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121장~1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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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욱이가 적삼 소매와 치마를 걷고 앉아서 부인의 손을 쥐물며,
“얘 영채야, 자 우선 좀 주무르자.”
영채도 병욱과 같이 소매와 치마를 걷고 노파의 뒤로 가며,
“자, 어머니는 좀 일어납시오” 하고 자기가 대신 병인을 안으려 한다.
“웬걸요, 이렇게 전신이 흙투성이야요. 고운 옷에 흙 묻으리다” 하고 좀처럼 듣지 아니한다. 하릴없이 영채는 그 곁에 앉아서 흐트러진 부인의 머리를 거누어 준다. 선형은 앉아서 발과 다리를 주무른다. 구경꾼들이 죽 둘러선다. 세 처녀의 하얀 손에는 누런 흙이 묻는다.
얼마 않아서 형식이가 땀을 흘리며 뛰어오더니,
“자, 저리로 갑시다. 방에 불을 때라고 이르고 왔으니…….”
노파는 눈물을 흘리고,
“생아자 부모라니, 이런 고마운 일이 없쇠다. 아이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나” 하고 젊은 사람더러,
“얘, 자 업고 가자” 하며 병인을 일으켜 앉힌다. 젊은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형식의 일행을 실적 보며 병인을 업고 일어난다. 병인은 두 팔로 업은 사람의 목을 쓸어안고 얼굴을 어깨에 비빈다. 형식이가 앞서고 흙 묻은 노파가 한 손으로 병인의 등을 누르고 세 처녀가 뒤로 따라온다. 구경꾼들도 수군수군하면서 한참 따라오더니 하나씩 둘씩 다 떨어지고 말았다.
객주에 들여다가 옷을 갈아입혀 누이고, 일변 형식이가 의사를 불러오며, 일변 세 처녀가 전신을 주물렀다. 노파는 병인의 머리맡에 앉아서 울기만 하더니 가슴이 아프다고 하며 눕는다. 젊어서 가슴앓이가 있었는데 종일 찬비에 몸이 식어서 또 일어난 것이다. 영채와 선형은 태모를 맡고, 병욱은 노파를 맡아서 간호한다. 노파는 한참씩 정신을 못 차리다가도 조곰 정신이 들면,
“이런 은혜가 없어요. 백골난망이외다. 부대 수부귀다남자하고 아들딸 많이 낳고 잘살다가 극락세계에 가시오” 한다. 세 처녀는 고개를 숙이고 씩 웃었다.
영채와 선형은 땀을 흘리며 태모의 사지를 주무르고 배도 쓸어 준다. 영채의 손과 선형의 손이 가끔 마주 닿는다. 그러할 때마다 두 처녀는 슬쩍 마주본다. 영채가 선형더러,
“제가 부엌에 가서 물을 끓여 올게요” 하고 일어선다. 선형은,
“아니오, 제가 끓이지요!” 하는 것을 영채가 선형의 손을 잡아 앉히며,
“어서 주무르셔요. 제가 끓여 올게” 하고 일어나 나간다. 선형은 물끄러미 영채의 나가는 양을 본다. 그러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선형은 지금 어쩐 영문을 모른다. 병욱은 영채와 선형의 말하는 양을 보고 혼자 빙긋 웃는다.
영채가 물을 끓여 가지고 들어와서 선형으로 더불어 태모의 손발을 씻을 적에 형식이가 의사를 데리고 왔다. 의원의 진찰하는 동안에 일동은 삥 둘러서서 의사의 입과 눈만 바라보고 지금껏 말없이 문 밖에 앉았던 젊은 사람도 고개를 디밀어 물끄러미 진찰하는 양을 본다.
“염려할 것은 없소” 하고 의사는 약을 보낸다고 젊은 사람을 데리고 갔다. 태모와 노파는 이제는 적이 정신을 차리고 이따금 괴로워하기는 하면서도 얼마큼 낯빛이 순하게 되었다. 노파는 연방 “이런 은혜가 없어요. 부대 수부귀다남자하라“는 축원을 한다.
