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방학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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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두 차가 안 보이냐?"

"아이 어머니두, 차가 보이면 벌써 와 닿았게요!"

"그럼 올 시간이 아직두 못 됐니?"

"조금만 있으면 오게 됐어요."

"원 차는 빠르대두 그렇게 늦는구나."

주름 잡힌 어머니의 얼굴이 기다림에 초조한 듯 긴장된 빛 을 띄었을 때 "뚜우." 하고 기적소리가 처량하게 들리었다.

기차는 지금 산 모퉁이를 어느덧 구렁이같이 감돌아 이편으 로 달려 오고 있는 게 이제는 완연히 보이었다.

"저기, 저기 와요..... 어머니!"

"응! 오는구나....."

"얘 소희(素姬)야, 너두 이리 좀 와!"

영숙(永淑)은 기쁜 듯이 같이 나온 자기 동무의 팔까지 끌 어 당기며 날뛰고 있다.

"이제야 와..... 온 참."

어머니는 너무나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듯이 그러나 빙그 레 웃음을 띄우고 쿠쿠치치 쿠쿠치치 하며 달려오는 기차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쿠치치 쿠치치."

달려오던 기차의 속력이 점점 줄더니 "쉬-" 소리가 들리자 기차는 역 구내에 천천히 정거를 한다.

세사람은 차 가까이로 달려가 시골 정거장 그리 많지도 않 은 승객 속을 헤치고 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일일이 점검 하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서 검정 세루 윗저고리에 벡세루 바지를 받 쳐 입고 사각모를 축 눌러 쓴 대학생 하나가 승강구로 내리 었다.

"아이, 저기 내려요!"

영숙은 껑충 한번 뛰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그 편으로 달음박질을 친다. 그의 어머니와 소희도 그것을 보자 발 빨 리 그 뒤를 따랐다.

"이제야 오냐?"

"네, 어머님 안녕히 계셨어요!"

대학생 영철(永哲)은 어머님 가까이 오자 훨씬 큰 키를 굽 혀 인사를 하였다.

"오빠 고생되셨죠?"

"고생되긴 뭘! 넌 언제 왔니?"

"한 열흘 전에요."

그들이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소희는 겨우 인사들이 끝나는 것을 보고서야 옆에 비켜 섰던 몸을 사쁜 내놓으며 "안녕히 다녀 오셨어요?" 하고 둥근 눈을 사르르 감으며 인사를 한다.

"아 참 소희씨도 나오셨는걸!" 하고 영철은 그제야 알아 채 었다는 듯이 황망하게 인사를 한다.

그들은 다 같이 넘치는 기쁨으로 발길을 나란히 하여 역 구내를 나와서 정거장에서 서너마장쯤 떨어진 집으로 돌아 오게 되었다.

영철은 집에 돌아오자 곧 낯을 씻고 조선옷을 갈아 입었 다. 칠월 초승이라 더위는 꽤 높아 산 가까운 이 마을에도 시원한 바람은 그리 불지 않는 것 같다. 갖다 주는 삿부채 를 부치며 영철은 마루 위에 걸터앉아 저 멀리 푸른 하늘 점점이 뜬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도 더위에 들뜬 듯 이 안타까이 하늘을 날으고 이따금 묘한 봉우리가 피곤에 젖은 시야를 위무해 줄 뿐이다.

(퍽은 이뻐졌는데!)

영철은 멍하니 눈을 하늘로 보내고 있으면서도 일년 동안 그렇게도 달라진 소희 생각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일년 동안에 그렇게도 달라진담!)

영철은 이상히도 둥근 눈이 긴 속눈썹 속에 깜박이고 뒷독 하고 날씬한 코, 적게 다문 입, 그리고 웃을 때면 어여쁜 두 볼에 우물지는 소희의 얼굴이 너무도 똑똑히 자기의 가슴패 기를 파고 듦을 자기도 완연히 느꼈다. 더구나 작년보다도 더 여성미가 균형된 그의 모양이 영철의 머리를 어지럽히었 다.

건넌방에서 영숙의 웃음소리가 요란스러이 들리는 듯 하면 자지러질 듯 외마디소리로 웃는 소희의 어여쁜 웃음소리도 간간 스며나왔다. 그 동양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얌전스런 웃음, 그 웃음 속에는 아직 못할 애틋한 사랑이 포근히 잠 들고 있는 것 같아서 영철은 그 웃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찌르르 함을 느끼었다.

(아직두 소희는 우리집 건너방에 유숙을 하고 있나?)

