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편집

오후 세시에 ‘안’이라는 당원이 찾아왔다.

“남의 이목도 있고 하니까 우리의 회포라든가 그런 것은 모두 이 뒤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용건부터 말합시다. ×× 서 고등계 형사 이필호의 지위 경찰기관 내의 신용 역량 등은 어떠오?”

표면 행상인과 고객의 지위에 있는 인준과 안은 너무 오래 담화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므로 오래간만에 만나는 동지로되 그 회포며 인사도 주고받을 겨를이 없었다.

“형사 중에 가장 수완이 있는 한 사람인 모양입디다. 학벌도 동경제대 출신이니만치 당당하고 정통으로 공부를 한 인텔리이니만치 다른 형사들과 같이 무식한 일이 적고 멋없이 건방지게 굴지 않고 무슨 일이든 담당케 되면 차근차근히 끝까지 캐어 들어가고─ 그러니깐 상부의 신임도 좋은 모양입디다. 사람이 상냥하고 교제성 있고 하니깐 동료들 사이의 인기도 또 괜찮은 모양이고….”

“민간의 평판은?”

“그것도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아요. 형사로서 민간에게 밉게 보지 않는 사람이 극히 적은데 필호는 멋없이 건방지게 굴지 않고 웬만한 데서는 ‘체’하지 않고 하니깐 민간 평판도 괜찮아요.”

“필호의 문제는 그만하고 다음 평판에는 내가 입국한 데 대하여서 경찰측의 관측은?”

“그 일에 관하여서는 경찰 측에서도 꽤 두통거리로 여기는 모양이에요. 첫째로 비밀히 잠입을 하시지 않고 공공히 들어오셨으니까 이것은 무슨 별다른 임무를 띠고 들어온 것은 아니리라는 의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만약 공공히 들어오신다 하면 신문사며 기타 유지 방면에도 입국을 알리셔야 할 터인데 그렇지도 않고 꾹 거처 숨어 계시기만 하니깐 이것은 공공히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의견이 일치치를 않은 모양이어요. 그리고 당분간은 단지 요시찰인으로 엄중히 감시만 하여 가면서 천천히 대책을 세우기로 된 모양입디다.”

“나 이외의 동지를 가운데 경찰의 주의를 받는 사람이 있수?”

“없읍니다. 이것은 참 감쪽같이 경찰의 눈을 기었읍니다.”

“그럼 이 아파트 문밖에는 내 미행 형사가 그물을 치고 있겠구먼.”

“금명간 알리리다. 제가 방금 보고 왔는데 아직까지는 없읍디다마는 ….”

“우리들의 이야기도 얼른얼른 진행을 시킵시다. 비누 한 개로 구를 만한 시간 안으로 이야기를 끝내어야겠으니…. 나는 경찰의 주의를 받아도 좋고 받는 편이 도로혀 좋을는지도 모르거니와 안 공이 주의인물 측에 섞이게 됐다가는 우리 일에 착오가 생겨.”

“무슨 지휘하실 일이라도 있읍니까?”

“있소. 긴한 일이 있어. 안국동 중학동 청진동 그 근처에 삭월세집을 구하여 보시오. 십 오륙 간쯤 되는 집으로 방이 널찍널찍하고 집만 깨끗하면 삭월세 사오십 원을 주어도 괜찮으니 지급히 얻어 보아 주시오. 명의는 내 명의로 하고 집을 얻어 놓거든 지급히 수리할 데를 수리를 하고 대문간에 커다란 널쪽에

─ 피아노 개인교수 서인준─

이라고 굵직굵직이 써서 걸고,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어디 피아노 고물을 팔려는 데가 있지나 않은지 이것도 알아보고….”

“그리고 또 다른 지휘는?”

“시재는 그것밖에 없소이다. 비누를 두 개만 내어놓고 가시오.”

비누 두 개를 탁자 위에 남겨 놓고 도로 짐을 어깨에 맨 뒤에 그들의 황황한 회견을 끝내고 안은 인준이의 아파트를 뒤로 하였다.

“나리 종종 들르겠읍니다. 이 다음에는 좀더 좋은 비누를 가지고 오랍쇼?”

“아니 좀더 나쁜 비누를 가지고 오우.”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인준이의 방문 앞에서 부러 큰 소리로 인사를 고하고서….

네 시에 인준이를 아파트로 찾아온 사람은 일견 보험회사의 권유인인 듯한─ 나이는 사십이 약간 지났을까 말았을까 하는 사람이었다.

양(楊)이라 하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이미 경찰의 주목을 좀 완화시킬 만치 되었으며 그 차림차림이라든지 동작이라든지 모두가 근검 착실한 사람으로 보였지 민첩을 제일 목표로 하는 결사의 당원으로 보이지 않는 점이 그의 장점이었다.

“양 선생은 1140477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뜻함인지 아십니까?”

인준이는 양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지만 양은 알지 못하였다.

인준이가 양에게 위탁한 임무는 그 숫자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길로 돌아다닐 때마다 주의하고 주의하여 살펴서 이 기괴한 숫자가 누런 토필로 적히어 있는 곳을 발견할 것 같으면 즉시로 그 숫자의 뒤를 밟을 것이다.

그 숫자는 No.1에서 시작되어 No.7로서 종결되는 것이며 숫자가 적힌 장소에서 그다음 숫자의 장소까지 거리는 백 보(삼 척을 일 보로 하여)인 것.

어디서든 그 숫자를 발견하기만 하면 즉시로 그 숫자가 지시하는 순서대로 따라가면 No.7 앞에서는 어떠한 간단하고도 비밀한 회견이 실행될 것이니 그 회견이 끝나도록 멀리서 잘 감시를 하고 회견이 끝난 뒤에는 No.7의 앞에서 먼저부터 기다리고 있던 괴한의 뒤를 밟아서 그의 숙소를 발견할 것. 그 괴한이 직접 자기의 숙소로 안 돌아간다 하면 밤이 깊도록 까지라도 그냥 뒤를 밟아서 어떤 일이 있든 간에 괴한의 숙소는 반드시 알아낼 일.

괴한을 미행하다가 만약 괴한에게 기수채이면 매우 위험한 일이 생길는지도 알 수 없으니 주의에 주의를 더하여 결코 괴한에게 기수채이지 않도록 할 것.

