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14장
행위불명(行衛不明)
편집“작년 사월에 나갔읍니다”
“그러면 그 애가 이 하숙을 나간지 아홉 달이나 되었구먼”
“예! 예! 아홉 달을 잡었읍니다”
“그러면 그 동안 한 번도 들어오지 않었단 말이지요?”
“들어오기는 고사하고 어디로 가서 계신지도 모르고 있읍니다. 밥값도 두달치가 밀렸는데요”
하숙주인은 밥값도 내지 않고 나가버린 경희에게 불평을 가지고 있는 듯이 말을 한다. 수길이는 속으로 퍽 미안하게 생각하였다. 누이동생이 밥값을 물지 않고 나가 버리었다는 말을 들으니 하숙 주인의 낯을 대하기가 계면쩍었다.
“밥값은 내가 담당하지요 그러나 이 애 간 곳이나 알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경희의 간 곳을 찾아낼 도리가 없었다.
감옥에서 나온지 사흘 동안 찾어가 볼만한 사람은 다 찾아 보았으나 경희의 간 곳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 함흥으로 내려갔는지 몰라서 오늘 아침 전보로 물어 보았으나 안왔다고 회전이 왔었다.
가회동 명순의 하숙을 찾아가 보았으나 명순이가 서대문정에 있는 방장노집으로 가정교사로 갔다고 하여 명순이를 만나기만 하면 경희의 소식을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찾아가 보았었다. 그러나 명순이도 역시 행위불명이 되었다고 방장노 부처가 친딸자식이나 잃어버린 것이나못지 않게 근심 중에 있는 것을 알았다. 명순이와 경희가 한 곳에 가서 있지나 아니한가고 의심도 하여 보았지만 방장노 부처의 말을 들으면 명순이는 오월 삼십일에 집을 나가 버린 채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므로 그렇게도 믿지 못하엿다.
수길이는 낙담이 되었다. 철 없는 것이 홀몸으로 어디 가서 어떠한 고초를 당하고 있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더욱이나 자기의 죄로 배영학원에서 쫓겨 나오게 된 것을 생각하니 변원식이라는 놈도 고약하기는 고약하였지만 자기 자신도 경희에게 대하여 미안하게 된 것을 느끼었다 .
그러나 그러한 놈의 아래에 자기의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수길이가 감옥으로 가기 전에도 경희를 다른데로 취직을 시키려고 운동도 하였던 것이다.
수길이는 경희의 간 곳을 알려고 경희의 짐짝을 풀어서 조사를 하여 보았다.
세관에서 행인의 짐짝을 조사할 대와 같이 종이조각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낱낱이 조사를 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의 종적을 알아 낼만한 물적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경희가 나갈 때에 짐작을 이 모양으로 싸두고 나갔나요?”
수길이는 마치 형사가 범인이 유숙하던 방을 수색한 다음 그 주인을 보고 묻 듯하였다.
“아니올시다 평시에 계시던대로 그래도 두고 나가 버렸읍니다. 하루 이틀 기다려도 들어오지도 않고 소식이 돈절하였으므로 내 손으로 짐짝을 싸두었던 것입니다. 다른 손님도 두어야 되겠으므로……”
주인은 조금 숨을 돌린 뒤에
“나가기 전 몇날 동안은 아무데도 출입을 하시지 않고 방에 누워만 계시므로 혹시 몸이나 편ᄒ지 않으신가 하고 물어 보았더니 머리가 좀 아프시다고 하십디다. 그리다가 내가 물어본 그 이튿날 아침에 나가시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겠지요”
수길이는 그 말을 바로 들을 수 없었다. 경희에게는 특별한 번민이 없는 것을 알았었는고로 처음부터 돈까닭에 어디로 가버린 줄 알았다.
그것은 학교에서 축출을 당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곧 그렇게 깨달았다. 학교에서 축출을 당한후 주인집의 식비독촉에 견디다 못하여 어디로 도망을 한 것으로 알았다.
그것은 주인의 평시 소행을 미루어 보더라도 알 수가 있었다. 주인은 나간 이유를 딴청으로 꾸며서 번주그레하게 느러 놓았지마는 두달 밥값이나 못받고 그대로 있을 주인이 아닌고로 밑에 쪼들려서 주인집을 나간 것이라고 추측을 하였다. 가엾은 누이동생을 생각하니 수길의 완강한 마음에서도 한 줄기의 눈물이 솟았다.
주림에서 시달리며 방황하는 그 모양이 눈 앞에 환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비창하였다. 지금쯤은 어떠한 험악한 곳에 가서 어떠한 독수에나 걸리지 않았나 하였다. 주인이 나간 뒤에도 수길이는 방에 혼자 남아서 경희를 생각하고 있었다.
수색원을 제출해 볼까 하나 창피한 일이고 또 경희의 신분에 자미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어디로 갔거나 말거나 내에 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다. 지금쯤은 필연코 경희가 타락이 되어 가지고 방종한 생활을 하는것 같았다.
돈 한푼 없는 몸으로 하숙을 나간지 아홉달이나 되었다니 세고에 부대끼다 못해서 자진하겨 옳곧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수길이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떻게 하더라도 찾어 보기로 하고 작정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수길이는 화루계방면을 들추기로 하고 수색을 개시하였다. 만일 화루계방면에서 찾어낼 수 없으면 그 다음에는 시내에 있는 각공장으로 돌아다니어 찾아 보고 공장에서 찾아낼 수 없으면 그 다음에는 조선 주요도시로 찾아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수길이는 하숙을 나온 뒤 그날 해가 맞도록 시내에 있는 가 권번으로 돌아다니며 명부를 들추어 보았다. 이름은 물론 따로 지었을 것이나 새로 입적한 사람을 조사하여 보았다. 그러나 경희와 비슷한 사람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공연이 찾지도 못하며 권번 사무원들에게 핀둥이만 맞었다.
“이러한 여자가 요사히 이 권번에 새로 입적한 일이 없읍니까?”
이렇게 경희의 사진을 들고 다니며 물어본 것이 후에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였다. 제일선에서 실패한 수길이는 저녁을 먹고나서 또 하숙 대문을 나섰다. 각 권번으로 돌아 다녀 보아도 찾지 못한 그는 이번에는 할 수 없이 신정과 병목정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런 속에 경희가 있지 않아 주었으면 하였다.
“만일 이 곳에서 맞남녀 어찌하나 그 꼴악서니를 어떻게 볼까”
그는 경희가 방금 성욕에 주린 여러 놈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야 참아 발이 떠러지지 않아서 병목정 어구에 목두깨비 모양으로 우두머니 서 있었다.
이팔청춘가, 수심가, 아리랑타령, 노래가락, 동경행진곡, 유행창가 등 이러나 잡소리들이 한데 섞여서 어지럽게도 수길의 귀를 스치고 지내간다. 지내가는 사나이의 마음을 불러 들이기 위하여 나오지 않는 소리를 목을 짜서 부르는 그 노래들이 최후의 비명과도 같았다. 수길이는 혹시 그 노래에서 경희의 목소리를 찾아 내려고 구를 기우렸다. 그러나 수십명의 소기가 한데 훕쌓여 흘러오므로 경희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가 없었다. 그는 모자를 눈섭밑까지 푹 눌러 쓰고 외투깃으로 낯을 가리우고는 큰 용기를 내어 골목을 들어섰다. 그는 경성에서 어릴 때부터 자나났지만 이런 곳에 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요 가리라는 뜻도 아니하였었다.
인육시장의 거리를 걸어가는 수길의 마음은 바늘로 마음을 찌르는 듯이 쓰라렸다.
그는 슬금슬금 곁눈질로 좌우의 집집마다에 나선 유두분면의 계집애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엿보았다. 속모르는 계지배들은 먹을 것이나 본 듯이
“양복쟁이! 나좀 보소 이리 와요”
“캪쟁이……이 양반 좀 들어와요”
하며 그 계집애들은 추파를 따던진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수길에 가슴을 마치로 따리는 듯하였다.
어떤 여자들은 따라 나와서 팔을 끄을고 뒷걸음질을 치기도 하고 앞에 와서 낯을 치어다보고 생긋 웃기도 한다. 그러나 수길이는 묵묵히 창연한 낯빛을 하고 걸어갔다.
수길은 경희가 이 모양으로 자기를 모르고 달려와서 팔을 끄을고 추태를 부린다면 어찌 하나하여 그는 슬펐다. 수길이는 외투깃으로 낯을 가리우고 두 눈만 번적이었다.
신정 인육시장의 거리는 종로네거리 이상으로 복잡하였다. 젊은 사람 늙은 사람 할 것 없이 두셋씩 떼를 지어 다니며 이 집으로 들어갔다가 또 저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가엾은 그들을 희롱하고 욕하고 하였다. 제고기를 베어갈 놈을 남보다 먼저 얻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 가련한 그들! 그들은 확실히 저주 받은 생명들이었다. 수길이는 황금에 저주받은 가엾은 그들의 해골(骸骨)이 춤추는 거리로 걸어가며 마음으로 울었다.
“여봐요 잠깐 들어왔다 가요”
“아나다 네 아나다 고찌 이랏싸이 이랏싸이요”
그들의 앞에는 아무것도 헤아릴 것이 없었다. 중국 사람도 좋다! 어떤 사람이든지 좋다! 돈벌이만 하면 그만이다. 돈만 가저오면 내 몸둥이를 열쪽을 내어도 좋다는 듯이 웃음을 짜내고 허기진 음성을 조려짜서 사나이들을 낚으는 것이다.
그들은 전부가 이십세 내외의 앞길이 양양한 여자들이다. 한 때는 부모의 품에 안겨 끝 없는 사랑을 받고 있던 그들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이 사회에서 버림을 받고 있다. 그리고 창기라는 더러웁고 천한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가? ‘천한 여자!’이것이 그들의 대명사다.
공공한 석상에 가서도 창기는 즘생과 마찬가지라고 역설을 하던 그들도 그들의 고기를 탐하여 올 때는
“나는 당신을 동정합니다. 이 사회는 확실히 그대의 적이요 가엾은 그대를 나는 기회를 보아 이 곳에서 구하여 애려고 하오”
하면서 쓰다듬어 주지 않는가? 일시적 향락을 위하여 인육시장을 만들어논 것도 글들이 아닌가?
수길이는 이 곳의 정상을 참아 눈을 뜨고 볼수가 없었다. 몇십원 몇백원의 돈에 몸이 팔려서 수 많은 남자들에게 갖은 학대와 고통과 모욕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이 몹시도 참혹하여 보였다. 그들을 팔아 먹은 그 대비와 어미 그렇지 안흥면 남편과 오라범들을 잡아다가 그들이 받고 있는 이 참혹한 천대와 고민을 보여주고 싶었다. 황금에 눈이 어두어 딸을 팔아먹는 그 놈들의 비인도적 악행이려니와 이 놈의 세상의 불합리를 여기서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구러나 도리켜 생각해 본다면 주색잡기에 몰려서 제딸 제누이를 팔아 먹은 놈도 있겠지만 데대가 하루에 죽 한끼도 간대가 없어서 주림을 참다 참다 못하여 팔아먹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이거리를 주고 먹을 석을 준다면 이러한 참혹한 결과를 보여주니 않을 것이다. 죽도록 일을 해도 먹을 것이 없는 터에 빚은 빚대로 졸리어 선조에게서 물려가진 두어고랑의 밭과 손바닥만도 못한 논과 오막사리를 펄아버린후 먹을 것이 없어 사랑하는 딸과 아내와 누이를 파는 처참한 운명을 당한 그들도 있는 것이다. 부자의 쌀고간에서 썩어가는 싹을 보고도 군침만 삼킬 수 밖에 없는 그들이 아닌가? 산 사실들을 목격할 때마다 마음이 이상하게도 흥분이 되는 것이다.
