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國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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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궁직(儆德宮直) 한명회(韓明澮)는 벼슬을 미미하지마는 송도에서 아는 사람은 알았다.

“어 그 녀석한테 걸렸다가는 큰 코 떼네.”

하는 것이 송도 사람들의 한명회 평이었다.

경덕궁 기와를 벗기어 팔아 먹는다는둥, 궁 후원 나무를 찍어 팔아 먹는다는둥 하는 소문도 한 명회가 궁직으로 온지 석 달이 못하여 나기 시작하였다. 그 소문이 결코 헛소문은 아니었었다. ‘탐 재기주색(貪財嗜酒色)’이라는 그의 특색은 이때부터 드러났었다.

한 명회의 아내는 민중추대생(閔中樞大生)의 딸이다. 민대생의 사위가 넷이나 되는 중에 셋째인 한 명회는 다른 동서들에게 업수이 여김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장모 되는 민대생 부인도 다른 사위와 같이 귀애하지를 아니하고 매양 쓴 외 보듯하였다. 명회가 이렇게 장모와 동서들에게 푸대접을 받은 까닭은 여러 가지 있거니와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용모가 괴상하게 생긴 것이다.

한 명회는 그 어머니가 잉태한지 일곱 달 만에 나왔다. 그 어머니가 명회를 잉태하고 그가 나기까지 일곱 달 동안을 죽도록 신고하여 말하자면 더 참을 수 없어서 일곱 달 만에 지레 낳아버린 것이다.

나은 것을 보니 사람의 새끼 비슷하기는 하나 ‘사체유미형성(四體猶未形成)’이라 하도록 아직 사람 꼴이 되지를 아니하여서 그까진 것을 젖을 먹이려고 애쓸 것도 없이 내다가 버리자고 하는 것을 그 집에 있던 할멈 하나가 주워다가 솜에 싸서 더운 방 속에 두어 길러 내었다고 한다. 명신록(名臣錄)을 보면 ‘시생월수년 방시성형(始生越數年方始成形)’ 이라고 하였으니 난지 이삼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사람같이 형성이 되었단 말이다.

그러하던 것이 자라서 한 명회가 되었다. 얼굴이 아래가 펴지고 위가 빠르고 코가 크고 눈은 크나 사팔뜨기요, 머리는 쀼족하게 잡아 뽑은 듯하였다. 이것을 보고 영통사(靈通寺)에서 어느 늙은 중이 ‘광혁첨(光赫尖)’이니 귀히 될 징조라고 하였다. 어찌하였으나 날 때에는 병신스러웠고 자라매 괴물 같았지마는 재주도 있고 엉큼하여 범상치 아니하게 보는 사람은 보았다. 그 종조부 한상덕(韓尙德)이가 ‘이 아이는 내 집 천리구(千里駒)야’ 하여 데려다가 양육한 것이나 중추 민 대생이 사위를 삼은 것이나 다 그를 범상하지 않게 본 까닭이다. 진실로 한 명회는 열 달을 못 채우고 지레 낳을 때에 선악을 가리는 양심 하나를 잊어버리고는 다른 것은 다 찾아 가지고 나온 것이다.

이리하니 장모가 귀에 할 리가 없고 처남과 동서들이 비웃지 아니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명회는 그런 것들은 다 부족괘치라고 생각하는 듯이 태연하였다. 그렇게 명회는 뱃심이 있었거니와 명회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배심 좋은 것이 더욱 미웠다.

다른 동서들 중에는 옥관자르 붙인 사람까지 있이도 명회는 집을 이루지 못하여 조부 되는 문렬공(文烈公)의 자당이 있는 집도 비어버리고 아내는 처가에 갖다가 맡겨두고 이따금 생각이 나면 가서 만나 보고 사기는 이 사랑 저 사랑으로 돌아 다니었다. 그중에 가장 많이 가 있던 곳은 권람의 집이였었다.

명회는 권람의 집을 자기 집과 같이 여기어서 만일 어떤 친구와 만날 일이 있으면 권람의 집을 지정하였고 권람의 집에서도 한 명회를 한집 식구로 알아서 아침밥은 아니하여도 저녁밥은 차려 놓았다. 그러면 흔히 명회는 밤이 깊어서 술이 잔뜩 취하여 무어라고 혼자 지껄이고 웃고는 권람의 집으로 돌아와 밤을 찾아 먹고 아직도 기운이 남으면 권람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떠들다가는 탈당도 아니하고 이튿날 밤이 기울도록 코를 골고 잤다. 그러면 아침 밥상은 부엌에서 그대로 늙었다.

명회가 돌아다니는 곳은 아는 살마이 없었다. 그렇게 형제 이상으로 절친한 권람도 명회 가 사귀는 사람을 다 알지는 못하였다. 다만 가끔 권람의 집 사람으로 데려 오는 사람의 꼴을 보아 그가 한량(閑良), 술객(術客) 등속과도 추축하는 줄은 알았다.

한번은 권람이가,

“여보게 자준(子濬)이, 자네 무슨 술(術)을 배우나?”

하고 물은 일이 있다. 자준(子濬)이라 함은 명회의 자다.

명회는 너털웃음을 치며,

“왜? 내 눈에 벌써 신기로운 빛이 나타나나?”

하고 그 사팔뜨기 눈을 번득거리며 되집어 권람엑 묻는다. 따는 그 눈이 술객의 눈과도 같다고 권람은 생각하였다. 어찌보면 청맹인가 싶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그 눈에는 일종의 광채가 있었다.

권람은 웃으며,

“과연 자네 눈에는 신기(神氣)는커녕 귀기(鬼氣)가 있네.”

“어, 거 무슨 소린고 귀기가 있다니. 내 눈이 이래보여도 천강성(天罡星) 정기를 받은 눈이야. 자네 눈보다는 나으이.”

