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21장
주검
편집“여보 철하씨 어디로 가십니까? 병이 그렇게 중하신데 외출을 하시면 안됩니다”
정양소 조수가 문깐까지 따라나오며 말하는 것을 철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외투를 입으면서 달음질을 쳤다.
그것은 명순이가 독약을 마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까닭이었다.
철하는 살인혐의로 경찰서에 잡혀갔다가 나온 후 병이 더욱 심하여져서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철하의 폐를 여지없이 습격을 하고 있는 결핵균은 시계의 초침과 같이 그의 수명을 재촉하고 있으며 철하 자신도 자기의 생명에 대한 어떠한 각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운 없는 몸 힘없는 다리 철하는 몇번이나 거꿀어질 듯하였지만 다시금 용기를 내어 걸음을 빨리하였다.
철하는 과도의 운동이 금물인 것을 알치 못한 바는 아니었으나 그러한 것을 타산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는 거의 미칠 듯한 보조로 서대문정에 있는 이마리다 고아원을 향하여 걸음을 빨리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철하는 명순을 늘 심상ᄒ지 않게 보았다.
지나간 밤에도 늦도록 자기의 병을 간호하며 의미 깊은 말을 하는 것을 철하는 알아듣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죽어야 됩니다”
“힘과 마음이 약한 사람은 죽어야 됩니다”
철하는 이런 말이 명순의 속에서 흘러나오는 헐은 말이 아니고 그의 마음 속 깊이 사모치였던 설음에서 나오는 말인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철하는 명순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명순이는 철하의 힘 있는 위로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듯이 끝끝내 독약을 마시고 말았다.
철하는 한걸음이라도 빨리 가서 명순이를 살리겠다고 하였다.
철하는 이마리다 고아원에 이르렀다. 명순의 방문을 열고 황겁하게 발을 들여 놓았다.
명순이는 손을 내 흔들며 고민을 하고 있다.
방안에는 의사를 비롯하여 연순이와 이마리다가 있다.
철하는 명순이가 누워있는 침대 곁으로 달아갔다.
“명순씨 명순씨”
철하는 명순의 손을 힘 있게 잡았다. 철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명순이는
“철하씨 철하씨”
하며 한쪽 팔을 허공을 더듬는다.
“철하씨를 좀 만나게 해 주세요”
명순의 목소리는 가늘고 약하였다.
“명순씨 철하씨가 오셨습니다. 정신을 차립시오”
옆에 있던 연순이가 명순의 한 쪽 팔을 잡으면서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명순이는 감았던 눈을 뜨고 철하를 치어다본다.
“철하씨 이 더러운 몸을 … 용서하여 주십시오 철하씨”
“명순씨 정신을 차리십시오 이게 무슨 모양입니까 내! 웨 말을 듣지 않고”
“아니 용서 … 그것 밖에는 들을 말이 없습니다”
“용서를 한지가 벌써 오래 되지 않었습니까 용서를 하지요”
“용서.....를 하신다면 저는 죽어도 아무 괴로움 없이 죽겠습니다. 철하씨 나의 대지(大地)는 밝어옵니다. 앞길이 캄캄하고 마음조차 암하던 것이 인제는 나의 마음의 대지는 확실히 밝어졌습니다. 아! 밝어오는 대지! 그러나 이 괴로운 세상에는 아직도 선풍이 남어 있겠지요!”
명순의 눈은 스르르.....닫치고 말았다. 그러고 무엇을 의미한 웃음인지 창백한 그 얼굴에 두어 번 미소를 띠워 보이다가 그것조차 쓸쓸이 사라지고 만다. 철하의 마음은 괴로웠다.
“명순씨! 명순씨!”
철하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명순이를 불렀다. 그러나 철하는 아무 대답도 없다.
“명순씨!”
철하는 너무도 풍랑이 많고 선풍 속에서 신음을 하던 명순의 젊은 일생을 회고하고 또 그의 쓸쓸한 최후를 바라볼 때 눈물을 흘리지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주검’ 그것은 명순이를 부르고 있다.
