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44장
44. 은철이의 복수
“빨리 못 내놓겠니?”
은철이가 소년에게로 바싹 다가섰다.
“이 자식이 누구보고 돈지갑을 내놓으라는 거야? 도둑질은 네가 잘 한다면서......”
소년의 말투가 험악하게 나왔다.
“뭐야?”
은철이의 손이 번쩍 들렸다. 그러나 번쩍 들린 은철이의 손은 소년의 따귀를 갈기지 못한 채, 옆에 섰던 봉팔이에게 손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놔라, 이 손을!”
은철이가 소리치자, 은철의 손목을 꽉 잡은 채 봉팔이는 눈을 부릅떴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랬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먼저 들어보자.”
“흥, 그러고 보니 너희 둘이 한패로구나!”
“누가 한패야? 나는 얘를 모른다.”
“음, 그만하면 알겠다.”
“이 자식이! 도둑질은 네가 잘하면서 누굴 보고......”
그 말과 동시에 봉팔이의 손길이 “딱―” 하고 은철이의 뺨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윽고 봉팔이와 은철이의 싸움이 시작됐고, 옆에 섰던 소매치기 소년과 민구도 서로 멱살을 잡았다. 곧 두 쌍의 소년은 서로 부여안고 땅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어머나, 이를 어째?”
영란은 어쩌면 좋을지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자식이!”
“이 자식이?”
차고 받고 치는 소년들의 싸움. 영란은 그 무서운 광경에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앗!”
은철이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봉팔이의 귀에서도 피가 흘렀다. 힘은 봉팔이가 단연 세었다.
그러나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은철이의 기세에 봉팔이는 약간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복수다! 여기서 내가 다시 봉팔이에게 굴복한다면, 고양이 앞의 쥐 모양으로 나는 영원히 봉팔이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할 것이다!’
살려고 할 때는 죽기 쉽지만, 죽음을 생각할 때는 도리어 살게 되는 법이다.
‘복수다! 그렇다. 이것은 비겁한 자식 봉팔이에 대한 복수인 동시에, 거만한 계집애 영란에 대한 복수다! 내가 이 마당에 봉팔이에게 굴복을 한다면 영란의 그 불쾌한 거만은 영원히 내 앞에 계속될 것이다. 영란의 그 거만한 마음을 뿌리째, 송두리째 뽑아 버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비겁한 봉팔이를 혼내 주는 것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오늘의 이 싸움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죽어도 좋다! 죽어도......’
그것은 아까 은철이가 일터를 뛰쳐나와, 민구의 뒤를 따라가다가 우뚝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한 무서운 결심이었다.
한편, 영란은 도저히 그 무서운 광경을 서서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영란은 그 어떤 극심한 감정에 부르르 몸서리를 치다가 자기도 모르게 홱 달려들어, 은철이와 부둥켜안고 뒹구는 봉팔이의 머리를 구둣발로 한 번 힘껏 내리밟았다.
“영란아, 다친다! 저리 비켜라!”
은철은 영란을 향해 고함을 쳤다. 은철이의 그 한마디는 오만한 소녀 이영란으로 하여금 조금도 거짓 없는 후회의 눈물을 짓게 하는 진실한 말이었다.
마침내 성실한 소년 서은철은 폭풍과도 같은 정열과 강철같이 굳센 의지로 깨알곰보 봉팔이의 힘을 꺾어 버리는 데 성공했다.
은철은 봉팔이의 배 위에 말 타듯이 올라타는 몸이 되었다. 은철은 옆에 널브러져 있던 큰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손을 번쩍 쳐들면서 부르짖었다.
“자, 깨알곰보! 항복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 돌멩이가 네 머리를 부숴 버릴 것이다!”
“아, 잠깐만, 잠깐만...... 은철아, 잠깐만 기다려!”
깨알곰보 봉팔이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두려움에 찬 눈을 크게 뜨면서 애원했다.
“항복이냐, 아니냐?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죽느냐, 사느냐? 둘 중에 하나를 골라, 어서!”
“은철아! 잘, 잘,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똑똑히 말을 해! 항복이야?”
“그, 그래, 항복이다!”
그러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이윽고 정복 차림의 경찰 두 사람이 뛰어왔다.
“왜들 그래? 다들 일어나!”
경찰 한 사람이 꽥 소리를 쳤다.
그 때, 민구는 소매치기 소년을 완전히 때려눕히고 있었다.
“빨리 못 일어날 테야?”
다른 경찰이 또 벽력같이 소리 질렀다. 네 명의 소년은 하는 수 없이 부스스 땅에서 일어났다.
“왜들 그래?”
“얘가 제 돈지갑을 훔쳤어요.”
영란이가 몸을 떨면서 설명을 했다.
“누가? 이 자식이?”
경찰은 재빨리 소년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네, 그래서 민구 오빠하고, 은철 오빠가 달려와서......”
“아니에요. 전 훔치지 않았어요.”
소년은 발뺌을 했다.
“네 이름이 뭐나?”
“김달중이에요.”
“너는 누구냐?”
“저는 주봉팔이에요.”
경찰은 달중이의 몸을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영란의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달중은 민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잘못 보고, 제가 지갑을 훔쳤다고 해서 싸움을 한 거예요.”
그러자 경찰은 민구를 보며 물었다.
“너 정말 얘가 훔치는 걸 봤냐?”
“분명히 봤어요.”
그 때 다른 경찰이 봉팔이의 몸을 뒤지다가 조그만 지갑을 하나 끄집어냈다.
“이건 누구 거야?”
“아, 제 것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제 지갑이 이 사람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까요?”
영란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달중이와 한패인 봉팔이가 아까 팔을 벌리고 길에 서서 달중이를 붙잡는 순간, 달중이가 지갑을 봉팔이의 주머니에다 살짝 넣어 둔 사실을 영란도 몰랐고 민구와 은철이도 모르고 있었다.
경찰은 영란을 향해 물었다.
“이 지갑에 무엇이 들어 있었지?”
“돈 530원과 줄이 끊어진 손목시계 하나가 들어 있었어요.”
경찰은 지갑을 열어 보았다. 지갑 속에는 영란의 말대로 돈 530원과 시계가 들어 있었다. 경찰은 지갑을 영란에게 돌려주고 봉팔이와 달중이를 앞세워 끌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