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동명왕/제2장

密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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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터 나루를 건널 때에는 벌써 훤하게 동이 텄다.

종적을 감추기 위하여 여기서부터 일행은 큰길을 버리고 소로로 들어서, 해 뜨기 전에 인적 없는 수풀 속에 몸을 피 하려 하였다. 아직 나뭇잎이 떨어지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숨을 자리를 찾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곳에 는 높은 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축축한 벌판이요, 산이래야 민틋하고 얼마 높지 아니한 것들이었다. 거기 많 은 것은 버드나무와 느릅나무 그리고는 간혹 들배나무가 있 을 뿐이었다.

주몽은 사냥 다닐 때에 보아 두었던 아늑하고도 으슥한 곳 을 찾아서 하루를 쉬기로 하였다. 그러나 해가 지고 달이 뜨기를 기다려서 다시 달릴 작정이었다.

새벽의 평원의 공기는 물보다도 무거운 것 같았다. 우무거 리마다 은빛 나는 안개가 폭 깔려서 마치 호수와 같았다.

안개 위로 쑥쑥 솟은 키 큰 나무의 머리들은 허깨비와 같았 다. 말 발굽이 헤치는 이슬에 젖은 풀잎사귀 소리에 놀란 새·짐승들이 허겁지겁으로 날고 달렸다. 주몽의 나는 살이 어느덧 사슴 한 마리와 뜸부기 한 마리를 맞혔다.

일행은 이것으로 썩 좋은 아침을 먹고 말을 먹음직한 풀판 에 놓은 뒤에 곤한 잠을 잤다.

주몽이 잠을 깨었을 때에는 벌써 해가 낮이 기울었다.

주몽은 문득 오늘 밤의 약속을 생각하였다. 오늘 밤 주몽 은 배를 가지고 그 집 후원 버들 숲까지 가기로 어젯밤에 예랑과 약속한 것이었다. 예랑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밤버들 숲에서 기다리다가 못 만나는 예랑의 슬픔을 생각하 면 주몽은 마음을 안정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예랑은 태자 대소의 사랑까지도 물리치고 주몽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주몽은 예랑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주몽은 뒤에 따르는 자가 있나 없나, 따른다면 어떤 방향 으로 따르는가를 알아 보고 온다고 칭하고, 시종자 한 사람 과 옷을 바꾸어 입고 단신으로 염탐의 길을 떠난다고 주장 하였다.

오이·마리·합보 세 사람은 주몽의 뜻이 부당함을 번갈아 말 하여 만류하였다.

『아니 될 말씀요? 지금 가섬벌에서는 도련님 찾느라고 벌 컥 뒤집혔을 것이요, 도련님 한 분을 놓는 것은 호랑이를 들에 내어 놓는 것과 같은 줄을 왕이나 태자가 모를 리가 없소. 도련님께서 세상에 놓여 나가시면 반드시 많은 호걸 과 백성이 따라서 큰 세력을 이루실 것이니, 그리되면 동부 여·북부여가 모두 도련님의 것이 될 것을 눈 있는 자가 다 볼 것이요, 그러하오매 아직 날개가 돋고 톱이 자라기 전에 도련님을 없이하려고 벼르고 벼르던 터인데, 그래도 혹시나 도련님이 가섬벌을 떠나시지 아니하고 태자의 충성된 신하 가 되실까 하는 요행을 바라고 지금까지 머뭇거렸던 것이 요, 그런데 한번 가섬벌을 떠나셔서 왕과 태자를 배반하실 뜻을 보이신 뒤에, 이제 잡히시는 날이면 화를 면하시기를 바라지 못할 것이요.』

세 사람의 말은 다 옳았다. 만일 주몽이 어젯밤에 가섬벌 을 빠져서 도망하였단 소문이 아니 났으면 모르지마는, 그 소문이 아니 났을 리가 없을 것이다. 유화 부인 궁중에 왕 후와 태자의 염탐군이 없을 리가 없고, 설사 그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룻 동안 주몽이 눈에 아니 뜨이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면 주몽이 다시 가섬벌로 들어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호랑이 굴로 들어 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주몽은 예랑을 한번 더 아니 만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세 사람은 주몽을 붙들고 빌기를 계속하였다.