노파의 말을 듣건대……
노파는 젊어서 과부가 되어 아들 하나를 데리고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아들이 점점 자라서 며느리도 얻게 되고 남의 땅일망정 농사를 지어 이럭저럭 재미롭게 살 만치 되어 자기 손으로 조고마한 집도 짓고 밭도 한 조각 사게 되었다. 또 며느리가 태중이므로 어서 손자를 안아 보았으면 남부러울 것이 없으리라 하였다. 그랬더니 어저께 물에 농사 지은 것은 말끔 물 속으로 들어가고 오늘 새벽에는 집까지 물에 들어가고 말았다. 여기까지 말하고는 노파는 흑흑 느끼며,
“집이 떠나가지나 아니했으면 좋겠어요” 한다. 육십 년 근고로 얻은 집이 만일 한번 떠나가고 말면 노파는 생전에 다시 제 집이라 구경을 못 하고 말 것이다. 손자를 안아 보고 제 집 아랫목에서 죽는 것이 노파의 유일한 소원일 것이다. 그 집이란 것이야 팔아도 십 원을 받기가 어렵지마는 이 가족에게는 대궐보다도 더 중한 것이다. 노파의 눈에는 그 돌담 두른 조고마한 집만 보인다. 물결이 그 집을 헐 것을 생각할 때마다 노파는 마치 자기의 살점을 베어내는 듯하였다. 그래서,
“조곰 낙을 볼까 하면 이렇게 됩니다그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자식까지 앙화를 받는지요”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맙시오! 이제 또 잘살게 되지요. 하느님이 아니 계십니까” 하고 영채가 위로를 한다. 그러고는 어젯저녁에 자기가 병욱에게 위로를 받던 생각이 나서 속으로 우스워진다.
“아이구, 이제는 저승에나 가서 잘살는지……” 하다가 중동에 말을 그치고 고개를 번쩍 들어 며느리를 보며,
“얘, 배 아프기가 좀 나으냐. 이 어른들 아니더면 꼭 죽을 뻔했다” 하고 또 수부귀다남자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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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욱은 경찰서에 들어가 서장에게 면회하기를 청하였다. 서장은 이상한 듯이 병욱을 보더니,
“무슨 일이오?” 한다.
“다른 일이 아니라” 하고, 저 수재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병인도 있고, 태모도 있고, 젖먹이 가진 부인도 있는데, 조반도 못 먹고 비를 맞고 떠는 정경이 가련하며, 더구나 어머니가 무엇을 먹지 못하였으므로 젖이 아니 나서 어린아이들의 우는 양은 차마 못 보겠다는 말을 한 뒤에,
그래서 마침 부산 가는 기차가 비에 걸려서 오후까지 머물게 되었으니, 음악회를 열어 거기서 수입된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국밥이라도 만들어 먹이고 싶다는 뜻을 말하고 허가와 원조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서장은 점점 놀라하는 빛을 보이더니,
“그러면 음악할 줄 아는 이가 있나요?” 하고 감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잘하기야 어떻게 바라겠습니까마는 제가 음악학교에 다닙니다. 그러고 동행하는 여자가 두어 사람 되는데 여학교에서 배운 창가마디나 하고요…….”
서장은 이 말에 지극히 감복하여,
“참 당국에서도 구제 방침을 연구하던 중이외다. 그러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니까” 하고 잠시 생각하더니, “참 감사하외다. 허가야 물론이지요” 하고 벌떡 일어나서 모자를 쓰고 나온다.
서장은 일변 정거장에 나가서 역장과 교섭하여 대합실을 회장으로 쓰기로 하고, 일변 순사를 파송하여 각 여관과 시가에 이 뜻을 말하게 하였다. 중간에서 사오 시간이나 기다리기에 답답증이 났던 승객들은 일제히 대합실에 모여들었다. 그 속에는 간혹 흰옷 입은 삼등객도 섞였다. 걸상을 있는 대로 내다 놓고, 근처 여관에서도 걸상을 모아다가 둘러 놓았다. 좁은 대합실은 가득 찼다. 출찰구 곁에 큰 테이블을 놓아서 무대를 만들었다. ‘자선 음악회’라는 말은 들었으나 어떠한 사람이 나오는지 모르는 군중은 눈이 둥글하여 무대만 바라본다. 이윽고 서장이 무대 곁으로 가더니 일동을 둘러보며,
“이렇게 모이시기를 청한 것은 다름이 아니외다. 여러분! 저 산기슭을 보시오. 저기는 수재를 당하여 집을 잃은 불쌍한 동포가 밥도 못 먹고 비에 젖어서 방황합니다. 그런데 아까 (어떤) 아름다운 처녀가 경찰서에 와서 저 불쌍한 동포들에게 한 끼나 따뜻한 밥을 먹이기 위하여 음악회를 열게 하여 달라 합디다. 우리는 그 처녀가 얼마나 음악을 잘하는지를 모르거니와 그의 아름다운 정성이 족히 피 있고 눈물 있는 신사 숙녀 제씨를 감동시킬 줄을 확신합니다” 하며, 서장은 눈물이 흐르고 말이 막힌다. 일동의 얼굴에는 찌르르 하는 감동이 휙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코를 푸는 부인의 소리도 난다. 서장은 말을 이어,
“여러분! 우리는 그 처녀의 정성에 대답함이 있어야 할 것이외다. 이제 그 처녀를 소개합니다” 하고 저편 구석에 가지런히 섰던 세 처녀를 부른다. 바이올린을 든 병욱을 선두로 하여 세 처녀는 은근히 일동에게 경례를 한다. 대합실이 터져라 하고 박수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사람은 감격함이 극하여 소리를 치는 이도 있다.