오늘 밤에도 경희를 찾이려고 이 곳까지 오기는 왔으나 이러한 처참한 광경을 볼 때 경희의 생각보다도 그들의 비참한 생활에 사회에 대한 모든 모순을 깨닫게 되고 그들을 구하여 낼 도리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황금의 힘은 그들앞에서
“헡은 웃음을 웃는 그 마음으로 네 목숨을 위하여 싸워라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면 죽어라”
하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그 좁은 거리에는 찰라적 향락주의자들의 그림자가 물밀듯이 모여든다. 수길이는 유령의 거리를 두 세번이나 돌았다. 그러나 경희는 만나보지 못하였다.
이 번에는 다시 오던 길을 거슬려서 대문을 들어섯 안까지 들어가 경희의 유무를 알려고 하였다. 그는 걸음을 빨리 하여 여러 사람들이 대문으로 들어설 때 그 무리에 겄여서 들어가 보고는 나오고 하였다. 참아 혼자 들어 갈 용기는 없었다. 만일에 혼자 들어간다면 봍잡혀 들어가서 그 참혹한 형상을 너무도 똑똑이 보게 되리라 한 것이다.
수길이는 한 집도 빼지 않고 모주리 돌아다니며 보았으나 경희는 없었다. ‘다행이다’ 그는 이렇게 혼자 부르짖고 그 마굴을 벗어저 왔다. 경희는 찾지 못하였으나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지 몰났다.
“그러면 여기에는 경희가 없는 것이다”
하면 그는 가벼운 히열을 느끼었다. 그러나 어지 가서 어떠한 고생을 하고 있던지 타락만 되지 말고 있었으면 하였다. 그가 병목정을 나올 때 그의 등뒤에서는
“웨 당신은 그대로 갑니까 이러한 처지에 있는 우리를 구하여 주지 않고 그대로 가버립니까”
하는 비명이 들리는 듯하였다.
그가 하숙에 돌아온 때는 새로 한시나 되었다. 그 이튿 날 아침 일찍이 수길이는 또 하숙을 나왔다 그래서 그는 직조공장 고무공장 양말공장 할 것 없이 정신 없는 사람 모양으로 돌아다니었다.
공장문을 들어서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자세한 사정을 말하여도 감독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은 아래위를 훑어보며 거칠은 어조로 거절하였다.
“작업중에 외인의 공장출입능 절대 사절이오”
“문에 무에라고 써붙였나 보구료 한인물입이라고 써붙이지 않었느냐 말이요”
어디를 가나 천편일률로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말로 애원을 하여 봐도 절대로 공장에 발도 들여 놓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여자가 없읍니까”
하며 사진을 내들어 보여도 그들은 본체 만체 하며 ‘몰라요’하고 시치미를 뗴이고 그만 안으로 사러지는 것이었다.
공장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들의 태도가 더욱 완강하였다. ××공장 같은 것은 백주에 대문을 잠거놓고 적은 곁문역에 파수가 앉아서 들어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을 일일히 심문을 하고 처음 가는 사람쯤은 문깐에서 얼신도 못하게 호령을 해붙이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십공장을 돌아다녔으나 한번도 작업실에는 들어가보지 못하였다.
“여보 사람을 좀 찾어 보겠다는데 들어가 보지 못할 것이야 무엇 있오 공장법은 ××보다 더심하구려”
수길이는 직공이외의 사람들의 작업실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잘알고 있었다. 때가 때라 도처에서 일어나는 동맹파업에 혼이 나서 공장안에다 계엄령을 내리다싶이 하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감시하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 일도 그러하려니와 작업장의 모든 결함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불리하므로 공장주는 입장을 거절하는 것이다.
도박하는 사람이 자기의 팻장을 감추어 쥐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는 모양으로 그들도 자기들의 영리를 위하여 그 공장을 자기들 손에 감추어 쥐고 있는 것이다.
수길이도 즉접 직공이 되어 그들의 밑에서 천대를 받아 본 일이 있었던고로 그 안의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수길이는 아무리 하여도 그러한 공장에서는 경희를 만나볼 수가 없으므로 하숙으로 돌아오면서 공장에서 찾아낼 방책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놈들을 구슬릴 방책이 나서지 않았다.
어느 사이에 전기불이 들어왔다. 그는 우울증에 못이기어 저녁을 먹고는 거리로 나아갔다. 청년회관 정문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수길이는 속으로 무슨 강연회가 있는가 생각하면서 그 앞을 지내다가 문옆에 세운 간판을 바라보니 ‘김연순양 독창회’ 라고 크다랗게 쓰여 있었다. 그러고 그 옆에는 ‘혜성과 같이 나타난 금춘 동경음악학교를 졸업한 천재 음악가’ 라고 굉장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연순이는 같은 고향 사람인고로 그렇게 친면은 없었지만 혹시 경희간 곻을 알고 있지나 아니한가 생각하고 표 한장을 사가지고 들어갔다. 그 넓은 대강당에는 발하나 옮겨 놓을 틈이 없을만치 정각전에 만원이 되었다. 청중은 손벽을 치며 독촉을 하고 있다. 정각이 되자 이름있는 음악자들이 조연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연순이가 청아한 목소리로 ‘백파가 넘놀 때’ 라는 노래를 부를때 청중은 그 노래에 도취되어 그렇게 시끄럽던 강당안이 기침 한마디도 없이 고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길이는 모든 것이 마음에 맞지 않았다. 얼른 음악쇠가 끝이 나서 연순이를 만나서 경희의 소식이나 알고 싶었다. 연순이가 나올 때마다 청중은 그 노래에 도취되어 박수로 그를 맞이하여 그가 노래를 마치고 들어갈 때마다 재청 삼청을 하는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강당안을 무너뜨릴 듯하였다.
열한점 반에야 겨우 음악회는 끝이 났다. 수길이는 연순이를 놓지지 않으려고 몰려 나오는 청중틈을 부비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연순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핑 둘려 싸여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첫시럼에 대인기를 얻게 된 즐거움과 희색이 만면하였다.
수길이는 그의 옆으로 가기가 제면쩍어서 한참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어 연수의앞으로 가까히 갔다. 연순이는 수길이를 보더니 바겨 맞이며 수기의 손목릉 쥐었다.
“언제 나오섰어요?”
그는 죽었던 사람이 살아 온 것 같이 놀랐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수길에게로 쏠렸다.
“예 사오일 쯤 됩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되섰어요”
“고맙습니다. 그저 잘 쉬다 나왔지요”
“철하씨는 칠월이지요?”
연순이는 수길이를 맞난 반가움보다도 철하의 소식을 알기 위하여 그를 반가히 맞은 것이었다.
“예 칠월 오일이면 나오게 되지요”
수길이는 처음에 친하지도 못한 연순이가 자기를 반가히 맞어주므로 속으로 퍽 고맙게 생각하였으니 음악회를 마친 뒤에는 초대회가 있게 되었던고로 그는 밤도 깊고하여 연순이와 내일 아침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는 하숙으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이 수길이는 연순이를 만나기 위하여 관철동에 있는 공신여관으로 찾아갔다.
“어제 저녁에 청년회관 앞으로 지내가다가 우연히 연순씨의 독창회가 열리는 것을 알고 그대로 지나갈 수도 없고 해서 음악에는 문외한이지마는 들어가 보았읍니다. 어쩌면 그렇게 훌륭히 하십니까 어제 저녁에 와본 사람들은 당신의 천재에 감탄을 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천만에 말씀을 하서요 잘 하지 못하는게 독창회를 개최하여서 비난하는 사람이나 없는지 걱정입니다. 조선 음악연구회 간부들이 하도 조르기에 권에 못이겨서 변변ᄒ지도 못한 짓을 하였지요. 선생님도 아마 흉보섰지요”
“천만에요 확실히 연순씨는 성공을 하섰읍니다”
“무얼요”
하며 연순이는 머리를 숙이었다. 그러나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무엇을 깨달은 듯이 고개를 번쩍 들고 입을 열었다.
“그 속에서 철하씨를 자주 만나실 수가 있었어요?”
연순이는 어젯밤 수길이를 맞난 뒤로 철하의 소식을 알고 싶은 생각이 불연듯이 일어났었다.
“철하씨를 자주 맞났다는 것보다도 불행중 다행으로 감옥으로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한감방에 있었으니까요”
수길이는 연순이가 철하의 소식을 애가 타서 묻는 것을 퍽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힘드는 일이나 아니 하섰어요”
“일은 하지 않었읍니다. 금고이니까 꼭 가처만있었지요”
“일도 안하시고 게섰으면 몸은 편하섰겠읍니다”
연순이능 철하의 소식도 알겸 또 감옥 안 이야기를 듣고도 싶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편한게 무엡니까 방속에 꼬 가처 있으니 답답하여서 견딜수가 있나요. 첫째로 눈이 상하고 왼몸이 뒤틀리고 해서 병이 날 듯하였읍니다”
“아니! 금고에는 조금도 밖을 못나오나요”
“하루에 한번씩 운동시간은 있으나 그까짓것이 쓸데 었어야지요 도리어 밖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더군요”
“그러면 철하씨도 꼭 가치만 계시겠군요”
“그러쿠 말구요 나와 꼭 같은 생활을 하였으니까요”
“찰하씨가 그 동안 몸이나 편ᄒ지 않으신 일이나 없었는지요?”
“그사람은 원래 몸이 튼튼하니까 앓지는 않었으나 그래도 밖에서 마음대로 활동할 때만 하겠읍니까? 첫째로 광선을 받어야 되겠는데 침침한 방에 있으니까요”
수길이는 철하의 건강에 대하여 연순이에게는 좋도록 말하였지만 몇날전부터 몸이 편ᄒ지 않아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속으로 그의 싱상에 대하여 적지 아니한 근심을 하였다. 더욱이 철하가 병감에 가서 진찰을 하고 와서 폐가 나쁘다고 주의방법을 적어가지고 온 것을 보이며 실망을 하던일이 생각이난다.
“참 명순씨가 어디로 갔읍니까”
수길이는 마음이 가깝하여 자기의 목적하고 온 말머리를 내여 놓았다. 직접 경희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경희의 말을 먼저 끄내여 놓기는 거북하여 명순이를 먼저 내세웠다.
“철하씨에게서 무탁을 받고 나왔는데 어디 있는지 알어야지요”
이말을 듣고 앉았던 연순의 낯빛은 이상하게 달라가는 것을 수길이는 직각 할수 있었다. 연순의 이상한 태도를 목격하게 될 때 언제인가 철하가 함흥에 내려갔을때 연순이로 하여서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이 났다.
수길이는 속으로 명순의 말을 끄내 놓은 것을 후회하였으나 그 일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무슨 부탁을요?”
“아니 별부탁은 아니고 화동에 있는 자기의 짐짝을 보관하여 달라는 부탁입니다”
수길이는 자기가 받은 부탁을 슬쩍 돌려 대였다.
“또 연순씨의 말씀도 자주 하더군요”
수길이는 연순이를 안심을 시키디 위하여 철하가 입도 때지 않던 말을 꾸며대었다.
“저의 말을요? 무에라고요”
연순의 낯은 조금 풀린 듯하였다. 연순이는 처음부터 철하가 자기에 대한 말이 있었으면 하여서 참아 먼저 물어보지는 못하고 수길의 입만 치어다 보았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명순의말이 먼저 나오므로 철하와 명순 사이의 일은 문제도 안될 줄 알고 있으면서도 속으로 퍽 섭섭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무엇이라고 하섰어요?”
연순이는 수길의 앞으로 닥아앉는다.
“함흥에 내려갔을때에 많은 페를 끼치었다고 늘 미안해 하더군요”
수길이는 자기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 속으로 우스웠다.
“그 말씀 밖에는 없어요?”
연순이는 그 말만에는 불만이 있었다. 수길이도 될 수 있는대로 없는 말을 꾸며서라도 좋도록 말하여 주지 않고는 자기의 온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알아차리고 여러가지 말로 꾸며 보았다.
그러나 이 다음이라도 문제가 될만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연순이가 철하에게 대한 태도가 얼마나 가앟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수길이는 연순의 마음이 풀어지도록 이야기를 하고나서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 하였다.
