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일] 편집

봉표사(奉表使)의 일행은 오늘도 조선 나라 이(里)수로 해서는 오십리 길밖에는 더 가지 못하였다.

날이 워낙 폭양인 데다가 바람이 모래를 날리어 일행은 눈을 뜨지 못하였다.

그 뿐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한 평원 광야에 유록이란 간혹 있을 뿐 눈에 보인다는 것은 오직 누르고 붉은 흙빛과 모래 뿐이었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단조한 길에 일행은 멀미가 났다.

호지에 무화초(胡地無花草)하니 춘래 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글귀는 독히 왕소군의 슬픔 뿐이 아니었다.

봉표사의 말고삐를 잡는 김의동(金義童)이도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은근히 후회를 마지 않았다.

『그냥 신대감(愼大監) 댁에 고생이 돼두 있을 것을, 제에기 이놈의 고생이 무슨 놈의 고생이야. 대국 들어가면 참 별유천지 비인간이라더니, 별유천지가 아닌 건 아니라두 사람 죽일 별유천지로구나.』

김의동은 본시 부원군 신수근(愼守勤)의 집 노복으로 있다가 열아홉 먹던 해에 대문 밖에서 고누를 두다가 주인 대감의 행차가 환택하는 것도 모르고 정신 없이 앉아 있었다는 죄로 물볼기를 맞고 나니,

『빌어먹을 놈의 것 이 집에 밖에 햇볕이 들지 않더냐.』

하고 주인집을 도망해 나와 가지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필경은 역마의 마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재간이 있는 위인이라, 마부가 된지 얼마 아니 돼서 마부로서는 더 없는 마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 중원으로 봉표사 사신이 타고 가는 말의 마부로 뽑힌 것이었다. 의동이는 원일견지하던 대국 구경을 하게 되었다고 춤을 덩실덩실 추다시피 기뻐하며 길을 떠났다. 과연 그의 기쁨은 맞아, 옛 서울 개성이며, 산천도 곱거니와 인물 고은 평양이며, 의주(義州)와 통군정(統軍亭)에 묵은 여진(旅塵)을 떨고서 한번 압록강을 건너서고 보니 듣던 말과는 판이하여 무미하고 삭막한 벌판 뿐이었다. 홍진은 용서없이 일어부처 아침에 갈아 입은 옷이 저녁 때면 간장에 담갔다가 쥐어짜 입은 꼴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이것이 중원이야, 빌어먹을 중원이야.』

하고 투덜대기를 몇 번이나 해 왔다.

오늘도 하도 기가 막혀서 중얼거리는 것을 봉표사가 귓결에 듣고,

『너 무얼 아까부터 혼자 중얼대느냐?』

하고 파적겸하여 물었다.

『아뢰기는 황송하오나, 길을 떠나기 전에는 대국이라면 굉장한 줄 여기고 좋아했더니 들어와 보니 어디 사람이 살만한 곳이오니까, 그래서 씨부린 것이올시다.』

무식한 마부로는 의당 생각함직한 말에 봉표사는 빙긋이 미소하며

『너희들 무식한 것들은 그렇게 생각도 할 것이다마는, 원 중원이라고 하는 곳은 참 굉장하니라, 여기는 이를테면 저 조선 시골과 같은 데야.』

『글쎄요. 그렇기나 했으면 좋겠읍니다.』

심지어 하배들까지도 허다한 고생을 하며 오늘도 요동(遼東)이란 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았지마는 노정을 이미 작정도 하였거니와 공연히 해를 아끼다가 중로에서 고생을 하기가 일수인 까닭이었다.

일행은 요동성내에서 으뜸가는 영발상(永發祥)이라는 여관에 들게 되었다.

이 여관은 사환 행차가 떠날 날이 없는 일류 여관이지마는 측간의 설비가 완전하지 못하였다.

봉표사는 이층에 방을 잡고 하배들은 아랫층 복놋방 비슷한 곳에 쓸어 넣었다.

『빌어먹을 신세가 어딜 가든지 복놋방이라, 그러나 그건 어찌 됐던지 오늘은 밥을 좀 지어 내라고 해야지, 그 놈의 만두인지 무엇인지 허구 돼지국 좀 고만 뒀으면 살겠다.』

『어디 내가 오늘은 장궤를 보고 수작을 부쳐 봐야지.』

하고 마부 의동이가 자원해서 나섰다.

