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사담집 5/동양위의 사위

『자, 이제는 또 수모 받으러 돌아갈까?』

누엿누엿 넘어가는 저녁해를 바라보면서, 더벅더벅 내띄지 않는 발을 옮기는 한 궁유(窮儒)가 있었다. 나이는 사십 내외, 만약 일찍이 등제(等第)를 하였으면 지금쯤은 당당한 고관으로 초헌(軺軒)이 아니면 나다니지 않을 터이요, 귀 밑에는 금관자가 번들거릴 나이지만 이 선비는 때꾹 흐르는 도포에 하인 하나 뒤에 달지 못하고 황혼의 거리를 맥없는 걸음으로 더벅더벅 간다.

이윽고 이 궁유의 그림자는 동양위 신익성(東陽尉 申翊聖) 집의 드높은 소슬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기웃 대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보다가는 마치 무슨 죄나 지은 사람같이 하인들의 눈을 피하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하인들은 이 궁유를 보았다. 보았으나 모두 외면을 하여 버린다.

그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궁유는 중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귀를 기울이고 큰사랑의 동정을 들었다. 엿듣노라니까 안에서 울려 나오는 이 댁 대감 동양위의 점잖은 웃음소리와 거기 응하는 귀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듣고 궁유는 다시 발을 돌이켰다.

부지불각 중에 쓴 탄식성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 ×

궁유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댁 사위 홍명하(洪命夏)였다.

명하는 자기의 방인 한편 구석 어두침침한 방으로 찾아 들어갔다.

『아아, 왜 마누라를 귀현의 집에서 맞았던가』

한 개 이름없는 궁유로서 이런 명문의 사위가 된 것이 차차 뉘우쳐졌다.

동양위(東陽尉)의 사위. 말하자면 왕실의 사위의 사위. 호벌 좋은 이 명색에 탐욕이 나서 덜컥 이 댁에 장가를 들기는 들었지만 들고 보니 짝이 너무도 기울었다.

대감댁 따님 마누라에 이름 없는 선비 사위는 너무도 차이가 났다. 먹을 탁이 없으면 장인댁에서 얻어먹고 있는지라 의식의 걱정은 없으리라, 세상에서는 이렇게 알는지도 모르지만 명하에게는 이 댁에 얻어먹고 있는 것이 굶는 편보다 훨씬 못하였다.

이 댁에서 그래도 자기를 알아주고 얼마만치 동정하여 주는 사람은 장인 대감 한 사람 뿐이었다.

그 외에는 처남되는 신면(申冕)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하인배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야말로 식객, 걸객(乞客)의 대접밖에는 하지 않았다.

처갓집 하인이면 자기 마누라의 하인이요 따라서 자기에게도 또한 하인 벌이 될 것이다. 그렇거늘 이 댁 하인들은 명하를 걸인이나 달치 않게 보았다. 대감댁 하인, 만날 보느니 대감 영감들뿐이요 환옥(還玉)이며 금관자뿐이라, 아무리 상전 댁 사위라 할지라도 송진 관자를 붙인 이름 없는 선비에게, 조금인들 존경할 생각이 날 까닭이 없었다. 명하가 출입을 할 때에는, 보면 인사를 하여야겠고 인사하기는 싫고 하니까, 모두들 모른 체하여 돌아서 버리고 하였다. 무슨 심부름이라도 시키려면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것도 그것이려니와 명하에게 있어서, 더욱 아니꼽고 언짢은 것은 같은 이 댁 사위로서 자기와는 동섯벌이 되는 김좌명(金佐明)이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였다. 말하자면 같은 집 딸을 안해로 삼았는지라 누가 높고 누가 낮고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김좌명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를 하여 문형(文衡)에 그르고 위세가 당당한데, 동서 되는 자기는 이냥 한낱 궁유에 지나지 못하매, 아무리 같은 집 딸의 남편이라 하지만 지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일찍이 김좌명이 문형으로 있을 때에 명하는 표문(表文) 몇 수를 지어 가지고 동서에게 보이며 「이 표로 능히 과거에 급제를 할 만한가」고 물어 본 일이 있었다. 그때 김좌명은 표문은 펴보지도 않고 휙 땅에 내어 던지며,

『표?…… 표범 말인가? 늑대는 아닌가? 하하하하……』

하며 탁 침을 뱉은 일이 있었다. 칵 치밀어 오르는 분을 마음대로 하자면, 당장에 동서의 멱살을 잡고 그 입을 찢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곤궁한데 자라서 남의 수모를 수없이 겪어 본 이 궁유는, 그때 얼굴로 떠오르는 피를 삭이고 억지로 씩 웃어 보였다.

