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자의 안해

기차는 떠났다.

어두컴컴한 가운데로 사라지는 평양 정거장이며 한 떼씩 몰려서있는 전송인들의 물결을 내다보고 있던 영숙이는 몸을 덜컥하니 교자 위에 내던졌다.

그리고 왼편 손을 들어서 곁에 앉아 있는 어린 딸 옥순이의 머리를 쓸었다.

“옥순아, 집에 도로 가고 싶지 않니?”

옥순이는 무엇이라 입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기차의 덜걱거리는 소리에 옥순이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깐 옥순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영숙이는 어린 딸을 위하여 공기침에 바람을 넣어서 잘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옥순이를 눕혀놓은 뒤에 자기는 교자 한편 끝에 바짝 붙어 앉아서 머리를 창에 의지하고 눈을 감았다.

비창하다고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그 것은 괴롭고 무거운 기분이었다. 그러나 또한 어딘지 모르지만 통쾌하다는 느낌이 섞여 있는 기분이었다.

출분…….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계획했던 일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돌발적 심리라고 할 수 있는 괴상한 심리의 결과인 이번 행동에 대하여 영숙이는 자기 행동에 여러 가지의 변명을 하고자 아니 하였다.

그가 이번의 이 일을 머리에 첫번 그려본 것은 벌써 2년 전이었다. 방탕한 남편 방종한 남편, 무능자, 그러면서도 아내에게 대하여는 그 지아비로서의 온갖 권리와 심지어는 정도 이상의 호의와 희생을 요구하는 남편, 아내의 무지를 저주하면서도 자기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남편. 이러한 남편 아래서 육칠 년 동안을 그는 참고 살았다.

어떤 때에 그는 남편의 대리인이라는 명색으로 법정에 선 일도 있었다. 온갖 일에 대하여 참견하기 싫어하는 남편을 위하여 어떤 때에는 대금업자에게 돈 주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이 만나기 싫어하는 손님은 그가 대신하여 회견하였다. 차차 줄어들어가는 재산을 남편을 대신하여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될 그였다.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토지의 소작인들과 일을 치르러 나가는 것도 영숙이의 직책이었다. 때때로 있는 관청 교섭조차 영숙이가 대신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말하자면 영숙이는 그 집안의 주부인 동시에 또한 가장이요 대표자였다.

집안의 온갖 일을 아내에게 맡겨두고 남편은 번번 놀고 있었다. 때때로 변변찮은 소설을 써서 발표하는 것과 방탕의 길을 밟는 것, 이것이 남편의 하는 일이었다. 그 밖의 일은 아무런 것이든 남편은 내버려두었다.

“오늘 지주회에 안 가 보세요?”

“흥!”

“오늘 강 건너 밭을 좀 돌아보러 가세요.”

“흥!”

“대서소에서 사람이 왔는데요.”

“흥!”

이리하여 남편이 내던진 일은 아내가 맡아보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 있었다.

영숙이의 성격은 활달하였다. 그는 여자로서의 온순함을 가지지 못한 대신 사내로서의 활발함과 능함을 가졌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하기 싫어하는 일 을 마지못해 대신 보기 시작하였지만 그러는 동안에 그는 어느덧 그런 일에 대하여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긍지를 느꼈다.

‘무능자인 남편을 대신하여.’ 그의 마음에는 어느덧 이와 같은 자랑에 가까운 마음이 움 돋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의 기괴한 부부 생활은 시작된 것이었다. 남편은 방탕의 길을 밟으며 때때로 생각나면 소설이나 쓰고, 그 밖의 사회에 대한 일이며 가정에 대한 일은 전혀 영숙이의 권리에 속하는 바가 되고 영숙이의 의무에 속하는 바가 되었다. 영숙이는 사회에 대한 그 집의 대표자였으며 또한 가 정의 주군에 다름없었다. 그리고 남편은 그림자 엷은 한 식객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러던 남편이 갑자기 2년 전에 무슨 사업을 시작한다고 덤벼댔다. 그리고 아직껏 남아 있는 토지 전부를 저당을 하여서 2만여 원이라는 돈을 만들어 가지고 토지 관개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일에든지 숫자적 관념이 부족한 남편의 하는 일이 성공될 리가 없었다. 그해 가을로 그 사업은 총독부의 불허가라는 조건하에 폐쇄해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업 같으면 재물을 헐가로 팔아서 하다못해 반 본전이라도 거두지만, 집어넣은 돈은 허가만 안 되면 한 푼도 거두지 못할 뿐더러 원상회복이라는 데 오히려 밑천을 넣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 집의 거대하던 재산은 남편의 몇 해의 방탕과 관개 사업 실패에 한 푼도 없이 파산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에 남편은 후덕덕 경성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재산의 정리를 아내에게 일임하였다.