『이제 도련님은 홀몸이 아니시오. 첫째로 한번 가섬벌을 떠나시는 날, 도련님은 벌써 부여 나라의 적이 되시었소. 부 여 나라로서는 도련님을 살려 둘 수는 없을 것이요, 둘째로 도련님은 이제는 우리 무리를 거느리신 장군이시오. 오늘에 한 마을을 얻고 내일에 한 고을을 얻어서, 물 길고 벌 넓은 땅을 찾아, 나라를 세우실 귀한 어른이시오. 지금까지는 도 련님은 홀몸이시라 마음대로 들고 움직이셨으나, 이제부터 는 홀몸이 아니시니, 그렇게 움직이시지 못하오. 먼저 도련 님 속에 먹으신 뜻을 우리 무리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시와, 우리 무리 다 옳다고 아뢰인 연후에야 움직이심이 대장의 일이요, 임금의 일이요. 그리하온즉 굳이 위험한 길을 가시 는 뜻을 먼저 우리 무리에게 이르시기 전에는, 우리 무리 목숨으로써 도련님 행차를 막으려 하오.』

하고 오이가 찼던 칼을 빼어 주몽의 앞에 두 손으로 받들 어 올리며,

『우리 무리 사뢰는 말씀을 아니 들으시면, 이 칼로 이 목 을 베시오.』

하고 다졌다.

주몽은 심히 딱한 표정으로, 오이의 칼을 받아 손수 오이 의 칼집에 꽂으며,

『오이의 충성된 마음 못내 감격하오. 말 마디마디 어린 이몸을 가르치는 깊은 뜻을 품었으니, 이몸이 어찌 오이의 말을 거역하겠소? 그러나 오이, 또 마리와 합보, 이몸을 가 르치고 돕고 앞으로 이몸의 팔이 되고 다리가 될 세 벗, 오 늘 한번만 이몸의 고집을 허하시오. 그대네 세 사람은 이몸 과 한 몸이어니와, 그래도 이 몸이 말하기 어려운 일도 있 고 또 세 사람이 이몸을 대신할 수 없는 일도 있지 아니한 가. 오늘 이몸이 이다지 고집하는 까닭을 후일에 알 날도 있을 것이니, 오늘 한 번만 용서하오.』

하고 간청하는 뜻을 얼굴에 보였다.

가을날에는 저녁에도 안개가 꼈다. 주몽은 새벽 해 뜨기 전에 돌아 올 것을 약속하고 말을 달려서 가섬벌로 향하였 다. 누가 물으면 사냥 갔다가 날이 저물었다 하기 위하여, 새 몇 마리를 말 안장에 달았다.

굿터 나루에서 파수 보는 군사를 만났다. 여기는 평소에는 군사가 없는 데이므로 주몽은 자기 때문인 줄을 알았다.

『거 누고?』

하고 군사 사오 명이 주몽의 길을 막아 섰다.

『내요. 가섬벌 돌멍일러니 사냥 갔다가 늦었소.』

하는 주몽의 말에 파수 군사들은 횃불을 들어 주몽의 차림 차림과 안장에 달린 새·짐승들을 보고, 한 군사가 주몽의 말 고삐에 손을 대며,

『밤 파수를 보기에 무료도 하고 술을 먹으려도 안주가 없 으니, 새 한 마리를 안 줄라는가?』

하고 말을 붙인다.

주몽은,

『그거 어렵지 않소.』

하고 새 한 마리를 떼어서 주며,

『그런데 웬 일이요? 내가 거의 날마다 사냥 갔다가 밤 늦 게 이 나루를 건너도 군사가 파수 보는 양을 못 보았는데, 오늘은 웬일이요?』

하고 고개를 숙여 풀을 뜯으려는 말을 고삐를 당기어 고개 를 번쩍 들게 한다.

『허, 이 젊은 친구는 모르는가. 주몽 왕자가 달아났다고 나라에서 사방으로 찾으신다네. 주몽 왕자를 잡기만 하면, 상금이 집 하나에 말 열 필하고 벼슬 두 자리를 올린다는 거야.』

주몽은 소리를 내어 웃으며,

『집 한 채에 말 열 마리, 그리고 벼슬 두 자리. 거 괜찮소 구료. 그래 여기서 파수를 보고 섰으면, 달아난 주몽 왕자가 이리로 올 것 같소?』

하는 말에 한 군사가,

『누가 안 그렇대. 말 타시는 주몽 왕자 벌써 천리는 갔을 게다. 우리는 무엇하러 여기 웅게웅게 섰는 게야. 자 술이나 한 잔들 먹세. 젊은 친구 잘 가소.』

하고 주몽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주몽은 그것을 다행히 여겨서 말을 달리려 할 적에 다른 군사 하나가 주몽의 말고 삐를 잡으며,

『젊은 친구 잠깐 가만 있어. 오늘 혹시나 주몽 왕자 어디 서 못 보았는가. 오늘 닭 울 녘에 이 나루를 건넜다는 것이 필시 주몽 왕자인 상 싶은데.』

하고 깐깐히 물었다.

『해 뜬 뒤에 건넌 내가 달구리에 건넌 사람을 어떻게 본 단 말인가?』

하는 주몽의 대답에 그 군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도 그럴 게야. 그럼 잘 가소. 우리는 새 구워 놓고 술 이나 먹을라네. 가다가 관인이 묻거든 우리들 여기서 파수 잘 보더라 이르소.』

하고 말고삐를 놓았다.