하고 명회는 어떤 도인(道人)이라는 자가 자기의 상을 보고 하던 소리를 옮기었다.

권 람은 그래도 조부 이래로 유가서(儒家書)를 존숭하는 집에서 자라났으므로 술이란 것을 믿지 아니하였으나 명회는 사실상 잡술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어느 술객에게서 얻어 들은 소리를 가장 제가 할 줄이나 아는 듯이 흉내를 내고는 웃었다.

한 번은 명회가 어떤 술객 하나를 데리고 권람의 집으로 달려 왔다. 그때에는 조선에 도사(道士)라는 것이 많아서 무슨 풍운 조화나 부리는 재주가 있는 듯이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하고 돌아 다니었다.

그 술객이란 자가 권람의 상을 보더니,

“십년 내에 배상(拜相)하시겠소.”

하고 능청스럽게 일어나 권람에게 절을 하였다. 권람도 너무나 기뻐서 부지불각에 일어나 마주 절을 하였다. 그것을 보고 명회는 웃었다.

술객은 불출 수년에 조선에 큰 정변(政變)이 일어난다는 말과 인명이 많이 상할 것과 그 일을 맡을 사람이 한 명회, 권람 두 사람인 듯하게 말하였다. 명회를 보고는,

“귀하시기로 말하면 영의정을 삼십년은 지내시겠소마는 눈에 살기가 많으니까 인명을 많이 해하겠고 혹시 검난(劍難)이 있다 하겠지마는 생전에는 염려 없소.”하였다.

이날에 권람과 한명회는 희불자승하여 온종일 술을 마시고 즐기었다. 그리고 이날에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았다. 그리고 일생을 관중포숙(管仲鮑淑)으로 자처하였다.

“상감은 승하하시면 세궁은 유충(幼沖)하시어 반드시 수양(首陽)과 안평(安平)이 무슨 일을 내고야 말 것일세. 그런데 안평은 지금 명성이 높지마는 의리를 아체하고 문하에 사람이 없으니 무슨 일을 하겠나. 수양은 인물이나 명망이나 안평만은 못하지마는 사람이 영 악은 하니까 인정이고 의리고 얽맬 사람은 아니요, 자네와 나와 우리 둘만 붙으면 반드시 성사가 될 것일세. 그리되면 우리 둘이 십년 내에 정승(政丞)이 된다는 말도 그럴듯하지 아니한가. 문장도덕(文章道德)으로야 내가 자네를 당하겠나마는 사업을 경륜하는 데는 과히 자네만 못지아니할 것일세. 마침 자네가 지금 수양 대군 궁에 긴히 다니니 이것이 다 천의 야. 내가 부탁 아니하기로 어련하렷나마는 기회를 잃지 말고 수양 대군을 바싹 경마를 들고 나를 천거만 하게. 내가 수양을 만난 뒤에야 만사가 다 내 장중에 있으니까.”

이것은 한명회가 월전 다니러 상경하였을 때에 권람에게 하고 간 말이다.

명회가 말한 바와 같이 문장 도덕은 권람이가 명회보다 승하였으나 모략으로는 명회가 권 람보다 훨씬 상수였다. 권람이나 명히에게 도덕이란 것도 우습지마는 그래도 권람은 선악을 변별할 줄은 알았다. 어떤 것은 인정에 맞는 일이요, 어떤 것은 인정에 맞지 않는 일이요, 어떤 것은 세상에서 옳다고 하고 어떤 것은 세상에서 마땅하지 못하게 여길 것임을 잘 알았다. 다만 그까짓 것을 그다지 요긴한 것으로 알지 아니하였을 뿐이다.

그렇지마는 명회는 전혀 선악을 별별하는 양심이 없다. 그에게는 오직 욕심과 그 욕심을 달하려는 한량 없는 꾀가 있을 뿐이었다. 어느 놈의 돈을 먹으리라 하면 반드시 먹었고 어느 계집을 내 것을 만드리라 하면 반드시 만들었다. 그래서 정보(鄭 保)의 서매(庶妹)가 자색이 있는 줄을 알고는 곧 정보와 친한 체하여 마침내 그 서매를 첩으로 얻었다. 그것도 석달 안에. 그러고는 충신(忠臣) 정몽주(鄭夢周)의 손녀를 첩으로 삼았노라고 제배간에 대 언 장담하였다. 썩은 선비들이 충신이라 떠들고 종사(宗師)라고 존중하는 정몽주의 손녀를 첩으로 삼아 그 이름을 짓밟는 것이 쾌하였던 것이다.

누구나 도덕적 양심만 떼어 놓으면 상당히 꾀가 나오는 법이지마는 한명회의 계교는 실로 무궁 무진하였다. 그는 체면이라든지 선악이라든지 인정이라든지를 전연히 몰아 볼줄 모르기 때문에 아무려한 짓이라도 목적을 위하여서는 가리지 아니하였다. 후일에 세조 대왕이,

“한명회는 내 자방(子房)이야.”

하고 누누이 칭찬한 것이 다 이 꾀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귈 때에도 그는 도덕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상놈이거나 깍정이거나 도둑놈이거나 죄인이거나 어떠한 사람이든지 자기의 욕심을 달하기에 필요하다고만 생각하면 사귀었고 필요만 하면 도덕 있는 살마이라도 사귀기를 사양하지 아니하였다.

집현전 여러 학사들 중에 후일에 가장 상저한 이는 신숙주(申叔舟)였었다. 그것은 신 숙주 가 도덕지사인 까닭은 무론 아니요. 도리어 그가 목적을 위하여서는 수단을 가리지 아니하 는 것이 자기와 서로 합하였던 까닭이다.

명회가 경덕궁직으로 있을 때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따라다닌 사람 셋이 있다.

