교수, 다음을……다음을 그냥 계속해요!』
『암, 계속해야지. 임교수의 강의를 보충하는 의미로서도 이석란 교수의 강의는 필요할 것이요. 에헴 ─』
그러면서 석란은 발딱 일어났다.
도심지대를 멀리 등진 이 M여대 ─ 높고 낮은 구릉이 평풍인 양 교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음악실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는 금잔디 위에서다.
2
편집손벽 소리와 함께 석란은 일어서서 임교수처럼 뒷짐을 지고 우뚝 버티고 서며,
『에헴 ─』
하고 목을 뺐다
『기침 소리가 너무 잦소. 빨리 강의를 계속하시요.』
『쉬이, 조용들 합시다. 학생 여러분! 강의 하시는 분에 대하여 적당한 예의를 갖추는 것은 학생들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헴 ─』
『아이구, 하품이 나네요. 우리들은 여학생이 아니랍니다.』
맞장구가 제법이다.
『그렇소. 여학생이 아닌 대학생 여러분!손자(孫子)병법에, 적을 이길려면 적을 알라는 말이 있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연애에 승리를 할려면 연애를 알아야만 합니다. 미스터 사아드나 마조호를 미군 장교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학생 여러분!이 두 사람의 미스터로 말하면 실로 물고 뜯기우는 고양이의 연애를 철저히 연구한 작가입니다. 물고뜯기우는 감각의 고통이 어찌 애정의 일종으로서 취급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교실이 너무도 엄숙하기에 여기서는 사양을 하겠읍니다만……』
『석란 선생, 사양 마셔도 괜찮아요. 이 교실은 천의무봉(天衣無縫), 인공적인 가식(假飾)의 담벼락은 두르지 않았어요. 푸른 하늘과 땅 검은 사이에 설치된 자연교실이니까요.』
『학생, 학생의 그 학구적인 태도는 대단히 좋습니다만 시간이 다소 바쁜 탓으로 질의 문답 시간은 후일 나의 사택에서 제공하기로 하겠읍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석란은 손을 들어 멀리 창공을 가리키며 한층 더 근엄한 어조로,
『학생들, 지나치게 조급한 학구적 태도를 잠시 버리고 시선을 들어 창공을 바라봅시다. 솔개 두 마리는 지금도 일정한 간격을 둔 채 비잉비잉 돌기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학생 여러분! 저 솔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까?』
『저 두 마리의 솔개는 지금 임학준 교수의 진실하고 아름다운 연애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학생 하나가 익살맞게 대답을 하였다.
『그렇소. 학생은 지극히 총명하오. 저 유유한 솔개의 인격을 가지고 조급한 고양이의 연애를 통솔하자는 것이 바로 우리가 존경하여 마지 않는 임학준 교수의 연애와 인생의 중심 명제(名題)입니다. 에헴 ─ 그러나』
그러는데 학생 하나가 갑자기 교문밖을 손으로 가리키며,
『야아, 그 차 멋지다! 어느 아가씨를 모시러 온 차야?』
하고 외쳤다. 그바람에 석란도 멈칫하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교문에서 백 미터 쯤 떨어진 지점에서 유행형 시보레 오 십 이 년도가 한 대 멎어있었다.
옅은 크리임색의 멋진 고급차였다.
학생들이 거의 흩어진 교문밖을 자주 치마의 학생이 고급차를 향하여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운전대의 문이 휙 열리며 소프트를 쓴, 이것 역시 멋진 신사 하나가 나타나면서 다가오는 자주 치마를 여왕처럼 모시어 운전석 옆자리에 태우고 자기도 따라 운전석에 올라 탔다.
이윽고 시보레 오 십 이 년도는 그림처럼 미끄러져 갔다.
『호화판이야!』
학생 하나가 선망의 뜻을 표했다.
『미군 장교가 안 나타난 것이 다행이지, 뭐야.』
다른 또 하나가 샘을 냈다.
『무슨 과 학생이지?』
석란은 물었다.
