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물/천당가는 길


어느 머나먼 시골에, 단 두 식구가 사는 늙은 내외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 때, 다 쓰러져 가는 자기 집 문 앞에 늙은 영감님이 앉았으려니까, 어디서 오는지 좋은 말 네 마리가 끄는 훌륭한 사두 마차가 와서 우뚝 서고, 그 마차 속에서 어느 높은 지위에 있는 귀족 같은 귀인이 내렸습니다. 노인은 황망히 그 앞으로 가서 허리를 굽히면서,

“저희 같은 사람에게 무슨 이를 말씀이 계십니까? 혹시 어느 길을 찾으십니까?” 하고 공손히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귀인은 친절하게 노인의 손을 잡고 공손한 말로,

“아, 아니오. 저는 여기까지 산보 왔던 길에, 어른과 함께 이곳 음식으로 점심을 먹어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무 다른 것 차리지 마시고, 댁에서 늘 잡수시는 대로 고구마로 차려 주십시오. 그러면, 어른과 함께 맛있게 먹겠습니다.” 하였습니다. 노인은 너무나 황송한 듯이,

“어른께서는 백작이거나 어느 공작의 몸이 아니오니까. 그런데, 천만에 고구마 음식을 잡숫다니요. 네네, 정히 잡수시겠으면 얼마든지 차려는 드리겠습니다.” 하였습니다. 뜻밖에 귀한 손님이 오셔서 주인 늙은이 내외는 무한 기뻐하였습니다. 노파는 고구마를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경단을 만들러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음식 만드는 동안에 영감님은 귀인을 안내하여 밭으로 가서 구경을 시켰습니다. 그때, 그 밭 모퉁이에 심으려고 갖다가 놓아둔 나무가 있었으므로, 영감님은 곧 괭이로 나무 심을 구덩이를 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에 어른의 힘을 덜어 드릴 자제가 하나도 없습니까” 하고 귀인은 옆에 서서 물었습니다.

“네, 없습니다.” 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서,

“자식놈이 하나 있기는 있었는데 그놈을 잃어버렸답니다.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어찌 장난이 심하고 심술궂은지 학교에를 보내도 공부는 아니하고, 동네 애들을 때리기 잘하고, 동네에서도 사자 노릇을 하더니 기어코 어디로 달아나서는 영영 소식이 없어졌습니다. 어디가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요.” 하면서 한편 나무를 심고, 발로 쿵쿵 밟아 다지고는, 구부러지지 말라고 그 옆에 길다란 나무때기를 꽂고 비끄러매었습니다.

“그런데…….” 하고 귀인은 또 이야기를 꺼내었습니다.

“저 구석에 있는 저 나무는 줄기가 아주 흙투성이고 몹시 기울어져서, 땅에 닿게 되었는데 왜 그냥 내버려 두십니까? 그것도 나무때기를 꽂고 비끄러매지요.”

“하하하, 우스운 말씀도 하십니다. 비끄러매는 것도 어렸을 적에 말이지요. 다 늙어서 아주 꾸부러진 나무를 어떻게 펴서 비끄러맵니까…….”

“그러면, 어른의 아드님도 그렇지요, 어렸을 때 잘 꼿꼿하게 기르셔야지요. 그때는 그냥 내버려 두고, 인제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쯤은 아주 부러진 인물이 되었겠지요.”

“벌써 너무 오래 되어서 지금쯤은 퍽 변해졌겠습니다.”

“얼굴 보고는 모를걸요. 그러나, 그놈은 어깨 위에 팥알 만한 검정 점이 있으니까요.” 그 소리를 듣더니 귀인은 별안간에 옷을 훌훌 벗고 어깨를 내어 보이며 달려들면서,

“아버지!” 하였습니다. 영감님도 그것을 보고,

“오오, 정말 내 아들이다!”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이때까지 쓸쓸하고 적막한 속에 파묻혀 서 있던 사랑의 정이 가슴에 샘솟듯 솟아서,

“그런데, 어떻게 잘 되었니, 응? 어떻게 해서 이렇게 부자고 귀하게 되었니?”

