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이립(三十而立)’─의 옛사람의 말을 생각할수록에 지금의 신세가 억울한데 더한층 안타까운 것은 ‘사십이(四十而)─’ 무엇이던가를 잊어버렸습니다. 삼십에 서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사십에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의 옛사람의 가르침을 어느결엔지 까먹어 버린 것이 삼십을 넘어 사십을 바라보는 요사의 세운의 마음을 한층 죄었다.

행차 칼이나 목에 맨 듯 괴로운 마음으로 사십의 교훈을 생각하면서 포도를 걸어갈 때 정해 놓고 가게 유리창에 어리우는 자기의 꼴이 눈에 뜨인다.

그 자기의 꼴에 한눈을 파게 된 것이 또 한 가지 요사이의 기괴한 버릇이다. 사람의 모양을 호들갑스럽게 망칙하게 비춰내는 것이 거리의 유리창의 심술이기는 하나 그 비뚤어진 속으로도 후락한 육체의 꼴이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거리의 목욕탕에 들어가 저울 위에 오를 때 아무리 발을 굴러 보아도 바늘이 십칠 관을 더 가리키지는 않았다. 이십 관을 자랑하던 위장부의 늠름하던 체중이 반년 동안의 비참한 몰락인 것이다. 얼굴에 온통 허구렁이 진 것은 오히려 나이의 턱이라고 하더라도 비대하던 몸집이 거의 반쪽으로 축난 것은 유리 속으로도 보기 딱했다. 그 헌거롭던 자태가 이제는 하릴없는 등신의 행진이었다.

지난 반년 동안 술이 과했고 몸가짐이 허탕했던 까닭으로밖에는 돌릴 수 없는 것이 그 이상의 이유를 세운은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했대야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같이 또박또박 이치를 따지지 못하나 무거운 울화만은 거리의 누구에게도 밑지지 않게 가슴속에 간직한 그였다.

아침에 집을 나가면 동무들과 휩쓸려 술과 해 동무를 하다가는 밤이 패야 돌아간다. 소리패와 좌석을 같이하고 진종일을 지낸다고 해도 별반 신통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농을 걸고 북새를 놓고 하는 동안에는 도리어 사람이 허름해만 지고 처신이 떨어져 갈 뿐이었으나 그러나 집안에 있을 때의 지옥의 괴롬을 생각하면 그래도 실속은 없으나마 그 긴치 않은 동무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된다.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길을 잡아보겠다고 몇 번이나 두문불출 집안에 들어박혀 보려고 애썼는지 모른다. 애를 썼을 뿐이지 그 갑갑한 공기 속에서는 단 반날을 진정하고 앉아서 신문 한 장 편히 읽을 수는 없었다. 생활의 기쁨이라고는 없는 어둡고 무거운 유풍 속에서 아내는 허구한 날 황고집을 피우면서 흥이야 항이야 쓸데없는 일에까지 입살이 세다. 생각하면 묵은 대의 희생을 당한 결혼부터가 불행한 것이었다. 남편된 도리를 다하지도 못했거니와 아내로서의 부드러운 정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남편의 밖에서의 처신이 허랑하다고 활이야 살이야 문책이 심하면 끝에 자진해 버리겠다고 약사발 소동을 일으켰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뺏어서 던진 약사발이 공교롭게도 뜰 앞 향나무를 맞히면서 뿌리 위에 쏟아져서 독한 잿물 기운에 잎이 타고 가지가 시들기 시작했다. 선친이 돌아가기 전에 손수 심어 놓은 기념수였다. 경망스럽게도 치명의 상처를 입은 향나무를 바라만 보아도 심화가 터 올라와서 그 후부터는 더욱 집이 싫어졌다. 집이 아니라 굴이요, 잠깐 잠자리를 빌러 들어갈 뿐인 게 껍질인 셈이었다. 잠만 깨면 작정 없이 거리로 나와 계획도 지향도 없어 발 가는 대로 뜻을 맡겼다.

자연 삼십의 교훈이 마음속에 절실히 떠오르게 되었고 유리창에 어리우는 메마른 꼴이 눈에 띠이게도 된 것이다. 그러나 발 맥이 노곤한 판에 단골찻집에 들어가 이것도 그맘때만 되면 번김없이 와 앉아 있는 진을 만나 마주앉게 되면 세운은 무시근하게도 교훈도 자기 꼴도 흐리마리 잊어버리고 만다. 긴치 않다고는 해도 그 바람에 아직도 동무만은 버리지 않고 좋든 궂든 사귀어 오는 것이다.