‘출분…….’ 그때부터 막연히 영숙이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더구나 그때 마침 남편의 책장에서 얻어내어 읽은 「인형의 집」은 그의 생각에 어떤 실 행성까지 띠어주었다.

그는 노라가 왜 달아났는지 똑똑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헬머는 노라를 사랑하였다. 헬머는 현명한 남편이었다. 영숙의 남편과 같이 무능하고 무책임 한 남편이 아니었다. 노라는 헬머를 존경하였다. 그러한 분위기 가운데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던 노라가 무슨 까닭으로 달아났는지 이것은 이지의 덩어 리인 영숙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 나타나 있는 그 ‘통쾌’에 공명점을 발견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그것을 도저히 하지 못할 일이라 부인하면서도 마음의 한편 구석에서는 늘 출분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반년 뒤에 남편은 서울에서 돌아왔다. 그때는 그 집안의 재산은 영숙이의 손으로 전부 정리되고 정리한 나머지 수삼천 원의 돈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영숙이는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정리하니깐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하였다.

남편은 거기 대하여 깊이 묻지도 않았다.

‘출분…….’ 이 생각은 나날이 영숙이의 마음에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거기 대하여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전과 같이 역시 살림을 주관하였다. 전과 같이 옷감이며 기명도 끊임없이 사들였다. ‘출분’ 이라 하는 것은 그의 머리에 깊이 박혀 있는 희망이며 신념인 동시에 또한 한편으로는 아무 진실성도 띠지 않은 공상과 같았다. 여전한살림은 그냥 계속되었다.

영숙이는 때때로 마음으로 발을 굴렀다. 호화롭고 금전에 아무 부자유가 없던 과거의 생활로써 미래를 미루어 볼 때에 발을 구르는 것뿐으로는 그 안타까움이 사라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속으로 발을 구를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출분’이라 하는 생각이 더욱 굳게 못박혀졌다.

3,000원(그가 지금 감추고 있는)으로는 넉넉히 5년간의 공부는 할 것이었다. 5년간의 공부는 여자로서 능히 한 집안의 생활을 유지할 직업을 구할 만한 지식은 얻을 것이었다. 무능한 남편을 제쳐놓고 이제 이 집안을 먹여 나갈 용감스럽고 위엄성 있는 자기…… 이러한 그림자조차 언제부터인지 차차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하였다. 남편의 마음은 단순한 것 같고도 남에게 알지 못할 깊은 곳이 있었다. 남편은 이 파산조차 모르는 듯이 거기 대하여는 일절 입을 여는 일이 없었다. 다만 뒷그림자가 어딘지 모르지만 외로워가고 얼굴이 초췌해갈 뿐 불평도 불만도 가책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깨면 강에 나가서 낚시를 강에 던지고 고기가 와서 물기를 기다리며,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오고 하였다. 한숨조차 남이 듣는 데서는 그의 입에서 나온 일이 없었다.

그의 집에 집달리가 왔다. 그리고 몇 가지의 동산을 집행하였다.

여기서 영숙이는 마침내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준비로서 팔아서 돈이 될 물건을 차례로 전부 돈으로 바꾸어두었다가 남편이 물아래(한 10여리 되는 대동강 하류)로 낚시질을 내려간 기회를 타가지고 마침내 집을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남편이 산보할 때에 쓰는 모자에 ‘공부하러 떠나노라’는 간단 한 글을 넣어놓고 사내아이는 할머니에게 맡겨놓은 뒤에 딸자식 하나만 데리고 남행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었다.

그러나 급기야 떠날 때가지도 그의 마음에는 자기의 장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아무러한 복안도 가지지를 못하였다. 다만 막연히 서울까지의 차표를 사가지고 떠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는 이제 한 주일 이내로 다시 평양에 돌아와 그 집안의 주부 노릇을 할 자기를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천하에 다른 모든 일은 불간섭주의이지만 두 자식에게 대하여만은 끔찍이도 헤아림을 가지고 있는 남편을 버리고 떠나는 그가, 더구나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떠나는 그가 어린 딸 옥순이를 데리고 떠난 것도 여기에 대한 복선이라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영숙이에게는 영락된 가정에 대하여는 아무런 집착도 없었다. 무능자인 남편에 대하여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의 조상이 수천 년간을 지켜온 바의 습관과 인습은 아무 애착도 없는 집안일망정 다시 돌아와서 주권을 잡을 날과 때를 그에게 예상하게 한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는 노라가 아니었다. 따라서 노라와 같이 공상과 막연한 추상적 관념 때문에 집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이즈음의 음울한 심사를 좀 삭이기 위하여 잠깐의 여행으로 떠나는 길에 전에부터 늘 그의 머리의 한편 구석에 잠겨 있던 ‘출분’이라 하는 공상을 극적으로 가미한 데 지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번의 이 출분은 어떻게 보면 오래 전부터의 계획적 사건으로도 볼 수가 있는 동시에 어떻게 보면 공상이 낳은 한 연극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비창한 심사로 찼다. 기차는 비상한 속력으로 밤의 중화평원을 닫는다. 그 가운데 앉아서 눈을 감고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는 그 비창한 생각 때문에 눈껍질 속에 눈물까지 고이려 하였다.