3
편집『글쎄, 무슨과 학생인지, 우린 어떻게 아니?』
『괜찮던데!』자기를 비방한 발언자의 한 사람이긴 했으나 석란에게도 그런 것이 별반 문제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약간 쑥이야.』
『그런 데두 있기는 하지만……』
그러다가 석란은 그 두틈한 귀여운 얼굴을 홱홱 두어 번 흔들며,
『안되겠는 걸! 나두 이제부턴 모시러 오래야겠어!』
『부럽니?』
『얄밉긴 하지만 약간 부럽지 뭐야.』
『너두 이제부터 모시러 오래겠다면서?』
『물론!』
『자가용 있니?』
『오우케이! 자가용 한 대 못 가지는 남자가 우리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이냐? ─ 봐라, 그림처럼 미끄러져가는 저 유선형 고급차를!』
『너무 뽐내지 좀 말아 얘. 그래 네 애인이 도대체 어떤 양반이니?』
『하이야 운전수 ─』
『으아, 하하핫……』
참으로 웃기를 좋아하는 계절의 인생들이다. 대굴대굴 굴면서 그들은 웃었다.
『학생들, 어서 웃으시요. 웃음은 청춘의 심볼입니다. 그대들의 입술에서 웃음이 끊기는 순간 그대들의 청춘은 이미 굿바이요, 아디유요, 아우프뷔다 제헴인 것이요.』
『아, 하하핫……』
『아, 하하핫……』
『어서어서 웃으시요. 웃음은 또한 일종의 소화제인 것입니다. 복부 근육의 동요로 말미암아 밥통의 활동을 자극하지요. 그리하여 그대들의 왕성한 식욕은 한층 더 왕성하여 누렁지, 엿가락, 고구마, 무쪽, 쌀튀김, 옥수수 튀김 등속을 나이어린 동생들과 다투어 가면서 먹어 대는 것입니다.』
『아, 하하핫……그만해라 애, 밸 끊어지겠다!』
그러나 석란은 웃지도 않는 얼굴로 창공을 쳐다보며,
『오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 입을 열어 참되게 대답하라! 그대의 마음과 연 어느 곳에 깃들여 있느뇨?……먼 듯, 가까운 듯 먼 듯……아, 얄밉소 이다. 그대여, 그대의 마음의 비밀이여!』
『멋지다, 석란! 정치외교보다 배우로 출세를 하는 것이 어때?』
『배우는 배가 고파요.』『운전수보다도?』
『운전순 월급 삼만환에다 공짜를 합치면……』
『조사도 착실힌 했다!』
『암, 해야지. 반년만 있음 졸업이 아냐?』
그러는데 안경을 쓴 아까 그 학생이 그들의 앞을 지나가다가 혼자 일어서서 떠들어 대는 석란을 한번 힐끗 바라보면서 교문을 향하여 또박 또박 걸어 나갔다.
『아, 언니!』
석란은 학생을 불렀다.
『정주 언니!』
그러나 정주라고 불리운 그 안경 쓴 학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까딱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석란은 마침내 잔디밭에서 나와 정주를 따라 뛰어갔다.
『정주 언니!』
석란은 깡충깡충 따라가서 정주가 들고있는 가방 한 쪽 귀를 살짝 붙들었다.
『왜 그러는 거야?』
채정주(蔡貞舟)의 표정 없는 얼굴이 우뚝 멎으며 돌아섰다. 안경 속에서 눈동자가 차겁게 빛나고 있었으나 그 차거운 밑바닥에는 또 한 줄기 다사로움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석란은 민감하게 그것을 느끼며,
『언니, 우리들은 이대로 영영 헤어져야 해요?』
석란은 그러면서 똑바로 정주를 바라보았다.
『누가 그런 말 했어?』
정주도 맞받아 쏘아보며 차디찬 대꾸를 했다.
『그래도 언니는……』
어리광을 부리듯이 석란은 샐쭉해지며 시선을 발뿌리로 떨어뜨렸다. 구두코로 석란은 조약돌 하나를 요리저리 굴리고 달래면서,
『보구두 못 본 척하구……불러도 대답도 않고……교실에선 퇴장 명령만 내리고……그럼 난 싫어! 이대로 영영 헤어진담 난 정말 슬퍼요!』
조약들을 달래고 있는 자주 칠피 구두 코 위에 눈물이 몇방울 톡톡톡 떨어져 내렸다.
『욕심쟁이! 석란은 욕심이 너무 많구!』
정주의 어조는 그대로 차겁다.
『…………』석란은 대답을 잃고 정주는 다시금 저 갈길을 또박또박 걸어갔다.
석란은 눈물 먹은 얼굴을 들고 교문밖으로 사라지는 채정주의 뒷모습을 머엉하니 바라보았다. 오늘 따라 정주의 두 어깨가 석란의 눈에는 한층 더 날카로워 보였다.
석란은 머리를 서너 번 홱홱 흔들며 중얼거렸다.