“이십 관짜리 돈키호테의 출근이시라.”

진이 이렇게 괴덕을 부리는 것도 마땅한 것이 세운의 육신이 아무리 축났다고는 해도 진의 체질은 다시 그의 반쪽이었다. 선천적인데다가 현대인의 신경이 두 겹으로 덮쳐서 빈약한 육체를 만든 것이다.

“이십 관을 십칠 관으로 정정하게. 숫자는 발러야 하니.”

“그럼 십칠 관의 돈키호테. ─오래간만에 한번 울어 보게.”

울어 보라는 것은 웃어 보라는 뜻이었다. 어디서 배운 것인지 세운은 일부러 호걸스럽게 보이려는 듯이도 꾸며서 웃는 너털웃음의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능청스럽게 헐헐대고 웃는 품은 흡사 말이 우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 말 웃음도 요사이의 그의 입에서는 까딱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찻집은 차만 먹는 데가 아니라는 듯이 세운과 진은 대낮부터 술타령이다.

“내가 십칠 관의 돈키호테면 자넨 무엔가.”

술잔을 놓고 세운은 흐릉흐릉 진을 바라본다.

“난 십사 관밖엔 안되네.”

“십사 관짜리 산초 판산가.”

“이렇게 여윈 산초 판사라는 게 있나. 정작 산초는 돈키호테보단 되려 똥똥하고 오돌진 딸보였으리.”

“어쨌든 자넨 내 산초가 아니었었나.”

“일을 거들어주었을 뿐이지 자네 종노릇한 법은 없어.”

“일이구 무어구 쓸데없는 자네 발설루 멀쩡하던 사람을 요 모양을 맨들었어. 죄가 크지 커.”

“되려 치사나 하게. 내 덕으루 그래두 그만큼이나 사람 행세를 하잖았나.”

“행세라니 요 모양 된 게 요게 행세야. 위신만 떨어지구 욕만 당하구. ─문화니 문화인이니 인젠 진저리가 난다. 괜히 어림두 없이 문화인에 한몫 끼어 보란 것이 당초에 불찰이었지.”

“그게 벌써 돈키호테. ─여기 집적 저지 집적 그 돈키호테적 심정 때문이었지 문화사업이야 언젤 간들 그럴 리가 있나. 문화를 나무랠 것 없어.”

십칠 관과 십사 관은 술김에 얼굴이 후렷해 가며 뜨던 입들이 누그러지면서 입방아가 재간다. 소위 문화사업이라는 것은 그들이 작년 가을까지 한 일년 동안 해오던 잡지의 일건을 가리킴이다. 당초의 시작이 말하자면 진의 종용으로 된 일이었다. 때를 맞춘 진의 권고가 번둥번둥 날을 지우기가 무료하던 세운의 호기심과 허영심을 낚아내기에는 충분하였다. 일거양득이었다. 세운의 허영심도 만족되었으려니와 이 역 할 일 없던 진에게도 어떻든 날마다 돌보아야 할 일이 생겨서 활기를 얻은 것은 사실이었다. 세운에게는 대대로 물려오는 돈푼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었고 선친의 피라고 할까 문화사업에 대한 일종 미치광이의 열정과 야심이 부질없이 솟았다. 잡지 경영에 대한 일정한 정견도 지식도 없었으나 문화인의 한몫을 본다는 자랑이 가슴속에 찬란히 빛나고 성산이 어울리지 않더라도 술 먹은 턱만 대면 그만일 것을 생각하고 잡지 창간호 첫머리에 사실을 내걸고 사장의 이름으로 창작한 발간사를 발표했을 때에는 세상 사람들의 눈이 한꺼번에 자기의 한 몸 위로 쏠린 것 같아서 헝겁지겁 기쁨이 가슴을 박차고 솟았다. 선친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유산의 대부분을 던져 사회봉사로 시민에게 도서관을 기부한 것이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고 사회의 찬하를 받아 거리의 인기를 휩쓸었으나 눈에 보이게 찬란한 잡지사업이 결코 그만 못한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처음뿐 한두 호를 계속하는 동안에 아무 반향도 없었거니와 곶감 빼먹듯 다달이 뭉칫돈을 뽑아 넣기도 야속하였고 사회 사람 또한 도리어 교만한 눈으로 조롱의 빛을 보일 뿐이었다. 적어도 거리의 문학 청년들만은 완전히 휩쓸어다가 뜻대로 휘둘러볼까 한 것이 그들 역시 존경은커녕 눈알을 희게 해 가지고 멀리서 할금할금 바라볼 뿐이었다. 일년 동안에 봉도 웬만큼 빠졌고 실속 없는 광대노릇을 한 것이 겸연도 해서 그다지 많이 남지도 못한 여재를 차라리 술 먹어 없애는 것이 낫다고 고쳐 생각하고는 잡지를 폐간해 버렸다. 진은 그의 뜻을 휘일 수도 없거니와 그 역 별반 잇속도 없는 일에 어지간히 싫증이 났다. 그러나 할 일 없는 생활이란 더한층 허망하고 쓸쓸한 것이어서 세운은 반년 동안의 허탕한 생활에 몸과 마음이 오싹 바스러져 버린 것이었다.