주몽은 채찍을 들어서 말을 달렸다. 달은 아직 뜨지 아니 하였다. 달 뜨기 전에 가섬벌 오십리를 가야 하는 것이었다.

말은 주인의 뜻을 아는 양하여서 네 굽을 안아서 뛰었다.

늘 다니던 평지 길이라, 눈을 감아도 걸음 대중으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가섬벌 집들에서 새는 불빛 이 보일 만하면 말 몸이 축축히 땀에 젖었다.

주몽은 말의 걸음을 느리게 하여 버들 숲 속으로 들었다.

말을 감출 자리를 찾는 것이다. 주몽은 말을 물가 버들가지 에 매고 손을 들어 등을 두드려, 오늘 밤에 말의 한 일이 큰 것을 알렸다.

주몽은 단신으로 관가 배 맨 곳까지 걸어왔다. 여기는 작 은 배, 큰 배가 사오척 매어 있어서, 왕자들과 궁중 관원들 이 언제나 쓸 수가 있었다. 혹은 뱃놀이도 하는 것이었다.

주몽은 물빛으로 배를 고를 수가 있었다. 주몽은 혼자 젓 기에 힘 아니 들 조그마한 배 하나를 끌러 내어서 젓기를 시작하였다. 무엇에도 능한 주몽은 배 젓기에도 능하여서 배는 말을 잘 들었다.

며칠 전 비에 강물은 불어서 상당히 물살이 세었으나 주몽 은 과히 힘 아니 들이고 제 길을 찾았다. 이 강은 동에서 서로 흘러 발해로 들어 가는 강이었으나, 가섬벌에 와서는 둥그스름하게 휘 돌아서 몇 굽이를 지어서 흘렀다. 주몽이 목적하는 예랑의 집 후원은 이러한 한 굽이에 갈라진 지류 를 잠깐 거슬러 올라 간 곳이었다.

강물은 맑은 물은 아니었지마는, 별을 비추기에는 맑은 물 이나 다름이 없었다. 부유스름한 수면에 뜬 검은 배들이었 다. 고요한 밤의 강상에는 노젓는 소리가, 또는 물가에 축축 늘어진 버들가지에 걸려서, 스쳐 흐르는 물소리가 땀방땀방, 잘박잘박 들릴 뿐이었다. 지금은 물고기들도 잠이 들려 할 때에 주몽은 배를 저어 작은 개울 줄기를 찾아 올라 간다.

동편 하늘은 훤하였으나 아직 달은 오르지 아니하였다. 주 몽은 노젓는 소리도 아무쪼록 아니 나오도록 살살 저어, 그 러나 급히 저어 하늘과 물 사이에 검은 수풀 그림자를 대중 으로 예랑과 약속한 지점을 찾아서 배를 갯버들 숲에 숨기 고 달 뜨기를 고대하였다.

서늘한 바람이 땀에 젖은 주몽의 몸을 스쳤다. 가만히 바 라보면 눈에 뜨이도록 수면에서는 수증기가 피어 올라서, 순식간 물의 흰 것과 육지의 검은 경계가 서로 녹아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맑은 가을 하늘을 흐리게 할 정도는 아니었 으니, 대개 수증기는 피어 오르지 아니하고 물과 땅 위에 무겁게 기는 것이었다.

반딧불들이 어지럽게 날았다. 껐다켰다하는 사랑의 등불이 었다. 그들은 제 몸을 태워서 빛을 발하여 짝을 부르며 나 는 것이었다. 날면서도 빛을 발하고 풀잎에 앉아서 빛을 발 하여, 누구인지 모르나 그리운 짝을 청하는 것이었다. 껐다 켰다, 푸른 사랑의 등불.

동편 하늘은 더욱 훤하여졌다. 달은 아직 아니 보이나, 달 빛은 벌써 주몽이 숨은 버들 숲까지 흘러 왔다. 달 뜨는 것 을 기약으로 하였다. 달이 뜨면 예랑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주몽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혹은 발자국이, 혹은 목 소리가, 또 혹은 옷자락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주몽의 마음 속에는 모든 생각이 다 스러지고 오직 예랑의 소리를 들으려는 생각이 있을 뿐이었다. 만일 예랑의 소리가 하늘 에서 나면 하늘로 날아 오르고 물 속에서 나면 물로 뛰어 들 것이었다.

아무리 고요한 밤이라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언제나 무 슨 소리가 있었다. 땀방하는 것은 무엇이 물에 뛰어 드는 소리, 찰싹하는 것은 흐르는 물이 무엇에 부딪치는 소리었 다. 바싹 바스락하는 것은 풀잎을 흔들고 가는 무슨 짐승일 것이다. 황 든 나뭇잎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도 없을 리가 없다. 때로는 「깩, 깨액」하는 나뭇 가지에서 자던 새가 무 엇에게 물려서 먹히는가 싶은, 귀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깊은 고요함을 쫓는 수도 있다.

