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15장
결혼식(結婚式)
편집아침 열시가 넘어서야 수길이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간 밤에 양에 넣치도록 술을 되는대로 마셨던 관계로 그 취독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정실이는 될수 있는대로 정신을 잃고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동생누이 결회를 아직껏 찾아내지 못한 그는 그 동안 술로 세상을 보내였으나 아무리 술을 마셨다 하더라도 어저께 저녁과 같이 정신없이 마셔 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마신 것도 오히려 부족한 생각이 있었다.
“확실히 삼월 이십칠일이다”
수길이는 벽에 걸린 일력을 바라보며 잃게 부르짖고 벌떡 일어서서 두 주먹을 힘있게 부르쥐고 문을 착 나가려고 하다가 도로 주저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분하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변원식이라는 그 놈! 처녀를 유인하기로 유명한 그 놈의 독수에 친구의 애인 명순이가 걸리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이 전신이 떨리었다.
행휘불명이 되였던 명순의 소식을 알려고 몇달 동안 애를 써 오다가 어저께 저녁에야 처음 명순의 소식을 알기는 알았으나 그것은 자가 마음을 괴롭게 하는것 밖에는 아무 반가움도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내간 밤 철근회(鐵筋會) 집행위원회 석상에서 어떠한 동무가 이야기 하던 그 말이 꿈속에서 들은 말 같고 현실에서 들은 말 같지는 않았다.
명순이가 변원식에게로 시집을 간다는 소문...... 참으로 뜻하지 않았던 소식이었다.
수길이는 어저께 저녁 그 말을 들을 때 그런 이치가 있겠는가 하고 여러 가지 조건을 들어서 그 동무가 하는 말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그 동무는 여러가지 증거를 들어서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였던 것이었다.
그 동무가 내놓는 확실한 증게에는 수길이도 그 사실을 부인할 용기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 사람이 내놓는 결혼식 청첩에는 아무것도 의심할 점을 가지지 못하였다.
변원식이와 김명순의 결혼식을 삼월 이십칠일 오후 한시에 중앙공회당에서 거행한다는 의미의 문구가 활자로 똑똑히 박히어 있었다.
“이래도 믿지 못하겠는가? 삼월 이십칠일이라면 멀지도 아니하네 내일이니까 이 청첩을 보고도 믿지 못하겠으면 내일 공회당 근방에 가보게 내말이 거짓말인가......”
그 동무가 득의하엿다는 듯이 이렇게 말할 때 수길이는 아무 대답도 못하였던 것이었다.
무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다.
그 때 수길이는 이 때까지 잠을 작 있은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철하가 칠월달에 출옥을 한다면 그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명순이가 변원식이 독수에 거리었다는 것을 방관만하고 지내온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 동안 명순의 종적을 찾으려고 애쓴 것도 헛수고로 돌아갔다.
오히려 철하가 나와 본다면 자기가 알고도 그대로 있은 것 같이 생각할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면 명순의 종적을 찾아 보지도 않은 것 같이 생각할 것이다.
철하를 맞날 면목이 없는 것 명순이가 불상하게 된 것 변원식이라는 놈의 증오 이모든 것들이 수길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였다.
위원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여봐도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수길이는 다만 혼자서 술집에 들어가 되는대로 닥치는대로 술을 정신없이 퍼 마시었던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수길이는 어저께 저녁에 그렇게 퍼 마시고도 집으로 찾아온 것을 신통하게 생각하였다. 꿈이나 아닌가 생각하였으나 그 동무에게서 받은 청첩이 양복주머니에 확실히 들어 있으니 꿈으로 돌리고 일시의 위안인들 얻을 수가 없었다.
수길이는 새수도 아니하고 조반도 먹지 않고 그대로 하숙문을 나섰다.
열두시를 알외는 “뛰”가 길게 목을 빼여 들고 뛰를 지르고는 서울공중에 살아지고 만다.
변원식이와 명순의 결혼식은 한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수길이는 공회당을 향하여 걸음을 빠릴하였다. 공회당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할 작정도 없이 걸어갔다.