“잡지에 성공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건 다 그만두구래두 월매의 맘을 낚은 건 잡지 덕이 아니구 먼가. 기생이라구 돈에만 홀리우는 줄 아나. 요새 기생은 자네만큼의 허영은 다 가졌다네.”

진은 모든 책임을 혼자 도맡을 것도 아니어서 이렇게라도 말길을 돌리는 수밖엔 없다.

“뚱딴지같이 월매는 왜. 알구 보면 월매두 호락호락 외줄에 걸려올 계집이 아니지만 그보다두 내 알구 싶은 건 주리의 일인데 자네 어느 정도로 주리를 후렸나.”

“그런 비밀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란 말인가. 여자 하나를 후린다는 게 남자에겐 필생의 대업인데 결국 내 재주와 인품을 말하란 말인가. 쓸데없는 속 앓지 말구 어서 오늘밤 한턱 쓰게.”

벌써 돈키호테와 산초와의 관계를 해약해 버린 십칠 관과 십사 관이 그날 밤 카페에 가서 도사리를 틀고 앉은 것은 물론이다.

주리를 옆에 앉히고 따라 주는 술을 받아 마시면서 두 사내는 은근한 공론이 분분하다.

“주리와 사귄 지두 벌써 오래가 아닌가. 그러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두 피차의 맘을 알 수나 있나. 적어두 내겐 자네들 맘속이 천길 바다 속이란 말야.”

“욕심두 많지 주리를 마저 가지잔 말인가. 난다 긴다 하는 놈 다 밀치구 월매를 얻었으면 그만이지─욕심이 과해.”

“월매 월매하니 말이지 아까두 말했지만 외줄에 걸려올 위인이 아니거든. 연분은 깊다구 해두 아직두 맘속은 옳게 모르네. ─생각하면 나같이 염복 없는 불행한 사내두 드므리. 사내치구 사랑에만 성공한다면 세상에 무슨 한이 있겠나. 잡지구 문화구가 아랑곳인가. 여자 하나두 못 낚구군 살아서 뭣하겠나.”

“그게 솔직한 고백인진 모르나─그렇게까지 외통곬로 생각하게 됐단 말인가. 위험한걸. 자네 맘씨가 위험해.”

“그렇게 마지막으로 주리의 맘속이나 알아봤으면 하는 것이네. 알아서 어쩌자는 건 아니라 알았으면 가슴이 후련하겠단 말이야. 미련이 아니라 내 맘의 한 개의 시험이네.”

“얼마든지 알아보게나. 허나 나와의 관계를 굳이 캘 것이 없는 건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대로 두는 것이 운치가 있으니 말야.”

“자네에게 청할 것이 아닌진 모르겠으나 주리를 며칠 동안 내게만 맡겨두게. 화학실의 시험용으로 반응을 살펴볼 테니.”

“그 대신 실패할 때에 자네가 져야 할 배상이 클 것을 알아야 하네.”

“또 한번 말해 주리, 이게 마지막 시험이라는 걸.”

요행 말이 통하지 못하는 까닭에 주리는 두 사내의 불측한 의논을 속 모르고 딴 귀로 흘리면서 심심하다는 듯이 손가락에다 쏟아진 술을 찍어서 탁자 위에 글씨 장난을 친다.

언제나 드레스를 입고 고수머리를 붉은 리본으로 매어 올린 그의 자태를 세운은 영화잡지에서 본 배우의 인상과도 같이 마음속에서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마음의 고백이란 한번 기회를 잃으면 다시 잡기가 겸연해서 어느 때까지나 심드렁하게 늦춰지는 것이다. 세운은 주리에게 대한 열정을 바다 속을 흐리는 조수같이 은근히 간직해 왔다.

