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협
공재도가 소금을 받아오던 날 마을 사람들은 그의 자랑스럽고 호기로운 모양을 볼 양으로 마을 위 샛길까지들 줄레줄레 올라갔다. 세참 때는 되었을까, 전 놀이가 지난 후의 개나른한 육신을 잠시 쉬고 싶은 생각들도 있었다. 마을이라고는 해도 듬성한 인가가 산허리 군데군데에 헤일 정도로밖에는 들어서지 않은 펑퍼짐한 산골이라 이쪽저쪽의 보리밭과 강낭밭에서 흰 그림자들이 희끗희끗 일어서서는 마을 위로 합의나 한 것 같이 모여들 갔다.
“소가 두 필에 콩 넉 섬을 실구 갔었겠다. 소금인들 흐북히 받아오지 않으리.”
“반반으로 바꿔두 두 섬일 테니 소금 두 섬은 바위보다두 무겁거든. 참말 장에서 언젠가 한번 소금섬을 져본 일이 있으니까 말이지만.”
“바닷물루 만든다든가. 바다가 멀다보니 소금은 비상보다 귀한걸. 공서방두 해마다 고생이야.”
봄이 되면 소금받이의 먼 길을 떠나는 남안리 농군들이 각기 소 등어리에 콩섬을 싣고 마을길에 양양하게들 늘어서는 습관이던 것이 올해는 거반 가까운 읍내에 가서 받아오기로 한 까닭에 어쩌다 공재도 한 사람이 남아 버렸다. 원주 땅 문막은 서쪽으로 삼백 리나 떨어진 이웃 고을의 나루였다. 양구더미를 넘고 횡성 벌판을 지나 더딘 소를 몰고는 꼭 나흘의 길이었다. 양구더미를 넘는데 만도 넉근히 하루가 걸리는데다가 굼틀굼틀 구불어 들어가는 무인지경의 영은 깊고 험준해서 울창한 참나무 숲에서는 대낮에도 도적이 났다. 썩은 아름드리 나무가 정정이 쓰러져 있는 개울가의 검게 탄 자리는 도적이 소를 잡아먹은 곳이라고 행인들은 무시무시해서 머리털을 솟구면서 수군거렸다. 문막 나룻강가에는 서울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섬이 첩첩이 쌓여서 산골에서 나온 농군들과의 거래로 복작거리고 떠들썩했다. 대개가 콩과 교환이 되어서 이 상류지방에서 바뀌어진 산과 바다의 산물은 각기 반대의 방향으로 운반되는 것이었다. 흥정이나 잘돼서 후하게 받은 소금 짐을 싣고 다시 양구더미를 무난히 되돌아 넘어 멀리 자기 마을의 산골짝을 바라보게 될 때 재도는 비로소 숨을 길게 뽑았다. 내왕 열흘이나 걸리던 먼 길에서는 번번이 노독을 얻었고 육신이 나른히 피곤해졌다. 소금받이는 수월한 노릇이 아니었다.
강낭밭에서 풀을 뽑고 있던 안중근이 삼촌의 마중을 나가려고 호미를 던지고 골짝으로 내려와 사람들 틈에 끼었을 때에는 산 너머 무이리까지 마중 갔던 재도의 사촌 아우 공재실은 한 걸음 먼저 산길을 뛰어 내려오면서 얼마간 흥분된 낯빛이었다.
“저네들두 놀라리. 내 세상에 원─삼백 리나 되는 문막 길을 가서 재도가 무얼 실어오는 줄들 아나.”
“소 두 필에 산더미 같은 소금바리를 실구 오겠지 별것 실구 오겠나. 소 등어리가 부러져라구 무거운 소금섬으로야 일년을 먹구두 남겠지.”
“두 필이었겠다 확실히. 그 두 필의 소가 한 필이 됐다면 이건 대체 무슨 조화일건가. 그리구 그 한 필의 잔등에두 무엇이 타구 오는 줄 아나?”
“소금섬 대신에 그럼 금항아리나 실구 온단 말인가?”
“금항아리, 또 똥항아리래라. 사실 똥 든 항아리를 실구 오는 폭밖에는 더 돼. 열흘 동안이나 온 처를 건들거리구 제일 바쁜 밭일의 고패를 버리구 떠나서 원 그런 놈의 소갈머리라니.”
대체 무슨 곡절이기에 재실이 이렇게 설레누 하구들 있는 판에 바로 당자인 재도의 자태가 산길 위에 표연히 나타났다. 음─옳지─들 하고 입을 벌리면서 사람들은 눈알을 굴렸다. 한 필 소의 고삐를 끌고 느실느실 걸어오는 재도의 모양은 자랑스런 것인지 낙심해 하는 것인지 짐작했던 것보다는 의젓한데다가 끌고 오는 소 허리에는─한 사람의 여인이 타고 있는 것이다. 먼 눈에도 부여스럼하게 흰 단정한 자태이다. 가까워 옴을 따라 얼굴 모습이 차차 뚜렷이 들어날 때 사람들은 모르는 결에 수선들 거리며 소군소군 지껄이기들 시작했다. 재도는 여인을 위로나 하는 듯 연해 쳐다보면서 무엇인지 은은히 말을 던지는 꼴이 가깝게 보니 낙심해 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자랑스러워해 함을 알 수 있었다. 조그만 소금섬이 여인의 발아래에 비죽이 내다보인다.
“새로 얻은 색시라나. 사십 중년에 두 번 장가라니 망령두 분수가 있지, 암만해두 마을 사람을 웃길 징조야.” 재실은 좀 여겨들으라는 듯이 좌중을 휘둘러 보면서 눈에 핏대를 세우고 빈정거린다.
“그럼, 기어쿠 소원성취네 그려. 첩 첩 하구 잠꼬대같이 외이더니. 자식 없는 신세가 돼 보면 무리는 아니렷다. 송씨의 몸에서나 생긴다면 몰라두 후이 없는 것같이 서운한 일은 없거든.”
이렇게 제도의 편을 드는 것은 같은 자식 없는 설움의 강영감이었으나 그런 심정은 도대체 재실의 비위에는 맞지 않았다.
“지금부터래두 큰댁의 몸에서 늦내이로 생길지두 모르는 일이거니와 첩의 몸에서라구 어김없이 있으리라구는 누가 장담하겠나. 생겼댔자 그게 자라서 한몫을 볼 때까지 아비가 세상에 붙어나 있겠나?”
“중근이 너 삼촌댁 하나 더 생겼다구 좋은 모양이지. 너두 올에는 장가들 나이에─네 색시하구 젊은 삼촌댁하구 까딱하면 바꿔 잡을라.”
“삼촌댁이구 쥐뿔이구 내 소는 어떻게 된 거야. 남의 황소를 끌구 가더니 지져 먹은 셈인가.”
씨름으로는 면내에서 중근을 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단오날 창말서 열리는 대회에서는 해마다 상에서 빠지는 적이 없었고 지난 해에는 황소 한 마리를 탔다고 이름이 군내에 떨쳤다. 그 황소를 빌어 가지고 떠날 때 애걸복걸하던 삼촌이 지금 터무니없이 맨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황소와 색시와 바꿨단 말인가. 그럴 법이, 그게 어떤 황손데. 나와 동무하구 나와 잠자구 내가 타구 하던 것을 갖다가─지금 어디서 내 생각을 하구 있을꾸.”
“이런 말버릇이라니. 삼촌댁을 그렇게 소홀히 여기면 용서가 없어. 소가 다 무어게. 씨름에서 이기면 또 얻을걸. 사내자식이 언제면 지각이 들꾸.”
핀잔을 받고 중근은 쑥 들어갈 수밖에는 없었으나 삼촌이 사람들과 지껄지껄 하고 있는 동안 슬며시 소 잔등에 눈을 보냈다가 구슬같이 말간 색씨의 행동에 그만 마음이 휘황해지면서 눈이 숙어졌다. 저렇게 젊은 색시가 왜 삼촌댁이 되는구 생각하니 이상스런 느낌에 공연히 마음이 송송거려져서 이게 여간한 일이 아니구나, 얼른 삼촌댁에도 일러주지 않으면 하고 총중을 빠져 나와 단걸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뒤안 베틀에서 베를 짜고 있던 삼촌댁 송씨는 곡절을 듣고 뜨끔해 놀라는 눈치더니 금시 범연한 태도로 조카 중근을 듬짓이 내려다보았다.
“삼촌은 입버릇같이 언제나 나를 둘소 둘소 하고 욕주더니 그예 계집을 데리고 왔구나. 내가 둘손지 삼촌이 병신인지 뉘 알랴만 나두 자식을 원하는 마음이야 삼촌에게 지겠니, 아무리 속을 태워두 삼신할머니가 종시 원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첩의 몸에서 자식이나 생기는 날이면 나는 이 집을 하직하는 날이야.……앞대 여자는 인물두 좋다는데.”