그리고 그 기괴한 숫자는 대략 어떤 장소가 비교적 많이 이용되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서도 인준이 자기가 하는 한도 안에서 상세히 양에게 설명하여 주었다.

양은 이러한 지휘를 받고 인준이의 앞을 물러 나갔다.

양이 아파트를 찾은 것은 네시 정각, 아파트를 뒤로 하고 도로 돌아간 것은 네시 십구 분─ 겨우 십구 분이라는 짧은 시간 새에 인준이는 그만한 일을 순서 바르게 양에게 지휘를 하였고 양은 또한 넉넉히 알아듣고 물러간 것이었다.

양을 돌려보내고 피곤한 몸을 안락의자의 위에 내어 던질 때는 인준이의 마음에는 이제 차차 전개되려는 투쟁에 대한 투심이 차차 차차 더 강렬히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길 줄을 모르는 커다란 기관과 인제 정면으로 충돌치 않을 수가 없는 앞길에 대하여 일종의 암운과 아울러 자기의 수완에 대한 긍지도 무럭무럭 그의 마음에 일어났다.

전 세계의 경찰이 그 새 여러 해를 두고 조사하였어도 그 정체를 들추어내지 못한 놀라운 단체와의 단병 접전─ 그 결과를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전 조선의 경찰력보다도 자기 일개인의 지력이 훨씬 LC당에게의 대항력이 세리라는 것은 단언할 수가 있었다.

‘저쪽이 완력과 세력으로 달겨 들면 이쪽은 지력이다. 누가 이기나. 최후의 승리자의 월계관은 뉘게 가겠느냐. 어디 두고 보자.’

입에서 푹 내어 뿜은 담배 연기가 머리 위에서 동그랗게 사라지는 것을 우러러보면서 인준이는 빙긋이 웃었다. 제삼의 회견자─ 다섯 시에 올 동지를 기다리면서….

“영감 어디 식모를 부탁한 데가 계십니까.”

다섯 시 이 분 전 아파트의 수위가 들어와서 인준이에게 이렇게 물을 때에 인준이는 그렇노라는 뜻을 대답하고 당자가 왔으면 즉시로 이 방으로 들여보내라고 하였다.

소위 식모 후보자가 들어왔다. 나이는 서른너덧 손이 모두 터진 것이라든지 그 옷차림이라든지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식모 재물이었다.

수위도 도로 물러가고 조용한 방에 마주 앉은 인준이와 식모 후보자. 인준이는 눈을 들어서 그 야윈 얼굴을 먼저 쳐다보았다. 그런 뒤에 등이 튼 손을 보았다.

처창(悽槍)한 표정─ 인준이의 눈가에 윤기가 돌았다.

“누님 얼마나 고단하셔요.”

“고단이야 말할 것 있나?”

이번의 일을 계획하기 위하여 벌써 일 년 전부터 윤 백작 댁에 식모로 들어가 있던 서 박사의 손위의 누님─.

“일 년 새에 몰라보게 되셨읍니다.”

기괴한 환경 때문에 기괴한 입장으로 일 년 만에 만나는 오누이─ 서로 말문이 막혀서 잠시 마주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골육의 정─ 만 리를 격하고 서로 안부를 근심하던 오누이로되 지금 마주 앉아서도 큰 소리로 누이야 오라비야 할 수도 없는 처지가 그들에게는 괴로웠다.

“누님 다른 모든 사사 사정은 우리가 장래에 개선을 한 뒤에 서서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리의 임무부터 먼저 토의하십시다.”

인준이가 눈을 푹 내려뜨며 이렇게 말할 때에 서씨 부인도 얼굴을 돌리며 그 뜻에 찬동을 하였다.

“누님 × 월 ×× 일 백작 댁 후당에 괴변이 생긴 날 누님도 무론 계셨지요?”

“그럼 내당에 있었지.”

“이튿날 새벽차에 경성에 도착하였읍니다. 하는 참 즉시로 백작 댁을 찾아 갔읍니다. 백작 댁 사자 윤찬두를 만나서 한 삼십 분간 이야기했읍니다. 그동안도 행여 누님의 양자가 어디 보이지를 않을까 해서 주의를 했지만 보지를 못했읍니다.”

“나야 내실에서 심부름하는 사람─ 양관에는 한 달에도 한두 번 밖에는 나갈 기회도 없다네”

“그 날 그 일에 관해서 누님 혹은 내실에서 무슨 의논하는 이야기를 들으신 일이 없읍니까.”

서씨는 눈을 감았다. 잠시 무슨 생각을 하였다. 지금 비록 어떤 집의 하인으로 있으나마 외국서 고등한 학문을 닦은 그는 비교적 감정이 단순한 조선 옛날 가정 안에서 무론 듣고 본 바가 적지 않았을 것이었다.

“박사.”

드디어 누님이 입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 그 일이 꽤 작지 않은 일인데.”

“네 작지 않은 일인 줄은 짐작합니다. 그러기에 경성 도착한 새벽으로 마침 내게 있던 어떤 형사의 명함을 이용해 가지고 윤찬두 씨를 방문했읍니다. 그렇지만 윤찬두 씨는 그 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입디다.”

“모를 걸세.”

“모를 게라 누님은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십니까. 누님께는 무슨 짐작이 가십니까.”

“여보게 박사, 무식한 여편네들이 모여 있는 내실의 일이라 똑똑히 알 바는 없지는 내가 그 새 탐색한 바와 자네가 아는 바를 전부 뭉쳐서 연구해 보면 혹은 무슨 짐작이 날지도 알 수가 없데?”

무슨 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본부에서 ‘이 사람이면’ 하는 생각으로써 일 년 전부터 조선에 잠입케 하니만치 상당한 비판안을 가진 누님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에 인준이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님, 누님 아시는 건 말해 주세요. 그리고 연구하고 의론해 보십시다.”

인준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그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 있는 이상 이렇다 저렇다 끈끈히 캐서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 사건(권총 사건)이 있기 이삼 일 전에 그 집에 이상한 일이 있었네.”

“네? 어떤 일이오니까?”

이런 질문에 대하여 서씨가 대답한 바는 대략 이러하였다─.

권총 사건이 있기 전 이삼 일 전에 웬 사람 하나가 그 집 노마님을 찾아왔다.

