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01장
1. 신문팔이 아이들
온 종일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 있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성에 안 찼는지 끝내는 세찬 소나기가 되어 좍좍 쏟아져 내렸다. 슬슬 저녁이 가까워 오는 무렵, 사람의 물결로 넘쳐나던 종로 거리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아저씨, 신문 한 장만 팔아주세요.”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길 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졸라대던 소년과 소녀들도 어쩔 수 없이 눈앞에 보이는 서점의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다.
“에이, 재수 없어. 갑자기 비는 왜 쏟아지는 거야?”
갑작스런 소나기에 짜증이 난 민구는 옆구리에 끼었던 신문을 세어 보면서, 쏟아지는 비가 원망스럽다는 듯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여섯 장이나 남았는데, 이걸 언제 다 팔지?”
“난 딱 세 장 남았는데......”
명혜가 민구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넌, 너무 깍쟁이라서 많이 판 거야.”
민구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내가 왜 깍쟁이야. 아까 그 할아버지가 한꺼번에 두 장을 팔아 주셔서 그런 거지.”
“시끄러워. 그 할아버지가 내 걸 사려는데, 네가 옆에 달려들어서 팔았잖아. 계집애만 아니었으면 벌써 한대 날아갔다, 날아가......”
그 말에 명혜는 입만 삐죽일 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처마 끝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너더댓 명의 소년 소녀가 무심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원망하면서 나란히 서 있었다.
“은주야, 넌 몇 장 남았니?”
민구는 서점 옆 약국의 처마 밑에 혼자 우두커니 서서 비를 피하고 있는 소녀를 돌아다보면서 물었다.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얼굴의 소녀였다.
그러나 소녀는 세찬 비를 퍼부어 대는 검은 하늘을 멍한 얼굴로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민구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전히 시름에 잠긴 얼굴이다.
“야, 은주 너 귀머거리냐?”
그러잖아도 기분이 엉망이던 민구는 은주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은주는 그제야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놀란 얼굴로 민구를 쳐다보았다.
“응? 뭐라고 그랬어, 민구 오빠?”
“뭐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우락부락한 민구의 얼굴이 더 사납게 구겨지며 붉으락푸르락 거린다.
민구의 나이는 열일곱으로, 이 종로 4가 바닥에서는 그래도 대장 격이다.
은주는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성난 민구의 성격으로 보아 괜히 섣불리 대답했다가는 큰코다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쭈, 이젠 벙어리가 되었냐?”
민구가 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냐, 아까는 내가 듣지 못해서 대답을 못했어. 미안해.”
은주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 곁눈으로 민구의 표정을 살피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흥, 누가 모를 줄 알고? 듣고도 일부러 대답을 안 한 거 아냐? 너 그러다간 여기서 신문 못 팔게 될 줄 알아.”
잔뜩 약이 오른 민구가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평소에도 불량기 가득한 민구의 행동은 은주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함께 신문을 파는 다른 아이들도 모두 무서워하며 쩔쩔맸다. 민구는 제 맘에 들지 않는 아이가 있으면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툭하면 시비를 걸고 때리기 일쑤였다. 자신은 빈둥빈둥 놀면서 아이들에게 신문을 나누어 주고 억지로 팔아 오게 했고, 만약 말을 안 듣거나 싫다는 아이에게는 무조건 주먹부터 휘둘렀다.
그래서 은주는 민구가 제풀에 꺾이기를 바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머리를 숙였다.
“야, 비가 그쳤다!”
그 때 명혜가 이렇게 외치며 거리로 뛰어나갔다.
“와! 정말 신기하다!”
다른 아이들도 거리로 나와서 손바닥을 내밀어 빗방울을 받아 보았다. 정말 신통하게도 비는 뚝 그쳐 있었다.
하늘은 언제 비를 뿌렸냐는 듯 맑은 얼굴을 되찾았고, 구름 속에 가려졌던 해가 다시 얼굴을 내밀며 늦은 오후의 거리를 쨍쨍 비추기 시작했다.
“야, 저기 무지개다! 무지개가 떴다!”
명혜가 동쪽 하늘을 가리키며 손뼉을 쳤다.
“야, 참 예쁘다!”
“어쩜, 저렇게 고울까?”
소년 소녀들은 우르르 모여 동대문 지붕 끝 쪽 하늘에 동그랗게 걸려 있는 무지개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가 그치자마자 갈 길을 재촉하던 사람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야, 저기 또 하나 떴다!”
이번엔 민구가 좀 더 먼 하늘가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디, 어디?”
아이들은 다시 머리를 돌려 창경궁 쪽을 바라보았다.
“야, 쌍무지개다!”
“쌍무지개가 떴다!”
은주도 하늘을 우러러 쌍무지개를 보며 신기한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은주가 쌍무지개를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야, 정말 쌍둥이 무지개다!”
“와, 정말 예쁘다!”
소년 소녀들은 예쁜 쌍무지개를 쳐다보느라 신문 파는 것도 잊어버린 채 좋아라 손뼉을 쳐댔다.
“빨간색 옆엔 뭐야?”
그때 명혜가 노래를 부르듯이 소리를 높여 다른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합창이라도 하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빨강 옆엔 주홍이지.”
“주홍 옆엔 뭐지?”
“주홍 옆엔 노랑이지.”
“노랑 옆엔 뭐지?”
“노랑 옆엔 초록이지.”
“초록 옆엔 뭐지?”
“초록 옆엔 파랑이지.”
“파랑 옆엔 뭐지?”
“파랑 옆엔 남색이지.”
“남색 옆엔 뭐지?”
“남색 옆엔 보라지.”
아이들은 일곱 가지 빛깔이 찬란하게 수놓인 쌍무지개를 찬양이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여 조잘대며, 쌍무지개 뜬 저녁 하늘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냥 바라보았다.
“쌍무지개가 뜨면 좋은 일이 생긴다던데......”
그러면서 은주는 어두컴컴한 골방에 앓아누워 있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좀 어떠실까? 제발 엄마의 병이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쌍무지개야, 제발 우리 엄마 병 좀 낫게 해줘. 응? 쌍무지개야.”
은주가 남은 신문을 가슴에 안고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고 있을 때였다.
“따악!”
은주와 명혜의 등 뒤에 서 있던 민구가 잠깐 동안 무슨 재미있는 생각을 했는지 얼굴 가득 심술궂은 미소를 띠더니, 돌연 손을 뻗어 두 소녀의 머리를 힘껏 박았다.
“아얏!”
“아얏!”
은주와 명혜는 까무러칠 정도의 아픔에 소리를 질렀다. 눈에서 불똥이 튀고, 눈물이 쏘옥 빠질 것처럼 매서운 아픔이었다.
“하하하핫!”
민구가 고소하다는 듯 신이 나서 웃어 제쳤다.
명혜는 아프기도 했지만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손에 들고 있던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며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엉엉 울었다.
은주도 울상을 지으며 민구의 얼굴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팔라는 신문은 안 팔고 하늘만 쳐다보는 거야? 무지개만 보고 있으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냐, 밥이 생기니? 서서 남은 신문이나 팔아. 하하하핫!”
민구는 깨가 쏟아지게 재미있다는 듯 배를 잡고 웃어 댔다. 눈물까지 뺄 정도로 한동안 웃음을 참지 못하던 민구는 저 앞에서 걸어오는 중년 신사를 보자 잽싸게 따라 붙어 쫓아가며 말했다.
“아, 아저씨, 신문 한 장 팔아 주세요. 네? 신문 한 장만 팔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