“경희를 요사히 어디서 보신 일이 없읍니까?”
“경희말씀입니까? 저도 조선에 온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서악연구회에서 노비까지 보내여주니 안 나올 수가 있어야지요 서울일이라고는 영 모릅니다”
수길이는 여기서 실망을 하지 아니하지 못하였다. 차라리 이렇게 될 줄을 알았더면 어제 저녁에 즉석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것을! 공연히 궁금해서 밤을 새운 것이 후회가 되었다.
“명순의 간 곳도 모르겠읍니까?”
명순의 간 곳이나 알았으면 명순이를 찾아 가서나 물어보려고 생각하고 연수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 것도 알면서 명순의 말을 끄내놓았다.
“명순씨의 말은 더 묻지도 말어 주십시요 물어 보아도 쓸데 없이 되었는데요”
연순이는 코웃음을 쳤다.
“네? 그러면 명순씨가 어떻게 되었나요?”
수길이는 연순이가 코웃음 치며 하는 수작이 암만해도 명순의 신변에 상스럽지 못한 일이 생긴거나 아닌가 하였다.
“철하씨도 명순이만 믿고 게시면 낭패지요. 아니 낭패라는 것보다도 망신이지요.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모를 것이예요 그렇게 얌전하던 이가……”
연순의 말은 점점 야릇한 길로 달음질을 친다.
“웨! 명순씨가 어떻게 되었읍니까? 자세히 말씀이나 하여 주십시요?”
수길은 연순이가 명순에게 대한 이야기를 할때에 친구의 애인이요. 또한 현숙하던 그 여자가 그 동안 그 무슨 풍파를 지내이고 혹시 타락이나 아니하였는가 의아하여 알고 싶었다.
“알어서 무얼하서요. 좋은 일이면 풀으시기 전에 말씀을 하였게요”
수길이는 그렇게 말하는 연순이가 도리어 의심이 났다. 명순의 약점을 내세워 놓고 철하를 빼앗겠다는 야비한 행동이 아닌가 추측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부터 연순이의 일을 철하에게 들었으므로 미루어 알 수가 있었다.
“명순씨가 어떠한 환경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비난만해서야 되겠읍니까 대관절 어떻게 되었걸래 그리십니까?”
수길은 조금 핀둥이릉 주듯이 퉁명스럽게 말해 던졌다.
“웨 제가 명순이를 비난하겠읍니까? 그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그 애가 딴전으로 변하였으니 사람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지요”
“웨! 기생이나 색주가가 되었나요 딴전으로 변하였다니”
“아니 화류계로 빠졌다는 말씀은 아니야요”
그 다음 말을 하려고 할 때에 땅하는 소리가 나더니 종이로 싼 적은 뭉치가 밀창을 뚫고 방에 날아 들어왔다.
연순이는 놀래여 벌떡 일어섰다. 수길이도 불의의 이레 멍하니 그 종이뭉치를 바라보다가 문을 와락 열어 제쳤다. 그러나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길이는 열어논 문을 닫지도 않고 그 종이뭉치를 집었다. 펴보니 흙이 말라 붙은 적은 돌망이가 있을 뿐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종이조각을 들고보니 거기에는 이상한 문구가 쓰여 있는데 연필로 날려쓴게 되어서 잘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수길은 그 글씨를 이리저리 뜨게 보고는 다시금 놀래지 아ᄒ니지 못하였다. 연순이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수길의 등뒤에 오서 넘겨본다.
“무엇이라고 썼어요”
그 여자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자 보십시오 암만 읽어 보아도 도무지 요령을 잡을 수가 없읍니다”
수길이는 그 종이 조각에 씨인 글의 내용을 알고 속으로 실없이 흥미를 느꼈으나 모르는 체하고 연순에게 그것을 주었다. 종이조각을 받아든 연순이는 그것을 읽어보았다.
연순의 두손은 떨리기 시작하고 따라서 그의 두 눈은 공포에 번쩍인다.
그 종이조각에 쓰여 있는 글은 이러하였다.
“명순이를 해하려고 하는 자는 용서가 없다. 어떠한 기회에든지 생명을 빼앗고 말겠다. 요 건사한 연순아! ST”
연순의 전신은 사시나무 같이 떨리었다.
“연순씨 누구에게서 온 것입니까 ST가 누구예요?”
“글쎄요 ST라는 첨보는 이름인데 참 이상한데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요”
수길은 마치 독깨비 장난 같고 어린애 장난 같아서 우스웠으나 그 ST라는 인물에 대하여서는 알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러나 당신을 알고 있기에 연순이라는 이름을 썼겠지요. 또 명순씨의 이름까지도……”
“그러나 누군지를 알 수가 있어야지요. 이상한데요”
“연순씨로서는 생각이 나실 것인데요. 아무 것도 알지 못한 나로도 그 내용을 보아서 ST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하나마 알 수가 있는데요”
“그러면 그 ST 라는사람이 누굴까요?
“누구라고 이름까지 말할 수는 없읍니다마는 여러가지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ST는 별사람이 아니라 당신과 명순의 사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명순이를 힘껏 보호하여 주고 당신의 입을 무서워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고만 하며 ST라는 사람의 정체를 아실것입니다”
연순이는 수길의 말이 그럴듯하기는 하나 별안간에 언듯 생각이 안났다.
“그런 이는 없어요 명순이와 저의 곤계하는 것이 첫째로 모호해요. 명순이와 나와 그러한 관계가 있을리가 있나요. 다만 같은 고향에 산다는 것과 서로 친하게 지낸다는 것 밖에는 다른 사람이 내 입을 무서워 할만한 그러한 깊은 관계는 가지지 않았읍니다”
연순이는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나 그것만은 깨끗이 감추어 버리지 않고는 안될 것을 알았다. 그것은 연순이가 자기 사촌오빠를 꾀여서 명순이를 망처놓은 것이다. 연순이는 그 때에 사촌 오빠에게 돈까지 주어서 명순이를 데리고 개성으로 내려가도록 하고는 자기는 그 이튿날 동경으로 건너간 것이니 그 때에 자기는 책임을 벗을 줄로만 믿었ᄋ었다.
연순이가 동경으로 건너가자 오빠에게서 성공을 하였다는 편지를 받어보고 곧 그 자리에서 그 편지를 불에 태워 버리었던 것이니 이러한 사실이 영원히 비밀로 돌아간 것이어니하고 혼자 생그래 웃었던 것이다. 더욱이나 사촌오빠조차 그 후 한 달도 못되어 집과 가구를 집행당하고 그것을 비괂여 술을 마신 김에 물에 빠저 자살을 하여 버렸으므로 자기의 음모는 영원히 숨겨지고 만것이니 그것이 명순의 입에서가 아니면 누설이 될리가 없었다.
“ST! 참으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지 못할 사람이예요”
“그렇지마 명순씨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웨 그러한 경고문까지 보내었겠읍니까”
수길의 생각에는 아무래도 연순이가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 하였다.
연순의 마음씨를 전부터 안 바로 또한 의외에 그러한 경고문도 보았으니 반드시 연순이는 명순이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명순이를 위하여서든지 또 철하의 면목을 보아서라도 그대로 있을 숙 없었다.
“ST는 확실히 사람이지 귀신은 아니겠지요. 이 경고문을 한번 더 읽어보십시오. 명순이릉 해하는 사람은 죽여 버리겠다고 하였으니 당신과 명순씨의 사이릉 누가 의심하지 않겠읍니까?”
수길의 음성은 좀 둔탁하여졌다.
“수길씨 그것은 너무도 심한 말씀입니다. 심하다는 것보다 실례의 말씀이 아닐까요?”
연순의 낯빛은 빨개졌다. 둥글해진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수길이를 흘겨보았다.
“실례요? 웨 그게 실례입니까 이 경고문이 그이상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기로 수길씨가 팔을 걷고 나스실게 무어야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음성을 높이실 것까지는 없지 않어요?”
“나로서는 팔을 걷고 나서서 음성을 더 높여서라도 처리해야 될 필요가 있지요……”
“이 일에 무슨 관계가 있길내 처리를 하신다고 그러서요?”
“예― 그러면 관계 있는 것을 설명하여 드리지요. 첫째로는 명순씨가 나의 친구의 애인이라는 것과 둘째로는 나와 같이 돈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수길이는 일부러 연수의 마음을 툭 건드려 보았다. 그래서 친구의 애인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서 말했다. 그러나 연순이는 수길의 말을 듣고도 기색이 변ᄒ지 않았다. 그가 냉정하여지는 때는 그의 마음이 꿈틀하고 ‘히스테리’ 증이 발작되어 명순의 파멸을 수길의 앞에서 폭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ST’ 의 무서운 경고에 그런말은 참아 못하였느나 속마음으로 자기가 이미 승리하고 있다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연순이가 만일 개성에서 일어난 그 사건외에 명순이가 지금 더 큰 난처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는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그리고 연순이는 동경에 건너가 있었으므로 그 뒤에 명순이가 어찌된 것은 몰랐었다.
“철하씨는 지금 감옥에 있으면서도 하루 한시라도 명순씨를 잊는 때가 없읍니다. 그는 명순이를 열중으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것은 출옥후에 봐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연순이는 이런 기회에 명순의 말을 하고싶었으나 ‘ST’ 가 무서워서 말은 못하고 어떤 때에든지 명순이가 처녀가 아니라는 것이 세상에 나타날 기회가 있으려니 하였다.
수길과 연순이는 오후 한시가 되도록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거나 성악연구회 간부라는 사람들이연순이를 찾아 왔으므로 수길이는 공신여관 문을 나섰다. 수길이는 하숙으로 돌아오면서도 연순의 일을 생각하고는 분한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오늘에 일어난 일을 미루어 본다더라고 명순이가 어떠한 마수에 걸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만일 명순이가 마수에 걸리지 않았다면 웨 ST 라는 정체모를 사람이 연순에게 위협까지 하였을까 사건온 몹시 복잡한 것 같았다. 확실히 ST와 명순과 연순을 에워싸고 연출되는 히비 극의 그 첫막이 열려진 거시아 하였다. 그라고 그들 등뒤에도 정체모를 그림자가 옴익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음 엿순의 종적이 경성시내에 사라지고 만 것이 어떠한 곳에 가서 어떠한 무리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추측이 되니 한시라도 그대로 방관만 할 수는 없었다. 모르면 이러니와 안 다음에야 명순이를 위하여 활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희도 경희려니와 명순의 일이 더 큰 문제나 깉이 생각이 되었다. 철하가 만일 감옥에 있지 않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명순이를 위하여 그를 수색하고 있느면 별 문제려니와 그는 감옥에 있는 몸이니 수길이는 대신하여 이 사건을 해결할 책임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여야 단서를 얻게 될지 그도리가 막연하였다.
방장노 집에서 아무 말도 없이 나가버린 채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어떤 놈에게 유혹을 당한 것이로 생각하였다.
만일 유혹을 당하였다면 찾아내기가 더운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였다.
단서를 얻어 보려면 연순이와 ‘ST’ 라는 그 정체 모를 사람에게서 뿐이었다. 그러나 ‘ST’ 느 암호 그래로 명순이를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인물이고 연순이는 ‘ST’의 위협에 입을 벌리지 못하고 있으니 알길이 없었다. 아무리 하여도 연순이를 살살 달래어 비밀히 물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수의 감정을 건드려 놓았으므로 그 방종한 마음을 가진 연순이를 구슬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수길이는 그 날 종일 하숙방에 들어 누워서 명순이를 찾아낼 길을 생각하였다.
모성애(母性愛)
늦은 겨울의 쌀쌀한 바람이 엄동의 치위만 못ᄒ지 않게 살을 어의듯이 불어오는 이월 십오일 밤이었다.
수원역(水原驛) ‘풀렛트홈’ 에는 겹올을 입고 벌벌 떨며 간난애를 가슴에 폭 안고서 영양부족으로 시원ᄒ지 않은 젖을 한목음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아기의 복실복실한 뺨에 뚝 뚝 떨어지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갖난아기도 눈물이 뺨에 와 떨어질 때마다 몸을 움추리는 것이다.