노마님은 웬만한 사람은 만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본시 공주 기생으로서 노백작이 공주 감사 적에 첩으로 삼았던 사람인데 본부인은 소생이 없이 세상을 떠나고 그 기생이 사자(嗣子), 지금 찬두를 낳았기 때문에 저절로 정실이 되고 이래 삼십 년간을 노백작의 부인으로 지내는 사람이다.

찬두가 거처하는 양관은 신식 생활이지만 노마님이 거처하는 내실은 조선 양반집 구식 생활이니만치 그 위에 노마님의 전신이 기생이니만치 그다지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무당이나 거기 유사한 계급의 사람만 간간 드나드는 이 내실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 사람은 노마님과 한 삼십 분간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이 돌아간 뒤에 노마님은 안절부절 매우 낭패한 양을 보여서 집안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하게 생각케 하였다.

노마님은 본시 곁에 사람이 같이 자는 것을 싫어하여 늘 혼자 잤었는데 그 날부터는 무엇이 무섭다고 침모와 몸종을 불러들여서 같이 잤다.

그로부터 이삼 일 뒤에 그 사건이 돌발하였다.

노백작이 거처하는 후당에서 생긴 일이며 아무 피해도 없는 일이라(놀라기는 하였겠지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마님은 그 소식을 듣는 참 기절을 하였다. 깨어나면서 즉시로 누가 온 일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 애─ 그 애.”

누구를 가리킴인지 분명히 알 수 없으되 이런 말이 몇 번 나왔다.

그 뒤부터 노마님(금년에 예순 살)은 무엇에 겁뜬 모양으로 사람을 경계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상해라는 곳이 어떤 곳이냐고 묻고 하였다.

내실에 많고 많은 하인 중에 노마님이 진실로 신임하는 하인은 하나도 없었다. 도로혀 그 새 육십 년간을 노백작을 섬긴 충복 완쇠를 신임하여 때때로 완쇠를 불러들여서는 무슨 이야기를 한참씩 하고 하였다.

그 하인으로 집안에 특수한 임무를 띠고 들어가 있는 서씨는 완쇠와 노마님의 의논을 엿들어 보려고 꽤 노력하였지만 밖에까지 새게 큰 말로 이야기하는 때가 없으므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한 가지 ‘김봉덕’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노마님과 완쇠의 새에 몇 번 왕래 되는 것을 들었을 뿐이었다. 상당한 교양과 관찰력과 탐정안을 가진 서씨로되 그 거처하는 곳이 원체 내실이고 양관과의 교섭이며 후당과의 연락이 그다지 없느니만치 이 이상 더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띠고 들어온 용무를 다하고자 그새 꽤 노심을 하지만 아직껏은 거기 대하여는 알 수 없다. 단지 탐색하는 물건이 내실에도 아니요 후당에도 아니요. 찬두가 거처하는 양관 어떤 곳에 있다는 것을 알 뿐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 이것이 누님에게서 인준에게 한 말의 대략이었다.

그동안 인준이는 한마디로 말을 끼지 않고 잠자코 듣고 있었다. 들으면서 듣는 동안 그 사건을 이해하려 하였다. 사건의 이면을 꿰뚫어 보아서 이면에 복재한 일을 보려 하였다.

“누님, 누님은 아직 아시지 못하시겠지만 사건이 조금 중대해졌읍니다. 누님도 짐작하시는 LC당 말씀이올시다. 그 LC당이 윤 백작을 엿본다는 확증을 얻었읍니다. 십칠호에게 지급히 잠입하라는 전보는 오늘 아침에 놓았읍니다마는 LC당은 경찰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공공히 진행시키느니만치 인제 자칫하다가는 윤 백작 댁에 검찰의 보호가 내릴지도 모르겠읍니다. 그 보호가 내리기 전에 우리는 우리 목적을 다해야겠읍니다. 그러니깐 누님도 그만치 알아 주시고 좀 급히 일을 진행시켜 주세요.”

“내 마음이야 박사에게 지지 않도록 급하지만 양관과의 그 새이 하도 적으니깐 참 딱하네그려.”

인준이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한 뒤에 비로소 머리를 들었다─.

“누님”

“왜?”

야윈 얼굴─ 거친 손─.

“미안합니다. 사업을 위해서올시다. 괴로움을 잊어 주세요. 얼마나 고단하십니까?”

누이도 오라비를 쳐다보았다─.

“그런 말은 다시 말아라. 내 괴로움이나 네 괴로움이나 피차 일반─ 그런 일을 탓할 때가 아니로세.”

“그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다른 것 새로 새 것으로 누님께 책임을 지울 것이 있읍니다.”

누이도 눈을 들었다─.

“무엔가?”

“다른 것이 아니라 백작 노부인께 좀 더 접근을 하십쇼. 우리 목적이 단순할 때는 부인은 쓸데도 없는 인물이었지만 LC당이 간섭하기 시작한 지금에 있어서는 좀 더 접근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 김봉─.”

“김봉덕이.”

“네 그 김봉덕이가 어떤 인물인지 이번 사건과 어떤 관계를 가진 인물인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지금은 도무지 알 수 없읍니다.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읍니다. 누님 그 책임을 맡아 주세요. 중대한 문제올시다. 만약 그 김봉덕이라는 인물이 LC당의 관계자요 겸하여 이번 사건의 이면에 있는 인물이라면 그 인물이 백작부인과 어떤 관련을 가졌는지 반드시 알아보아야겠읍니다.”

“박사나 내가 목숨을 내어놓고 들어와 일하는 사람들─ 일을 위해서야 이것저것을 가리겠나? 그것을 알아보라면 무론 알아볼 것이지만 우리 목적물의 소재 장소는 누가 책임지고 알아보겠나?”

“그것도 누님이 알아주시면 더욱 좋겠지만 지금 더 중대한 것은 새로 생겨난 새 문제올시다. 그것을 처리해 나가면서 그 문제를 서서히 연구해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뿐더러 그 문제는 또 그 문제로서 달리도 알아볼 길이 있겠지요.”

오누이의 회견은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일 년을 서로 만 리에 격하여 있던 오누이로서의 정희는 한 마디도 사괴지 못하였다.

적적한 듯이 서로 바라보는 눈과 눈─.

“누님.”

“박사. 남의 집에 심부름하는 몸 출입도 자유롭지 못해. 부탁한 일은 어떻게 통지하라나?”

