戀愛講座[연애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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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수 임학준(林學準)선생의 「연애강좌」(戀愛講座) 제 일회 강의가 오후 두 시부터 영문학부 교실에서 열렸을 때, 교실은 입추의 여유도 남기지 않고 꽉 차 있었다.

임학준 교수는 한 달 전, 이 Μ여자 대학교가 환도하면서부터 초빙해 온 강사로서 한 주일에 두 차례씩 철학 강좌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오늘부터 이회에 걸쳐 이처럼 연애에 대한 강좌를 열게된 것은 하나의 과외강의(課外講義)로서 학교 교무과에서 특히 학생들의 교양을 위하여 개강한 것이었다.

더구나 저급반에서 고급반까지 학년의 구별이 없는 이 강좌는 철학과나 문과 학생들 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과, 가사과, 법과, 교육과, 정치외교과 등, 뭇 색다른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교양 강좌이기 때문에 너무 학술적인 딱딱한 강의가 되기보다도 평이한 이야기로서 누구나 얼른 들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념해 달라는 것이 교무과의 특별한 부탁이었다.

과연 교무과의 예상대로 아니, 예상을 훨씬 넘어서 임학준 교수의 연애 강좌는 일대 성황을 이루어 각과 학생들은 자기네들의 수업 시간을 이스케이프하고 임교수의 강의를 들으려고 밀려들었다. 교실은 터져나갈 듯이 배가 불러, 좌우 옆과 맨 뒤에도 배꼭 찾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복도까지 긴 꼬리를 늘이고 있었다.

이렇듯 성황을 이루운 강좌를 일찌기 교무과에서는 본 적이 없다. 무엇 때문이냐? 성실한 인격자로서 학계의 존경을 받아 오는 임학준 교수의 덕망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좀더 절실한 문제 ─ 현재 그들이 당면해 있고 또한 가까운 장래에 있어서 부닥쳐 올 남녀간의 애정 문제를 취급한다는 이 연애 강좌가 마치 그 어떤 달콤한 러브시인을 스크리인이 예약하는 것처럼 감미로운 호기심의 대상이 그들에게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란 무엇이냐?! ─』

각자가 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진작 거기에 대한 설명이 요구될 때, 그리 쉽사리 답변할 수 없는 실로 불가사으의한 생명력의 약동과 신비로운 영육(靈肉)의 연소(燃燒)에 대한 해석과 구명 앞에 그들은 당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모두가 다 이십 대에 발을 갓들여 놓은 젊은 생명체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식육도 왕성하지만 그보다 못지 않게 왕성한 욕구 하나가 있다. 그것은 연애였다. 사랑이었다. 이성에게 부치는 애정의 프레젠트이며 또한 거기에 상응하는 애정의 반응이었다.

그들의 젊고 발랄한 생명체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하나처럼 이성의 애정을 꿈꾸고 희구하고 또한 섭취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애정의 섭취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영양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가볍게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애란 무엇인가? ─ 이성의 애정을 무자각하게 섭취하고, 또한 섭취하려는 태세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절실한 욕망을 성실한 철학 교수 임학준 선생의 강의에서 그들은 구명해 보려는 것이다.

이윽고 교무과장이 임교수를 인도해 가지고 교실로 들어왔다.

오십의 고개를 넘어 선 임학준 교수는 반백의 머리에다 키가 후리후리한 점잖은 신사였다. 채림새만 좀더 산뜻했으면 틀림없는 영국의 젠틀맨이다.

안경을 쓴 길음한 얼굴이 절반으나 세인 올백의 머리와 기품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동작이 무겁고 사색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깊은 주름살이 두 개 양미간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오늘부터 하루 걸러 한 번씩 이회에 걸쳐 임학준 교수의 연애 강좌를 열기로 했읍니다.』

교무과장인 사십 대의 박교수가 단상에 오르자 소개의 말을 시작하였다.