영철은 그렇게 있었으면 하는 살얼음을 닿는 듯한 간지러 운 환상 속에 또 소희의 모양을 다시금 머리에 그려보았다.

(어쩌면 천애(天涯)의 고아(孤兒)로 태어나서 저렇게도 얌전스러웁게 키워졌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다지도 몸과 마음 이 다 같이 아름답게 되었을까? 통통 부은 듯 그러나 탄력 있어 보이는 젖가슴, 그리 크지도, 또 그렇게 작지도 않은 날씬한 키! 쭉 뻗은 듯 걀쭉한 두 다리, 그것은 현대 문화의 세련을 받은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백퍼센트의 육체미까지 구비한 소희!)

"과일이나 좀 깍으렴!"

어머님이 친히 과일 그릇을 들고 들어오시면서 영철의 약 간 애수띤 얼굴을 치어다볼 때 "네." 하고 영철은 꿈속에서 나 깨어난 듯 어머니 편으로 얼른 머리를 돌렸다.

"얘, 영숙아 오빠 과일이나 벗겨 드려라. 뭘 떠들고 있니?"

건너방을 향해 외치는 어머니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조 금있어." 하는 영숙의 굵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니?"

"가만 있어요!"

"원 저건 오빠 온 것두 본체 만체허구!"

어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찬다.

"오빠!"

한 일분이나 됐을까? 영숙은 트람푸쪽 몇장을 두 손에 들 고 뛰어 나오면서 "짝크가 떨어졌어." 하고 외친다.

"뭐?"

"소희가 점을 쳤는데 짝크가 떨어졌어."

"그래 짝크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니?"

"오빠는 동경꺼정 가셔서 그것두 몰라. 연애가 된단 말야 요."

"쓸데 없이."

영철은 빙그레 웃음을 웃고 영숙이 편을 바라볼 때 "기앤."

하고 소희가 말끝을 맺지도 못한 채 얼굴이 빨개져서 영숙 의 뒤를 따라 나오고 있다.

"그럼 내가 거짓말야."

"........................"

소희는 아무 말도 없이 우두커니 안마루 끝으로 올라서며 흰 생삼팔 적삼 고름만 만적거리고 있다.

"자 와서 과일이나 먹어라!"

영숙이 어머니가 불렀다.

"아니 가봐야겠어요!"

"왜 그래 부끄러워? 나같으면 만세를 부르겠다. 이리와 야!" 하고 영숙이가 달려들어 소희를 영철이 편으로 갖다 앉 힌다.

영철은 점잖게 말하고 먹던 복숭아를 다시 한입 깨물었다.

"아니요, 가봐야겠어요."

"성났니, 폭로해서?"

"기앤!"

소희는 일어선 채 "그럼 실례하겠어요."

하고 툇마루에 놓은 흰 구두를 집어 신는다.

"정말 갈테야?"

"응."

"왜 그래, 저녁이나 먹구 가잖구."

"가봐야겠어-"

소희는 구두끈을 마저 매고 나서 "그럼 또 뵙겠어요, 안녕 히 계서요."

하고 어머니와 영철이 편으로 머리를 돌려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인채 대문편으로 하이힐을 리드미칼 하게 옮겨 놓으며 갸우뚱갸우뚱 걸어 가고 있다.

영철은 멍하니 걸어 나가는 소희의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보이지 않더라도 검은 머리털 아래 날씬하게 빠진 흰 목이 더한층 어여쁘게 영철의 눈을 유혹 시킨다. 더구나 생삼팔 적삼에 흰 쬬셋트 치마가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아 흔들었다.

(어쩌면 시골 보통학교 훈도가 저렇게 모양이 이쁠가?)

영철은 이상히도 흥분되는 감정에 자기도 모르게 "이젠 소 희가 우리집에 있지 않어요?" 하고 어머님 편을 바라보았다.

"우리두 적적해서 같이 있자구 해두 폐를 끼친다구 올 봄 부터 하숙에 나가 있지-"

"네에."

영철은 다소 낙담한 듯이 머리를 숙이고 힘없이 마룻바닥 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 좀 누우렴, 곤할텐데."

"네."

영철은 오래간만에 조선옷의 산뜻한 맛을 느끼면서 몸을 일으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작년 여름 자기가 해놓은 그대로 서편 벽에 붙여 침대를 놓았고 그 밑에는 조그마한 테불에 의자가 받쳐 있다. 테불 위에 놓은 화병에는 시들은 꽃 한송이 없고 새로 소제한 듯 한 방안의 기분은 유난스러이 쓸쓸해 보인다.