그는 그즈넉이 눈을 떴다. 어린애는 아직 자지 않는지 몸을 벅적벅적 긁고 있었다. 영숙이는 머리를 어린애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옥순아, 너 아직 안 자니?”

옥순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눈을 슴벅슴벅하는 것이 어린애의 자 지 않는 것을 증명하였다. 똑똑히 까닭은 모르지만 무슨 커다란 사건에 당면한 듯한 느낌으로 어린애는 잠을 못 드는 모양이었다. 영숙이는 옥순이의 겨드랑이로 손을 넣어서 가만히 어린애를 쳐들었다.

“옥순아, 왜 안 자니?”

옥순이는 손으로 눈을 부비면서 떴다.

“왜 상기안자니?”

옥순이는 졸음에 취한 듯한 눈을 차차 크게 뜨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몹시 영리하게 생긴 그 눈은 왜 그런지 영숙에게는 무엇을 인책하는 듯이 보였다. 영숙이는 옥순이를 끌어다가 뺨을 마주 부볐다. 그리고,

“너 어디 가는지 아니?”

하고 물었다. 옥순이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마치 속삭이듯,

“몰라.”

하였다.

“우리는 먼 데 간단다. 인제는 집에 도루 가지 않구…… 아버지와 오라비와 다시 못 만난다.”

그는 입을 더듬어서 옥순이의 어린 입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다가 자기의 온갖 정열을 다 부어서 입을 맞추었다.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을 감추기 위하여 그는 눈을 옥순이의 머리에 묻었다.

이튿날 아침 서울에서 기차를 내린 영숙이는 어린 딸을 데리고 자기의 친구 은실이의 집을 찾아 들어갔다. 은실이는 영숙이의 친구인 동시에 은실이 의 남편은 또한영숙 자기의 남편과 가까운 벗에 다름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은실이의 남편과 자기의 남편이 친구이므로 은실이와 자기도 자연히 사귀게 되었고 사귀어, 나아가는 동안에 서로 마음을 풀어헤친 벗이 된 것이었다.

“너무 속상해서 좀 놀러 왔소.”

이런 간단한 변명으로 그는 자기의 이번 일을 설명할 뿐, 은실이에게 대하여서도 기어이 말하지 않았다. 남의 속사정을 알 길이 없는 은실이는 더 깊이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영숙이의 마음은 어떤 기대로 늘 터질 듯이 긴장되었다. 서울로 온 지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난 때부터는 그의 마음은 차차 긴장되기 시작하였다. 하루에 두 번씩 있는 북에서 오는 기차 시간 뒤 한 시간쯤은 그의 마음은 거의 터질 듯이 긴장되고 하였다.

자기가 만약 달아났다는 것을 알기만 할 것 같으면 남편은 한 기차를 유예 하지 않고 서울로 올라올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남편이 자기에게 대하 여는 아무 애착도 없는 것은 영숙이로서는 뻔히 아는 바였으나 딸자식 옥순 이에게 대한 끝없는 사랑은 남편으로 하여금 그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게 할 것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오기만 하면 그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하 여 첫발로 은실이를 찾아올 것도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출발한 영숙이의 마음은 기차 시간이 지난 뒤 한두 시간씩은 안절부절 자기의 행동을 자기로도 제지할 수가 없이 긴장되고 하였다. 대문 소리가 날 때마다 그는 몸을 소스라치며 얼굴빛을 변하고 하였다.

“영숙이, 왜 그런지 늘 심사가 불편한 것 같아. 왜 그러우?”

은실이는 때때로 이렇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영숙이는 뜻 없이 씩 웃고 하였다. 그러나 그 웃음 아래 숨은 긴장으로 영숙이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하였다.

한 주일이 지났다. 남편은 마침내 오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우편이 배달되는 시간까지도 몹시도 기다려보았으나 남편에게서는 한 마디의 편지조차 없었다.

‘내가 출분하는 줄을 모르고 혹은 서울에서 며칠 놀다 내려오려는 줄만 알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나 않나?’ 이러한 생각조차 차차 그의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마지막 편지를 눈에 띄기 쉬운 곳에 두지 않은 자기의 눈치 없는 일에 대하 여서까지 후회하였다.

