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물/난파선

1 편집

벌써 여러 해 전 일이었습니다. 쌀쌀한 바람 부는 섣달 어느 날 아침에, 영국 리버풀이라는 항구에서 큰 기선 한 척이 먼 길을 떠나 출범하였습니다. 그 기선에는 육십 명의 사공들과 손님 이백 명이 탔는데 선장과 모든 일꾼은 거의 모두 영국 사람이고, 손님 중에는 이탈리아 사람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배는 지금 몰타라는 섬을 향하고 먼 길을 떠나는데 그날 천기가 괴상하여 하늘 모양이 무엇이 오실 듯하였습니다.

기선 한 편 끝쪽에 있는 삼등객 중에 나이 열두 살 된 이탈리아 소년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나이로 보아서는 몸과 키가 좀 작은 편이었으나, 그러나 퍽 똑똑하고 영리하고 어여쁘게 생긴 귀여운 소년이었습니다, 앞에 있는 큰 돛대 옆에 다만 홀로 밧줄을 감아 놓은 위에 걸터 앉아서 모서리가 다 해진 헌 가방에 한 손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머리털은 어깨에까지 내려오고 다 낡은 웃옷을 어깨에 걸치고……. 보기에도 구차한 집 아이 같은 그 소년이 가만히 혼자 앉아서, 다른 손님들과 배 일꾼과 다른 조그만 배의 지나가는 것들을 물끄러미 보고 앉았는 얼굴은 무슨 근심과 걱정이 많이 있는 것같이 보여서 요새 집안에 무슨 불행한 일을 당한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이 소년은 가련한 신세였습니다. 소년에게는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아니 계셨습니다. 어머님은 벌써 예전에 돌아가시어 아니 계시고 다만 혼자 길러 주신 아버님은 리버풀에서 어느 공장 직공으로 다니셨는데 수일 전에 불행하게도 이 소년 하나를 두고 마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도 형제도 없는 이 가련한 소년을 그 곳에 있는 이탈리아 영사가 주선을 하여서 소년의 고향인 파델모의 먼 친척되는 아주머님께로 보내 주게 된 것이었습니다. 객지에서 부친을 마저 잃고 어이없는 고아가 되어 먼 고향의 친하지도 못한 아주머님께 길리우러 가는 어린 소년의 가슴이 얼마나 애닯고 슬펐겠습니까?

험한 하늘, 사나운 물결을 박차면서 기선은 자꾸 달아납니다.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머리털 흰 이탈리아 사람 늙은 수부가 조그만 소녀 한 사람의 손목을 잡고 이 쪽 소년의 앞으로 오더니 소년을 보고,

“마리오야, 좋은 길동무가 생겨서 인제 심심치 않겠다.”

하고는,

“너, 마리오하고 여기서 놀고 있거라.”

소녀에게도 이르고는 바쁜 듯이 돌아갔습니다.

소녀는 나이가 소년과 어상반한 어여쁜 계집애였습니다. 소년이 앉은 옆의 밧줄 위에 앉아서 둘이 서로 물끄러미 보다가,

“어디로 가니?”

하고, 소년이 먼저 물어 보았습니다.

“몰타로 가서 거기서 또 나폴리로 간단다.”

이렇게 소녀는 대답하고 또 이어서,

“어머니, 아버지한테로 간단다. 지금 어머니, 아버지가 고대 고대하고 계셔요…….”

소년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아니 하였습니다.

한 분 계시던 아버님까지 마저 잃고 홀로 되어서 남에게로 길리우러 가는 소년 마리오가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부럽고 서러웠겠습니까?

가련한 소년 마리오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조금 지난 후에 그는 주머니에서 면보(빵)를 내어서 소녀에게 같이 먹자고 권하였습니다. 소녀도 주머니에서 과자를 내어 놓으며 같이 먹자 하였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줄리엣이라 하였습니다.

둘이는 퍽 정답게 이야기하면서 과자와 면보를 먹고 있었습니다.

“야아! 탈났다. 저 물결 보아라!”

하면서, 아까 그 이탈리아 늙은 선원이 황급히 지나가면서 두 아이를 보고,

“주의하고 있거라, 배가 몹시 흔들릴 것이니…….”