『표문이나 표범이나 표는 마찬가지지.』

아아, 치미는 분을 감추고 이렇게 말할 때에 가슴에서는 얼마나 방망이질을 하였던가.

더욱이 민망한 것은 자기의 아내였다. 같은 집 딸로서 하나는 남편을 잘 얻어 만나기 때문에, 자기 친정 출입에도 앞뒤에 수천 명 하인을 늘이우고 위세 좋게 드나들거늘, 자기의 아내는 궁유 남편을 만난 탓에 제 집 한 간도 못쓰고 친정에서 얻어먹고 있으며, 이전 처녀 시절에는 마음대로 부리던 하인들도, 지금은 부리지도 못할뿐더러 도리어 하인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도 간간 있는 것을 볼 때에는, 자기의 무능함이 통절히 느끼어지면서 아내를 보기조차 무안한 때가 많았다.

자기의 내외가 기식하고 있는 어두침침한 방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는 부엌에라도 나갔는지 방안에 없었다. 처녀 시절 같으면 동양윗댁 소저가 어디 부엌에를 나서랴만 지금 하인들과 함께 부엌 출입을 안 하지 않을 수 없는 아내의 처지를 생각할 때에 명하의 눈에서는 눈물까지 새어 나오려 하였다.

『에익! 이 수모를!』

× ×

어느 날, 명하는 장인 동양위가 없는 때에 사랑에서 저녁상을 받은 일이 있었다. 저녁상을 방금 받고 바야흐로 젓가락을 들으려 할 때에, 통통통 하더니 처남되는 신면이 사랑에 쑥 들어왔다.

들어오다가 사랑에 명하 혼자만 있는 것을 본 뒤에는, 불쾌한 듯이 도로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나가려던 발을 문안에 멈추었다. 그리고는 명하의 받은 상을 굽어보았다.

상을 받고 젓가락을 들으려다가 처남이 들어 오는 바람에 송구하여 움질거리던 명하는 처남이 제 상을 굽어보는 바람에 더욱 송구하여 젓가락으로 공연히 밥그릇만 뚱기고 있었다. 밥상을 굽어보던 신면은 혼자서 흐응 감탄하는 듯이 소리를 내인 뒤에는 벼락같이 하인을 불렀다.

『야―. 누구 없느냐』

『네이』

달려온 청지기에게 신명은 밥상을 가리켰다.

『저게 뭐냐』

『녜?』

『저게 꿩의 발이 아니냐.』

사실 명하의 밥 반찬에는 꿩의 발이 있었다. 그러나 청지기도 미처 무엇이라고 대답을 못하고 주저한 때에 신면의 독쌀스런 명령이 내렸다─

『천인(賤人)의 입에 꿩의 발이 들어가면 입 부르트너니. 저런 것을 밥상에 놓아서 홍서방 입이 부르텄다가는 대감마님께 꾸중 들을 줄 모르나? 냉큼 집어다가 버리게.』

이 명령에는 청지기도 감히 어찌하지 못하여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냉큼 못 집어내겠나?』

『……….』

『그럼 내 집어내지.』

성큼성큼 와서 꿩의 발을 집어서 문밖으로 휙 내어 던졌다.

별의별 수모를 다 겪어 온 명하도 여기는 참기가 힘들었다. 예에 의지하여 싱긋이 웃어 보이려 하였지만, 그의 얼굴은 도리어 밉게 찡그려질 뿐이었다.

× ×

이 댁에서 명하를 그래도 사람으로 대접해준 사람은 장인 대감뿐이었다.

동양위는 명하의 인물을 알았다.