“이런 실례가 어디 있어요. 시퍼런 사람을 옆에 놓고 혼자들만 모를 소리로 수군덕거리니.”

주리의 불평은 당연하였다. 짜증을 내고 일어서 가려는 것을 세운이 팔을 붙들어 간신히 자리에 앉혔다.

“대신 산보나 갈까.”

그 카페에서는 시간의 구속이 비교적 자유로울 뿐 아니라 세운은 남과는 다른 중요한 손님이어서 그의 청이라면 좀해 거절을 당하는 법이 없었다. 그 자리로 차를 불러 주리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앉았다.

소위 ‘속력 있는 산보’라는 것이었다. 차를 두 시간 동안 온전히 세내서 시간이 끊어질 때까지 지향없이 거리를 휘돌아치는 것이다. 늘 하는 버릇이었으나 말하자면 미치광이의 짓이었다. 교외를 한 바퀴 거닐고는 다시 시가로 들어와 휘돌아치는 판에 같은 거리를 두 번 세 번 지내곤 하였다. 가운데 끼인 주리의 따뜻한 체온 속에 묻히면서 두 사내는 흐르는 등불의 행렬을 옆 눈으로 스치며 지리한 줄을 몰랐으나 그러나 두 시간은 상당히 길어서 철교를 지날 때에 잠깐들 내려 바람을 쏘이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주리 혼자만이 따로 떨어지고 세운과 진이 한 짝이 되어 나란히 걸었다. 한 묶음이 되었던 셋이 풀려질 때 그것이 가장 무난한 격식일지도 모른다. 몸에 뱄던 주리의 체온과 향기가 차차 일신에서 사라져 감을 느끼면서 세운은 다리 난간에 의지했었다. 진도 덩달아 옆에 서서 두 사람은 강 위를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거리의 등불이 멀리 바라다 보일 뿐이요 배 한 척 없는 강물은 어둠 속에서 한없이 넓어 보인다. 바로 발아래 굽이에서는 검은 물이 후미를 쳐서 흐르면서 마치 악마의 도가니와 같이도 께름칙하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했겠나.”

오래된 침묵을 깨트린 것은 세운이었다. 옆구리를 찔리운 진은 어두운 속에서 세운의 옆얼굴을 노렸다.

“어차피 악마의 생각밖에 더 했겠나.”

“맞었네. ─노여 말게. 자넬 지금 이 난간에서 밀어 떨어트리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네.”

“엣 추어. 난 먼저 들어가겠네.”

진은 짧게 외치고 짜장 몸이 떨리는 듯이 옷섶을 세우면서 차 있는 곳으로 급스럽게 걸었다.

세운의 의견에 의하면 거리에서는 호텔같이 예절이 바르고 인사성이 깍듯한 데는 없다는 것이다.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방에 있을 때나 보이들의 시중은 가려운 곳에 손이 닿을 지경으로 조밀하고 친절하였다. 무례하기 짝없는─거리와는 딴 세상인 그 속에 있을 때에만은 거리에서 받은 가지가지의 상처와 잡지를 하다가 입은 여러 가지의 봉변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까짓 하치않은 문화인이 다 무어며 주제넘은 문학자들이 다 무엇에 쓰자는 것이냐─하고 호텔 문을 나들 때 보이들이 뛰어와서는 구두를 털어주고 모자를 받아주고 할 때마다 세운은 고개를 곧추들고 속으로 한 번씩은 외어 보았다.

편안한 속에서 일없이 하루 이틀 묵는 동안에는 거리에서 받은 모욕의 화풀이는 완전히 된다. 그가 자별스럽게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참으로 그 점에 있었다. 잡지를 하다가 남은 여재를 술값과 호텔 비용에 쓰게 된 것을 통쾌하게 생각하며 진작 그런 용도를 터득치 못했던 것을 오히려 한되게 여겼다.

