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물/잠자는 왕녀


옛날 옛적 또 옛적에, 어느 나라님 내외분이 아드님도 따님도 한 분도 없으셔서 늘 근심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매양 두 분이,

“어떻게든지 어린애를 하나 낳았으면 원이 없겠는데.”

이렇게 탄식은 하시나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루는 왕비님이 목욕을 하시느라니까, 난데없는 개구리 한 마리가 물 위에 튀어나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왕비님 왕비님! 착한 왕비님! 왕비님은 착하시니까 일 년 내로 소원을 이루시게 됩니다!”

하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개구리의 예언이 들어맞아 왕비님은 어어쁜 어여쁜 따님을 낳으셨습니다.

오래 바라던 소원을 이룬 것이 기쁘셔서 잔치를 크게 차리시고, 온 백성에게 모두 음식을 내리시고, 대궐 잔치에는 모든 신하와 또는 나라님과 친하신 이를 청하시고, 또 그 외에 갓난 왕녀의 수명을 빌기 위하여 전국에 있는 요술 할멈들을 모두 불렀습니다.

그 때, 이 나라에는 요술 할멈이 열두 사람이 있었으니까, 열두 사람을 모두 불렀으나, 실상은 그 외에 요술 할멈이 또 하나 사람 모르는 곳에 있었습니다. 초대를 받아 온 열두 요술 할멈은 열두 황금 그릇에 훌륭한 잔치 요리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잔치가 끝난 후에 열두 요술 할멈은 이 갓난 공주 아이에게 각기 좋은 선물을 하나씩 드리기로 하여, 첫째 요술 할멈은,

“나는 이 아기를 세상에 제일 어여쁜 색시가 되도록 하겠다!”

하였습니다.

둘째 요술 할멈은,

“나는 제일 지혜가 많은 색시가 되도록 하겠다.”

하였습니다.

셋째 할멈은.

“나는 이 아기가 세상에서 제일 복 많은 색시가 되도록 하겠다.”

하였습니다.

넷째는,

“나는 세상에서 무도(춤)를 제일 잘하는 색시가 되도록 하겠다!”

다섯째는,

“나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드려서, 세상에서 제일 노래를 잘하는 색시가 되도록 하겠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차례차례 열한째 요술 할멈까지 모두 좋은 것을 드리었습니다. 그리고, 맨 끝에 열두째 할멈이 말하려는데, 어디선지 오늘 이 자리에 참례 아니하였던 열셋째 요술 할멈이 튀어나와서,

“이 애가 커서 열다섯 살 되는 해에 실 뽑는 꾸리에 찔려 죽으리라!”

하고는, 그냥 휙 나가 버렸습니다.

나라님과 왕비님과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잔치의 즐거운 빛은 다 없어지고, 모두 누구나 근심하는 빛이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걸 어쩌면 좋으냐? 어떻게 하면 그것을 없애겠느냐고, 몹시 근심들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아까 말을 하려다가 못한 열두째 요술 할멈이 나와서,

“과히 근심 마십시오. 다행히 내가 아까 말을 못하고 남아 있게 되어서 잘 되었습니다. 아까 요술 할멈이 말한 그 불행을 다는 못 벗기더라도, 더러는 벗겨 버릴 수가 있습니다. 왕녀 아기는 꾸리에 찔려서 죽지는 않고, 다만 백년 동안 잠이 드는 것뿐입니다.”

하였습니다.

나라님은 그것도 없애려고, 전국에 영을 내리셔서 꾸리라는 꾸리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리셨습니다.

귀여운 왕녀는 모든 요술 할멈 선물 대로 천하에 제일 아름답게, 지혜가 많게, 복이 많게, 갖추갖추 모두 갖추어 가지고 잘 커 갔습니다. 커 갈수록 맘은 더 착하고, 얼굴은 더 아름다워서, 정말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색시가 되었습니다.

이 왕녀가 열다섯 살 되던 해였습니다. 어느 날, 왕비님도 어디 가시고, 이 왕녀 혼자 있을 때에, 하도 심심하여서 대궐 속을 이리저리 다니며 볕을 쪼이다가, 저 뒤에 성이 큰 게 있는데, 그 성에 가서,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보았습니다. 성 위에는 높다랗게 몇 층 탑이 되어 있었으므로, 왕녀는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이 방 저 방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래도, 방마다 아무것도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점점 올라가서, 맨 위 꼬부라진 마지막 층계를 돌아 올라가니까, 조그만 방이 있고, 그 문잡이는 녹이 발갛게 슬어 있었습니다. 왕녀가 문을 여니까, 그 방 속에서 웬 노파가 실을 뽑고 있었습니다. 왕녀는 그것이 처음 보는 것이었으므로,

“노인님! 그거 무얼 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노파는 빙긋 웃으면서,

“실을 뽑는 것이란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이 속하게 감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면서, 꾸리를 들고 실을 뽑으려 하니까, 그 꾸리를 만지자마자, 그 불길한 예언이 맞아서 왕녀는 그 옆에 있던 침대에 쓰러져 그냥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백 년 동안 잔다던 길고 긴 잠이 든 것입니다.