『이 자식아 공연히 반벙어리 말로 씨부리다가 창피나 보리. 이층에 올라가서 홍역관 영감을 뵙고 말씀을 좀 해줍시사고 하게.』

『미친 소리 말어라 홍역관이 우리네 통사라더냐, 공연히 큰 호령이나 받으려구, 저 자식은 남이 못된 구렁에 빠지는 게 좋은 게라.』

하고는 의동이 혼자가 방에서 뛰어나가더니 여관 장궤를 보고,

『빠이판 빠이판.』

하고 소리를 질렀다. 빠이판이라는 것은 백반이란 말로 백반이라면 쌀밥이라는 뜻이었다.

의동이는 그동안에 몇 마디 청어를 배운 것이 이제 효과를 얻게 되었다.

빠이판 빠이판 해 놓고는 뒷말을 할 수 없어서 손짓 발짓을 해가며 간신이 이편의 뜻을 전하였다.

그랬더니 장궤는 금방 요리하는 따수포(숙수)를 불러다가 백미를 내주며 밥을 지으라고 부탁하였다.

그것을 본 의동이는 코가 우뚝하고 또 자기의 말이 영검이 선 것이 유쾌해서 복놋방으로 돌아와서는 허풍을 치며 혼자 자랑하는 것이었다.

『청어란 별 수 있나 하여튼 통했으면 그만이지.』

하고 공치사를 하고 나서,

『내 덕에 대감까지 오늘 밤엔 백반을 자시게 되네.』

『왜 그동안엔 밥을 못 먹었나, 봉천에선 우리 같은 하배네들까지 먹어 보지 못한 훌륭한 음식을 얻어 먹지 않았나.』

『그게 벌써 언제라구.』

『저 위인은 뱃속에 거지가 들어 앉았는지 밤 낮 음식 타령 뿐이야.』

『아따 참 점잖다. 이자식아 점잖 빼다가 허발해서 먹는 꼴이란 더 볼 수가 없단다.』

뉘의 덕이든지 하여튼 그 날 저녁을 눈 같이 흰 밥을 먹게 되었다.

그동안에도 봉표사에게만은 백반 대접을 해왔지마는 하배들에게는 만두를 주는 것이 일수이었다.

하배들은 큰 잔칫상을 받은 듯이 백반을 퍼넣는데 그 중에도 의동이는 백반에 몹씨 주리었던만큼 허발해서 공기로 열일곱이나 먹었다.

배가 툭 터지도록 집어 넣은 것은 좋았지마는 그동안 만두만으로 지내오던 위장에다가 별안간 기름진 쌀을 집어 넣고 보니 온전히 색일 수가 없었던지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금방 설사가 날듯 날듯 하였다.

의동이는

『큰일났네 어디 가서 뒤를 보면 좋단 말여.』

하고 객점 사람더러 물어본즉 자세히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마는 바깥 공허지에 가서 아무데서나 뒤를 보라는 말인 것을 짐작하였다.

『잘됐다. 자랑 끝에 불이 붙는다고 하더니 오늘 밤에 저 위인이 돼지한테 볼기짝 깨물릴걸세.』

하고 여럿은 깔깔대고 웃었다.

의동이는 고소를 하면서도 뒤가 급한지라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가 보니 그 객점 뒤에 초평이 있었다.

의동은 그리로 가서 남의 눈에 얼른 띄지 않는 곳을 찾아서 쭈그리고 앉았다.

『 이 고장에서 제일가는 객주라면서 뒷간 하나 똑똑한 것이 없으니 이래 가지고 중원은 다 무어야.』

하고 속으로 욕을 하며 우연히 잔디밭을 들여다 보니 캄캄한 풀속에서 무엇인지 파란 인광(燐光)이 마치 야광주처럼 뻗쳐 오르는 것이 보이었다.

二[이] 편집

어찌 보면 인광도 같고 어찌 보면 서기도 같았다.

하여간 썩은 생선뼈 같지는 않아서 의동은 뒤를 보고 난 후에 그 풀속을 헤치고 본즉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되 생김생김이 매우 기이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의동은 그것을 집어서 수건에 싸 들고 여관으로 돌아와서 벽에다가 걸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글쎄 낸들 아나.』

『그럼 왜 무얼 할라구 가져 왔나.』

『무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대관절 이름이나 알어야지, 하여튼 광채가 굉장하니까 집어 본 것이 아닌가.』

여럿은 겨끔내기로 그것을 들여다 보았지마는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없었다.

