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산문집/여류 시단 총평
이런 총평식 글을 쓰는 사람이면 흔히는 조선문학이란 얼마나 빈약한 것이고, 조선 말이란 살아가는지 죽어가는지로 모를 형편이고, 여류시단이란 대체 어디있는것이냐 부터 캐들어가는 버릇이지마는, 그것은 다만 평소 가슴에 맺힌 불평의 터짐이라고 할것이오, 나는 목전의 목적으로 보아, 모든 구름을 잠깐 걷어버리고 광명에 찬 앞날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조선의현대여자로서 조선말로 쓰는 시에 대해서 몇마디 비평을 써볼까한다.
본시 비평이라 하는 것이 좋은 문학을 읽는 가운데서 얻은 마음의 경험―자긔의 질거운 문학적경험을 출발점으로 해서 그 경험을 기술해보기도 하고 그 문학자의 정신의 본질을 밝혀보려고도 하는것이 떳떳한 길이오, 그 비평가에게 있어서 보람도있고 질거운 문학적사업이지마는 조선과같이 문학적작품에 훌륭한것이 비교적 없는 나라에서는 비평가가 이러한 내재적(內在的) 비평의 길만 밟고 있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고 학교선생님과같이 이 글은 여기가 잘되었다 여기가 잘 못되었다 시상(詩想)의 착안이 잘되었다 못되었다를 논하는것은 조선과같이 민족전체가 작문에대한 기초가 확실히 서지 아니한 나라에서는 한때의 피치못할일는지 모르나 그러한 친절이란 헛되이 수고롭고 마음괴로운 일인것이다.
그러나 만연한 감상을 한편의 글로 종합해 본다는것은 언제나 자기공부에 가장 유익한것이다. 위선 거년에 발표되어서 여러 사람의 시비의 초점이 된 모윤숙 녀사의 「빛나는地域(지역)」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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允淑女士(모윤숙여사)의 시집이 발표되자 그것은 하나의 시끄러운 문단적 사실이 되었다.
훼여(毁轝)가 상반이라고 하겠으나, 여자로 첫시집을 내었다고 무조건한 호기심으로 칭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는, 그의 시 그것을 비난하는 소리가 한편으로 높았다. 무조건한 칭찬이란 본시부터 시를 시로 보는 사람에게 문제될 거리도 안되는 것이지마는, 모윤숙어사의 감상성(感傷性)을 공격하는 소리에 대하여서는 나는 오히려 모씨를 변호하는 편에 서려한다. 눈물에 빠지기쉬운 성벽이 자기자신에게 행인지 불행인지는 알수없으나, 문학 더구나 시에 있어서 눈물을 부정하려는 태도는 헛된 노력에 지나지 아니할것같다. 만일 그의 시가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을 말함뿐이오 남을 울릴 힘이 없다하면, 그것은 시작(詩作)의 미숙에 죄가있는것이오 결코 감상성 그것에 허물이 있는것은 아니다. 세게적인 범위와 삼사천년의 역사를가진 민요(民謠)를 비롯하야 문자로 전해오는 시 전부를 통해서, 그 가장 예술적인것은, 눈물과 맥을 통하지 아니한것이 없다. 미래의 시가 어떠한 길을 밟을지 우리로서 추측할수는없는 일이지마는 오늘날 우리로서는 시가운데 눈물을 공격할 아무러한 이유도 없을것이다 우리의 처지를 한번 살피고, 주의를 한번 둘러볼때에 눈물의 새암을 말려버린다하면, 대체 우리는 어디다 붓을 적셔서 시를 써야 할것인가, 도로 물어 보고 싶다.
우리가 주장하여야 할것은 감정을 감추고 죽인다는것보다 대담하게 감정을 발표할 권리와 감정해방의 원측이다. 우리의 민족적감정이 어느 의미에서 불란서 혁명이전 개인자유주의 이전의 봉건적유물에 채워있다는것을 생각지도않고 역사를 너무 껑청뛰어서 감정해방과 개성강조(個性强調)의 원축을 버리려하는것은 도리어 시대의 역행이라고도 할수있다.