기대와 절망, 공포와 긴장이 교착된 열흘도 지났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의 집이라 하나 까닭 없이 서울로 올라와서 한없이 집에 묵어 있을 수도 없는 영숙이는 어떻게든지 자기의 몸을 처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 몹시 센 그로서는 은실이에게 자기가 출분하였다는 눈치를 노골적으로 보여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든가 하는 일은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천년 세월 하고 은실이의 집에 남편에게서 무슨 통지가 있도록 기다릴 수도 없고 이제 다시 머리를 숙이고 평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는 여기서 최후의 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날 밤 하룻밤을 울어서 새운 그는 이튿날 저녁에 남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차표는 부산까지 샀다.

“부산은 뭘 하러 가오?”

이렇게 묻는 은실이의 물음에 영숙이는 먼 친척이 부산에 있다는 막연한 대답으로써 자기의 행방을 암시할 뿐 기차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급기야 기차가 경성역을 떠날 때에는 그는 자기의 앞에 커다랗게 막혀 있는 ‘생활’과 거기에 따르는 공포 때문에 어린 옥순이를 쓸어안고 울었다. 체면도 예의도 모두 잊어버리고 몸을 고민하듯이 떨면서 흐느껴 울었다.

사흘 뒤에 그는 동경 땅을 밟았다. 그때에는 벌써 그의 결심은 되어 있었다.

‘아무 애착도 없는 가정을 버리자. 그리고 자기는 여자로서의 직업을 구 할 만한 지식을 하나 배우자. 그것이 비록 무능자가 아니요 훌륭한 남편일지라도 남편을 힘입으려는 마음을 버리자.’ 겨우 한두 마디밖에 통하지 못하는 영숙이의 일어에 대한 지식으로 어떻게 뉘 집 다락 하나를 얻은 뒤에 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자취 생활을 하면서 일본말을 배우기에 온 힘을 썼다.

동시에 옥순이가 차차 귀찮아지기 시작하였다. 순전히 남편으로 하여금 자 기를 다시 모셔가게 할 동기로 삼기 위하여 데리고 떠난 옥순이는 장래의 목적을 ‘공부’라는 것으로 변경한 지금의 그에게는 쓸데없는 것일 뿐더러 오히려 온갖 일에 방해까지 되었다.

현대 여성의 온갖 조건을 다 타고난 그는 비교적 모성애라는 것에도 결핍한 사람이었다. 인습과 관념에서 나온 어떤 애정이었기는 하였지만 끊으려 야 끊을 수 없는 강렬한 본능애는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직 말을 통하지 못하는 어린애가 외로이 문간에 서서 낯선 통행인들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는 모양은 평양 자기의 집에서 희희히 날뛰던 이전의 모 양과 비교되어 그의 마음을 우려내는 듯이 아프게 하였지만 그것뿐이었다.

동정의 사랑 그 이상의, 위대하고 귀여운 모성애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어린 옥순이를 끌어당겼다.

“옥순아, 갑갑하니?”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의 돌변에 어린 옥순이의 마음은 바로 설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기의 어머니에게 대하여조차 남에게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조심조심히 거의 들리지 않을 만한 작은 소리로 응 하고 간단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런 뒤에는 눈을 폭 내려뜨는 것이었다.

“도루 집에 갈까?”

그러면 어린 옥순이는 영리하게 생긴 눈을 다시 치뜨고 어머니의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눈을 굴리며 입을 비쭉비쭉 울고 마는 것이었다.

어떤 날 저녁, 영숙이는 딸을 데리고 야시 구경을 나갔다.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다가 어떤 잡지전 앞에까지 이르렀을 때에 옥순이는 그 자리에 딱 섰다.

“자, 가자.”

두어 번 채근을 해보았지만 옥순이는 못 들은 체하고 그냥 서서 무엇을 들여다보고 있으므로 그도 호기심으로 옥순이의 바라보는 곳을 보니깐 그것은 어린애의 그림책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욕심나나 보다 하여 그 책을 집으려 다가 영숙이도 또한 그 책에 호기심을 일으켰다. 그 책뚜껑에 있는 채색판의 어린애의 그림에는 영숙이가 평양에다 내버리고 온 아들, 옥순이의 오라비와 흡사히도 같이 생긴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영숙이는 그 책을 7전을 주고 사서 옥순이를 주었다. 옥순이는 기쁜 듯이 그 책을 받아가지고 불빛에 비추어서 그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게 누구 같으니?”

영숙이는 허리를 굽혀서 옥순이의 귀에 가까이 입을 갖다 대고 물었다. 옥순이는 기쁜 듯이 방싯 웃었다. 그 웃음은 평양을 떠난 이래 근 일삭을 옥순이에게서 보지 못했던 ‘참마음의 웃음’이었다. 그날 밤 영숙이는 한잠을 못 이루었다. 그리고 몇 차례를 운 뒤에 마침내 옥순이를 제 아버지의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하였다. 비록 강렬한 모성애는 못 가졌을망정 재래의 온갖 인연과 애정을 끊어버리기로 결심할 때에는 그에게도 아직 마음에 거리끼는 미련이 없지 않은 바가 아니었다.