그 학식이 높은 것이 비록 지금은 진토에 묻혀 있으나 장차 고함치는 날에는 그의 동서 김좌명 따위가 능히 어깨를 겨눌 수 없을 만함을 알았다. 그 위에 명하의 놀라운 인성과 그 아래 감추여 있는 고집을 알았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커다란 수모와 욕을 당할 때에도, 안면에 그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억지로 웃음을 웃는 그 성격을 보았으므로 혼자서 몸서리치고 하였다.

지금 철없는 자기의 아들과 다른 사위는 한낱 궁유라 하여 명하를 그렇듯 수모하지만 장차 한때 반드시 명하의 세월이 올 것을 짐작하고, 그 날에는 이 남에게 제 속을 보이지를 않는 인물이, 과거에 겪은 수모를 어떤 방식으로든 갚을 것을 생각하고 은근히 근심하고 두려워 하였다.

그래서 아들 면(冕)을 불러서 경계도 하여 보고 사위 김좌명을 불러서 경계도 하여 보았지만, 이 마음이 교한 소년 재상들은 한낱 궁유따위가 눈에 들 리가 없었다.

『아버님두 별 근심을 다 하십니다.』

동양위의 근심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자식들이 듣지 않으면 않느니 만치 동양위의 근심은 더하였다. 이 음침한 선비가 만약 영구히 궁유로 끝나면여니와 한때 활개치는 날이 있다면 그 날에는 그의 손 아래 자기 자손이 화를 보지나 않을가? 고함치는 날이 있기만 하면 반드시 그 날에는 환이 이를 것이다.

이것을 피하기 위하여 동양위는 적지 않게 노심하였다. 그의 환심을 사고저 혼자서 늘 고심하였다.

× ×

어떤 날 동양위가 어디를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매 작은 사랑에서 풍악의 소리가 아주 멋들어졌다.

그래서 청지기를 불러서 물어보았다─

『저게 무슨 소리냐?』

『자근 사랑 나으리께서 친구들과 노십니다.』

『누구 누구냐?』

『김제학(김좌명)이며 그밖 몇몇 재상들이올시다.』

『홍서방도 같이 계시냐?』

『안 계십니다』

『그럼 어디 계시냐?』

『아랫방에서 혼자 주무십니다』

『자?』

동양위는 뜻하지 않고 혀를 채었다.

『참 아이들이 왜 그다지도 철따구니가 없담. 홍서방을 이리로 좀 청해라.』

얼굴이 자연히 찌프려졌다.

얼마나 불쾌할가. 연회를 베풀려면 같은 매부에 벼슬한 매부는 부러 청하여 오기까지 하고, 벼슬 못한 매부는 한집에 있으면서도 부르지도 않는담, 무슨 철없는 짓이람. 혼자서 아랫방에서 잔다 하지만 졸음이 올 까닭이 없을 것이다.

부시시 들어오는 홍명하를 동양위는 쾌활한 태도를 지으며 맞았다.

『작은 사랑에 놀이가 있는 모양인데 자네는 왜 안 참례했나?』

명하는 눈은 꼭 내려떴다.

『불청객이 무얼 하러 가리까?』

예에 의지하여 얼굴 표정에는 변화가 없으나 마음엔 분명히 불만을 품은 어조였다.

『음, 그럴 겔세. 자네도 또 그런 철없는 소년들과 한 좌석에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나. 오늘은 나도 심심하니 우리는 여기서 따로히 놀세.』

이리하여 작은사랑에 대하여 큰사랑에서도 잔치가 열렸다.

× ×

동양위는 그의 자식들의 불화 때문에 이만치 노심하고, 온갖 방도를 강구하였지만 여전히 그 천대는 변함이 없었다.

이리하여 수년, 드디어 동양위는 병이 나서 인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임종의 자리에서 그는 명하를 불렀다.

『여보게』

『녜?』

『이 술잔을 들게』

명하는 묵묵히 머리만 숙였다.

차차 가까와 오는 임종, 동양위는 움찔움찔하여 이불 아래서 자기의 오른손을 꺼내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자기 가슴 너머로 넘겨서, 그 앞에 꿇어앉아 있는 명하의 손을 잡았다.

