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
‘미증유의 중대 방송’─ 정오에 있으리라는 이 중대 방송이 논제의 중심이 되었다.
○○중공업회사 평양 공장이었다.
“아마 소련에 대한 선전포고겠지.”
공무과장이 다 알고 있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선전포고쯤이야 우리나라는 10년에 한 번씩 으레 했고 3년 전에도 미영에 대해서 선전을 포고했으니 ‘미증유’라는…… 새삼스레 미증유 운운의 어마어마한 형용사까지 붙여서 예고까지 할 게야 없겠지.”
영업과장이 공무과장의 말에 반대했다.
“그럼 무에란 말이야?”
“글쎄…….”
과장급의 사원들이 둘러앉아서 정오에 있을 중대 방송에 대하여 이런 말들을 주고받을 때에, 한편 귀퉁이에 앉아 있던 급사가 혼잣말로 작은 소리로,
“무조건 항복.”
하고는 자기의 말소리가 비교적 컸던 데 스스로 놀라서 목을 어깨 속에 오므렸다.
급사의 말소리가 급사 자신의 예기보다 컸던 관계로 공무과장과 영업과장에게까지 넉넉히 들렸다.
“하하하하, 이건 걸작이로다. 제국의 무조건 항복? 그 말이 옳다 하면, 그야말로 건국 2,600년래로 처음 있는 일이니, 미증유야 미증유지.”
이것은 공무과장의 말이었다. 영업과장도 한몫 끼었다.
“요놈, 여기는 네 신분을 아는 사람들뿐이니 무관하지만, 모르는 자리에서 그런 소릴 했다는 뼈도 남아나지 못한다. 요 방정맞은 놈 같으니.”
이 엄한 질책에, 급사는 목을 더욱 어깨 틈에 들여 끼며 송구한 태도를 나타냈다.
“20분만 더 있으면 다 알게 될 일일세. 무슨 방송이 있든 간에 우리는 우리의 직무로…… 야 급사, 너는 커피를 끓여. 점심 때두 다 됐다. 또 손상은 만업(滿業)에 보낼 주문서 타이프했소?”
이 공장에 수많은 종업원 가운데 단 한 사람인 조선인 종업원 타이피스트 손숙희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 지금 찍는 중이에요.”
“수량은 12만 톤.”
“네…….”
고급 사원은 고급 사원이니만치 전쟁의 운명은 국가에 영향되고, 국가의 운명은 중공업회사에 영향되고, 회사의 운명은 직접 자기네의 사생활에 영향되는 것이므로 오늘 정오에 있을 ‘미증유의 중대방송’에 관심하는 바가 컸다.
미증유라 하는 어마어마한 형용사를 붙여서 예고한 방송은 이 전쟁의 운명을 암시하는 큰 열쇠일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바이므로. 한 하급 사원인 손숙희의 ‘중대 방송’에 대한 관심도 다른 일본인 고급 사원들의 관심에 지지 않도록 컸다.
내일 정오에는 미증유의 중대 방송이 있을 테니 1억 국민은 한 사람도 빼지 말고 이 방송을 들으라고 예고한 그 예고의 순간부터 숙희는 직각적으로 이번 방송이 무엇일지를 짐작했다. 유구(琉球)도 미군의 군화 아래, 그리고 남방의 뭇 점령 지역도 모두 도로 저쪽 손에…… 이것만으로도 인젠 그냥 말라 죽게 된 일본이었다.
소련의 참전, 이것은 ‘일본이 인젠 다 죽었다’는 증거였다. 소련은 카이로 회담에는 빠졌다가는, 포츠담 회담 막판에야 비로소 참가했다.