그 여자는 손수건으로 어린 아기의 뺨에 떨어진 눈물을 씻어주며 자기의 눈도 훔친다.
그러고 그는 검푸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무수한 별들을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나서 어린아이를 힘있게 껴안는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조금도 끈지ᄒ지 않고 소낙비 같이 펑펑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 여자의 곁에는 누구의 집 드난을 사는 듯 한 나이가 한 삼십오륙세쯤 되어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시커멓게 때묻은 무명옷 꾸여진 고무신 어디를 보든지 고생살이에 찌들은 흔적이 있었다.
“그렇게 우신들 소용이 있읍니까. 내가 잘 길러 드릴께 걱정을 마십시오”
위로를 하여주는 그 여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어린애를 안은 여자는 그 말에 더욱 설은 듯이 더욱 느끼어 울 뿐이다..
차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의 시선을 이 두여자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네즐은 그저 이별하는 사랑의 슬픔이거나 하고는 시선을 다른데로 옮기는 것이다. 만일 그 두여자가 모든 사람의 호기심을 끌을 만치 차림차림이 훌륭하였더면 필연코 무슨 흥미 있는 곡절이 있으리라 하여 그들에게서 눈을 떼이지 않고 그 여인의 울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할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비한한 사람의 생명까지도 그렇게 중대시하니 않겠거던 이들의 비애를 알아 주겠는가. 이 세상에서는 없는 사람들의 그 존재를 인정하여 주었는가.
“서울로 올라가시더라도 주소만 통지하여 주시면 내가 아무리 구차한 살림살이를 하고있지만 종종 어린 아기의 소식을 알외에 들일터 이니 걱정을 마르십시요”
울고 있는 여자를 진심으로 위로하여 주는 그 말소리! 거기에는 진심과 연민의 정이 끌어오르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저 묵묵히 어린 아이를 놓지지 않겠다는 듯이 안타까웁게도 부등켜 안은 채로 울음을 삼키며 들여다 보기만 한다. 철모르는 어린애 그 어미야 울건 말건 저는 아무 근심걱정이 없다는 듯이 젖꼭지를 문채로 힘차게 젖을 빨다가도 어미의 낯을 치어다 보고 벙싯벙싯 웃는 것이었다.
“자 어린 애기를 이리 주십시오 차가 들어옵니다”
중년 여자는 재촉을 하며 두 손을 내민다.
어린애를 아었던 그 여자는 차가 온다는 바람에 어린아이를 힘있게 껴안고 놓지 않으며 몸을 돌이켜 기차가 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기관차의 험상궂은 얼굴이 가까히 왔다. 가것은 마치 자기의 생명을 갈아삼킬 듯이 사나운 기세로 달음직을 처서오는 것 같았다.
순식강에 기차는 ‘풀렛트홈’에 와서 ‘씩―’소리를 내이고 누웠다.
‘애리를 이리 주세요 잘못하면 차를 놓칠테니 얼른 오르십시오 어서 애를 이리 주서요”
넋을 잃은 사람 모양으로 멍하니 서서 어린애의 낯만 들여다 보는 그 여자에게 그 중년ᄋ 져자는 성화 같이 재촉을 하며 그 여자가 안은 애를 잡아 닥친다.
“이 애를 두고 어떻게 나만 혼자가나? 그러면 이 불상한 이애를 잘 길러주세요. 이번 가면 아무래도 나는 다시 이 애를 만나 몰 것같지 않어요. 애의 양육비는 어저께 말씀한 것과 같이 매달 틀림 없이 보내 드릴 터이니까 잘 길러 주십시요”
“걱정을 마서요 틈있는데로 오시구료”
“암 오구말구요 그러나……”
그 다음 말은 참아 나오지 않는 듯이 흐려버리며 입을 움줄움줄 하다가는 그만 어린 애의 가슴에 자기의 얼굴을 파묻는다.
“어서 오르서요. 어서 어서 애기를 이리 주서요”
이라하여 어린애는 엄마의 품에서 멀어져 갈수록 물었던 젖을 더 힘있게 물고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 힘은 약하였다. 그 대는 엄마의 품으로부터 다른 여자의 품으로 옮겨갔가. 젖꼭지를 잃어버린 어린애는 목을 놓아 운다. 어머니도 운다. 그 여자도 운다.
발차를 명령하는 호각소리에 그 어머니는 기차에 올랐다. 느끼어 울면서 어린애 있는 곳을 바라 보았으나 뜻 없이 달아나는 기차는 수원역을 어두움 속에 장사하여 버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종종히 보이는 수원역 전등불조차 까물까물 하더니 눈을 감어 버린 듯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씻고 차안으로 들어왔다. 차안에 들어온 그는 의자에 힘없이 주저 앉았다. 그러고는 솟아오르는 울음을 억제하면서 모든 사람의 시선을 피하여 시커먼 차창을 내다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느끼어 울면서 흘러내리는 젖을 수건으로 씻으며 젖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다 옆에 앉은 손님들은 그 여자를 우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츹어진 머리카락 때묻은 겹옷 창백한 낯빛.
독자여! 만일 기차안에서 이러한 여자를 맞났다면 그것이 작년 첫여름에 무서운 선고를 받고 대제병원 문을 나서던 명순이라는 것을 누가 알까.
그러나 그 여자의 모든 것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그때 무서운 주검을 결심하고 한강을 향하여 슬픈 발자욱을 옮기어 놓던 명순이라는 것은 곧 깨달을 것이다.
명순인 줄은 알게 되면 그가 어찌 되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또 그 동안 어떻게 지내어 왔을까 하는 것을 알고 싶을 것이다.
인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일곱달전으로 돌아가 보자. 대제 병원을 나온 명순이는 한강으로 가려고 용산행 전차에 올랐다. 명순이는 전차 안에서 혹시 아는 사람이나 만나지 않을까 하여서 한편 구성에 가서 쪼구리고 앉아서 창밖을 내어다 보며 있었다. 한강 종점에 가서야 겨운 안심을 하고 내렸다. 그러나 인도교도에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명순이는 머리를 숙이고 인도교를 걸어갔다. 어떤 때에는 발을 멈추고 시퍼럼 가움ᄅ을 내려라 보기도 하였다.
얼마 남지 아니한 봄을 애끼듯 젊은 청년남녀들은 인도교를 완보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은 제철이 왔다는 듯이 ‘뽀오트’ 를 이리저리 젔고 있었다. 인도교 난간과 ‘뽀오트’ 안은 사랑의 속삭임이 무르녹었다.
명순이는 그 때 이모든 것을 바라보며 지내간 날에 철하와 함께 이곳을 거니던 일을 생각하고 흐르는 눈물을 금ᄒ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달 밝은 밤 철하와 둘이서 ‘뽀오트’를 타고 속삭이던 일! 그 때는 참으로 즐거웁고 행복된 때이었다.
옛날의 그 시절! 영원히 다시 오지 못할 그 시절을 위하여 명순이는 시퍼런 강물을 내려다 보며 흐른는 눈물을 금ᄒ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흐르는 물은 그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것만 그 때에 아름다운 노래를 자아내게 하던 강물은 지금에는 저주의 물결 같이 보였다. 지신을 불러들여 삼키려는 무서운 물결 같이 보였다. 명순이는 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이 몇시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왼몸이 떨리었다. 그러나 죽지않고는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몇달이 아니면 철하가 출옥을 할 것이니 사생아를 가진 자기로서 철하를 볼 면목이 없을 것이며 사람마다 자기를 비웃을 것이다. 난경을 당할 때는 목숨을 내여놓고 구하여 주겠다는 ‘ST’ 라는 사람도 아무런 소식이 없고 설혹 ‘ST’가 나와서 어떠한 수다능로 자기를 구하여준다고 하더라도 한번 받은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그것도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뱃속에서 자라나는 죄악의 씨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고민에는 ‘ST’가 아무리 더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한번 짓밟힌 흔적은 다시금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러하니 옛날과 같은 명순이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니 다시 부활시킬 수가 있을까.
창선이라는 놈에게서 받은 그 상처는 자기가 죽어버리지 않고는 나올수 없는 것이다.
아직도 세태에 젖고 젖어서 모든 것을 깨닫고 깨달음으로 이 세상이 모든 사물을 찬단해서 거기서 자기의 갈길을 확실히 발견하지 못한 그는 항용 이러한 봉건 가정에서 길리운 젊은 여자로서의 고지곳대로 생각한 결과 결국 주검을 선택한 것이다.
명순이는 한간 인도교 쇠난간에 의지하여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풍덩 빠지면 그만 수렁지며 흘러가는 물속에 파묻히고 말 것이었만 혹여 ‘뽀오트’를 타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면 목적도 달ᄒ지 못하고 창피는 창피대로 볼 것이니 그래서 그는 밤을 기대리고 있는 것이다.
해가 서편으로 숨어버리자 한강 인도교는 하루의 피로한 몸을 끌고 소풍차로 나오는 경성새내의 사람들이 많아졌다.
황혼이 지나가고 완전히 밤이 돌아왔다. 그러나 인도교만은 전기불빛이 낮고 같이 휘황하였다.
명순이는 그 중에 으슥한 난간에 의지하여 왕래하는 사람들의 행봅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쌍쌍이 팔을 젓고 은근히 속삭이며 심취하여 웃고 지나가는 젊은 남녀늬 청춘의 향락이 몹시도 부러웠다. 부러우면 부러울사록 그는 슬펐다. 그리고 뱃노리하는 사람들의 흥에 못이기여 부르는 노래! 강가의 누각에서 들려오는 취흥에 EJ는 노래가락 아! 그것은 마지막 듣는 세상소리다. 자기의 주검을 기다리는 이 한강은 이렇게도 즐거웁던 한강이었던가 하였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털끝만치도 즐거움을 받을 수 없는 이 향락의 한강수 자기에게는 다만 저주의 물결이 길게 뻗혀서 흐를 뿐이다.
“ 되는대로 살아갈려면 아무 일도 없겠는데”
명순이는 그 모든 것에게서 유혹을 당하자 돌처 생각도 하여보았다. 그리고는 검푸른 물결을 내려다 보았다. 금실금실 흘러가는 물이 불시에 몹시도 무서워 보였다. 몸만 훌쩍 뒤치면 훅딱 집어생킬 물이었다. 그는 떨었다. 그는 외마디 소리를 지를 번 하였다.
그도 사람이요 사람인데도 세상에 젖지 않은 젊은 여자였따. 그는 자기의 생명에 대하여 청춘에 대하여 미련이 있었다. 몹시도 안타까웁게도 애착이 있었다.
명순의 마음은 결국 주검을 당하여서는 그것을 단행하기에 퍽 약하였다.
그러고 자기만의 이세상에서 가면을 쓰지 않고 산 것 같았다. 그렇다 세상사람은 모두가 가면을 쓴것이 아니냐. 그러면 나도 가면을 쓰고 살면 얼마든지 내맘대로 살수가 있지 않으냐.
내가 무슨 죄악을 젓단 말이냐 그렇다 죄가 아니가. 내 죄가 아니다. 그 책임이 이세상― 이사회가 저야 한다. 내가 의식적으로 감행한 일이라면 그것은 나의 죄겠지만.
명순이는 십자로에서 망설이기 시작하였다. 깨끗하게 죽어 버릴까 그렇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과 같이 거짓으로 살아갈까 그는 머리를 두 손으로 싸고는 쉬지 않고 흐르는 시커먼 물결을 굽어보며 생각하였다. 그러나 둘다 해결할 수 없는 수수꺼끼었다.
명순이가 이 새로운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자기의 등뒤로 지나가며 지꺼리는 남녀의 음성이 들리었다. 명순이는 사람의 눈을 피하려 하였으나 그 여자의 음성이 몹시 귀에 익어서 휫딱 돌아보았다. 그 여자는 월춘이었다. 명순이는 무의식간에 그 여자의 뒤를 따라 두어걸음 옮겨 놓았다. 월춘이는 명순이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그 사나이와 걸어갔다.