『여보게 사위스러이 내버리게 그걸 갖다가 무얼 한단 말인가.』

하고 여럿은 의동이를 핀잔 주었지마는 복이 있어 그랬던지 의동이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그만두게 자네들더러 가지고 가자는 게 아닐세.』

하고 일단 벽에다가 걸었던 것을 다시 종이에다가 싸고 싸서 행장에다가 집어 넣고 길을 떠났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봉표사 일행은 요동을 떠난지 십여일만에 북경에 이르게 되었다.

북경에서의 환영은 오히려 다른 변방에서 보다 융숭하였다.

명국 정부에서는 자기의 속지와 다름 없는 조선의 사신이건마는 대접은 일국사신에게 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봉표사는 외빈을 유숙케하는 영빈관에 묵게 하고 하배들은 객주에서 묵게 하였다.

의동이는 봉표사의 말 고삐를 잡은 덕이던지 그중에도 제일 깨끗한 여관방 하나를 얻어 들게 되었다.

의동은 여기서도 동관들이 비웃는 것을 마이동풍 격으로 귀 밖으로 들어두고 행장에서 그 괴물을 꺼내어 벽에 걸었다.

『그건 왜 또 내 거는 건가, 욕을 먹으려구.』

『욕을 어느 놈이 욕을 해, 나 보기 좋아서 걸어놓는 것을.』

의동이는 동무들이 반대하고 조소하면 조소할수록 억이 나서 더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이 객점 장궤가 아침 인사를 하려고 그 방에 잠간 들어왔다가 벽에 걸린 물건에 우연히 눈이 갔다.

장궤는

『무얼 여기다가 걸어 놓으셨읍니까.』

하고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더니 크게 놀란 빛을 띄우며,

『어느 분이 이걸 가지셨읍니까?』

『내요.』

하고 의동이가 나섰다.

『이거 참 세상에 드믄 보배올시다. 팔으시죠.』

『작자만 있으면 팔겠소.』

『그럼 가만 계쇼. 제가 거간을 서겠읍니다.』

하고 장궤는 황황히 밖으로 나간다.

의동은 가슴이 두근두근 하였다.

『자 어때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날 더러 미쳤다구 조롱을 했지, 이게 천하에 드믄 보밴 줄 인젠 알았지.』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보밴지 좀 물어볼걸 그랬네그려.』

동무들도 그제야 신기해서 눈을 번뜩이는 것이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말게, 그런 걸 물어봐서는 못쓰거든, 여기서 그런 소리를 하면 저놈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졌다고 비싸게 살 것도 싸게 부를 게 아닌가.』

『그건 그래 그렇지만 아무리 보배라한들 얼마나 주겠나 돈 백냥이나 주면 횡재지, 하여튼 한턱 내야 하네.』

『이 자식들 염치란 걸 좀 알어, 여태 타박을 하다가 인제 돈이 생긴다니까 한턱이라.』

『안 한다면 망할 놈의 것 부셔 버리지.』

하고 서둔다.

『그러게 그래 한턱 냄세, 돈은 얼마를 받든지 열냥 어치만 냄세.』

『하여튼 술은 먹었군.』

하고 동관들도 그 물건을 중심 삼아 이야기를 하고 있을 즈음에 장궤가 문을 두드린다.

『쉬 ─ 술 한턱이 생기네. 들어오슈.』

장궤가 앞을 서고 점잖은 상고 수삼인이 뒤를 따라 들어와서 벽상에 걸린 물건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이거 얼마에 파실라우.』

하고 가장 살이 찐 상고 하나이 묻는다.

『돈백이나 주면 팔겠소.』

기껏 부른다는 것이 이러하였다.

『돈백 ─ 백만금 말이오니까.』

눈치빠른 의동이는 이 말을 듣고 보니 내심에 크게 놀라웠지마는 이것이 돈 백이나 돈 천의 보배가 아닌 것을 직각하고,

『그렇소, 백만금을 줘야 팔겠소.』

하였다. 다른 상고들은

『따 ─ 뀌 따 ─ 뀌.』

하고 혀를 내두르고 먼저 값을 물은 상고는 아무 소리 않고 그 물건을 다시 한번 뒤적거리고 보고 나서,

『백만금이란 건 당치 않은 말씀이고 다시 두말 아니할 테니 십만 냥에 파시오.』

한다.

『녜?』

이번에는 의동이가 놀랬다. 농담삼어 부른 값이 깎이기는 하였더라도 십만 냥이라니?

꿈인가 생신가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하여 돈백이나 생길줄 안 것이 의외에 십만금!