그것은 양정(楊汀)과 유수(柳洙)와 임운(林芸)이다. 세 사람은 다 골격이 장대하고 여력이 과인하여 모두 고향에서 사람깨나 때려 죽이고 혹은 옥을 깨뜨리고 혹은 대로변에서 행인을 엄습하여 돈을 빼앗아 먹고 살던 무리다. 그들은 한명회가 두호하여 숨겨 주는 은혜를 감격하여 죽기로써 명회의 명에 복종하기를 맹세하였다. 그중에도 임 운 한 사람은 명회의 구종이 되어 상시에 명회의 시중을 들고, 양정, 유수 두 사람도 명회가 가는 곳이면 그림자 모양으로 따라다니다가 만일 어느 누구가 명회를 건드리려고나 하면 맹호같이 내달아서 그 사람을 반 주검을 만들었다. 송도 사람들이 명회를 무서워하는 것은 그의 쀼죽한 머리나 사팔뜨기 눈이 아니요, 실로 명회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는 흉물 세 사람이었다.

명회도 세 사람에게는 극진하였다. 그렇게 궁한 신세로도 생기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경덕궁직으로 받는 요도 받는 날로 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명회가 경덕궁 기와를 벗기어 파는 것도 이렇게 자기 분에 상당하지 아니한 부하를 세 사람이나 기르는 까닭이다.

양정과 유수는 자기네와 같은 무리를 많이 알았다. 그 무리들은 대개 귀신 모양으로 낮에는 숨고 밤에만 나와 다니는 무리들이다. 다 살마깨나 죽이고 포도청 출입을 예사로 아는 무리들이었다. 그들의 겨레는 모래판에 무뿌리 모양으로 얼키설키 끝 간 데를 몰라 조선 전국에 편만하여 있다. 그들은 일종의 도적 나라를 건설하여 신라, 고려는 바뀌되 이 나라 만은 영세 불면할 듯하였다. 양정, 유수는 이 도적 나라 백성이었다.

양정과 유수는 한 명회가 종시 곤궁한 것을 보고도적의 굴혈에 들어가서 거기 두령이 되기를 권하고 만일 그러한 뜻만 있으면 자기네가 앞장을 서마고까지 말하였다.

“가만 있게. 경덕궁기와나 벗겨 먹어 가며 좀 더 기다려 보세.”

하고 명회는 두 사람의 권함을 아직 거절하였다. 그렇지마는 만사가 다 불여의하면 양(讓) 양(陽)으로 들어감녀 그만이라고 생각하였다. 강원도 양양 어느 산골짜기에도적 나라의 대두령이 있단 말을 들은 까닭이다.

그리고 자주 권람에게 편지를 부쳐 기회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일변 임운(林芸)을 시키어 안평대군 궁과 수양 대군 궁의 동정을 정탐하게 하였다. 그것은 임운의 일가 되는 사람이 수양 대군 궁 궁노로 있던 까닭이다. 또 양정과 유수도 장안에 돌아 다니는 끄나풀을 통하여 명회가 시키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의 행동을 정탐하였다. 이렇게 정탐을 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승도 있고 관서도 있고 집현전 문신들도 있고 수렁 방백도 있었다.

명회는 손에 여러 백명 되는 사람의 명부를 만들어 가지고는 양정과 유수와 임운이 정탐하여 보하는 대로 각각 이름 밑에다 적어 넣었다.

“아무 달 아무 날 밤 안평 대군이 담담정(淡淡亭)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는데 모인 것은 누구누구요, 한 이야기는 무엇무엇이요.”

“누구가 누구를 심방하였소.”

“어느 벼슬이 갈리고 누구가 망에 올랐소.”

모두 이런 것들인데 열 가지에 한 가지도 들을 만한 것이 없건마는 그대로 명회는 인일이 명부록에 깨알 같은 잔 글자로 적어 넣었다. 그 보고들 중에 종성부사(鐘成府使) 이경(李耕)유가 이번 서울 올라 오는 길에 함길도(咸吉道) 절제사(節制使) 이징옥(李澄玉)이가 우 의정 김종서에게 보낸 선물 야인이 쓰던 활 하나를 가져 왔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보고를 듣고 명회는 무슨 보물이나 얻은 듯이 기뻐하였다.

“그런 것은 다 아시어서 무얼 하시오?”

하고 양정이나 유수가 물으면 명회는,

“심심파적일세.”

하고 웃거나,

“내가 장차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될 터이니까 모두 알아 두는 것이야.”

하기도 하였다.

양정이나 유 순는 힘쓰고 날랜 것 밖에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꾀도 없는 무부들이다. 명회가 자기네보다 모략이 많은 것을 잘 알고 반복하는 바어니와 아직도 명회가 무슨 큰일을 낼 사람이라고까지는 생각지 아니하였다.

바로 요전 번 단오날 일이다. 유수부(留守俯) 벼슬아치들이 만월대(滿月臺)에다 잔치를 베풀고 하루를 즐거이 놀았다. 그 끝에 누가 말하기를 우리는 다 서울 친구로서 같이 옛 서울에 벼슬을 사는 터이니 오늘을 기회로 하여 계(契)를 모아 오래 두고 서로 사귐이 어떠한 고 하여 만좌가 다 찬성하였다. 그때에 명회도 자리에 있다가,

“그거 좋은 말이요. 나도 넣어 주시오.”

하였다. 사람들이 보니 경덕궁직 한명회이므로 모두 입을 비쭉거리고 아무도 명회를 입참시키자는 이가 없어서 톡톡히 망신을 당하였다. 명회는 이 말을 양, 유양인에게도 하지 아 니하고 다만 혼자 마음에 새기어 언제 한번 이 분풀이를 하리라고 맹세할 뿐이었다.