병욱은 세 사람을 대표하여,
“저희는 음악을 알아서 하려 함이 아니올시다. 다만 여러분 어른께서 동정을 줍시사 함이외다. 더구나 행리 중에 보표(譜表)가 없으니 따로 외워 하는 것이라 잘못되는 것도 많을 것이올시다” 하고 고개를 기울여 바이올린 줄을 고른 뒤에 ‘아이다의 비곡(悲曲)’을 시작하였다. 일동은 잠잠하다. 끊(이)는 (듯 잇는) 듯한 네 줄의 슬픈 소리만 여러 사람의 가슴속을 살살 울린다.
그 곡조는 이러한 경우에 가장 적당한 곡조였다. 그렇지 아니하여도 슬픔에 가슴이 눌렸던 일동은 그만 울고 싶도록 되고 말았다. 병욱의 손이 바이올린의 활을 따라 혹은 자주, 혹은 더디게 오르고 내릴 때마다 일동의 숨소리도 그것을 맞추어서 끊었다 이었다 하는 듯하였다. 그 슬픈 곡조를 듣는 맛을 내가 길게 말하는 것보다 천고의 신인 강주사마(江州司馬)의 비파행(琵琶行)을 생각하는 것이 제일 편할 것이다. 애원한 가는 소리가 영원히 끊기지 아니할 듯이 길게 울더니 병욱은 바이올린을 안고 고개를 숙였다. 아까보다 더한 박수성이 일어나고 한 곡조 더 하라는 소리가 일어난다. 병욱의 얼굴에는 복숭아꽃빛이 비치었다.
다음에는 영채가 병욱에게 배운 찬미가 ‘지난 일 생각하니 부끄럽도다’의 독창이 있었다. 병욱의 바이올린에 맞춰서 영채는 얼굴에 표정(表情)을 하여 가며 부른다.
십여 년 연단한 목소리는 과연 자유자재하였다. 바이올린의 고상한 곡조를 들을 줄 모르던 사람들도 영채의 고운 목소리에는 취하였다. “흐르는 두 줄 눈물 뿌릴 곳 없어” 할 때에는 일동의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시방 영채가 한문으로 짓고 형식이가 번역한 다음에 노래를 셋이 합창하였다. 그것은 집을 잃고 비에 젖은 불쌍한 사람들을 두고 지은 것인데, 이 노래는 듣는 사람에게 더욱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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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기 보챕니다
젖 달라고 보챕니다
짜도 젖이 아니 나니
무엇 먹여 살리리까
봄에나 여름에나
애써 벌어 놓았던 걸
사정없는 붉은 물결
하룻밤에 쓸어 나가
비가 오고 바람 치고
날새조차 저뭅니다
늙은 부모 어린 처자
집 없으니 어디서 자
따뜻한 밥 한 그릇
국에 말아 드립시다
따뜻한 밥 한 그릇
국에 말아 드립시다
순박한 이 노래와 다정한 그 곡조는 마침내 일동의 눈물을 받고야 말았다. 정성되고 엄숙한 박수 소리에 세 처녀는 은근히 경례하고 물러났다. 박수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려 서장이 다시 일어나,
“여러분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있습니다. 본직은 감히 여러분을 대표하여 세 처녀에게 감사한 뜻을 표합니다” 하고 세 사람을 향하여 고개를 숙인다. 세 사람은 답례한다. 일동은 박수한다.