“행상인 부인용품을─ 파는 여자 행상인을 보내리다. 물어 보셔서 성이 팽씨라거든 그 사람에게 편지를 전해 주세요. 시급한 일이 있으면 전화로 알려주세요.”

“객지에 무엇보다도 몸조심해서 지내게.”

“누님─.”

“아아. 환경이 환경일 것 같으면 이런 뜻 아닌 작별도 안 하련만….”

초라한 행색으로 다시 윤 백작의 집으로 돌아가는 자기의 누이의 모양을 서인준 박사는 유리문을 통하여 굽어보았다. 그 뒤 입에서는 기다란 탄식성이 나왔다.

서인준 일행이 조선에 잠입한 그 목적은 비교적 단순한 것이었다.

경편하고 간단하고도 비교적 큰 값이 가는 물건이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조선 땅 안에 놀랄 만한 거대한 금액이 감추여 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윤 백작 집 어떤 곳이다.

경찰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고 단지 노백작과 그 아들 윤찬두 두 사람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 이 거대한 재화를 감쪽같이 훔쳐내어서 상해까지 릴레이식으로 전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경우에 의지해서는 한 사람쯤의 희생자는 내기로까지 예정이 된 것이다.

─그들의 오 년간의 계획─

그것은 그 재화를 훔쳐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만한 많은 재물을 훔쳐내기 편이하게 한곳에 모으는 데 있었다.

조선 사회의 각 방면에 통해서 동지를 가지고 있는 그 당 본부에서는 그새 오 년간을 윤찬두를 움직여서 백작 댁의 거대한 재산을 모두 경편하고 간단한 외국 공채로 바꾸도록 만들었다. 이리하여 오 년간 그 상세한 금액은 알 수가 없으되 약 사십만 원 이상의 거대한 금액이 외국 공채와 교환하여 윤 백작 집 어떤 곳에 감추여 있게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만한 오 년간의 고심 끝에 그들은 이에 그들의 제이단의 행동에 착수를 한 것이었다.

적지 않은 재물을 간단코 경편한 물건으로 교환하게 하고 그것을 또한 한곳에 모아 놓은 이상 인제는 제이단으로 그것을 훔쳐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리하여 본부의 밀령을 받은 몇 사람은 벌써 일 년 전부터 한 사람 한 사람씩 차례로 몰래 잠입을 하여 가지각색의 일에 달려서 장래 여차하는 날의 릴레이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하고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일면 그 단의 여자 지도자인 서 박사의 누님은 벌써 일 년 전에 조선을 잠입하여 어떻게 어떻게 주선을 하여 윤 백작 집 식모로 들어가서 그새 일년간을 그 공채가 어느 곳에 감추여 있는지를 탐색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기(㙨)가 이미 익은 뒤에 서인준 박사가 조선에 들어왔다. 비밀히도 아니요 공공히 들어왔다.

일개의 무명한 당원이 아니요 당당한 간부로서 비밀히 잠입을 하다가는 붙들릴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적지 않은 일에 무명한 당원에게 전 책임을 지워서 들여보낼 수가 없었다. 공공히 조선에 들어와서 찾아드는 경찰원과도 격의 없는 교제를 계속해 가면서 일변으로 그 보물의 은닉처를 확실히 알아내어 가지고 전광석화와 같이 그것을 훔쳐내어 상해까지 릴레이식으로 보내고 경찰에서 이 도난 사건을 발견할 때쯤은 자기네들은 상해서 축배를 들고 있을─ 이런 플랜을 세웠던 것이었다.

불행히 일이 진행 도중에 경찰에 알린 바 되면 한 사람쯤의 희생자를 낼지라도 절도 미수범에 지나지 못하는 이번 사건은 그다지 긴 옥중 생활을 하지 않고 또다시 백일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지라 미전에 경찰에 발각되는 날에 방비키 위해서 당원끼리도 누구누구가 조선에 잠입하였는지를 알리지 않았다. 서인준 박사 혼자가 일을 알고 그 중추가 되어 장차 좌우로 지휘를 할 것이었다.

그렇듯 비교적 간단하고 단순한 줄 믿었던 사건이 뜻밖에도 LC당의 참가로 복잡미를 띠게 되었다. 이전에는 경찰의 눈만 피하였으면 될 사건이었는데 인제는 LC당과 경쟁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인준에게는 이것이 역겨웠다. 이전에 세웠던 플랜을 헐어 버리고 다시 새로이 플랜을 세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LC당의 참가 때문에 낡은 플랜을 꺾인 서 박사는 그날 밤 다시 새 플랜을 세우기 위하여 전등 아래 앉았다.

형사 이필호를 얼마만치 이용치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여기 가장 문제 되는 인물은 완쇠라는 늙은 노백작의 충복이었다.

얼마만한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번 문제의 열쇠의 일부분은 분명히 가지고 있는 듯싶었다.

무론 LC당의 관계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까 누님의 말로 미루어 보더라도 소위 김봉덕이라 하는 인물의 왕래가 있고 사건 직후에 김봉덕의 이름이 백작 노부인과 완쇠의 새에 왕래되었으며 짐작컨대 사건 이삼일 전에 노부인을 방문하였었다는 사람이 김봉덕인 듯하며 완쇠에게 접근하여 완쇠의 입에서 김봉덕의 정체를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금 막연히 당이 LC 조선에 잠입해 있는 줄을 알고 그 LC당이 백작집에 관계를 하려는 것은 짐작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물적 증거는 한 개도 없다, 이것을 얻어 내기 위해서는 인력도 필요하지만 어떤 찬스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완쇠를 추구한다 하는 일이 얼마만한 성과를 볼지는 예측할 수 없으되 찬스라 하는 것이 거기서 생겨날지도 알 수 없다.

완쇠를 추구함에 있어서는 서인준이라는 자기의 이름보다는 경찰관이라는 명색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더 첩경이고 효과도 많을 것이다.

─ 이필호를 이용할 필요가 여기 생기는 것이었다.

마음대로 노백작이나 백작 부인을 심문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그것은 경찰로서도 무슨 확실한 증좌가 있기 전에는 못할 노릇─ 하물며 인준 자기는 염이나 낼 일일까. 그 대신 육십 년간을 노백작에게 시종을 들었다는 완쇠를 추구하면 혹은 무슨 찬스가 생길는지도 알 수 없다.

