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당 선생의 시조집이 간행된다. 무척 기쁜 일이다. 우리 문학은 근래에 없는 하나의 현대의 고전을 얻게 되었다.

신문학운동 이후 시조의 부흥을 본 이래 작가와 작품은 약간지를 굽힐 만하나, 시조의 가진 바 면목과 기능을 충분히 채득·발휘한 이는 사뭇 드물다. 혹 억센 솜씨에 장하면 곡진한 정서를 표현함에 엉성하고, 혹 야릿야릿한 작풍을 일삼으면 묵직한 생각을 함축함에 허전하며, 또 혹 구수하게 제체를 절충하거나 섣불리 신식을 조작하려면 대개 개념적이 아니면 부박에 떨어짐이 일쑤이다. 그런데 선생의 시조는 섬세한 채 단단하고 깊숙한 채 드날리며, 고아하되 사무치고 정서적인 대로 사상적이니, 얼른 말하자면 살과 뼈가 있는 강유를 겸비한 작풍이다. 이 어찌 자가의 독특한 경지에서 사도의 엄연한 규범을 보인 귀중한 결정이요 고마운 업적이 아니랴.

유래 시조란 쉬운 듯 가장 이루기 어려운 문화의 형식이니, 그것은 현대의 시조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그 곤란은 대개 다음의 수점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워낙 그 형식이 국촉하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만한 용무지지가 좁으므로 그 내용이 사뭇 평판적인 개념으로 판박하기 쉬운 점이니, 그 폐를 덜려면 무엇보다도 언외의 다감은근한 정으로써 그 척폭을 최대한으로 심화하여야 할 것이요, 둘째, 그 형식의 규구가 이미 짜여 있으매 그 법을 체득하고 다시 그 법을 넘어 법외의 법에 소요키 위하여는 기전·허실의 심상한 수단 외에 이양한 천래의 재로써 그 형식을 영화하여야 할 것이요, 세째, 시조란 그 자체가 아무래도 과거의 것이니만큼 이를 현대에 활용함에 있어서 숫제 고하기만 하면 애초부터 진부하고 야단스럽게 신한 체하면 홀랑 천부하여 모두 제격이 아닌지라, 이를 구하려면 그 용어에 있어서 느긋한 고언과 알쭌한 현어를 영묘하게 포착하고 그 상념에 있어서 현대적인 감정에 전통적인 의취를 우할 만한 석으로써 그 내용을 순화하여야 할 것이요, 네째 그러고 끝으로 이 문학형식의 부흥된 역사적 의의가 실제 민족적 정신의 제성·보존에 있었던만큼 그것은 다만 문학적인 감정이나 재화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이면에는 한 정신적인 체취와 이념적인 골수를 불가피적으로 요구하니 그를 위하여서는 상기 제조건 외에 다시 이른바 혼으로써 이를 일관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서, 애초부터 시조를 거부하면 모르거뇌와, 적어도 이 문학적 유산을 확충·발휘코자 함에는 이 정·재·식·혼의 사요소가 선행적으로 요청되는 소이이니, 이제 이 집이 사계에 한 모범적인 크나큰 업적을 보임은 실로 그 작가가 이 사자를 골고루 또한 심각하게 갖추었기 때문이다.

위당은, 내가 알기에는 가장 정적인 분이다. 그의 감정은 만져지는 그의 손길보다도 더욱 만문하고 다감하다. 이제 집중의 육친과 근척을 추모·상념하는 사, 고인과 지우를 회억·애상하는 기다의 문학을 읽어 보라. 그 다감·섬세·은근한 정이 어느 무정을 눈물겹게 하지 않으랴. 그러나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의 정서를 순화·고결화하는 높은 감상임에도 그대로 귀한 것이다. 또한 우리의 집중 어느 장, 어느 구에서나 예리한 섬광같이 번득이고 삼렬한 수림같이 둘려 있는 그 재와 식을 보라. 그의 사용한 독득의 법과 법 외의 법은 아는 이라야 알려니와, 심상한 눈으로써도 거의 함축성 깊은 고근어의 풍부한 채택에 의하여 아어의 정치성과 입체성을 배우는 동시, 아울러 기다의 고실, 전통——일언으로 말하면 이른바 우리의 고유한 멋과 정조를 충분히 감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통편 수처에서 혹은 은연히, 혹은 단적으로 발산하는 고귀한 정신의 그윽한 향내요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그 뇌호한 사상적 저류이니, 이 경양에 값하는 골독한 전통성과 일관성은, 설령 그와 시대적 거리를 달리하는 후래의 군자로서도, 옷깃을 바로 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혹 집중 제작의 표현과 상이 대체로 난삽하고, 사뭇 애하고, 끝내 고함을 난할 이도 있으리라. 천근한 문자에만 익은 이는 이른바 일왕심정과 접입가경의 맛을 알기 위하여 모름지기 백편의 풍송으로써 심충의 바다에 침잠하라. 허랑한 가락에만 귀를 기울이는 이는 지그까지의 우리의 산하와 조우한 시대를 무엇으로 보고 느끼느뇨. 병 없이 신음함은 원래 무위타 하려니와 곡할 제 가함은 오당의 취하는 바 아니다. 또 시조란 당초부터 고한 것이요 궁극적으로 예로와야만 좋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니, 섣불리 모던한 시조를 운위하려면 차라리 두루마기로 코티의 향을 발산하거나 갓으로 데모의 열에 질구하라.

끝으로 선생의 이 감회 깊은 저작에 서하는 기연에 여도 역시 자신의 한 신실을 여기 기록하여 애오라지 한 기념을 삼고자 한다. 시조란 말의 명칭과 어의에 취하여 아직 정설이 없고 또 그 쓰는 문자도 시조 간혹 신조로도 되어 있다. 여의 억견으론 시조 시조 신조 등이 모두 우리의 고유한 고어 서의 차자, 곧 동방 고유의 가조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현하 서의 가장 귀중한 작가요, 또한 고래 서의 조예 깊은 열렬한 학자인 선생의 고견을 아울러 두드리는 바이다.

무자(戊子) 첫봄
양 주 동(梁柱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