이리하여 한 시간이 못 되는 짧은 음악회가 끝났다. 여러 사람은 즉석에 돈 팔십여 원을 모두었다. 서장은 그 돈을 병욱에게 주며,
“어떻게 쓰든지 당신의 뜻대로 하시오” 한다. 이는 병욱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이다. 그러나 병욱은 사양하며,
“그것은 서장께서 맡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서장은 병욱에게서 그 돈을 받는 듯이 또 한번 고개를 숙이고 일동을 향하여 그 돈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방법을 취하여 수재 만난 사람을 구제하겠노라 하였다. 일동은 병욱과 다른 두 사람의 성명을 듣고자 하였으나 그네는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요, 말이 없었다.
이러하는 동안에 집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어찌할 줄을 모르고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차차 시장증이 나고 몸이 떨리기 시작하였으나 그네에게는 아무 방책도 없었다. 그네는 다만 되어 가는 대로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네는 과연 아무 힘이 없다. 자연의 폭력에 대하여서야 누구라서 능히 저항하리요마는 그네는 너무도 힘이 없다. 일생에 뼈가 휘도록 애써서 쌓아 놓은 생활의 근거를 하룻밤 비에 다 씻겨 내려 보내고 말리만큼 그네는 힘이 없다. 그네의 생활의 근거는 마치 모래로 쌓아 놓은 것 같다. 이제 비가 그치고 물이 나가면 그네는 흩어진 모래를 긁어 모아서 새 생활의 근거를 쌓는다. 마치 개미가 그 가늘고 연약한 발로 땅을 파서 둥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하룻밤 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발발 떠는 그네들이 어찌 보면 가련하기도 하지마는 또 어찌 보면 너무 약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그네의 얼굴을 보건대 무슨 지혜가 있을 것 같지 아니하다. 모두 다 미련해 보이고 무감각(無感覺)해 보인다. 그네는 몇 푼 어치 아니 되는 농사한 지식을 가지고 그저 땅을 팔 뿐이다. 이리하여서 몇 해 동안 하느님이 가만히 두면 썩은 볏섬이나 모아 두었다가는 한번 물이 나면 다 씻겨 보내고 만다. 그래서 그네는 영원히 더 부(富)하여짐 없이 점점 더 가난하여진다. 그래서 (몸은 점점 더 약하여지고 머리는 점점 더) 미련하여진다. 저대로 내어버려 두면 마침내 북해도의 ‘아이누’나 다름없는 종자가 되고 말 것 같다.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해서 생활의 근거를 안전하게 하여 주어야 하겠다.
“과학(科學)! 과학!” 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앉아서 혼자 부르짖었다. 세 처녀는 형식을 본다.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科學)을 주어야겠어요. 지식을 주어야겠어요”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거닌다. “여러분은 오늘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한참 있다가 병욱이가,
“불쌍하게 생각했지요” 하고 웃으며, “그렇지 않아요?” 한다. 오늘 같이 활동하는 동안에 훨씬 친하여졌다.
“그렇지요, 불쌍하지요!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무론 문명이 없는 데 있겠지요―― 생활하여 갈 힘이 없는 데 있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영채와 선형은 이 문답의 뜻을 자세히는 모른다. 무론 자기네(가) 아는 줄 믿지마는 형식이와 병욱이가 아는 이만큼 절실하게, 단단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방금 눈에 보는 사실이 그네에게 산 교육을 주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할 것이요, 대 웅변에서도 배우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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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의 정신은 긴장하였다. 더구나 영채는 아직도 이러한 큰 문제를 논란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구제하나?’ 함은 참 큰 문제였다. 이러한 큰 문제를 논란하는 형식과 병욱은 매우 큰 사람같이 보였다. 영채는 두자미며, 소동파의 세상을 근심하는 시구를 생각하고, 또 오 년 전 월화와 함께 대성학교장의 연설을 듣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때에는 아직 나이 어려서 찌찌(분명히) 알아듣지는 못하였거니와 “여러분의 조상은 결코 여러분과 같이 못생기지는 아니하였습니다” 할 때에 과연 지금 날마다 만나는 사람은 못생긴 사람들이다 하던 생각이 난다. 영채는 그 말과 형식의 말에 공통한 점이 있는 듯이 생각하였다. 그러고 한번 더 형식을 보았다. 형식은, “옳습니다. 교육으로, 실행으로 저들을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누가 하나요?” 하고 형식은 입을 꼭 다문다. 세 처녀는 몸에 소름이 끼친다. 형식은 한번 더 힘있게,
“그것을 누가 하나요?” 하고 세 처녀를 골고루 본다. 세 처녀는 아직도 경험하여 보지 못한 듯한 말할 수 없는 정신의 감동을 깨달았다. 그러고 일시에 소름이 쪽 끼쳤다. 형식은 한번 더,
“그것을 누가 하나요?” 하였다.
