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의 서
[내 이 나라의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연인과 같이 있으면서도 몽상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고독의 왕자처럼 마음 둘곳 없는 적막을 느낀 뽀들레르가 한말이라. 이 괴팍스러운 버릇을 일대에 자랑삼아 가진 시인의 말을 내가 함부로 써서 거룩?하신 [現代 조선의 지식여성]을 욕되게 할 마음이야 아예 있을리가 없다.
그러나 이때에도 한때에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던 여성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또한 그들이 가질 자랑도 있었다. 하지만은 지금은 그들의 말을 이곳에서 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조선의 지식여성]이라면 그들의 생활수준은 중류이상이 절대 다수인 것은 틀림이 없고 따라서 그때쯤은 이들 지식여성이란 축들은 특수한 사람들을 제쳐놓으면 대개는 뒤떨어진 무리들이라고 냉시되어 왔다는 것은 뒤떨어진 무리가 대표하는 세대는 항상 진취적인 것이 아닌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때의 행동의 세계를 떠나선 모든 지식인들이 반성이나 또는 사색이라는 보금자리로 들어가 생각해낸 것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성]에 대한 요구였다. 이것은 휴머니즘을 고향으로하고 내려온 심리적 경향인 것이다.
그러면 [조선의 지식여성]들은 지성의 중요한 요소로서 사회와 시대와 문화에 얼마나한 감격과 정서와 관심들을 가지고 소극적이나마 이것을 아끼고 간직했다가 다음에 오는 세대에 물려주려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구라파(歐羅巴)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이나 교양을 또는 그와 유사한 것이라도 가지고 있었던가? 더욱이 [현대 조선의 지식여성]들은 이것을 가졌던가.
그것은 물론 이때에도 오랜동안 문화란 것이 있었고 현재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받아온 문화의 유산은 그 질에 있어서 구주인의 그것과 같이 평가되지 못할것이 있는 것과같이 그것에 대한 우리들의 전통과 교양이라는 것도 그 사람들과는 딴판의것이 태반이며 더욱이 조선의 여성들에 있어서는 매우 유감이면서도 할수없는 사실로는 아직 문제가 되지않는다. 왜냐하면 조선에 새로운 교육이 들어온 것은 벌써 반세기가 가깝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새로운 교육이란 [명목]에 도취는 했을지언정 완전한 지적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신문화가 이 땅에 들어온 후의 교육사가 증명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들이 받았다는 교육은 우리들의 부로(父老)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지적 교육을 시킨것도 아니었고 우리들 자신 역시 자의식을 가지고 배운 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조선 여성들이 받았다는 교육이 그 교육기관 자체가 벌써 종교면 종교를 위하여 일정한 목적 밑에 그 필요에만 적당하게 되어왔음으로 여기서는 지적 고양이란 것은 처음부터 무용의 장물이었었다.
요즘 구주사람들이 진정한 『인간정신의 저하』를 한탄하는것은 지나간 때의 고매하던 인간의 정신이 자꾸만 자꾸만 비속해지는 것을 우려하는데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의 경제적 혼란이라든지 정치적 분열이라든지가 조건이려니와 대관절 [현대 조선의 지식여성]이란 그 사람들에게 저하될 정신의 척도를 알아보겠다는 내 자신의 정신상태를 스스로 의심하여 마지않는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생활의 십자가두에 나선 그들의 취미나 교양이란것을 본다해도 알수가 있다는 것은 [파-메넨트·웹]이 인간생활의 전체가 아닌 것은 두말할것도 없거니와 우리들이 다방이나 극장같은데서 오연(傲然)하게 걸어 들어오는 한 사람의 지식여성을 만난다고 하자. 그뒤에 따라 들어오는 남성 그것은 반드시 비굴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발바닥이라도 빨라면 평두저미하고 의령 시행할 무리가 아닌 법이 없다. 그런데도 부포하고 그들은 곧잘 귀속말을 하고는 웃고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취미가 서로 합치되고 공감된 결과이니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호오한 인간성을 찾아볼 수가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모방이라도 아주 창피한 모방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왕 모방이란 말이 났으니 한말 더할 것은 모방도 잘하면 문화에 유익한 바가 적지않은 것이고 때로는 필요한 모방도있는 것이지만은 그것은 대체로 모방할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하여야만 될것은 더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말할것은 모신문사에서 무슨 좌담회를 개최했을때에 제제 명사들이 모인 것은 물론 그곳에는 그때말로하면 고등여고교유가 여러분 오셨는데 주최자측에서 홍다대접을 하였더니 어떤 분이 차잔을 드시는데 물론 바른편 손으로 차찬의 손잡이를 든 것은 좋은 일이나 다시 왼편손을 차잔 밑에 갖다 바쳤다는 것은 좀 어색하더란 말은 모씨가 그다음 필자를 만나 한 말이다.