장차 취할 플랜은 완쇠를 추구하여 완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가지고 세울 것이다.

이리하여 인준이는 이튿날 아침 일찌기 형사 이필호를 필호의 집으로 찾아갔다.

비공식으로 완쇠를 다시 한번 심문하여보자.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인준 자기도 입회를 해서 안쇠의 대답을 들어 보자. 완쇠의 대답으로 미루어서 혹은 LC당의 관계 유무를 알지도 알 수 없으니 만약 완쇠를 심문하여 거기서 LC당의 관계를 알게 되면 아는껏 필호에게 그 재료를 제공하마─ 이만한 구실로써 필호를 달래서 함께 백작 댁에 가기를 약속하였다. LC당의 조선 잠입에 관해서 과대한 호기심을 가진 인준에게 대하여 당연히 형사 이필호는 의아한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 대하여 인준이는

“단지 호기심에 지나지 못하오. 아시다시피 나도 LC당에 관해서는 연구를 하느니만치 이번 기회에 좀더 깊이 알아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외다. 또 설혹 내게 다른 목적이 있다 해도 조선 경찰에서는 내 일은 내 일대로 따로 시찰하고 LC당에 관해서는 내 덕에 조금이라도 더 깊이 알면 그만치 이익이 아니외까? 내 임무에 관해서는 경찰과 대립이 되겠지만 LC당에 대해서는 공동 전선을 펴고 함께 연구하고 그들이 행하려는 일을 방해해 봅시다그려.”

이렇게 필호에게 말하여 좌우간 완쇠 심문에는 입회할 승낙을 들었다. 필호의 입장으로 보더라도 인준을 입회시켜서 인준이의 덕으로 조금이라도 LC당을 아는 데 이익이 되면 그런 다행이 없을 것이고 인준이를 입회시킨댔자 별다른 방해는 생기지 않을 듯하므로 그러기로 승낙을 한 것이었다.

오후 세시에 동반하여 윤 백작 집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인준이는 필호와 작별을 하고 필호의 집을 나섰다.

인준이가 필호와 함께 윤 백작 댁을 방문한 것은 약속하였던 오후 세 시였다.

이전 어떤 날 이필호의 이름을 도적하여 가지고 왔던 인준에게 대하여 윤찬두가 의아한 눈을 던질 때에 필호가 앞서서 그럴 듯이 인준이를 찬두에게 소개하였다.

조용한 방을 하나 내어 가지고 인준이와 인제 심문당할 완쇠 세 사람 밖에는 그 근처에도 오지를 못하게 하여 달라고 주인 찬두에게 부탁을 하고 세 사람은 그 방에 들어갔다.

인준이는 거기서 비로서 완쇠의 인물을 보았다. 나이는 팔십 세 내외─ 오랫동안 조선 양반의 집에 하인으로 있었으니만치 인종과 굴복과 정직의 표정이 감출 수 없이 나타나 있었다.

“이 공.”

인준이는 필호를 찾았다.

“네?”

“물어볼 일을 내 물어볼 테니 이 공은 잠자코 듣고 계시오. 그리고 의아한 점이 있거든 내게 알려 주시오.”

“그럽시다.”

이러한 약속 아래 경찰관 이필호의 대신으로 인준이가 완쇠와 마주 앉고 필호는 조금 멀리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좀 평안히 마음 놓고 앉게.”

경관의 앞이라 하여 송구히 읍하고 앉았는 완쇠에게 대하여 인준이는 온화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자네가 완쇠지?”

하고 물었다.

“대감께 몇 해 시종들었나?”

“금년까지 육십이─ 삼 년이올시다.”

“일가친척이라도 있나?”

“없읍니다.”

“자손은?”

“자손은 있었는데 다 죽었읍니다.”

여기서 잠시 완쇠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인준이는 다시 물었다─.

“지금 믿고 의탁할 분은 대감 한 분밖에는 없네그려.”

“네 그렇습니다.”

“자네도 아다시피 불길한 일이 대감 신변에 생겨서 그것 때문에 늙은 자네를 이렇듯 귀찮게 구는 게니깐 그런 줄 알고 일호도 은휘치 말고 아는 대로 다 말해 줘야 하네.”

완쇠는 눈을 푹 내려 떴다. 얼굴에 너무도 주름살이 많으므로 그의 표정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자 첫째로 물을 것은 자네가 며칠 전에 저─.”

인준이는 필호를 가리켰다.

“이 형사께 고백한 그 이상은 조금도 더 아는 것이 없나?”

인준이의 날카로운 눈은 완쇠가 한순간 주저하는 것을 그저 넘기지 않았다. 남아 찾아보기 힘들만치 한순간 주저한 뒤에 완쇠는 대답하였다─.

“네. 그밖에는 알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말이 채 맺기 전에 인준이의 질문─ 질문이라기보다 호령이 나왔다─.

“무슨 말! 자네가 김봉덕이를 모른단!”

푹 내려떴던 완쇠의 눈이 번쩍 띄었다. 공포라고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기색이 한순간 이 늙은 충복의 얼굴에 넘쳤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은 도로 천연한 낯이 되었다.

“김봉덕이는 소인도 짐작은 합니다마는 김봉덕이는 이번 일에는 관계가 없읍니다.”

없어? 없다고 단정하는 이상에는 이 사건의 이면을 이 늙은이는 약간 짐작을 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완쇠의 대답을 듣고 재쳐 질문을 던질 때는 인준이의 음성도 약간 흥분되었다─.

“없다니 어떤 증거로 없다고 단정을 하나?”

“김봉덕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올시다.”

“무얼?”

“김봉덕이는 지금부터 꼭 사십 년 전에 죽은 사람이올시다.”

완쇠는 눈을 푹 내려뜬 채 이렇게 대답하였다.

분명히 기대에 어그러진 대답이었다. 인준이의 추측으로는 그 날의 괴한이 김봉덕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하였다. 그랬더니 지금 완쇠의 말을 듣건대 봉덕이는 사십 년 전에 벌써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라 한다. 그리고 완쇠의 표정으로 보아서 그것이 결코 거짓말이 아닌 듯싶었다.

“완쇠.”

“네?”

“우리들이 자네를 시끄럽게 구는 것은 우리 일이라기보다도 백작 댁의 복지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짐작하겠지?”

“네. 소인도 그건 압니다.”