『팔·일오 해방과 더불어 우리 한국은 온갖 봉건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 민주 국가로서 새로운 발족을 하게 되었읍니다. 따라서 개인의 인권과 남녀 평등을 옹호하는 헌법의 제정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하나의 문화 민족으로서의 긍지가 아닐 수 없읍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유감되게 생각하는 바는 그러한 자유 민주주의를 참되게 받아 드릴만한 정신적 토대의 결핍, 다시 말하면 교양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자유주의는 방자주의(放恣主義)를 의미하게 되었고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는 서글픈 사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더우기 근자, 육〃이오 사변을 전후하여 식자들의 눈썹을 모이게 하는 젊은 남녀의 풍기문란은 하나의 중대한 사회 문제로서 다음 세대의 일군이 될 학생 여러분의 장래를 위해서 우려하여 마지않는 바입니다.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연애는 물론 자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연애의 자유로움과 방자함을 혼동함으로써 대해와같이 양양하고 주옥과 같이 귀중한 여러분의 인생을 스포일하는(좀먹는) 결과를 맺어서는 과연 될 것인가? 매일과 같이 섭취하는 우리의 음식물이 우리의 육체를 기르는데 있어서 어떠한 영양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목하 당면하고 있는 절실한 욕구의 하나인 연애 문제에 있어서도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영위하는 데 어떠한 영양가치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참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고, 하품이 나네요. 우리들은 여학생이 아니랍니다.』

어디선가 극히 명랑한 소리가 한 마디 툭 튀어나왔다.

『하하하하……』

학생들이 모두 뒤를 돌아 보면서 조용히 웃었다.

그것은 확실히 교실 맨 뒤 어느 한 구석에서였다. 자리가 모자라 좌석 맨 뒤에는 학생들이 겹겹이 쌓이듯이 모여서 있었다. 그 겹겹이 쌓인 얼굴 가운데 어느 하나가 여학생이 아닌 대학생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교무과장은 그 얼굴을 골라 낼 시간의 여유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분위기에 어울릴 미소 하나를 싱긋이 지어 보이며,

『앞 말이 다소 길어져서 미안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임교수의 강의를 시작하겠읍니다. 임학준 선생은 새삼스레 소개할 필요도 없을만큼 사계의 고명하신 분으로서 학덕이 겸비하신 인격자이시며……』

『인제 그만해 두세요. 애처가로서도 고명하신 선생님인 줄을 잘 알고 있지요.』

『하하하핫……』

『하하하핫……』

이번에는 학생들이 마음을 놓고 웃어댔다.

『하하하핫……』

『하하하핫……』

억제할 바가 없는 젊음의 희열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생리가 명령하는 대로 꽃다운 웃음을 폭팔시키고 있을 무렵, 창밖은 초가을이다. 넓은 잔디밭 위에는 오후의 태양이 눈부시게 범람하고 있었다.

교무과장도 한 번 씩하고 웃으며,

『조용들 합시다.』

했다. 그리고는 교실 맨 뒤곁을 다시금 바라보았다.목소리는 아까와 꼭같은 지점에서 들려왔었다. 그러나 겹겹이 쌓인채 캬득 캬득 웃어대고 있는 수많은 얼굴 중에서 어느 것이 농담의 범인 인지는 좀처럼 분간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생의 그러한 발언이 근엄한 임학준 교수의 감정을 혹시나 건드리지 않았을까 저허하는 마음으로 교무과장은 힐끗 뒤를 돌아다보면서 임 교수를 향하여 머리를 약간 숙이어 보였다.

그러나 임교수도 웃고 있었다. 교단 한 편 쪽 걸상에 걸터앉아서 팔장을 지긋이 낀 채, 어서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듯이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가벼운 답례로써 교무과장을 대했다. 그러한 무언극(無言劇)이 학생들의 젊은 생리를 또다시 자극하였다. 교실은 또 한 차례 웃음의 꽃바다로 변해버렸다.

『여러분은 참으로 잘 웃어서 좋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아도 여러분은 웃는다지요?』

그래서 또 한 바탕 웃음이 폭발하였다.