그야 지금은 윈저-공이라는 간단한 신세로 남구의 산자수명한 곳에서 사랑의 꿈을 꾸는 전 영제가 웰스 전하로서 파리에 갔을 때에 어떤 다방에서 가배를 마시게 되었고 그 차가 반드시 뜨거웠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때에 웰스는 그 차잔을 들어 차대에 부어서 마셨다는 것은 그것이 파격의 행동이면서도 그 품위가 높은 기상이 당시 그곳의 젊은 사람들에게 찬양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말한 모고 여선생님과는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여선생님이 차를 마실때는 그 머리속에 [다도]를 생각한 것이니 다도 그것은 물론 동양적인 정취도 있고 좋은 것이다. 그것은 다다미위에서 차를 따릴때부터 마실때까지 그 과정이 한 개의 도악적이면서도 [시스템]이 서 있는 것이고 홍차나 가배를 급사가 갖다 줄때 머리까지 푹파묻히는 의자에 걸쳐 앉아서 마실때와는 아주 다른것이언만 이 얼마나 지나친 모방이며 부충실한 모방인가? 이것이 결코 그 한분만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이며 그들이 모두 [현대 조선의 지식여성]의 [제조원]이라면 옛말에 [한개가 잘못 짖고 동리개가 모두 짖는다]는 비유를 누가 거짓말이라고 하겠는가.
이런 말은 아주 사소한데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은 벌써 신추라고 완연히 지금의 경성은 결혼씨즌이 돌아오듯이 거리를 걸어가면 무슨 관 무슨 원 할것 없이 요리집 문전에는 거의매일 한곳도 빠짐없이 모군 모양의 결혼피로연회장이라는 간판을 보는 것이다. 인간생활에 있어서 결혼이라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고 결혼에 있어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두사람이 서로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래서 결합된 것이 이상적인 결혼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여성에게 있어서는 결혼에 중요한 것은 다이아 가락지고 결혼의식인 것이다.
의식도 무슨 의식이 외국사람의 결혼등기소에서 등기할수있는 그런 기관은 아직 조선에 없으니 말할바아니나 훨씬 간략한 의식으로 마친다해도 될것을 이것좀 보라는듯이 수백수천의 돈을 들여가며 악을 쓰고 광고를 하는 것은 그것을 [광고결혼]이라면 새로운 명칭은 될지 모르나 그 무슨 신화이며 우상화인가? 신랑신부가 서로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자신이 또는 그런 신념이 있다면 어떠한 형식이라도 알맞게 살면 그만 일것을 그와같은 의식에구속되어 신성해야할 일생에 두번 있지못할 결혼을 우상화한다는 것은 아무 사랑도 없고 이해없는 배우자들이 혹은 구도덕의 희생자로서나 또는 어떤 정책적인 결혼의 노예로서가 아니면 할수 없는 인간모독이 아니면 무엇이냐. 인류의 역사는 항상 더나은 것을 더 완전한 것을 완성키 위한 노력이라면 이 결혼의 양식에도 우리는 우상적인 의식을 버리고 인간에로 도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무슨 놀라운 사실일까. 재판소 창틈으로 들어오는 이혼소송에 나타난 대다수 지식여성들의 기소이유를 살펴보면 거의는 남편의 사랑이 없다느니 이해가 없다느니 뿐이니 그와같은 엄청난 의식밑에서 여보란 듯이 광고를 하고 맺은 맹세가 이다지도 쉽게 파종이 온다는 것은 그 죄의 전부를 여성에게만 돌리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현대 여성의 허영에서 발원한 것이다. 그러면 그 허영이란 어디서 온것이냐하면 그는 물론 제 자신을 가지지 못한까닭이다. 사람이 제 자신을 의식했을때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그런데 우리가 거리에 나다이는 지식여성들을 보면 그는 열사람이 모두 한가지 표정이다. 모두 추종이고 모방밖에는 없다. 어디 거기서 인간으로의 높은 기개를 볼 수가 있는가. 교만이란 것은 어폐가 있을 지 모르나 인간으로서 부앙천지에 부끄러운 곳이 없다면 교만해도 좋으련만 현대 조선의 지식여성이란 종족들에게는 교만할수 있는 정신을 찾지는 못하겠다. 어디까지나 비겁하고 예속적인 것이다.
그 이유야 이에 간단히 말할수는 없다해도 그릇된 이기주의때문이란 것쯤은 말할수가 있다. 한사람의 영예와 이욕을 버리고라도 그들 전체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독립하지 안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도저히 이것을 바랄것 같지도 않고 이천년전의 교훈대로 현모량처라도 된다면 상승이고 나머지는 [원즉원(遠則怨)하고 근즉불손(近則不遜)]의 형이라고 하면 필자에게 항의를 할 여성이 있을는지도 모르나 필자는 저으기 그것을 현대 조선의 지식여성들의 명예를 위하여 바라는 바이며 그렇게되면 내 이글이 모멸되어도 무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