명순이는 두어 걸음 따라가다가 그대로 발을 멈추었다. 명순의 생각에는 자기의 새로 일어난 문제를 의논하여 볼만한 사람은 월춘이 밖에 없을 줄 알았다.
그는 고등밀매은이나 그 만틈 모든 세상일에 대하여 환히 할 것 같고 의논하면 무슨 좋은 방책이 생길지도 몰랐다. 공교히 만나게 되었으니 도리어 그를 맞남으로 하여서 앞길이 열릴지도 몰랐다. 더운이 개성에서 그를 맞났을때 하던 말이 생각났다.
“당신은 당신의 정조를 중히 녀길수록 당신에게 닥처오는 비애가 더 커갈 것을 압니까”
명순이는 정조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철하를 위하여 그에게 바칠 정조 그것을 잃었다고 애통하며 신고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정조를 헌신짝 같이 내여 버릴수가 있는가 하였다.
만일 정조를 개떡 같이 안다면 월춘이와같이 그 더러운 생활을 하여야만 되는 것이 아닌가. 명순의 마음에는 여러가지 선풍이 일어났다.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랐다.
그의 마음에서는 ‘주검’ ‘정조’ ‘타락’ ‘거짓생활’ 이 모든것들이 한데 섞여서 서로 싸우며 용솟음치고 있다.
그는 정신이 어지러울만치 이 모든 것들과 싸웠다. 나중에는 어떤것을 취하였으면 좋을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무의식 중에 월춘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따라갔다.
월춘이는 제 세상을 맞난 것 같이 떠들고 웃고 하며 그 남지의 말에 매달려 가고 있었다. 그러고 그의 걸어가는 뒷모양만 보더라고 춤추는 여자 같이 덩실덩실 걸어가는 것이었다. 누가 보던지 그는 매춘부중에도 들어난 매춘부라는 것을 알 것이다.
저렇게 흥겨워 하는 것을 보아서는 모든 것을 낙관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저렇게 성질이 유들유들할까”
명순이는 입속으로 외이면서 월춘이를 노칠까봐 쥐의를 하며 따라갔다.
몸에 꼭 들어반는 회색 저고리와치마 뒤높은 출렁거리는 그의 왼몸은 야릇한 미(美)가 졸졸 흐르는 것이었다.
월춘이만 보더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확실히 속여서 살고 속아어서 살아가는 것을 꺠달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도 월춘이와 같이 된다면 무엇이 꺼릴 것이 있으랴!”
월춘이와 그 사나이는 인도교를 지나 돌기둥 옆에가서 발을 멈추고 무앤지 소근대고 있었다.
명순이는 어떻게 하여서던지 월춘이가 자기를 먼저 보고 알은 체를 하였으면 하였다.
그는 자기가 솔선하여 그의 앞에 가서 갈은체를 하기에는 그래도 그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참다 못하여 그는 여러번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여 그 앞으로 걸어갔다.
“여보 당신이 명순씨가 아니예요?”
명순이가 못보는 체하고 그 앞을 지내어 가자 월춘이는 자기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걸었다.
명순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아! 월춘씨이군요”
명순이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하였다. “그러지 않어도 명순씨를 한번 만나볼 생각이 있었는데 어디 계신줄을 알어야지요. 그래 그 동안 어떻게 지내섰나요”
명순이는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랐다.
혹시 자기의 지낸 일을 알고 묻는 것이나 아닌가 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었다.
“별로……”
명순이는 어물어물하게 대답을 하고는 입속으로 웃어보였다.
“혼자 나오셨어요?”
“네 홀로 나왔오”
월춘이는 명순이가 홀로 나왔다는 말에 의아한 눈치로 명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웨? 어디가 편ᄒ지 않으서요? 개성에서 맞날 때보다 퍽 여위섰구먼요”
“올봄부터 좀 몸이 시름시름 아퍼서요……”
“홀로 나오섰으면 우리와 함께 다닙시다. 오래간만에 맞났으니 이야기도 좀 하고 네? 좋지않어요? 참 조용이 하고 싶은 말도 있고 하니? 명순씨”
명순이는 낮나기 전에 생각보다도 만나고 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아서 후회도 하였으나 월춘의 말도 들어보고도 싶었다. 명순이는 별로 말은 아니하고 표정으로 승락하는 뜻을 보였다.
명순이는 월춘이와 같이 걸어갔다. 낯모를 중년신사도 한편 옆에 붙어서 따라오는 것이었다. 신사는 그 숭치레한 눈으로 명순이를 슬금 곁눈질을 하며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간다. 명순이는 그 신사의 태도를 알아차렸다. 그 신사가 자기도 월춘이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 같이 보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겉모양을 보아서도 어느 회가 같은데의 중역 같이 보였다.
명순이는 월춘이와 그 신사의 권고를 못이기는 체하고 노량진 편으로 건너가서 청강루(淸江褸)라고 써 붙인 중국 요리집으로 들어갔다.
넛실이나 먹어 보이는 청인이 허리를 굽실굽실하며 이층에 있는 조용한 방으로 세 사람을 안내하였다.
“이뺀디홀라?”
방에 들어가 앉는 손님들을 보고 이렇게 말을 하고는 연해 허리를 조으면서 청인이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신사는 청인을 내려가라고 명령을 하고는 자기도 뒤 따라 내려갔다.
잠시후에 신사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이는 우리 중학교 때의 동창생이예요”
월춘이는 간들어진 목소리로 그 신사께 명순이를 소개하였다.
월춘이는 차를 따라서 한잔씩 원하고 나서
“참 우연히 맞났어요. 그 동안 경성에 계섰읍니까?”
“예……”
“나도 서울은 가끔 올라와도 명순씨의 주소를 알어야 찾어보지요. 혹시 길가에서나 맞날까 하였으나 만나뵈올수가 있던가요. 참 이렇게 만나기는 희한한 일이여요”
“저는 다니기를 즐겨하지 않으니까요! 특별한 볼일이 없는 다음에는……”
월춘이와명순이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 즈음에 청인이 요리를 가지고 들어와서 식탁에다 늘어놓았다.
청인의 뒤를 따라 또한 사람이 맥주병을 들고 와서 컵을 이곳 저곳 보기좋게 세워 놓고는 도야지기름에 젖은 입을 뻥끗하고 웃고는 내려갔다.
신사는 맥주병마개를 빼여 컵에 넘처 흐르도록 부어 놓았다.
“자 명순씨 한잔만 하시지요”
“웬 제가 술을 마실 줄을 알어야지요”
“아니 한잔만 드십시오 드르세요. 이 맥주는 술같아도 정말 술은 아니니까요”
월춘이도 따라서 권하며 한 잔을 따라 한목음 쭉 드리마신다.
신사도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명순이를 건너다 보며 말을 끄낸다.
“맥주는 술이 아니니까요 한 잔 드십시오”
애교를 부리며 권하는 것이 명순이는 속으로 우스웠다.
명순이는 어따한 사나이든지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모다 거짓을 꾸미는 것 같아야 믿을 수가 없었다.
“맥주가 술이 아니면 웨 주(酒)짜를 놓았겠읍니까 하하”
명순이는 속으로 우스워서 이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알콜 성분이 적게 들었다는 말이지요”
신사도 마주 웃으면서 이렇게 수작을 하고는 냉수를 먹듯이 드리키었다.
명순이도 월춘이가 권하는 바람에 두어잔 먹은 것이 정신이 얼떨떨 하여지고 얼굴이 확확 닷고 왼몸이 화끈거렸다. 나중에는 꿈같이 흐리흐리하게 되고 마음이 헤뜨러지기 시작하였다. 신사와 월춘이는 취하였다.
명순이도 월춘이가 권할 때마다 사양ᄒ지 않고 몇잔이고 방아 마시었다. 그러니 처음 먹는 술리아 방안이 핑핑 돌아가는 것 같으며 맥이 확 풀려서 근심이고 무에고 세상만사가 태평하였다. 명순이가 술을 넙적넙적 받아 마신 것도 술을 마시면 세상만사를 잊어버린다는 말을 들은 까닭이었다. 머리는 아퍼도 술은 유쾌한 것이라 하였다.
세사람이 얼마를 마시었던지 한편 구석에는 삐루병이 수두룩하게 쌓였다.
월춘이는 처음에는 되는대로 마시던 것이 중간에 와서는 조금씩 마시는 체 하고 그 신사에게 다 눈코뜰새 없이 맥주를 권하였다. 그러나 그 신사는 조금도 사양ᄒ지 않고 받아마시는 것이었다.
“월춘이가 권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사사사양ᄒ지 아아않고…… 마마시지 그 까짓것”
그 신사는 농창이 되어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며 그래도 척척 받아 마시는 것이다. 월춘이는 명순이를 보고 한눈을 찌긋하여 웃어보이며 그 신사에게 맥주를 연해 권하는 것이었다.
밤이 꽤 들었을 때에는 그 신사는 의자에 앉은 채로 코를 골고 있다.
월춘이는 그 신사의 곁에 가서 잠이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염녀가 되는 듯이 눈치를 채려보고는 그가 거짓 코를 골지 않는 것을 알고야 명순의 곁에 와서 가까히 앉는다.
“그 사이에 불길한 일까지 당하고 얼마나 슬프겠읍니까?”
월춘이는 동정하는 낮으로 명순이를 바라본다.
“아까 한강에서 당신을 맞났을 때 나는 깜짝 놀랬읍니다. 너무도 슬픈 김에 당신이 애인의 뒤를 따라 강물에 몸을 던지려고 나왔는가 하고요. 그러나 죽은 사람을 생각한들 소용있우”
명순이는 깜짝 놀랬다. ‘애인이 죽었다니 철하가 감옥에서 옥사를 하섰는가 그럴 이치도 없겠는데 그러고 철하가 나의 애인인 것을 월춘이가 어떻게 알았는가’ 명순이는 아무리 하여도 월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양반이 감옥에서 돌아거섰단 말입니까?”
명순이는 빨개진 얼굴이 금시에 창백해지며 월춘의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명순씨 취하섰읍니까? 정신을 차리십시요”
“취하였다니요”
“아! 너무 슬프니까 그러시겠지마는”
“슬프니까라니요”
명순이는 월춘의 요령부득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철하씨가 돌아가섰다니요. 그게 정말이예요”
“철하라니 나는 그런 사람을 꿈에도 만나본 일도 없거니와 이름도 처음이올시다. 감옥에서 옥사를 하였느냐고요? 온참 명순씨 취하신 모양이로군”
“아니 월춘끼 저를 보고 애인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슬프겠는가고 묻지 않었읍니까”
“아! 철하라는 가람도 당신의 애인이던가요? 그 사람말이 아니라 개성으로 함께 내려가셨던 창선씨 말예요”
“창선!”
명순이는 이렇게 무의식간에 창선의 이름외이고나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힘없이 주저앉는다.
“얼마나 슬프시겠읍니까”
속모르는 월춘이는 이렇게 위로를 한다.
“웬 그 양반이 자살을 할 줄이야 누가 알었겠오. 그의 시체를 건지지 못하였다고 그때 신문에 났더니 그 후에 건졌는지?”
명순이는 벼락을 맞은 사람 모양으로 꼼짝도 안하고 앉았다.
“돈이라는게 참으로 우슨 것이야 창선씨도 오직 분하였으면 자살을 하였겠오”
명순이는 창선이라는 사람이 죽어버린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하였다.
털끝만치도 동정할 여지가 없이 잘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죄는 죄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명순이는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고나니 마음이 시원하였지만 월춘이가 어떻게 창선이와 자기사이의 일을 알았는지 몰라서 가깝하였다.
“월춘씨 창선이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 이름을 처음 듣는데 나의 애인이라고 부르니 어떻게 하는 말이오”
“천만에 개성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 알고 있읍니다. 당신이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요”
명순이는 그 때 일을 아는 사람이 없을 줄만 생각하였던 것이 뜻밖에 월춘이 앞에서 한마디의 말도 못하였다.