영철은 침대 위에 몸을 비스듬히 뉘고 부채질을 해가며 동 편으로 뚫린 문편을 바라보았다. 열어 놓은 문으로 보이는 조그맣게 꾸민 화단! 거기는 백일홍과 봉선화가 요염하게 피어 있어 흰 나비 검은 나비를 모아놓고 달콤한 향연을 벌 이고 있다. 잠자리 몇놈이 날았다 앉았다, 한가한 저공비행 을 하여 그들의 잔치를 축복하는 듯 저멀리서는 밀마당질하 는 도리깨 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정적! 끝없는 정적! 웬셈인지 고향에 돌아온 기쁨보다도 한 편 쓸쓸한 물결이 영철의 몸을 사르르 휘어감는다. 그리고 는 그 정적과 애수 속에 떠오르는 한 개의 환상! 그것은 분 명히 소희의 어여쁜 열굴이었다.

말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듯이 그러나 조리있게 차곡차곡 빚어내는 그의 말시, 이따금 자지러질 듯 외마디 소리로 웃는 향기로운 웃음, 곱게 그러나 애수 어린 한숨이 가슴에서 가볍게 쉬어지는 그 애연한 호흡, 고아로 자란 몸 이언만 그렇게도 예절있는 몸가짐. 영철은 동경에 건너와 있는 조선 여학생들의 그 말괄량이 같은 모양을 다시금 그 소희와 비교해 보고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생각을 돌이키면 돌이킬수록 떠오르는 소희의 모양,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와도 같이 청초한 웃음이 잘잘 흘 러 넘치는 그의 얼굴! 끊임없이 스르르 감은 영철의 눈앞에 안타까이도 떠오르는 소희의 환상에 영철은 깜짝 놀라 눈을 다시 떴다. 열어 놓은 동편 문으로 보이는 하늘에 흰구름이 묘하게 봉을 쌓았을 뿐, 소희의 모양은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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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한 몸을 며칠 밤 고원의 따뜻한 품속에서 지내고 이른 아침 영철은 일어나는 길로 뒷산 마루턱을 굽이돌았다.

아직도 해는 동산에 솟지 않고 훤히 밝은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밀리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솔밭을 스치 고 불어오는 산모퉁이에는 걷는 발길에 차이는 풀위의 이슬 방울이 고무신만 신은 벗은 발을 적시어 산뜻한 촉감을 준 다.

멀리 남쪽으로 뚫린 지평선 옥야에 심긴 벼, 조, 수수.....

흰 옷 입은 농부들의 장사진..... 이것을 멀리 바라보고 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루쏘'의 '신에로이즈'를 읽던 생각이 났다. 영철은 최근 '루쏘'의 민약론(民約論)을 정독하 는 동안 그 저서에 흘러 넘치는 민주주의적 정신에 자기의 사상체계를 세우게 되어 '루쏘'의 저서면 무어든지 탐독하던 중에 '신에로이즈'란 소설까지 읽게 되었다. 법학을 공부하 면서 항상 사회제도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진 그는 때로는 이 '신에로이즈'에 쓰여진 자연주의에 도취하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하는 공상도 하여 본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의 옥야 천리 넓은 들이 대자연의 새 향기를 뿜고 칠월 염천에 힘찬 자연미를 바라볼 때 영철은 "자연으로 돌아가 라!"

하고 다시 외치고 싶었다.

"흙과 풀과 나무로 된 산! 오곡이 살찐 넓은 들! 이밖에 세 상에 무에 있느냐?"

(하늘을 찌를 듯 높은 당탑이 신(神)과 인간을 한데로 몰아 넣고 신외 궁전(宮殿과 시민의 주택이 아무 구별 없이 부패 된 이 세상! 이것은 결국 시대적 추이의 변화라 하더라도 어떻든 자연미를 손상하는 건 큰 일이야)

그는 다시 이렇게 외치고도 싶었다. 아침 해가 동산의 구 름을 헤치고 솟아 오른다. 불덩어리같이 뻘건 해가 낮에 보 는 원보다는 훨씬 더 크게 산모퉁이로 솟아 오르자 대자연 은 한층 더 활기를 얻은 것 같이 생기가 돈다. 푸른 풀잎에 깃들인 이슬 방울이 구슬인 듯 영롱하게 빛나고 새 순 돋은 나무가지엔 노란 싹이 하느적거리고 있다.

"아침이다!"

영철은 동편을 항해 심호흡을 크게 서너번하고 다시 시냇 가로 발길을 옮기었다.