명회가 말하지 아니하더라도 이 말은 송도에 짜아하게 퍼지었다. ‘그놈 밉더니’ ‘그놈 껍죽대더니’하고 모두 잘코사니하였다. 오직 이 말을 듣고 분히 여긴 것은 양, 유, 임 세 사람이었다. 양 정은 발을 구르고 임 운은 울고 유수는 당장에 그놈들을 모두 때려 죽인다고 야료를 하였다.

명회는 웃으며,

“잠간만 참으소. 다 그럴 날이 있네.”

하고 가까스로 무마하였다.

“참기는 언제까지나 참으란 말이요. 이러다가는 밤낮 마찬가지지.”

하고 세 사람은 좀체로 불평을 거두지 아니하고 어서 양양으로 가서 도적이 되기를 조르고 만일 명회가 안 들으면 자기네는 달아날 뜻까지 보이었다.

이러한 때에 문종 대왕이 승하하시고 세자궁이 즉위하시었다는 소문이 송도에 들리었다.

명회는 이 소문을 듣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사람이 과단이 부족하여.”

하고 권람을 원망하였다.

명회 생각에는 세자궁이 즉위하시기 전에 수양 대군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하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때나 자기가 좌명(佐命)원훈(元勳)이 되어 볼까 함이었다. 그랬는데 새 임금이 등극하였으니 큰일은 모두 틀려버리고 말았다.

“내가 서울에만 있었다면 이렇게는 안되는 걸.”

하고 명회는 이를 갈았다.

세자궁이 즉위하기 전에 수양 대군을 들여 앉히기는 용이한 일이지마는 한 번 세자가 왕이 된 이상 그 왕이 승하하시기 전에 왕을 바꾸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까딱 잘못하면 역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명회는 차라리 도적 속에 들어가 전국에 있는 도적의 무리를 몰아 가지고 한 번 설레어 보다가 잘 되면 조선왕이라도 한 번 되어 복 못 되더라도 일신이 안락하게 살아 볼까 하고 양정과 유수를 불러 도적의 일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양, 유양인은 인제야 명회가 바른 길로 들어 가려 하는 것을 기꺼하여 자기네가 아는 대로도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도적의 대두목이 되면 서울 장안에 고루 거각에 앉아서 처첩,비복 거느리고 영화를 누릴 수가 있다는 말을 하여 명회의 비위를 끌기를 힘썼다.

그렇지마는 정승, 판서의 높은 벼슬---이를테면 이조(吏曹)판서(判書), 병조판서(兵曹判書)의 푸른, 서슬 영의정(領議政), 좌우(左右)의정(議政)까지는 못 바라더라도 의정부(議政府) 좌우(左右) 찬성(贊成)의 높고 귀함, 그 좋은 권세 ---이런 것을 단념하기가 심히 어려웠다. 그래서 하룻밤을 이럴까 저럴까로 새우고 새벽에 편지 한 장을 닦아 임운(林芸)을 주어 성화같이 서울 권 람에게로 보내었다. 그 편지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시세 이와 같고, 안평 대군이 임금의 자리를 엿보니, 화란이 일어날 것이 아침이 아니면 저녁이라. 그대 홀로이 생각을 못하는가…… 화란을 평정함엔 제세발란의 힘이 있는 임금이 아니면 불가하거늘, 수양 대군은 활달함이 한 고조와 같고, 영무하기 당 태종과 같으 니, 천명이 있는 곳을 소연히 알지라. 이제 그대 가까이 모시거늘 어찌 종용히 건백하여 늦기 전에 결단케 하지 아니하나뇨.’ 이 편지를 보면 명회는 분명히 조금도 꺼림도 없이 수양 대군으로 하여금 왕위를 찬탈하게 하기를 권한 것이니 이것은 권람도 감히 발설 못한 바요, 수양 대군도 감히 자주 생각 하지 못한 바다.

명회는 권람이가 이 편지를 반드시 수양 대군에게 보일 것을 알고 수양 대군이 이 편지를 보면 반드시 크게 구미가 동하고 기뻐할 줄을 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권람이가 보기 위하여 하느니보다 수양 대군이 보기 위하여 한 것이다.

얼마쯤 만시지탄이 없지 아니하지마는 지금부터라도 수양 대군을 충동하는 것이 자기의 욕심을 달하는 길이라고 믿은 것이다.

수양 대군을 한 고조와 당 태종에 비긴 것은 다만 아첨뿐이라고만 할 수 없으나 안평 대군이 신기를 엿본다고 한 것은 전혀 명회가 지어낸 말이로되 수양 대군을 움직이기에 가장 큰 힘이 있는 말이다. 첫째는 수양 대군이 안평 대군을 미워하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요, 둘째로는 수양 대군이 거사할 좋은 팽계를 장만하여 드린 것이다.

“안평이 신기를 엿보기로 부득이 하여.”

수양 대군이 일어나서 새 임금을 옹호하는 파를 안평 대군의 당으로 몰아 없애버리고 수양 대군이 정권을 잡는 날이면 일은 칠분이나 성공이 되는 것이다. 그 후사는 더 되면 좋고 안되더라도 한 명회가 이조판서 한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안평이 애매하지마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이 팔자이지.”

하고 명회는 혼자 웃었다.

이 편지를 주어 임운을 서울로 떼어 보내고 명회는 자못 신기가 불평하였다.

이 편지는 최후 수단이다. 말일 이 편지에 무슨 향기로운 회답이 없으면 자기는 영영 궁 직으로 늙어 죽을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나이 벌써 삼십 팔, 사십이 근당하였으니 이제 다시 과거를 보러 다닐 면목도 없을 뿐더러 글 짓기는 본래 싫어하는 데다가 그것도 놓아 버린지가 오래어서 붓대를 들면 골치부터 먼저 아프니 제 힘으로 과거(科擧)에 급제할 가망도 없고 그렇다고 조정에 자기를 알아 남행으로 원한 자리라도 시켜 줄 사람도 없으니 인제는 꼼짝 없이 일생을 망쳐버리고 만 것이다.

