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첨지의 죽음
박 첨지의 늙은 내외가 공동묘지를 떠나서 제 집 ─ 제 움막으로 향한 것은 거의 황혼이 되어서였읍니다.
그들은 오늘 자기네의 외아들 만득이를 이 공동묘지에 묻었읍니다. 마흔다섯에 나서 낳은 아들, 그리고 이십오 년간을 기른 아들, 지금은 그들의 보호 아래서 떠나서 오히려 그들을 부양하고 보호하여 주던 장년의 외아들 만득이를 땅속에 묻었읍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가는 길이외다.
그들은 말없이 걸었읍니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본 일도 없었읍니다. 박 첨지는 앞서고, 그의 늙은 안해는 서너 걸음쯤 뒤서서 머리를 푹 수그린 채 앞으로 앞으로 걸었읍니다. 사면을 살펴보지조차 않았읍니다. 한 마디의 말도 사괴지 않았읍니다.
십 리쯤 와서 다만 한 번, 늙은 안해가 제 늙은 그 지아비에게 향하여 좀 쉬어서 가기를 제의하였읍니다. 그 말에도 박 첨지는 발을 멈추지도 않았읍니다.
“쉬기는, 발목이 썩어졌나!”
이렇게 호령할 뿐, 뒤를 돌아보려도 아니하고 모르는 듯이 그냥 갔읍니다.
안해도 두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따랐읍니다. 그리고 이 한 마디의 말이 묘지에서 시내까지 삼십 리를 걸을 동안에 그들 내외가 사괸 다만 한 마디의 말이었읍니다.
그들이 자기네의 움막까지 이른 때는 날은 벌써 깜깜히 어두운 때였읍니다. 움막 앞에까지 먼저 이른 박 첨지는 팔을 걷고 먼쯧 섰읍니다. 뒤를 따라오던 안해도 섰읍니다. 자기의 뒤를 따라서 같이 서는 안해에게 박 첨지는 손을 들어서 움막의 문을 가리켰읍니다.
“먼저 들어가!”
안해는 힐끗 남편을 쳐다보았읍니다. 그런 뒤에 모른 체하고 그냥 서 있었읍니다.
“냉큼 못 들어갈 테야?”
박 첨지의 호령은 뒤를 이어서 내렸읍니다. 안해는 다시 한번 제 늙은 그 지아비를 쳐다보았읍니다. 그러고는 말없이 움막 문으로 갔읍니다. 그러나 움막의 문 걸쇠에 손을 댄 안해는 다시 제 그 지아비를 돌아보았읍니다.
박 첨지의 세번째 호령이 하마터면 또 나올 뻔하였읍니다. 그러나 세 번째의 호령이 나오기 전에 안해가 문을 벌석 열었읍니다. 그리고 잠시 주저한 뒤에 어두운 방 안으로 사라졌읍니다.
자기의 안해가 들어간 뒤에 잠시 더 길에 버티고 서 있는 박 첨지는 안해의 뒤를 따라서 무거운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그것은 쓸쓸한 방 안이었었읍니다 . 어제 저녁까지도(죽어 가는 아들이나마) 아들이 아랫목에 누워 있었읍니다. 그 아들이 벌써 이 세상에서 존재를 잃고는 늙은 내외 단둘이 어둡고 좁은 이 방 안에 마주 앉아 있는 것은 여간 쓸쓸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내외는 불을 켜려고도 아니하였읍니다. 어두운 방 안에 죽은 듯이 마주 앉았읍니다.
이윽고 늙은 안해의 입에서 먼저 훌쩍 느끼는 소리가 났읍니다.
“영감!”
안해가 마침내 쓰러졌읍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박 첨지는 성가신 듯이 코를 한 번 울리고 곧 외면을 하였읍니다.
“왜 이 꼴이야.”
커다란 호령이 그의 입에서 나왔읍니다.
안해는 남편의 호통에 한순간 울음을 끊었읍니다. 그러나 끊었던 울음은 그 다음 순간에 더욱 큰 통곡으로 변하였읍니다.
“누구를 바라고 살우.”
이런 외누다리를 섞어 가면서 안해는 마침내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읍니다.
박 첨지는 연하여 코를 울렸읍니다. ‘제기’ ‘방정맞게’ ‘귀찮게’ 혼잣말같이 연방 이런 말을 하면서 코를 울리며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렇게 안해의 울음을 저주하는 그의 늙은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읍니다.
박 첨지의 내외는 동갑이었읍니다. 그들은 열여덟 살 때 서로 만났읍니다.
열아홉 살에 그들은 첫아들을 낳았읍니다. 그러나 그 첫아이는 세상에 나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다른 세상으로 가 버렸읍니다.
그러나 젊은 박 첨지의 내외는 그것을 그다지 탄하지 않았읍니다. 장래에 많은 자식을 낳을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었다 하는 것은 그들의 감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를 못하였읍니다.
스무 살 때 딸을 낳았읍니다. 스물두 살에 또 딸을 낳았읍니다. 스물네 살에 아들을 낳았읍니다. 스물여섯 살에 또 아들을 낳았읍니다. 이리하여 스물여섯 살 때는 박 첨지의 내외는 벌써 이남이녀의 어버이가 되었읍니다.
일곱 살을 선두로 네 사람의 자녀를 두었다 하는 것은 ‘젊음’이라는 것 밖에는 다른 아무 밑천도 없는 박 첨지의 내외에게는 좀 과한 짐이었읍니다. 지게 하나를 밑천삼아 가지고 박 첨지는 소와 같이 일을 하였읍니다.