- 은빛실 넘실 넘실 창문에 흐르고
- 붉게핀 해당화날리는 그향기
- 밤깊어 잠든 나를 머리푼채 나오라니
- 조용히 문열고 뜰가로 거니노라.
그의 시에는 흩어진 머리칼같이 황홀히 흐르는 달빛같이 어딘지 붇들기어려운 곳이있다. 이것을 상(想)의 분방(奔放)이라고 하는이도있고, 황당(荒唐)한 수사(修辭)라고 하는이도 있다. 수사일진대 황당하고 상일진대 분방한것이다. 한개의 시에서, 다른 말로 설명하면 이러이러하다고 할수있는 분명한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그시로서의 아무런 결점도 아니다. 수사의기초가 부족하다면 그것은 시인의 수치가 될것이나, 언제나 시는 수사이상의 것을 목표로 하지아니하면 아니될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의미를 밝힐수없는 시의 한줄이 우리의 귀를 떠나지 아니하는 음악될수가 있는것이다.
- 눈물의 강우에 파란빛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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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달픈 흐름은 언제나 끝나나 (반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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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겹이 둘러싼 구름사이로
- 흩어진 생각을 한줄에 모으는
- 그믐하늘의 쪽달을 봅니다 (쪽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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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때때로 칠ㅅ빛나는 어둠에서
- 신음 하는 내 혼의 소리를 듣습니다 (소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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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나의 영혼의 고향
- 영원히 젊어있는 바다의 품이어
- 푸른 미소에 휘감긴 그리운 이꿈을
- 차라리 새벽없는 어둠속에 잠들게 하여라 (바닷가에서의첫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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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식이 가버린 포근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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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엔 수선화 그물결 황홀하여
- 달빛에 취한 이슬 고운 꿈을 이루오 (찾는 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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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소리 들우에 헤엄질치고
- 비인 방 설렌 가슴 홀로 떠돌아
- 어둠우로 그물결 가엾은 생각이어 (그리움에서)
이 시집가운대 몇편의 마음끄으는 작품도 그가운데 애써맨들어 붙이지아니한 몇줄이, 혹은 그 첫절(節)한절이 그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가지고 있다. 이 시인은 결코 의식적수사(意識的修辭)에 의해서 시를 쓸 시인이아니다. 몽환(夢幻)가온대서 흘러나오는것을 그대로 정리하여야 할것같다. 「조선의딸」이나 「오빠의눈」같은 작품은 비록 수사에는 흠이 없다해도 그본체 감정의 미약함으로 인해서 시로서는 하잘것없는 시일것같다.
이 한권의 시집가운데는 약간의 소재(素材)가 있을뿐이오 한편의 완성된 시도 없다고까지 하는이가있다. 그러나 이 시인의 장점은 그 황홀난측(恍惚難測)한 시경 그것에 있는것같다. 그 황홀한 시경 그것에 지구력(持久力)과 통제력(統制力)이 가해져서, 그 가운데서 한줄이나 한절의 시만 흘러나오게 할것이 아니라 한편의 시가 이루어나오는 날이 이 시인의 대성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의 황홀난측한 시상과 표현 또는 그의 감상성(感傷性)을 버리라 하는것은 그의 시의 자살을 권하는것과같다. 열편을 뽑아 냈드면 총망받는 여시인되기에 부끄럽지 않은걸 백편을 모아냈기때문에 읽고 정신을 차릴수없는 시집이 되고말기는 하였으나 이것은 시집편찬의 기술문제요 시 그것의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세상이란 북데기속에서 애써 진주만을 찾아주는것이 아님에야.
같은 해에 같은 여자로서 같이 시집을 내었으면서 모씨의 작품이 말성 많은데 비하야 너무나 문제권외에 서있는것은 장정심여사(張貞心女士)의 「주의승리」일것이다.
소리없이 그윽한데 향기를 엿보려는 생각이 필자로하여곰 그시집을 읽게하였다. 이시집은 종교시집이라는 제목을 가지고있고 이 저자는 따로이 서정시집한권을 멀지않아 출판하리라함으로 필자의 의견도 쉽게 고쳐질른지모르지마는 이 한권의 시집만으로 비평한다면 비난이 앞서려하는것을 어쩔수없다.