“그렇게 고운 여자두 세상에 있나 싶어. 달같이 희멀건 게……”
“어디 보구나 올까. 마중 안 나왔다구 또 삼촌께 책을 듣기 전에.”
한숨을 지으면서 송씨가 틀에서 내려서 앞뜰까지 나섰을 때 골방에서 삼을 삼고 앉았던 늙은 시모는 무슨 일이냐고 입을 벙긋벙긋했다. 중근이 큰소리를 질러 곡절을 말해도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 번기는 노망한 노파는 안타까워서 손만 휘휘 내저었다.
논길을 걸어 내려오는 행력을 보고 송씨는 휘황한 느낌에 눈이 숙어졌다. 소를 탄 색시의 자태는 사람들 위로 우뚝 솟아서 높고, 그 발아래 편에 남편과 마을 사람들이 줄레줄레 달려서 누구나가 슬금슬금 색시의 모양을 우러러보는 것이었다. 소 목에 단 방울소리가 떨렁떨렁 울리는 속으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지껄지껄 들리는 것이 흡사 잔칫집 행렬이었다. 내 혼례 때에도 저렇게 야단스럽진 못했겠다. 눈을 감고 가마를 탔을 뿐이지 저렇게 자랑스럽지는 못했겠다. 송씨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중근은 또 제 생각에 잠겨 내가 씨름에서 황소를 타 가지고 돌아올 때도 저렇게 야단스러웠던가. 마을의 젊은 축들이 뒤에서 떠들썩하고들 따라 왔을 뿐이지 저렇게 의젓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작년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따뜻한 볕을 잠뿍 받으면서 흔들흔들 가까워 오는 색시의 자태를 바로 눈앞에 바라보았을 때 그것이 꿈이 아니고 짜장 생시의 일임을 깨달으면서 송씨는 아찔해짐을 느꼈다.
이튿날은 잔치라고 마을의 여자란 여자는 죄다 재도의 집에 모여들었다. 인가가 듬성한 마을 어느 구석에 사람이 그렇게도 흔하게 박였던지 마당과 부엌과 방에 그득들 넘쳤다. 급하게 차리노라고 대단한 잔치도 아니었으나 그래도 국수그릇과 떡조각에 기뻐들 하면서 사내들을 탁주 잔에 거나해지면서 각시의 평론으로들 왁자지껄했다. 송씨는 어제 날의 놀람과 탄식은 씻어버린 듯 범상한 낯으로 부지런히 서둘렀다. 큰댁 앞에서 새 각시의 인물을 한정 없이 출 수도 없어서 여자들은 기연미연한 말솜씨로 그 자리를 얼버무려 넘겼다. 저녁 무렵은 되어 외양간에 짚과 멍석을 펴고 신방이 차려질 때까지도 돌아가려고들은 안하고 외양간 빈지 틈으로 첫날밤의 풍습을 엿볼 양으로 눈알을 굼실굼실 굴리며들 설렜다. 소의 본성을 본받아 잘 낳고 잘 늘라는 뜻이기는 했으나 그 당돌한 첫날밤의 풍습에 색시는 얼굴을 붉히며 서슴거리는 것을 여자들은 부끄럽긴 무에 부끄러워서, 소같이 튼튼한 아들을 낳아서 송씨 일문의 대를 이어야만 장한 일인데 라고 우겨서 외양간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늙은 신랑이 이도 겸연쩍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간 후 빈지를 닫고 나니 사내들은 주춤주춤 헤어져 혹은 집으로 가고 혹은 다시 사랑으로들 밀렸으나 여자들은 찹찹스럽게 외양간 주위를 빙빙 돌면서 젊었을 시절의 꿈들을 생각해 내서는 벙글벙글 웃고 킬킬거리면서 수선들을 떨었다.
“얼른들 와 좀 봐요. 촛불이 꺼졌어.”
“공서방두 복 있는 사람이야. 평생에 두 번씩이나 국수를 먹이구. 그 둘째 각씨는 천하일색이니 죽어서 다시 저런 일색으로 태어난다면 열두번 죽어두 한이 없겠다.”
“여자는 인물보다두 거저 자식내이를 잘 하구야. 큰댁은 왜 색씨 때 일색이 아니었나.”
“큰댁두 속 무던히 상하겠다. 여식이래두 하나 낳드라면 이런 꼴 안 봤을 것을.─어 어디를 갔는지 아까부터 까딱 자태가 안보이니.”
송씨는 남모르는 결에 집을 나와 뒷골 우물 둔지에 와 있었다. 칠성단에 정한 물을 떠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요 십년째 아침 저녁 한 번도 번긴 적이 없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합장하고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리는 단정한 얼굴이 어둠 속에 희끄무레 솟아 보인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이 자리에 무릎꿇고 합장하구 삼신님께 비옵는 건한 톨의 씨를 이 몸에 줍소사고 인자하신 삼신님께 무릎 꿇고 합장하구 아침이나 저녁이나……”
웅얼웅얼 외이는 목소리는 산속에 울리는 법도 없이 샘을 둘러싸고 있는 키 높은 갈대밭으로 꺼져 들어가면서 그 소리에 화하는 것은 얕은 도랑물소리뿐이었다. 집안의 요란한 인기척도 밭 건너편에 멀고 금시 어둠 속에 삼신의 자태가 의렷이 나타날 듯도 한 고요한 골짜기였다. 사시나무와 자작나무 잎새도 오늘밤만은 살랑거리지도 않는다.
“……오늘은 혼인날에 요란히 기뻐하는 속에 내 마음 한층 쓰라리구 어지럽사오니 가엾은 이내 몸에두 여자의 자랑을 줍사 공가에 내 핏줄을 전하게 하도록 합소사구 삼신님께 한결같이……”
모았던 손을 풀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조용조용 일어섰다가는 엎드리면서 단 앞에 절을 한다. 항아리 속에 준비했던 백 낟의 콩알을 한 개씩 헤이면서 백 번의 절을 시작했다. 일어섰다가는 엎드리고 일어섰다가는 엎드리고 하는 그 피곤을 모르는 가벼운 거동이 점점 짙어지는 어둠 속에 사라지고는 나중에는 산신령의 속삭임과도 같은 웅얼웅얼하는 군소리만이 아련히 남았다. 외양간의 첫날밤의 거동보다도 한층 엄숙한 밤 경영이었다.
이렇게 남몰래 마음을 바수는 것을 송씨 한 사람뿐이 아니라 재도의 종제 재실과 그의 아내 현씨도 잔칫집 뒷설거지를 대충 마치고 삼밭 하나 사이에 둔 자기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조용히 자기들의 처지를 돌보게 되었다.
“꼴이 다 틀린걸.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재실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면서 일득이 놈은 자는가 하고 아랫방을 내려다보고 어린 외아들이 때아닌 잔치 등살에 피곤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아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일이야 될 대로 됐지. 철없는 외자식을 양자로 주군 무얼 믿구 살아간단 말요.”
“또 덜된 소리. 누가 주구 싶어서 주나. 이 살림 꼬락서니를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
재실의 심보라는 것은 일득이를 큰집에 양자로 들여보내서 대를 잇게 하고 그 덕에 어려운 살림살이를 고쳐보자는 것이었다. 부근 일대의 전토와 살림을 독차지하다시피 해서 재도가 마을에서 일등 가는 등급인데 비기면 근근 집 한 채밖에는 지니지 못하고 몇 자리의 형의 밭을 소작해서 지내 가는 재실의 처지는 고달프기 짝없는 것이었다. 당초부터 그렇게 고달팠던 것이 아니라 조부 때에 분재를 받아 두 대째 온전히 지켜오던 가산을 재실은 한때의 허랑한 마음으로 읍내에서 노름에 정신을 팔고 창말서 장사를 하느라고 흥청거리다가 밑천을 털어 버린 것이었다. 다시 형의 앞에 나타날 면목조차 없었으나 목숨이 원수라 몇 자리의 밭을 얻어 생애를 다시 고쳐 시작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마음을 갈아 넣었다고는 해도 어려운 살림에 시달리노라니 심사가 흐려지는 때도 많아서 형에게 후손 없는 것을 기회 잡아 외아들 일득을 종가로 들여보낼 계책이었던 것이다.
“형두 당초에는 그 요량으로 있었던 것이 웬 바람인지 알 수가 없어. 인물에 반했는지 원. 소 한 필과 바꿨다니 소금 대신에 계집을 사온 셈이지. 젊은 대장장이의 여편넨데 그 녀석 소가 탐이 나서 여편네를 팔게 됐다나.”