“명순씨 생각하여 보십시오. 내가 그때에 알지 못하였다면 당신방에 찾아갔을 때 웨 그러한 실례되는 말을 함부로 하였겠읍니까? 모든것을 그 여관 뽀이에게서 듣고 독수에 걸린 줄을 알었지요. 그 때 혹시 명순씨가 낙망을 하고 자살이나 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당신 방에 가서 여러가지 주접없는 말로 당신을 위로를 시키려고 애를 썼읍니다”
명순이는 아무 말도 없이 머리를 푹 숙이고 듣고만 앉았다.
월춘이는 숨을 돌려가지고 또 다시 말을 계속한다.
“명순씨 쓸데없읍니다. 세상이라는 것이 원체 그렇게 되어먹은 것이니까 그 안에거 우리가 암만 울고 불고 한들 무엇하겠우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입니다”
명순이는 느끼어 운다.
월춘의 말에 감동이 되어 우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 어려운 처지를 위하여 그는 손목을 쥐고 하소연을 할 만한 사람을 맞난고로 느끼어 우는 것이었다.
명순이는 이제까지 무수한 고생을 하였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울어본 일은 없었다.
“월춘씨 월춘씨가 알고 말하는데야 속일 수가 있읍니까 어찌 하였으면 좋을는지 생각이 안납니다. 창선이라는 그 놈 때문에 나는 일생에 고칠수 없는 상처를 입었읍니다. 나는 죽으려 했읍니다. 깨끗하게 죽으려고 오늘 낮부터 이 한강으로 나온 것입니다”
명순이는 월춘의 손목을 쥐고 그의 무릎에 쓰러져운다.
“상처라니요? 일생에 고치지 못할 상처라니요? 웨 당신은 지금도 그러한 마음을 가직 있읍니까? 죽기는 웨 죽어요 그러한 일에 죽자면 세상에 살 사람이 없어요. 상처라는 것이 무엇이며 고치지 못하여 애쓸 필요가 있읍니까? 누구를 위하여서요? 흥! 한 남자를 위하여 말이지요. 명순씨는 아직도 정조의 노예가 되고 있읍니까?”
“정조보다는 저는…… 지금……”
명순이는 울음이 복바쳐서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한다.
“말씀을 하십시오 지금은 어쨌단 말입니까?”
“임신중이랍니다”
명순이는 자기의 고문역이 될만한 월춘이니까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임신중인들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여자가 임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처녀로……”
“처녀니까 말이지요. 세상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었읍니까 그보다도 남자들이 당신을 농락을 하지 않었읍니까 처녀는 언제든지 한번은 남자들에게서 그러한 농락을 당할 운명을 가졌으니까요. 당연한 이치지요”
“이 꼴로서 낯을 들고 어떻게 다니겠읍니까”
“우리는 남을 위하여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니까 못살것이 무엇 있오 나 같은 사람도 살아 가는데요. 한번 더럽힌 몸이니 다른 남자에게 또 다시 시집을 못갈 것을 염녀하여 그보다도 그것을 비관하여 자살하시겠다는 말 같습니다마는 명순씨가 남자에게 속았다면 당신은 웨 남자들을 속이지 못하겠읍니까 세상은 거짓으로 된 세상이니까 솔직한 마음을 다지고는 살아 못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감옥에서 고생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가 출옥을 하신다면 무슨 면목으로 그를 대하겠어요?”
명순이는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 조건을 하나씩 하나씩 드러서 자기의 상담역(相談役)이 되고 있는 월춘의 의견을 청취하려고 하였다.
“만일 그가 당신이 임신까지 하였다고 옛사랑을 끊어버린다면 당신은 어떻게하시겠읍니까 그 때에는 그 남자를 위하여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지요”
월춘이는 컵에 남아았는 맥주를 쭉 드리키고는 다시 말을 계속한다.
“그 때에는 그 남자가 지내간 날에 당신을 사라하였다 하면 그것은 당신의 육체만 사랑한 것이고 당신의 마음까지는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지요. 그 남자는 극도의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가 있읍니다. 그것이 마치 쥐 잘 잡지 못하게 되면 그 고양이를 개천에다가 던져버리는 주인의 마음과 꼭 같지요. 전자나 후자나 모두 자기의 욕심으로 나오는 행동이니까요. 그런 사람을 위하여 공연히 슬퍼하실 필요도 없읍니다. 되는대로 살아가요”
월춘이는 길다랗게 말하고 나서는 목이 마르다는 듯이 기침을 두어번 하고는 맥주를 컵에 넘처 흐르도록 따라서 단번에 쭉 드리켰다. 명순이능 되는대로 살아가자는 말은 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하여 있는 자 들의 스스로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수작에서 지내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월춘의 말은 현실과 모순되는 말들인 것을 알았다. 특수한 처지에서 울고 헤매는 자들의 부르짖음에서 지내지 못한 말인 것을 알았다. 철하가 자기를 박차면 월춘이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하였다.
명순에게는 철하만 없으면 모든것이 문제 될것이 없었다. 되는대로 살아가면 그만일 것이다.
월춘의 말도 그럴듯하나 철하는 결코 이세상 남자와는 아주 다른 인격자와 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결심을 하였다. 철하도 정조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다.
“헛된 세상에서 참된 살립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이친년이지”
명순의 입에서는 이러한 말까지 나왔다.
명순의 태도는 돌변하게 되었다. 극도의 고민은 결국 반항을 일으키고 말았다.
세상에 대한 반항! 모든 모순에 대한 반항! 그러나 명순의 반항이란 것은 결국 자보자기 였지마는 자기 자신만은 반항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죽는다고 한 강에 나온 자기가 어찌도 어리석은지 몰랐다. 그는 월춘의 말에 대한 충동을 받았다. 모두 옳은 말이라 하였다.
새로 두시나 되어서 명순이는 월춘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술취한 신사는 종로 네거리에 와서 내려서 비틀거리며 안국동으로 향하여 걸어갔다.
명순이는 월춘이와 함께 인사동에 있는 월춘이가 유숙하고 있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명순이는 그 날 밤 한잠도 자지 못하였다. 이 앞으로 밟어 나아갈길을 곰곰 생각하여 보았다.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서울을 떠나가는 수 밖에는 자기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럴 때에 슬쩍 시골에 내려가서 아이를 낳아놓고 서울로 올라오면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하였다.
명순이는 새벽 다섯시쯤 되어 한장의 편지를 써서 월춘이가 곤하게 자는 머리맡에 놓고나서 월춘의 가방에서 十원짜리 석장을 끄내여가지고 그 여관을 나섰다.
경성역에 나오니 마침 부산행열차 시간이 되었다. 명순이는 닷자곳자로 아무 생각도 없이 수원(水原)표를 샀다. 그러나 월춘이가 따라나오는 것 같아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월춘이가 나와서 도적년이라고 붙잡으면 어찌하나”
“아니 월춘이는 그러한 성질을 가진 여자가 아니다. 편지까지 써놓고 왔으니 그만한 것은 양해하여 주겠지……”
명순이는 이렇게 입속으로 외이며 부산행열차에 올랐다. 명순이는 기차가 경성역을 떠날 때에야 겨우 안심을 하였다. 월춘이가 그만한 돈에 쫒아 나오가나 고발을 하거나 할 야비한 여자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어쩐일인지 마음이 조리조리 하였던 것이었다.
월춘의 성품도 성품이려니와 우정을 생각하고 명순이는 그가 자고 있는 사이에 그의 지갑에 손을 넣게 된 것이었다. 언제든지 도로 갚어 주겠다고 편지를 써놓고 왔으니 설마 도적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라 하였다. 그만한 돈은 사정을 한다면 변통이라도 하여줄 만한 여자인 것을 알면서도 그가 모르게 도적하다싶이 나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자기의 가는 길을 비밀이 하기 위함이었다.
명순이는 이 급해열차도 오히려 더디인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번화한 서울을 한시라도 속히 떠나서 적적한 곳으로 안전한 곳으로 어서어서 가고 싶었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맞날까봐 머리도 들지 못하였다.
명순이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곁눈으로 슬금슬금 차안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기차가 정거장에서 정거할 때가 제일 괴로웠다. 차안을 검시하는 순사도 무서워 보였고 새로 오르는 손님들중에 혹시 아는 사람이나 있지 않을까 하여 안심이 되지 않았다.
다행이 순사도 그대로 내려가고 알만한 손님들이 없으면 마음이 다소 안정이 되었으나 그래도 그 다음 정거장이 또 근심이 되었다.
명순이는 이러한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그 다음 그 다음의 정거장을 지내여 목적지인 수원역에서 내리었다. 명순이는 자기가 괴로운 지옥의 거리를 멋어저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여온것 같아서 마음이 후련하였다.
“내가 이 곳에 온것을 누가 알까”
하며 그는 팔달문을 들어섰다.
명순이는 중학교 일학년 때에 수원(水原)으로 한번 수학여행을 와보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때에도 용주사(龍珠寺)에서 숙박을 하게 된 까닭으로 수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지 못하였다.
그다지 복잡하지 못한 시가라는 것만은 흐릿아게 생각되었었다.
그 외에 서호 방화수리정 들의 명지만은 그 때의기억에서 살아지지 않았다.
명순이는 될 수 있는대로 번창한 여관을 피하여 적은 여인숙에 들기로 작정하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너절한 여인숙을 찾았다.
그것은 묻지 않아도 자기의 몸을 안전한 곳에 두고 싶었고 자기의 행방을 숨기려고 한 까닭이었다.
원수의 씨를 낳을 때까지 종적을 감추고 있다가 그것을 해산을 한다면 자기 맘대로 모든 비밀을 감추어 버리고 세상에 나설 작정이였던 까닭이었다.
명순이는 저녁 때에야 면사무소 옆골목에 있는 지저분한 여인숙에 들었다. 보행객이나 치고 이사꾼들이나 드는 극히 한적한 여인숙이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비록 이러한 한적한 여인숙의 고요한 방을 얻어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신변을 위하여서는 조금도 게을리 하지않았다. 처음부터 박일숙(朴一淑)이라는 가명(假名)으로 숙박부에다가 적어놓고 자기는 남편이 있는 여자로 그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어서 이곳 까지 불려오게 되었다고 그 집주인 늙은 부부를 속였던 것이었다.
하루 이틀 지내는 사이 자기의 정체가 감추어 지는 것을 다행로 생각하였다. 주인집에서 일숙씨 일숙씨 이렇게 불러줄 때면 속으로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였다. 자기의 정체가 완전히 감추어 졌으니 세상에서는 명순의 행방을 알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 두 부부는 명순의 말이라면 어떠한 말이든지 참말로 듣고 동내 사람들께 옮기는 것을 알았다.
“나도 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세상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살아가는 모양이지”
명순이는 자기가 천이 경험하여보니 세상을 속여 먹자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것을 알았다. 남들도 이렇게 세상을 속여가며 산다는 인식이 더욱 강하여졌다.
그러고 명예와 지위로 행세를 하여 가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거짓 생활을 더 꾸며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러한 무리들은 처세술이 능숙하니 이러한 암흑면을 가리워 버리기를 냉수 마시기 보다 더 쉽게 생각하므로 가진 죄악이 발설되지 않고 세상 모르게 살아저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명순이는 불행중 다행이라는 격으로 여인숙 부부의 특별한 애호로 객지에서 이러한 거짓 생활을 하여가기가 안전하였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로 나가며 세월이 어서어서 흘러 갔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명순이는 자기의 바라는 바와 같이 몇 달이 넘었으나 은거(隱居)에 아무 지장도 없었다.
그러나 한달 두달 지나갈수록 몸은 더욱 괴로웠다. 그것은 뱃속에 든 생명이 점점 자라가는 까닭이었다. 약봉지와 약병이 머리맡에서 떠날 사리가 없고 주사(注射)도 여러번 맞었으나 그것들은 조금도 효과를 주지 않고 육신의 고통으로 피골이 상접하게 되었다.