이튿날 옥순이에게,

“아버지한테 갈까?”

할 때에 옥순이는 반가운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그림책을 끌어당겼다.

어떤 날 그것은 영숙이가 (동경으로 건너온 지 20일쯤 지난 뒤였다) 영숙이가 옥순이를 데리고 목욕을 갔다가 오니깐 주인 노파가 손님이 와서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자기에게 손님이 있을 리가 만무한 영숙이는 가슴이 선뜩하였다. 자기 방으로 올라가보니깐 거기에는 그의 남편이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희열! 공포! 무엇이라 형용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에 그의 눈은 아득해졌 다. 그는 허둥지둥 문설주를 잡으며 옥순이에게,

“아버지 오셨다.”

하였다. 옥순이도 벌써 아버지를 보았다. 어머니가 제 손목을 놓는 것을 기다려서 비척비척 아버지에게로 가서 아버지의 무릎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으아 하고 소리를 내어 울었다. 이것은 옥순이가 집을 떠난 뒤에 처음으로 소리를 내어서 우는 것이었다. 남편은 한 순간 아내를 힐끗 볼 뿐 손을 들어서 옥순이의 머리를 쓸었다. 그리고 마치 무엇을 검사하듯 옥순이의 얼굴과 몸을 훓어보았다.

영숙이는 정신을 가다듬고 방 안에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 손님을 대접하듯 방석을 남편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것은 보지도 않고 사랑하는 딸만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때에 남편의 얼굴에는 그다지 기쁘고 반가운 듯한 표정도 없었다. 그렇다고 성난 얼굴도 아니었다. 10년에 가까운 날짜를 부부 생활을 할 동안 가장 영숙이를 괴롭게 하던 것이 남편의 이런 때의 표정이었다.

무엇을 생각하나? 마땅히 마음에 어떠한 감정의 호흡이 있을 일에 당면하여서도 천하가 태평하다는 듯이 온갖 표정을 죽여버리고 가장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런 때가 남편의 가장 무서울 때였다. 무슨 커다란 결심을 한 때가 아니면 그는 결코 이런 표정은 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일단 결심을 한 뒤에는 결코 번복하지 않으며, 그것을 남에게 절대로 알게 하지도 아 니하는 사람이었다.

기괴한 희망…… 남편이 여기까지 찾아온 데 대하여 일루의 타협점을 걸핏 바라본 영숙이는 그 생각이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조성되기 전에 취소해버리 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숙이의 표정도 문득 날카로워졌다.

“이번에 옥순이 데리고 나가세요.”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남편은 코를 한번 울릴 뿐이었다.

그날 남편은 어린 딸을 데리고 구경을 나갔다. 그래도 그렇지 않아서 영숙이는 스키야키를 준비해놓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남편은 저녁때 가 지나서야 돌아와서 옥순이를 들여보내고 자기는 여관으로 가버렸다. 가는 남편을 영숙이는 붙들지도 않았다.

이튿날 아침, 부처는 오래간만에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러나 여관에서 벌써 조반을 먹고 온 남편은 의외로 두어 번 젓가락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또한 옥순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본국에 남겨둔 아들을 위하여 몇 가지의 장을 보아가지고 돌아와서 그날 밤으로 귀국하겠단 말을 아내에게 하였다.

“하시구려.”

영숙이는 간단히 대답할 뿐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가려고 아니하였다. 아내도 남편을 쫓아가려지 아니 하였다. 비참한 기분 아래서 어린 딸 옥순이를 가운데 앉혀놓고 서로 말없이 앉아 있는 동안에 시간을 흘렀다.

나오려는 눈물, 나오려는 원망, 나오려는 한숨…… 이것들을 참느라고 악 물고 있는 영숙이의 입술은 부들부들 떨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혹은 아무 생각도 안 하는지 남편은 무심히(영숙이가 일어를 연습하느라고 사다둔) 어떤 여학생 잡지를 가장 흥미있는 듯이 읽고 있었다.

기차 시간이 가까웠다.

“차비 좀 주세요. 나도 귀국하고 말게…….”

영숙이는 마침내 한마디의 말을 시험으로 던져보았다.

남편은 읽고 있던 잡지를 책상에 놓았다. 그리고 시계를 꺼내 보았다.

“에쿠, 시간이 거의 됐군.”

남편은 아내의 말에는 대꾸도 안 하고 일어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뒤에는 주인 노파에게 택시를 한 대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껏 비상한 조심성으로 말없이 앉아 있던 옥순이가 마치 집잃은 아이같이 입을 비쭉비쭉하면서 일어서더니 큰일이나 난 듯이 아버지를 찾으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래층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위층으로 날아왔다.