『아뭏든 좋은 현상입니다. 처음부터 이처럼 분위기가 좋은 것을 보니, 임 교수의 연애 강좌는 확실히 성공하리라고 믿습니다.』

『아예, 교무과장께서 숫제 강좌를 맡으시지요. 시간두 없는 데……』

빨리 내려 가라는 뜻이다. 거기서 웃음의 꽃은 또 피었다.

교무과장은 이 세 번째 발언에서 마침내 범인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 겹겹이 서 있는 맨뒤 줄에서 흰담벼락을 등지듯이 하고 푸르디 푸른 가을 하늘을 표정 없는 얼굴로 무심히 내다보고 섰는 학생 ─ 까만 비로드 리봉을 머리에다 맨 곤색 양복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이 무슨 과 몇학년인지 교무과장은 모른다. 그래서 싱긋이 웃는 얼굴로 그 학생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일제히 쏟아져 갔다.

그러나 까만 리봉의 그 학생은 여전히 푸른 가을하늘과 마주 서 있다가 이윽고 얼굴을 돌리면서 방그레 웃었다. 따라서 학생들도 유쾌히 웃었다.

『퇴장 명령이 세 번이나 내렸읍니다. 그러면 소개의 말은 이만하고 소생은 물러나야만 하겠읍니다.』

학생들의 손벽치는 소리가 유달리 컸다. 그것은 임교수의 등장보다도 교무과장의 퇴장을 환영하는 신호였다.

처음에는 임교수도 그것이 어느 학생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한 번들은 적이 있는 것같은 목소리기에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더듬고 있을 무렵에 소위 「애처가」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임교수는 교무과장보다 한걸음 앞서서 범인을 발견한 셈이다.

임교수는 그 학생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의, 어딘가 정열적인 성숙한 시선 앞에 오 십 삼세의 자기의 연령을 망각했던 한 순간이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며 교단앞으로 걸어나왔다.

임교수가 교탁 앞으로 나와 서자 떠들석하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오늘은 연애와 인생의 관계를 총괄적으로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읍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여러 학자들의 연애론을 소개하고 나의 연애관 비슷한 것을 이야기 해 봄으로서 이 강좌를 마치기로 하겠읍니다.』

임교수의 음성은 그의 동작과 같이 무겁고 그의 시선과 같이 부드러운 데가 있었다.

『한 남자가, 그리고 한 여자가 그의 일생에 있어서 어떠한 연애를 하였는가? 다시 말하면 어떤 종류의 연애의 이력서를 쓸 수가 있느냐? ─ 하는 문제는 그 사람의 지닌 인간적 가치를 저울질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귀중한 재료가 되는 동시에 또한 예민한 시금석(試金石)이 아니 될 수 없읍니다. 여러분은 어떻한 연애를 어떻게 하였느냐? ─ 거기 대한 여러분의 대답은 곧 여러분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초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무겁고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확고한 신념을 가진 늠렬(凜烈)한 어조였다.

그 순간까지도 일종의 명랑한 유흥 기분이 아직도 꼬리를 물고 있던 교실 안이었다. 그러던 것이 임교수의 기백있는 최초의 한 마디로서 미사를 드리는 성당처럼 교실안은 엄숙해졌다.

과연 교육이란 지식의 산매(散賣)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학생들은 본 것 같았다. 그것이 만일 임학준 교수가 아니고 천박한 다른 젊은 세대에 속하는 교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던들 도리어 그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학생들에게 주었을는지 모른다.

『사람은 자기 이상의 연애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은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도 꾀할 수 있읍니다만 연애만은 절대로 그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간적인 가치만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가치 만큼의 연애를 시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그런 정도의 연애관밖에 더 가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그러한 연애관은 여러분의 인생관내지 세계관과 중요한 관련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참되고 훌륭한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또한 아름답고 참되게 훌륭한 인생을 지낼 수 있을 것이요, 그와 반대로 야비하고 위선적이고 불미로운 연애를 하는 사람은 또한 그 정도의 인생밖에는 차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달콤한 러브시인의 스크리인 같은 것을 연상하고 왔던 학생들의 기대는 전연 틀어지고 말았다. 학생들은 그러나 그것이 조금도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연애는 청춘의 심볼입니다. 동시에 인생이 부닥치는 최초의 도장(道場) 입니다. 이 최초의 인생도장을 여러분은 더럽히지 맙시다. 허영심의 만족을 위한 연애, 또는 취미내지 장난을 위한 연애 혹은 시험적인 연애 같은 경박한 연애로서 인생의 스타아트를 그릇치지 맙시다. 연애는 인생을 장난하는 목도시합(木刀試合)이 아니고, 진실로 한 번 빗맞으면 피를 보고 목숨을 건드리는 진검승부(眞劍勝負)인 것입니다.』