비온 뒤 시냇물은 더 줄기차게 내려가건만 원래 그리많지 않던 물이라 수심은 깊지 않은 양! 징검다리 옆에서는 빨래 하는 아낙네의 방망이가 칠색 무지개를 피우면서 오르내리 고 있다. 영철은 돌자갈을 밟으며 시냇가로 발걸음을 천천 히 흐트리고 있었다.

"나오셨에요?"

몇 발자국 가지 않아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숙이고 가던 영철의 머리를 들게 하였다. 그것은 아침 볕에 더한층 명랑 해 보이는 소희의 목소리였다.

"일찍 나오셨군요."

영철도 마주 인사하며 방그레 웃음 띈 소희의 얼굴을 미소 로서 바라보았다.

"혼자 나오셨어요?"

처음 만난 사람같이 수줍은 티로 들릴 듯 말 듯 가늘게 말 하는 소희 앞으로 영철은 몇 발자국 가까이 다가서서 "네, 저 혼자 뒷산 기슭을 한번 돌아 오던 길입니다. 참 오래간 만에 보는 시골 아침은 퍽 좋은데요."

"너무 단조하죠 뭐!"

"자연미란 원래 단조한게지요, 그렇지만 예술과 과학의 힘 을 빌어 꾸며진, 말하자면 인공적 자연에는 싫증이 나요!"

"그래두 어여쁘게 단장한 문화촌이 좋지 않아요?"

"아닙니다. 그건 너무도 현대인이 갖는 문화병입니다. 자 보십시오, 이 옥야천리 넓은 들이 예와 같이 벼포기, 조그 루, 수숫대, 밀보리 밭이 아니요, 또 저 산에 푸른 솔, 자연 히 돋은 잡초가 우거지지 않았다면 이 마을의 생명이 어디 있겠어요. 냇가에 한가히 풀뜯는 소와 목동의 노랫가락이며 바구니 든 나물 캐는 색시의 그 원시적인 목가가 흘러 나오 지 않는다면 이 농촌의 특징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점점 기계문명과 과학의 힘 때문에 쓰러져 가는 옛 모양이 퍽은 아까워요. 그러기 때문에 저는 철두철미 과학문명의 반역자 입니다!"

"어쩌면!"

"그럼 소희씨는 과학문명의 찬미자십니까? 신의 궁전과 시 민의 주택이 한데 붙어 있고, 나중에는 그 신의 궁전에 사 람이 사는 이 현대문명을 소희씨는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호호."

소희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웃어버렸다. 그것은 그 주장에 대한 반대도 긍정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저는 사상적으로 절대 민주주의자요. 이상적으로는 자연을 사랑하는 자연주의자입니다."

영철은 책에서 얻은 지식을 모조리 털어 놓아 가지고 무슨 웅변이나 토하듯이 소희 앞에서 떠들었다. 한참 동안이나 열변을 토하던 영철은 문득 시냇물이 소리를 내어 아침 햇 빛을 받아 싣고 은빛인 듯 금빛인 듯 흘러 흘러 가는 곳으 로 눈을 보내었다. 물은 여울을 지나고 굽이를 돌아 흐르고 흘러 그 칠 줄 모른다.

더구나 어렸을 때부터 한문 공부를 한 그에게는 소동파(蘇 東波)의 장 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하며(羨長江之無窮) 내 일 생이 잠깐인 걸 슬퍼한다(哀吾生之須臾)는 적벽부 한 토막이 생각나서 갑자기 흐르는 물로 보낸 눈에는 우울한 철학적 심각미가 아지 못하게 영철의 안계를 흐리게 하였다.

"사람은 결국 죽는 것이지만 저 물을 보면 더 한층 일생이 부질없어져요!"

화제가 확실히 바꾸어진 영철의 말은 어조조차 달라졌다.

"영혼 불멸의 예수의 정신으로 인생의 죽음을 보고 불타의 회기설로써 인생의 최후를 해석한다면 결국 인생은 끝없는 생의 연장으로 볼 것이지만 인생은 저 곤곤히 흘러가는 유 수의 끝없는 연장과는 다르니깐요. 결국 죽음으로써 인생의 일생은 끝막는 게니깐 산 동안 무어든지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

소희는 급작스레 자연 예찬에서 인생의 생사 문제를 논하 는 영철의 모양을 멍하니 보고만 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아침 예배당 종소리가 은은히 한가한 마을의 아침 시냇가 로 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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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종소리를 따라 예배를 보러 온 소희는 기도시가니 되 자 땅에 엎드린채 아까 말하던 영철이의 모순된 이원적 종 교 해석에 대하여 이리 저리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영철이가 원시적 자연미를 예찬한다는 것은 그 신비 로운 종교 세계를 또한 잊을 수 없다는 것일 터인데 사람이 죽어서 천당을 가 영생을 얻는 것을 부정하는 것을 보면 확 실히 그 말에 모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희는 오래 엎드려 그것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것은 기도의 뒤 를 이어 목사의 성경 낭독이 시작된 때문이다.

