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24장

24. 학교에 못 가도 사람은 산다

“은주야!”

“오빠!”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오빠! 오빠!”

병실로 들어가자마자 은철이는 와락 달려들어 은주를 부둥켜안았다.

“은주야! 네가 죽으면 이 오빠와 어머니는 어떻게 하라고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해? 은주야, 죽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너 하나 때문에 어머니도 살아 계시고 이 오빠도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다니, 은주야! 은주야!”

은철이는 은주를 무섭게 잡아 흔들며 말했다.

“어떤 곤란이 와도, 어떤 곤경에 부닥쳐도 용감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살아 나가자고, 눈물 흘리면서 굳게 약속한 것을 너는 벌써 잊었단 말이나? 은주야, 대답을 해 봐!”

“오빠! 오빠와의 약속을 잊지는 않았지만......”

은주는 은철의 목을 두 팔로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잊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오빠는 올바르게 살아 나가질 못하고...... 오빠와 내가 굳게 약속한 대로 씩씩하고 용감하게, 올바르게 살아 나가지를 못하고...... 오빠는 약속을 배반하고...... 남의 가방에서 돈을......”

그러다가 은주는 마침내 소리치며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오빠―”

“은주야!”

은철이도 은주의 볼에다 자기의 볼을 비비며 눈물을 홀렸다.

“모두가 나 때문이야. 학교를 못 다녀도 살 수 있는데, 오빠가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서까지 나를 학교에 보내려 한다면...... 나 하나만 죽어 버리면, 오빠는 나쁜 짓을 안 하고도 살아갈 수 있잖아?”

“은주야, 용서해라! 이 못난 오빠를 용서해라!”

옆에 있던 이창훈 씨와 부인도 울고, 장난꾸러기 민구도 팔소매로 눈시울을 문지른다.

“그래, 은주야. 네 말이 맞아. 학교에 못 가도 사람은 살 수 있다. 학교가 뭐야? 학교에 다니는 사람만 사람이냐? 학교에는 못 가도 올바르게 살아 나가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야. 은주야, 이 어리석은 오빠가 오늘에야 비로소 눈을 떴어. 죽음을 무릅쓴 은주의 아픈 마음을 이제야 알겠어. 너로 인해 이 어리석은 오빠는 비로소 세상을 똑똑히 보고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거다. 이제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문제는 학교가 아니고 올바른 마음씨야. 그래, 은주야. 우리 학교는 못 가도 올바르게 살아 나가자. 씩씩하게 살아 나가자. 네가 신문을 팔고 내가 구두를 닦으면 우리 세 식구, 하루에 밥 세끼는 문제없어. 출세가 뭐야? 명예가 뭐야? 출세한 놈들의 꼴을 나는 똑똑히 보았어. 명예 있는 놈들의 하는 짓을 나는 분명히 보았어. 은주 너는 음악가가 되기 전에, 나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먼저 진실한 사람이 돼야만 한다.”

은철의 흥분한 얼굴을 덤덤히 바라보다가, 은주는 눈물 젖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나의 오빠! 나는 오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어. 나는 음악가가 안 돼도 좋아. 죽는 날까지 신문을 팔아도 좋아. 어머니하고 오빠하고 돈암동 판잣집에서 죽을 때까지 같이 살면 제일 좋아.”

“은주야!”

“그런데, 오빠!”

은주는 그 때 옆에서 눈물짓고 있는 이창훈 씨 부인을 힐끔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아주머니가 자꾸 나보고, 내가 아주머니 딸이라고 그러셔.”

그제야 비로소 은철이는 머리를 돌려 자기 등 뒤에 서 있는 부인을 돌아보았다.

“아―”

은철이는 가느다랗게 외쳤다. 그것은 틀림없는 이창훈 씨 부인이었다. 또한 아까 혜화동 집에서 본, 은주와 똑같이 생긴 그 괘씸한 소녀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 순간, 헤아릴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다시 은철을 사로잡았다.

‘쌍둥이...... 은주와 그 거만한 소녀는 분명히 쌍둥이구나!’

지금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옆에 서 있는 이 부인이 은주를 낳은 친어머니라면, 돈암동 판잣집 컴컴한 방 안에 혼자 누워 계시는 불쌍하신 자기 어머니는 양어머니라는 말인가.

‘아아, 은주는...... 그럼 내 친동생이 아니었던가?’

은철이는 어젯밤 은주가 택시 안에서 자기와 똑같이 생긴 소녀를 보았다는 말을 했을 때, 속으로는 무척 놀라면서 겉으로는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쓸쓸히 벽을 향해 돌아누우시던 어머니의 미심쩍은 태도가 불현듯 생각났다.

‘그렇다! 틀림없이 은주는 얻어다 기른 아이로구나!’

은철이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대체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온 세상과도 바꾸지 못할 귀여운 동생 은주가, 자기와는 피가 다른 사람의 딸이라니......

‘아냐, 절대 아냐! 은주는 내 친동생이야! 아니, 설사 내 친혈육이 아니라 해도 은주만은 못 데려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은주만은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한다!’

은철이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마치 부인이 당장이라도 은주를 데려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험한 눈초리로 부인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은철이는 아까 혜화동 이창훈 씨의 저택 현관 앞에서 본 영란의 그 거만한 모습을 부인 옆에 그려 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안 된다. 안 돼. 절대로 은주를 못 빼앗아 간다. 그 돼먹지 못하고 건방진 그런 계집애가 사는 집에 은주를 절대로 못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