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방이 사는 ×촌은, 그곳서 그중 가까운 도회에서 오백 칠십 리가 되고, 기차 연변에서 삼백여 리며, 국도에서 일백 오십 리가 되는, 산골 조그만 마을이었 었다. 금년에 사십여 세에 난 황서방이, 아직 양복장 이라고는 헌병과 순사와 측량기 수밖에는 못 본 만큼, 그 ×촌은 궁벽한 곳이었었다. 그리고 또한 그곳에서 십 리 안팎되는 곳은 모두 친척과 같이 지내며 밤에 마을을 서로 다니느니만치, 인가가 드문 곳이었었다.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와서 사람을 물어갈지라도, 그일 이 신문에도 안 날이만치, 외따른 곳이었었다. 돈이라 하는 것은 십 원짜리 지전을 본 것을 자랑삼느니만치, 그 동리는 생활의 위협이라는 것을 모르는 마을이었 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 동리는 순박하고, 질소하고 인심 후하고, 평화로운—원시인의 생활이라 하여도 좋을 만한살림을 하는 마을이었었다.


이러한 ×촌에, 이즈음 한 가지의 괴변이 생겨났다.

×촌에이즈음, 소위 도회사람이라는 어떤 양복장이가 하나 뛰쳐들었다. 그 사람은 황서방의 집에 주인을 잡았다.

그 동리 사람들은 모두 황서방네 집으로 쓸어들었다. 그리고 그 도회사람의 별스러운 옷이며 신이며 갓을(염치를 불고하고) 주물러 보며, 마치 그 사람은 조선말을 모르리라는 듯이, 곁에 놓고 이리저리 비평을 하며 야단법석하였다. 황서방은 자랑스러운 듯이 (우연히 제 집으로 뛰쳐들어온) 그 손님에게 구린내 나는 담배며, 그때 갓 쪄온 옥수수며를 대접하며, 모여드는 동리 사람에게 그 도회사람이 자기 집에 들어올 때의 거동을 설명하며 야단하였다.


며칠이 지났다.

그 도회 사람이 모여드는 이 지방 사람에게 설명한 바에 의지하건대, 그는 〈흙냄새〉를 그려서 이곳까지 왔다 한다.

—여러분들은, 흙냄새라는 것을—그 향기로운 흙냄새를 늘맡고 계셨기에 이렇게 몸이 튼튼합니다. 아아, 그 흙의 향내—여보시오, 도회에 가 보오. 에이구! 사람 냄새, 개솔린 냄새, 하수도 냄새, 게다가 자동차, 마차, 인력거가 여기 번쩍, 저기 번쩍—참 도회에 살면 흙냄새가 그립소. 땅이 활개를 펴고 기지개를 하는 봄날 무럭무럭 떠오르는 흙의 향내를 늘맡고 사는 당신네들의 행복은 참으로 도회인은 얻지 못할 행복이외다. 몇 해를 벼르다가 나는 종내 참지 못하여 이렇게 왔소. 이제부터는 나도 당신들의 동무요…… 도회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황서방은 이 도회 사람(우리는 그를 Z씨라 부르자) 의 말 가운데서 세 마디를 알아들었다.

자동차와 인력거—황서방이 이전에 무슨 일로 백오 십 리를 걸어서 국도까지 갔을 때, (그때는 밤이었는 데) 저편에서 시뻘건 두 눈깔을 번득이며,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달려오는 괴물을 보았다. 영리한 황서방은 무론 그것이 사람이 타고 다니는 것임은 짐작하였다. 그러나 ×촌에 돌아온 뒤에는, 황서방의 입을 통하여 퍼진 소문으로는 그것이 한 괴물로 되었다. 방귀를 폴싹폴싹 뀌며, 땅을 울리면서 달아나는 괴물로 소문이 퍼진 것이었었다.

인력거라는 것은 그 이튿날 보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다 (Z씨의 말을 듣고 생각하여 보매) 도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물건일 것이었었다.