수길이는 속으로 공회당에 가서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가는 것이 도리어 싱거운 일 같아였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
수길이는 공회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가서 유일의 친구인 술을 취토록 마시고 나왔다. 정신은 그래도 없어지지는 않았다.
백주에 술을 그렇게 마시고 왕래가 빈번한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눈 찰에는 수 많은 변원식이라는 놈이 나타난다. 수길이는 주먹을 부르쥐고 그 놈을 때려부시려고 할 때면 슬쩍 없어지고 그 다음에는 변시려고 할 때면 슬쩍 없어지고 그다음에는 변원식의 애비라는 놈이 나타나며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복섬이가 연겊어 나타난다. 그리고 죄수의 의복을 입은 철하가 나타난다. 이러할때마다 수길이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오후 한시가 닥치어왔다. 꿍며 옪은 공회당 안 그 넓은 결혼식 장내에는 남녀관객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꼭 찼다.
피아노의 청아한”마아취” 소리가 시작되자 신랑신부는 그 “마아취”에 발을 맞춰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변원식이와 김명순이었다.
수천 군중은 부러운 눈으로그들을 치어다 본다. 그 중에는 자기들의 지내간 날을 회상하는 기혼한 사람들도 있을것이며 깊은 앞날을 상상하는 젊은 남녀들도 많을 것이다.
신랑신부는 목사의 앞에 가서 발을 멈추었다. 피아노 소리는 끈치었다.
식장은 죽은 듯이 고요하고 끝없이 엄숙하였다. 결혼식은 시작이 되었다.
“지금 변원식씨와 김명순양의 결혼식을 거행하려고 하오니 이 두사람이 결혼하시는데 대하여 아무 불평이 계시지 아니하신지요. 만일 불평이 계시면 지금 말씀하여 주십시요”
목사가 높은 목소리로 청중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어볼 때이다. 부인석에서 “목사님”하고 부르며 일서서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청중의 시선은 그 여자에게로 쏠렸다.
남루한 의복을 입은 그 여자 영양부족으로 햇쓱하여진 낯에는 구슬 같은 눈물이 폭포와 갈이 흐르고 있다.
그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장승모양으로 서서 느끼어 물 뿐이다.
“할 말이 계시면 이 지리에서 하십시요”
결혼식장은 소란하기 시작하였다.
변원식을 오호하는 사람들은 그 여자를 흘겨보며 장차 결혼식에 지장이 되지 아니할까 하여 그 여자를 앉으라고 위협을 한다.
이 때이다. 남자석 입구에서 술주정군의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을 밀고 들어오며
“여보 목사 나도 할 말이 있오”
이렇게 말하고 안으로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그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수길인 것을 알 수가 있을것이다.
청중은 결혼식장에서 일러나려는 풍파에 흥미를 가지고 한 여자와 한 남자를 번가라 치어다보며 그들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을 하겠다고 속이고 쳐녀의 정조를 농락하고는 그 여자를 신짝 같이 내여버리는 변원식이라는 음탕한 남자의 결혼식을 주례하는 목사님은 그 결혼식을 신성하게 봅니까?”
그 여자는 변원식이보다 목사를 원망하는 듯이 이렇게 말하고는 또 다시
“명순씨! 명순씨! 훌륭합니다. 어느 사이에 벌써 그렇게 되었던가요? 장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쓰러지듯이 자리에 주저 앉는다.
술취한 수길이는 그 여자를 바라보더니
“경희야 경휘야 어디가 있다가......”
일렇게 말끝도 맺지 못하고 경희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다.
명순이는 눈을 들어 그들을 보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수길의 두 남매인 것을 알았다.
“거거륵...... 한 목사...... 김명순씨씨...... 게는 후후훌륭한 그의 애인...... 철하가 있읍니다”
경희의 손목을 잡은 수길이는 목사를 치어다보며 술취한 어조이나마 힘있게 말하였다.
이 말에 명순이는 극도의 고민으로 졸도를 하여 그 자리에 쓸어져 버렸다.
관중은 일제이 일어서서 명순의 쓸어진 곳으로 몰려온다.
변원식은 어쩔 줄을 몰라 쩔쩔 매고 돌아 다니었다.