도리어 기가 막혀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는 것을 그 상고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런 보물이라는 것은 작자를 잘 만나야 팔리는 것이지 언제 팔릴지 모르는 것이니까 설혹 값이 더 있는 것이라도 그렇게 터무니 없는 고가를 드릴 수는 없으니까 십만냥이면 당장에 어음을 써서 드리리다.』

한다. 의동이는 다시 두말할 용기조차 없었다. 졸부하니 이러한 졸부가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마부 신세에 하룻밤에 십만 냥이라니,

『그럼 그렇게 합시다.』

하고 의동이는 그 물건을 살찐 상고에게 내주었다.

그 상고는 벙글벙글하며 그 물건을 수건에 싸고 싸서 몸에 지니고는 고이춤에서 십만금의 어음조각을 내서 의동이에게 전한다.

그 상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낯으로

『인제 흥정이 됐으니까 말이외다마는 이것 하나 얻으려고 사람을 운남성까지 보냈답니다. 자 그럼 이다음에 만나십시다.』

하고 다른 상고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버리었다.

뒤에 남은 장궤가

『참 수가 나셨읍니다. 인제 구문을 주서야 할게 아니요.』

『드리다 뿐이오. 이 어음을 찾으러 함께 가서 거기서 구문 천 량을 드리리다. 그런데 대관절 그 물건이 무슨 보배요?』

하고 물었다.

『아니 무언인지 모르고 파셨읍니다그려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내가 싸게 사서 팔아 먹을 것을 그랬읍니다그려.』

하고는

『그게 사각(蛇角)이라는 것인데 수백 년 묵은 뱀의 뿔이올시다.』

『그게 그렇게 값이 나간단 말이오.』

『천하의 보배이죠, 지금 우리 나라 황후께서 태자가 없으셔서 사각 하나를 구하셨는데 원래 사각을 한 쌍만 얻어먹으면 반드시 아들을 얻는 것이외다. 그런데 지금 황궁에 있기는 단 하나 뿐이어서 각방으로 짝 하나를 구하지마는 백만 냥의 상을 걸어도 없는 것이외다.』

『아니 그럼 지금 그것을 사간 상고는 백만냥을 받겠소그려.』

『여부가 있읍니까.』

『그 위인이 나보다 더 큰 장사를 했구려.』

하고 세 번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게 인제 열냥 어치 술을 낼게 함께 가세.』

하고 동관을 돌아다보니 동관들은 하도 기가 막히는 광경을 목도하고 거의 실신한 사람처럼 눈만 멀뚱멀뚱 하고 있을 뿐이었다.

三[삼] 편집

오늘의 의동은 어제의 의동이가 아니었다.

현전으로 십만금을 갖게 된 거부였다.

물론 그날부터 의동은 사직하고 일류 객관으로 사관을 옮기고 갖은 호강을 수삭 동안 한 연후에 수백필 부담말에 비단을 싣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의동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부족이 있었다. 돈이 없어 살 수 없을 때에는 어떻게하면 돈 백냥이나 벌어서 논마지기나 사놓을가 하고 주야로 생각이 그것이더니 급기 십만 거부가 되고 본즉 무식한 것이 한탄이요 벼슬 한 개 해 보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어느 시절에는 돈만 가지면 어느 정도의 벼슬은 임의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세태는 그렇지 아니해서 아무리 거부라 할지라도 지체가 없으면 양반 노릇은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다.

이것이 의동에게는 큰 원한이었다.

그러므로 의동이가 수거만의 재물을 가지고 돌아왔지마는 그의 이름은 그다지 크게 전파되지 못하였다.

여기서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뒤어진다.

이조 십일세(李朝 十一世) 연산군(燕山君)의 황음무도한 정사가 날로 심하여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뜻있는 신하의 얼굴에 핏기가 없으되 연산 신비의 오라버니 되는 부원군 신수근(愼守勤)과 그 아우 신수영(愼守英)의 세도는 날로 그 세력이 늘어 뜻있는 신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공조참의(工曹參議) 성희안(成希顔)이 수모가 되어 연산군을 들어내 강화로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모시어 왕위에 오르시게 하는 바람에 신수근은 마침내 아우 수영과 함께 반정파의 손에 죽고 말았다.

일세의 호화와 세도도 당자가 죽고 나니 한마루 꿈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반정파의 미움을 받아 죽었을 뿐 아니라 그 반정파가 득세한 오늘에 무슨 힘을 쓸 수 있으며 권도를 부릴 수 있으리오.