“우리가 하지요!” 하는 대답이 기약하지 아니하고 세 처녀의 입에서 떨어진다. 네 사람의 눈앞에는 불길이 번쩍하는 듯하였다. 마치 큰 지진이 있어서 온 땅이 떨리는 듯하였다. 형식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앉았더니,
“옳습니다. 우리가 해야지요! 우리가 공부하러 가는 뜻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차를 타고 가는 돈이며 가서 공부할 학비를 누가 주나요? 조선이 주는 것입니다. 왜? 가서 힘을 얻어 오라고, 지식을 얻어 오라고, 문명을 얻어 오라고…… 그리해서 새로운 문명 위에 튼튼한 생활의 기초를 세워 달라고…… 이러한 뜻이 아닙니까” 하고 조끼 호주머니에서 돈지갑을 내어 푸른 차표를 내어 들면서,
“이 차표 속에는 저기서 들들 떠는 저 사람들…… 아까 그 젊은 사람의 땀도 몇 방울 들었어요! 부대 다시는 이러한 불쌍한 경우를 당하지 말게 하여 달라고요?” 하고 형식은 새로 결심하는 듯이 한번 몸과 고개를 흔든다. 세 처녀도 그와 같이 몸을 흔들었다.
이때에 네 사람의 가슴속에는 꼭 같은 ‘나 할 일’이 번개같이 지나간다. 너와 나라는 차별이 없이 온통 한몸, 한마음이 된 듯하였다.
선형도 아까 영채가 “제 물 끓여 올게요” 하고 자기의 손목을 잡아 앉힐 때부터 차차 영채가 정다운 생각이 나고 또 영채가 지은 노래를 셋이 합창할 때에는 영채의 손을 잡아 주도록 정다운 생각이 나고, 또 지금 세 사람이 일제히 “우리지요!” 할 때에 더욱 영채가 정답게 되었다. 그러고 형식이가 지금 병욱과 문답할 때에는 그 얼굴에 일종 거룩하고 엄숙한 기운이 보여 지금껏 자기가 그에게 대하여 하여 오던 생각이 죄송한 듯하다. 자기는 언제까지 형식과 영채를 같이 사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이 형식과 영채의 얼굴을 보았다.
형식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우리가 늙어 죽게 될 때에는 기어이 이보다 훨씬 좋은 조선을 보도록 합시다. 우리가 게으르고 힘없던 우리 조상을 원하는(원통히 여기는) 것을 생각하여 우리는 우리 자손에게 고마운 조상이라는 말을 듣게 합시다” 하고 웃으며, “그런데, 이 자리에서 우리가 장래 나갈 길이나 서로 말합시다” 하고 세 사람을 본다. 세 사람도 그제야 엄숙하던 얼굴이 풀리고 방그레 웃는다.
“선형(선생)께서 먼저 말씀하셔요!” 하고 병욱이가 권할 때에 문 밖에서,
“들어가도 관계치 않습니까?” 하고 우선의 목소리가 들린다. 형식은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우선의 손을 잡으면서,
“어떻게 지금 오나?”
우선은 세 사람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뒤에 형식의 곁에 앉으며,
“사(社)에서 삼랑진 근방에 물구경을 하고 오라고 전보를 했데그려” 하고 손으로 턱을 한번 쓴다. 영채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나?”
“정거장에 와서 다 들었네” 하고 여자들에게 절을 하며, “참 감사합니다. 지금 정거장에서는 칭찬이 비 오듯 합니다. 어 과연 상쾌하외다” 하고 정거장에서 들은 말을 대개 한 뒤에 형식더러,
“오늘 일을 신문에 내도 좋겠지?”
형식은 대답 없이 병욱을 보다가,
“무론 관계치 않겠지요!” 한다.