교실은 한층 더 조용하고 엄숙해졌다. 그리스도의 교훈을 신도에게 가르치는 신부의 모습을 학생들은 임교수에게서 발견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엄숙한 분위기를 깨뜨려 버리는 명랑한 목소리가 다시금 한가스레 흘러나왔다.

『너무 지나치게 심각하신 것 같아요.』

까만 리봉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여러번째의 지궂은 야유는 임교수를 자극하기 전에 먼저 학생들의 엄숙한 감정을 건드려 버리고 말았다.

연애의 달콤한 일면만을 소설적으로 확대하여 환상하고 실천해 오던 학생들은 연애가 지닌 또 다른 한면의 엄숙성을 민감하게 깨닫고 가벼운 몸서리까지를 느끼고있던 순간인만큼 까만 리봉의 잡음이 적지않게 귀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아까처럼 웃는 학생이 몇 있었으나,

『좀 잠자코 있어요!』

하는 소리가 하나 튀어나오자 웃음 소리는 그만 힘 없이 소리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교실 중간쯤에 자리잡은 안경을 쓴 학생이었다. 그바람에 다른 대다수의 학생들도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으며 뒤를 힐끔힐끔 돌아다보았다. 그런데 지극히 조용한 발언 하나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뚫고 다시금 흘러나왔다.

『잡음이 없도록 교무과장께서 실내를 좀 엄숙하게 통솔해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그것은 확실히 대다수 학생의 감정을 대표하는 추상 같은 한 마디이기는 하였으나 어조에 모가없고 어감에 가시가 서지 않는 일견 온건한 발언이었다.

발언자는 앞에서 세째 줄, 복도 쪽으로 맨끄트막 걸상에 앉아 있는 비교적 나이를 먹은 학생이었다. 자주 벨베트 치마에 흰 저고리를 그 학생은 입고 있었다.

부드럽고 조용한 모습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예뻐보이기는 하지만 얼굴에 생기가 없다. 통 보지 못하던 학생이다.

그때까지도 들창밖 가을 하늘과 마주 서 있던 까만 리봉이 홱 시선을 돌리며 자주 벨베트 치마를 한 번 쏘아보고 나서 다시금 창밖을 무심히 내려다 보았다. 그런 제스츄어가 안경 쓴 학생의 비위를 다시금 건드리었다.

『교무과장은 저 학생을 퇴장시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용들 합시다!』

그제서야 교무과장은 걸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강의하시는 분에 대하여 적당한 예의를 가춘다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까만 리봉은 고개를 조금 숙여 보이며,

『미안합니다. ─ 다만 저는 임선생의 강의를 듣고 느낀 바가 있어서 그랬을 뿐이예요. 하나밖에 없는 목숨으로 두 번만 연애를 하다가는 목숨 한 개가 모자랄까 보아서 그랬을뿐이예요.』

『하하하핫……』

『하하하핫……』

이번에는 누구 하나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임교수와 교무과장을 비롯하여 퇴장을 시키라던 안경잡이 까지도 씨무륵하고 웃었다.

그러나 끝끝내 웃지 않는 학생이 한 사람 있었다.

그것은 흰 저고리에 자주 치마를 입은 학생이었다.

『알았읍니다. 그러나 감상이나 질문 같은 것은 나중으로 하고 강의를 계속하겠읍니다.』

교무과장은 걸상에 걸터앉았고 임교수는 다시금 강의를 계속하였다.