"예수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오, 진리오,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아 아니하면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으리라."

목사는 정중하게 요한복음 십사장 제 육절을 읽는다.

소희는 어려서부터 종교 세계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이 마 을에선 누구보다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였으므로 이 런 시골 목사의 넋두리 같은 지리한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언만 오늘은 웬 셈인지 유달리도 그 말이 귀에 새로운 자극을 주어 다시금 목사의 설교에 정신이 긴장되었 다.

(그래, 참,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야 되나.....)

둥근 눈을 깜박이며 강단 위에 선 목사의 얼굴을 말끄러미 치어다보고 있던 소희는 다시

(그래 목사님의 말이 옳아! 어쩌면 영철씨는 영혼불멸의 예 수님의 진리를 부정할까? 어쩌면 그렇게 인생은 일생 뿐이 라 할까?)

믿음직하던 영철이가 어째서 조금 경박한 것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늠름한 몸, 조리있는 말, 해박한 지식 (소희게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 되었다)에 위압을 느낀 소희 는 감히 그를 경박한 청년의 언동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 다. 그렇지만 그의 종교생활에 젖은 몸은 영철의 말이 끝 없이 거슬리었다. 때마침 백 심 구장 찬미 소리가 그 싸움 에서 소희를 건져 내었다.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늘 구원하여 주시리
옛 원수 마귀는
이 때에 힘을 써
궤휼과 권세로
제 군기 삼으나
주 권능 당치 못하리
..............................
..............................
..............................

찬미가는 풍금 소리에 맞춰 거룩하게 온 교회당을 울려 저 멀리 하늘 끝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더구나 제삼절에

저 마귀 두루 다니며
온 백성 핍박하여도
겁내지 말고 싸워라
주말쌈 성공하겠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원수가 취해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영 있도다

를 부를 때는 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된 기분으로 소리 를 높여 불렀다. 그리 크지도 않은 교회당 안은 합창된 이 거룩한 찬송가 속에 저 하늘 가 높은 천당으로 멀리 멀리 떠나가는 듯도 하였다.

예배가 끝난 다음 소희는 이상히도 흥분되는 정신으로 하 숙집을 향해 걸어 오다가 문득 어제 학교에서 가지고 나올 시험답안 남은 한 뭉텅이를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 편으로 방향을 고치었다. 마을 뒷산 아래 지은 이 보통학교 가는 길에는 포푸라 가로수가 우거지고 그 기름진 녹음 새 에서는 매미 우는 소리가 요란스러이 들려 나왔다. 한적한 오후의 넓은 길엔 사람의 왕래조차 없었다.

소희가 녹음을 헤치고 교문 가까이 발길을 옮기었을 때 교 정으로부터 나오는 한쌍 남녀의 모양이 눈 앞에 어른거리었 다. 그것은 다시 보지 않아도 영숙이와 준걸이가 분명하였 다. 준걸은 소희 있는 학교의 남교원이다.

"소희 이거 웬 일야."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을 보인 듯 다소 당황해 하는 빛이 있었다. 그런 중에도 준걸의 얼굴은 흙빛으로 파랗게 질리어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 더 한층 명백하게 보이었다.

"산보 왔어?"

소희의 가슴에도 이상한 물결이 뭉클했지만 새침스럽게 영 숙이 편을 보고는 다시 준걸이 편으로 얼굴을 돌려 "오늘 어디 안 가셨어요?" 하고 낚시질 좋아하는 준걸의 아래 위 모양을 훑어 보았다.

"네, 저어....."

변명할 수 없는 죄를 지은 듯 마치 사실 아닌 사실을 외면 적으로 잘못 보인 듯이 준걸의 모양은 소희게 퍽도 어색하 게 보이었다. 소희는 서로 이 어색한 순간을 깨쳐 버리려는 듯이

"시험성적 고사가 밀려서..... 자 그럼 실례하겠어요." 하고 그들에게 목례를 하는 듯 마는 듯 사뿐사뿐 발길을 돌층계 로 올려 놓았다.

그들은 멍하니 올라가는 소희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왜 무에 미한한 게 있어요?"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참 웃어 죽겠네. 소희게 무슨 죄를 지섰어요?"

"아니요, 천만에."

"그럼 왜그리 어쩔 줄을 몰라 하서요?"