“아아, 아버지!” 하고 부르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십시오. 어렸을 적부터 나무때기에 비끄러매지를 않고 자라서 아주 꾸부러진 나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되었느냐고 물으시지만 저는 도둑놈입니다. 도둑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염려 마십시오. 도둑 중에서 제일 큰 도둑이 되었습니다. 자물쇠로 잠그거나, 빗장을 지르거나 제 앞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제 눈에 좋게 보이는 것은 세상 물건이 모두 제 것입니다. 그러나, 그다지 나쁜 짓은 아니합니다. 다만 부잣사람의 너무 많은 것을 털어다가, 구차한,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줄 뿐입니다. 아아, 아버지! 저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굶게 되거나 한 사람은 없어도, 저 때문에 목숨을 구하고 살아갈 밑천을 얻은 사람은 많았습니다. 결코 그다지 나쁜 짓은 아니 하였습니다.”

“아아, 나의 아들아!”

노인은 말하였습니다.

“나는 즐겁지를 않다! 크거나 작거나 도둑은 도둑이다. 회심을 하여라, 응 회심을 하여라!”

“염려 마십시오. 반드시 회심을 하겠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노인은 눈물을 씻으며, 오래간만에 돌아온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노파도 그 아들이 큰 도둑이란 말을 듣고는 그만 눈물이 비오듯 펑펑 쏟아졌습니다. 한참이나 울다가, 노파는 아들의 등에 손을 얹고,

“도둑이 되었어도 너는 내 아들이다. 오래간만에라도 이렇게 돌아와서 얼굴을 보이니 반갑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을 차린 늙은 어머님의 요리가 나왔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세 식구가 고구마 요리를 정답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노인이,

“이 애야, 이 뒷마을에 계신 백작께서, 너를 낳았을 때 네 이름까지 지어 주시고 너를 귀애하셨는데, 지금 네가 큰 도둑인 줄을 아시면 귀애하기는커녕 너의 목을 베실 것이다. 그 백작이 이 고을 영주이니까…….” 하며 근심을 하여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염려 마십시오. 이따가 저녁때 제가 가서 뵙고 인사를 여쭙고 오겠습니다.” 하고 태연히 말을 하더니, 정말 저녁때가 되니까, 그 훌륭한 마차를 타고, 위세있는 백작댁으로 갔습니다. 백작은 어느 곳 귀빈이 오신 줄 알고, 훌륭히 맞아들여서 대접하였습니다. 음식을 다 먹도록 백작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편에서 먼저 이야기를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백작은 얼굴이 파래서 아무 말도 못하더니 한참이나 후에,

“너는 내가 이름까지 지어 준 아이니까, 특별한 옛정으로 천하의 공법을 버리고 너를 살려 줄 것이나, 네가 그리 큰 도둑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니, 이제 내가 세 가지 문제로 네 재주를 시험하리라. 만일, 이 세 가지 시험에 낙제를 하면 교수대에 올려 법대로 사형에 처하리라.” 하였습니다.

“네, 아무쪼록 잘 생각하셔서, 더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내어 주십시오. 제가 생각하여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백작은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이렇게 문제를 내었습니다.

제일 첫째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말을 무사히 도둑해 낼 일. 둘째로는, 내 아내가 자는 새에 그 비단 이불을 도둑해 내고, 그 손가락에 낀 반지까지 무사히 빼어낼 일. 셋째로는, 예배당에 가서 목사님과 사무원을 무사히 도둑해 낼 일.

도둑은 실행할 일을 단단히 약속하고 돌아왔습니다. 늙은 부모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워 몹시 근심하였습니다.

그 이튿날 밤이었습니다. 도둑왕은 가까운 시가에 가서 이상한 노파의 옷을 사다가 입고, 얼굴을 붉게 칠하고, 주름살까지 그리고, 누가 보든지 정말 노파로 보도록 익숙한 솜씨로 꾸몄습니다. 그리고는 좋은 포도주에 몽혼약을 많이 타서 통 속에 넣어, 어깨에 메고는 허리를 조금 굽히고 백작 댁의 성 밑으로 갔습니다. 그때는 벌써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성문 앞 돌멩이로 가서 허리를 쉬느라고 앉아서, 어깨가 아픈 듯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기침을 콜록콜록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파수 보던 병정이 노파를 보고, 이리 와서 불을 쪼여 몸을 녹여 가라 하였습니다.

도둑왕인 노파는 오라는 대로 가서 불을 쪼였습니다.

“마나님, 가지고 가시는 그 통 속에 있는 게 무엇입니까?” 하고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거? 맛있는 포도주라우.” 대답하고는,

“그걸 내가 팔러 다니는 것인데, 이렇게 내게 친절하게 해 주어서 감사하니 한 잔 드리리다. 값은 얼마든지 상관 말고…….”