“자네는 사고에 무친한 사람─ 대감 댁만 충실히 섬겨야 할 줄도 알겠지.”

“아다뿐이오리까? 대감 댁이 불행하시면 소인은 갈 곳도 없읍니다.”

“그러면 다시 묻거니와 김봉덕이는 분명히 죽었나?”

“네 소인의 눈으로 보았읍니다.”

완쇠는 대답을 주저하였다. 주저하는 기회를 타서 인준이의 질문이 뒤따라 내렸다─.

“어때? 눈으로 보았다니 자네 눈앞에서 죽었나?”

완쇠의 늙은 몸이 약간 떨리기 시작하였다.

“나리 그것뿐은 소인의 입으로 말씀하지 못하겠읍니다.”

“못하겠단─ 차마 못하겠단 말인가 혹은 다른 뜻이 있는 말인가.”

완쇠는 대답치 않았다. 늙은 눈을 푹 내려뜨고 먹먹히 있을 뿐이었다.

인준이가 말을 계속하였다.

“완쇠, 짐작해 보게. 우리는 벌써 김봉덕이라는 이름까지 알아냈어. 그것을 더 추구하자면 대감이나 혹은 노부인을 취조하면 쉽게 나올 말이야. 그렇지만 할 수만 있으면 연로하신 대감께까지 누가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사건을 삭히려고 자네게 물어보는 게니깐 자네 아는껏 대답해 두는 것이 자네의 이 집안에 대해서의 충성일세. 자네 말해 보게. 분명히 김봉덕이는 자네 눈앞에서 죽었나?”

완쇠는 비로소 결심한 모양이었다. 늙기 때문에 몽롱하게 된 눈을 들어서 인준이를 보았다─.

“나리.”

“응.”

“바른대로 아뢰겠읍니다.”

“…….”

“김봉덕이는 옥사(獄死)를 했읍니다. 소인은 그때 대감을 따라서 공주 감영에 있던 때올시다.”

알아들었다.

“응 알겠네. 대감께서 충청 감사 적에 김봉덕이가 옥사를 했단 말이지?”

“네.”

“무슨 죈가?”

“…….”

“또 대답치를 않나. 자네가 대답치를 않으면─.”

“아뢰겠읍니다.”

“그래.”

“어떤 기생 한 분과 가까이 지내기 때문에─ 김 영찰─ 김봉덕이는 그때 영찰이었읍니다. 김 영찰은 어떤 기생과 가까이 지내기 때문에 사또님께 노염을 사서 그렇게 됐읍니다.”

“그 기생은?”

“네. 대감께 수청드는 기생이었읍니다.”

알았다. 그 때 공주 감사이던 노백작에게 수청드는 애기(愛妓)의 정부(情夫) 되는 탓에 봉덕이는 백작─ 당시 충청 감사에게 노염을 사서 황천의 길을 떠나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여기 의문되는 점은 그때의 정사(情事)와 지금의 이 괴변의 새에는 무슨 유기적 연락이 있나? 그때의 수령들에게는 그 비슷한 일은 비일비재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삼십여 년을 지난 오늘날의 권총 사건과 무슨 유기적 연락을 가졌나.

인준이가 알고자 하는 바는 결코 그런 고담이 아니다. 수일 전 백작 댁 후당에서 생겨난 권총 사건과 그 배후에 있는 LC당의 활약 범위를 알고자 하는 배다.

완쇠의 말을 듣고 이 뒤 질문의 순서를 작정키 위하여 인준이는 잠시 머리를 기울이고 생각하였다.

“완쇠.”

“네?”

“내가 인제 묻는 말은 자네 처지로는 매우 대답하기가 거북할 테야. 그렇지만 이것도 모두 주가(主家)를 위해서 하는 일인 줄 알고 은휘치 말고 말해 주게.”

“네.”

“자, 그때 그 기생이 말일세. 그 기생이 김 영찰에게 마음이 있는 걸 대감이 위력으로 끄을어 왔나? 혹은 대감께 더 마음이 있었나. 그때 시중든 자네니까 짐작이 가겠네그려.”

완쇠의 머리는 차차 더 숙여졌다. 좀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가?”

“소인은 그런 건 알 수가 없읍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사또께 친히 시중을 든 자네가 모를 까닭이 있나?”

완쇠는 대답치 않았다. 한참 뒤에 완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뚱딴지 말이었다─.

“나리 소인을 죽여 줍쇼.”

“뭘?”

“소인을 죽여 줍쇼. 소인은─ 소인은─.”

늙은 눈 좌우편으로는 눈물이 흘렀다.

“완쇠, 정신을 가다듬게. 대감께 큰 문제일세. 자네 말 한마디로 좌우를 결정이 되는 일일세. 바른대로 대답해 주게. 우리 짐작 같아서는 그 기생이 사또보다도 영찰에게 더 마음을 두었기 때문에 사또의 노염을 사서 그런 혹 형을 당한 듯싶은데 어떤가?”

완쇠는 대답치는 않았다. 그러나 그 표정으로써 인준이의 말을 시인하였다.

한 가지의 말은 대답을 들었다. 인제는 그 둘째 대답을 짜낼 차례다.

“김 영찰과 그 기생의 새에 후사가 있나?”

“없었읍니다.”

단연한 대답이었다.

“없었어?”

“네.”

“분명히 아나?”

“네… 분명히 압니다.”

대답은 하였다. 거짓말인 듯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준이는 그 단연한 대답 중에서 일말의 의혹점을 발견하였다.

“자네 혼자 생각으로 없는 줄 아나. 혹은 다른 사람도 분명히 없는 줄 아나.”

“대감께서도 그렇게 아십니다.”

“부인은? 자식의 생산 여부는 부인이 제일 정확히 아는 바니깐….”

완쇠의 낭패한 태도는 여기서 극도에 달하였다. 이 기회를 타서 인준이는 필호를 돌아보았다─.

“이상 완쇠를 심문하느니보다 노부인을 경찰서로 소환을 해서 취조하는 편이 첩경일 것 같소이다.”

과연 거탄이었다. 낭패하여 어쩔 줄을 모르던 완쇠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

“나리.”

“그래서.”

“소인이며 대감이며 그 김 영찰에 후손이 없는 줄 분명히 믿고 있었읍니다. 지금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소위 김 영찰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이 대감을 찾아왔었읍니다.”

“야반에 후당으로 찾아온 그 괴한 말이지!”