종교시라면 종교적심정이 시로 되는것이니까, 감정의시화라는 점에서 서정시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아무것도없다. 특수취급을 할것도아니고 받을일도아니다.
- 따라서 여러가지 고운 생각이
- 저별을 바라보면서 하나 둘씩
- 자미있게 연상되오니
- 이밤을 이대로 기리 연장하소서(달밤의끝절)
별을 바라보면서 여러가지 고운 생각이 떠올랐다하면 그 고운 생각을 하나씩 하나씩 구체적으로 그려보여야만 좋은시가 되는것이지, 그냥 여러 고운 생각이 떠올랐다고만 해가지고는 언제나 시되기 어려운 것이다.
- 닫힌문 두다리는 은근한 저소리
- 고요한 밤중마다 두다리니
- 아는가 모르는가 잠들은 주인
- 귀빈이 오래오래 두다리는 저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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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힌문 열어줄 저주인
- 행복을 가져온 저귀빈을
- 그대로 섭섭하게 돌아가게 하려나
- 늘깨어 문두다리는 저소리 들으라 (닫힌문전편)
이러한것들이 이시집가운데서는 표현이 비교적 우수한편이고 또 그 시상이 보통 서정시와 공통되는것이라 종교적 시상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않고도 비평할수있는것인줄 알지마는 그렇게 훌륭한 시라고 하기는 어려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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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비가 처량스러이 나려오는듯이
- 내마음 울고 싶습니다
- 저비에 꽃들이 넋없이 떠러지듯이
- 내마음속에 우슴과 즐거움도 (비와같이의일절)
- 좁은 이 맘을 너그럽게
- 인색한 마음을 관대하게
- 교만한 생각을 겸손하게
- 성신의 역사가 시작하소셔 (성신의 역사에서)
시작(詩作)이 이렇게까지 평범해져서는 아무런 감동도 줄수가 없을것이다. 종교시대에 있어서는 시상이나 그밖에 재료가 새로운 발명을 필요로 하지않고 성경같은데서 오는것이니까 저자 독특의 종교적감정까지를 바라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독특히 청신한 표현과 딕숀이 절대로 필요할것이다. 더구나 기성의 시형인 시조형을 빌어서 기존(旣存)의 재료인 종교적사상을 표현할때에는 얼마나한 수사의 괴롬을 겪어야만 문학이라는 이름에 적당한것이 될것인다. 하나를 잡히는대도 들추면
- 아버지 귀한 음성 언제 또 듣사올지
- 옛날에 중한교훈 날마다 새로워서
- 오늘도 옛교훈만은 기억하고 있어요
전권을통해서 독특한착상, 독특한 표현, 미묘한 수사를 만나보기가 어렵다. 천사와같이 세상을 떠나서 들어앉아 있는이를 일부러 끌어내다 악평으로 욕을 보이는것같아서 미안의 정을 금하기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고언도 시작의 년조나 분량으로 보아 이 저자에게 기대하던바가 여기 그치지 아니했던 까닭이다. 그러고 필자의 생각같아서는 문학이상인 하나님(혹은다른 주의라도)을 위해서 문학으로 봉사하려는 이는 문학을 그저 문학으로 질기는이보다 오이려 문학에대한 더 면밀한 고려와 열열한 애정으로써 고심의 표현에 까지 갈 의무가 있는것같다.
시조를 가끔 발표하는이에 김오남(金午男) 씨가 있다
- 떨리면 다시 못필 꽃이라 한때뿐의
- 꽃다운 그시절을 누릴듯도 싶다마는
- 스러질 향기라하오니 탐할무엇 없세라.
그의 작품이 잡지에 흩어져 있으므로 세평을 하기는 어려우나 그 표현의 간절하고 정밀함이 족히 우리의 마음을 끄을만하였다. 다만 한가지 느껴지는 불만은 그시가 늘 인생의 덧없음의 개념(槪念)에서 출발하야 명확한 형상(形象)과 구체성을 띠인 표현 즉 개성화(個性化)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그 개념의 설명에 그치고 마는수가 많다는것이다.