『여보게』

『?』

『내, 내, 내가 임종이야』

『……….』

『자. 이 술을 들고 내 임종의 유언을 들어주게.』

명하도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인지 듣고 잔을 들겠습니다.』

『먼저 잔을 들게.』

『먼저 말씀을 하십시오.』

동양위의 입술이 푸들푸들 떨렸다. 잠시 숨을 태운 뒤에 또 말하였다─

『잔부터 들게.』

『말씀을 듣고 봉행할 것이면 잔을 들겠습니다.』

『여보게. 유언일세. 부탁일세.』

『말씀을 하세요.』

인제는 할 수가 없었다. 명하의 손을 잡고 있던 동양위가 팔을 흠첬다.

『아아. 우리 집안은 망했구나.』

이 한마디를 최후로 남기고 동양위는 영원의 나라로 떠나갔다.

일제히 울리어 나가는 통곡성─ 그 가운데서 명하는 음침한 얼굴로 묵묵히 앉아있었다.

× ×

동양위 떠난 뒤에는 인제는 보아줄 사람도 없어서, 명하는 처가 집에서까지 쫓겨나 버렸다. 수년이라는 날짜가 흘렀다.

『에─익. 이놈들 물렀거라 비켜라. 꿈쩍하지 말고 모두들 들어 서거라.』

종로 네거리로 대궐을 향하여 위세 좋게 내닫는 대신의 행차가 있었다.

『에쿠. 홍정승 행차시다.』

때는 현종대왕의 어대도 지나고 숙종대왕 초엽 늠늠한 구종 별배를 앞뒤로 거느리고 종로 넓은 길을 좁다 하며 사린교에 엄연히 앉아있는 일위 재상.

동양의 감식이 틀리지 않아 등제한 뒤에 쑥쑥 승차를 하여, 인제는 정승의 지위에 오른 홍명하의 행차였다.

일찍이 그를 얕보고 수모하던 신면이며 동서 김좌명 따위로는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할 대신이었다. 그 위에 왕의 총애와 신임이 두터워서 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마음대로 폈다 쥐었다 할 수 있는 귀한 신분이었다.

사린교 위의 이 대신의 얼굴에는 연하여 기괴한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무슨 매우 흥미 있는 일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행차는 대궐로 들어갔다.

뭇 재상들의 인사를 가볍게 받으며 빈청에 들어가 자리 잡은 정승은 즉시로 승지를 불러서 표문(表文)을 가져오라 하였다.

표문이라 하는 것은 청국 황제에게 바칠 주문으로서 문형에서 제작하여 먼저 대신의 감정을 받은 뒤에 연경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정승의 명령을 받고 달려갔던 승지가 이윽고 문형을 뒤에 달고 다시 빈청으로 왔다. 승지의 뒤로 달려온 문형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홍정승의 동서 김좌명이었다.

달려온 김좌명은 감히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양손으로 공손히 표문을 정승에게 바쳤다.

정승은 표문을 받았다. 받아서는 퍼 보지도 않고 그것을 두어 번 투겨본 뒤에,

『표? 표범인가? 늑대는 아닌가?』

하고는 휙 하니 구겨서 던져버렸다.

순간 칵 죽은 듯이 고요해지는 청내에 정승의 괴상한 홍소성이 울리어 나갔다.

마치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하하하하하.』

× ×

그 후 신면(申冕)의 옥사(獄事)가 일어났을 때에 왕(숙종대왕)은 이 일을 처결하기 위하여 홍정승에게 그 의견을 물었다. 첫째로는 신임하는 대신이요 또는 신면은 홍정승의 처남이 되는 사람인 고로 왕으로서도 신면을 자의로 처결하기가 좀 어려워서 홍정승에게

『신면의 인물이 어떠오?』

하고 물어보았다.

만약 이때에 홍정승의 입에서 신면을 두호하는 한마디라도 떨어졌으면, 정승의 낯을 보아서라도 신면을 관대히 처분하였을 것이었다.

왕이 의견을 물을 때에 홍정승은 한참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한 뒤에 서서히, 말하였다.

『신은 신 죄인과 서로 안 지는 수년이 되옵니다마는, 가까이 사괴지 못하와 그 인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일루의 희망이 붙었던 신면의 생명은 다시 구원할 가망이 없어져서 법에 복하게 되었다.

× ×

신면이 처형받는 날, 홍정승의 저녁 반찬에는 꿩의 발만 수천 개를 요리하여 놓고 정승은 맛있는 듯이 그 꿩발을 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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