“네, 고맙습니다. 자 그럼, 이리 들어오십시오.” 하고 문안 턱으로 들어가, 한 잔 받아 마시고는,

“아아, 참 맛있는 술입니다. 한 잔만 더 주십시오.” 하여, 한 잔 더 마시었습니다. 다른 병정들도 두 잔씩 마시었습니다. 그리고, 마구간을 향하고,

“여보게? 이리 오게. 마나님이 좋은 술을 가져오셨네. 와서 한 잔만 맛을 보게. 어떤가…….” 하는 동안에, 도둑왕 노파는 마구간으로 통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 속에는 병정 세 사람이 말을 지키고 있는데 한 사람은 말 고삐를 잔뜩 붙잡고 있고, 한 사람은 말 위에 올라앉았고, 또 한 사람은 꽁지를 잔뜩 붙잡고 있었습니다.

노파는 그 병정들이 달라는 대로 술을 자꾸 주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문 파수들도 문에 기대서서 코를 골고, 말 지키던 사람도 잠이 들었습니다. 고삐 쥐었던 사람은 고삐를 놓고, 꽁지를 잡고 있던 사람은 꽁지를 놓고 코를 골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은 말 등 위에 올라앉아서 자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아 내려 놓자니 잠이 깨일 터이고, 그냥 두자니 말을 끌어낼 수가 없고……. 생각다 못하여 한 꾀를 내어, 그가 말 위에 깔고 앉은 말 안장의 네 귀를 굵은 줄로 매어서, 마구간 네 구석 기둥에 높이 달린 고리에 꿰어 가지고 네 줄을 한꺼번에 잡아당겼습니다.

말 안장 위에 그가 앉아 코를 고는 채로, 대롱대롱 떠올라가 중간에 매어 달렸습니다. 그래 놓고 도둑왕은 마구간 문지방에 말굽 소리 안 나도록, 두르고 왔던 헌 누더기를 놓고, 가만가만히 말을 끌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성문 바깥까지 나와서는 말 위에 훌쩍 올라타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습니다.

그 밤이 새어 날이 밝을 때, 도둑왕은 말 위에 높이 앉아 백작의 성으로 갔습니다. 백작은 벌써 일어나서 들창 밖을 내어다 보고 있었습니다.

“백작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고는,

“이렇게 훌륭히 말을 꺼내 타고 왔습니다. 마구간에를 좀 가서 보십시오. 어떤가…….”

백작이 황급히 내려가서 문간을 보니까, 파수들은 문에 기대어 선 채로 코를 골고 있고, 마구간에를 가보니까 고삐 쥐고 있던 놈은 빗자루를 쥐고 앉아서 코를 골고 있고, 꽁지 쥐고 있던 놈은 짚을 한 묶음 쥐고 앉아서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골고 있고, 또 한 놈은 보니까, 공중에 매어 달린 안장 위에 올라 앉아서 대장간의 풀무처럼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백작은 껄껄 웃으면서,

“그러나, 무슨 재주라도 네가 둘째 문제야 할 수 있겠니? 미리 일러두는 것이니, 네가 만일 들키기만 하면, 그냥 도둑으로 대접할 것이니, 그리 알고 오너라.”

이번에야말로 위험한 일이라고 늙은 부모는 잠을 안 자고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이 되었습니다. 백작 부인은 이불과 반지를 아니 빼앗기려고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잠을 아니 자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놈을 속이기 위해서 파수를 모두 치우고 그 대신 문이란 문을 모두 잠그고 빗장을 질러 놓았지.” 하고는, 백작은 다시 육혈포를 내어 들고,

“내가 잠을 안 자고 지키고 있어야지. 이 방에만 들어오면, 그냥 바로…….” 하고는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자, 도둑왕은 벌써 무슨 큰 보퉁이를 둘러매고 이 성 안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복장을 꼭 백작과 같이 차리고 얼굴까지 수염까지 백작과 똑같게 꾸미고 왔습니다. 그리고, 정말 백작이 육혈포를 들고 지키고 있는 침실 들창 밑까지 왔습니다. 메고 온 보퉁이를 끄르더니 그 속에서 사람 하나를 꺼냈습니다. 고무로 만든 사람과 똑같은 인형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집 헛간에 가서, 사다리를 가져다가 창 밑에 놓았습니다.

그 서슬에 참말 백작은 창 밖으로 해서 들어오는 줄 알고 육혈포를 겨냥하여 들고 있었습니다. 도둑왕은 그 인형을 안고 사다리를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들창까지 다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서 인형만 번쩍 들었습니다.