대관절 시인이라는 이름에 한게가 분명한것이 없다 반드시 한권의 시집을 내야만 되는것도 아니오, 반드시 삼백편을 채워야만 시인인것도 아니다. 더구나 사람이 쓰는것을 모도 발표하는것이 아닌지라 한두편의 시를 어느 지면에 우연히 발표하고 다시는 그이름을 나타내지 아니하여도 언제까지 그 시편이 잊혀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 어둑침침한 등잔밑
- 검은 그림자 등지고 앉었거니
- 세상소리 어둠에 막혀
- 내귓가 묘지같이 고요합니다.
이것은 어느 여학교잡지에 있던 시의 일절이다. 대단히 얌전한 시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몇 사람의 숨은 이름을 들출수있고, 또 내가 모든 여자의 일기장이나 수첩을 뒤져볼수있다면 더많은 이름을 들수있기에 틀림없을 터이지마는 이런것은 모도 그 순진한 심정에대한 심례에 지나지 아니할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것이 찬란한 열매를 맺어 우리의 눈이 그것을 아니볼래야 아니볼수 없게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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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느 비평가가 여류작가를 욕해서 여류작가는 그 문학적 역냥(力量)으로 현대의 남자사이에 서서나가는것어 아니라 현대 저널리즘이 상품으로서 그 구색을 맞후기위해서 여류작가를 새이에 끼우는데 지나지 않는것이라고 한일이 있다. 이말에는 그 악의를 따로하면 한편의 진리가 있다. 즉 여자의 쓰는것은 남자의 쓰는것과 무엇이든지 다르니까 여자의 문학이 따로이 나타나는 것이란말로 볼수가있다. 문학은 언제나 자기의 체험(體驗) 가운데서 울려나오는것이다. 체험이라하면 자기가 직접 경험하는 사실이나 독서와 다른사상의 영향으로 마음의 세계에 이러나는 변화까지를 의미하는것이다.
제각각 체험이 다름으로 제각각 개성이다른 문학을 낳을수있다. 각기 개성이 다름으로 여러사람이 글을 쓸필요와 권리가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쓰는것에는 남자로서 따를수없는 세게가 있으므로 여류문학자가 따로이 존재할 권리와 필요가 있는것이다.
여자는 흔히는 웅대하고 복잡한 체험을 가질 기회가 남자보다 적은 대신에 염려(艶麗)하고 섬세(纖細)한 자기의 세게를 따로 지키기에는 오이려 편리한 때가있다.
현대같이 복잡한 세게에 있어서 사람들은 정치라든가 경제에 정신이 팔려 서정시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운것은 거의 잊어버리려는 형편에있다. 평소에 자기의 고독한 감정의 세계를 지키는 소장이 있는 여자는 앞으로 조촐한 그릇에 순수한 감정을 소복히 담아 놓는것같은 서정시의 세계에 있어서는 오이려 중요한 일꾼이 될른지도 모른다.
선진의 구미각국에서는 여류문사의 수가 굉장히 많은것같다.
그러기에 독일 어느 비평가가 거리에 나서면 유대인을 맞날수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의 세계에서 여자를 아니 맞날수없다고 말했다하고 미국의 시선집(詩選集)같은것을 보면 여자시인이 반수는 되는것같다. 그래서 영국의 어느 남자비평가가 우리는 앞으로 서정시는 여자에게 미루어 주는것이 좋겠다고 한 일이있다. 조선남자로서는 여자에게 미루어 줄 서정시의 재산이라고 많지못하니까 조선의 여류 시인들은 조선의 서정시를 자기네들의 손으로 건설하겠다는 기개를 가져야 할것같다.
여자의 재능은 남자에 비해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않고 꼭 같은 것임으로 남자와 같은 정도의 성과만 얻으려해도 그와 같은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것이다.
그런데여자애게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러한열매를 맺기까지의 노력을 하는 사람이 남자보다도 쉽지않은것 같다.
우리가 이런 비평을 쓸때에 조선 여류시단의 과거의 업적이 세밀한 비판에는 힘을 주지 않고 오이려 앞날의 히망을 고조(高調)하는것과같이 이미 출세하신 또 새로 출세하려하는 여러분 여류시인들도 지나간 공적은 오이려 잊은듯이 버려두시고 오로지 무한한 앞길을 위해서 노력하시기를 바라고 나는 이 방자한 비평의 붓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