영숙은 준걸의 태도에 약간 모욕적 감정을 느끼어 짜증난 말소리로 외쳤다. 생각하면 그가 자기게 사랑한다고는 말한 적이 없지마는 말없는 사이라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을 사이 거든 딴 여성을 만나 정정당당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아 주 힘없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한 다 하더라도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학교도 하나 똑똑히 졸업을 못하고 독학을 했으니!)

하고 영숙은 대번에 그를 경멸하는 태도로 혼자 중얼거리 고는

(사내가 원체 쑥이거든)

하고 다시 속으로 그를 욕하였다. 자기는 전문학교 이년생, 비록 공부는 잘하지 못하고 인물도 그리 아름답지는 못하지 만 준걸이 같은 독학으로 겨우 보통학교 훈도 밖에 못 되는 사내와 연애를 하고 있는 처지를 생각하면 다른 한 여성, 더구나 자기보다 돈으로나 학식으로 보아서 훨씬 떨어지는 소희를 만나 그같이 굴욕적으로 자기 앞에서 추태를 보인다 는 것은 아무래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원래 남성을 한 개의 노리개로 생각하는 영숙에게 있어서 연애는 한낱 향락으로 밖에 해석치 않기 때문에 순간적 쾌 락을 느끼기 위해 준걸이 같은 사내를 방학때만 일시적으로 사랑하는 터이니깐 그에게 버림을 당한대야 조금도 마음 아 플 곳은 없지만 이런 경우에 자기의 참된 정성으로서 사랑 하는 태도를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없이 분하 였다.

"어쩌면 남자가 그 모양이야요?"

"뭐요?"

"글세 남을 모욕하잖어요?"

"천만에요!"

"그럼 당신은 그것을 내게 모욕되는 거라구 생각지 않아 요?"

"그럴 리가 있어요?"

준걸은 비굴스럽게 변명하였다.

"당신은 제가 퍽도 싫은가봐요!"

"그럴 리가 있나요."

"어떻든 말씀을 똑똑히 하세요. 싫다는 당신을 따라 다닐 제가 아냐요 호호호 참!"

영숙의 빈정대는 웃음소리에 준걸은 가슴에서 끓어 올라오 는 모욕된 감정을 그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천대와 굴욕에서 자란 그 가슴에서 참 는다는 힘이 너무도 뿌리 깊이 박혀있기 때문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힘 없는 발길을 기계적으로 옮기고만 있 었다.

"자! 앉으시죠!"

은행나무 있는 그늘 잔디밭 위에 그들은 침묵 속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소희를 사랑하시죠!"

"네?"

"소희를 잊을 수는 없지요?"

이 한 마디 말은 준걸에게는 너무도 아픈 말이었다. 지금 도 소희의 모양을 가슴속 깊이 생각하면서 영숙이 때문에 소희가 혹시 오해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혼자 고민하고 있는 이 순간 영숙이의 자기속을 다 들여다 본 듯한 이 말 한마디는 준걸의 심장을 바늘 끝으로 찌르는 듯 너무도 아 프고 쓰리었다.

"너무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뭐요?"

"................................."

"괴롭히지 말라고요?"

"................................."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뜻아닌 영숙오빠가 걸어오고 있었다.

"오빠 웬 일이야?"

"은행나무가 그리워서....."

"아이참 오빠두!"

"왜 지나간 소학교 시절을 한번 그려보는 것두 좋잖어."

"오셨습니까? 참 벌서 한번 찾아 뵐 것을!"

준걸이는 구원이나 된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를 하 였다.

"녜 도려 미한합니다. 안녕히 계셨어요?"

영철은 손을 내밀어 굳은 악수를 하고 나서 "예배당에는 가잖었니?"하고 영숙이편을 바라보았다.

"갔다 왔어요."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소희씨도 가섰든?"

"................................."

영숙은 얼굴이 화끈하여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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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스무 사흘날!

소희와 준걸은 경성행 열차 삼등실 한 모퉁이에 나란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이다. 처음 소희는 이 여름을 영숙이 남매와 같이 어느 고 요한 절간에서 보내기로 한 것을 돌연히 내린 학교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예정을 변경하여 이길을 떠나온 것이다. 더 구나 동행이 준걸이이니 처음 떠날 때엔 여러 가지로 마음 이 괴롭기도 하였다.