생명을 가진 것치고 안전한 것은 없다. 나는 벌레에게는 거미줄이 있고, 뛰는 짐승에게는 그를 노리는 맹수와 사람 의 화살이 있었다. 아내와 새끼를 거느린 수풀의 사슴이 고 개를 넘을 적마다 모퉁이를 돌 적마다 마음 못놓는 눈을 둘 러 살피거니와, 그래도 어디선지 모르는 곳에서 날아 오는 화살을 다 피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연이 당하는 시각을 피할 도리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피하는 첫길은 아예 인연 을 아니 맺을 것이요, 이왕 맺힌 인연이어든 앙탈 없이 순 순히 받는 것이 둘째 길이다.

주몽은 이 자리가 결코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 남의 집 딸 과 밀회하는 것도 위태한 일이어든, 하물며 남의 애인을 가 로채는 일이랴. 게다가 그 적수가 죽이고 살리기를 마음대 로 하는 일국의 태자라면, 주몽의 위험은 더할 수 없이 큰 것이다. 혹은 예랑의 손을 잡는 시각이 주몽의 가슴에 살이 나 칼이 들어 올 시각일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제가 사랑하 는 계집을 노리는 다른 사내─이보다 세상에 더 미운 것이 있을까. 그것이 지극히 친한 벗이라도, 아니, 벗은커녕 친형 제라도 죽이지 아니하고는 말지 아니하도록 생겨 있는 것이 인정이다. 어찌 인정뿐이랴. 짐승도 벌레도 그러하다. 산에 서, 들에서, 또는 공중에서, 수중에서 악쓰고 피 흘리고 죽 기 내기를 하는 것은 먹을 싸움과 사랑 싸움이어니와, 먹을 것은 이것 아니라도 저것을 하고 양보도 하거니와, 사랑에 는 대신이 없기 때문에 양보가 없다. 천하와 계집, 많은 임 금은 계집일래 천하를 버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힘이다.

어찌하여 남성·여성이 따로 생겨서는 서로 누구인지 모르고 서로 찾아 헤매다가, 큰 고난을 겪고야 서로 만나도록 마련 이 되었는고. 초목의 꽃도 벌레·짐승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주몽의 마음이 이처럼 끓을 때에는 예랑의 마음도 그처럼 끓었다. 주몽 왕자가 밤 동안에 도망하였다는 소문은 예랑 의 귀에도 들어 갔다. 예랑은 한편으로 주몽이 위험을 벗어 난 것이 다행하다고 억지로 생각하였으나, 오늘 밤 약속이 깨어질 것이 무한히 슬펐다. 예랑은 오랫동안 은근히 주몽 과 만나기도 하였으나, 언제나 시녀나 동생과 같이 하였고 단둘이 만나려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달밤에 배를 타고 그리운 주몽과 단둘이, 혹은 버들 그늘로, 혹은 갈 숲으로 노닌다는 즐거운 생각이 깨어진다는 것은 예랑에 게는 애타고 기막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랑은 은근히 믿었다. 주몽이 비록 도망하였더라 도 오늘 밤에 만나는 약속은 지키리라고. 이것은 실로 불가 능한 일이었으나, 예랑은 그렇게 믿었다.

밤이 든 뒤에 예랑은 제 방에서 몰래 단장하고 있었다. 꽃 무늬 있는 한 나라 깁옷을 꺼내어 입고, 역시 한 나라 상인 들이 팔러 다니는 패물과 향을 꺼내어서 찼다. 이것은 예랑 의 시집 준비로 그 부모가 장만해 주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차리고 예랑은 구리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밤에는 거울을 안 본다는데.』

하고 시녀가 염려하였다.

『무엇이 무서워서? 내가 꺼릴 것이 무엇이냐. 주몽 왕자 를 만나러가는 길이어든, 무엇을 아끼며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냐.』

하고 예랑은 거울을 떨어뜨렸다. 달과 같이 둥근 거울이었 다. 그것이 마룻 바닥에 떨어지면서 스르릉하고 울었다.

『왕자께서 약속대로 오시면 좋겠습니다마는.』

시녀 강월은 예랑이 가여웠다.

『오시지 않고. 천하가 우러러 볼 어른이신데, 한 여자를 속이겠느냐. 꼭 오실 게다. 달이 떠오를 때면, 약속한 버드 나무 그늘에 그 씩씩하신 모양이 나타나실 게다. 그러면 나 는 오늘 저녁에는 그 어른께 척 매달려, 그 힘있는 품에 안 겨 버릴란다. 인제는 더는 못 기다려. 못 기다리고 말고. 지 금까지는 부모님 걱정과 세상 사람들의 입을 꺼려서 참고참 고 왔지마는 인제야 더 참을 나위가 없지 아니하냐. 태자께 서는 저렇게 성화같이 재촉을 하시고. 그러나 이몸이 주몽 왕자 품에 한번 안긴 뒤에야 태잔들 어찌하시랴. 좋아 좋아.