정당한 길을 밟으려면 경덕궁직으로 그냥 있어서 어떻게 좋은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좋지마는 그것도 지나간 사오삭에 진절머리가 나고 말았따. 기왓장 벗기어 술값을 벌고 마루창 널을 뜯어 볼 때일 나무를 삼는 것이 겉으로는 웃고 하는 일이지마는 속으로는 그리 즐거울 리는 만무하였다.

더구나 지난 단오에 부료(府僚)들한테 망신을 당한 뒤로는 송도(松都)라는 곳이 지긋지긋 하였다. 길에 나서 다니면 모두 뒤로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고 사실상 만월대 망신이 있은 뒤로는 송도 사람들은 명회를 미워하기만 하지 아니하고 멸시하기까지 하여 길에서 마주칠 때에는 분명히 비웃는 눈살을 보이었다.

송도 와서 소득은 정포은 선생의 손녀를 첩으로 삼은 것이어니와 그도 이렇게 일생을 궁하게만 산다 하면 귀찮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돌아 갈 곳은 양양 밖에 없는 듯하였다. 자기만한 모략을 가지고도적청에만들어가면 곧 한 목메는 두목이 될 것이요, 지금 대두령이 어떤 놈인지 모르나 몇 해 동안이면 그까진 놈 하나 치어버리고 자기가 대신 들어앉기는 땅 짚고 헤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낮에 자고 밤에 다니는 사람이 되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나 아까왔다.

이렇게 명회의 번뇌한 생각은 개미 체바퀴 몰 듯이 뱅뱅 돌았다.

이때에 명회의 첩 정씨가 밖으로서 황황히 들어오며,

“여보시오. 서울서 사람이 왔어요.”

한다. 정씨는 이제 열 여덟 살, 분홍 치마 연두 저고리에 계집애 모양으로 어리게 차리었다. 그러나 가난한살림에 손수 아침 저녁 동자를 짓노라고 손이 거칠고 앞치마는 거뭇거뭇 때가 묻었다. 송도서 사는 명회의 가정은 실로 우스웠다. 명회, 양정, 유수, 임운 합하여 사내가 넷에 여편네라고는 정씨 모녀 뿐. 마치 막벌이군 치는 주막집 같았다.

“서울서 사람이?”

하고 명회는 대문으로 뛰어 나갔다. 거기는 낯익은 권람의 집 종 바람쇠가 서 있다가 명회를 보고 반가운 듯이 허리를 굽히고는 품 속으로서 서간 한 장을 내어 명회에게 준다.

밖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에 사랑에 있던 양정과 유수도 뛰어 나와서 멀거니 명회와 바람 쇠를 번갈아 바라 본다. 바람쇠는 전에도 두어 번 편지를 가지고 왔었으므로 두 사람을 잘 안다. 그러나 그전 편지도 별 신통이 없었으므로 이 빈 것도 그저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두 사람은 실망한 듯이 혹은 방으로 들어 가고 혹은 밖으로 나가버리었다. 두 사람의 꼴은 기름장수와 같이 꾀죄죄 흘렀고 얼굴은 낮잠을 과히 잠인지 부석부석하였다. 혹은 즐기는 비지를 좀 과식하였는지도 모른다.

명회는 비 처방에도 들어오기 전에 권람의 편지를 떼었다. 처음에는 예사로 읽더니 차차 눈이 종이에 꼭 들이 박히고 말이 마당에 꽉 붙었다. 명회는 다시금 편지를 보아 자기 눈이 잘못 본 것이 아닌 줄을 확실히 안 뒤에는 편지를 한 손에다 꽉 쥐고 껄껄껄 웃기를 금치 못하였다. 명회는 한 번 크게 에헴 하여 가래를 뱉고 마루에 올라섰다.

“무슨 좋은 기별이 있어요?”

하고 정씨도 남편이 근래에 드물게 기뻐하는 양을 보고 창으로 내다보며 물었다.

명회는 정씨가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정씨더러, 이봐 “ , 내가 급히 상경할 일이 생겼으니 의 복 내어 놓게.”

하고는 사랑으로 나가려 한다.

정씨는 놀라는 듯이 일어나 나오며,

“아니, 서울을 가시다니. 오늘 가시오?”

하고 말로 명회를 붙든다.

“옷이나 내어 놓으라면 내어 놓아. 무엇을 안다고 참견이야.”

하고 핀잔을 주고는 사랑으로 들어가버린다.

남편이 상경하는 데는 두 가지 일이 있다. 한 가지는 귀하게 되어 좋은 벼슬로나 올라 가는 일이니, 그렇다 하면 작히나 좋으랴. 정씨 자기도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일이지마는 궁상이 덕지덕지한 남편의 꼬락서니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아니하고 그렇다 하면 이번 서울 올라 가는 것은 자기 집 일로 가는 것이요, 집 일로 간다하면 본 마누라 민씨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민씨도 나이 사십이 되었으니 서방을 빼앗길까 보아서 겁날 것도 없지마는 그래도 여편네 마음이라 자기는 첩이고 다른데 본 마누라가 있어서 남편이 그리로 간다면 비록 제삿날 제사 참례를 가더라도 싫었다. 그래서 정씨는 반닫이 열쇠를 든 채로 눈물을 흘리었다.

명회가 사랑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양 정과 유수 우 사람은 장기판을 밀어 놓고 명회의 자리를 내었다.

명회의 시치미 떼는 얼굴에는 아무리 하여도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있었다.

“서울서 무슨 기별 있소?”

하고 양 정이가 잠자코 있기가 미안한 모양으로 그러나 그다지 흥미 없는 어성으로, 이를테면 명회의 얼굴을 보아 물은 것이다. 유수는 지금까지 두던 장기 수만 생각하고 있었다.