“뭐 뭐요, 소와 여편네를 바꾸다니. 계집두 계집이지 아무리 살기가 어렵기로 원 세상에 별일두 다 많지.”
“후일 시비가 있어두 해서 사내는 쪽지를 다 써주었다니까 정말두 거짓말두 없어. 대장장이 여편네라두 앞대 여자는 인물이 놀랍거든. 녀석 지금쯤은 필연코 후회가 나렷다.”
“숫색시가 아니래두 핏줄만 이으면 그만이야 그만이겠지. 양자를 들이긴 제발 제발 싫다구 하던 판에.”
“그래 이 집 꼴은 무어람. 일득이를 준다구 해두 아래 웃집에서 영영 못 보게 될 처지두 아니구, 내년 봄에는 창말 사숙에나 읍내 학교에두 넣어야 할텐데─일 다 틀렸지. 남의 밭을 평생 부치면서야 헤어날 재주 있나.”
재실이 밤 패이는 줄을 모르고 궁리해 보아야 하릴없는 노릇, 재도의 속심은 처음부터 빤한 것이었다. 큰댁 몸에서는 벌써부터 그른 줄을 알고 첩의 몸에서라도 자식을 얻어 보겠다고 벼르던 것이 이번 거사로 나타났던 것이다. 만약에 혈통이 끊어지는 일이 있다면 선조에 대해서 다시없는 죄를 지는 셈이 되는 까닭이었다.
조부의 대에 어딘지 북쪽 땅에서 이 산골로 옮아 왔을 때에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맨주먹에 족보 한 권만을 신주같이 위해 가지고 있었다. 족보의 계도에 의하면 공문일가는 근원을 멀리 중국 창평 땅에 두고 만고의 성인을 그 선조로 받들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한 옛 성인의 후손이라는 바람에 마을 사람의 공경과 우대를 한 몸에 모으고 부지런히 골짝과 산허리의 땅을 일구기 시작한 것이 자수성공으로 당대에 수십일 갈이의 밭과 여러 섬지기의 논을 장만하고 부근 일대의 산까지를 손안에 잡아서 마을에서는 일등가는 거농이 되었다. 한번 일군 가산은 좀해 흔들리지 않아서 두 아들을 낳고 이 고을에서의 삼 대째 재도의 대에 이르게 되매 집안은 더욱 굳어졌다. 불미한 재실만이 두 대째 잘 이어온 재산을 선친이 없어진 것을 기회로 순식간에 탕진해 버리는 것을 종형 재도는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재실이 알몸으로 마을에 돌아왔을 때는 전토는 벌써 남의 손에 들어간 후였다. 비위 좋게 외아들의 양자봉양을 궁리해 왔으나 재도는 처음부터 마음이 댕기지 않았다. 삼대나 걸려 알뜰히 장만한 토지를 길이길이 다스려 가려면 아무래도 제 핏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한 몸이 없어진 후 행여나 재산이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게 되어 선조의 무덤을 돌보는 자손도 없이 그 제사를 게을리하게 된다면 사람의 자식된 몸으로서 그보다 죄스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정한 땅에 목숨을 박고 그곳을 다스리게 됨은 그것을 다음 대에 물려주자는 뜻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될 수만 있으면 먼 타관에서 인연을 구해 왔으면 하고 해마다 봄이 되어 소금받이를 떠날 때마다 그 궁리하던 것이 문막 나루터는 산에서 자란 그의 눈을 혹하기에 넉넉했다. 어쩌다가 올에는 바로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혼례가 지나 며칠이 되니 새 각시는 집일이 익어서 서름서름해 하는 법도 없이 부지런히 일을 거들었다. 부엌에서 큰댁과 나란히 서서 심상하게 지껄거리며 거짓말같이 화목해 하는 모양을 남편 재도는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시모와 남편을 섬김에 조금도 소홀이 없도록 하려고 하는 조심성스러운 마음씨도 그를 기쁘게 하기에 넉넉했다.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원줏집이라고 불리우게 되어서 이 칭호는 마을 사람들에서 일종 그리운 느낌을 주었다. 원주는 근방에서는 제일 개화한 읍이었다. 문명의 찌꺼기가 원줏집을 통해서 이 궁벽한 두메에까지 튀어온 것이다. 원줏집은 세수를 할 때 팥가루 대신에 비누라는 것을 썼고, 동그란 갑에 든 향내 나는 분가루는 창말 장에서 파는 매화분 따위는 아니었다. 무명지에는 가느다란 쇠반지를 꼈고 시모의 눈 닿지 않는 곳에 숨어서는 뒤안 같은 데서 흰 권연을 태웠다. 엽초밖에는 모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 향기는 견딜 수 없이 좋아서 사랑에 머슴을 살고 있는 박동이는 중근을 추켜서는 그 하아얀 권연 한 개를 제발제발 빌곤 했다.
재도의 누이의 아들 안중근은 삼십쯤 되는 산 너머 마을에 출가했던 누이가 죽은 후 남편마저 그 뒤를 좇아 떠나게 되니 의기가지없는 신세에 하는 수 없이 삼촌의 집에 몸을 붙이게 되었다. 가까운 혈육이기는 하나 성이 다른 조카를 내 자식으로 들일 의사는 없었으나 송씨가 물을 찌워 기른 보람이 있어 어느결엔지 늠름한 장정으로 자라서 머슴과 함께 밭일을 할 때에는 어른 한몫을 넉넉히 보았다. 안씨 문중의 몇 대조이든지 조상에 산속에서 범을 만나 등어리에 발톱자국을 받았을 뿐 맹수의 허리를 안아서 넘어트린 장골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어온 중근은 자기도 그 장골의 피를 받았거니 하고 팔을 걷어 힘을 꼲아보곤 했다. 어릴 때부터 익어온 송씨를 백모라고 부르기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웠으나 생판 초면인 젊은 원줏집을 향해서는 쑥스러운 생각이 먼저 들면서 아무리 해도 같은 말이 입으로 나오지 않을 뿐더러 자기가 황소와 바꾸어 왔다는 생각을 하면 화가 나는 때조차 있었다. 날이 지날수록 송씨는 기운을 못 차리면서 진종일 안방에 박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베틀에 올라서 북을 덜거덕거리면서 길삼내이로 날을 보내곤 했다. 그 쓸쓸한 자태가 중근의 가슴을 에우는 듯도 해서 원줏집 잔소리나 삼촌의 책망을 받을 때마다 백모를 막아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중근이 나뭇짐을 지고 돌아와 보니 부엌에서는 백모와 원줏집이 한바탕 겨루고 있었다. 저녁 준비로 그릇들이 어지럽게 놓인 부엌바닥에 산발한 머리채를 마주잡고 떠들썩하고 노려댔다. 아침 저녁으로 시중을 들러오는 현씨는 어쩔 줄을 모르고 서성거리면서 아궁밖에 기어 나온 불끄트머리도 건사하지 못하고 일득아, 얼른 가서 삼촌들을 데려오지 못하구 무얼 하니 하며 쉰 목소리로 어린것을 꾸짖을 뿐이었다. 누가 소처럼 일하려구 이 두메로 왔다든? 넌 종일 베틀에만 올라 엎드리구 있으니 물을 긷구 여물을 끓이구 부엌 설거지를 하구 혼자 손으로 이 큰 살림을 어떻게 보란 말이야 하고 원줏집이 입술을 파랗게 떨면서 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일이 고되다는 불평인 듯싶었다. 호강하자는 첩이더냐, 잘난 체 말구 너두 좀 시달려봐야 두메 맛을 아느니라. 나도 놀구만 있는 게 아닌데 일끝마다 남의 맘을 콕콕 찌르는 이 가사리 같으니 하고 백모는 대꾸하면서 한데 얼려서는 함께 나무검불 위에 쓰러졌다. 찬장을 다친 바람에 기명들이 왈그렁 뎅그렁 바닥에 쏟아졌다. 년이 둘소면서 심술은 고작이지 큰댁이라구 장한 체 나둥그러진 건 너지 누구야. 이럴 줄 알았으면 누가 이 산골로 올까. 삼백 리나 되는 이 두메산골로. 이 말에 백모는 불같이 발끈 달아서 잇몸에서 피를 뱉으면서 무엇이 어쩌구 어째 또 한번 지껄여봐라, 또 한번 그 혓바닥을 빼 버릴 테니. 소리소리 지르며 법석을 치기는 했으나 제 분에 못 이겨 제 스스로 탁 터지고야 말았다. 둘소라는 말같이 그에게 아픈 욕은 없었다. 더 싸울 기력도 잃어버리고 자기 설움으로 흑흑 느껴 우는 소리를 듣고 시모가 방 문턱까지 기어 나와 그 아닌 꼴들에 놀라 입을 벙긋벙긋 열면서 손을 내저으나, 흥분된 두 사람에게는 벌써 어른의 위엄도 헛것이었다. 중근이 쫓아 들어가서 두 사람을 헤쳤을 때에는 널려진 부엌바닥도 볼만은 했지만 산발하고 옷을 찢고 피를 흘린 두 사람의 꼴은 차마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현씨도 덩달아 울면서 코를 훌쩍거렸다.
