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으로 동지사가 들어갈 때였다.

복석이는 짐을 지고 동지사 일행을 따라가게 되었다.

“언제 돌아오련?”

“글쎄, 내야 알겠니?”

“그때 치맛감 한 감 꼭 사오너라.”

“시끄러운 것. 두 번 부탁 안 해두 어련히 안 사오리.”

복석이와 용녀의 작별은 눈물겨운 장면이었다. 놓았다가는 다시 부여잡고 부여잡았다가는 다시 놓고 밤을 새워가면서 서로 울었다.

“되놈의 계집애가 너를 가만둘 것 같지 않다.”

이렇게도 말해보았다.

“마음 변했다가는 죽인다.”

이렇게도 말해보았다.

그러다가 새벽 인경이 울 때에야 그들은 놓았다.


동지사의 일행은 압록강도 무사히 건넜다.

때는 8월 중순이었다. 무연한 만주의 벌에 잘 익은 고량(高粱)이 머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그 밭 사이에 뚫린 길을 ‘쉬 ―’ 소리 용감스럽게 동지사의 일행은 북경으로 길을 갔다. 짐을 지고 따라가는 복석이의 눈에는 멀리 지평선 위에 용녀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화상을 따다가 붙인 듯이 지평선 위에 딱 붙어서 아무리 지우려야 없어지지를 않았다. 복석이는 그것을 바라보고 빙그레 웃고 하였다.


압록강을 넘어선 지 열흘 만에 복석이는 수토불복으로 넘어졌다.

복석이는 울었다. 억지 썼다. 나를 여기 버리고 가는 것은 소백정이라고 떼도 써보았다. 그러나 대사는 복석이의 병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병든 몸은 산 설고 물 선 곳에 혼자 떨어졌다. 그리고 동지사의 일행은 여전히 북경으로 북경으로 길을 채었다.


열흘이 지났다. 복석이의 병은 완쾌되었다. 아무리 낯선 수토라 할지라도 철석같은 복석이의 건강은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동지사의 뒤를 따르려 하였다. 그때 마침 다행으로 같은 길을 가는 어떤 중국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사흘을 동행하였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저녁 그들은 어떤 호농(豪農)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밤이 되었다. 복석이가 용녀의 일을 생각하면서 혼자 기뻐할 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되놈 서넛이 달려들어서 복석이의 따귀를 떨어지라 하고 때렸다. 영문을 몰랐지만 복석이는 반항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수효로 4대 1이었다. 그날 밤 그는 결박을 당하여 움에 갇혔다.

이튿날 그는 벌에 끌려 나갔다. 하루 종일을 농사 추수에 조력하였다.

밤에는 또한 결박하여 움에 가두었다. 낮에는 또 일을 시켰다.

20일이 지났다. 그동안에 그는 손짓 눈짓으로 겨우 자기가 10년 기한으로 이 집에 팔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에 그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었다. 밤낮을 파수병이 그들을 지켰다.


끝없이 긴 하루를 지나면 또한 끝없이 긴 새날이 이르렀다. 긴 새날이 이를 때마다 그는 용녀를 생각하고 10년을 어찌 지내나 하였다.

1년이 지났다.

아아, 1년이라는 날짜가 얼마나 길었을까? 그러나 이상타. 지나고 보니 꿈결 같은 1년이었다. 어느 틈에 지나갔나 생각되는 1년이었다.

그것은 벌써 만기의 10분의 1이었다. 이렇게 열 번 지내자 지내자 그는 결심하였다.


어언간 10년도 지났다. 지나고 보니 꿈결 같은 10년이었다. 오늘이나 놓아주나 내일이나 놓아주나. 아아, 용녀는 아직 살아 있나?  이렇게 기다리던 끝에 그는 뜻밖의 선고를 받았다. 다른 호농에게 새로운 20년의 기한으로 다시 팔린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혀를 끊으려 하였다. 그러나 용녀를 생각하고 중지하였다. 또 20년을 참자. 그는 용하게도 이렇게 결심하였다.