한 시간 동안이나 강의를 계속하면서 임교수는 까만 리봉의 한 마디가 머리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임교수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서 그 시간의 강좌를 끝마치었다.

『자연과학자가 연애를 생리학적인 자연현상으로 보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경지에 안주(安住)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하등동물까지도 능히 할 수 있는 극히 용이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연애가 되고 또한 인생의 일부분으로서의 엄숙성을 지닐려면 그러한 자연 발생적인 생리적 욕구를 인간만이 가진 지성으로서 통솔하는 노력이 요청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쇼오펜하우에르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연애론, 엘렌 케이 여사의 인격주의적인 연애론 등의 출현을 보게 된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연애는 청춘의 심볼입니다. 여러분 학생들, 연애를 합시다! 진실하게 아름답게 연애를 합시다! 그리하여 훌륭한 연애의 이력서를 쓰기로 합시다! 』

우뢰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실로 오랫동안 그 박수 소리는 교실을 뒤흔들고 있었다.

『연애를 합시다! 진실하게 아름답게 연애를 합시다! 그리하여 훌륭한 연애의 이력서를 쓰기로 합시다!』

임교수의 기백있는 이 마지막 한 마디는 학생의 순결 무구(無垢)한 영혼을 뒤흔드는데 충분한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이십 대의 청년이나 삼사십 대의 장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잠고대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머리에는 백발을 노경에 발을 들여 놓은 오 십 대의 주인공이며 학덕이 겸비한 근엄한 철학자의 입으로부터 힘차게 흘러나왔다는 사실은 학생들로 하여금 연애에 대한 인식을 새롭히게 하는데 엄숙한 양식(良識)이 되고 있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연애라는 관념에 대하여 두 가지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하나는 연분홍 장미꽃이 있고 칠색의 찬란한 무지개가 있는 에덴 동산에서의 플라토닠한 아름다운 소꿉장난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좀 더 피부적인 감미로운 향기가 있고 포옹이 있고 접순(接唇)이 있는 관능의 세계였다.

그러나 지금 우뢰와도 같은 박수 소리로서 임교수의 퇴장을 장식하는 학생들의 영혼과 육체는 그러한 환상을 어느덧 지양(止揚)해 버리고 진실하고아름답고 엄숙해야만할 연애의 당위성(當爲性) 앞에서 완전히 승화(昇華)되고 있었다.

학생 하나가 울고 있었다. 그것은 아까 실내가 엄숙하기를 교무과장에게 조용한 어조로 제안한 흰 저고리에 자주 치마를 입은 학생이었다.

다른 학생들과 같이 그 학생도 처음에는 손벽을 서너 번 치고 있었다. 그러나 손벽을 치던 손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합장을 하며 무릎 위에서 가만히 멎어 버렸다. 눈물을 담뿍 먹음고 있는 긴 눈썹을 들어 퇴장하려는 임 교수를 그 학생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았다가 파란 손수건으로 얼른 눈물을 찍어 내며,

『저 선생님 ─』

하고 불렀다. 임교수는 멈칫하고 돌아섰다.

『선생님. 시간이 바쁘시겠지만……한 가지 여쭈워 볼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

『아, 무엇입니까?』

임교수는 다시금 교탁 앞으로 다가섰다.

학생은 다소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용기를 얻은 듯이 정확한 발음으로 물었다.

『저 선생님 지금, 진실하고 아름답게 연애를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떻게 하는것이 진실하고 어떻게 하는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추상적인 말씀이 되어서 잘 알아 들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저희들이 좀더 쉽사리 알아 듣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조는 지극히 부드럽고 온건하다. 그러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중심점 말의 포인트를 붙잡는데 있어서 이 학생은 확실히 성숙한 데가 있었다.

임교수는 질문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학생은 지금 리이베 슈멜즈(戀愛苦[연애고])에 신음하고 있구나!』

하였다.