명회는 양 정이가 묻는 말을 기회롤 의기양양하게,

“나는 오늘 곧 서울로 가야 하겠네.”

하고 대단히 바쁜 듯이 벽장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집은 전조적 집이 되어서 큼직하지 마는 안에는 거미줄뿐이라 벽장 문을 연대야 케케 앉은 먼지밖에 있을 것이 없고 혹 있다면 양가 유가의 발고린내 나는 버선짝일 것이다.

명회가 서울 길을 떠나게 되었단 말에 두 사람은 좀 놀래었다. 그러면 바람쇠가 가지고 온 편지에 그래도 무슨 뜻이 있었던가 함이다.

“아니,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해가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길을 떠나신단 말이요. 엊긎 국상이 났거든 어명(御命)이 내리실 리도 만무한데.”

이렇게 양정이가 반쯤 빈정대어 말하는 것을 유수가 곁에서,

“어디 서울 가까운 능참봉(陵參奉)으로나 승차를 하여 가시오? 그리되면 우리도 서울 구경이나 자주 하게. 또 하늘에 올라야 별을 따고 서울을 가야 과거를 한다는 셈으로 그래도 서울 가까이 있어야 무엇이 생기는 것이 있지그려. 송도 만월대 구석에서 도깨비 모양으로 궁 기왓장이나 굴리고 있으면 백년을 갔자 신통한 구석이 있소?”

농담 절반, 신세타령 절반으로 손에 든 장기쪽을 딱딱거린다.

명회는 이 버릇 없는 말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사팔뜨기 눈으로 한 번 두 사람을 노려 보고 일어나려 하다가, 도로 앉으며,

“이번에 내가 상경하는 것은 일체 발설 말게. 수양 대군이 밤도와 올라오라고 나를 부른 것이니까 아마 무슨 큰일을 의논하실 모양인즉, 양정이 자네는 나와같이 오늘 떠나고 유수 자네는 집에 있게. 생각하건대 내가 이번에 서울 가면 다시 송도에 오지 못할 듯 싶으니까 임운이가 오거든 같이 가속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게. 내가 가는 대로 또 곧 기별도 할테야.”

하고는 여전히 바쁜 듯이 안으로 들어 가버린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한참이나 말이 없더니 유 수가 장기줌을 장기판에 내어버리며,

“무슨 수가 나는가뵈.”

하고 눈을 꿈쩍한다.

양정이도 ‘흥’ 하고 코로 웃는다.

한명회는 양정을 데리고 그날로 집을 떠나 서울로 향하였다. 하필 유수로 하여금 집을 보게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양 정은 유수보다 얼굴이 잘 생기고 풍채가 좋아서 집에 혼자 두면 젊은 첩 정씨를 빼앗길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명회는 결코 사람을 믿는 일이 없었고 특별히 첩에 대하여서는 항상 반반한 남자가 가까이하는 것을 의심하였다. 자기 얼굴이 흉하기 때문에 더욱 풍채 좋은 양정을 의심한 것이다.

명회가 정씨와 대화하기를 허하는 남자는 정씨의적형(嫡兄)되는 정보(鄭 保)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정보도 근래에는 서울 올라가 성 삼문, 박팽년 같은 집 사람으로 돌아다니고 송도에는 없었다.

“대문 밖에 나지 말고 아무도 대문 안에 들이지 말어!”

하고 정씨를 단단히 노려 보고 명회는 집을 떠났다.

한명회, 양 정 두 사람은 바람쇠를 따라 말을 탈 형세도 못되므로 터덜거리고 걸어서 성화같이 서울로 향하였다. 만일 주막이나 나룻배에서 거행이 더디면 양정이 눈을 부라리고,

“이 양반은 어명으로 급히 가시는 양반이야.”

하고 호통을 떼었다.

“이 사람아, 어명을 함부로 쓰다가 목 날아나려고 그러나?”

하고 단둘이 되었을 때에 명회가 책망하면 양정은 어깨를 으쓱 올리며,

“한번 그랬으면 작히나 좋소?”

하였다. 홍제원(弘濟院)에는 입 운이가 인마를 데리고 마주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명회야 양정이가 오월도 다 지난 염천에 땀을 뻘뻘 흘리고 먼지 투성이가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허덕거리고 오는 것을 복 임 운이가 일마장이나 마중 나아가 맞았다.

“생원님, 얼마나 더우시오?”

“덥구 무엇이구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일세. 사람을 부르거든 말 탈 노수라도 보내는 것 이 아니라 오뉴월 염천에 이거 어디 살겠나.”

하고 명회가 길가 조그마한 나무 그늘에서 볕을 피하며 연해 부채질을 한다.

임 운은 손을 들어 홍제원을 가리키며,

“저기 수양 대군 궁에서 인마가 나와서 아침부터 기다리오. 말이 두 필에 안장이 어른어른하고 말잔등까지은이요. 전배 한 쌍, 구종 한 쌍에, 수령 행차 이상이요. 소인이 다 어깨가 으쓱하오.”

하고는 편지 한 장을 내어 명회에게 준다.

떼어 보니 편지는 권람의 것인데 수야 대군께서 명회가 오기를 심히 고대한다는 말과 선비를 존중하는 예로 대군이 몸소 명회르 나와 맞을 것이로되국상 중이라 그리 못한다는 말과 또 명회가 명색 없이 수양 대군 궁에 출입을 하면 남의 의혹을 살 염려가 있으므로 명회를 송도서 청해 오는 의원으로 대접한다는 것과 인미를 보내니 타고 다른 데 돌리지 말고 곧 수양 대군 궁으로 오라는 말과 거기 오면 권람 자기도 만날 것이란 말이 쓰여 있다.