태자께서 혹은 원망으로, 혹은 질투로 내 몸을 두 동강으로 내어도 좋아. 집도 빼앗고 나라도 빼앗고 목숨까지도 다 빼 앗을 수가 있더라도, 한 사람의 뜻은 못 빼앗는게야. 더군다 나 사랑하는 한 처녀의 뜻은 하나님도 못 빼앗으신다.』

하는 예랑의 눈은 빛났다.

『얘, 강월아. 아직 달 뜰 때 안됐니? 좀 나가 보아라. 아 니 그럴 것 없다. 나도 나가자. 집에 있다가 부모님이 보셔 도 안됐고, 우리 나가자. 나가서 물가에서 기다리자.』

예랑은 소리 안 나게 뒷문을 열고 나섰다.

달 뜨기 전의 밤은 칠과 같았다. 예랑의 걸음에는 향내가 따랐다. 두 사람은 말이 없이 사뿐사뿐 걸었다. 그 고요한 품이 여기서 말을 하였다가는 십리 밖에까지 울릴 것 같았 다. 반딧불이 있어서 밤은 더 어둡고 벌레 소리 때문에 천 지는 더욱 고요하였다.

예랑은 바싹하는 소리에도 걸음을 멈추면서, 버들 숲이 우 거진 물가를 향하고 걸었다. 닦아 놓은 쇳빛과 같은 강물이 꿈같이 나무 사이로 보였다.

『배 안 보이니?』

하고 예랑은 강월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여 물었다.

『안 보이는데요.』

하고 강월은 미안한 듯이 대답하였다.

『도련님이 아니 오실 리는 없을 것이다.』

하고 예랑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리나의 물이 마르기로, 주몽 도련님의 뜻이 변할까.

아, 저기 저 갯버들 숲에 저 거무스름한 것이, 강월아, 저게 배가 아니냐?』

안개 속을 예랑은 뚫어져라 하고 들여다 보았다. 안개는 더욱 짙어져서 마치 강물이 자꾸만 육지로 먹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무 밑 어두운 그늘에 안개의 엷은 자락이 살 살살 기어 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글쎄요. 말씀을 듣고 보면, 그것이 배인 것도 같습니다마 는, 안갤래 어디 불간할 수가 있어야지요? 소인네가 가 보 고 올까요? 그것이 배가 아닌가.』

『그래, 그럴까? 아니다, 아니야.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배 면 어찌하게. 그런데 달은 왜 이다지도 늦도록 아니 올라 올까. 설마 오늘이라고 달이 안 뜰 리는 없을 터인데. 얘 강 월아, 밤이 무척 길었지? 지금 어느 때나 되셨을까?』

『아무려나 아직 달 뜰 때도 아니 되었으니, 밤이 깊기로 얼마나 깊었겠어요? 하도 골똘하게 기다리시니 그러시지.

우스워요, 아가씨 그렇게 쩔쩔 매시는 양이. 예전에는 호랑 이가 덤비어도 까딱 없으시던 아가씨가 왜 저렇게 되셨을까 하면 우스워요.』

하고 강월은 속으로 입을 꼭 막아 웃음 소리를 도로 몰아 넣는다.

『내가 그렇게 허둥거리느냐?』

『그럼은요.』

『왜 그럴까. 나는 억지로 마음을 누른다는 것이 그렇고나.

내가 정말 우스우냐?』

『우스워요. 가엾으시고요. 거 무얼 그리셔요. 달이 뜰 때 가 되면 뜨고, 주몽아기께서 오실 때가 되면 오실걸요.』

『그래. 네 말대로이다. 그렇지만 오늘 저녁은 이상해. 내 몸에 신이 접한 것도 같고. 오, 달이 올라 온다. 저기가 훤 해지지 않느냐. 이번엔 달이지, 응?』

그것은 정말 달이 뜨는 것이었다. 안개가 빛이 났다. 얼마 아니하여 달바퀴가 윤곽이 분명치 아니하나, 빛은 더 나는 모양으로 뚜렷이 나떴다. 왼편이 약간 이지러졌다.

달빛을 따라 온 듯이 어떤 그림자가 예랑의 앞으로 가까이 왔다. 예랑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것이 주몽인 줄 느끼면서 도 또 다른 본능으로 몸을 늙은 버드나무 그늘에 감추었다.

그 그림자는 주몽이었다. 주몽은 강월의 앞에 와서, 달에 비추인 강월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오, 강월인가. 내가 바로 찾았군. 안개로 해서 지척을 분 별할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아가씨는? 아가씨는 어디 계신 가?』

하고 휘둘러 본다.

