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아동용/권2/3. 세조

세조 즉위의 사정 편집

세종에 이어 그의 아들인 문종(文宗) 【제5대】 이 즉위했다. 재위한 지 겨우 2년이 지나 세상을 떠났다. 문종이 세상을 떠날 때 세자는 나이가 어렸으므로,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에게 명을 남겨 세자를 보좌하도록 했다. 세자가 왕위에 즉위했다. 이가 바로 단종(端宗) 【제6대】 이다. 왕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은 한명회(韓明澮) 등과 도모하여, 황보인과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安平大君)을 내세워 왕위를 노리고 있다고 모함하여 두 사람과 그 일파를 살해했다. 이 때문에 왕은 수양대군에게 국정을 위임하고 안평대군에게 사약을 내렸다. 이리하여 왕은 재위한 지 3년 만에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물려주었다. 그가 바로 세조(世祖) 【제7대】 이다.

육신 편집

세조 원년에 성삼문(成三問) 등 여섯 사람이 비밀리에 상왕(上王)의 복위를 꾀했는데, 그 계획이 탄로 나 여기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사람이 매우 많았다. 사람들은 성삼문 등을 육신(六臣)이라고 불렀다. 상왕은 노산군(魯山君)이라고 불렸으며, 영월(寧越) 【강원도】 로 거처가 옮겨진 다음에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세조의 치적 편집

세조가 즉위하기 전후(前後)로 왕실 내부의 분란이 이와 같았으며, 야인(野人)들도 또한 북방의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자, 왕은 온통 마음을 정치에 두고서 농업을 장려했으며 무(武)를 장려하고 제도를 정비했다. 왕은 불법(佛法)을 좋아하여, 도성(都城) 안에 원각사(圓覺寺)를 건립했는데 매우 뛰어나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그 터는 지금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