명회는 심히 만족하였다 하늘에 오를 .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런 빛은 내지도 아니하고 날이 더운 것과 발이 부르튼 것만 짜증을 내었다. 그러고는 인마고 수양대군이고다 귀찮은 듯이 나무 그늘에 퍼더버리고 앉아서 하늘에 떠도는 구름만 바라보았다. 양 정과 임 운은 명회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이 물끄러미 보다가 픽 웃었다.

명회와 양 정은 은안준마에 덩그렇게 올라앉아 사오인구종의 호위를 받아 거드럭거리고 서대문을 들어 자핫골 막바지 수양 대군 궁으로 들이몰았다.

명회가 온다는 선문을 듣고 수양 대군과 권람은 제하에 내려서 맞았다. 명회의 초초한 행색이 오늘은 땀이 배고 먼지에 젖어 더욱 초초하건마는 지어서 기고만장한 모양을 보였다.

수양 대군은 명회가 권람에게 한 편지를 보고 더 할 수 없이 기뻐하였다. 안평 대군이 신기를 엿본다는 말이나 천명이 분명히 자기에게 있단 말이나 자기를 한 고조, 당 태종에 비긴 말이나 다 일생에 처음 듣는 보비위하는 말이었다. 급기야 명회를 대하매 그 머리와 눈이 미상불 우습꽝스러웠으나 그것이 도리어 비범한 표인 것같이 생각되었다.

수양 대군의 한명회에게 대한 대접은 실로 융숭하였다. 처음 계하에서 서로 맞을 때에는 한명회가 읍할 때에 같이 읍함으로써 대답하였고 그보다도 놀라운 것은 정청에 올라 한 명회가 대군께 대하는 예로 절할 때에 수양 대군이 마주 절한 것이다.

애초에는 수양 대군이 하는 양을 보아 좀 거드름을 부리려 하던 한 명회도 수양 대군이 이처럼 공손하게 하여 주는 것을 당하고는 그만 감지덕지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다만 권 람이가 곁에서 보아두었다가 후일에 자기의 천착스러움을 비웃지 아니할이만큼 하였다.

수양 대군은 국상 중에 궁중을 떠나지 못할 계제이지마는 궁중에 들어간대야 황보인, 김 종서 같은 고명받은 늙은 것들이 좌지우지하는 꼴이 보기 싫고 안평, 금성 같은 아우님 되는 대군들도 수양 대군을 슬슬 따돌리는 기미를 보고는 그만 상기가 되어 될 수 있는 대로는 궁중에 있기를 피하였다. 더구나 오늘은 한명회르 만났으니 시각이 바쁘게 그의 계책이 듣고 싶어서 한명회와 권람을 밀실로 끌어 들이어 두 시각이나 넘도록 이야기를 하였다.

“대사가 장차 어찌될 것이요?”

하고 수양 대군이 먼저 문제를 끌어 내었다.

한 명회는 이때야말로 자기 일생이 부침이 달린 큰 시험인 줄 알므로 평생의 정력을 다하여 자기의 의견과 계책을 수양 대군이 묻는 대로 대답하였다.

“소인이 무엇을 알리이까마는 민심은 곧 천심이라 민심이 돌아 가는 것을 살피읍건대 천 명이 나으리께 있는 것은 소연한 일인가 하오.”

하고 자기가 권람에게 한 편지를 수양 대군이 보았을 줄은 번연히 알면서도 또 한번 수양 대군을 칭찬하여 한 고조와 당 태종을 끌어 내었다. 그러하되 그 성음과 안색이 진실로 지성스러웠다.

수양 대군은 좀 낯이 간지러운 듯이 권람도 바라보고 바깥도 바라보더니 명회의 송덕하는 말이 한 대문이 지나간 때를 타서,

“천명이 내게 있다니, 그게 될 말이요? 나같이 덕이 적은 사람이 어찌 천명을 감당하겠소?”

하고 수양 대군은 정중한 언사로 겸사를 한다.

한명회는 수양 대군의 이 말에 펄쩍 뛰며,

“아니외다. 그렇지를 아니하외다. 겸양지덕이 좋기는 하오나 그것은 태평 무사할 때에나 쓰는 것이외다 천명에 대하여는 겸양이 . 없는 것이외다. 만일 천명을 모피한다 하면 그것은 겸양이 아니라 역천(逆天)이외다. 태조 대왕께서 창업하신 간난을 생각하시거나 창생이 대한에 운예와 같이 바라는 것을 생각하시든지 겸양하시는 것이 옳지 아니하외다. 원형리정으로 말씀하오면 대행대왕께옵서 승하하옵시면 나으리께서 상주가 되시어야 할 것인데 그리 안되온 것이 황보인, 김 종서 배의 간계에서 나온 것이외다.

하고 도도히 말하였다.

어찌하여 왕세자를 두고 수양 대군이 상주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은 수양 대군도 알 수 없는 이치었으나 그래도 명회의 말은 언언구구가 다 비위에 맞았다. 마치 내 속에 들어 와서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살핀 뒤에 내가 할 말을 대신하여 주는 것과 같이 마음에 꼭 맞았다. 더구나 수양 대군 자기가 상주가 되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원형리정이란 명회 의 말이 이치에는 닿지 아니하면서도 마음에 맞았다.

그렇지마는 수양 대군은 도리어 송구하는 빛을 보이며,

“그것은 지나치는 말이요. 세자궁이 계옵시니 세자궁이 상주되옵심이 마땅하고 나는 오직 충성을 다하여 어리신 상감을 도움이 뿐이요. 어찌 터럭끝만큼이나 다른 뜻이 있겠소.

오직 걱정되는 것은 황보인, 김 종서의 무리가 안평을 떠받들고 국가 사르 그르치려는 것이니 그것을 막을 계책을 내게 말하오.”