그날 밤 송씨의 자태가 없어진 채 늦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원줏집만을 달래고 있던 재도도 비로소 웬일인가 하고 집안은 또 설레기 시작했다. 베틀에도 없고 방앗간에도 없다면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하고 재도와 중근은 물론 재실 부부와 박동이까지도 나서서 초롱에 불을 켜들고 샘물 둔덕지부터 뒷산을 더듬어도 안보인다. 점점 불안해져서 패를 논아 가지고 묘지 근처와 골짝 개울가를 샅샅이 찾아보기로 했다. 중근은 혼자서 어둠 속에 초롱을 휘저으면서 행여나 나뭇가지에 드리운 식은 시체를 만나면 어쩌누 겁을 잔뜩 집어먹고 슬금슬금 통물방앗간 안을 엿보았을 때 깊은 구석 볏섬 앞에 웅크리고 앉은 백모의 모양을 보고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마음을 다구지게 먹고 달려가 보니 나뭇가지에 목은 안 맸을망정 꼼짝 요동 안하고 눈을 감은 채 숨결이 가쁜 모양이다. 조그만 항아리가 구르고 독한 간수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금섬 아래에 받쳐 두었던 항아리의 간수를 먹은 것임을 알고 중근은 끔찍한 짓두 했지 하고 황망히 설레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등에 업고 급히 방앗간을 나왔다. 건너편 뒷산 허리에 번쩍번쩍 움직이는 초롱불들이 보였으나 소리를 걸지 않고 잠자코 논 두덩 길을 걷고 있으려니 몸 더위로 등어리가 후끈해 오면서 그 무릎 아래에서 이십년 동안이나 양육을 받아온 백모를 이제 자기 등어리에 업게 된 것을 생각한 즉 이상스런 느낌이 생기면서 알 수 없이 잔자누룩해지는 마음에 엉엉 울고도 싶었다.
“……그게 즈 중근이냐?”
밤바람에 얼마간 정신을 차렸는지 백모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간신히 지껄였다.
“왜 아직 목숨이 안 끊어졌을까. ……둘소 둘소 하지만 난 둘소가 아니야. 아무두 말할 수는 없지만 알구 보면 삼촌이 불용이란다. 무이리 무당이 내게 가만히 뙤어 주었어.”
“아주머니야 왜 나쁘겠수. 원줏집의 소갈머리가 글렀지. 앞대서 왔다구 독판 잘난 척하구 툭하면 싸움을 걸군 하면서.”
“원줏집이 아일 낳을 줄 아니. 두구 보렴. 삼촌이 불용이야. 다 삼촌의 허물이야. 아무두 그런 줄 모르니 태평이지. ……아이구 가슴이야 배야. 아마두 밸이 끊어졌나부다. 이렇게 뒤틀릴 젠. 으으 으응……”
“맘을 든든히 잡수세요. 세상이 다 알게 될 일이니.”
간수가 과했던 까닭에 송씨는 몹시 볶이우고 피를 토하며 자리에 눕게 된 것이 반달 가량이 지나니 차차 누그러지는 날씨와 함께 의외에도 속히 늠실 하고 일어나게 되었다. 허전허전해는 하면서도 별일 없었던 듯이 시침을 떼고 원줏집과 심상하게 지껄이면서 일을 거드는 품이 또다시 평온한 날로 돌아가는 듯이도 보였으나 뒷동산 밤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은 되어 송씨에게는 이로 쇠약한 몸 걱정이 아니라 한꺼번에 마음을 잡아 흔들고 속을 뒤집히게 하는 일이 생겼다. 어느결엔지 원줏집의 몸이 무거워진 듯 음식도 잘 받지 아니하고 게욱질만 하면서 자리에 눕는 날이 많아진 것이었다. 설마 그럴 수야 있을까 하고 마음을 태평히 먹고 있었던 것만큼 송씨는 벼락이나 맞은 듯 정신이 휘둘리우면서 멍하니 한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날 기맥조차 없어지는 때가 있었다. 현씨가 달래면 간신히 일어나서 원망하는 듯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그 초췌한 자태는 차마 볼 수 없어서 재실은 하루는 창말서 용하다는 점쟁이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반백이 된 수염을 드리운 판수는 장한 상 위에 동전을 굴리고 산죽가지를 놓고 하면서 음성을 판단하고 사주를 풀어 길흉을 점쳤다. 괘가 좋소이다. 걱정할 것이 없어 하고 한참 후에 감은 눈을 꿈적거리고 비죽이 웃으면서 결과를 고했다. 길한 날을 받아 동쪽으로 칠십 리를 가 백날 동안 고산치성을 드리면 그날부터 서조가 있어 옥 같은 동자를 얻는다는 쾌외다. 길사는 빠를수록 좋은 법이니 하루라도 속히 내 말을 좇으소. 판수는 자랑스런 낯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지금까지 아무 관상쟁이도 사주쟁이도 안 하던 말을 이렇게도 수월하게 쏟아놓을 제는 필연코 팔자에는 있나 보다고 송씨는 반생 동안 그날같이 반가운 적이 없었다. 판수의 한마디로 순간에 병도 떨어진 듯이 기운이 나면서 기쁜 판에 정성을 다해 판수를 대접했다. 돈 열 냥과 쌀 한말을 짊어지고 판수는 벙글벙글 하는 낯으로 재실에게 끌려 창말로 돌아갔다.
뜻밖인 길보에 남편인 재도도 반갑지 않지도 않은 듯 여러 가지로 길 떠날 준비를 거든다. 택한 날에는 외양간의 거동도 치른 후 기쁜 낯으로 아내를 떠나 보냈다. 동쪽으로 칠십 리를 간 곳에는 이름난 오대산이 있고 그 중허리에 유명한 월정사가 있었다.
석 달분 양식에다 기명과 옷벌까지도 소등에 싣고 중근은 기쁘게 백모를 동무해 떠났다.
송씨들이 떠난 후 농사가 바쁜 때이라 집안은 어지럽고 복작거리기는 했으나 큰댁과의 옥신각신이 삔 짓만으로도 원줏집은 시원해서 아무데서나 권연을 푹푹 피우면서 기할 것 없이 내로라고 활개를 폈다. 재실의 한 집안이 죄다 오다시피 해서 일을 거드는 까닭에 부엌일도 송씨와 으릉대고 있었을 때같이 고된 것은 아니었고 송씨 앞에서는 어려워 하는 현씨도 원줏집과는 허름한 생각에 뜻을 잘 맞추어 주는 까닭에 모든 것이 탈없이 되어 나갔다. 단지 밭일이 너무 고돼서 조밭에 풀 뽑기, 삼밭에 손질, 논에 갈꺾기 등으로 손이 부족해 재도와 박동이는 죽을 지경이었으나 고대하고 있던 중근은 의외에도 빠르게 떠난 지 열흘만에 돌연히 돌아와서 장정들을 반갑게 했다. 떠날 때보다는 풀이 죽어서 맥이 없어 보임은 필연코 노독의 탓이거니 생각하고, 어떻던가 먼 길이라 되지. 박동이가 물으면 돌아다보지도 않고 경 없는 듯이 딴전을 보는 것이었다.
“산 산 하니 오대산같이 큰 산이 있을까. 아름드리 박달나무와 참나무가 빽빽이 들어서서 낮에도 범이 나올 지경이여. 절에는 불공 온 사람들이 득실득실 끓어서 산속이래두 동네와 진배없고, 스님이 여러 가지로 돌보아 주는 덕으로 방두 한 간 얻고 새벽 첫닭이 울 때 일어나서 새옹에 메를 지어 가지구는 불당에 올라가 부처님 앞에 백 번 절을 한다나. 백번씩 백날 백일 불공을 드린대. ……내가 아는 건 그것뿐이야.”
“타관물 먹더니 너 아주 어른됐구나. 올 때 진부 장터 봤겠지. 강릉 가는 신작로가 나서 창말보다두 크다는데.”
“크구 말구. 신작로는 한없이 곧게 뻗친 위를 우차가 늘어서구 자동차가 하루에두 몇 번씩 달아난다네. 자동차 첨 보구 뜨끔해서 길가에 쓰러졌다네. 돼지같이 새까만 놈이 돼지보다두 빠르게 달아나거든. 우뢰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세상이 넓지. 마당 같은 넓은 길을 걷구 있노라면 이 산골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어져. 어디든지 먼데루 내빼구 싶으면서.”