첫째로 영철을 떠나가기가 싫은 것 - 이것은 자기도 모르 게 한 열흘 동안에 변한 자기 심경이었다. - 둘째로는 준걸 이와 같이 추근추근 따르는 남자와 동무해서 먼길을 동행한 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을성 많은 소희는 그것도 꾹 참고 오히려 많은 교원들 중에서 선발되어 가는 그들을 부러워하는데 만족을 느낀 듯이 고요한 웃음 속에 그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이 런 반면 소희와 동행하게 된 준걸은 이 길이 여러 가지로 기뻤다. 첫째는 자기가 사모하는 소희와 같이 기자를 타고 먼 길을 갈 수가 있다는 것, 둘째는 자기자격을 믿지도 않 을뿐더러 또 어쩐지 자기도 싫은 영숙이의 세계를 떠나 자 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는 것, 셋째는 이 길에 소희와 깊은 인연이나 맺을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감정에서 한자리에 앉아 한길을 떠나 차창에 전개되는 새로운 경치에 혹은 놀라고 혹은 기뻐하였 다.

"다음이 용산이죠?"

한강철교를 차가 지나갈 때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르는 강물 을 내려다보며 준걸이가 말하자 소희는 그말을 들은 체도 않고 작년 봄 이 길을 떠나던 생각에 감회가 깊어 "아! 저 뽀오트!" 하고 혼자 고요히 외쳤다. 푸른 물위에는 남녀를 실은 보오트가 저녁 놀 흔들리는 물결 위에 점점이 떠 있는 것이 퍽 나어린 소희의 가슴에 안타까운 추억을 더듬어 일 으켰다.

(시골 구석에 틀어박혀 이제는 늙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소희는 다시 자기 자신이 시골 무지렁이 가 되는 것 같아서 아득한 실망의 세계에 잠기어 버리는 듯 도 하였다. 생각하면 서울 있는 사람이 한강에 나아가 보오 트를 타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 것만 지나간날 학 생시대를 추억하는 어린 처녀로서 더구나 시골 구석에서 몇 해에 한번이나 볼까말까한 처지에 있는 몸으로서는 다시 보 는 이 풍경이 힘차게 가슴 속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은 물론이다.

"왜 몸이 편치 않으서요?"

"................................."

소희는 대답도 없이 열어 놓은 차창으로 불어 들어오는 한 강의 시원한 바람을 얼굴로 받으며 검푸른 물결에 흐르는 보오트에 한가히 떠있는 흰 돛단배를 바라보았다.

차는 어느덧 철교도 지나고 용산역도 잠깐 들렀다가 경성 역에 닿는다.

"서울 서울, 십 오분 정차."

역부근의 외치는 소리가 높다. 내리는 사람, 마중 나온 사 람, 플랫트폼은 문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사람찾는 소리, 인사하는 소리로 와글와글 끝없이 혼잡하다.

소희는 준걸이와 같이 차에서 내리었다. 마치 정다운 부부 와도 같이.

그리하여 지정여관 깃발을 찾아 들어 전차로 황금정오정목 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여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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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은 소희가 떠난 뒤 나날이 초조해지는 자기의 심경이 이상히도 더한층 긴장해짐을 자기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소희가 멀리 서울의 외로운 객사에서 이 더운 여름 에 혹야 병이나 나지 않았나 혹은 무슨 실수가 있지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었다. 더구나 영철은 소희가 떠나기 전날 자기와 시내 건 너 논둑에 낮아 달빛 흐르는 여름밤을 거의 새워가며 이야 기하던 것이 생각되어 더한층 가슴이 타올랐다.

"저는 처음 정거장에서 선생님을 뵈었을 때 웬심인지 가슴 이 뭉클했었요."

"왜?"

"그건 저두 모르죠 머....."

"그래 나두 참말 소희씨를 일년만에 처음 볼 때 어쩌면 그 동안에 그렇게두 이뻐졌을까 하구 퍽 놀랬어요. 그리구 집 으로 걸어 들어올 때며 집에 와서 소희씨가 건넌방에 있을 때며 또 마루로 나와가지구 뒤로 돌아서 갈 때에 참말 나는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긴장된 눈초리로 바라 봤지요."

"아이참 그러면 저는 퍽두 흉잡혔겠네!"

"누가 흉잡으려구 바라봤나뇨?"

"그럼 왜 그렇게두 자세히 보셨어요?"

"너무도 이뻐서!"

"아이 거짓말만 하세요!"

"왜 거짓말요. 그럼 소희씨두 정거장에서 저를 보구 가슴이 뭉클했다는 건 거짓말야요!"

"그렇지만 남자는!"

"소희씨?"

영철은 다시 정색하고 불렀다.

"녜?"

"그게 참말입니까?"

"뭐요?"

"남자는? 그럼 거짓말쟁이란 말야요?"