새집에서도 또한 10년이란 날짜가 지났다. 그때 그는 40에 가까운 나이였다.

그는 대국과 왜나라와의 사이에 난리가 있다는 것을 바람결에 들었다. 그뒤를 이어 대국이 졌다는 소식도 바람결에 들었다.

“왜가?”

그것은 과연 뜻밖이었다. 아아, 그동안 용녀는 잘 있나.

조선이 독립하여 한국이 되었단 풍문도 들었다. 동지사라는 것도 연전 없어졌다는 것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용녀를 생각하고 한숨을 쉬고 하였다.

장 대인이 천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하면서부터는 그런 시골중의 시골에 서도 욱적하였다. 종들도 모두 놓여난다고 종들 사이에서도 수군수군하는 공론이 많았다. 그때 복석이는 벌써 70이 가까운 나이였다.


마침내 복석이도 놓여났다. 그러나 그것은 장 대인의 덕이 아니고 나이 많아서 농사에 종사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기나긴 날짜였다. 50년이라 하는 진저리 나는 긴 날짜를 용녀를 생각하고 살고 용녀를 생각하고 지냈다. 놓여난 때에는 그는 ‘용녀’의 한마디밖에는 조선말을 잊은 때였다.

그는 놓여나면서 푸른빛 치맛감을 한 감 사가지고 50년 전의 약속을 이행코저 정다운 고향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간 곳마다 그의 경이(驚異)였다. 기차라는 것이 있었다. 이전에는 나루로 건넌 압록강에 커다란 쇠다리가 놓여 있었다. 이전에는 곳곳마다 곡발관이 씩씩거렸지만 인제는 그 자취조차 없었다. 고을고을의 영문과 군청에는 모자 쓴 아이들이 드나들었다. 정다운 고국? 아아,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정 붙일 곳이 없는 고국이었다.


그는 서울에 도착하였다. 50년을 두고 그리던 그 땅이었다. 변하였으리라 생각은 하였으나 그것은 상상 이상의 변화였다. 몽롱한 기억에 남아 있는 것뿐이나마 삼각산은 그 빛조차 달라졌다. 남산은 그 형태조차 변하였다.

그는 서울 장안을 집집마다 대문을 기웃거리며 싸돌았다.

그는 두 달을 찾았다. 그러나 용녀를 위하여 50년은 참았으나 여기서 두달 이상을 더 찾을 기운은 없었다. 말로는 고국이나마 산 설고 물 설고 말 모르는 타향이었다.


그는 마침내 단념하였다. 그러나 온전히 단념하지 못한 그의 마음은 서울에 남겨두고 또다시 대국으로 서울을 등졌다. 그의 쓸쓸한 그림자는 의주통도 지났다.

장안은 벌써 재 너머로 사라졌다.

그는 다시 한번 서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침을 탁 뱉은 뒤에 몸을 바로 하였다. 그때였다. 그는 뜻밖에 자기의 여남은 간 앞에 용녀의 뒷모양을 발견하였다.

그는 뛰어갔다.

“당신, 당신…….”

너무 억하여 이 한마디밖에는 하지 못하였다.

“왜 이래!”

노파는 홱 뿌리치며 돌아섰다. 그때에 복석이는 50년 동안을 잠시도 잊지 못하였던 그 두 눈알을 보았다. 당신 소리가 연하여 그의 입에서 나왔다.

노파도 마침내 알아보았다.

“이게 누구냐? 복석이로구나!”

둘을 마주 부여잡았다.

이제 다시 놓았다가는 영구히 잃어버릴 듯이 힘을 다하여 쓸어안고 통곡하였다.

좀 뒤에 행인들은 웬 더러운 지나인과 조선 노파가 앞에 푸른 비단을 펴놓고 서로 왜콩을 까먹으며 기뻐하는 양에 경이의 눈을 던졌다.


얼마 뒤에 이 70 난 총각과 70 난 처녀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부의 몸은 푸른 지나 비단으로 감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