포츠담 선언에 한몫 끼고서야 장차 동양 전쟁의 전승국 회의의 발언권을 잡을 수가 있겠으므로 허덕허덕 달려와서 회의에 참가한 것이나, ‘소련 참가’야말로 인제는 일본이 완전히 졌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실전에 있어서도 동양에서의 전쟁에 소련도 한몫 끼고자 병력을 시베리아로 이동하다가 그 이동을 완료하지도 못한 채로 일본에 군사 행동을 일으킨 것은, ‘소련의 병력 이동’이 끝나기까지 기다리다가는 일본이 먼저 거꾸러질 형편이었다. 그렇게 되면 ‘동양 전승국 회의’에는 소련은 발언권을 가질 수 없겠으므로 일본이 채 거꾸러지기 전에 달려든 것이다. 이렇게밖에 해설할 도리가 없으므로 소련의 군사 행동 개시라 하는 것은, 일본은 인젠 결정적으로 패배하였다 볼 수가 있었다. 꼭 이러한 때에 일본에서는 ‘미증유의 중대 방송’이었다.
‘미증유’라는 그 말 자체를 엄밀하게 연구하든가, 사위의 정세로 보든가, 오늘의 방송은 무조건 항복을 온 국민에게 알리는 보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치안 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 아래 경성 서대문 형무소에 보내고 네 살 난 어린 아들과 공규를 지키고 있는 숙회, 남편의 형기가 7년이요, 치안 유지법 위반에는 감형 가출옥의 덕택이 봉쇄되어 있는지라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생기기 전에는 7년이라는 형기는 하루도 깎을 수가 없는 기간이다.
일본의 단죄소가 없어지든가 일본이라는 국가가 무너지든가.
몇 해 전만 할지라도 일본이 무너진다든가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일본을 수호하던 가미사마가 망령이 났든가 무슨 착각을 일으켰든가 해서 일본은 자멸지책을 자인하였다. 즉 세계에서 가장 가멸고 실력 있는 국가, 미국과 영국에 일본이 자진해서 선전포고를 한 것이었다.
이 망령(중국 하나를 상대로 하여서도 허덕허덕 감당하기 힘들던 것을 미영에게까지 덤벼든 이 망령),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자멸지책이다.
‘형기 7년까지 가지 않아도 인제는 되었다.’
일본이 어느 날 굴복하든지 그 굴복하는 날이야말로 정치범은 죄 석방이 되는 날이다.
눈은 감감히 기다리는 때에 이 중대 방송이다. 미증유의 중대 방송이라 하면 지금은 시국 추이상 ‘전면적 굴복’으로 판단하는 것이 떳떳한 일이거늘, 여기 일본인 과장들은 어쩌면 아직도 그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 아직도 딴꿈을 꾸고 있는가. 가련한 일본인들아.
정오…… 몇 군데 준비해놓은 확성기 앞에 온 종업원들은 모여들었다.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방송…… 그것은 지극히 명료하지 못한 음조에다가 잡음까지 많이 섞여서 마디마디를 똑똑히 알아들을 수는 도저히 없었지만 불명료한 가운데서도 위아래를 따져서 간신히 알아들은 바에 의지하건대, 방송한 사람은 직접 일본 황제 자신이요, 방송 내용, 지금 하릴 없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으로 따지자면 예기하였던 바라 새삼스레 큰 감격을 받지 않을 것이지만 그 불명료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쿡쿡 숙희의 가슴에 울려 들었다.
‘이제는 조선도 해방이로다.’
내가 일찍이 보지도 못한 나라, 내 남편도 보지도 못한 나라,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소멸한 나라.
부모님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나라. 남편이 그 해방 독립을 위하여 현재 7년이라는 형기로 고역을 하는 나라.
드디어 해방이 되었구나.
일본제국의 신민이라는 명예 있는(?) 지위를 끝끝내 부인하고 나라 없는 사람으로 자처하던 남편은 오늘날 옥중에서 이 소식에 얼마나 기뻐할까.
자, 어서 서울로 달려가서 해방된 나라에 출옥하는 그이를 맞아야겠다. 제 아버지가 입옥한 뒤에 세상에 나서 아직 아버지의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어린애를 아버지 앞에 자랑해야겠다.
공장장을 비롯하여 한 공원에 이르기까지 방송을 다 들은 뒤에는 뒤죽박죽이었다.