“아이구, 그것은 내서 무엇 합니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저 같은 놈도 큰 감동을 받았는데…… 참 말만 듣고도 눈물이 흐를 뻔하였습니다” 한다. 과연 정거장에서 어떤 승객에게 그 말을 들을 때에 우선은 지극히 감동한 바 되었다. 원래 호활한 우선이가 그처럼 눈물이 흐르도록 감동되기는 영채가 죽으러 간 때와 이번뿐이었었다. 우선은 정거장에서부터 병욱 일파를 만나면 기어이 하려던 말이 있었다. 그래서 하인이 가져온 차를 마시며,
“지금 무슨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하고 자기의 말할 기회를 얻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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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지금 우리는 장차 무엇으로 조선 사람을 구제할까 하고 각각 제 목적을 말하려던 중일세.”
“녜, 그러면 저도 좀 듣지요!”
처녀들은 그의 대팻밥 모자와 말하는 모양이 우스워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꿀덕 참는다. 영채 하나만 어찌할 줄을 몰라서 얼굴을 잠깐 붉히나 우선은 영채를 보면서도 모르는 체한다.
“어느 분 차례입니까”
하는 우선의 말에,
“내 차례인가 보에.”
“응, 그러면 말하게”
하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며 들을 준비를 한다. 병욱은 영채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선형은 웃음을 참느라고 살짝 고개를 돌린다.
“나는 교육가가 될랍니다. 그러고 전문으로는 생물학(生物學)을 연구할랍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 중에는 생물학의 뜻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형식도 무론 생물학이란 참뜻을 알지 못하였다. 다만 자연과학(自然科學)을 중히 여기는 사상과 생물학이 가장 자기의 성미에 맞을 듯하여 그렇게 작정한 것이다. 생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새 문명을 건설하겠다고 자담하는 그네의 신세도 불쌍하고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
형식은 병욱을 향하여,
“무론 음악이시겠지요?”
“녜― 저는 음악입니다.”
“또 영채 씨는?”
영채는 말없이 병욱을 본다. 병욱은 어서 말해라 하고 눈짓을 한다.
“저도 음악입니다.”
“선형 씨는?”
하는 말이 나오지 아니하여서 형식은 가만히 앉았다. 여러 사람은 웃었다. 선형은 얼굴을 붉혔다.
“선형 씨는 무엇이오…… 무론 교육이겠지.”
하고 병욱이가 웃는다. 모두 웃는다. 형식도 고개를 수그렸다. 선형도 병욱이가 첫마디에 “녜, 저는 음악이외다” 하고 활발히 대답하는 것이 부러웠다. 그래서,
“저는 수학을 배울랍니다.”
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서 말하였다. 학교에서 수학을 잘한다고 선생에게 칭찬받던 생각이 난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수학이 좋은 것인 줄은 알았으나 수학과 인생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모른다.
“그 담에는 자네 차례일세.”
“나는 붓이나 들지!”
한참 말이 없었다. 제가끔 제 장래를 그려 본다. 그러고 그 장래의 귀착점은 다 같았다.
우선이가 고개를 숙이고 우두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형식이가,
“왜, 오늘은 그렇게 점잖아졌나?”
하고 웃는다. 우선이가 고개를 들더니,
“언제인가 자네가 날더러 인생은 장난이 아니라고, 나는 인생을 희롱으로 본다고 그랬지? 마지메(진지)하게 생각지를 않는다고?”
“글쎄, 그런 일이 있던가.”
“과연 그게 옳은 말일세. 나는 지금까지 인생을 장난으로 보아 왔네. 내가 술을 많이 먹는 것이라든지…… 또 되는 대로 노는 것이 확실히 인생을 장난으로 여기던 증거지. 나는 도리어 자네가 너무 마지메한 것을 속이 좁다고 비웃어 왔지마는 요컨대,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어!”
여기까지 와서는 형식도 우선의 말이 오늘은 농담이 아닌 것을 깨닫고 정색하고 우선의 얼굴을 본다. 세 처녀도 정색하고 듣는다. 과연 우선의 얼굴에는 무슨 결심의 빛이 보인다. 우선은 말을 이어,
“오늘 와서 깨달았네. 오늘 정거장에서 음악회 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깨달았네. 나는 차 타고 지나오면서 메기슭에 사람들을 보고 불쌍하다는 생각도 나기는 났지마는 그 꾀죄하고 섰는 양이 우스워서 웃기부터 하였네. 나는 어떻게 하면 저들을 건지나 하는 생각도 아니하고, 그들을 위해서 눈물도 아니 흘렸네. 그러고 차를 내리면 얼른 구경을 가리라, 가서 시나 한 수 지으리라, 하고 울기는커녕 웃으면서 내려 가지고, 그 말을 들을 때에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네…… 더구나 젊은 여자가…….”