몸의 얼도는 삼십팔도를 중심으로 높았다 낮었다. 하고 어름증세로 말미암아 정신을 잃어 버릴 때가 많았다.
뜨거운 여름과 서늘한 가을이 다지내가도록 명순이는 하루도 육신의 괴로움을 당하여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만삭(滿朔)이 가까와 올수록 괴로움은 더욱 심하였다. 한술의 밥도 먹지 못하고 미음으로 근근이 연명을 하였다. 더욱이나 의사가 약값을 내지 않는다고 잘 와서 보아주지도 않는다. 세 번을 보내여 한번 와서 보고는 약값말을 하는 것이었다. 명순이는 의사에게 사정을 하여도 약을 주지 않고 약값 독촉만 할 때면 의사를 뺨이라도 후려갈기고도 싶었으나 속으로 꿀꺽 참아가면서 약값을 후에 어깁 없이 내일테니 사람을 살리라고 애걸을 하였다.
천고마비의 가을도 고생 사운데서 보내고 백설이 휘날리는 십일월 이십구일 새벽 명순이는 마침내 원수의 생명을 낳게 되었다.
명순이는 아기를 낳고 그대로 쓸어져 버렸다. 생리적으로 일어나는 고통과 극도의 빈혈오 그는 정신을 잃어버리였던 것이었다.
명순이는 아침 때가 늦윽하여서야 정신이 좀 들었으나 꿈을 꾸고 있는지 죽어서 저승으로 왔는지 도무지 불별할 수가 없었다. 주인집 두 부부는 열심으로 무엇을 수새를 하고 있다. 옆에서는 ‘으악’ ‘으악’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늙은 부부는 명순이가 정신을 차린 것을 보고
“아씨 도련님이 나섰읍니다”
“어쩌면 아이가 이렇게 클고 눈, 입, 코, 귀, 어디를 보든지 장수하게 생겼는데……”
이렇게 떠들며 사주팔자를 내고 있었다. 속모르는 영감 노파는 갖난아기를 들고 여러가지 치사하는 말들을 하고 앉았지만 명순의 귀에는 이러한 말들에 기가 막히었다. 명순이는 아기가 있는 쪽으로는 눈도 까딱하지 않고 느끼어 울뿐이었다.
원수의 씨! 그것을 보기가 무서웠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젓은 창선! 그것을 이 세상에 내여놓게 된 것이 끝없이 부끄러웠다. 그 놈의 아이가 얼른 이 자리에서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그보다도 죽여 버리기라도 하고 싶었다.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의 앞에 와서 비웃는 것도 같은 환영이 비치었다. 더욱이 연순이라는 년이 침을 배앝으며 능멸히 보는 것 같아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월춘이가 나타나서 자기를 비웃는 모든 사람들을 힘을 다하여 부시여 놓는다. 세상사람들이 한 마디의 답변도 못하게 여러가지 조건을 들어서 비웃는 그 자들을 도리어 비웃는 월춘의 능숙하고도 유창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명순이는 눈을 떴다. 곁에 만일 주인 영감과 노파가 없다면 그 원수의 씨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얼마 후 주인 부부는 조반 준비를 하려고 나갔던 때이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점점 높아간다. ‘으악’ ‘으악’ 하며 보채는 그 울음소리가 자기의 죄악을 여지없이 폭로를 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찰라에 일어났다가 그만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 갖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점 귀에 익어갈 수록 명순이는 그 울음소리에 이상한 충동을 받았다.
명순의 마음은 급격한 변조를 일으키었다. ‘으악’ ‘으악’ 하는 그 소리가 엄마의 품을 그리워 하는 것 같이 들이었다.
“너에게 무슨 죄가 있겠니 불상한 것”
하며 명순의 몸은 점점 아기 곁으로 가까이 갔다.
명순이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듯 아기를 힘있게 포옹을 하고 있었다.
아! 모성애(母性愛)의 발로! 거기에도 벌써 원수도 미움도 아무것도 없었다.
명순이는 어머니로서의 순결한 마음과 자비한 마음으로 아기는 힘있게 포옹을 하였다.
철모르는 아기가 자기의 고통을 갈라 가지고 나온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명순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자기의 신세도 신세려니와 그 아기가 끝없이 가여웠다.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고해와 같은 세상에 첫발을 들여 놓게 되는 그 아기가 측은하였다.
아기는 입을 벌리며 먹을 것을 찾는다. 명순이는 가슴을 헤치고 젖꼭지를 물려주었다.
명순이는 산후의 부조로 한달 동안이나 병석에서 신음을 하면서도 아기의 섭생을 위하여서는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제와서는 명순이가 살아가는 것이란 그 아기를 위하여서인 것 같았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낼수록 아기에게 대한 자애심은 더욱 강하여졌다.
처음 수원으로 올 때에는 아기를 낳아만 버리면 그날밤으로라도 아기를 어디다가 처치를 하고 서울로 올러오려고 하였지만 한 어머니가 된 명순이는 서울도 아무데도 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보다도 서울로 올러갈 필요가 없었다. 어디로 가더라도 아기를 떼여버리고 갈 생각이 없었다. 세상에서는 비웃더라도 능멸이 보더라도 사랑스러운 아기만은 자기의 따뜻한 품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무정한 세상은 언제든지 이 두 모자를 위하여 그들의 뜻과 같이 하여 주지는 않았다.
아기가 난지 석달 머리를 잡았을 때 이다. 명순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산전 산후에진 약값이 근 백여원에 달하였다. 명순이는 전부터도 무수한 독촉을 받았지만 여러가지 핑계를 하여 속여왔다.
처음에는 병원에서도 그럴 듯하게 속아왔지만 그것도 여러번 속인 까닭으로 나중에는 명순의말은 어떠한 말이든지 청취를 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약값 독촉을 하였던 것이었다.
명순이는 아무리 생각하여봐도 그러한 돈을 변통할데가 있을리가 없다. 월춘에게서 얻은 돈은 처음 수원으로 왔을 때 주인 집 환심을 얻기 위하여 그보다도 안전을 얻기 위하여 식비로 선금을 지불하였던 것이었다. 명순이는 돈이 없는 몸이라 어디를 가든지 황금의 악희가 뒤따라 다니었다.
돈만 아는 의사는 자기의 힘으로 받을 수 없을 것을 각오하고 경찰의 힘으로 받으려고 수원경찰서에 고발을 하였다. 명순이는 경찰서에 불려가서 일주일 후에는 틀림없이 약값을 지불하겠다고 말하고 여러가지 서률를 받고 나왔다. 일주일 후에 지불하겠다고 하였지만 어디서 돈을 수랑데가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니다. 인연이 없는 경찰서에 불려가서 혹시 자기의 정체가 세상에 나타날까 임시 변통으로 한 말이었다.
명순이는 경찰서에 가서도 박일숙이라는 가명으로 행세를 하였다. 모든 것을 꾸며서 될 수 있는대로 자기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게 말은 하였으나 뒤의 일이 문제가 되어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만일 일주일 후에 지불ᄒ지 못한다면 몰인정한 놈이 또 경찰에 고발할 것이니 그 때에 경찰서에 불려가기만 하면 자기의 정체가 발각될 것으로 예측을 하였다. 명순이는 그 날 밤이 새도록 잠을 일우지 못하고 고민을 하였다. 자기의 추악면이 세상에 나타나게만 된다면 아무일도 되지 않을 것을 아 까닭이었다.
남들이 콩밥을 먹 듯이 하고 있는 거짓 생활조차 못할 것을 알았다.
그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명순이는 변원식에게 돈을 청하기로 작정하고 편지를 썼다. 명순이는 그만한 돈을 변통하려면 두 가지 길밖에 없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자기의 몸을 인육시장에 팔던지 그렇지 않으면 변원식에게로 가는 것이 나을것이라고 생각하고 변원식에게 돈을 청하려고 붓대를 든 것이었다. 그러나 변원식의 마음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여 편지를 쓰기도 괴로웠다. 명순이는 여러가지 사정 형편을 좋도록 꾸며서 편지를 써서 부치었다. 편지 부친지 사흘 후에 명순이는 한장의 답장을 받았다. 삼전짜리 절수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 돈딱지가 없을 것을 대번에 추측을 하였다. 명순이는 가벼운 실망을 느끼면서 봉투를 떼었다. 추측한 바와 같이 돈딱지가 없고 길다란 편지가 들어 있다.
명순이게서 여러번 결혼에 대하여 거절을 당한 변원식은 결혼을 승낙하는 승인서를 보내주어야 돈을 보내겠다는 의미의 회답을 하였다.명순이는 할 수 없이 결혼승인서를 썼다. 지금은 오히려 한 사람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호운인 것 같이 생각하였다. 자기의 정체만 발로되는 날에는 자기를 아내로 맞이할 사람이 없을 것을 알았다.
“되는대로 살아가자!”
명순이는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고 편지를 써서 부치었다.
병원 의사에게 약값을 지불하기로 약속한 날 마침 명순이는 변원식이가 보내어준 돈을 받았다.
명순이는 한시간도 지체하지 않고 우편국에 가서 돈을 찾어가지고 돌아 오는 길에 병원에 들러서 약값을 지불하였다. 성화같이 독촉을 받던 약값을 지불하고 나니 일시 고통은 없었다.
명순이는 돈만 부치면 그 날로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편지를 하였지만 돈을 받고 병원약값까지 지불하고 나니 어린 아기 때문에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이나 넘도록 아무 편지도 하지 않고 시치미를 딱 떼고 있었다. 그러나 변원식에게서는 매일 편지가 오고 전보가 왔다. 하루 바삐 상경하라는 독촉이었다.
명순이는 배人장을 부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기를 참아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린 아기를 안고 갈 수도 없는 형편인 까닭으로 명순의 처지는 그야말로 호미란방이었다. 이러지도 못하고저러지도 못할 형편에 있었으므로 마음이 진정이 도지 않아서 편지를 쓰기가 괴로웠던 것이었다. 명순이는 회답을 멫번이나 쓰기는 썼지만 곧 찢어버렸다.
그러나 야욕으로 가득찬 변원식이라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대로 있지 않았다. 명순이는 무서운 최후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아무 회답도 없으므로 사실 여하를 알기 위하여 수원으로내려오겠다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이틀 동안으로 서울을 올라오겟다는 통지가 없으면 곧 수원으로 내려가겠으니 전보로 회답을 하여 달라는 위협 비슷한 편지이었다.
명순이는 아무리 아기를 작별하고 가기가 애처러워도 더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명순이는 최후의 협박인 그 편지를 보고 그날 밤을 눈물로 자내었다.
핏덩이와같은 아기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지는 것 같이 쓰리었다. 그것도 며칠 동안이면 모르겠지만 영영히 두고 가게 되니 어머니로서의 면목이 없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어머니의 조로 아기마저 외살부터 세상 풍파를 당하여 나갈 것을 생각하니 하늘도 오히려 무심한 것 같았다. 기구한 운명을 당하고 있는 명순이는 모든 것을 생각하면 속만 상할 일들 밖에 없는고로 앞길이 아득하였다.”ST"란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곤경에 있을 대면 구하여 주겠다 하던 “ST”도 그 사이 자기가 몇번이나 곤경을 당하였지만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도 할 일 없는 놈들의 자기를 놀리는 헡은 장난으로 밖에 볼수가 없었다.
그 이튿날 아침 명순이는 밤차로 상경하겠다는 전보를 떼었다. 변원식이가 수원으로내려만온다면 큰 일이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자기의 과거가 발로될 것을 알았던 까닭이었다.
변원식이가 만일 수원에 내려와서 아기를 안고 있는 자기를 본다면 그는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이전에 지운 돈까지 모주리 계산하여 받아낼 것을 알았다.
변원식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할까? 변원식은 웨 명순에게 황금을 조금도 애끼지 않고 던졌던가?
그것은 오즉 명순의 아름다운 육체에 욕심이나서 그리 하였다는 것을 누구든지 알 것이다.