“너 말두 늘구 생각두 엉큼해졌구나. 수작이 아주 어른이야. 어느결엔지 어른 됐어. 목소리까지 굵어진 것이.”
박동이가 어깨를 치는 바람에 정신없이 지껄이던 중근은 주춤하면서 몸을 비틀고 외면한 채 밭 있는 쪽으로 달아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녀석이 달라졌어 전에는 저렇게 수줍어하고 어색해 하지 않더니 얼굴도 좀 빠진 것이 하고 박동이는 모를 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오절도 올에는 중근에게는 그다지 신명나는 것이 아니어서 억지로 끌려 나가 씨름을 해도 해마다 판판이 지우던 적수에게 보기 좋게 넘어가 황소를 타기는커녕 신다리에 멍까지 들었다. 박동이는 그 꼴이 보기 딱해서 제 무릎을 치면서 저런 놈의 꼬막신이 봐라 정신이 번쩍 나게 좀 때려 줄까 보다 하고 홧김에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이날 중근은 생전 처음으로 장판 술집에 들어가 대중없이 술을 켜고 잠뿍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삼촌 재도가 너 요새 웬일이냐 잔뜩 주렵이 들어 기운을 못차리는 것이 말 못할 걱정이나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길을 더듬어 뒷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더니 이튿날 낮쯤은 돼서 햇 개만한 노루새끼 한 마리를 가슴에 부둥켜안고 너슬너슬 내려왔다. 산에서 밤을 새운 것이었다. 한잠을 자려고 싸리나무 수풀 속으로 들어갔을 때 마침 그 자리가 노루집이어서 놀란 새끼들이 소리를 치면서 껑청껑청 뛰어났다는 것이었다. 어둠 속을 쫓아가서 기어코 한 마리를 잡아 안고 숲 속에서 하룻밤을 새웠다는 것이다. 잃어진 새끼를 찾는 어미 노루의 울음소리가 밤새도록 골짝에 울렸다고 한다. 중근은 그날부터 뜻밖에 노루새끼로 말미암아 얼마간 기운을 차린 듯 사람의 새끼보다두 귀엽거든. 잘 먹여서 기를 테야 하고 외양간 옆에 조그만 울을 꾸민다, 싸리잎을 뜯어다 먹인다 하면서 반나절을 지우곤 했다. 겁을 먹고 비슬비슬하던 노루도 점점 사람을 가리지 않으며 저녁때쯤 되니 싸리도 잘 받아 먹게 되었다.
일에서 돌아온 박동이는 그 꼴을 보고 어이없어서 산에서 자는 녀석이 어디 있니 밤새도록 얼마나 걱정을 했게 책망하면서,
“씨름에 진 녀석이 노루새낀 무어야. 노루보단 소를 타오진 못하구. 이까짓 노루새끼를 무엇에 쓰겠게.”
“짐승을 다쳤다간 그냥 두지 않을 테다. 네까짓 게 열 번 죽었다 나봐라. 이렇게 귀엽게 태어날까.”
“분이보다두 귀여우냐. 가을에는 잔치를 내고 임서방의 사위가 될 녀석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각없는 짓만 할 테냐. 분이 얼굴을 넌 아직 똑똑히는 못 보았겠다. 여름이 되면 건넌 산에 딸기를 따러 갈 테니 밭이랑에 숨었다가 가만히 여겨보렴. 첫눈에 홀짝 반할라.”
“잔소리 작작해. 분이를 누가 얻는다던. 그렇게 탐나거던 왜 네 색시나 삼으렴.”
“두멧놈이 큰소리한다. 욕심만 부리면 누가 장하다든. 그렇지 않으면 맘에 드는 사람 따로 생겼니. 너 요새 눈치가 수상하더구나. ……어디 좀 만져보자. 얼마나 컸나. 언제 색시를 얻게 되겠나.”
“이 미친 녀석이. 이놈이 지랄이야.”
박동이가 데설데설 웃으면서 희롱삼아 손을 벌리고 달려드니 중근은 얼굴이 새빨개져 뒤로 물러서면서 금시 울상이었다. 망신주면 이놈 너 죽일 테다 떨리는 손으로 진정 낫을 쥐어 드는 것을 보고는 박동이도 실색해서 이번에는 자기편에서 되 도망을 쳤다. 살기를 띠인 중근이의 눈을 보니 소름이 치고 겁이 났다.
산골의 여름은 빨라서 모가 끝난 후 보리를 걷어들이고 나니 골짝에는 초목이 울창해지고 산에는 나무가 우거져서 한결 답답하게 되었다. 옥수수 이삭에서는 붉은 수염이 자라고 삼은 사람의 키를 훌쩍 넘게 되어서 마을은 깊은 그림자 속에 잠기고 공씨 일가는 밤나무와 돌배나무 그늘에 온통 덮일 지경이었다. 장마가 져서 큰물이 난 후로는 볕이 따갑게 쪼이기 시작해서 마을 사람들은 쉴새 없는 일에 무시로 땀을 철철 흘렸다. 재실은 피곤할 때에는 모든 것이 성가시고 귀찮아서 밭둑에 하염없이 앉아서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원줏집이 몸이 무겁다면 벌써 일득이에게 소망을 걸 수도 없게 되어서 앞으로의 근 반생 동안을 어떻게 고달프게 지낼 것인구 하고 눈앞이 막막해졌다. 차라리 다 집어치우고 금전판엘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앞대에 가서 뜬벌이를 하든지 하는 것이 옳겠다고 박동이와 마주앉아서는 한없는 궁리에 잠겼다. 아내 현씨는 그런 남편의 심중을 헤아릴 까닭도 없어서 큰집에 박혀서는 원줏집과 부산하게 서두를 뿐이었다. 재도는 장마 때 터지는 봇살을 막노라고 덤비다가 흙탕물 속에서 가시를 밟은 것이 덧나 부은 발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던 것이 바쇠를 달궈서 지진다. 풀뿌리를 이겨서 바른다 하는 동안에 차차 낫기 시작해 지금에는 일어나 걸어다니게까지 되었다. 달포 동안 방에 번듯이 누워 점점 불러가는 원줏집의 배를 바라보는 것은 더없는 기쁨이기는 했으나 다시 일어나 근실거리는 두 팔로 몰킨 일을 시작하는 것도 또 없는 기쁨이었다. 밭 속에서, 혹은 산 위에서 멀리 집안에 움직이고 있는 아내의 모양을 바라보는 것도 흥겨운 일이었다.
흥이 과해서 하루는 아닌 변이 생기고야 말았다. 수상한 아내의 모양을 보고 황겁지겁 산을 뛰어내린 것이었다. 건너 산골짝에 칡넝쿨을 뜯으러 가 있었던 재도에게는 점심이 지나고 사내들은 밭으로 나간 후에 조용한 집안이 멀리 내려다보였다. 문득 안뜰에 조그만 그림자가 움직이더니 주위를 살피는 듯 슬금슬금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것이 박동이인 줄을 알았을 때 뒤켠 조이밭에 가 있어야 할 녀석이 아닌 때 무슨 까닭일꾸 하고 재도는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있다가 박동이가 늠실하고 방에서 나오는 뒤로 원줏집이 권연을 물고 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는 재도는 눈이 뒤집힐 듯 노기가 솟아 부르르 육신을 떨면서 지게도 칡넝쿨도 내버린 채 허둥지둥 골짝을 뛰어내렸다.