“야, 울기는 왜 울어? 나 혼자 갈 것 같아서 그러니? 내려오너라.”

옥순이는 비칠비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모반함을 받은 분노와 자존심을 꺾인 불유쾌로써 영숙이는 내려가는 어린 딸의 뒷모양을 흘겨보았다. 옥순이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아버지의 품에 안긴 뒤에야 처음으로 안심한 듯이 울음을 그쳤다. 그 울음소리가 그치면서 남편이 주인 노파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아직 여섯 살 “, 난 어린애가 어미를 버려두고 애비를 따라 가겠다는구려. 얘 어미라는 사람은 아이 어미 노릇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요.

마(뭐, 하여튼)- 사내구려. 여인이 아니야.”

노파는 이층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애원하듯이 영숙이의 손목을 잡았다.

“오쿠상(안주인. 아직도 노파는 영숙이를 오쿠상이라 부른 적이 없었다), 왜 단나사마(남편)를 따라서 귀국하지 않으세요?”

영숙이는 비웃음을 띤 점잖은 얼굴로 노파의 말대답을 대신할 뿐 입은 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영숙이는 희망과 절망과 공포로써 마음은 끝없이 긴장되어 있었다. 노파의 주선, 자기와 남편의 사이를 영구히 숙명적으로 연결시킬 어린 자식, 여기 대하여 얼마의 촉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는 절망의 가운데서도 알지 못하는 희망으로 노파의 주선을 그대로 버려두었다.

노파는 몇 번을 위층으로 올라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마지막에는 어린 옥순이까지 얼러보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헛되이 돌아갔다. 남편은 노파의 간청을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어린 옥순이는 아버지의 몸에 꼭 안겨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영숙이도 마침내 온갖 미련을 끊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노파가 올라와서 영숙이에게 ‘내려가서 영감의 팔을 잡고 늘어지라’는 부탁을 할 때에 영숙이는 마침내 거절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젠 그만두어요. 그런 무능자를 따라서 귀국했다가 밥바가지 들고 다니게……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요.”

그는 이렇게 거절해버렸다.

택시가 왔다.

남편과 옥순이가 택시에 오르는 소리, 서로 작별하는 소리, 그 뒤에는 택시의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껏 무서운 참을성으로 참고 있었지만 영숙이는 더 참지 못하여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마치 어린애와 같이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오쿠상, 진정하세요. 그러게 내 그러지 않더냐구. 단나사마를 왜 따라가 시지 않았어요?”

영숙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갑자기 일본말이 나오지 않는 그는 조선 말로 노파를 욕을 하였다. 그런 뒤에 눈물을 씻고 남편이 잊어버리고 간 궐련을 끌어다가 한 개 붙여 물었다.

남편이 귀국한 지 한 주일 뒤에 영숙이도 귀국했다.

아직도 자기는 똑똑히 그렇다고 생각해본 일은 없었으나 동경에서 공부를 준비하고 있던 그의 마음 한편 구석에는 온전히 그 공부를 문제 밖으로 삼고 이제 다시 귀국하여 그 집안의 주부로서 일을 할 생각이 늘 움직이고 있던 것이었다 더구나 비교적 . 영리한 그는 자기의 나이(그는 벌써 스물여덟이었다)가 이젠 공부할 시기가 지났다는 것도 깨달은 것이었다.

막연히 남편이 자기를 맞으러 올 때를 꿈과 같이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그 의 예상대로 남편이 오기는 왔으나 자기는 돌아보지도 않고 어린 옥순이만 휙 채어가지고 귀국해버렸는지라 이제 더 동경에 혼자서 묵고 있는 것은 온전히 무의미한 일이었다.

더구나 옥순이까지 잃은 뒤에 시시각각으로 늘어가는 그의 적적함은 그로 하여금 낯선 동경에 그냥 묵고 있지를 못하게 하였다.

그는 귀국해서 곧 자기의 오라비를 남편의 집에 보내어 이혼 수속을 요구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꿈질꿈질 얼른 처결을 내리지 않았다.

영숙이의 평판이 평양에서는 매우 나빴다. 점잖은 집 딸, 명가의 아내, 두 아이의 어머니, 조강지처, 이러한 사람이 가정과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달아났다 하는 것에 평양 시민의 노여움이 발한 것이었다. 더구나 남편의 재산이 다 없어지는 것을 기회로 달아났다 하는 것은 더욱 그들의 노여움을 돋우었다.

영숙이가 어떻게 길에라도 나가면 뭇 사람들이 그를 손가락질하였다. 이전에는 가깝게 사귀던 사람이 그를 만나면 힐끔 돌아서버리는 사람조차 흔히 있었다.