새벽 아직 어두워서 지게를 어깨에 걸치고 거리에 나가서는 밤이 들어서야 제 집을 찾아 돌아오고 하였읍니다. 술과 담배는 먹을 줄을 모르는 박 첨지였읍니다. 그러나 그 날 버는 돈은 그 날로 없어졌지 조금이라도 모을 수는 없었읍니다. 일곱 살 난 맏딸은 벌써 어른에게 지지 않게 많이 먹었읍니다.
세 살 난 애도 벌써 밥을 먹기 시작하였읍니다. 쌀 한 말이 사흘을 가지를 않았읍니다. 게다가 이렇게 자식의 수효가 늘어 가다가는 장래에는 몇 십 명이 될지 예측은 할 수 없었읍니다. 몸이 건강한 박 첨지는 지게꾼으로는 비교적 돈을 잘 버는 축에 들 것이로되 여섯 식구의 입을 당하여 나아가기는 좀 급하였읍니다.
스물여덟 살에 또 아들이 하나 생겼읍니다.
서른 살에 딸을 하나 낳았읍니다.
식구가 벌써 여덟이 되었읍니다. 그 가운데 젖먹이 하나를 남기고는 전부가 밥을 먹는 식구였읍니다. 한 사람이 버는 돈으로써 이 많은 식구를 먹이고 입히기는 과연 힘들었읍니다. 어느 누가 자식에게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 있으랴만 이 과도한 생산에는 박 첨지의 내외는 때때로 혀를 차고 하였읍니다. 계집아이는 몇 개 죽어도 좋겠다고 이런 이야기도 때때로 내외의 입에 올랐읍니다.
염병이 돌았읍니다. 염병은 박 첨지의 집안에도 들어왔읍니다. 그리고 열한 살을 위로 한 살 난 젖먹이까지 도합 여섯 아이를 한꺼번에 다 잡아 갔읍니다.
박 첨지의 집안은 변하여졌읍니다. 언제든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끄칠 날이 없던 박첨지의 집안은 갑자기 고요하여졌읍니다. 아무리 귀찮았어도 자기의 자식 ─ 그 여섯 남녀를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는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읍니다. 박 첨지도 입이 써서 며칠을 온갖 일에 성만 내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젊었읍니다. 젊음에 부수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다시 만들면 그뿐이다.’ 이런 단념이 차차 그들의 마음을 내려앉게 하였읍니다. 동시에 이 좀 조용한 기회를 타서 힘껏 돈을 보아서 살림살이 장래를 준비하여 보겠다는 생각도 났읍니다.
그들은 먹지를 않았읍니다. 입지를 않았읍니다. 그리고 돈 모으기에 전력을 다하였읍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집 한 간이라도 ─.”
이런 목표로서 절단보단하여 둘은 돈을 모았읍니다.
일 년이 지났읍니다. 이 년이 지났읍니다. 돈은 조금 모아졌읍니다. 게다가 이 년 동안에 안해에게는 태기가 보이지를 않았읍니다.
삼 년이 지났읍니다. 사 년이 지났읍니다. 자그마한 오막살이가 하나 생겼읍니다. 안해에게는 역시 태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 년이 지나고 육 년이 지나서 돈 몇 백 냥이 앞서게까지 되었지만 웬일인지 안해에게서는 태기가 보이지를 않았읍니다.
처음 일이 년은 무심히 지났읍니다. 그 뒤 일이 년은 이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고 지냈읍니다. 그러나 산을 끊은 지 오륙 년이 지나도록 다시 태기가 보이지 않을 때에 그들 내외는 겨우 걱정하기 시작하였읍니다. 더구나 그때는 그들의 나이가 삼십 오륙 살, 젊음의 용기가 차차 줄어지고 인생의 항로의 험하고 고적함을 겨우 느끼기 시작할 나이인지라 무릎 위에 자식을 안아 보고 싶은 욕구가 차차 강렬히 생기기 시작하였읍니다.
매달 기한을 어기지 않고 몸을 할 때마다 박 첨지는 역정을 내고 하였읍니다. 다리를 찢어 버리겠다고 저주까지 하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이전에 한꺼번에 죽은 여섯 자식 가운데서 그중 못난 놈 한 놈이라도 그저 남아 있었더면 좋겠다는 한탄을 늘 하고 하였읍니다.
동시에 돈벌이에 대한 열성이 급격하게 줄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전에 그렇게 흥이 나서 밝기 전에 나가서 어두워서야 들어오던 그가 차차 지금은 핑계만 있으면 하루종일 집안에 누워 있기를 즐겨하였읍니다.
사십 고개도 어느덧 넘어섰읍니다. 자식이 없는 중년 내외의 살림은 불안과 불평뿐이었읍니다. 남편은 바깥 일에 역정을 내었읍니다. 더구나 장래라는 것을 생각할 때는 박 첨지는 끝없는 불안을 느끼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커다란 암흑 ─ 자기의 장래에 대하여 이것 밖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를 못하였읍니다. 어떤 암흑이 어떻게 있는지는 알 수가 없되 막연하나마 그의 앞에 걸려 있는 것은 끝없는 암흑뿐이었읍니다.
차디찬 가정 ─ 그 가운데서 적의(敵意)와 동정을 아울러 품은 중년의 내외는 고적한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었읍니다.
그들이 마흔네 살 나는 해에 어떤 달 안해는 월경을 건넜읍니다. 처음에는 안해는 그것을 다만 단산의 징조로 알았읍니다. 벌써부터 생산에 대하여는 단념을 하였던 그였었지만 이 절망적 현상에 안해는 다시금 가슴을 죄었읍니다. 이 일은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읍니다.
그랬더니 한두 달 지나면서부터 그의 입맛이 현저히 달라졌읍니다. 석달이 지난 뒤에는 잉태한 것이 분명하여졌읍니다. 이리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 만득이였읍니다.
<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