하고 감격한 듯이 말을 맺지 못한다. 듣던 사람들도 묵묵하다. 우선은 말을 이어,
“나도 오늘 이때, 이 땅 사람이 되었네. 힘껏, 정성껏 붓대를 둘러서 조곰이라도 사회에 공헌함이 있으려 하네. 이제 한 시간이 못 하여 자네와 작별을 하면 아마 사오 년 되어야 만나게 되겠네그려. 멀리 간 뒤에라도 내가 이전 신우선이가 아닌 줄로 알고 있게. 나는 자네와 떠나기 전에 이 말을 하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아네.”
하고 손을 내어밀어 형식의 손을 잡는다. 형식도 꼭 우선의 손을 잡아 흔들며,
“기쁜 말일세. 무론 자네가 언제인들 잘못한 일이 있었겠나마는 그처럼 새 결심 한 것이 무한히 기쁘이.”
우선은 한참 주저하다가,
“영채 씨, 이전 버릇없던 것은 다 용서합시오! 저도 이제부터 새사람이 될랍니다. 부대 공부 잘하셔서 큰일하십시오.”
하고 길게 한숨을 쉰다. 영채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선형은 이제야 형식에게 영채의 말이 모두 참인 줄을 깨달았다. 그러고 가만히 영채의 손을 잡고 속으로 ‘형님 잘못했습니다’ 하였다. 영채는 선형의 손을 마주 쥐며 더욱 눈물이 쏟아진다. 형식도 울었다. 병욱도 울었다. 마침내 모두 울었다. 비 갠 뒤 맑은 바람이 창 밖에 늘어진 수양버들가지를 스쳐 방 안에 불어 들어와 다섯 사람의 열한 얼굴을 식힌다.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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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선형은 지금 미국 시카고대학 사년생인데 내내 몸이 건강하였으며―― 금년 구월에 졸업하고는 전후의 구라파를 한번 돌아 본국에 돌아올 예정이며, 김장로 부부는 날마다 사랑하는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벌써부터 돌아온 후에 할 일과 하여 먹일 것을 궁리하는 중.
병욱은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자기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독일 백림에 이태 동안 유학을 하고, 금년 겨울에 형식의 일행을 기다려 시베리아 철도로 같이 돌아올 예정이며, 영채도 금년 봄에 동경 상야 음악학교 피아노과와 성악과(聲樂科)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아직 동경에 있는 중인데 그 역시 구월경에 서울로 돌아오겠다. 더욱 기쁜 것은, 병욱은 베를린 음악계에 일종 이채(一種異彩)를 발하여 명성이 책책( )하다는 말이 근일에 도착한 베를린 어느 잡지에 유력한 비평가의 비평과 함께 기록된 것과, 영채가 동경 어느 큰 음악회에서 피아노와 독창과 조선춤으로 대갈채를 받았다는 말이 영채의 사진과 함께 동경 각신문에 게재된 것이라. 듣건대 형식과 선형도 해마다 우량한 성적을 얻었다 한다. 삼랑진 정거장 대합실에서 자선 음악회를 열던 세 처녀가 이제는 훌륭한 레이디가 되어 경성 한복판에 떨치고 나설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이다.
신우선은 그로부터 일절 화류계에 발을 끊고 예의전심, 일변 수양을 힘쓰며 일변 저술에 노력하여 문명이 전토에 떨쳤으며 더욱이 근일 발행한『조선의 장래』는 발행한 이 주일이 못 하여 사판(四版)에 달하였으며 그의 사상은 더욱 깊고 넓게 되며, 붓은 더욱 날카롭게 되어 간다. 한 가지 걱정은 아직 술이 너무 과함이나, 고래로 동양 문장에 술 못 먹는 사람이 없으니, 그리 책망할 것도 없을 것이라. 지금은 유명한 대팻밥 모자를 벗어 버리고 백설 같은 파나마 모자를 쓰며 코 아래는 고운 카이젤 수염까지 났다.