한숨에 전패국으로 떨어진 일본의 한 분자인 이 공장. 그들은 은행이며 각 금융기관에 맡겼던 예금 저금을 모두 찾아내어 분배하려는 모양이었다. 막판에 돈이나 나누어 먹고 꼬여지자는 이 전패 민족의 야비한 꼬락서니를 곁눈으로 보면서 숙희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어서 시어머님께도 이 기꺼운 소식을 알려드리고, 그리고 자기는 어린 자식을 데리고 출옥하는 그이를 맞으러 경성으로 달려가려는 것이 숙희의 플랜이었다.
이러한 국제상의 위대한 변동 아래서 그 교통기관은 그냥 여전할까, 적지 않은 불안을 품고 숙희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일남이의 손목을 끌고 평양역까지 이르러보니 좀 혼잡하기는 하나 기차의 운행은 여전하였다.
혼잡한 기차…… 출옥하는 남편을 만나려는 독한 결심이 아니고는 도저히 얻어탈 수 없는 혼잡한 기차에 숙희 모자가 몸을 실은 것은 이튿날 오정 경이었다.
근 4년 만에, 인제는 내 나라라는 국가를 얻은 해방의 대중은, 보기에도 씩씩하고 희망에 넘치는 태도와 표정이었다.
국가의 해방과 동시에 마음에서 관대심과 여유가 생긴 모양으로, 숙희의 모자가 기차에 자리를 못 잡아 두리번거릴 때에 숙희 모자를 위하여 세 군데서 다투어 자리를 내주었다.
“반갑습니다.”
“참, 반갑습니다.”
일찍이 서로 알지도 못하던 사람끼리 주고받는 인사…… 과연 사해동포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기차에 몸을 실은 수백 수천의 군중, 그들의 목적지는 대개가 서울이었다. 그들의 주고받는 이야기로 미루어 보자면, 그들이 서울로 가는 데에는 무슨 특별한 용무가 있는 바가 아니었다. 해방된 내 나라의 서울…… 일찍이는 ‘경성’이라는 지명으로 알려 있고 그 이름 아래 다니던 땅이 인제는 내 나라의 서울, 내 나라의 정치의 중심지, 문화의 중심지로 변하였으니, 그 내 나라의 수부에 가서 이 격변한 시국하의 내 나라와 서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풍경을 한번 엿보자는…… 말하자면 한 호기심으로 서울로 서울로 몰려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막연한 목적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무리는 나이는 서른 안팎의 청년들, 법률적으로 말하자면 조선 내지 한국이라는 국가는 소멸되고, 일본제국에 합병된 뒤에 출생한 사람들로서, 나면서부터 일본인인 그들이지만 그들의 어버이가 그들에게 물려준 조선인으로서의 혈맥의 탓으로, 오늘날 조선의 해방에 이렇듯 감격과 환희를 느끼는 것이었다. 국체가 어떻게 움직인다 할지라도 그 속에 흐르는 피의 줄기는 언제든 조국을 따르는 것이다. 일찍이 숙희의 남편이 숙희에게 이런 말을 하여 웃은 일이 있다.
“K소좌(일본인)가 이런 말을 한단 말이지. 즉 40세 이상의 조선인…… 일한합병 이전에 출생한 조선인은 다 묶어서 태평양에 집어 넣고 합병 이후의 조선인만으로 된 세상이 되어야 내선일체가 실현되리라구. 합병 이전의 조선인은 완미무쌍해서 아무리 선도해서 황민화하지를 않는다구. 어리석은 녀석!”
합병 이후에 출생했기 때문에 더욱 보지도 못한 조선을 애타게 그리며 사모하며, 그 조국의 복멸을 위하여, 서슬이 하늘 끝에 닿는 일본제국에 항쟁하며 가능성 없는 투쟁(당시로서는 절대로 가능성이 없었다)에 생애를 바치던 남편의 가능성 없는 희망이, 오늘날 돌연히 현실로서 3천만 조선인 앞에 나타난 것이다. 조선의 피를 물려 받은 젊은이 ○○ ○○ ○○○ 무엇으로 설명하랴.