예랑은 조금 더 몸을 감추느라고 나무통을 안고 한 걸음 더 주몽의 눈이 아니 닿을 쪽으로 돌아 선다.

남자는 따르고 여자는 피하여 달아나는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그러하다.

주몽은 코에 예랑 냄새가 풍김을 느꼈다. 그것은 다만 패 물로 찬 서역국 향내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 만이 맡을 수 있는 서로서로의 살 냄새요, 피 냄새였다. 몇 백 생 몇 천 생의 깊은 연분 냄새였다.

『나를 속이려고? 내가 속을 듯하오? 나를 피하려고? 나를 피할 듯하오?』

하고 주몽은 나무통 옆으로 삐죽이 나온 예랑의 옷자락을 보고 따라 갔으나 예랑은 피하여서 다른 나무 뒤에 숨었다.

주몽은 또 따라 갔다.

예랑은 또 날쌔게 비켰다.

주몽은 또 따랐다.

『아이 참. 따르지 마세요! 오늘은 어째 무서워요.』

하고 예랑은 또 비켜서 달아난다.

주몽의 따르는 속력이 빨라지는 만큼 예랑이 피하는 속력 도 빨라진다.

예랑은 숫사슴을 피하는 암사슴, 주몽은 암사슴을 따르는 숫사슴. 암이 피할수록 수의 피는 더 끓고 수가 따를수록 암의 무서움은 더 커진다. 그 무서움은 마치 호랑이의 붉은 입을 피하는 암사슴의 무서움과 같은 것이었다.

강월은 쫓기고 따르는 두 그림자를 보고 한끝 부럽고도 한 끝 기쁘고 또 한끝 부끄러움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자들을 옆에서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첫 째로 갓난이 안은 어머니, 둘째로 서로 사랑하는 동남과 동 녀, 그리고 하늘에 별과 땅 위에 꽃. 강월은 달빛 받은 안개 속에서 노니는 두 동남 동녀의 그림자를 언제까지나 보고 저를 잊고 있다가 번쩍 정신이 든 때는 두 그림자는 어디론 지 스러지고 멀리서 오는 찌국찌국 배 젓는 소리만이 울려 오고 있었다.

강월은 무엇을 잃은 듯이, 잃어서 큰일날 것을 잃은 듯이 소스라쳐 놀랐다. 그래서 종종걸음으로 두 그림자가 서로 쫓고 쫓기고 하던 곳을 찾아 마음 속으로만 소리내어 부르 면서 헤매었다.

안개가 뭉게뭉게 움직이는 서슬에 맑은 하늘이 번뜻 나타 나며 달이 그 밝은 빛으로 강상에 뜬 작은 배를 비추었다.

『저 배다. 두 분은 배에 있다.』

하고 강월은 물가에 서서 두 팔을 들었다. 마치 물 속으로 절벅절벅 걸어서라도 두 사람을 따라 가려는 것 같았다. 그 러나 잠깐 열렸던 안개가 다시 수면을 덮어서 그 배도 아니 보이고 말았을 때에는 강월은 기절할 듯이 정신이 아뜩하였 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랑의 장난 동무였다. 평생을 예랑과 함께 할 운명을 가진 예랑의 몸종이었다. 예랑이 시집을 가 면 예랑을 따라서 시집을 가고, 예랑이 죽으면 예랑의 무덤 에까지 같이 갈 종이었다. 종이라면 벗어나고 싶은 멍에지 마는 예랑도 예랑이요 강월도 강월이어서 둘은 형제와 같고 쌍둥이와 같았다. 예랑이 병이 나면 강월도 병이 나도록 깊 이 든 정이었다. 몸과 그림자 모양으로 서로 떨어질 수 없 는 둘이었다. 그런데 예랑은 어디로 가고 강월이 혼자 물가 에 남았는가.

달이 올라 와 낮이 가까우매 안개는 걷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밤바람이 나와 강에 물결이 살랑살랑 달 그림자를 깨뜨리고 나뭇잎까지도 사르릉 사르릉 금속성을 발하였다.

경각 간에 가을이 짙어진 것 같았다. 홀로 물가에서 예랑의 배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강월의 옷자락이 팔랑팔랑 나부 낄 때 그는 신선함을 느꼈다.

이윽고 강월의 눈에 띈 검은 한 점, 차차 커지는 그 한 점 이 배였다. 노를 젓는 몸의 움직임이 마치 바람을 맞은 나 무의 휘청거림과 같이 아름답고 힘이 있었다.

배는 강월이가 기다리는 물가에 닿았다. 노를 젓던 사람은 먼저 배에서 뛰어 내려서 배 위에 섰는 여인을 안아 내렸 다. 배가 출렁하고 한번 뛰는 듯이 흔들렸다. 그것은 주몽과 예랑이었다.