이튿날 주리를 데리고 단둘이 호텔 문을 밀치고 들어가기가 바쁘게 낯익은 보이가 달려와 전과 같이 허리를 굽히고 모자를 받았을 때 세운은 주리의 면전에서 옷섶이 적어도 아홉 자는 넓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객실에 들어가 커다란 검은 의자에 허리를 쉴 때엔 거리의 왕자는 내노라─하는 자랑이 유연히 솟았다. 마침 가게의 공휴일인 까닭에 세운의 청을 주리는 굳이 사절할 것은 없었던 것이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오 직업의 문제였던 까닭이다. 주리는 직무상으로는 하필 진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단골손님의 청은 거역할 처지가 못되었다. 이날의 세운의 청을 받아들인 것도 간밤에 세 사람이 자동차로 거리를 달렸을 때 이상의 심정으로는 아니었다.

호텔의 풍속은 낡은 것을 좋아하는 듯 의자의 검은 가죽도 진홍빛 카펫도 천정에서 드리운 샹들리에도 낡은 것이었다. 기름진 고무나무와 찬란한 양진달래의 화분도 그 낡은 치장 속에서는 달뜨지 않고 침착하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의 주리의 자태를 세운은 밤에 볼 때와는 또 다르게 밝은 것으로 느꼈다.

“잡지하다 실패한 얘기했던가.”

“진씨에게서 대강 들었죠만.”

“진이 녀석 때문에 실없이 망신했어─점심이나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합시다.”

마침 보이가 분부해 놓았던 식사의 준비를 알리러 온 까닭에 세운은 주리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객실로 나오면서 세운은 말을 계속한다.

“……그래서 난 화풀이로 남은 재산을 술타령에 쓰기로 작정한 것이오.말하자면 일종의 복수도 되구─”

“갸륵한 심지군요.”

주리 자신 그것이 조롱인지 진정인지 모르고 던진 말이다.

“괴벽스런 버릇이라고 할까─예금통장을 늘 몸에 지니는 습관이어서……”

세운은 앉은 자리에 그 통장이라는 것을 속주머니에서 내서 탁자 위에 덜석 던지면서 주리의 표정을 살피는 눈치였다.

“집에 두면 도적을 맞을까봐서요?”

문득 아내 생각을 하고 아닌게아니라 주리의 한마디에 세운은 뜨끔했으나 금방 천연스런 어조로 돌아가면서,

“결국 어느 순간에 쓰게 될지를 모르니까 몸에 지니는 것이 편하거든. ─우선 당분간 쓸 것인 것 얼마나 되겠나 맞춰봐.”

“판도라의 상자 속을 누가 알아요.”

“어디 단위만─천일까 만일까.”

“몰라요.”

“숫자를 말하는 건 실례라구 치구 그럼─“

세운은 동안을 띄우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주리의 뜻 하나면 이 순간에라도 통장을 살러버릴 수 있는데.”

“통장이 제게 무슨 아랑곳이예요.”

“……지금 다따가 하는 소리가 아니오. 오래 전부터 하려던 소리를 이제 이 자리에서 할 뿐요. 다른 누구가 주리에게 어떤 열정을 품고 있는지 모르나 난 나대로의 생각을 첨부터 변함없이 품어 왔던 게요.”

“그런 소리 들으려구 여기까지 동무했던가요.”

일어서는 주리를 붙들면서,

“농이 아니오. 나로선 이게 평생 한 번의 청이고 마지막 시험이요. 주리, 내 미래의 열쇠는 주리의 손안에 있음을 알아주시오.”

“그런 중대한 문제를 제겐 왜요. 난 오늘 이럴 줄 모르구 따라왔는데. 진씨께나 물어보세요.”

짜장 진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세운은 순간 겸연한 자기의 꼴이 다시 돌려 보였다. 요번에는 나가는 주리를 붙들 염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잡지에서 받은 욕보다도 오히려 주리에게서 받은 욕이 더 크고 아팠다. 두 번째의 봉변에 세운은 맥을 잃고 호텔을 나왔다. 주리에게도 부끄럽거니와 그보다도 더욱 진에게는 들 낯이 없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 달고 몸이 으쓱 솟는 듯하였다.

마지막 고패에 다다른 듯도 하다. 예료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으나 짜장 거기에 이르고 보니 일종 알지 못할 안도의 염과 함께 캄캄한 담장이 앞에 가로막힌 듯한 답답한 느낌이 가슴을 쳤다. 인생의 피리어드─뜻 없는 청춘을 저주하듯 그것이 왜 그리 빨리 왔는가.