기차 안에는 이 귀퉁이 저 귀퉁이 한 무리씩 모여서 어제 정오 일본 황제 유인의 울음 섞인 방송 직후에, 각곳에서 생겨난 일본인들의 광태 추태들을 이야기하며 웃어댔다.
사흘 전만 하여도 이런 소리는 감히 하지도 못하거니와 하려 하면 쉬쉬 사면을 살피고 딴 사람이 들을세라 소곤거렸어야 하던 이야기를 팔도 사람이 다 모인 기차 안에서 큰 소리로 할 수 있게 된 이 자유만 하여도 이것도 벌써 해방의 덕택이었다.
좌우편에서 잡연히 들리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숙희는 허리를 굽히며 사랑하는 아들 일남이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작은 소리로 물어 보았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지?”
“서울.”
일남이는 눈을 치떠 어머니를 보면서 대답하였다.
“서울은 무엇하러 가는지?”
“아버지 뵈러.”
“어버지 뵈면 무에라고 인사할까?”
일남이는 벌떡 일어섰다.
양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조선 독립 만세! 하구 인사할 테야.”
“옳지, 옳아! 이 인사야말로 아버지가 가장 반겨하실 인사로다.”
일남이의 만세 소리에 차 안의 시선이 모두 자기에게로 모이는 것을 깨달으며, 숙희는 일남이를 품 안에 끌어 힘 있게 안았다.
풍년을 약속하는 폭염하의 대지를 기차는 남으로 남으로 닫는다. 일찍이는 많은 실망군(失望群)을 실어다가 만주의 황야에 쏟아놓은 역할을 하던 이 기차는, 지금은 희망과 환희의 무리를 만재하고 40년 만에 국도로 등장하려는 서울로 서울로 속력을 다하여 닫는다.
기차 안에서부터 느끼기 시작한 불안을 숙희는 독립문 앞에서 종내 부딪쳤다.
“정치범과 경제범 수인은 오늘 벌써 다 석방되었다.”
하는 것이었다.
예기는 하였던 바이지만 석방이란 반갑기는 반가웠다. 그러나 석방된 그이는 지금 어느 곳에 그의 피곤한 몸을 눕히고 있을까. 허덕허덕 달려왔지만 몇 시간 늦었다.
평양 가는 기차는 내일 아침이 아니면 없으니 그냥 서울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밤중이라 이 아닌 밤중에 어디 가서 그이를 찾아내는가. 홀몸도 아니요 네 살 난 어린애를 데린 숙희는 형무소 앞에 망연히 서 있었다.
좀 무리를 하였더라면 어제 밤차라도 탈 수가 있었을걸. 어제 밤차만 탔더라면 오늘 아침에는 서울에 도착하여 형무소에서 석방되어 나오는 남편을 형무소 문간에서 맞을 수가 있었을걸. 어린애가 큰 짐이 되어 어제 밤차를 못 탄 것이다.
어제 밤차를 놓치고 오늘 차로 와보니 남편은 자기네가 오기 전에 벌써 석방되어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너 때문에…….”
화가 저절로 어린애에게 미쳤다. 이 어린애를 생전 처음 제 아버지께 대면시키려는 것이 숙희의 큰 목적의 하나였지만, 밤차를 못탄 데 대한 화는 자연 어린애에게 미쳤다.
사내같이 억센 성격의 숙희였다. 떠오르려는 화, 가슴을 누르는 기막힌 사정을 꾹 눌렀다.
“일남아, 아버지는 벌써 해방되셨구나.”
“그럼 독립 만세를 어디서 불러요?”
아버지 뵐 때 아버지께 향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려고 벼르고 있던 어린애는 그 부를 대상을 얻지를 못하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응? 내일 뵙거든 오늘 못 부른 대신 열 번 스무 번 아버지의 귀청이 터지시도록 불러 올려라.”
하릴없이 그 밤은 어떤 여관 하나를 잡고 모자는 거기서 묶었다.
이튿날, 숙희는 어린 아들의 손목을 잡고 남편을 찾으러 해방된 서울의 거리에 나섰다.
해방의 색채는 서울의 거리거리 골목골목에 차고 넘쳐 있었다.