돈으로 명순의 육체를 사려고 하는 변원식이니까 명순이가 만일 아기의 어머니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그는 그 즉시로 차용금의 반환을 요구할 것이다.
그가 이전에 명순에게 선언한 것과같이 인육시장에 팔아서라도 자기의 돈을 받고라야 말 것이다. 이해타산에는 조금도 방심을 하지 않는 그가 자기의 요구하던 것이 쓸데 없게 되면 반드시 그러한 행동을 하고라야 말 것이다 영리한 명순이는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을 자기의 신변을 위하여서라도 상경하겠다는 전보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도망을 칠 생각도 하여 보았지만 아무데를 가더라도 고생 밖에 닥처오지 않겠다는 것을 안 까닭으로 도망도 못했다. 어린 아기를 가진 몸이라 어디 가서 노동도 마음대로 못하고 야속한 세상에서는 동정도 안 하여 줄 것이니 도망을 치는 날은 경찰도 무서웟지만 노상에서 모자가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자 알었다.
세상 고생에 경험을 맛보기 시작한 명순이는 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변원식은 돈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와 결혼을 한다면 어린 아이에게 양육비도 슬금슬금 보낼수 있는 것이니 싫으나 좋으나 그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명순이는 작년 이래로 일어난 일을 생각하여 보니 기가 막혔다.
모두가 변원식이라는 놈 때문에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것이니 그 놈에게로 시집을 가게 되어도 마음 속에는 자기의 일생의 원수라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러고 언제든지 그를 원망하는 마음은 한시도 사라지지를 않았다. 명순이는 여인숙에서 행랑살이를 하고 있는 박돌엄마를 청하여 왔다. 사람 좋은 박돌엄마는 방에 들어와 앉으면서 어린 아기를 놀린다.
“아씨! 참 요사이 아기를 몇날동안 보지 못하엿더니 그 사이 퍽 자란 것 같어 보입니다”
“무얼?”
명순이는 고민 중에 있으면서도 아기가 커졌다는 말이 마음 속으로는 은근히 반가웠다.
“내 눈에는 언제든지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늘 보시니까 그러지요”
박돌엄마는 어린애를 안고 둥둥을 한다.
“여보 박돌엄마 부탁할 말이 있어서 오라고 하였는데......”
“무슨 부탁입니까”
“...................”
명순이는 한숨만 쉬고 앉았다. 박돌엄마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명순이를 치어다본다.
그러나 별다른 감상을 가지지 않았다. 언제든지 명순이는 고민을 하고 있는 기색으로쓸쓸한 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박돌엄마는 명순의 태도를 평범하게 대하였다.
“다른 부탁이 아니라 내가 오늘 밤차로 서울로 올라가겠는데......”
“서울로?”
“그래 서울로 올라갈 터인데 그 애를 좀 보아주겠는지?”
명순이는 말하기가 심히 괴로웠다. 명순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고 박돌엄마가 안고있는 아기를 물끄럼이 바라보고 있다.
“몇날 동안이나 게시겠습니까? 어지간하면 아기를 데리고 가시지요”
“몇날 동안 그렇다면 오즉 좋겠오. 영영 서울로 올라간다우”
“예? 영영 가신단 말입니까?”
박돌엄마는 영문을 알지 못하여 눈이 둥그래졌다.
“박돌엄마 어떻게 하겟우? 불상한 아기를 맡어 주겠오?”
명순이는 박돌엄마가 안고 있는 아기를 빼앗을 듯이 잡아다가 가슴에 힘있게 껴안았다.
“영영 가신다면 어찌하여 아기를 두고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사정은 후에 차차 이야기할셈치고 승낙이나 하여 주오 어린 아기의 양육비는 늘 보내어 줄 터이니”
명순이는 애원하 듯이 박돌엄마의 손목을 잡아 흔들며 이렇게 말하고 그 승낙을 기다리고 앉았다.
박돌엄마도 명순의 애원에 아기를 맡아 기르기로 승낙을 하였다. 그리고 명순이가 아기를 두고 가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 것을 보더라도 명순에게는 말못할 사정이 그 마음 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몇 달동안 한 집안에서 살아오던 어멈이니까 명순의 지내간 날과 지금을 추측하여 봐도 그만한 것을 알기에는 아무 힘도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명순이가 더 괴로워 할까봐 묻지도 않고 아기를 양육하기를 승낙하였던 것이었다.
빈궁한 생활을 하고 있는 몸이라 양육비를 보내어 주겠다는데에 귀가 번쩍 띠었다. 명순의 평일행동과 성격을 보아 그가 보통 여자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객지에서 헐벗고 기구한 살림을 하고 있을지언정 그는 특이한 환경에 잇어서 잠시간 그러한 처지에서 심음하는 것이라는 것도 박돌엄마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까닭으로 박돌엄마는 아기의 일생을 맡아 보기로 하였다.
만일 그 아기가 장래에 큰 사람이 된다면 자기에게도 큰 보수가 돌아올 줄을 알았다.
“힘자라는 데까지는 잘 양육을 하겠읍니다마는 이렇게 이렇게 행랑살이로 돌아 다니는 몸이라 마음과같이 되겠는지요”
“친자식 같이 사랑하여 준다면 그만이지 살림에 괴로움이 없을만한 양육비는 보내여 줄 터이니 어미 없는 자식을 잘 거더나 주구려”
명순이는 창자가 끊어질 듯이 슬펐다. 마음이 어진 박돌어멈이니까 잘 기러줄 줄은 알았으나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잘구나 못구나 제 손으로 기르는 것만은 못한 일이다.
철모르는 아기는 엄마의 슬픔도 세상의 괴롬도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이 엄마의 낯을 치어다보며 힛죽 힛죽 웃기만 한다. 그러고는 엄마의 옷깃을 적은 손으로 부등키여 쥐며 입에 넣으려고 애를 쓴다.
얄둧은 세상! 헛된 세상! 어지러운세상! 그것들은 아직도 나에게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이 웃실웃실 몸춤만 추고 있다. 명순이는 아기를 보면 볼수록 속이 푹푹 상하여진다. 오늘 밤만 되면 엄마의 품에서 영원히 떨어질 운명을 가지고 있는 아기도 가엾이 보였거니와 아기를 두고 서울에 올러가서 마음을 붙이고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을 생각하니 괴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커먼 밤이왔다. 명순이는 지옥을 바라보며 가는 쓰라린 마음을 품고 박돌엄마와 함께 수원역을 바라보며 무거운 발을 옮겨 놓았다.
명순의지내간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겹옷을 입고 차창을 내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명순의 햇쓱하게 된 모양을 보더라도 조금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 것이며 그가 지금 기차를 타고 어디로 무엇 하러가는 것도 추측할 수도 없을 것이다.
기차는 어두움을 뚫고 달음질을 친다. 명순이는 시간이 지내갈수록 어린애 생각이 불붙 둣이 일어났다. 차안에 손님이 있건 없건 명순이는 그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명순이는 다만 어린 아기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씻었다.
뒤를 자꾸만 돌아 보았지만 수원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시커먼 어둠은 산도 들도 개천도 흔적 없이 감추어 버리고 있었다. 검푸른 하늘에 별들만이 총총하게 빛나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달아나는 기차는 어느듯 경성시내를 멀리 바라보며 우렁찬 소리를 지르고 한강 철교를 지내간다. 명순이는 기차가 철교를 지내가는 소란한 소리에 정신을 차리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고 흩어진 머리를 두 손을 빗을 삼아 쓰다듬었다. 명순이는 무서운 지옥으로 향하여가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한강 인도교는 전기불이 휘황하여 불야성을 이루었다.
명순이는 인도교를 내다보니 칠팔개원 전 주검을 각오하고 그 곳에서 고민을 하여 소요하던 일이 생각이 났다.
“아! 차라리 그 때에 죽어나 버렸더면!”
명순이는 이렇게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검도 아무 것도 단행할 용기가 없는 그야말로 무골 충이 되었다.
모르히네 중독자가 아무 일도 생각하기 싫고 또 어떠한 일이든지 하고 싶지 아니한 모양으로 명순이도 세상만사에 간섭하기도 싫고 자기의 몸을 처치하기도 싫였다. 되는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명순의지금의 신조가 되었다.
팔개월전 경성을 떠낼 때의 마음보다 다시 이곳을 돌아올 때의 마음이 사뭇 달랐다.
이 곳을 떠나갈때에는 세상을 속여서라도 살아보겠다는 용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마음조차 없어졌다.
그것이 마치 큰 범죄자가 경찰의 무서운 눈을 피하여 도주할 때에는 살아보겠다는 용기를 가졌다가도 일단 경찰의 손에 붙잡혀서 경찰서에 끌리여 가게만 되면 풀기가 없고 아무 용기도 나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명순이도 그와 똑같은 감상을 가지었다.
기차가 용산역을 떠나려고 할 때 명순이는 자기의 모양을 경성에 내여놓기가 부끄러웠다.
그것은 누구나 아는 사람들이 잡년이라고 웃을까봐 그러는 것도 아니였다. 자기의 모든 비밀은 잘 감추어지고 있으므로 그런 걱정은 하지않았다.
청선이도 월춘의 말을 듣건대 황천의 객이 된지 오래 되었다고 하고 아이를 낳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 사람을 속여 넘기기에 아무 걱정도 없었다.
다만 자기의 주제가 너무도 추하였을 뿐이다. 추위가 살을 어일 듯한 이러한 겨울에 옷이 없어 겹옷을 입었다는 것을 여러 사람 앞에 내여놓기가 부끄러웠다.
여러 사람이라고 하기보다 변원식이가 경성역까지 물론 나왔겠으니 만일 그가 이러한 꼴을 본다면 침을 뱉고 돌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변원식이가 만을 침뱉고 돌아슨다면 명순에게는 더욱 좋은 일이었으나 그래도 그러한 놈에게까지 없주이 보인다는 것이 자존심이 강한 명순으로는 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옷을 갈아 입을 수도 없었다. 때묻은 옷, 창이 떨어진 구두 햇쓱하여진 얼굴 자기로 자기의 거동을 굽어보아도 누추하기가 끝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살펴보아도 자기가 생에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인식을 주리라고 생각하였다.
명순이는 거짓 생활을 하는데 유일의 필수 조건이니 외형이 너무도 추한 것을 속으로걱정을 하였다. 만일 경성역이 앞으로 한 정거장 더 지내가서 있다면 다음 정거장에 가서 내려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훌륭한 옷, 광채가 나는 구두 값가는 목도리 이 모든 것을 얻어서 이것으로 자기의 비밀을 감추어 버리고 경성기가를 활개를 치며 들어갈 생각이 났다.
그러나 다음 정거장이 경성이다. 그곳에는 변원식이가 빛나는 눈동자로 명순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명순이는 이렇게 생각하니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변원식의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 마치 살다가 살 수 없어 고생하다가 더 고생 하루 수 없어 변원식에게로 찾아가는 것 같이 보였다. 그보다도 변원식이가 그렇게 볼 것 같았다. 변원식은 반듯이 자기의 승리의 만족한 웃음을 띠울 것이라고 생각하니 명순이는 속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올러왔다.
기차는 경성역에 도착하였다. 명순이는 기차에서 내려갈 것이 죽기보다도 쓰리였다. 그러나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기불이 너무 밝아서 몸을 숨길 수도 없었다. 명순이가 추측한 것과 같이 변원식이가 풀렛트홈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명순이는 자기의 눈과 변원식의 눈이 마주칠 때 일종의 수치를 느끼었다.
“얼마나 괴로웠읍니까 밤차로 오시노라고”
변원식은 첫인사의 말을 하고 명순의 적은 행구를 받으려고 한다.
“괜찮습니다 제가 그대로 들고 가지요”
명순이는 개아미 소리만한 목소리로 겨우 이렇게 말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변교장의 뒤에 서서 걸어 나가려고 걸음을 천천히 하였다. 그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자기의 모양을 보이기 부끄러웠던 까닭이었다.
그 밖에는 다른 무엇을 느낄 사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