하고, 일러 두고는 또 급히 뛰어갔습니다. 하늘은 점점 괴상하여지고 바람은 점점 사납게 불며 배가 몹시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는 배멀미가 나지 않고 아무 염려도 없이 태연히 앉아서 이야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줄리엣은 연해 방글방글 웃고 있었습니다. 키는 마리오 소년보다 조금 크고 몸은 가늘어 어떻게 보면 병든 아이 같기도 하였습니다. 머리는 그다지 길지 않고 곱슬곱슬하고 머리 위에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둘이서는 과자를 먹어 가면서 서로 신세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마리오는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신 일, 지금 친지도 아닌 먼 일갓집으로 길리우러 가는데 그나마 그 곳에서 반갑게 대해 줄지는 모르는 일을 일일이 자세하게 말했습니다. 소녀 줄리엣은 마리오의 애달픈 신세를 듣고 눈물이 눈에 고여서 퍽 언짢아했습니다. 그러나, 줄리엣은 역시 그다지 즐겁고 행복스러운 신세는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에 있는 줄리엣의 생가집은 부모님은 계시지만 몹시 구차하였습니다. 그런데, 줄리엣의 고모님 한 분이 영국 서울 런던에 사시는데 과부로 아드님도 따님도 없고 하여서 친정집 줄리엣을 데려다 길렀습니다. 줄리엣의 부모님은 줄리엣을 보내 놓고, 그 고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집 재산을 모두 물려받아서 자기 딸이 큰 부자가 될 줄 믿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고모님은 두어 달 전에 마차에 치어 돌아가시고, 남은 재산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줄리엣도 객지에서 혼자 떨어진 몸이 되어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을 역시 이 곳에 와 있는 이탈리아 영사가 주선해 주어서 마리아와 같이 돈도 없이 이 기선에 타고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소녀는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집에서 지금 내가 부자가 되어 오는 줄 알고 계시단다. 그러나 나는 돈 한 푼 없이 그냥 가난뱅이 이대로 돌아간단다. 그래도 여전히 귀여워는 하셔요. 나를 낳아 주신 아버지이구 어머니이니까……. 우리 형제도 그래요. 사형제인데 모두 내 동생이고 내가 제일 큰 형이란다. 아침이면 옷도 내가 모두 입혀주고 그래서 애들이 나를 보면 퍽 좋아한단다.”

“에그, 저 바다 보아!”

하고는, 바다를 보고는 다시 풀이 없이 앉아 있는 마리오를 보고 퍽 딱해 하는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그래, 너는 그 친하지도 못하다는 일갓집으로 가서 살게 되니?”

“으응, 그나마 길러나 줄는지 모른단다.”

“그 집에서 너를 귀여워하지 않니?”

“어떨는지……. 그의 집도 구차하고 어린애가 많다는데…….”

“에그, 너를 미워하면 어떡하니…….”

소녀는 또 눈이 젖었습니다.

그리고, 둘이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어린이끼리 이야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다른 손님들이 이 두 아이를 한 남매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하고는 줄리엣은 실을 꺼내서 주머니를 짜고 있고, 마리오는 잠잠히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2 편집

바다는 점점 갈수록 사나워졌습니다. 밤이 되니까, 물결이 더 험하게 일어나고, 바람이 더 몹시 사납게 되었습니다. 손님들은 무서워서 꼼짝 않고 선실 속에 푹 들어 앉았습니다. 둘이서는 각각 가서 자려고 헤어질 때에 줄리엣이 먼저 마리오에게 인사하였습니다.

“마리오야, 잘 자거라.”

그 때에 수부가 또 지나가면서,

“이렇게 험해서는 아무도 밤에 잠을 못 잔다.”

고, 소리치고는 바삐 뛰어갔습니다. 마리오는 줄리엣에게,

“잘 자거라!”

하고, 인사를 하려 할 즈음 뜻밖에 사나운 물결이 넘어와서 마리오를 쓰러뜨렸습니다. 마리오는 푹 고꾸라졌습니다.

“에그머니, 피가 난다!”

하고, 줄리엣은 소리치며 달려들어 마리오를 일으켰습니다. 다른 손님들은 무서워서 꼼짝 않고 엎드려 있어서 이 두 어린이의 일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줄리엣은 정신없이 엎드러진 마리오를 일으키고 그 옆에 꿇어앉아서 이마의 피를 씻어 주고 자기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찢어서 마리오의 피나는 이마를 정성껏 둘러 감아 주고, 그 끝과 끝을 매느라고 마리오의 이마를 자기 가슴에 바싹 대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때 피 한 방울이 소녀의 노란 저고리 앞에 묻었습니다. 마리오는 부르르 떨며 일어났습니다.

“과히 아프지 않으냐?”

하고, 소녀는 물었습니다.

“아아니 괜찮다. 이렇게 고맙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

고 대답했습니다.

“어서 자거라. 퍽 아프겠다.”

“응, 괜찮다. 조금도 아프지 않아. 잘 자거라.”

둘이는 인사를 마치고 제각각 돌아가 누웠습니다. 밤은 깊어갔습니다.