들창 밖에 사람의 머리가 언뜻 보이는 것을 보고, 백작은 육혈포를 쏘았습니다. ‘앗!’ 소리를 치고 도둑은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밖에서는 인형에 피를 흘려 떨어뜨려 놓고 도둑왕은 번개같이 숨어 버렸습니다. 백작은 밖으로 내려와서 캄캄한 데 피를 흘리고 자빠진 가짜 송장을 들고 뒤꼍으로 갔습니다. 넌지시 파묻어 주려는 까닭이었습니다.

그 틈에 가짜 백작 도둑왕이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졸려서 졸려서 못 견디는 것을 억지로 참아 가며, 자꾸 감겨지는 눈을 억지로 어슴프레하게 뜨는 부인은, 도둑을 죽이고 백작이 들어온 줄로 알았습니다.

도둑왕은 백작과 같은 음성을 내어서,

“도둑은 육혈포에 맞아 죽었네. 그러나, 그 놈은 내가 이름까지 지어 주고 귀애하던 놈인데, 내 손으로 죽여서 안 되었는걸. 도둑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악인도 아니고 무슨 큰 죄도 없는 것을, 제일 그 늙은 내외가 불쌍하여서, 아무개란 성명을 세상에 내지 않으려고, 내가 넌지시 파묻기로 하겠으니, 그 이불을 이리 주게. 그걸로나 송장을 싸서 파묻어 줄 밖에 없지…….” 하니까, 부인은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나가려는 체하다가 다시 돌아서서,

“그놈이 그 반지를 훔치려다가 아까운 목숨까지 없애었는데 이 다음에 그걸로 원혼이나 되어 나오면 어떡허나, 또 살 셈 대고 그 반지나 끼워서 파묻는 게 좋지 않을까…….” 하니까, 또 부인은 아무 말도 않고 다소곳이 빼어 주었습니다.

‘옳다구나.’ 하고, 도둑왕은 그 두 가지 물건을 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 밤이 새어 이튿날 새벽에 백작에게 가서 두 가지 물건을 보였습니다. 백작은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네가 어떻게 땅 속에서 살아 나왔니, 응? 그렇게 단단히 묻었는데.”

“백작, 그것은 인형이었습니다.”

백작은 그제야 부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가짜 백작 노릇한 것을 알았으나, 아무래도 하는 수가 없었습니다.

“참말로 네 재주는 귀신 같다. 그러나, 이번 한 가지야말로 할 수가 있니? 살아 있는 목사님과 사무원을 무사히 도둑해 내오겠니? 그것을 못하면 먼젓번 성적은 효험이 없어지느니라.” 하였습니다.

제일 어려운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거야말로 무슨 수로 산 사람을 둘씩이나 도둑해 내올 수가 있겠느냐고, 아들의 목이 벌써 베어지게 된 것같이 두 늙은이는 슬퍼하였습니다.

그 날 밤이 되었습니다. 이 밤에 목사와 사무원을 못 훔쳐 오면, 내일 아침에는 도둑왕이 목을 바칠 판인 것입니다.

그러나, 도둑왕은 태연한 걸음으로 보퉁이 하나를 메고 예배당으로 갔습니다.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텅 빈 커다란 예배당은 더욱 침침하고 무서웠습니다. 예배당 뒤 사람 묻은 묘지는 죽은 귀신이 우는 듯이 처참히 무서웠습니다. 모든 것이 죽은 듯이 고요하고 무섭기만 했습니다.

이 밤중에 묘지에서 도둑왕은 혼자 가지고 온 보퉁이에서 게를 여섯 마린 지 일곱 마린지를 꺼내고, 주머니에서 양초를 여러 개 꺼내서 모든 게 잔등 위에다 붙이고, 모두 불을 켰습니다. 게는 촛불을 등덜미에 세우고 이리저리 기어 돌아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도둑왕은 새까만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달고, 그리고 커다란 주머니를 들고, 촛불을 들고, 예배당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마침, 예배당 층대 위에 걸린 큰 시계가 뗑뗑 열두 시를 울렸습니다. 도둑왕은 촛불을 높이 들고, 높고 큰 목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너희들 죄 많은 자는 들으라!

세상의 마지막 날은 왔도다. 무서운 심판의 날은 왔도다. 너희는 자세히 들으라! 죄 많은 사람들아! 나와 함께 천당으로 데려 가리라. 들으라! 들으라! 죄 많은 사람들아! 나와 함께 천당으로 가기를 원하는 자는 다 와서 이 주머니 속에 들어가라!