또 한 가지, 사람의 냄새가 역하다는 것. 사실, ×촌에 잔칫집이라도 있어서 수십 인씩 모이면, 역하고 고약한 냄새가 그 방안에 차고 하던 것을 황서방은 보았다. 그러매, 몇 십만(십만이 백의 몇 곱인지는 주판을 놓아보지 않고는 똑똑히 모르거니와)이라는, 짐작컨대 억조 동그라미와 같이 우굴거릴 도회에서는, 상당히 역한 냄새가 날 것이었다.

그밖에는, 황서방에게는 한 마디도 모를 말이었다.

흙냄새가 그립다 하나, 흙냄새도 상당히 구린 것이었다. 봄날 흙냄새는(거름을 한 지 오래지 않으므로), 더욱 구린 것이다.

전차, 하수도, 가솔린, 이런 젓은 어떤 것인지 황서방은 짐작도 못하였다.

그러나, 황서방은 Z씨의 말을 믿었다. 저는 시골밖에는 모르고, Z씨는 시골과 도회를 다 보고 한 말이매, 그 사람의 말이 옳을 것은 당연할 것이다. 흙냄새가 아무리 구리다 할지라도, 도회 냄새보단 좋을 것이라 —황서방은 믿었다.

—길에 하루종일 자빠져 있으니, 시골서는 자동차에 치울 걱정이 있겠소? 순사에게 쫓겨갈 걱정이 있겠소?

그것도 또한 사실이고, 당연한 말이었었다. 황서방은, 그러한 시골서 태어난 자기를 행복스럽다 하였다.


그러나, 서너 달 뒤에 그 Z씨는, 시골에 대하여 온갖 욕설을 다하고, 다시 도회로 돌아갔다. Z씨는 「몰랐거니와 흙 냄새도 매우 역하다」 하였다. 도회에서는, 하루 동안에 한나절씩만 주판을 똑딱거리면 매달 오 천 냥(백 원)씩 들어오는데, 여기서는 땀을 뻘뺄 흘리며 손을 상하며 일을 하여야 일 년에 겨우 오천 냥 들어오기가 힘드니 시골이란, 재간 있는 사람이란 못 살 곳이라 하였다. 십 리나 백 리라도 걸어서 밖에는 다닐 도리가 없으니 시골은 소, 말이나 살 곳이라 하였다. 기생이 없으니, 점잖은 사람은 못 살 곳이라 하였다. 읽을 책도 없으니, 학자는 못 살 곳이라 하였다.

양요리가 없으니, 귀인은 못 살 곳이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황서방은 Z씨가 간 다음 며칠 동안을 눈이 퀭하니 밥도 잘 안 먹고 있었다. Z씨의 말은 모두 다 또한참말이었다. 아직껏 곁집같이 다니던 최풍헌의 집이, 생각하여 보면 참 진저리나도록 멀었다.

십오리!Z씨가 진저리를 친 것도 너무 과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로 들은바, 기생이라는 것이 없는 것도 또한 사실이었다.

재미있는 책이라고는 《임진록》한 권이(그것도 서두와 꼬리는 없는 것) X촌을 중심으로 한 삼십 리 이내의 다만 하나의 책이었다.

그러나 그 근처 일대에 주판 잘 놓기로 이름난 황서방이,—도회에서는(Z씨의 말에 의하건대) 매달 오천 냥 수입은 될 황서방이, 손에 굳은살이 박히며, 땀을 흘리며, 천신만고하여 일 년에 거두는 추수가 육 천냥 내외였었다. 게다가 감자를 먹고……거름을 주무르고 —


두 달이 지났다.

그때는, 황서방은 자기의 먹다 남은 것이며 집이며 세간살이를 모두 팔아 가지고, 도회로 온 지 벌써 한 달이나 된 때였다.

황서방이 도회로 가지고 온 돈은 육천 냥이었다. 그 가운데서, 집세로 육백 냥이 나갔다. 한 달 동안 구경 하며 먹어 가는데 이천 냥이 나갔다.