이때까지 호화롭던 신대감 집 생계는 졸지에 어렵게 되고 세상 인심은 야박하여 누구 하나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 대문에 거미줄을 치게 되었다.

집의 기둥을 잃은 수근의 안팎 생활은 날로 곤난이 태심하여 갔다.

의리와 은혜를 모르는 노복 시비들은 제각기 뿔뿔이 헤어지고 다만 두세 노복이 남아 있는 중 업산(業山)이라고 부르는 늙은 하인만은 정성으로 주가(主家)의 부흥을 생각하던 것이었다.

여러 생각 끝에 업산(業山)이는 이 전에 주가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약간의 기부의연을 얻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四[사] 편집

경상도 문경 새재(鳥嶺[조령]) 마루턱이었다.

충청도 일경을 두루 돌아다니고 얻음이 넉넉지 못한 업산(業山)은 경상도 상주(尙州)에 신대감의 은혜를 많이 입은 자가 있는 것을 생각하고 문경 새재를 넘는 중에 날이 하도 더웁고 다리도 아파서 새재 마루턱이에서 다리를 쉬고 있으려니 대관의 행차 하나가 영을 넘는데 행오가 삼엄하고 주인 되는 대관은 선풍도골에 준모를 가볍게 눌러 쓰고 은안장 준마에 높이 앉아 있는 위풍이 업산으로 하여금 감히 바로 쳐다보지 못하게 하였다.

업산이는 길을 피하여 노방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렬의 삼엄한 것과 허다한 하배, 그리고 치중(輜重)이 수십바리 ── 아무리 얕게 보아도 한 고을의 삿도쯤으로는 그만한 기구를 차릴 수 없었다.

업산이는 감히 고개를 들어 정시하지 못하고 그 일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어 허리를 펴고 일어섰더니 저만치 지나간 그 행오중에서 별배 하나이 이리로 달음질하여 오더니,

『당신이 업산이란 사람으로 신수근 신대감 댁 사람이 아니오.』

하고 묻는다.

『녜 그렇소마는.』

『그럼 우리 대감께서 데리고 오라는 분부가 계셨으니 나와 함께 갑시다.』

하고 뒤미처 따라온 말께 올려 탰다.

업산은 하여간 해로운 일이야 있으랴 하고 그의 말대로 행렬의 뒤를 따라 갔다. 가면서

『어느 대감댁 행차이오니까.』

하고 물어도 그들은,

『나중에 압넨다.』

할 뿐으로 택호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윽고 길은 노송이 창천하여 햇발이 통치 못하는 깊은 산길로 들어서서 대략 십여리를 산골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산협 하나를 지나서니 높은 산을 등진 찬합 속 같은 평지에 기와집이 즐비하고 그 중에 단청한 기와 전각 하나가 반공에 솟아 있어 네 귀의 풍경이 명랑히 울고 있다.

업산의 눈은 번쩍 띄었다. 이러한 심산궁곡 속에 저러한 고루 거각이 웬일인고, 하고 놀랐다. 더구나 그것이 대관의 저택이란 소리에 놀라고 의심하였다.

이윽고 일행이 그 경내에 들어가니 업산은 사환의 인도를 받아 주인 대감 앞에 굴복하였다.

『업산 노인 고개를 드오.』

하는 소리에 업산은 겁결에 머리를 들어 대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얼굴을 몰라 보겠소.』

하고 거듭 묻는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대관의 얼굴이 어딘지 전일 자기 수하에 부리던 김의동의 모습과 같은 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상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업산 노인, 나는 전일에 노인의 수하로 있던 김의동이요.』

『녜?』

『놀랄 것이요, 지금 녹림국 대왕이 되었으니까.』

하고 껄껄 웃었다.

『녹림현감이 된 지가 벌써 칠 년이나 되우.』

하고 놀라는 업산을 가까이 앉히고 자기의 지난 경력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의동은 정식으로 벼슬을 하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 나머지에 이 궁곡에 거각을 얽고 불평객을 모아들이어 조그마한 나라를 이룬 것이었다.

대감 의동은 수천금을 업산에게 내주어 기우러진 옛 주가(主家)를 부흥하는데 쓰게 하였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니 거액의 재물을 가져 평생을 호화롭게 살 수 있을 의동이에게도 또한 이러한 유치하고도 심각한 욕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은의 잊기를 밥먹듯하는 지금 세상에 정상의 일침(頂上 一針)이 되지 않는다고 뉘 감히 이르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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