목사는 정식결혼의 불성립을 선언하고 어디로인지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결혼식장은 수라장을 이루었다.
수길이는 오랜동안 찾아다니던 동생누이를 만나게 되니 반갑기는 하나 명순이가 걱정이 되어 명순이가 쓸어진 곳으로 사람을 뻐기고 들어갔다.
청년 두어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쓸어진 명순이를 부축하여 가지고 병원으로 가고가 나가려고 한다.
“여보 어디로 안어 갈 작정이오”
수길이는 그들이 명순이를 안고 나가려고 하는것을 보고 명순이를 붙잡으며 이렇게 말하엿다.
“이 자식아 비켜라!”
무지한 그들은 수길의 손을 잡아제치며 이렇게 말하였다.
술취하고 흥분된 수길이는 그 놈들께 반항을 하였다.
그들은 기회가 좋다는 듯이 결혼식을 거행하지 못하게 된 성풀이로 덤벼드는 수길이를 발길로 힘차게 차고는 주먹으로 가슴을 갈겼따.
수길이는 그들의 발길로 채우며 주먹으로 가슴을 맞으면서도 기운을 다하여 대항을 하였다.
그러나 여러 놈이 한꺼번에 갈기는 바람에 정신을 잃고 쓸어졌다.
경희도 오빠가 그 놈들에게 맞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으나 약한 몸이라 힘으로는 대항을 하지 못하고 말로만 발악을 할 뿐이었다.
수길이가 쓸어진 다음에 그들은 명순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변원식이도 부끄러운 낯을 참아 들지 못하여 머리를 숙이고 출입구로 나가다가 “아이구”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쓸어져 버렸다. 강당안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은 뒤에서 내미는 바람에 사람이 쓸어진 것을 보고도 그 위를 밟으며 문밖으로 밀려나왔다.
변원식이는 어떠한 사람에게 저격을 당하였다. 왼쪽 팔과 왼쪽 가슴의 두 곳을 칼로 찔리었다. 사람이 많은 까닭에 범인은 쉽게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경찰은 극력으로 범인을 수색하였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범인이 던지고간 단도(短刀)하나 밖에는 찾지 못하여싿.
수길이는 겨우 정신을 차려서 눈을 뜨고 사면을 돌아다 보니 그렇게 많던 관중도 어디로 갔는지 몇사람 밖에는 남지 않았다. 옆에 앉아 울고 있는 경희희 부축으로 겨우 일어서서 발자죽을 옮겨 놓았다. 가슴이 딱딱 맞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편 구석에서 수군거리고 있던 두 명의 정복 경관이 수길이가 정신을 차려서 경희 부축으로 걸어나가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로 왔다. 수십명이나 되는 사감들도 경관의 두를 따라 수길이와 경희의 주위에 와서 삑 둘어선다.
수길이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걸어가던 발을 멈추고서 그들을 물끄럼이 치어다보았다.
수길이는 자기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큰 사건이 발생된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것은 여러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추측을 하였던 것이었다.
경관은 아무 말도 없이 수길이와 경희의 아래위를 시껌언 눈동자를 굴리며 한참 동안 치어다 보다가
“웨 결혼식장에 와서 분규를 일으켰어?” 하면서 더욱 가까붑게 달겨드는 것이다.
수길이는 그 말에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않고 그 순사르르 아니꼽게 치어다보았다.
“도오시데 다맛데오루가? 고다에 나이 쓰모리가?”
(웨 말이 없냐? 대답을 아니할 작정이냐?)
옆에 섰던 금테 안경을 쓴 양복장이가 수길이가 아무 말도 아니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일본말로 이렇게 말하였다. 수길이는 그가 일본사람이 아니고 본정서에 있는 노형사(盧刑事)인 것을 알았다.
수길이가 아니꼬운 눈동자로 처음에 말하던 사람을 처어더보던 눈을 노형사에게로 돌이었다.
“무엇이라고 하는지 똑똑이 말하여 주오 정신이 없어서”
수길이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웨 쓸데 없이 결혼식장에 와서 소동을 일으켰느나 말이야”
노형사는 할 수 없다는듯이 일본말로 하지않고 조선말로 말한다. 조선사람인 줄을 아는것 같아야 일본사람 행세를 못하였다.