아내를 믿고 지내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환장이나 할 듯이 마음이 뒤집히는 것이었다. 둘이 아무리 방패막이를 해도 마음이 듣지를 않아서 물푸레 나뭇가지로 번갈아 물매를 내리나 아내는 청하길래 적삼을 잡아 매주고 내친 김에 권연을 한 개 주었다는 것 이상으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나중에는 도리어 짜증을 내면서, 이렇게 욕을 받으려면 차라리 고향으로 나가겠노라고 주섬주섬 세간을 거두는 것이었다. 그래도 재도는 노염이 풀리지 않아서 기어코 여물을 써는 작두날에다 박동이의 목을 밀어 넣고 다짐을 받을 때 박동이는 비로소 손을 빌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했다.─사실은 그렇게 허물을 지은 듯이 보여서 원줏집에다 억울한 죄를 씌워 그를 집에서 내쫓자는 계책이었다는 것, 그 계책에 재도가 옳게 걸려 왔다는 것, 그 모든 계책은 재실의 뜻과 지칭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재도도 놀랬지만 원줏집도 그런 흘책 속에 감쪽같이 옭혀 들어갔음을 알고 어이가 없어서 못된 녀석들 하고 이번에는 박동이를 책하기 시작했다. 재도는 겨우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밤낮 남모를 궁리에만 잠겨 있는 재실이 녀석이니 그럴 법도 하겠다고 박동이를 시켜 곧 불러 보았으나 재실은 그렇게 될 줄을 예료하고서인지 밭에도 집에도 자태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부터 종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어느 금전판이나 먼 앞대로나 간 것이려니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 며칠 후 창말로 장보러 갔다 온 사람 말을 들으면 술집에서 여러 날이나 곤드레만드레 뒹굴고 있더니 깊은 산에 가 치성을 드리고 삼을 찾아보겠다고 하루는 표연히 흥정리 심산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삼을 캐서 단번에 천금을 쥐자는 생각이지만 그런 바르지 못한 심청머리에 삼신산의 불사약이 그렇게 수월하게 눈에 띠일 줄 아나 하고 재도는 도리어 측은히 여겼다. 남편을 잃어버린 현씨의 설움은 남모르게 커서 개일 줄 모르는 눈자위를 벌겋게 해 가지고는 어린것을 데리고는 큰집에 들어박히다시피 했다. 박동이는 재실의 입 바람에 당치않은 짓을 했던 것이 겸연해서 이도 여러 날 동안이나 창말을 빙빙 돌면서 돌아오지 않은 것을 왕사는 왕사로 하고 바쁠 때 그대로 둘 수만도 없다고 재도가 손수 가서 데려온 까닭에 다시 사랑에서 거처하게 되었다.
이 의외의 변에 누구보다도 놀라고 겁을 먹은 것은 중근이었다. 삼촌이 박동이의 목을 자르겠다고 작두날 아래에 넣고 금시 발로 밟으려던 순간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치고 무릎이 떨렸다. 일상 때에 용하기만 하던 삼촌이 그렇게도 담차고 무서운 사람이었던가 싶었다. 견디기 어려운 무더운 날 백낮이면 나무그늘에 쉬이면서 흡사 재실이 하던 것과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한층 마음이 서글프게 된 것은 하루아침 우리 속에 기르던 노루가 달아났음이다. 길이 들었다고만 여기고 우리 빈지를 빼꼼히 열어 놓은 것이 마당 앞을 어정대는 줄만 알았더니 어느결엔지 뒷산으로 날쌔게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울화가 나서 일도 잡히지 않는 동안에 더위도 가고 여름도 지났을 때 월정사에서 송씨가 돌아왔다. 백일 불공의 효험이 있어 석 달이나 되는 무거운 몸으로 나타났다. 중근은 반가운지 두려운지 가슴이 떨리기만 하는 바람에 이날부터 산에서 어두워진 다음에야 내려왔다.
원한을 풀고 돌아온 송씨의 소문이 마을에 자자해지자 사람들은 창말 판수의 공을 신기하게 여기고 금시에 아들 복을 누리게 된 재도의 팔자를 부러워들 했다. 아들 없음을 누가 한할까. 창말 말 판수에게 점치면 그만인 것을 하고 여자들은 지껄거렸다. 재도는 지금 같아서는 세상에 더 부러운 것이 없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사람들의 말시답을 하기에 겨를이 없었다. 마당 앞에 서서 터 아래로 골짝까지 뻗친 전토, 전토를 바라보면서 자자손손이 그를 잘 다스려 먼 후세까지 일가가 번창해 조상의 이름을 날릴 것을 생각하면 지금 눈을 감아도 한이 없을 듯싶었다. 다시 시작된 두 아내의 옥신각신을 말리기는 남편으로서 두통거리였으나 큰 기쁨 앞에서 그것도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작은집이 거만하게 배짱을 부리면 큰집도 질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듯 펀둥펀둥 게으름을 부리면서 앙알거리는 두 사람의 자태를 차라리 대견한 낯으로 바라보는 때도 있었다.
그 해 가을은 예년에 없는 풍년이 들어 추수는 어느 때보다도 흡족했다. 마당에는 볏단과 조잇단의 낟가리가 덤덤이 누른 산을 이루었고 뒤 주간에는 잡곡이 그득 재어졌다. 낟이 굵은 콩도 여러 섬이 되어서 내년 봄 소금받이에도 흔하게 싣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밤 대추의 과실도 제사에 쓰고도 남으리만치 뜯어 들였고 현씨는 마을 여자들과 날마다 먼 산에 가서는 서리맞은 머루 다래 돌배에다 동백을 몇 광주리고 따왔다. 집안에는 그 열매 냄새와 함께 잘 익은 오곡 냄새가 후끈후끈 풍기고 두 사람의 아내는 부를 대로 부른 배에 진종일 머루를 먹었다. 반년 동안 신공한 덕이라고 해도 배를 두드리며 지낼 한가한 겨울이 온 것을 생각할 때 재도는 몸을 흐붓히 적시어 주는 행복감에 마음이 개나른해짐을 느꼈다. 이 가장 행복스러울 때 불행도 왔다. 그 불행이 오려고 그때까지의 행복이 준비되어 있었던지도 모른다. 어어없는 커다란 불행이 재도에게는 그렇게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안온하던 마음이 뒤집힐 듯 번져지면서 한 몸의 불운을 통곡하고 싶었다.
밭에서 남은 조잇단을 묶고 있을 때 뒷산에 참새 모는 소리가 요란히 나면서 중근이 숨이 가쁘게 뛰어와서 전하는 말이, 웬 타관 놈 같은 낯모를 사내가 와서 원줏집과 호락호락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제 아내를 찾으러 문막서 온 대장장이일 줄야 꿈에나 알았으랴. 마당으로 내려와 행장을 한 그 젊은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에 재도의 안색은 푸르게 질리면서 입까지 더듬어졌다.
“당신두 놀라겠지만 처를 찾으러 왔소이다. 공연한 짓을 하구 얼마나 뉘우쳤는지. 동네를 안 대준 까닭에 이곳을 찾노라구 큰 고생을 했소. 문막을 떠난 지 한달이 넘었는데 군내를 구석구석 모조리 들칠 수밖엔 있어야죠.”
“지금 새삼스럽게 그 그게 무슨 소린가. 사람들 보고 있는 속에서 작정한 일이 아닌가.”
“소와 사람을 바꾸다니 그럴 데가 세상에 어디 있겠수. 사람들한테서 내가 얼마나 욕을 받구 조롱을 받았는지 소는 그 뒤 얼마 안 가 죽었구 값을 치러 드리죠. 장만해 가지구 왔으니.”
“쪽지는 무엇 때문에 썼나. 지장까지 도두라지게 찍구. 여기 다 있어. 재판소엘 가두 누가 옳은가 뻔한 일이야.”
“그땐 여편네와 싸운 후라 내가 환장했었어유. 바른 정신으로야 누가 지장을 찍겠수.”
“지금 와서 될 말인가. 반년 동안이나 한 집에서 같이 산 사람을 지금 와서.”
“아무래도 데려가야겠어요. 우리끼리 정하기 어려우면 여편네더러 정하라구 그러죠. 되로 가든지 여기 있든지.”
사내는 자신 있는 듯이 여자편을 보았으나 지난날의 아내는 반드시 그 뜻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변변치 못하고 게으른 대장장이에게 시집가 몇 해 동안에 맛본 신고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재도에게 두말없이 몸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 그도 난처한 경우에 서게 되어 그 의외의 변에 재도와 함께 안색이 푸르게 질리고 벙어리같이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두 차차 자식 생각두 나구요. 내 자식 내 얻어 가는 데야 무슨 말 있겠수. 제 핏줄이야 아문들 어떻게 한단 말요.”
“누 누구 자식이라구. 농이냐 진정이냐. 괜히 더 노닥거리다간 큰일날라.”
“거짓말인 줄 아시우. 쪽지를 쓸 때엔 벌써 두 달째 됐을 때라우. 아이 어미에게 물어 보시우. 어디─나같은 죄인은 천하에 없어요.”
“머 멋이라구? 머. 대체 그게 놈이……”
재도는 금시에 피가 용솟음치며 앞뒤 분별을 잃고 사내의 옷섶을 쥐어 잡는 동안에 원줏집은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없이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구 하고 재도는 사내를 때려눕힐 기력도 없이 제 스스로 그 자리에 쓰러질 듯도 했다. 모든 것이 꿈이었구나 하고 미칠 듯이 마음이 뒤집혔다.
등신같이 허전허전한 몸으로 이튿날 사내와 함께 창말로 제판을 갔으나 주재소에서도 면소에서도 낡은 쪽지를 펴들고 두 사람을 바라볼 뿐 그 괴이한 사건을 쉽사리 다루지는 못했다. 한 사람의 아내를 누구에게 돌려보냄이 옳을지 바른 재판을 하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반나절을 궁리해도 좋은 판결이 안 나서 두 사람은 실망할 뿐이었다.