승인하였다.

여기서 더욱 놀란 것은 형사 이필호였다.

위혁과 사리를 들어서 노충복의 입을 이만치 열어 놓은 인준이의 수완에 놀랐다기보다 사건의 진상의 기괴함에 놀랐다기보다─ 인준이는 어떤 길로 이만치 노충복을 심문할 재료를 얻어 내었는가 하는 점에 놀랐다.

“그 일이 있기 이삼 일 전에 노부인을 방문한 일도 있지? 그 소위 김영찰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말일세.”

역시 승인하였다.

“자네는 그 인물을 보았지?”

“소인은 못 보았읍니다.”

“그럼 누구누구가 보았나?”

“…….”

“노백작도 보셨나?”

“밤중이라 음성만 들으신 모양이올시다.”

“무론 노부인은 보셨을 것이니까 말한 것이 있겠지”

“…….”

이것도 승인하였다.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인준이는 이제 물을 말을 생각하였다.

“완쇠.”

“네?”

“그때의 그 기생이 지금의 찬두 씨의 자당 되는 노부인이지?”

“아니올시다.”

“아니란!”

“……!”

“다시 물어. 아닌가!”

“…….”

아까 들리었던 완쇠의 머리는 도로 수그러졌다. 늙은 눈에서는 분명히 눈물이 흐르는 모양이었다.

“나리 소인을 죽여줍쇼. 이 이상 더 말씀할 수가 없읍니다. 대감께는 더 말씀할 필요도 없거니와 마님께도 사십 년간을 은공을 입은 몸이올시다. 소인의 입으로는 이 이상 더 말씀할 수 없읍니다. 용서해 줍쇼.”

인준이는 완쇠를 바라보았다. 충실하게 생긴 완쇠였다. 그간 육십 년간을 자기의 몸을 의탁한 이 집안의 명예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다시 입을 열지 않을 것을 짐작하였다.

“그럼 이 이상 이 사건에는 더 물어 안 보마. 그 대신 다른 것을 물을 테니 아는껏 대답해 주게.”

“…….”

“이즈음 대감의 건강은 어떠신가?”

“괜찮으신 모양이올시다.”

“밤에 잘 주무시나?”

“밤에는─ 워낙 노체라 소인이 늘 곁에서 수족을 쓸어 드립니다.”

“때때로 일상(日常) 필요한 말씀 외에 하시는 말씀이 안 계신가?”

“글쎄올시다.”

“이상한 일이 있는 직후에는 대감 방 앞에는 하인 네 명이 지키고 있었지?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그냥 지킵니다.”

“그건 대감에게서 그만두라시는 영이 내리지 않아서 그렇게 하는 겐가 혹은 대감께서 그냥 지키시라는 영이 내렸나?”

“대감의 지휘올시다.”

알만치는 알았다. 여기 필호만 없으면 좀 더 물어보고 싶은 일도 있고 자기가 물으면 넉넉히 대답을 자아낼 만한 자신도 있지만 필호가 지키고 있으므로 인준이는 이만치 하여두고 완쇠와의 회견을 끝내고 필호와 함께 그 방을 나왔다.

그러나 나왔다가 즉시로 그 방에 담배 물부리를 놓고 나왔노라는 핑계로 도로 달려 들어갔다.

들어가 보매 완쇠는 아직도 무슨 생각에 잠긴 듯이 머리를 푹 수그리고 아까의 자리에 앉았는 것이었다.

인준이는 완쇠의 곁에 갔다. 그리고 입을 완쇠의 귀에 갖다 대고 물었다─.

“말하자면 지금 윤찬두 씨와 며칠 전에 왔던 괴한과는 이부(異父) 동생이지?”

“아니올시다. 그분은 대감께 오시기 전까지는 생산한 일이 없었읍니다.”

“그럼 정실 소생일까?”

“글쎄올시다. 김 영찰은 전처(前妻)도 소생 없이 사별하고 홀몸으로 지내다가 그 일을 당했읍니다.”

“그럼 그날 밤 그 괴한은 누구겠는가 말이야.”

완쇠의 입이 비로소 열렸다─.

“글쎄올시다. 소인도 의아하게 여기는 바지만 부인도 며칠 전 그때야 비로소 그런 사람이 있는 줄을 알았읍니다. 소인도 부인께 듣고야 처음으로 알았읍니다.”

“그 사람은 지금껏 상해 있었다지?”

완쇠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러한 간단한 두세 가지의 질문을 더 한 뒤에 인준은 제 호주머니에서 담배 물부리를 꺼내어 가지고 필호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윤찬두에게 향하여 완쇠를 조용히 만나게 할 기회를 지어 주었음을 감사하고 이후에도 필요가 있으면 또 와서 폐를 끼치겠다는 예방선을 쳐놓은 뒤에 필호와 동반하여 윤 백작 댁 양관을 나섰다.

“박사!”

아직껏 선생이라 부르던 필호는 찬두의 집에서 나오면서도 인준이를 박사라 찾았다.

“?”

인준이가 눈을 굴려서 필호를 보매 필호의 얼굴에는 존경의 염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박사 여러 말씀을 여쭙지 않겠읍니다. 저도 조선 경찰계에서는 그래도 수완 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인데 제가 경찰의 힘을 빌어서 완쇠를 심문한 때도 아무것도 발견치를 못했읍니다. 박사는 그 김봉덕이라는 이를 어디서 얻어 내셨읍니까?”

인준이는 미소하였다.

“내게는 또 내 탐색 기관이 따로이 있지요.”

“박사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저도 아까 곁에서 함께 듣고 혼잣 의견은 만들어 놓았지만 박사의 의견이 어떤지 한 번 듣고 싶습니다.”

“나도 아직 별다른 입론을 세우지를 못했소이다. 내 본시의 생각으로는 지금 윤찬두 씨와 그날 밤 그 괴한이 혹은 같은 어머니를 가진 아비 다른 형제나 아닌가 했더니 그러지도 않은 모양입디다.”

“가령 이부 형제라 하기로서니 그것뿐으로야 이번 사건의 키를 거기서 얻어 낼 수가 있겠읍니까?”