“소동! 누가?”
“누구는 누구 너 말이지”
“너 말이지? 하하하......”
수길이는 술마신 정신애도 그 말이 분하기보다 우습게 들렸다.
노형사는 분이 났다. 술 취한 사람이 말이라도 자기는 비웃는 것 같아서 견디지 못하였다.
“웨 붇는 말은 대답도 하지 않고 웃기만 하나?”
“대답할 것이 있어야 하지요”
“웨 없다는 말이야 소동은 무슨 이유로 일으켰나?”
“소동? 소동을 일으킨 일이 없오 목사가 하고 싶은 말하라고 하여서 몇마디 말만 하였을 뿐이오 결국 목사의 요구를 들어준 것에 지내지않요 그렇지 않어요 내가 언제 청치 아니 하는말을 하여서 이 모양이 되었다는 말이오”
수길의 말을 듣고 섰던 노형사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다만 수길이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치어다볼뿐이었다.
“내가 한 말도 전부 사실이니까 그들도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수길이는 이렇게 말하고 동의를 얻으려는 듯이 여러 사람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그 곳에 둘러선 사람들은 모두가 변원식의 옹호파들이었으므로 동의할 이치가 없었다.모두들 아니꼬운 눈자위로 수길을 흘겨볼 뿐이었다.
수길이는 그들의 눈치를 보았다. 동의를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동의를 하나 아니하나 그것은 아무 관계도 없었다. 수길이는 태연한 태도로 냉소를 하면서
“죄는 목사에게 있지요. 웨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의 결혼식을 승인하여 주지 않었었는지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발자욱을 떼여 놓으려고 하였다.
“잠깐만 기다리오 물어볼 말이 있으니까”
노형사는 수길이가 걸어 나가려고 하는 것을 보고 발을 멈추게 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얼른 말하시오 그 놈들에게 어떻게 맞었는지 정신이 어리어리하여 견딜 수가 없오”
수길이는 발을 멈추었다.
“ST 라는 삶이 누구인지 알 수 없오?”
“ST?"
수길이는 노형사의 묻는 말에 눈이 둥글해졌다. ST라는 말을 들으니 공신여관에서 연순이와 이야기할 때에 일어난 사건이 생각났다.
변원식과 김명순의 결혼에 대하여 큰 암류가 흐르고 있는것을 알았다.
“ST"라는 사람과 연순이가 큰 비밀을 가지고 있고 변원식가 김명순의 결혼에 대하여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줄을 알았다.
“ST라는 사람? 저는 ST라고는 고사하고 서양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아는 사람이 엇읍니다.
“서양사람말이 아니야”
신경질로 생긴 노형사는 골을 내며 말한다.
그러고는 안경테 넘어로 수길이를 흘겨본다.
“ST라면 서양사람 이름 밖에 없는 줄 알었지요 내가 아는 사람으로는 ST라는 사람이 없오”
수길이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ST는 이름은 분명이 아니야 암호이니까 혹시 아는 사람 중에 ST에 적합한 본명을 가진 사람이 없느냐 말야”
“알 수 없오”
노형사는 아무리 하여도 ST의 단서를 알지 못하겟다는 듯이 근심스러운 낯으로 입을 감빨고나서 손에 쥐었던 단도를 들고 그 자루를 자서이 보고 있다.
수길이는 그 단도를 보고 깜짝 놀래였다. 노형사는 아까부터 단도를 쥐고 있었지만 수길이는 알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자기의 예측한 바돠 같이 큰 사변이 일어난것을 알았다.
그 단도 자루에는 ST라고 쓰여 있었다.
수질이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여 마음이 답답하였다.
“이 단도 자루에 색에 있는 글씨가 누구의 글씨인지도 알수 없어?”
노형사는 이렇게 말하며 칼자루를 수길에게로 내민다. 수길이는 노형사가 내미는 단도 자루를 들여다 보았다.