『메이화즈(하는 수 없지) ─』
그리고는 휙 돌아서서 다시금 잔디밭으로 걸어갔다.
『네 교제 언니 아냐? 의과래지?……』
학생 하나가 석란을 보고 말했다.
그러나 석란은 대답을 않고 잔디 위에 번뜻 누워 버렸다.
『트러블이야?』
『메이화즈!』
석란은 점점 기울어지는 햇발로 말미암아 어느덧 청자색(靑磁色)으로 변해 버린 높은 하늘을 덤덤히 쳐다보았다.
『퇴장 명령은 약간 심한 데! 누구니? 네 애정을 독차지한 새로운 언니는?……』
『메이화즈!』
지궂게 그 한 마디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옆의 학생 하나가 팔고비로 석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신호를 했다.
『임교수가 나온다 얘.』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든 임학준 교수가 현관을 나서서 층층대를 내려오고 있었다. 교정에는 아직도 이 구석 저 구석에 학생들이 한 무더기씩 뭉쳐 있었다.
『저만 함 스타일도 멋쟁이야.』
『석란이 너 약간 반한 게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
『그만 둬라 얘. 네 아버지 뻘이나 되는데도……?』
『사랑엔 국경도 없듯이 연령도 없는 거야.』
『너 취미도 그만 함 상당하다 얘.』
『우리 한 번 임교수를 놀려 먹을까?』
『어떻게 놀려 먹니?』
『나 하라는 대로만 함 돼!』
『그래, 그래!』
일동은 손벽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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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임학준 교수는 안경을 벗어 들고 손수건으로 문지르면서 층층대로 해서 교정으로 내려섰다.
『온다, 온다! 두 손을 베고 가즈런히 누어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석란은 일동을 지휘하였다.
『오우케이!』
하라는 대로 여섯 명의 학생이 뒤통수에서 깍지를 끼고 반듯이 누워 말똥말똥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희들 절대로 임교수를 바라봄 안된다.』
『예쓰!』
『암만 우스워도 웃어서는 안된다.』
『오올라이트!』
『내가 먼저 선창을 할테니, 너희들은 따라서 일체 복창만 함 되는거야.』
『아야!』
『얘, 그건 부산 내기다이!』
『나인 에스 이스트도 이치!(아냐 독일어다)!』
『부산내기, 서울내기, 다마네기다이!』
『아, 하하핫……』
『쉬이! 컴잉, 컴잉!(온다, 온다) ─』
자기 앞길에 그러한 복병들이 대기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임 학준 교수는 깨끗이 문지른 안경을 도로 쓰면서 근엄한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임교수가 무심코 머리를 드니, 일렬 횡대로 된 열 두 개의 구두창이 시야에 뛰어 들어왔다. 그 열 두 개의 구두창은 마치 검열관을 맞이하는 열병식의 군대들 모양, 다가오는 임교수를 향하여,
『경례!』
하는 호령과 함께 일제히 구두코를 숙여 절을 하였다. 임교수는 후다닥 놀랬으나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벙벙한 얼굴로 머리를 숙인 열 두 개의 구두창을 힐끔 바라보면서 걸어 가노라니까,
『바로!』
하는 호령이 또 내리면 구두창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곧 이어,
『하나, 둘, 셋 넷……하나 ─ 둘 ─ 셋 ─ 넷, 하나, 둘, 셋, 넷……』하는 신호와 함께 열 두 개의 구두창은 고개를 까닥 까닥 숙였다 들었다 했다. 말하자면 열병식의 행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교수는 그러한 장난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동안 하다가 이윽고,
『멎엇!』
하는 호령과 함께 구두창은 일제히 고개를 빳빳이 들어 버렸다.
그래도 임교수는 모르고, 남자 대학에서는 못 보던 장난이라고, 지극히 유쾌하게 생각하며 구두창의 대열 앞을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일동 봉창!』
『넷 ─』
하는 소리가 뒤이어 터져나왔다. 뒤이어,
『학생 여러분!』
『학생 여러분!』
『연애는 인생을 장난하는 목도시합이 아니고……』
『연애는 인생을 장난하는 목도시합이 아니고……』
『진실로 한 번 빗맞으면……』
『진실로 한 번 빗맞으면……』
『피를 보고 목숨을 건드리는 진검승부입니다!』
『피로 보고 목숨을 건드리는 진검승부입니다!』
그제서야 임교수도 우주의 철리(哲理)나 깨달은 듯이 걸음을 후딱 멈추며 희쭉 웃는다.