여름밤의 도회는 과연 아름다왔다. 불, 사람, 냄새, 집, 소리, 모든 것은 황서방을 취하게 하였다. 일곱 냥 반을 주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어 보았다. 또한—소 리, 불, 사람, 냄새……보면 볼수록, 도회의 밤은 사람을 취하게 하였다. 아이스크림, 빙수, 진열장, 야시 —아아, 황서방은 얼마나 이런 것을 못 보는 최풍천이 며 김서방을 가련히 생각했으랴.

동물원도 보았다. 전차도 잠깐 타 보았다.

선술집의 한잔의 맛도 괜찮은 것이고, 길에서 파는 밀국수의 맛도 또한 황서방에게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도회로 오기만 하면 만나질 줄 알았던 Z씨를 못 만난 것은 좀 섭섭하였지만, 그것도 황서방에게는 그다지 불편되는 일은 없었다.

아아, 도회, 도회—과연 시골은 사람으로서는 못 살 곳이었다.


황서방이 도회로 온 지 넉 달이 되었다. 이젠 밑천도 없어졌다.

(이제부터!)

황서방은 의관을 정히 하고 큰거리로 나가서, 어떤 큰 상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기는 주판을 잘 놓는데, 써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뜻밖으로 황서방은 거절당하였다.

황서방은 다른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서도 또한 거절당하였다.

저녁때 집에 돌아올 때는 그의 얼굴은 송장과 같이 퍼렇게 되었다.

이런 일이 어디 있나? 첫 마디로 승낙할 줄 알았던 일이 오늘철로 이십여 집을 다녔으나, 한 곳에서도 승낙 비슷한 것도 못 받고, 거지나온 것같이 쫓겨 나왔으니, 이젠 어찌한단 말인가?

이튿날의 경과도 역시 같았다. 사흘, 나흘, 황서방의 밑천은 한푼도 없어졌는데, 매달 오천 냥은커녕 오 백 냥으로 고용하려는 데도 없었다.

굶어? 황서방은 이젠 할 수 없이 굶게 되었다. 아직 당하여 보기는커녕, 말도 못 들었던 〈굶는다〉는 것을, 황서방은 맛보게 되었다.


그런들, 사람이 굶기야 하랴? 황서방은 사람의 후한 인심을 충분히 아는 사람이었다. 아직껏 그런 창피스런 일은 하여 본 적이 없지만, X촌에서 이십 리 떨어져 있는 Q촌에 쌀 한 말 얻으러 갈지라도, 꾸어 주는 것을 황서방은 안다. 사람이 굶는다는데 쌀 안 줄 그런 야속한 놈은 없을 것이었다.

황서방은 곁집에 갔다. 그리고, 자기는 이 곁집에 사는 사람인데, 여사여사한다고 사연을 말한 뒤에, 좀 조력을 하여 달라는 이야기를 장차 끄집어내려는데, 그 집에서는 벌써 눈치를 채었는지,

「우리도 굶을 지경이요!」

하고는 제 일만 보기 시작하였다.

황서방은 그것도 그럴 일이라 생각하였다. 사실 그 집도 막벌이하는 집이었다.

황서방은 다시, 한 집 건너 있는 큰 기와집으로 찾아갔다. 그가 중대문 안에 들어설 때에, 대청에 걸터 앉아서 양치를 하고 있던 젊은 사람(주인인지)이, 웬 사람이냐고 꽥 소리를 질렀다.

「네? 저—뭐……」


황서방은 마침내 도회라는 것을 알았다. 도회에서 달아나던 Z씨의 심리도 알았다. 그러나 Z씨가 다시 도회로 돌아온 그 심리는? 그것도 Z씨가 도로 도회로 돌아올 때에 한말을 씹어 보면 알 것이다. 도회는 도 회 사람의 것이고, 시골은 시골 사람의 것이다. 천분— 천분을 모르고 남의 영분에 침입하였던 황서방은 이렇게 실패하였다.

황서방은 이제 겨우 자기의 영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은 저 할일만 할 것임을 깨달았다.


이튿날 새벽, 황서방은 해를 등지고, 주린 배를 움켜 쥐고 K국도를 더벅더벅 X촌을 향하여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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