젊은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쓰라린 그의 반생! 그는 그것을 주검으로 청산을 하려고 독약을 마시었다. 철하는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철하는 옛날에 사랑하던 사람이 주검의 길을 더듬고 있다는 것보다 저주 받은 한 여자가 속세의 풍랑에 부다끼다 못하여 주검의 길을 찾고 있다는 것에 파멸이 되어 가는 자기의 폐(肺)를 더욱 깎아내 듯이 쓰리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속에는 복섬의 주검이 떠돌았다. 황금에 저주를 당한 명순이와 복섬!
그것은 명순이와 복섬 뿐이 아니다. 철하의 눈 앞에는 이러한 환경에서 부다끼다가 주검으로 해결을 짓고만 수백 수천의 시체(屍體)들이 나타났다.
“누가 그들을 죽였나”
철하의 가슴에서는 이러한 부르짖음이 올라왔다. 이것이 이 자리에서 처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지내간 날 이러한 느낌으로 한 평생을 살아왔다. 그의 어릴 때부터의 환경이 만들어 준 느낌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미구에 또한 사람의 시체를 맞이하게 될 것을 바라보고선 철하에게는 새로운 고민의 선풍이 그의 전신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오전 두시 삼십분 우주의 삼라만상은 안식의 꿈이 점점 깊어가고 장안은 죽은 듯이 고요한데 명순이는 한 많은 이 세상을 고요이 고요이 떠나고 말았다.
모든 고민과 번노를 잊을 수 있는 주검의 나라로 끝끝내 가고 말았다.
철하는 가련한 명순의 주검을 당하게 되자 그는 그의 시체를 안고 어린 아이 모양으로 울었다.
“불상한 명순아!”
“아! 잘 가거라”
철하의 주먹 같은 눈물은 명순의 차디찬 시체를 적시고 있다.
연순이도 운다. 그러나 그는 감히 명순의 시체를 바라도 보지 못하였다.
“나의 죄다!”
연순이는 어리석은 자기의 과거를 회상할 때 자기로 자기를 보아도 악마와 같이 느껴진다.
“나는 악마다”
나의 과거의 어리석은 장난으로 명순이는 죽었다.
“악마다”
연순이는 자기의 모양을 이 세상에 내어 놓기가 부끄러웠다.
이태원(梨泰院)한 구석에는 새로 생긴 무덤이 하나 있다. 고요이 고요이 내리는 눈은 그 무덤의 주인공을 조상하는 듯이 끊임 없이 내린다.
황토(黃土)의 무덤 위로 내리는 하얀 눈은 거츨은 흙을 가린다.
독자여!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박명아 저주받은 조선의 딸인 명순의 무덤이다. 죽은지 몇날이 되지 않었으나 세상 사람의 기억에서는 명순이라는 사람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보다도 명순이라는 여자가 언제 이 세상에 낳다가 어떠한 환경으로 주검의 길을 찾았는지 그것을 알 사람도 많지 못할 것이다.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구의 그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세상 끝날까지 명순이를 잊으랴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철하다. 그는 오늘도 날은 저물어가지만 명순의 무덤 앞에 머리를 숙이고 서 있다.
그는 오늘 아침 폐병정양소에서 쫓겨나왔다. 치료비를 내지 않는다는 구실로 축출을 당하였다. 연순이가 보증하겠다는 말도 철하는 거절을 하고 나왔다.
“나의 신변은 염녀말고 당신의 보는 일이나 충실히 하시오”
철하는 다만 한 마디 말만 던져주고 정양소문을 나섰다.
그의 발길은 어제와 같이 이태원 쪽으로 돌려졌던 것이다.
눈은 조금도 끊지지 않고 내린다.
명순의 무덤에도......철하의 외투 위에도 눈은 내린다.
모순 많은 이 사회에서 저주받은 두 개의 시체! 하나는 호흡을 할 수 없는 그러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죽은 시체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도 얼마 남지 아니한 피가 돌고 있는 모든 고노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산 시체이지만 하얀 눈은 똑 같이 그들의 시체 위로 내린다.
철하의 입에서 기침과 함께 흘러내리는 붉은 피는 명순의 무덤 위 하얀 눈을 물들인다. 하얀 눈에 물들어진 붉은 피를 바라볼 때 철하의 마음은 통쾌하였다.
눈은 자꾸 내리고 날은 점점 저물어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