종업원들이 마음대로 꺼내어 삯도 받지 않는 전차는 서울 장안을 종횡으로 왔다 갔다 한다.
일찍이 내 세상이라고 어깨를 추어들고 활보하던 일본인들은 죄 어디 박혔는지, 어찌어찌하여 간간 보이는 일본인들도 모두 일본인인 제 본색을 감추고 얼굴을 숙여 감추고 숨어 다닌다.
근 40년 만에 호기 있게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로 그대로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듯, 시위적으로 횡행하는 패잔 일본 군인을 만재한 화물 자동차도 자기 딴에는 시위 운동인지 모르나, 조선인의 눈으로는 가련하고 비참한 마지막 발악으로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전패자의 비참한 꼬락서니는 일찍이 그들의 식민지였던 조선 경성에서 가장 대차적으로 가장 명료히 드러나고 있다.
어제까지 그들의 사업장이었던 모든 회사, 기관, 공장이 모두 태극기 아래 장래의 주인인 조선인의 손으로 운영되는 이 기꺼운 현상.
공수래공수거로 일본인 40년간에 빈손으로 조선에 건너와서 40년간을 조선을 갈고 닦고 건설하고, 오늘날 그 건설 공사의 낙성을 기회로 다시 빈손으로 제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40년간을 갈고 닦아서 일본인이 살기 좋도록 일본인 본위로 건설해놓은 뒤에, 오늘날 빈손으로 쫓겨 돌아가는 그들이라 어찌 놓고 싶으랴, 아득바득 끝까지 안 가고 견디어 배겨보고자 애쓰는 것이 당연은 하지만 하늘의 뜻에 어찌 거스를 수가 있으랴.
남편을 찾기 겸 해방 풍경을 보기 겸 방향 없이 서울 시가를 헤매는 숙희는 거리에 골목에 넘쳐흐르는 해방 풍경을 마음껏 호흡하였다. 그사이 없다 없다 하여 조선인에게는 감추어두었던 온갖 물자가 일본인의 가정과 사업장에서 태산같이 쏟아져 나와서 거리로 흘러나온 것도 해방 풍경의 하나였다.
더욱이 숙희가 감격적으로 느낀 바는 ‘소화 연간’에 출생한 조선애들이야말로 진정한 황민이라고 일본인들이 크게 기대를 가지고 있던 소학교의 아이들이 가장 열렬히, 가장 활발하게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두르며 돌아다니는 광경이었다. 일본의 40년간의 조선 통치는 완전히 실패하였다는 점이 여기서 가장 명료히 드러났다. 피…… 혈맥은 속일 수가 없었다.
거리거리로 해방 풍경도 구경하며 남편이 갔음 직한 곳을 찾아다니던 숙희는 저녁에야 남편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로부터 약 20분 뒤에 숙희는 남편 앞에 서게 되었다.
어린 일남이는 형무소 창구에서 본 일이 있는 아버지를 알아보고, 알아보자 양손을 높이 쳐들어 약속대로,
“조선 독립 만세!”
를 부르며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오오, 너로구나, 조선 독립 만세야? 그렇구말구, 만세 만만세로다. 자, 크게 외쳐라. 조선 독립 만세!”
남편은 생전 처음으로 어린 일남이를 붙안았다.
억센 성격의 숙희였으나 이 순간 저절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엊저녁에 왔어요. 곧 현저정으로 달려갔더니 벌써 출옥하셨다구. 오늘 종일 찾아서…….”
밤에 진실로 오래간만에 내외는 아들을 가운데 놓고 오붓하게 마주 앉았다.
“당신의 숙망, 이젠 이루었구려.”
하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단연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제부터야! 일본의 세력은 조선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새로운 힘이 조선의 위에 씌워질 게요. 그것 때문에는 더욱 큰 항쟁이 필요할게요.”
일생을 투쟁으로 지내온 남편은 지금 새로 전개된 투쟁을 앞에 하고 찬란히 빛나는 눈을 들어 허공을 쳐다보았다.
고스란히 깊어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