거기에 대한 반항적 태도로써 부러 머리를 들고 평양 시내를 일없이 한동안 돌아다녀보았으나 그는 마침내 평양을 떠나서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심하였다.

더구나 그 결심 가운데에는 용감스럽게도 자기의 장래를 개척해보겠다는 장한 희망까지 섞여 있었다.

그의 그때의 결심에 의지하건대, 그는 서울로 올라가서 여성해방 운동의 한 거두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자기의 남편이 사회에서 얻은 소설가로서의 명망보다 훨씬 더 크고 빛나는 명망을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헬머의 집에서 벗어난 노라가 이 뒤에 다시 헬머 앞에 나타날 때에는 헬머로 하여금 머리를 숙일 만한 인격과 명성을 얻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이만한 결심 아래. 그는 평양을 뒷발로 차던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의 그의 동무들은 영숙이를 어쨌든 맞아주었다. 조선의 노라, 인습을 때려부순용사, 가정과 남편을 뒷발로 차버린 투사…… 이러한 여러 가지의 명예 있는 이름으로써 그들은 영숙이를 맞아주었다.

그러나 기실 영숙이는 노라가 아니었다. 노라는 헬머의 집안의 한 인형이었던 데 반하여 영숙이는 남편의 집 주권자요 주재자였으며 겸하여 대표자였다. 다만 그와 노라가 공통되는 점은 가정과 남편과 두 아이를 내버리고 달아난 것뿐이었다. 그러나 노라가 가정과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달아난 데 대하여 자세하고 완전하게 이해를 못 가진 영숙이는 자기를 그 유명한 문호 입센이 세상에 보여 준 한 대표적 이상적 여성 노라와 같은 사람으로 믿은 것뿐이었다. 그의 동무들이 아무 비난 없이 대함으로써 그는 이 신념을 더욱 굳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자기에게 있는 영웅적 일면을 발견하고 스스로 오히려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노라, 조선의 노라.’ 그는 때때로 혼자서 뇌어보고는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후회나 자식에 대한 미련을 느끼지 않았다.

1년이 지났다.

그의 주위에도 한 그룹이 생겼다. 그것은 모두 영숙이와 같이 가정과 남편을 뒷발로 차던지고 뛰쳐나온 사람들로 조직된 그룹이었다.

그들은 모이면 남성의 포학함을 욕하였다. 남성, 더구나 남편이라는 남성의 우월감과 거기에서나온 압제를 저주하였다. 그리고 여자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우리도 사람이다 하였다.

그리고 아무 불평과 불만이 없이 가정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가정에서 뛰쳐나오기를 권하였다. 남편을 반역하기를 권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유일의 표어는 인습을 벗어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때때로 폭풍우와 같이 그를 엄습하는 성욕의 물결이었다. 서른 과부, 가장 성적 충동을 느낄 시기에 있 는 그는 때때로 무섭게 몸과 마음을 엄습하는 성욕 때문에 눈이 어두워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때까지 있었다.

어떤 가을날 저녁, 이날도 성적 충동 때문에 몸과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던 그는 후다닥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돌아다니 던 그는 어떤 좁은 골목에서 술에 취한 사람 하나를 만났다. 영숙이는 길을 비켜주느라고 어떤 집 담장을 꼭 끼고 섰다.

취한 사람은 영숙이의 앞에까지 왔다. 그러나 지나가지는 않고 딱 멈추고 서서영숙이를 들여다보았다. 처음에 영숙이는 침이라도 탁 뱉어주고 가버리려다가 이상한 호기심으로 태연히 마주 바라보아주었다. 취한 사람은 눈의 초점을 맞추는 듯이 얼굴을 이리 찡그리고 저리 찡그리며 한참 영숙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만 혼자서 하하하하 하고 웃더니,

“난다 파파이지야나이카(뭐야, 노파 아니야?)”

하고는 비틀비틀 걸어가버렸다.

“오라질!”

영숙이도 마주 저주를 하였다. 그리고 노여움으로 흥분이 되어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그러나 그 뒤부터 영숙이는 차차 화장에 몹시 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무능자인 그의 남편은 무얼 하나? 가정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한 바보였 지만 사회적으로는 예술과 소설가의 한 거두로서 이름 있던 그의 남편은 이 즈음은 아무것도 쓰는 것이 없었다. 그의 반대파에서는 그를 청산하였다고 기뻐들 하였다.

본시 자기에 대한 비평이나 반박에 대하여는 일절 응답을 안 하던 그는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영숙이는 그것을 자기의 힘으로 믿었다. 자기가 아직껏 그의 집안의 현부로서 온갖 일을 다 살펴주어서 그로 하여금 집안에 대하여는 마음 놓고 창작의 붓을 들게 하였기에 그의 문명이 올랐지, 자기를 잃어버린 그는 지금은 다만 한낱 바보에 지나지 못할 것이었다. 집안의 가장과 주부를 겸하여야 할 지금의 그, 어린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노릇을 겸해야 할 그, 더구나 가난에 싸인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은 정해둔 일이었다.