ST라고 색여 있는데 때가 몯은 것을 보면 어제 오늘 색인것이 아니었다. 또 조선 글자나 한자와 달라서 영어글자이므로 글씨도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오”
수길이는 노형사가 단서를 알려고 애쓰고 있는것을 보고 수개월전 공신여관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하여 주고 싶으나 명순의 신변에 불리하 되지나 아니할까 하여 입을 열지 않았다.
수길이는 속으로 공신여관에서 일어난 이야기만 하면 연순이가 처음으로 걸리리라고 생각하였다. 연순이만 걸리면 그 다음은 순서적으로 사간의 내용이 발로되리라고도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수길이도 오랫동안 알려고 애쓰던 사실을 알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명순의 신변에 어떠한 불리한 일이 돌아오지 아니할까 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ST, 연순, 명순, 원식이 모든 사람들 사이를 흐르고 있는 큰 비밀이 있는것 같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수길이는 지금 그러한 생각을 처음한 것이 아니라 공신여관에서 우연이 나타난 ST라는 사람의 글빨을 보았을 때부터 이러한 생각을 두었다. 그 때부터 그 사건을 알기 위하여 무한한 노력을 하였으나 알 길이 없어 궁금하던 차에 지금 또 대다한 ST의 출현에 수길이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어떠한 일이 발생이 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였으나 ST라고 색인 단도가 경찰의 손에 쥐어졌으니 힘들게 생각지 않아도 ST가 오늘 이결혼식장에 나타나서 단도로 어떠한 행동을 하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노형사는 수길에세서는 아무 단서도 잡아내지 못하겠다는 듯이 경희를 바라보며
“당신은 이 사람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읍니까?”
이렇게 얌전한 말씨로 물어본다.
“저의 친오빠입니다.”
“친오빠?당신은 ST라는 사람을 알 수가 없읍니까?”
“알 수가 없읍니다. 아까부터 자서한 말은 들었으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요 이 사건은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변원식이와 김명순씨의 결횐식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행휘로 밖에 볼 수가 없으니까 당신이 모를 이치가 있나요”
“글쎄 올시다. 그 사람이 어떠한 조건으로 변원식이를 칼로 찔렀는지는 제게 어떻게 알겟읍니까 저는 변원식에게서 농락을 당한 여자이니까요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분에 못이겨서 오늘 이곳으로 오게 된것입니다. 당신의 말을 들으면 제가 어떠한 사람과 공모를 하여 그러한 일을 한것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나 그러한 일은 절대로 없읍니다”
경희는 자기의 신변에 혐의가 돌아올 것을 염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 이 곳에서는 아무리 말하여도 쓸데가 없으니 두분은 잠깐 본서까지 같이 갑시다”
노형사는 수길이와 경희를 갈이 가기를 재촉하였다.
수길이는 술에 취한 마음에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경찰서로 가자고 독촉함으로 노형사의 말에 순복을 하지 않고 그대로 뚝 버티고 섰다.
“가지 않을 터인가?”
노형사는 성난 사자와같이 호령을 한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니까 갈 필요가 없오 ST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꿈에도 보지 못하였소”
“잠깐 청취하여 볼 말이 있으니까 가자는 것이지 죄야 있건 없건 그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
“이 곳에서 물어보아도 좋지 않소?”
수길이는 강경하게 말하였다. 옆에 서서 이광경을 보고 있던 정복순사가 일본말로 “바가야로”를 부르며 경관의 말에 순종을 안한다고 수길의 등을 민다.
수길이는 쓸어질듯이 앞으로두어걸음 밀려나갔다.
그 순사는 또 등을 민다. 수길이는 반항을 하였으나 한 걸음 두 걸음 밀려서 문앞까지 이르렀다.
경관이 문을 열어제치려고 할 때이다. 문밖에서 팔구세 되어 보이는 소학교 학생이 문열기를 기다리고 섰다가 수길의 등을 미고 나오는 경관에게 한장의 편지를 전한다.
경관은 그 편지를 펴 보더니 언문으로 쓰여있으므로 알아보지 못하겟다는 듯이 노형사에게로 전한다.