급작히 결말이 나지 않을 듯함을 알고 대장장이는 창말에 숙사를 정하고 날마다 조르러 오기 시작했다. 재도는 기운을 못 차리고 살고 있는 성싶지도 않았다. 송씨에게만 희망을 걸기로 하고 아내는 단념한다고 해도 한번 맺어진 원줏집과의 인연을 끊기는 몸을 에이는 것보다도 아픈 일이었다. 원줏집도 같은 느낌 같은 생각이었으나 자식의 권리를 주장하는 전 남편에 대한 의리도 있고 해서 한숨만 짓고 있는 동안에 사내의 위협이 날로 급해짐을 어쩌는 수 없이 잠시 몸을 풀 때까지 창말에서 사내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방 한 간을 빌려서 궁색한 대로 조그만 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아내의 뜻이라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재도는 잠자코 있는 수밖에는 없었으나 저러다 몸이나 푼 후엔 그대로 눌러 술장수를 하지 않나 두구 보게 사내두 벌써 고향으로 나가기가 싫다구 창말에 눌러 있을 작정인 모양인데 하고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는 치가 떨려서 견딜 수 없었다.
원줏집이 창말로 떠나는 날 그래도 그 동안 정이 든 현씨는 작별의 눈물을 흘리고 박동이도 논둑까지 걸어 나오면서 왜 이리 사람 일이 변하는고 싶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삽시간에 일어난 변화를 생각하고 재도는 세상일 알 수 없다고 스며드는 가을 바람에 목이 메어졌다. 흡족한 추수도 넓은 전토도 지금엔 그다지 마음을 즐겁히는 것이 못되었다. 빈방에 앉으니 장부답지 못하게 눈물이 솟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한 듯 제도에게는 참으로 가을바람은 살을 에이는 듯 모질었고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쓰러 눕힐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몸의 서글픔을 깨닫고 건질 수 없는 쓰라림에 통곡하게 될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줏집이 간 후 집안이 쓸쓸해지고 손도 부족해진 탓으로 재도는 중근에게 봄부터 말이 있던 임서방의 딸 분이를 짝지어 주려고 했으나 중근은 고집스럽게 사절하면서 종시 말을 안 듣는 것이었다. 겨울 동안 매사냥도 하고 창애로 꿩이나 족제비를 잡아서 농사보다 사냥으로 살아가는 임서방은 고달픈 살림살이에서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얼른 식구를 떨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함 속에는 단벌의 치마저고리까지 준비해 주어 가지고 잔칫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중근의 고집스런 반대를 알고 적지 아니 황당해 했다. 분이가 낙망해서 딴 짓이나 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까지 얻어 가지고 아내와 마주앉으면 밤낮으로 그 이야기뿐이었다. 중근이만큼 장골이고 민첩하고 무슨 일을 시키든지 한몫을 옳게 보는 총각은 마을에는 없었다. 왜 싫단 말이냐, 네 주제엔 과하단다. 바느질은 물론 질삼으로도 마을에서 분이를 당하는 처녀가 없는데 재도도 임서방에게 말을 주었던 터에 좀 황당해서 조카를 책망해도 중근은 여전히 쇠귀에 경 읽기였다. 밤에 사랑에 아무도 놀러 오는 사람이 없고 박동이와 단둘이 마주앉아서 새끼를 꼴 때 중근은 문득 손을 쉬이고는 재실 아저씨는 지금 어디가 있을까 동삼 한 뿌리만 캐면 그 한 대로 돈벼락을 맞으렷다. 나두 아무데나 가봤으면 마당같이 넓은 신작로가 그립구나. 동으로 가면 강릉이요, 서으로 가면 서울인데 아무데도 좋으니 가고 싶어 하면서 중얼거렸다. 너 재실이같이 내뺄 작정이구나, 그래서 분이도 안 얻겠단 말이지. 박동이가 가늠을 보면 중근은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고 멍하니 잠자코만 있었다. 그럴 때의 그 근심을 띠인 부드러운 눈동자에 박동이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으면서 그렇게 고운 눈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것같이 느껴졌다.
임서방이 사윗감으로 중근을 원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사냥의 재주가 자기도 못 미치게 놀라웠던 까닭이었다. 같은 눈 속에 창애를 고여 놓을 때에도 중근에게는 남모를 특수한 묘리가 있는 듯, 모이를 다는 법이며 창애를 묻는 법이며 꿩이 흔하게 내릴 듯한 자리를 겨냥대는 법을 임서방은 오랜 경험으로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해마다 잡아들이는 꿩의 수효는 임서방보다도 훨씬 많았다. 중근은 그것을 장에서 팔아다가는 한겨울 동안 모으면 돼지 한 마리 살 값이 되었다. 그런 중근에게 자기의 묘리까지도 가르쳐 주어 그 고장에서 제일가는 사냥꾼을 만들겠다는 것이 임서방의 원이었다. 그 해 겨울만 해도 중근은 뜻밖에 큰 사냥을 해서 임서방을 놀랬을 뿐이랴, 마을 사람들을 탄복시키게 되었다. 흥정리로 넘어가는 산비탈에 함정을 파고 커다란 곰 한 마리를 잡은 것이었다. 흥정리 산골에서 곰이 간간이 산을 넘어와서는 밭곡식을 짓무지르고 가는 것을 알면서도 창말서 포수가 몰이꾼을 데리고 와도 한번도 옳게 쏘지는 못했다. 중근은 여러 날이 걸려 거의 우물 깊이나 되는 함정을 파고 그 뒤에 검불을 덮어 두었을 뿐으로 그 사나운 짐승을 여반장으로 잡은 것이었다. 곰 다니는 길을 잘 살펴 두었던 것이요, 함정 위에는 옥수수 이삭을 묶어서 달았다. 실족을 한 짐승은 깊은 함정 속에서 밤새도록 구슬프게 울었다. 아침에 중근은 사람을 데리고 커다란 돌을 함정 속에 굴러 떨어트려서 짐승의 한 목숨을 끊었다. 마을은 그날 개력이나 한 듯이 요란하게 떠들썩들 했다. 죽은 짐승을 끌어내 집 마당까지 들어왔을 때 십리나 되는 무이리 꼭대기에서까지 농군들이 몰려왔다. 조상에 범과 싸워서 이긴 장사가 있었다더니 그 후손은 곰을 잡았구나 하면서들 반나절을 요란들이었다. 곰은 당일로 창말 소장사가 사다가 도수장에서 헤쳐 본 결과 커다란 웅담이 나왔다고 중근은 거의 소 한 필 값을 받았다. 곰 한 마리 잡는 편이 일년 농사짓기보다도 낫다고 남안리 젊은 축들은 부러워들 했다.
중근의 자태가 사라진 것은 그날부터였다. 흥정이 잘 됐으니 성앳술 한턱 쓰라고들 졸라도 그날만은 한 모금도 술을 안 먹고 눈이 희끗희끗 날리는 장판을 오르내리면서 집으로 갈 생각은 한 하더니 그 길로 사라져버렸다. 여러 날이 지나도 안 돌아왔다. 기어코 내뺐구나, 신작로로 나서 필연코 강릉이나 서울로 갔으렷다. 박동이는 마치 기다리고 있던 당연한 일이 온 것같이 별반 놀라지도 않고 맥이 없어 보였다. 오랫동안 궁리하고 있었던 계획이요, 그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는 눈치도 박동이는 대강 눈치채고 있었다. 곰을 잡아서 노자를 만든 것이 좋은 기회가 되었을 뿐이다. 곰을 못 잡았다면 아마도 꿩 사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박동이는 사랑에서의 가지가지의 이야기와 눈치를 생각해 내면서 그렇다고는 해도 어릴 때부터 정들어 온 마을을 왜 지금 와서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남모르는 사정이 있으련만 거기에 대해서는 까딱 한마디도 못 들었음이 한되게 여겨졌다.
송씨는 방안에 누운 채로 중근의 실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남편이 사연을 말하면서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이 불만이고 무엇 때문에 집이 싫어졌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의심쩍어 할 때 송씨는 얼굴빛도 동하지 않고 묵묵히 벽 쪽으로 돌아눕더니 괴로운 듯 신음하면서 옷소매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오대산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그렇게 경없어 하고 수심이 있어 보였는데 알 수 없는 일이야. 혹시나 눈치채지 못했느냐고 나다분히 곱씹어 말하는 것이 귀찮은지 송씨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는 일도 없는데 부엌으로 나가 버렸다. 그런 아내의 거동조차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제기 집안이 모두 이렇게 화를 내구 틀어지니 다 내 죄란 말인가 하고 재도 자신까지 화를 내는 것이었다.