벌써 갈 곳이 없었다. 월매의 집일까. 마지막 시험까지 지내지 않았던가. 월매의 시험이 또 남았단 말인가. 졌을 때에는 자기가 져야 할 배상이 클 것을 약속한 진과 그 체면으로는 더 어울릴 수도 없어서 혼자 이름도 모를 거리의 술집에서 남은 날을 지내고 거나한 김에 월매의 집을 찾은 것은 밤이 벌써 이슥한 때였다.

시세가 나서 거리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그 어느 하루나 불리우지 않는 날이 없는 이름 높은 월매였다. 아침부터 시간을 다는 날도 많았고 초저녁에 불리우면 이차 회 삼차 회로 돌아다니다가 밤이 패서야 겨우 집에 들어가는 요사이의 인기였다. 자정을 넘는 시간이기는 했으나 벌써 돌아왔을까 의심하면서 문 앞에 섰을 때 대문이 열린 채로다.

요행으로 여기고 문안에 들어서면서부터 취한 김에 소리를 쳤다.

“월매. 월매 있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일까. 방안에는 불이 꺼졌고 인기척이 없다.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인 것은 물론 취한 까닭도 있었다.

“월매가 아직 안 올 법이 있나. 월매─대답이 없으면 막 들어갈 테다.”

섬 뜰에 올라섰을 때에 겨우 모기 소리만한 대답이 있었다. 월매는 방 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불 속에서 자아내는 목소리였을까.

“누구예요.”

“누구라니 목소리도 몰라보나. 너무 괄세 마라.”

세운은 마루에 덜석 주저앉으면서 가쁜 숨을 내쉰다.

“김선생이세요.”

“발딱 자빠져서 김선생은 무어야. 그래두 냉큼 일어나 도령님 맞이를 못 나오나.”

“오늘밤만 용서해 주세요. 몸이 고달퍼서 누웠으니─. 점잖게 댁으로 돌아가셨다 내일 만나 뵙죠.”

“흥, 월매가 사장 영감을 딴다. 세상이 이렇게 됐던가.”

“제발 용서하세요.”

“하루에 계집 둘에게 요 망신이니 세운도 이 세상에선 볼일 다 봤지.”

“내일 말씀드릴 테니 노여 마시구 돌아서요.”

“돌아가다니 죽으란 말이냐. 발칙한 것, 먹을 것 다 먹었다구 이제 와서 이 푸대접야. 정 고따위로 군다면 들어가서 눙지를 해놓겠다. 네 방에 못 들어갈 내더냐.”

홧김에 황소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구둣발로 허둥허둥 마루에 올라 장지에 손을 대었을 때였다.

“누구야.”

월매 소리가 아닌 그것도 황소 소리만큼은 한 사내의 고함이 별안간 방에서 난 것이다.

“아닌 밤중에 웬 잔소리야 시끄럽게. 월매 월매 하구 야단이니 세상에서 월매의 임자가 너 하나뿐이더냐.”

세운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장지에서 제물에 손이 떨어졌다. 안타까워하던 월매의 비밀이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사내의 고함소리로 그 자리에 폭로된 것이다. 술이 금시에 깨이면서 널판으로 면상을 후려갈기우고 시커먼 구렁 속에 굴러 빠진 듯한 정신의 혼란이 순간 육신을 뒤흔들었다.

그 이름모를 사내와 한바탕 겨루고 사생결단을 내보고 싶다는 분한 마음보다도 먼저 자기 얼굴에 진흙을 끼얹이웠을 때의 부끄럼이 전신에 용솟음쳐 흘렀다. 사내를 미워할 것도 아니고 계집을 원망할 것도 아니요 눈알에 드러난 사실은 다만─자기의 한 몸이 이제는 완전히 진흙구덩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는─그 사실뿐이었다.

다시 더 두말이 없이 더 따지는 법도 없이 세운은 마루를 내려서 대문을 나왔다. 술에서는 깨었으나 다시 그 무엇에 취한 듯한 무의식중의 황망한 태도였다. 고요한 밤 거리를 부는 바람이 무정하게도 무례하게도 대중없이 면상을 스쳤다.

한낮은 되어서 세운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어느 날 개운한 날은 없었으나 이날은 더한층 몸이 흐리고 무거웠다. 간밤 일이 꿈속 일만 같이 생각되다가도 문득 현실이었음을 깨달을 때 관자놀이가 후끈 달곤 하였다.