『강월이 오래 기다렸구나.』

예랑은 이렇게 강월을 위로하였다. 저는 주몽과 즐길 때에 강월을 혼자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하였다.

『추우시겠어요. 옷이 촉촉히 젖었는데.』

강월은 예랑의 옷을 만져 보았다.

주몽은 두 여자가 서로 아끼고 위로하는 양을 이윽히 보더니,

『예랑, 그럼 나는 가오. 부대 잘 있으오.』

하고 덥석 예랑을 안는다. 예랑도 주몽을 안으면서,

『나는 무에라고 부르오리까. 도련님? 그것도 아니요, 서방 님? 그것도 아니 맞고, 주몽 왕자─아기씨─무에라고 여쭈 오리까? 왕자시니 나으리가 옳거니와 나으리하면 너무 멀어 보이고. 내 남편, 하늘같이 믿고 사랑하는 내 낭군 이렇게나 부르오리까. 그런데 그 말도 어울리지를 않고. 당신님은 하 늘에 계신 별, 해, 달, 이 몸은 땅 위 풀잎에 맺힌 한 이슬 방울. 정말로 이슬방울이면 임의 옷자락에라도 붙어 가련마 는─이제 한번 가시면 언제나 만나리까. 이몸이 다시 당신 님 만날 계약이 없는 것만 같아서 누르려도 누르려도 눈물 이 앞을 서오.』

하고 주몽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느껴 운다. 배 위에서도 몇 번이고 결심한 일이언마는 정작 떠날 순간이 되니 슬픔 이 북받치는 것이었다.

주몽은 예랑의 어깨와 등을 만지며,

『울지 마오. 늦어도 십년 안에 다시 만날 것이니 울지 마 오. 부대 몸조심하오. 강월아 너도 부대 잘 있고 아씨 잘 모 셔라. 후일 다시 만나는 날 너도 크게 상 줄 것이다. 자, 놓 으시오, 갈 길이 바쁜데, 밝기 전 굿터 나루를 건너야 하는 데. 아무리 안고 있어도 한이 없어. 과히 울면 몸이 상하오.

밤 이슬에 젖은 몸이 그렇게 마음 상하면 더욱 병들기 쉽 소. 부대 몸조심하오.』

하고 주몽도 차마 놓을 수 없어 예랑의 등과 어깨와 머리 를 만지고 또 만진다. 예랑은 고개를 들고 안았던 팔을 떼 고 주몽의 몸에서 한 걸음 물러서며,

『당신님은 가셔야 하지. 부대부대 안녕히 가시오. 가시는 곳마다 소원 성취하시오. 싸우면 이기시고 치면 빼앗으시고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크신 어른이 되시오. 이몸은 언제까지 나 당신님을 기다리오리다.』

하고 말끝이 흐르고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것을 강월이 붙 들어 안는다.

주몽은 무거운 가슴을 안고 돌아 서서 버들에 맨 벌이줄을 끄르려 하였다. 이때에 예랑이 허둥허둥 주몽의 곁으로 달 려 오며,

『나으리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고 옷소매를 끈다.

『왜 그러오?』

하고 주몽은 벌이를 끄르던 손을 멈춘다.

『십년이나 후에…….』

하고 예랑은 울음을 삼키며,

『피차에 몰라 보면 무엇으로 신표를 삼으리까?』

하고 한번 더 잘 보아 두어서 잊지 말자는 듯 달붙이에 어 리인 주몽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 본다.

『몰라 보아? 설마 내가 예랑의 얼굴을 잊겠소?』

하고 주몽은 빙그레 웃는다.

『내 얼굴은 아니 잊으시더라도 못 본 사람의 얼굴이야 어 떻게 아시겠소? 그도 자세히 보면 아실 법도 하지마는, 당 신님께서 크게 높으신 어른이 되시면─찾아 가는 사람이 태 자의 자리 오를 사람이라 하면 확실한 신표가 있어야 아니 하오? 당신님 다른 아내를 많이 얻어 다른 아들을 많이 낳 으시면 이몸이 낳을 아들이 무엇으로 당신님을 아버지라고 찾겠소?』

주몽은 이 말에 놀랐다. 그는 이날에 예랑에게 아기가 틀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날에 생겼을 지도 모르는 아들이라는 사람을 상상하면 참으로 이상하고 도 놀라왔다. 그리고 간밤에 그 어머니 유화 부인께서 들은 주몽 자신이 생기던 것을 회상하면 더욱 신기하였다. 주몽 은 옆에 찬 칼을 빼었다. 그것은 간밤에 그 어머니께서 받 은 것으로서 아버지 해모수가 남긴 신표였다. 주몽은 달빛 에 번쩍거리는 칼날을 들어서 하늘에 빌었다. 하나님과 물 귀신이 이 칼을 가진 자를 지키소서 함이었다. 그리고 그 칼을 중동을 분질러 두 동강으로 내었다. 그것이 부러지는 소리 쇠북을 힘차게 치는 소리와 같이 울려서 예랑도 강월 도 놀랐다. 주몽은 자루가 붙은 쪽을 제 칼 집에 꽂고 자루 가 없는 쪽으로 제 옷자락을 싹둑 가로 베어 그것에 칼끝을 싸서 예랑에게 주며,