겨울도 마저 가 그 해가 저물려 할 때 원줏집은 창말 한 간 셋방에서 여식을 낳았다. 재도는 그다지 감동도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산모의 수고를 생각하고는 쌀과 미역을 지고 가서 위로하기를 잊지 않았다. 변변치 못한 대장장이는 별반 벌이도 없이 허송세월 하노라고 나날의 양식조차 걱정이 되어서 재도의 베푸는 것을 사양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꼴이다가는 짜장 이제 술장사나 하는 수밖엔 없으렷다 하고 재도는 원줏집의 신세가 가여워졌다. 이제는 벌써 큰댁의 몸에 밖에는 희망을 걸 데 가 없었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조강지처만이 나를 저버리지 않누나 하고 느지막이 깨닫게 되었으나 그 깨달음조차 자기를 저버릴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원줏집보다는 석 달이 떨어져 다음해 춘삼월 날씨가 활짝 풀리기 시작했을 때 송씨도 몸을 풀었다. 창말 판수가 장담한 것같이 옥 같은 동자였다. 이날 재도는 아랫마을 강영감 집에서 암소가 새끼를 낳는다는 바람에 불리워 가 있었다. 이해 소금받이에는 그집 소를 빌려갈 작정이었다. 박동이가 달려와서 고하는 바람에 소를 돌볼 겨를도 없이 집으로 뛰어갔다. 햇볕이 짜링짜링 쪼이는 첫참 때는 되었을 때 갓난애의 목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굵은 울음소리가 마당 안에 가득히 넘쳐 흘렀다. 모이을 쪼던 수탉들이 시뻘건 맨드라미를 곧추세우고 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도 한 정경이었다. 대강 손 익음이 있는 현씨가 산모 옆에서 몽실몽실한 발가둥이를 기저귀에 받아내는 한편 부엌에서는 노망한 늙은 어머니가 벙글벙글 웃으면서 서투른 솜씨로 불을 때면서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중년을 잡아서의 초산인지라 아내는 정신을 잃은 듯이 짚단 위에 나른히 누워 있었으나 현씨의 말에 의하면 초산인 푼수로는 비교적 수월해서 모체에는 별 탈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이렇게 크구야 잘 익은 박덩이 한 개의 무게는 되니, 현씨의 말에 재도는 저절로 얼굴이 벌어졌다. 아비보다 열곱 웃길이다 동네에서 제일가는 장골이 되렷다. 기쁘겠다고 층층대는 바람에 웬일인지 거짓말 같은데 이렇게 끔찍한 복이 정말일까. 하늘에서 떨어진 것같이 지금 와서 이런 복덩어리가 굴러 들다니 꼭 거짓말만 같이 하고 재도는 아이같이 지껄였다.
“경사든 날에 쓸데없는 말을 하는 법이 아니라우. 정말이구 말구 요런 몽실몽실한 애기가 왜 정말 핏줄이 아니겠수, 불공을 드린 효험이 있어서 삼신할머니가 주신 거지. 받은 이상은 정성껏 공들여 길러야만 해.”
현씨는 익숙한 말씨로 일러듣기면서 삼신께 바치는 삼신주머니라고 흰 무명자루에 정미 한 되를 넣어서는 벽 구석에 걸어 두었다.
재도는 늦게 얻은 그 외아들을 만득이라고 이름짓고 마을로 돌아다니면서 자랑스럽게 외이곤 했다. 강영감들의 지시로 하루는 사랑에 사람들을 청하고 득남턱을 차렸다. 돼지까지 잡고 혼례 때 잔치에 밑지지 않게 놀랍다고 얼굴들을 불그레 물들여 가지고 칭찬들이 놀라웠다. 글줄이나 읽은 축들은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고 외이면서 칭송을 하면 재도는 마음이 흡족해서 짜장 앞으로는 경사도 더러는 있어야 할 때라고 독판 착한 사람인양 스스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삽시간에 꺼지고 무서운 날이 닥쳐 왔다.
사월이 되니 재도는 문막으로 소금받이를 떠나려고 빌려온 소를 걸려도 보고 섬에 콩도 되 넣고 하면서 문득 원줏집을 생각해 보곤 하는 때였다. 산후 한달이 되어 간신히 일어나 앉게 된 아내가 어느 날 무엇을 생각했는지 또 간수를 먹은 것이었다. 일상 때에 늘 걱정스러워하던 태도와 두 번째의 그 과격한 거동으로 재도는 비로소 심상치 않은 아내의 괴롬을 살피고 문득 무서운 고비에 생각이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을 밝혀볼 겨를도 없이 겨우 달이 넘은 아이가 돌연히 목숨을 끊었다. 아내가 다시 소생되어 난 것쯤으로는 채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그 하루살이 같은 목숨을 받은 내 자식을 바라보고 한편 겨우 한달로서 어미로서의 생애를 마치고도 그다지 슬퍼하는 양이 없이 차라리 개운해 하는 듯이 누워 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동안에 재도에게는 어찌 된 서술엔지 문득 한 가지 무서운 의혹이 솟아올랐다. 어미가 말하는 것같이 정말 병으로 급히 목숨을 버린 것일까 하는 밑도끝도없는 당돌한 생각이 솟자 그 자리로 슬픔도 사라지면서 무서운 느낌에 소름이 쪽 끼치면서 정신없이 방을 뛰어나와 버렸다. 그 무서운 것에 다치지 말자는 요량이었다. 다쳤다가는 그 자리로 목숨이 막혀 쓰러질 것도 같았다. 소 등어리에 콩섬을 싣고 그 길로 문막을 향해 마을로 떠났다. 어느 해와도 다름없는 같은 차림이기는 했으나 지난 한 해 동안의 번거로운 변동을 치루고 난 오늘의 심증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한시도 참고 있을 수가 없는 까닭에 길을 뚝 떠난 것이다. 다른 해와 다름없이 올에도 또 소금을 받아 가지고 돌아올 것인가.─재도 자신에게도 그것은 모를 일이었다.
“무슨 까닭으로 올엔 이렇게 담 떨어지는 일만 생길까. 꼭 십년감수는 했어.─이 집은 대체 어떻게 된단 말인구. 사내꼬치라군 없는 이 집은.……일찍이 애비라구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방에 송씨와 단둘이 남게 된 현씨는 거듭 당하는 괴변에 등골수라도 얻어맞은 듯 혼몽한 정신에 입을 벌리기도 성가셨다.
“내가 얼른 죽어야 끝장이 나련만 이 목숨이 왜 이리두 질긴지 끊어지지 않는구료. 지금 와선 목숨이 원수 같아.”
송씨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리고는 동서의 손목을 꼭 쥐면서 애끊는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우리끼리니 말이지만─동서, 세상에 나같이 악독한 년은 없다우. ……동서가 들으면 이 자리에서 기급을 하구 쓰러질 것 같아서 말할 수가 없구료.”
현씨도 윗동서의 손을 같이 뿌듯이 잡으면서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도 한 침착한 낯으로,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지 않는 것이 좋을지 몰라. 내 생각하구 있는 것과 같을는지두 모르니깐.”
“……동서. 저 자식은 잘 죽었다우. 세상에 이집 가장같이 불쌍한 사람은 없어. ……저 자식은─저 자식은 남편의 자식이 아니었어.”
“그만둬요. 말하지 않아두 다 안다니깐. ─중근이 내뺀 곡절이며 머며 다 알아요.”
“알구 있었수. 동서.─불륜의 씨로 가장을 기쁘게 할래두 소용이 없나부. 팔자에 없는 건 어쩌는 수가 없나봐. 난 죄 많은 계집이요. 왜 얼른 벼락이 떨어져 이 목숨을 차가지 않는지 이상해 죽겠구료. 그렇게 되기만을 기다리구 있는데……”
말하다 말고 쓰러져 탁 터져 버렸다. 현씨도 젖어오는 눈썹을 꾹 짜면서 동서의 애꿏은 팔자에 가슴이 휘답답해 왔다. 소를 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금받이를 떠난 재도의 심중에 펀적인 무서운 생각도 이와 같은 것이었을까. 아내의 입으로 굳이 듣지 않아도 다 느끼고 있었던 까닭에 더 파묻지도 않고 황망히 집을 버리고 마을을 떠난 것이었을까. 며칠이 되어 재도의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젊은 축들은 모여 서서,
“올에두 작년처럼 또 소 잔등에 젊은 색시를 얻어 실구 올까.”
“그 성품으로 다시 이 마을에 발을 들여놓을 줄 아나. 근본 있는 가문이더니 단지 하나 후손이 없는 탓으로 재도두 고생이 자심해.”
“그럼 그집은 대체 어떻게 된단 말유. 알뜰히 장만한 밭과 산과 소 돼지는 다 어떻게 된단 말유.”
하고들 남의 일 같지 않게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