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산문집/신미 시단의 회고와 비판
記者(기자)의 指定(지정)하신 題(제)와枚數(매수)아래서 어디 적어보겠읍니다.
詩人(시인)은 天成(천성)이요 배화되는것이아니라하며 詩(시)란 感情(감정)의 自然(자연)스런發露(발로)며 奔放(분방)한 橫溢(횡일)이라 傳統(전통)의멍에가 한번 强(강)해지면 그생기를잃고 손에 붙들어보면 詩(시)의靈鳥(영조)는 이미 숨끈치는것이라고 이러한 말들을 합니다.
朝鮮新聞(조선신문)이 紙面(지면)을 擴張(확장)하면서 學藝欄(학예란)이늘고 數種(수종)의 月刊雜誌(월간잡지)가 發行(발행)되므로부터 詩運(시운)은 갑작이 隆盛(융성)해진듯합니다. 印刷(인쇄)되는 詩(시)의分量(분량)의 壯(장)하고 盛(성)한양은 (꼬집어하는말이아니라) 貧弱(빈약)을 共通(공통)의 形容詞(형용사)로하는 諸面相(제면상)을 일로꾸미여주는듯합니다.
나는슬프다
내가슴은찌여진다 또는
오 새론빛은퍼진다
내마음은 기쁨에뛴다
내앞에는 새로운 希望(희망)의바디가 열린다
그들은 이렇게 꾸밈없이 感情(감정)을 發露(발로)시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自由詩(자유시)의 가장 忠實(충실)한信奉者(신봉자)가 아닐까요. 將來朝鮮(장래조선)은 詩(시)의成長(성장)에 가장 宜土(의토)가 될것같읍니다.
참으로 그럴까요. 『그렇다』하고 싶습니다마는 『그렇다』 할수없는것이 슬픕니다. 값싸고 물건좋은것이 별로 없는법입니다. 자기의 감정을 그냥 들어내놓아서 무턱대고 傑作(걸작)이되는것이라면
그렇다면 마을 녀편네나 술주정군이 쌈하면서 들어퍼붓는 욕(그것도 그의 感情(감정)의 發露(발로)가 아닙니까)과 高貴(고귀)한 詩人(시인)의 會心(회심)의作(작)이 다를것이 없게될것입니다.
詩(시)를 애써 지을보람이 어디있으며 남의 좋은詩(시)를 읽을맛인들 무엇입니까. 좋은詩(시) 궂은詩(시)란말은 어디서 成立(성립)됩니까.
詩(시)의 主題(주제)되는感情(감정)은 우리日常(일상)의 感情(감정)보다 그水面(수면)의 훨신 높아야됩니다.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흘러듭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詩(시)를 읽을때에 거기서 우리에게 흘러나려오는 무엇이 있을것이아닙니까. 더 高貴(고귀)한感情(감정) 더 纖細(섬세)한感覺(감각)이 남에게 없는 『더』를 마음속에 가져야 비로소 詩人(시인)의줄에 서볼것입니다.
그러나 이『더』는 나타날『더』라야 할것입니다. 우리의 感覺(감각)이 觸知(촉지)할수있는 나타나있는것만이 우리感受(감수)의 對象(대상)이 되는것입니다.
그림그리기를 배호지않은사람이 좋은경치를 그리기위하야 붓을들기로 그려놓은것을 본 우리는 웃을뿐입니다. 美人(미인)을 앞에놓고 石膏(석고)를 만저거려도 손의熟練(숙련)이 없으면 훌륭한 彫像(조상)의出來(출래)를 우리는 헡되히 기다릴것입니다. 詩(시)의表現(표현)이 그림그리기나 彫刻(조각)만들기와 그原理(원리)에있어서 다름없을줄은 사람마다 알면서도 拙劣(졸렬)한 말솜씨로 그려지지아니한그림과 보기숭한 彫像(조상)을 만들어 사람 앞에 붓그러운줄모르고 내놓습니다.
高貴(고귀)한感情(감정)과 表現(표현)의能力(능력)
이것을 기르는데는 앞서짓는사람의 좋은 作(작)이 본보기가 될뿐입니다.
세사람이 트집잡는데서보다 한사람이 기뻐하는데 若干(약간)의 意義(의의)가 있는것입니다. 以下(이하) 나는 一九三一年(일구삼일년)에 發表(발표)된 詩作(시작)가운대서 發見(발견)한 美(미)를 短評(단평)해보려합니다. 片石村(편석촌)의 데뷰는 今年詩壇(금년시단)의 새로운 收穫(수확)입니다. 그는 詩作外(시작외)에 詩論(시론)에도 적지않은 努力(노력)을 하였읍니다.
그의 詩(시)는 한개의 獨特(독특)한 個性(개성)입니다. 그는 새로운 都市(도시)의美(미)를 理解(이해)합니다. 그를 걸핏 모더니스트라 부르지마는 그에게는 그亨樂的要素(향락적요소)가 없읍니다. 거기서 도로혀 간열픈 哀傷(애상)을 追求(추구)합니다. 그는 이제 言語(언어)의 요술을 硏究(연구)하고있는 鍊金學者(연금학자)입니다. 金麗水(김려수) 그가 最近(최근)에걷는길은 찾는이 별로없는 숲울속길 處士(처사)같이 조용한 瞑想(명상) 成心(성심)없는 어린애같은 驚異(경이) 그는 빛갈없는 빛을사랑하려하고 生命(생명)없는흙에서 生命(생명)의驚異(경이)를 發見(발견)하려합니다.