『이것이 신표요. 이 칼과 옷자락. 이것을 가지고 오는 자 는 내 아들 유리명(琉璃明)이요. 이 칼을 지닌 자를 아버지 하느님과 할아버지 하백이 지키실 것이니 어느 누가 감히 범하랴.』

하고 왼손 끝으로 예랑의 배를 가리켰다. 그렇게 하는 주 몽의 얼굴에는 무시무시한 위엄이 있고 눈은 불이 나는가시 피 번쩍 빛났다.

『유리명이라 하시니 애기가 나면 유리명이라 부르리까?』

『그렇소. 유리명, 오늘 밤 강물에 달이 밝았으니 유리명, 달빛 속에서 났으니 유리명, 천하를 환하게 비추라고 유리 명. 그럼 부대 잘 있으오.』

하고 주몽은 벌이줄을 끄른다.

『잠깐만.』

예랑이 또 주몽의 소매를 끈다.

예랑에게 소매를 끌린 주몽은 벌떡 일어나 돌아서면서,

『왜?』

하고 예랑의 어깨를 만진다.

『이제 떠나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데 강월을 한번 안아 주 고 가오. 강월도 나와 같이 나으리를 기다리고 늙을 신센데, 강월이를 한번 안아나 주고 가오.』

하는 예랑의 말대로 주몽은 강월을 한번 안아 주었다. 강 월은 예랑의 앞에서 감히 애정의 표시를 못하고 주몽의 품 에 안겼으나 그의 가슴은 감격으로 뛰었다. 피가 모두 머리 로 올라 가 정신이 아뜩하여서 쓰러질 것 같았다.

이렇게 주몽이 강월을 안은 동안 예랑은 잠시 달을 바라 보는 듯 또 강물을 보는 듯 외면하였다.

주몽이 배에 올라 노를 저어 배가 언덕에서 멀어질 때에 예랑과 강월은 저도 모르게 팔을 벌리고 물가으로 두어 걸 음 뛰어 나갔다.

삐걱삐걱 찌걱찌걱하는 배 젓는 소리조차 순식간에 멀어지 고 말았다. 노 끝에 깨어지는 물결에 달빛이 번쩍거렸다.

『아가씨, 인제 그만 들어 가시지.』

하고 강월이 먼저 정신을 진정하여서 정신 없이 배 떠나간 데를 바라 보고 섰는 예랑의 소매를 끌었다.

『밤 이슬 맞으시고 강바람 오래 쓰이셔서 고뿔이라도 나 시면 어떡허게. 아가씨 그만 들어 가셔요.』

『오냐, 들어 가자. 그러나 잠깐만 참아. 아직도 나으리 타 신 배가 보일 듯 보일 듯하고나. 한번만 더 보았으면. 한번 만 더 그 씩씩한 모양을 뵈었으면. 그 으리으리하신 눈, 그 옥으로 쪼은 듯한 줄기찬 콧마루, 그리고 그 맑고도 무거우 신 음성, 꼭 한번만 더 뵙고지고 듣고지고.』

하는 예랑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려 달붙이 에 번뜩인다.

인제 서 있기로니, 눈물 어린 눈으로 강상을 바라보기로니 가버린 주몽의 배가 다시 보일 까닭이 없었다. 예랑은 천근 의 무게로 눌리는 듯하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향하였다.

몇 걸음 걷다가 뒤따르는 강월을 돌아 보고,

『강월아.』

하고 부르며 선다.

『네.』

『나으리께서 무사하실까?』

『무엇이요?』

『태자마마의 군사가 사방에 지키고 있어서 주몽아기를 노 리고 있다는데 무사히 빠져 나가실까. 그것이 염려가 되는 구나. 네 생각엔 어때? 무사하시겠지?』

『그럼은요. 무사하십니다.』

『어떻게 무사하실 줄 알아?』

『주몽아기를 누가 대적해요? 칼로나 활로나 누가 대적해 요? 몇 백명 몇 천명으로 둘러 싸면 몰라도, 그 따위 군사 열 스무명쯤으로야 주몽아기를 어떻게 대적해요?』

『글쎄, 그럴까. 그렇지? 그런데 칼은 분질러서 두 동강을 내어서 한 동강은 나를 주시고 나으리는 끝 없는 칼을 가지 셨으니 그것이 걱정이 된다. 부러진 칼로 당해 내실까?』

하고 예랑은 두 손을 가슴에 대며 하늘을 우러러 본다. 비 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