나는 베드로로다. 천당의 문을 열고, 또 닫는 이로다. 이 무서운 심판의 날은 왔나니 보라 묘지에는 죽은 자가 그 뼈를 찾느라고 헤매도다. 오라. 빨리 와서 이 주머니로 들어가라. 세상의 마지막 날은 왔도다!”

우렁찬 무서운 소리는 구석구석에 크게 들렸습니다. 제일 먼저 이 설교의 진리와 의미를 잘 알아 들은 목사와 사무원은 인제야 목적을 달하는 날이 왔다고 밖으로 뛰어나와 본즉,

과연 과연 묘지에는 이상한 불빛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헤매고 있었으므로, 그것이 게의 등 위에 촛불을 켠 것인 줄은 모르고, 무덤 속에서 원혼들이 나와 돌아다니는 줄만 알았습니다. 자아! 정말 심판하는 날이 왔다고 예배당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또 도둑왕의 설교를 잠깐 듣고, 사무원은 넌지시 목사의 무릎을 꾹 찌르고,

“이렇게 베드로님이 오신 기회를 타서, 남모르게 얼른 천당으로 가면, 그런 감사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구말구, 어서 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세.”

“아니, 목사님 먼저 들어가십시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기어코 목사와 사무원은 그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옳다구나.’ 하고 도둑왕은 주머니 주둥이를 꽉 매고는 이리저리 흔들어 가면서,

“불쌍한 백성들아, 아직도 악마의 꿈속에 있는 자들아, 나는 그냥 돌아가도다. 이제 무서운 심판이 너희 앞에 오리라!” 하고 소리쳤습니다. 목사와 사무원은 이건 우리만 먼저 천당으로 가게 되니 이런 감사한 일은 없다 하며 기꺼워하였습니다. 도둑왕은 감쪽같이 목사와 사무원을 주머니 속에 넣어 가지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흔들면서 층대를 내려오고 예배당 문턱을 넘고 하느라고, 그 속에 있는 목사와 사무원은 머리가 아프도록 여러 번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도둑왕은 그럴 적마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아, 지금 우리는 산고개를 넘어가는 중이다.” 하였습니다

길로 흔들흔들 들고 가다가 도랑물에다 주머니를 담가서 적시고는,

“자아, 구름 속으로 지나간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다가 이윽고 백작 댁 성에 다 와서 층층대를 올라갈 때에는 그것을 천당의 층층대라 하고,

“우리는 이제 곧 천당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목사와 사무원은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저 기쁘기만 하여서 머리 아프단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도둑왕은 주머니를 크디큰 비둘기 집 속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비둘기가 날려고 푸득푸득하는 것을,

“이제 천당의 천사들이 내려오느라고 날개 소리가 푸득푸득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주머니 속에서는 한없이 즐거워하였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백작을 뵙고, “그 목사와 사무원도 도둑해 놓았습니다.” 고 했더니 백작은 거짓말로 알았습니다.

“그래 어디다 두었니?”

“비둘기집 속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천당에 왔거니 하고 있습니다.” 하고 웃었습니다.

백작은 하도 의심스러워서 비둘기집에 들어가 보니까 큰 주머니가 놓여 있었습니다. 기가 막혀서 나오는 말도 없이 주머니를 끌러 놓으니까, 목사와 사무원이 갑갑했던 듯이 튀어나오며,

“여기가 천당입니까? 백작께서는 어느 틈에 와 계십니까?” 하면서 물었습니다.

아무 말도 아니하고, 여기는 천당도 아니고 아무데도 아니니 어서 돌아가라고 일러 보냈습니다.

어찌 된 까닭을 모르는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 돌아갔습니다.

백작은 도둑왕을 보고 아주 탄복하는 말로,

“너는 참말로 도둑왕이다. 약속대로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니, 돌아가되 내가 다스리는 지경 안에는 일체 오지 못하느니라. 어느 때든지 내가 다스리는 지경 안에를 오려면 좋은 사람이 된 증거를 가지고 오든지, 그 대신 네가 없더라도 너의 부모는 이로부터 내가 끔찍이 보호하여 아무 근심 없도록 할 것이니 안심하고 가거라.” 하였습니다.

그 후, 도둑왕은 늙으신 부모에게 그 이야기를 자세히 여쭙고, 그리고 반드시 다시 올 때는 회심하여 돌아오마고 약속하고 어디론지 길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도 그 도둑왕을 본 사람도 없고 소문을 들은 사람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