芝溶(지용)은 新女性十一月(신여성십일월)에 『초ㅅ불과손』이라는 新作(신작)을 냈읍니다. 『완─투─드리』하고 손을 펴면 거기서 萬國旗(만국기)가 펄펄날리는 『말슴의요술』을 부립니다. 往年(왕년)의 센티멘탈리즘은 어디가고 람보가 『詩人(시인)의詩人(시인)』이라는 稱(칭)을 드름같이 그는 우리의 『詩人(시인)의詩人(시인)』입니다.
永郞(영랑)의 詩(시)를 만나시랴거든 『詩文學(시문학)』誌(지)를 들추십시오 그의 四行曲(사행곡)은 天下一品(천하일품)이라고 나는 나의 좁은 聞見(문견)을가지고 斷言(단언)합니다. 美(미)란 우리의가슴에 저릿저릿한기쁨을 이르키는것(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 ever.)이라는것이 美(미)의 가장 狹義的(협의적)이요 適確(적확)한 定義(정의)라하면 그의 詩(시)는 한개의 標準(표준)으로 우리앞에 설것입니다. 그의 高貴(고귀)한 潔癖性(결벽성)이 『詩文學(시문학)』 以外(이외)의 舞臺(무대)에 얼굴을 나타내지않는것이 섭섭한일입니다.
玄鳩(현구)는 『黃昏(황혼)』(詩文學三號(시문학삼호))에서 그嚴莊(엄장)한 슬픔의 美(미)에잠기고 『풀우에누어서』는 뜬 구름같이 덧없는 그生命(생명)을恨歎(한탄)합니다. 여기서 까무러치는 이詩人(시인)을 우리는 부축해 이르켜야될것같습니다
辛夕汀(신석정) 고요한 바다우에 붉은노을을 저무는줄도 모르고 無心(무심)히 바라보고앉었는것같은 이詩人(시인)의 고요한瞑想(명상)을 나는 사랑합니다.
異河潤(이하윤) 英佛詩人(영불시인)의 紹介(소개)와 飜譯(번역)밖에 그의 詩(시)에는 조심스러운마음씨로 우리 周圍(주위)의 참아보지못할 情景(정경)에對(대)한 근심이있읍니다.
許保(허보) 그는 검은 밤의 나라의 별다른言語(언어)로 모든事物(사물)을 새로哲學(철학)하려는 恠異(괴이)한 詩人(시인)입니다. 그러나 그의 追究(추구)를 中途(중도)에서 放棄(방기)하는弊(폐)가 가끔있읍니다.
金華山(김화산) 내가 조금도 사랑하지않는 쓸쓸한 그女人(여인)이 나를 기다리고있읍니다.
당신의 情緖(정서)의흐름은 걸핏하면 도막이 나려합니다. 당신은 쪼각을 기워부쳐서 『히나』를 만들려하십니까. 體貌(체모)를 아조버리고 퍼더버리고 울어보면 어떻습니까.
요한의 詩(시)는 갈수록 더平坦化(평탄화)하는것같습니다. 『봉사꽃』에만 해도 꿈속같은 甘美(감미)한 時調(시조)가 끼였읍니다마는 그는 人造絹(인조견)의 街上風景(가상풍경)을 석줄글로 그려 時調(시조)를 씁니다. 그러나 그 수다한 原稿(원고)를위한原稿(원고)를 추려내버리면 그는 本質的(본질적)으로 그詩情(시정)의胎(태)를 잃지않은 眞珠貝母(진주패모)이올시다.
岸曙(안서) 바다에서온 소리와같이 엷은 哀愁(애수)와 無常(무상)의 同一律(동일률)을 쉬임없이 울리고있읍니다. 新詩十年(신시십년)의 苦節(고절)을 혼자 등에지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의多作(다작)은 그의 詩情(시정)을 稀釋(희석)시킵니다. 一篇(일편)의 詩는 一種天來(일종천래)의 靈感(영감)을 中心(중심)으로하고 비로소 成立(성립)되는것이 아닙니까.
巴人(파인) 題目(제목)을 먼저 지어놓고 거기 마쳐 俗謠(속요)를 지어냅니다. 樂譜(악보)에 불혀 자미있고 없을것은 내알바아니나 읽어서 아모런 詩味(시미)가 없읍니다.
韓晶東(한정동)의 江西(강서)메나리曲(곡)은 今年(금년)에는 發表(발표)가 적으나 그꾸준한 努力(노력)뿐만아니라 그結果(결과)로서도 當今(당금) 獨步(독보)입니다. 歌曲(가곡)으로서 流行(유행)을 차지하지못하는것은 詩人(시인)의 罪(죄)는 아니올시다.
春園(춘원)이 아기의노래와 자장가를 씁니다. 참말 좋은일입니다.
아가아가 우리아가
젓잘먹고 잠잘자고
모락모락 자랐으라
수명장수 하였으라
이러한 幸福感(행복감)을 맛보는者(자) 우리가운대 많지않을것입니다.
아모리 짧게주려도 指定(지정)하신 枚數(매수)는 超過(초과)됩니다. 時調(시조)와 譯詩(역시)에 對(대)해서는 一瞥(일별)도 못하였읍니다. 作品(작품)의 引用(인용)이 도모지 없으니 혼자말한셈밖에 안됩니다마는 作品(작품)에 記憶(기억)이 있으신 讀者(독자)는 생각나시는바이 있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