“복수 옛날 한 권세─ 높은 고관이 있었다 가령 합시다. 그 고관이 어떤 기생에게 마음을 두었다 합시다. 그런데 그 기생은 자기보다 나이가 이십이나 위에 되는 고관보다 자기와 연갑 되는 영찰과 서로 배가 맞았다 합시다. 당시의 조선의 고관은 관내의 인민의 생살여탈권을 잡았더니 만치 직접 자기의 하관이요 겸하여 자기의 총기의 애부되는 영찰을 명목 없이 잡아다가 생명을 해했다 합시다. 그런데 만약 그 영찰에게 자식이 있었더라면 명목없이 죄 없이 참사한 자기의 아버지의 원수를 그냥 내버려 두겠소이까? 더구나 그 자식이 전지전지해서 어떻게 세계적 폭력단인 LC당의 일원이 되었다 하면 그 단체의 힘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원수를 갚아 보려 할 것이 아니외니까?─ 나는 이 사건의 전모를 그렇게 봅니다.”

이필호에게 향해서는 이렇게 설명하는 서인준이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연하여 이 말을 부인하는 다른 생각이 오락하였다.

아까 물부리를 핑계 삼아 자기 혼자서 다시 완쇠를 만났을 때 물어본 바에 의지하건대 김 영찰은 후손이 없었다고 단언하지 않나? 그리고 인준이의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한 바에 의지해서도 결코 완쇠의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괴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냐?

“이 공. 방금 말한 것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물부리를 얻으러 다시 들어간 기회에 완쇠에게 다시 물었더니 완쇠의 대답은 김봉덕이에게는 분명히 자손이 없었다 합니다. 김봉덕이가 자손이 없은 이상에는 이번의 사건을 김봉덕이에게 연락시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겠지요.”

“그럼 어떻게─.”

“글쎄 말이외다. 본시 생각으로는 그런 줄만 알고 이번 완쇠를 심문하면 사건의 일단은 넉넉히 캐어 낼 수 있으리라 했더니 모두 허사구료. 헛길을 걸었소이다.”

“그럼 장차 어떤 플랜을?”

“미지수외다. 인제 돌아가서 다시 연구해 보고 다른 결론을 얻어 내게 되면 그때 이 공에게 또 통지하리다. LC당이라 하는 단체는 나도 흥미를 갖고 연구하는 단체─ 이 기회에 그 단체의 부분이라도 청천백일하에 들추어 내면 이 공의 종사하는 직업상의 명예요 내게는 내 연구하는 연구의 참고가 될 게 아니요? 서로 잘 연구해 봅시다.”

이만치 하고 서인준은 이 형사와 작별하고 자기의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왔지만 그의 머리는 자못 어지러웠다.

알지 못할 일이었다.

괴인이 윤 백작 댁 내실을 출입한다는 누님의 말은 머리를 기울이지 않고는 듣지 못할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들었기에 자기는 혹은 노백작의 현재 부인이요 전생이 기생이던 그 마님이 노백작에게 오기 전에 낳아 두었던 사람이나 아닌가 하고 만약 그렇다 하면 지금의 행동을 일종의 복수로도 볼 수가 있으므로 오늘 완쇠를 만나기만 하면 필호는 모르지만 자기뿐은 사건의 전모를 넉넉히 꿰어볼 수가 있다 마음먹었던 것이었다.

그렇거늘 오늘의 결과는 어떤가.

─ 백작부인은 백작에게 오기 전에는 생산할 일이 없다.

─ 그 부인의 정부이던 김 영찰도 절사가 되었다.

이 두 가지의 말은 아직껏의 인준이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전부 번복시켜 놓은 것이었다. 사람의 눈으로써 그 사람과 마음을 꿰어볼 줄 아는 인준이거니 완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은 넉넉히 알았다. 완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닐진대 인준 자기의 추측은 전부가 그릇된 추측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임하여서도 인준이는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아직 일루의 희망점을 남겨 두었다.

노백작이나 백작부인은 심문할 수가 없으되 한 번 필호와 동반하여 갔던 인준이로서는 완쇠는 다시 심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완쇠를 다시 한번 더 심문해 보면 좀 별다른 ‘줄’이 나타날지도 모를 것이다. 이번의 사건이 단지 LC당의 도적을 위한 사건이 아니요 그 이면에는 무슨 복잡한 개인적 사정이 잠재하여 있는 것이 분명한 지금 육십 년간을 꾸준히 노백작에게 시종턴 완쇠를 이리저리 교묘롭게 잘 꾀어 알아보면 일종의 단서를 거기서 얻어 낼지도 모르겠다.

그 단서를 명확히 알아내고 그 뒤에 LC당이 장차 행하려는 일도 알아낸 뒤에 자기의 플랜을 세우지 않을 수가 없게 된 서인준 박사는 인제 내일쯤 다시 한번 완쇠를 찾아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필호를 떼어 버리고 자기 혼자서 찾아보아서 자기가 알아보려는 전부를 마음 놓고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날 저녁 상해 본부에서 서 박사에게 전보가 왔다. 그것은 서 박사가 명하였던 바, 십칠호는 중국 화물선 C호의 선부로 고용되어 모레쯤 인천항구에 도착케 될 것이며 영국 종남작 L M 매켄지 대좌에 관한 자세한 조사 서류는 그 십칠호가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 얼른 오너라. 문제는 의외에 차차 복잡해 간다. LC당이라는 단체의 일원 윤 백작과의 개인 관계도 어서 알아보아야 할 것이며 우리의 일도 어서 착수를 해야겠다.

인준이는 전보를 손에 들고 조급한 듯이 탁자를 두드리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밤에는 양이라는 당원에게서 ‘1140477’이라는 부호는 오늘은 발견치를 못했다는 전화가 오고 전화가 온 조금 뒤에 안에게서

“마땅한 집을 하나 발견하여 지금 교섭 중이며 마침 어떤 서양인 선교사가 팔려는 낡은 피아노가 있기에 그것도 운동중이라.”

는 전화가 왔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가장 두통거리 되는 것은 LC당의 목적이었다. 처음에는 단지 윤 백작 집에 은닉되어 있는 거대한 재물을 목적하고 들어온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혹은 그 재물은 알지도 못하고 단지 어떤 개인적 원함을 갚기 위하여 들어온 듯도 싶었다.

LC당의 목적이 모호하기 때문에 인준이는 더욱 머리를 기울였다. 만약 LC당으로서 단지 개인적 복수가 목적이라 하면 인준이는 거기는 간섭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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