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장
1, 커다란 무덤을 껴안고
나그네 살림살이 스물두 해 반!
커다란 무덤을 껴안고 놀았다,
쑥 캐는 지어미의 눈물에 젖어서
무리선 늦은 해 엷은 빛이
뉘엿뉘엿 넘어갈 때에,
시들푼 산길에 고달픈 지팡 막대 집어던지고,
피에 절은 비릿내가 힘없이 타는 누런 연기(烟氣)가
거칠은 풀끝에 어리인 옛 무덤 모인 곳에서,
안개 같은 지나간 꿈을 가슴에 그리며.
으스름 달빛을 붙들어라 회오리바람은 꼬여오라,
모닥이 울음이 일어나는 곳에서
피와 고기의 뭉틋는 소리는,
유령(幽靈)의 향연(饗宴)에 첫 서곡(序曲)이더라.
해골바가지의 깔쭉거린, 널름거리는 귀화(鬼火)
질그릇이 깨어지는 듯한 여우의 노래,
빛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그윽한 집에서
이상한 눈을 번득거리는 촉루(髑髏)의 무리는
제가끔 거룩한 신(神)이라 일컬으며 곤댓짓하더라.
거기에서 나도 흰소리하였다,
나그네 살림살이 스물두 해 반!
그래도 거룩한 신(神)의 하나이라고.
2, 시악시의 무덤
임자 없이 묻힌 시악시 무덤에
알 수 없는 비밀(祕密)이 감추어 있다고
시름없이 지껄이는 나무 긁는 아이 혼자 군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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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끄러운 가슴은 울렁거려
임자 없이 드러내는 시악시의 젖가슴을 볼까 봐서
꺾으려고 가보니 그 꽃은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악시 무덤 위에
다만 한 송이의 이름모를 꽃이었다
아프게 꺾는다 하여도 임자의 손이라 하오면
스러질 꽃이오니 꺾인들 어떠하오리까마는
저잣거리의 값싸게 파는 웃음이 아니어든
웃기고 또 다시 꺾어버리는 쓰라린 솜씨야!
임자 없는 꽃에 임자 없는 바람이 불었거니
맘 없이 오고 가는 나비야 무슨 죄오리까
꽃을 꽃으로 보아 꺾는 꽃이어니
시악시 마음에 감추어 둔 붉은 구슬을 누가 알았사오리까
놀던 나비 날아갈 때에 울던 꽃은 스러져 버렸다.
꽃도 없이 조으는 시악시의 무덤은
알 수 없는 비밀(祕密)을 꿈꾸고 있는데
나무 긁는 아이의 혼자 군소리는
날이 늦도록 그 소리가 그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