정말 아까 선원의 말이 맞아서 두 아이의 잠이 아직 들기 전에 무서운 소동이 생겼습니다. 사나운 바람과 거친 물결이 성난 악마와 같이 일시에 몰려왔습니다. 미쳐 날뛰는 사나운 말의 한 떼가 몰려오듯 달려들었습니다.

벌써 굴뚝 하나를 부러뜨려 가고 뱃전에 매달았던 작은 배 두 척을 쓸어 가고, 배 끝에 매어 두었던 소 네 마리까지 어느 틈에 물결에 떠내려갔습니다. 하늘은 캄캄하고, 바람은 소리를 지르며 몰려오고, 노한 물결은 이 큰 기선을 한 입에 삼킬 듯이 산더미같이 솟아오르고…….

배 속은 그 많은 사람이 제각기 살겠다고 날뛰느라고 벌컥 뒤집혔습니다.

부르짖는 소리, 우는 소리, 살려 달라고 기도 올리는 소리……, 이 모든 소란한 소리가 한데 일어나서 몸이 으쓱하고 떨리고 하여 그냥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밤새도록 야단을 치고 밤이 새고 날이 밝으니까 점점 더 사나워졌습니다. 산 같은 물결이 불끈 솟아 갑판 위에 올라와서 모든 것을 깨뜨리고 문지르고 하여 휩쓸어 가지고는 바닷속에 넣고 넣고 하였습니다. 기어코 기관을 덮고 있던 지붕이 쪼개 부숴지고, 그 위로 바닷물이 소리를 지르며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불은 꺼졌습니다. 불 때던 화부는 도망했습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고 미쳐 날뛰는 물결은 배 위에서 함부로 돌아다니며 깨뜨릴 것 꺼꾸러뜨릴 것을 찾아 헤매고, 우레와 같은 무서운 큰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났습니다.

“작은 배를 내려라!”

선장은 소리를 질러 명령했습니다. 수부들은 몰려와서 이렇게 급한 때 쓰려고 매달아 두었던 조그만 배를 끌어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벌써 바람과 물결이 다 가져가고 단 한척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 남은 배는 누가 타기도 전에 무서운 물결이 뱃전에 꼬리를 깨쳐서 물 속에 처넣고 말았습니다. 손님들은 귀신같이 날뛰며 울고 부르짖고 하였습니다. 벌써 그 눈에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제각기 살려고 날뛰며 부르짖고 하며 마치 지옥과 같이 소란해졌습니다.

“선장! 선장!”

선장만 보면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선장은 아주 어떻게 할래도 할 수 없다는 비참한 소리로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단념하십시오.”

그 소리를 듣더니 한 여인네가,

“애고머니!”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습니다.

인제는 아주 절망되어 아무 소리도 못하고 모두 늘어졌습니다. 공동 묘지같이 무섭게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바다는 점점 더 험해가고 기선은 흔들리면서 자꾸 기울어져 갑니다. 선장은 구조선을 내어 보았습니다. 선원 다섯 사람이 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타고 있던 선원 중에 이탈리아 늙은 수부와 또 한 사람 하고 둘은 죽고 나머지 세 사람은 간신히 기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인제는 수부들까지도 기운이 아주 떨어져 버렸습니다. 배는 점점 가라앉아서 선실 유리창 턱까지 잠겼습니다.

아주 물에 잠겨 버릴 이 기선 위에는 무서운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여인네들은 어린애를 푹 껴안고 울고, 아는 사람은 아는 사람끼리 서로 껴안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습니다. 성미 급한 이는 모두 스스로 물에 빠져 죽고, 어떤 이는 자기 육혈포(권총)로 자기 머리를 쏘아 죽는 이도 있었습니다. 어린애 우는 소리, 여인네 우는 소리, 사내들 부르짖는 소리, 기관 깨어져 터지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중에 불쌍한 마리오와 줄리엣은 정신없이 돛대를 잔뜩 껴안고 소리도 못 지르고 꼬부리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조금 숨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배는 거의 가라앉았습니다. 인제 몇 분이 안 되어 아주 잠겨 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다. 마지막 배를 내려라!”

선장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기선과 운명을 같이 할 마지막 아주 최후의 배를 내렸습니다. 벌써 어느 틈에 열일곱 사람이 올라서 가득 탔습니다. 나머지 사람은 인제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장은 팔짱을 끼고 우뚝 서서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장! 어서 타십시오!”

밑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아아니! 나는 여기서 죽는다!”

선장은 가만히 섰습니다.

“타십시오. 어서 타십시오!”

“나는 이 배와 함께 죽는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엄연히 섰습니다. 배는 거의 다 잠기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나려고 뱃가에 와서 떠들고 섰습니다.

