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社會여 文壇에도 一顧를 보내라

『우리에겐生活이업다!』

作家들은 드듸어 全朝鮮에 呼訴함

文學을 버리고 文化를想像할수업다

李 箱

도야지가 아니었다는 데에서 悲劇은 出發한다. 人生은 人生이라는 그만의 理由로 판토폰 三그램의 靜脈注射를 處方받아 있는 것이다. 피테칸트로푸스의 네댓 조각되는 骨片에서 爲先 風雨 때문에 或은 敵의 來襲에서 가졌을 陰森한 厭世 思想의 第一號를 엿볼 수 있고, 그것이 漸漸커짐으로 해서 人類가 自殺할 줄 알게까지 墮落되고 進步되고 하여, 地上에서 맨 처음 이것이 決行된 날짜가 傳說에 不明하되, 人間이라는 觀念이 서고부터 빈대 血痕 點點한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서 요한 슈트라우스 翁의 內聲을 듣게까지 된 데 있는 우리끼리 고자질하는 有像 無像의 온갖 苦로움이야말로,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過失에서부터 世襲이 始作된 永劫 末代의 烙刑이지, 이 鄕土만이 이 鄕土라고 해서 받는 寃罪인 것처럼 嘆息할 것이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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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鄕土는 이 鄕土이기 때문인 理由만으로 해서 草根木皮로 목숨을 잇는 너무도 끔찍끔찍한 많은 성가신 食口를 가졌다. 또 應接室에 걸어 놓고 싶은 한 장 그림을 사되 한 꿰미 맛있는 꼴뚜기를 흠뻑 에누리한 끝에야 사듯이 그렇게 점잖을 수 있는 몇 되지도 않는 一家도 가졌다. 이 中間에서 그중에도 第一 허름한 空籤을 하나 뽑아 들고 어름어름하는 축이 이 鄕土에 태어난 作家다. 카인 末裔의 罪業에 文學 때문에 가져야 하는 後天的인 듯도 싶어 보이는 宿命에 加하여 이 鄕土에 태어났대서 안 뽑을 수 없는 空籤 딱지를 몸에 붙이고 이 鄕土의 作家는 그럼 누구에게 文學을, 그의 作品을 떠맡길 수 있느냐. 作家는 大體 草根木皮 편이냐 應接室 편이냐.

才能 없는 藝術家가 제 貧苦를 利用해 먹는다는 콕토의 한마디 말은 末期 自然主義 文學을 업신여긴 듯도 싶으나, 그렇다고 해서 聖書를 팔아서 피리를 사도 稱讚받던 그런 治外法權性 恩典을 얻어 입기도 이제 와서는 다 틀려 버린 오늘 形便이다. 마르크스主義 文學이 文學 本來의 精神에 비추어 許多한 誤謬를 指摘받게까지끔 되었다고는 할지라도, 오늘의 作家의 누구에게 있어서도 그 恐喝的 暴風雨的 經驗은 큰 試鍊이었으며 敎唆 얻은 바가 많았던 것만은 事實이다. 聖書를 팔아서 고기를 사다 먹고 양말을 사는 데 躊躇하지 아니할 줄 알게까지 된 오늘, 이 鄕土의 作家가 作家 노릇 外에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或은 하려도 할 수가 없다고 해서 作品ㅡ作家 內面生活의 枯渴과 文壇 不振을 오직 作家 自身의 貧困과 苦悶만으로 트집 잡을 수 있을까.

한편은 조밥과 이밥의 맛은 똑같다는 知識에 있어 훨씬 더 確實性이 있겠고, 한편은 돈내기 麻雀과 貿易商 經營에 關한 逸話로만 口味가 훨씬 더 당길 것이니, 이것은 한 篇 創作에 感激하는 버릇보다도 赤字를 내기 쉬운 出版 事業보다도 훨씬 더 眞實한 趣味일 것이고, 그 버릇을 못 고친다고 해서 作家가 이편저편 할 것 없이 섣불리 說諭를 하려 들거나 업신여기려 들었다가는, 그것은 그야말로 어둡기가 限量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作家를 世上 일을 너무 모르는 사람 或은 第一 게을러빠진 사람으로 돌리게 되는 수가 그래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한 篇의 敍情詩가 서로 달착지근하면서 砂糖의 分子式 硏究만 못해 보일 적이 꽤 많으니, 이것은 엊저녁을 굶은 悲哀와 東新株 暴落 때문인 落膽과 有島武郞의 『우마레이즈루나야미』와 한 作家의 窮상스러운 身邊雜事와, 이런 것들의 輕重을 무슨 天秤으로도 論하기 어려운 것이나 恰似한 일이다. 文化를 擔當하는 職責이 제 各各 달라서 그런 것이니까, 『西部戰線異狀없다』만큼 팔리지 않는 創作集을 좀 出版해 달라고 조르지도 말고 ‘밥부터 주’ 하는 村落에 文藝講座를 열지도 말고ㅡ, 그럼 作家는 自身의 貧苦 또는 이런 가지가지 失望으로 해서 文學을 悲觀하여 文學을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를 結局은 일으키게 되는 것일까.

文學이 社會에 앞서는지 같이 걷는 것인지 뒤떨어져 따라가는지, 그것은 如何間에 文學이 없어진 社會나 文化를 想像하기는 어렵다. 文學을 믿는 作家는 그 不利 아래 모파상이 雜誌를 할 적에 甘言利說로 투르게네프를 꼬여서 도스토옙스키의 『惡靈』의 原稿를 얻어 싣고는 뒷구멍으로 막 辱을 하였다는 가십이 주는 豊富한 暗示에도 비쳐서, 순대 장사를 하면서 文藝 記者로 지내면서 外交官 노릇을 하면서 默默히 大膽히 營營히 있을 것이다. 卽 손이 몸소 잡수실 고추장을 누구에게 가서 얻어 오라는 것이냐.

누구에게 읽히느냐. 언제 무슨 힘으로 作品을 내어놓겠느냐. 그러나 文學 本來의 任務는 좀 더 慾心이 큰 것이리라 믿는다. 순대를 팔아도 팔아도 오히려 貧苦에서 免치 못하였다거나, 그 짓이나마 하려야 할 수도 없다거나 하는 데서 提出되는 가지가지 問題는 저절로 別다른 일에 屬할 것이며, 이에 作家는 作家된 資格에서 마땅히 하여야 할 궁리가 또 있을 것이다. 이래도 견딜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 가장 眞實하고 行動的인 文學의 徒의 最後의 試金石이 힘든 짓을 해내자니 聖書는 벌써 다 살코기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래서 地上 어떠한 位置에서도 健全한 文學이 있는 로맨틱하지 아니한 眞正한 作家의 모양을 發見할 수 있게 될 것이로되, 이러한 愚問愚答이 이 鄕土인데도 果然 쉽사리 首肯될 수 있을는지.

「朝鮮中央日報」, 1936.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