황주 김병국은 십만여 주의 대상원을 지었다. 작년에 봄서리로 적지 아니한 손해를 보았으나 금년에는 상엽이 매우 충실하다 하니 다행이며, 병국의 조모는 불행히 사랑하는 손녀를 보지 못하고 작년 여름에 세상을 떠나셨다. 병국의 부인도 이제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내외의 금실도 전 같지는 아니하다던지.
형식의 주인 하고 있던 노파의 집에는 의학 전문학교 학생들이 있는데, 구더기 있는 장찌개와 담뱃대는 지금도 전같이 유명하나 다만 차차 몸이 쇠약하여져서 지금은 약수에도 다니지 못한다. 그러나 보는 사람마다 형식의 말을 늘 한다.
영채의 ‘어머니’는 집을 팔아 가지고 평양 어느 촌으로 내려가서 양자를 들여 데리고 농사를 지으며 진실한 예수교 신자가 되어서 편안히 천당길을 닦는다. 우선에게서 영채가 죽지 않고 동경에 갔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울었다 함은 우선의 말이다. 그 후에 영채는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하였으며 ‘어머니’도 자기가 진실히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영채도 예수를 잘 믿으라는 말과 졸업하고 오거든 곧 자기의 집으로 오라는 말을 편지마다 하고 혹 옷값으로 돈도 보내 주며 가끔 고추장, 암치 같은 것도 보내어 준다.
한 가지 불쌍한 것은 형식이가 평양에 갔을 적에 데리고 칠성문으로 나가던 계향이가 어떤 부잣집 방탕한 자식의 첩이 되어 갔다가 매독을 올리고, 게다가 남편한테 쫓겨나기까지 하여 아주 적막하게 신고함이니, 아마 형식이가 돌아와서 이 말을 들으면 매우 슬퍼할 것이다. 그 어여쁘던 얼굴이 말못되게 초췌하여 이제는 누구 돌아보아 주는 이도 없게 되었다.
혹 독자 여러분이 기억하시는지 모르거니와 형식이가 사랑하던 이희경 군은 아까운 재주를 품고 조세하였고, 얼굴 컴컴하던 김종렬 군은 북간도 등지로 갔다는데 이내 소식을 모르며, 배학감은 그 후에 교주와 충돌이 생겨 지금은 황해도 어느 금광에 가 있다는데 아직도 철이 나지 못한 모양이라 하니 가엾은 일이다.
또 한 가지 말할 것은, 칠성문 밖 형식이가 돌부처라 하던 그 노인은 아직도 건강하여 십여 일 전부터 툇마루에 나와 앉아서 몸을 흔들거리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 감투가 전보다 더 낡아졌을 뿐.
나중에 말할 것은 형식 일행이 부산서 배를 탄 뒤로 조선 전체가 많이 변한 것이다. 교육으로 보든지 경제로 보든지, 문학 언론으로 보든지, 모든 문명 사상의 보급으로 보든지 장족의 진보를 하였으며 더욱 하례할 것은 상공업의 발달이니, 경성을 머리로 하여 각 대도회에 석탄 연기와 쇠마치 소리가 아니 나는 데가 없으며 연래에 극도에 쇠하였던 우리의 상업도 점차 진흥하게 됨이라.
아아, 우리 땅은 날로 아름다워 간다. 우리의 연약하던 팔뚝에는 날로 힘이 오르고 우리의 어둡던 정신에는 날로 빛이 난다. 우리는 마침내 남과 같이 번적하게 될 것이로다. 그러할수록에 우리는 더욱 힘을 써야 하겠고, 더욱 큰 인물…… 큰 학자, 큰 교육가, 큰 실업가, 큰 예술가, 큰 발명가, 큰 종교가가 나야 할 터인데, 더욱더욱 나야 할 터인데 마침 금년 가을에는 사방으로 돌아오는 유학생과 함께 형식, 병욱, 영채, 선형 같은 훌륭한 인물을 맞아들일 것이니 어찌 아니 기쁠가. 해마다 각 전문학교에서는 튼튼한 일꾼이 쏟아져 나오고 해마다 보통학교 문으로는 어여쁘고 기운찬 도련님, 작은아씨 들이 들어가는구나! 아니 기쁘고 어찌하랴.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무정』을 마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