열 두 개의 구두창을 기점(起點)으로 하여 잔디밭 위에 길다랗게 뻗쳐있는 여섯 개의 젊은 육체의 수풀을 하나 하나씩 더듬어 올라가던 임교수의 시선은 마침내 선창자의 얼굴을 발견하고 또 한 번 싱긋이 웃었다.
『까만 리봉의 학생이 아닌가!』
6
편집임 학준 교수는 지극히 명랑한 심정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무슨 모욕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었지만 임교수의 년치(年齒)와 인생의 깊이는 그러한 사소한 감정을 뛰어 넘는데 있어서 대단히 수월하였다. 아니 그보다도 이러한 멋진 장난을 창작해 내는 까만 리봉의 천진난만한 예지(叡智)가 무척 귀엽기도 했다.
임교수는 지금도 S종합 대학의 철학과 주임 교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남자 대학생들의 그살풍경한 분위기에 시달리는 몸으로서는 한주일에 한두 번씩 나와 보는 이 청명한 교외의 가을 풍경과 함께 젊은 여성들이 발산하는 발랄하고도 꽃다운 향취는 심신이 다 같이 피로한 임교수의 황혼의 인생을 크리닝하는데 좋은 표백제(漂白劑)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임교수는 걸음을 멈추고 확실히 자기를 목표로 하고 진행되고 있는, 이 잔디 위의 푸른 인생들의 양심없는 명랑한 야유를 달갑게 받으려는 관용의 태세를 취하는 것이다.
짧은 스커어트 밑으로 쭈욱쭈욱 뻗은 열 두 개의 다리가 신은 듯 만 듯, 모두 하나처럼 잠자리의 날개 같은 나이롱 양말 속에서 보드럽고 미끄럽다.
가슴 위에 불룩 불룩, 열 두 개의 구릉을 형성하고 있는 유방의 나열 저편에는 시치미를 딱 뗀 여섯 개의 새침한 얼굴이 마네킨 인형모양 말똥말똥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학생 여러분!』
『학생 여러분!』
선창과 복창이 다시금 흘러나왔다.
『어떻게하면 진실하고 아름다운연애를 할 수 있느냐?』
『어떻게하면 진실하고 아름다운 연애를 할 수 있느냐?』
『오로지 그것은……』
『오로지 그것은……』
『여러분 학생들의 깨끗한 인격에 달렸읍니다.』
『여러분 학생들의 깨끗한 인격에 달렸읍니다.』
『저 유유히 날고 있는 솔개를 보라!』
『저 유유히 날고 있는 솔개를 보라!』
『그 솔개의 인격을 가지고……』
『그 솔개의 인격을 가지고……』
『고양이의 연애를 통솔합시다.』
『고양이의 연애를 통솔합시다.』
임교수는 자기가 하지 않은 구절이 튀어나오기에 벙글벙글 웃으면서도 한편 귀를 솔깃하게 기우렸다.
『칠십 삼 세의 문호 괴에테는……』
『칠십 삼 세의 문호 괴에테는……』
『십 칠 세의 소녀와 연애를 했읍니다.』
『십 칠 세의 소녀와 연애를 했읍니다.』
『오오, 이 얼마나……』『오오, 이 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연애이뇨!』
『진실하고 아름다운 연애이뇨!』
『으와, 하하하핫……』
『으와, 하하하핫……』
그 순간까지 꼼짝도 않고 정지 상태에 들어가 있던 스물 네 개의 팔 다리가 갑자기 요동을 하며, 제마끔 허공을 치고 대지를 찼다. 그리고는 깔깔깔깔 웃어대며 댕굴댕굴 딩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임교수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는 이는 없다. 누구 하나 일어나 앉는 이도 없다. 그거야말로 종횡무진으로 잔디밭 위를 디렵다 딩굴기만 했다. 임교수는 이윽고 발뿌리를 돌려 수풀을 왼 편에 바라보며 교문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나갔다. 임교수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소리를 잃은 만면파안(滿面破顔)의 웃음이었다.
그러나 교문을 채 나서기도 전에 임교수의 얼굴로부터 후딱 웃음은 사라졌다. 십 칠 세의 소녀와 연애를 했다는 칠십 삼 세의 괴에테를 임학준 교수는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차차 떨어져 가기는 하였으나 잔디밭 위의 웃음 소리는 임교수의 고막을 그냥 흔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