작은 배가 열일곱 사람을 싣고 떠나려 할 즈음에,

“한 사람 더 탈 수 있다. 한 사람, 한사람.”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여자라야 된다. 여자 하나 내려 오시오. 어서 어서.”

하는 소리를 듣고, 여인네 몇 사람이 와락 달려들었으나 내려 뛸 용기가 없어서 그냥 주저 물러앉았습니다. 아주 기절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럼, 어린애 하나 내려 보내우. 어린애, 어린애.”

소리를 치니까 그 소리를 듣고 이 때까지 돛대를 쥐고 꼬부리고 있어서 꼼짝 못하던 줄리엣과 마리오가 이 죽음 속에서 살아 나가고 싶은 욕심에 와락 와락 뛰어가며,

“나를 살려 주시오!”

“나를 살려 주시오!”

하고, 달려들었습니다. 배는 벌써 몹시 가라앉아서 이제는 모두 그냥 물에 잠겨 죽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둘이나 달려드는 것을 보고,

“배가 꽉 찼으나, 작은 애를 내려 보내요. 작은 애, 작은 애, 어서 어서!”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둘이 제각기 살겠다고 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줄리엣은 그만 낙심되어 두 팔이 축 늘어지고 얼굴이 파래졌습니다. 그리고 멀건히 서서, 마리오를 보았습니다. 인제는 키 작은 소년 마리오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마리오의 눈에는 멀건히 낙망하고 서 있는 줄리엣의 노란 저고리 앞에 묻어 있는 붉은 피가 언뜻 보였습니다. 아아 붉은 피! 가련한 소년의 어린 가슴에 하늘 같은 귀여운 생각이 번개같이 번쩍였습니다.

“줄리엣아! 네가 타거라.”

떨리는, 그러나, 무섭게 힘있는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작은 애, 작은 애, 어서 어서 이 배까지 뒤집히게 된다. 어서 어서!”

아래에서는 자꾸 소리쳐 재촉을 합니다. 마리오는 다시, 힘있는 소리로,

“이 애가 나보다 가볍습니다!”

하고, 줄리엣더러 타라 하였습니다.

줄리엣은,

“아아니, 네가 타라! 네가 나보다 어리다.”

하고는, 굳이 듣지 않았습니다.

아래서는 자꾸 소리를 치며 그냥 떠나겠다고 합니다. 다시 마리오는 떨리는 목소리로,

“줄리엣아, 네가 타고 가거라.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 계시고 어린 동생도 없고, 나를 기다려 줄 사람도 없고 가서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 너는 기다리시는 부모가 계시고 어린 동생이 있지. 네가 죽으면 너의 부모와 너의 동생들이 오죽 슬퍼하겠니. 네가 살아야 한다. 어서 타거라.”

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리고는, 굵은 눈물이 발등에 펑펑 쏟아졌습니다.

“마리오야!”

하고, 줄리엣은 훌쩍훌쩍 느껴 울었습니다.

어서 어서 소리가 빗발치듯 났습니다. 마리오는 다시,

“어서 가거라, 가서 어머님 아버님을 만나 뵈어라. 나는 죽어도 슬퍼할 사람도 없다. 내가 죽을 테니 네가 살아 가거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줄리엣은 눈물이 비오듯이 울면서 마리오를 놓지 않았습니다. 배에서는 또 어서 어서 소리를 치다가 그냥 떠나려 하였습니다. 마리오는 언뜻 기운을 내어 울고 섰는 줄리엣을 들어 아래로 내려뜨렸습니다.

아래 배에 있던 사람들이 받아서 배에다 놓고 작은 배는 비로소 살아 나갔습니다. 큰 배는 아주 잠기고 마는데 마리오 소년은 머리를 높이 들고 머리털을 사나운 바람에 날리며 꼼짝 않고 우뚝 섰습니다.

배는 아주 가라앉았습니다.

그 통에 물결의 파동이 일어나서 조그만 배도 뒤집힐 뻔하였으나 다행히 무사하게 갔습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줄리엣이 고개를 돌려 보니까, 큰 배는 아주 잠겨 버리고 높다랗게 뻗힌 돋대 위에 마리오가 혼자 서서 줄리엣의 가는 것을 보고 섰었습니다. 줄리엣은 그것을 보고 그냥 소리쳐 울었습니다.

“잘 가거라, 줄리엣아!”

마지막 인사가 물 속에 잠길 마리오의 입에서 크게 나왔습니다.

“오오, 마리오…….”

소리를 치며 두 손을 그리 대고 내밀었으나, 배는 점점 멀어 가고 마리오의 돛대는 점점 기울어졌습니다.

줄리엣은 차마 보지 못해서 눈을 가리고 소리쳐 울었습니다. 소리쳐 울던 줄리엣이 다시 한 번 돌아다볼 때에는 그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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