『자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진실하고 아름다운 연애 ─』

답변의 곤궁을 느끼면서 임교수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참으로 좋은 질문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구체적인 어떤 연애를 비판할 경우에 임해서는 모르지만 이 자리에서 뭐라고 답변하기는 대단히 힘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결국 여러분 학생이 가진 깨끗한 인격만이 그것을 잘 실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임교수의 답변에 다소 불만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이었으나 그러나 자주 치마의 그 학생은 가만히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 순간, 어두운 오뇌의 빛이 한 줄기 푸뜩 학생의 이맛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임교수는 놓지지 않고 보았다.

오늘 임교수는 세 사람의 발언자와 직접 대면을 한 셈이다.

까만 리봉의 학생과 안경을 쓴 학생과 그리고 이 자주 치마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 자주 치마의 학생이 제일 어른다운 데가 있어 보였다. 그만한 나이를 먹은 것 같기도 하였다. 적어도 대학 적령기를 한두 살 넘어 선 학생임에 틀림 없었다 무척 부드럽고 고운 얼굴이었으나 어딘가 심신이다 피로한 것 같은 생기 없는 안색을 그 학생은 갖고 있었다.

『요다음에는 질의 문답 시간을 좀더 여유있게 주셨으면 좋겠읍니다.』

그것은 안경을 쓴 아까 그 학생이었다. 어조도 상당히 딱딱하고 엄격하지만 어딘가 석고상처럼 단련한 차거운 모습의 학생이었다.

임교수는 그제서야 고급반 철학 강의 시간에서 그 학생을 한두 번 본 기억을 새롭히며,

『그렇게 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

그리고는 교무과장의 간단한 페강의 말과 함께 임교수는 다시금 떠들썩해진 교실을 나섰다.

교무실로 걸어가면서 임교수는 오늘의 발언자인 세 사람의 학생이 모두 다 하나처럼 연애를 한낱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연애 문제에 직접 당면해 있다는 인상을 불현듯 느꼈다.

자주 치마 학생의 어두운 우수의 모습, 안경쓴 학생의 차거운 오뇌의 얼굴, 연애를 종달새처럼 향락하는 것 같은 까만 리봉의 명랑한 표정 ─

『그러나 잘못하면 저런 학생이 위험한걸!』

임교수의 마음에 중얼거림이 무심중 소리가 되어 입술을 흘러나왔다.

『위험하다고……어느 학생 말입니까?』

나란히 서서 걸어가던 교무과장이 얼굴을 돌리면서,

『까만 리봉 말입니까?』

『아니요, 그 학생은 연애를 재치있게 해 치우겠지요.』

『그럼 안경을 쓴?』

『그 학생도 문제는 없겠지요. 그 학생의 어딘가 무척 차거워 보이는 모습이 가면이 아니라면 필시 자존심과 지성의 표시일 텐데, 자존심은 연애의적이니까.』

『그러니까 연애의 괴로움 속에 오랫동안 파묻혀 있지 않고……』

『그렇지요. 자존심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연애를 포기할 수 있으니까, 결국 위험성은 비교적 적을 테지요.』

『그럼 자주 치마의 학생이……?』

『네, 그 학생은 다소 위험성이 있어요. 진실하게 연애를 실천하려는 강렬한 의욕이 분명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진실하고 아름다운 연애와 위험성 사이에 무슨 관련성이 있읍니까?』

상과 교수인 교무과장은 다소 얼떨떨했다. 임교수는 얼마 동안 대답을 않고 있다가,

『있지요. 연애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재치도 없고 또 자존심을 내세우지도 않는 학생 ─ 대단히 위험하지요. 요즈음처럼 눈앞(眼前[안전]) 제일주의의 험악한 세상에서는 있기 힘든 일이지만 또한 그만큼 위험성은 더 많지요. 잘하면 사랑의 순교자가 되지만 열이면 아홉까지 일생을 망칠 테니까요. 그런 학생에게는 내 강의가 다소 지나친 영향을 줄는지 모르지만.』

『맞은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젊은 학생들 앞에 나서서 뭐라고 떠들기가 점점 더 무서워집니다.』

그러면서 임교수는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을 한층 더 절실히 느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