그리고, 곧 그 시각에 그 잠이 대궐 안에 온통 퍼졌습니다. 나라님도 왕비님도 잠이 들고, 모든 사람이 모두 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하인은 음식을 만들다가 선 채로 자고, 요리 만들려고 닭을 잡다가 자고, 쫓겨 가던 닭까지 자고, 뜰을 쓸다가 비를 든 채로 자고, 개까지 말까지 파리까지 모든 것이 모두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대궐 속에는 바람까지 자고, 나뭇잎까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대궐을 삥 둘러서 가시덩굴이 우쭉우쭉 자라더니 금방 이 대궐을 아주 뒤집어 싸고 말아서, 기어코 밖에서 이 속에 대궐이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문이 세상에 퍼져서, 다른 나라 왕자들이 찾아와 이 덩굴을 헤치고 들어가려 하였으나, 덩굴이 워낙 많고 커서 헤칠 수도 없고, 또 억지로 헤치다가는 가시에 찔려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고, 봉면을 당하곤 하였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어느 어여쁘고 쾌활한 왕자가 찾아와서, 이 덩굴 속에 대궐이 있고, 그 속에 천하에 제일 어여쁜 왕녀가 잠이 들었고, 그리고 대궐 속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잠이 들었단 말을 듣고, 그 기한이 백년 동안이란 말까지 어느 노인에게 들었습니다. 그 왕자님은 얼굴도 이 속에 잠든 왕녀만 못하지 않게 어여쁘고, 맘으로나 무엇으로나 그 왕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 때까지 여러 왕자가 와서 들어가려다가 들어가지고 못하고 가시에 찔려 죽은 일을 이야기하고,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관계없습니다. 내가 반드시 들어가서 왕녀를 만나 보고 모두 잠을 깨워 놓겠습니다.”

고, 공손히 말을 하고는 가서 그 덩굴을 헤쳤습니다. 마침 오늘이 백 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귀하고 예쁜 왕녀의 잠이 깨일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시가 많고 험하던 덩굴이 예쁜 왕자님의 손이 닿으니까, 금시에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 덩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더러 어서 들어오시라는 듯이 그 앞에 들어가는 문이 방긋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이 들어가니까, 다시 닫혔습니다. 이 속에 들어온 어여쁜 왕자님이 마당으로 걸어가니까 말과 개가 자고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자고 있고, 방에 들어가니까 벽에 붙은 파리도 자고 있고, 하인은 요리를 만들다가 자고 있고, 이 방 저 방에 모든 사람이 자고 있고, 대궐 본전 옥좌에는 나라님과 왕비님이 앉은 채로 자고 계시었습니다.

모든 것이 모두 잘 뿐이요, 몹시 고요하였습니다.

어여쁜 왕자는 또 뒤 성으로 가서 층계를 올라갔습니다. 저어 위 마지막 방에를 가니까, 침대 위에 그야말로 세상에서 처음 보는 어여쁜 왕녀가 고요하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그냥 백 년을 지나도록 입술은 붉은 대로 살은 고운 대로, 어여쁘게 고스란히 자고 있었습니다. 어여쁜 왕자님은 그 왕녀를 처음 볼 때, 무언지 가슴에 눌리던 것이 별안간 없어진 것같이 시원하였습니다. 생후 처음으로 가슴이 시원해서 새로 태어난 것같이 기뻐하였습니다.

왕자는 가만가만히 그 옆으로 가서 허리를 굽히고 그 곱게 잠든 천사 같은 얼굴을 고요히 들여다보다가 그 꽃같이 붉고 어여쁜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왕녀는 눈을 떴습니다. 백 년 동안 자던 잠이 깬 것입니다.

그리고, 서늘하고 정다운 눈을 번쩍 뜨고 왕자님을 보고는 방긋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님도 깨시고, 왕비님도 깨시고, 모든 사람들, 모든 짐승들의 잠이 모두 다 깨었습니다. 요리 만들던 하인은 바쁜 듯이 요리를 만들고, 뜰을 쓸다 자던 사람은 뜰을 쓸고, 비둘기는 후루루 날아 마당에 내려 앉고, 말은 잠이 깨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습니다.

이렇게 백 년의 잠은 깨고, 세상에서 제일 어여쁘고 착한 왕녀는 제일 어여쁘고 쾌활한 왕자님과 성대하게 혼인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봄이 와서 모든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 나라님이 돌아가시고 왕자와 왕녀가 뒤를 이어 다스릴 때에는 그가 돌아갈 때까지 늘 따뜻한 봄날 같았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