‘인제야 저도 다 됐지.’ 때때로 영숙이는 자랑에 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자기에게 이야기하고 하 였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남에게 나타내기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글쎄, 봐요. 바보라우 바보야. 제가 무얼 하나. 내가 있었기에 이러구저러구 했지 할 게 뭐란 말이오? 아마 그 사람을 직접으로 모르는 사람들은 훌륭하게 알겠지? 그렇지만 급기야 만나보면 우스워요.”

그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자랑하였다. 그리고 여성의 위대한 힘을 더욱 과장하였다.

또 1년이 지났다.

그때에 아직껏 침묵을 지키던 영숙이의 전남편의 소설이 오래간만에 어느 잡지에 발표되었다. 그다음 달에는 소설 세 편이 발표되었다. 그 뒤부터는 다달이 몇 편씩 발표되었다.

영숙이는 의외의 마음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때 영숙이는 새 남편을 맞아가지고 새로운 살림을 시작한 때였다.

그의 동지들도 대개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씩의 소위 ‘제비’를 달고 있었다. 영숙이의 지금 남편은 영숙이의 어떤 친구 ‘제비’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때 영숙이는 차차 자기의 생활과 미래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때였다. 더구나 그 불안 속에는 커다란 불유쾌조차 있었다. 자기라 는 한 여성은 ‘시대의 한 희생물’에 지나지 못하지나 않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한 데에서 나온 커다란 불유쾌였다. 그것은 명료하지 못한 불유쾌였다. 그러나 가슴을 우려내는 듯한 아픔에 다름없었다.

영리한 그는 지금 남편과 언제든 백년해로를 속삭이면서도 이 살림이 며칠을 계속하지 못할 것을 막연히 느꼈다. 그런 뒤에는 또 한 남편을 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셋째에서 넷째로, 넷째에서 다섯째로…… 이렇게 지낼 동안 자기의 얼굴에 주름살만 잡히면 그때는 온갖 파멸이 이를 것이었다.

지금 매일 신문지는 새로운 여성이 가정을 버리고 뛰어나오는 것을 보도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들 영숙이와 마찬가지고 아무러한 완전한 자각도 없이 혹은 일시적 반항심을 혹은 일시적 들뜸으로 혹은 남의 권고에 넘어가서 자기의 장래라는 것은 고찰해볼 여유도 없이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20년, 30년, 혹은 50년이 지나서영숙이 같은 선구자들이 어떠한 말로를 지었는지 ‘역사’라 하는 것이 예증을 들게 될 때에야 비로소 그칠 것이었다.

그러면 자기라 하는 한 여성은 후인을 경계하는 한 표본에 지나지 못하나, 할 때에 그는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 제 장래를 위하여 마음은 늘 전전긍긍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심리의 결과로서 그는 지금의 이 남편만은 어떻게 해서든 잃지 않으려고 온 수단을 다 썼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남편의 사랑, 좀 하면 튀어나가려는 그 사랑을 구하기 위해 그는 별 아양을 다 부려보았다.

전남편의 가정에서 주권자요 주재자이던 그는 이번의 이 가정에서는 뚝 떨어지면서 인형의 지위는커녕 피정복자의 지위조차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온 수단과 노력을 다 쓰지 않으면 안 될 지위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남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는 그는 전남편에게서 달아날 때에 가지고 나온 3,000원의 돈(아직껏 꼭꼭 싸서 감추어두었던 것)조차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커다란 불안과 노력 아래 영숙이의 두 번째 가정생활은 차차 진행되었다.


또 반년이 지났다.

그때에 신문은 영숙이의 전남편의 혼약을 보도하였다.

고독한 가운데에서 비상한 정력으로 창작을 하던 씨는 전 부인이 출분한 지 3년 되는 이 여름에 ○○○ 양과 가연을 맺어 운운…… 신문의 ‘문단 소식란’에 이러한 기사가 났다.

그때의 영숙이는 두 번째의 가정생활조차 깨어져버리고 자기의 입을 치기 위하여 거리에서 웃음을 파는 한 직업여자가 된 때였다.

영숙이의 두 번째 가정이 깨어진 데 대하여는 영리한 영숙이로도 그 이유를 똑똑히 알 수가 없었다. 영숙이가 전남편의 집에서 뛰쳐 나온 것과 같이 그 이유는 지극히 막연한 것이었다.

“이다음에 돈 많이 벌어가지고 다시 만납시다.”

이 한마디를 마지막 말로 남겨놓고 남편은 나가서 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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