노형사는 그 종이을 펴 보고는 황급하게 소학생의 손을 붙잡으며
“이 편지를 전하라고 하던 사람이 어디 있더냐?”
이렇게 묻고 어린학생의 대답을 기다리며 일변 그 편지를 뜯어본다.
수길이는 그 종이쪼각에 쓰여 있는 것을 곁눈으로 슬쩍 엿보았다.
수질이는 그 내용을 보고는 문제가 자기 추측한 것과는 사뭇 다른데에 놀래였다.
끝에는 확실히 ST라고 쓰여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그 두 남녀에게는 아무 죄도 없다. 나는 변원식이와 사적 감정이 있어서 그를 칼로 찌른것이다. 결혼식에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다. 나는 다만 기회를 얻었을 뿐이고 그 결혼식을 저주하려고 한 행동은 아니다. 나는 언제든지 변원식이를 죽여버리고야 말 사람이다.ST”
어린 학생은 노형사가 너무도 급한 형세로 손목을 잡아 흔들며 둗는고로 겁이 앞서서 대답을 못하고 섰다.
“웨 대답을 안하니? 자 얼른 어디 있더냐”
노형사는 한시가 바뻤다.
“편지 주던 사람 말입니까 내가 이 층층대에 얹어서 놀고 있는데 어떤 노동복을 입은 사람이 와서 십전자리 돈을 한푼 주면서 이 안에서 순사가 나오거든 그 편지를 전하여 달라고 하고 어디로인지 가버렷읍니다.”
소학생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노동복? 어덯게 생긴 사람이더냐”
“아주 젊은 사람이고 시커먼 아경을 쓴 사람입데다”
“어디로 가던?”
“자세히 보지 못했읍니다”
“아까부터 이 마당에 그사람이 있더냐”
“예 이 문쳘에 서서......”
노형사는 여러 가지 말을 물어보고는 정복 순사와 그외 몇사람과 무에라고 수군거리고 나서 수길이와 경희는 아무 소용도 없는 물건짝이라는 듯이 그대로 남겨 놓고는 어디로인지 달음박질을 하여 나가버렸다.
수길이는 겨우 안심을 하게되었다. 그 편지만 아니었더면 큰 변을 당할번 하였다.
“야, 경희야 ST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엄즉하냐?”
수길이는 하숙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ST? 당초에 처음 듣는 말이예요”
경희는 아무 것도 아지 못하였다. 수길이는 경희의 대답을 듣고는 그저 묵묵히 걸어갔다.
듯하지 아니한 곳에서 경희를 만나게 되니 반갑기는 하나 경희도 변원식의 독수에 걸리었다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니 변원식이라는 놈을 죽여버릴 생각이 났다.
수길이는 경희가 배영학원 교사 노릇을 할 때에도 퍽 근심은 하였으나 그런 눈치가 보이지 아니하므로 안심을 하였던 것이었다. 수길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오늘 처음 알었던 것이다. 자세한 말을 물어보고 싶었으나 길거리에서 물어보는 것이 자미가 없어 하숙으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빨리 하였다. 그러나 술 취한 몸이라 갈지짜로 비틀거리며 겨우 하숙까지 으러렀다. 하숙 대문을 들어서며
“경희야 웨 하숙의 밥값을 물지 않고 어디 가서 숨어 있었니?”
급한 마음에 불쑥 물어보았으나 경희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경희야 웨 대답을 하지 않니”
수길이가 이렇게 말하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경희는 없었다.
수길이는 급히 골목으로 도로 나왔다. 그러나 금방 뒤를 따라 오던 경희가 종적도 뵈지 않았다. 어느사이에 어떻게 어디로 도망을 쳤는지 수길이는 알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수길이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종일 미친 사람 모양으로 경서시내를 좁다고 돌아다니었다. 더구나 술김이나 분하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찾었던 경희를 놓혀버리고 전기불이 들어와서 하숙으로 돌아왔다.
수길이는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경희가 처참한 생활을 하고있은것 같았다.
오빠를 속이고 도망을 하느것을 보더라도 그가 말못할 처지에 있다는 것을 쉬웁게 알 수가 있었다.