밀창을 열고 의자에 앉아 맑은 바람을 맞을수록에 정신이 들면서 마음은 괴로워만 갔다. 뜰 앞 향나무를 정면으로 마주대하고 앉은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향나무를 대할 때마다 돌아간 선친의 의용에 접하고 그 목소리를 듣는 듯한 것이었으나 이날 그가 눈을 새삼스럽게 뜨고 놀란 것은 독한 약사발의 세례를 받았던 나무가 눈을 돌린 그 며칠 동안에 무섭게도 시들어 버렸음이다. 처음에는 한 부분이 탔을 뿐으로 그래도 소생할 희망이 있거니만 생각했던 것이 어느덧 나무 전체가 시들었을 뿐이 아니라 탄 자리는 점점 헤져서 나무의 반 이상이 누렇게 말랐던 것이다. 운명의 날은 벌써 시각을 다투고 있었다. 세운은 모르는 결에 시선을 돌려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가슴이 아파지며 그 자리에 쓰러져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세상 사람이 세운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선친의 이름을 들었다. 늘 선친의 공에 비겨서 아들의 하는 일이 판단되었다. 아들의 하는 일은 선친의 공을 한층 빛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욕되게 하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세운이 잡지사업을 생각한 것은 선친의 사업에 한 가지를 더하고자 함이었음은 물론이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세상은 부전자전의 공덕이라고 찬양하면서 세운의 뜻을 한없이 칭찬하던 것이 한번 실패하게 될 때 인심의 표변은 손바닥을 번기는 것보다도 빨랐다.

요사이의 세운의 처신은 온전히 선친의 이름을 그르치고 욕되게 함에 지나지 않은 셈이었다. 자기 한 몸의 번민뿐만이 아니라 선천의 사적까지를 들어서 생각할 때 세운의 괴롬은 뼈를 가는 지경이었다. 향나무의 운명은 선친의 운명만이 아니라 세운 자신에게 보내는 암시나 너무도 컸던 것이다.

주리와 월매가 반드시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발붙일 곳을 완전히 잃은 것은 사실이었다. 오후는 되어서 세운은 또─그것이 마치 운명인 듯이 집을 나섰다.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르는 향나무를 다시 더 바라보기도 싫어서 부랴부랴 대문을 나섰다. 요정 이층에 올라 완전히 하루의 화대를 달고 오래간만에 월매를 부른 것은 물론 애착도 미련도 아니었다. 다만 그의 마음을 한번 더 낚구어 보자는 것이었다. 술이 웬만큼 돈 후에야 비로소 피차에 말이 있었다.

“간밤 일 용서해 주시겠죠─직업이 시키는 노릇이지 진정이야 설마 버렸겠어요.”

“요 가살이 같으니 그 수로 몇 놈이나 녹여 냈니.”

세운은 놈팽이가 누구냐고는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로 월매의 볼을 부리나케 갈겼다. 월매는 혼을 뽑히우고 한편으로 몸이 쓰러지는 지경이면서도 한마디 항력도 없었다.

“네게 줄 게 있다. 직업이 시키는 노릇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니 난 이것으로 네 직업을 살 테다. 정조와 마음까지두 도맡아 살 테다.”

세운의 속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호텔에서 주리에게 보였든 예금통장이었다. 여자의 값을 통장 이상의 것으로 치지 않는 것이 세운의 버릇이었고 반생의 경험에 있어서 그것이 늘 진리임을 깨달아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내어 놓은 통장을 월매는 굳이 거들떠보지는 않았다.

“돈은 돈, 진정은 진정이지 아무렇기루 그렇게까지 사람을 얕잡아보세요.”

“진정이라는 게 항상 귀찮은 물건야. 두말말구 난 지금 통장으로 네 맘을 샀다. 앞으론 내 명령대로만 쫓아야 돼.”

무슨 이야기가 있고 무슨 거래가 있었는지 넓은 방에서 두 사람은 날을 지우고 저녁을 보냈다. 이야기에 지치고 술김에 잠들이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밤이었다. 등불이 별스럽게 노오랗고 식탁 위가 어지럽게 널린 것이 알 수 없이 세운의 가슴을 쓰라리게 찔렀다. 요란하던 밖 세상이 무덤 속에 묻혀 버린 듯이도 쓸쓸하다. 잠 속에서 운 것일까. 세운의 두 볼에는 눈물자국이 보였다. 누운 채로 역시 눈을 방긋이 뜨고 누워 있는 월매를 바라보면서 세운을 목소리를 부드럽혔다.

“아깐 말이 너무 과했던걸 허물 말구─월매 어디 진정으로 내 말에 대답해 보려나.”