"그런 이가 많은가봐요....."

"그래두 저까지?"

"그건 그렇잖겠지만....."

"소희씬 참으로 저를 믿어주십시오. 저는 맑은 양심으로 소 희씨를 사랑합니다. 저는 처음에 소희씨에게 지나온 과거를 들었을 때 너무도 가슴 깊이 소희씨를 동정했어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천애의 고아로 된 몸이 동서남북으로 유리하 면서도 꾸준히 공부를 계속한 그 열의와 굳은 의지를 무엇 보다 귀히 생각했지요. 그래 한 가지는 그 환경에 대한 동 정 한 가지는 그 불행한 환경에서 꾸준히 투쟁해 나온 그 열의와 인내심에 감복했어요. 그러기 때문에 저는 결코 소 희씨의 어여쁜 얼굴에 일시 취한 미친 나비가 아님을 믿어 주십시오....."

"소희씨!"

"녜?"

소희의 말 소리는 떨리는 듯 그러나 힘있게 들렸다.

"소희씨?"

"녜?"

"저는 진정으로 소희씨를 사랑하고 아낍니다."

"................................."

"소희씨 그것만은 믿어 주십시오. 오늘날까지 제가 결혼하 지 않은 것두 소희씨같은 현숙한 그리고 어여쁜 아내를 맞 이랴는 내 행복된 운명인가봐요!"

"................................."

"소희씨?"

"녜?"

"왜 대답이 없어요? 소희씨는 자꾸 소희씨가 가난한 사람 이래서 그리구 나는 돈 있는 사람이래서 그런 세상에 흔한 공식적 이론을 믿으시구 제가 일시 소희씨를 속이는 악만줄 만 아시지만 글세 그런게 아니래두 그래요."

"아-니요..... 저두 그렇게 믿지는 않아요."

"그러면 왜 제게 믿음직한 말씀을 해주지 않으십니까?"

"................................."

시냇물 소리가 고요히 달밝은 이밤 멀리서 처량히도 들려 온다. 논두렁의 맹꽁이 소리가 정적에 싸인 이 들에 요란히 들려 짙어가는 밤 공기를 흔들고 있다.

상현달은 은실을 흘리며 서편 하늘에 기울고 이슬 내린 밤 공기는 습기를 띠고 포근히 그들의 입은 옷을 적시고 있다.

"소희씨?"

"녜?"

"저 어머님께 말씀 드릴테야요!"

"뭘요?"

"우리들 약혼하겠다구!"

"온 천만에요. 그건 그건 안돼요."

"왜요?"

"그건 선생님의 행복을 위해서 안된 일이야요!"

"왜요?"

"가난한 사람은 결국 가난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어요!

저는 참으로 선생님을 존경하구 선생님을 사랑해요. 그렇지 만 저는 선생님과 연애를 한다거나 결혼을 한다는건 벌써 단념했어요!"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사실 저는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은 선생님이나 선 생님댁의 은혜를 평생을 두구 잊지 못해요. 그렇지만 돈 있 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나면서부터 그 한계가 다른 것이 니깐 결혼만은....."

"아니요. 그이를 의지가 굳은 청년으로 존경은 해두 사랑을 하거나 결혼을 하기에는 저와 너무도 성격이 맞지 않아요."

"그럼 참말루 소희씨는 저를 가까이 하지 않으시렵니까?"

"의식적으로 멀리하려구 생각해요. 만일 사랑의 꽃이 피는 날 저는 선생님을 불행하게 만들게 될테니깐요."

"그건 잘못이죠. 성격이 안맞거나 저를 이해할 수 없다면 몰라두 내가 좋은 환경에 있구 소희씨가 불행한 환경에서 자랐다구 사랑할 수 없다는건 이해할 수 없는 말야요!"

"................................."

영철은 끝끝내 소희가 자기 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젖은 듯한 검은 눈동자로 환히 비취는 달빛 아 래서 자기 얼굴을 말끄러미 치어다보며 방그레 웃음짓는 것 을 보고는 그만 말할 수 없는 욕정에 불타올라 두 팔을 훨 짝 버리고 소희 편으로 달려들어 허리를 끼어 안으려고 하 였다. 그러나 그 순간 소희는 날쌔게 몸을 일으켜 영철을 피하여 달음박질을 쳐버리고 말았다. 영철은 거기까지 생각 하자 얼굴이 갑자기 화끈 달아 오름을 자기 스스로 느끼었 다.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가? 그 때문에 이번에두 같이 서울을 간게 아닐까?) 하고 가지가지 생각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다시 정신을 수 습하려는 듯 영철은 마루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