수길이는 경희의 일이 노엽게 생각되었다. 제가 아무리 곤경에 있더라도 자기를 구하여 줄만한 오빠에게 아무런 말도 아니하고 그대로 도망을 친다는 것을 생각하니 아무리 사랑하는 누이동생이었지만 만나기만 하면 한바탕 따려 주고싶었다.
이래저래 수길이는 술만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세상 일이 괴로울 때 마시면 일만 근심을 잊어버리고 태평세상을 보내게 되는 멋으로 괴로울 대면 술을 마셨으나 오늘은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어도 정신이 술마시지 않을때보다 더 똑똑이 나는것 같았다. 그러하므로 괴로움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극도의 흥분에는 술도 쓸데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튿날 아침 수길이는 한장이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경희에게서 온것이엇다.
수길이는 편지의 내용보다도 소인(消印)을 먼저 보았다.
광화문 우편국 일부인이 찍혀 있는것을 보고 경희가 경성시내 어떠한 구석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빠 저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빠를 속이고 도망을 친 것도 할 수 없는 사정으로 그러한 비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빠 저의 어린 가슴은 몸에 넘치는 고통에 터지는 것 같읍니다.
오빠! 저는 저의 처참한 생활을 참아 오빠의 앞에서 이야기 하고싶지가 않아서 도망을 친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제가 결심한 것을 오빠가 알으시기만 하시면 승락을 하여주시지 않을 것을 알고 오빠의 곁을 피한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피할는지도 모르겠읍니다. 제가 지금 고생을 하고 잇는 것도 저의 목적을 관찰하기 위하여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별것이 아니라 저는 죽어도 변원식에게로 시집을 가고라야 말겠다는 것이 올시다”
이곳까지 본 수길이는 편지를 쥐고 부르르떨었다.
“어리석은 연이다 변원식에게로 시집을 가려고-”
수길이는 이렇게 부르짖고 두 주먹을 힘있게 쥐었다. 편지는 수길의 손에 힘있게 쥐여졌다. 수길이는 다시 편지를 폈다. 그 아래 사연을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변원식이가 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서 그런것도 아니고 지위와 명예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올시다. 다만 저의 첫사랑이라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읍니다. 저는 저의 생명과 같은 정조를 그로 말미암아 빼앗기고만 사람이올시다. 만일 제가 다른데로 시집을 간다면 그 때에는 저는 음탕한 여자가 되고 마는 것이올시다. 오빠 저를 누이 동생으로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저도 그것을 각오하고 있읍니다. 저는 저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리려고 합니다.
그러고 저는 지금 어떠한 고생을 하고 있더라도 저의 정조만은 굳게 지켜옵니다. 오빠 불상한 누이동생을 욕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낸간 몇달 사이에 기회만 있으면 변원식을 찾아가서 저의 결심한 바를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변원식이는 저를 헌신짝 같이 취급을 합디다. 그렇다고 저는 조금도 낙심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에게서 거절을 당하면서도 저는 그와 말이라도 하여보는 것으로 유일한 락을 삼았던 것입니다.
오빠! 저는 저의 목적을 환철하지 못하는 날에는 죽으려고합니다. 요사이는 더욱 굳은 결심을 하였읍니다. 명순이를 보십시오. 철하를 버리고 저의 애인을 빼앗지 않었읍니까? 그 가나사한 연! 명순이가 참아 그럴줄을 몰랐읍니다. 인제 생각하여 보니 변원식이가 저를 학교에서 축출을 한 것도 요마 같은 명순이라는 연이 뒤에서 꾸민 수단인 것을 알었읍니다. 생각하면 분합니다.
명순이가 지내간 날 변원식이를 욕하고 여러가지 우스은 행동을 저에게 와서 한 것을 생각하면 분하여서 살 수가 없읍니다.
오빠 저는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끝으로 부탁할 말씀은 저를 동생으로 생각하시지 말으시라는것 뿐이올시다. 오빠의 건강을 빕니다. 경희 올림”
수길이는 편지를 다 읽고는 편지를 갈기 갈기 찢어 버렸다. 그의 눈에서는 굵다란 눈물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