월매는 팔을 굽혀서 베개를 삼고 세운을 향해 옆으로 누웠다.

“월매에게두 설마 이 세상 자미가 깨알 쏟듯 자별스럽진 않겠지─어느 때까지든지 살구 싶은가.”

“마지못해 사는 게죠.”

“정말인가.”

“나두 몇 번이나 그런 생각해 봤는지 몰라요.”

“좋은 수가 있지. ─나와 동행할까.”

세운은 벌떡 일어나서 주머니 속을 부스럭거리더니 조그만 종이갑을 집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월매는 처음으로 그 뜻을 짐작하고 깜짝 놀라 덩달아 자리를 일어났으나 설레는 법 없이 즉시 누그러진 태도를 가졌다.

“왜 하필 지금이 맛인가요.”

“지금 이 자리에서 문득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획해오던 것을 특별히 오늘로 작정했던 것이니까.”

침착하게 종이를 풀고 물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는 월매는 가슴이 섬찟해졌다.

“그러나 전─생명이 하나만은 아녜요.”

“머? 그럼─”

이번에는 세운이 휘둥그런 눈으로 월매의 몸을 훑어보았다. 새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을 곳을 겨냥하면서─그것이 누구의 생명이든 간에 그 새로운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물론 자기 일이 더 긴하다는 듯이 즉시 눈을 돌리기는 하였다.

“천생에 외로운 팔자. ─나 혼자 가지.”

“에그머니나, 세운씨 세운씨.”

월매가 기급을 하고 황망스럽게 외쳤을 때에는 세운은 벌써 일정한 분량의 약을 물로 삼키고 자리에 쓰러진 뒤였다.

월매의 고함소리에 보이들이 달려와 의사를 부르고 응급치료를 하며 급히 서둔 것이 공을 이루었던지 세운은 교묘하게도 소생되었다. 요행이면 요행이요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세운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것은 이튿날 아침 병원 침대 위에서였다.

누구보다도 먼저 눈에 띠인 것이 옆에 앉은 월매였다. 간밤과는 달라서 그를 보기가 한없이 겸연쩍다.

“가장 은인인 척하고 남의 얼굴을 그렇게 빤히 보지 마라.”

“은인이 아니라 원수같이 뵈시겠죠. ─그러나 제발 이담엘랑 그런 모험은 혼자 계실 때 하세요.”

“암, 혼자 하구말구. ─당초에 월매 따위와 동행하려던 것이 오산이었지.”

세운은 문득 생각난 듯이 새삼스럽게 월매의 배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기맥이 쇠진한 지금의 그에게는 별반 흥미도 질투도 솟지는 않았다.

“이것두 제발 다시 내던지질 말구 잘 간직해 두세요.”

월매가 살며시 침대 요 속에 넣어 준 것은 간밤의 예금통장이었다. 세운은 다따가 얼굴이 화끈 달며 월매의 볼을 또 한번 부리나케 갈겨 볼까 하였으나 몸이 아직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궁싯거리는 팔을 별안간 달려와서 붙든 것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진이었다.

“황천 맛이 어떻든가.”

그답게 사정없는 조롱이었다.

“한 번 실패를 너무들 비웃지는 말게.”

“한 번은 왜 한 번이야. 자네가 겨우 한 번만 실패했단 말인가. 잡지구 주리구 월매구 다 잊어버렸나.”

“또 한번 안 하나 보지.”

“제발─”

결국 눈을 떠보아야 어제의 연속인 오늘이지 세상의 운행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세운은 간밤 일이 흡사 잘못된 희극의 한 토막 같아서 보람없는 자기의 꼴이 더한층 의식의 복판을 파고들었다. 재주를 넘다 쓰러진 어릿광대의 꼴─그것이 자기의 꼴임을 깨달을 때 마음속에는 사실 불 같은 결심이 다시 타기 시작하였다.

“하구말구─이번엔 독립독행 기어코 성공해 보일 테니.”

그러나 세운의 그 결단의 말도 진의 귀에는 여전히 광대의 헛 나발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아서 역시 농으로 대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결심한다구 장할 것이 없네─이 세상에선 자네나 내나 다 마찬가지거든.”

지껄이다가 월매와 우연히 시선이 마주치자 자기들도 모를 미소를 둘만이 주고받는 것이었다. 누워 있는 세운의 눈에 그 꼴들이 띠이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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