하였다. 수양 대군의 이 말에 한명회는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아뿔사 수양 대군에게 한 수 졌구나’하고 명회는 고개를 숙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이 모가지가 날아 날는지도 모른다.

명회는 수양 대군의 진의를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생각하기를 수양 대군이 왕의 자리를 엿본다고 한 것은 자기의 잘못이던가. 수양 대군은 과연 주공(周公) 이 성왕(成王)을 돕던 옛일을 본받으려 하는 충성 밖에 다른 뜻이 없었던가. 그렇다 하면 자기가 오늘 말한 것은 큰 실수였었다. 하고 명회는 후회도 하였다.

그러나 그만한 일에 움츠러질 명회가 아니다. 그는 한 수를 내어 수양 대군을 걸어 볼 하였다. 첫 수는 졌지마는 둘째 수에는 자기가 이길 것을 믿었다. 그야말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결심으로 명회는 자리에서 분명히 일어나며,

“소인 물러가오.”

하고 한 번 읍하였따. 명회의 용모와 눈매에는 실로 비장한 빛이 떠돌았다.

이 뜻하지 아니한 행동에 권람이 먼저 놀라서 일어나 명회의 소매를 잡으며,

“이 사람, 이게 웬 일인가.”

하였다. 명회는 권람이 잡은 소매를 뿌리치며,

“아니, 나를 붙잡지 말게. 선비의 행색이 한 번 말을 내었다가 용납이 되면 머물고 용납이 아니 되면 물러가는 법이야. 나는 원래 세상 일에 뜻이 없는 사람이야. 부귀와 공명이 내게 부운이로세. 가만히 세상에서 숨어 유유자적하는 것이 나 같은 사람의 본색이어늘 자네 말을 그릇 들고 서울에 올라 왔다가 이제 나으리 뜻이 네가 생각던 바와 다르니까 나는 물러가는 것이 옳은 일일세.”

하고 다시 수양 대군을 향하여,

“소인 물러갑니다.”

하고 두어 걸음 문을 향하여 나갔다.

이때에 수양 대군도 장황히,

“여보, 앉으오. 나를 버리지 마오.”

하였다. 그 말은 심히 은근하였다.

권람은 명회를 붙들어 앉히었다.

‘나를 버리지 마오’하는 수양 대군의 말 한 마디면 명회도 목적은 달한 것이다. 수양 대군은 마침 내내 약낭 속에 들었다고 명회는 속으로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한 명회가 다시 자리에 앉은 뒤에 수양 대군은 단도직입으로 시국에 처할 계책을 물었다 ---.

“낸들 나라 일에 무심할 리가 있소? 근심이 되길래 이렇게 계책을 묻는 것이 아니요? 그렇지마는 내가 무슨 힘이 있소? 군국대사(軍國大事)가 모두 황보인, 김종서 배의 손에 있으니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아끼지 말고 높은 계책을 말하오.”

한 명회는 수양 대군의 말하는 바가 모두 도리에 맞고 또 대인의 기상이 있음을 탄복하였다. 그리고 저절로 고개가 숙음을 깨달았다.

“일을 하는 데는 힘이 으뜸이니 힘을 기르시어야 하오.”

하고 명회가 대답한다.

“힘을 기르는 법이 어떠하오?”

하고 수양 대군이 다시 묻는 말에 명회는,

“힘을 기르는 데 가장 속한 방법은 불평객을 모아들이는 것이요.”

하고 아뢴다.

“불평객이 누구며 불평객을 모으는 방법은 어떠하오?”

하고 수양 대군이 묻는 말은 점입가경한다.

“세상에 불평객이 없는 때가 없사외다. 세종 대왕께옵서는 요순과 같으신 성군이시옵거니와 재위하신지 삼십여 년에 문(文)을 높이시옵고 무(武)를 가벼이 하시오니 태평성대에 그럴 만한 일이어니와 그 때문에 무신(武臣)의 불평은 면치 못할 일이요, 또 재야(在野)한 인재도 문장 재사는 달하기 쉬우되 궁시(弓矢)를 잘하는 사람은 일생에 달할 길이 없으니 자연 문인은 교만하여지고 무사는 불평하게 되는 것이외다. 또 문신(文臣) 중에도 자기의 현재 처지를 불만히 여기어 매양 불만한 생각을 가지는 이가 있는 것이니 이러한무리를 가리 키어 불평객이라 하는 것이외다.”

하고 한 명회는 좋은 구변으로 기운차게 말할 제, 수양 대군은, 혹은 눈을 감고, 혹은 눈을 뜨고, 혹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혹은 무릎을 치며 명회의 말을 탄상하는 표를 보인다.

수양 대군이 자기의 말에 탄복하는 눈치를 보매 명회는 더욱 기운이 나서 불평객을 모아 들이는 계책을 말한다---.

“이렇게 불평을 가진 사람들은 매양 어디어 자기네를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외다.

마치 목마른 사람과 같이 어디서 물 소리만 나면 그리로 모여드는 것이외다. 이제 만일 나으리께서 세사의 불평 가진 무리를 받으신다는 소문만 나면 한 달이 못하여 팔도의 불평객은 나으리 문하에 모여들 것이외다. 사람이란 궁할 때에는 일반지덕(一飯之德)도 골수에 사무치는 것이니까 사방으로서 모여드는 불평객에게 우선 술 한 잔, 밥 한 그릇으로 그 모여 온 뜻을 사례하고 후일에 각각 공로를 따라 높은 벼슬과 많은 녹이 있을 것을 보이면 나으리를 위하여 죽을 사람이 천이요, 만뿐이리이까. 이리하면 나으리의 힘은 대적할 수 없이 커지는 것이외다.”

명회의 이 말에 수양 대군은 고개를 끄떡임으로써 옳이 여긴다는 뜻을 표하다가,

“그렇지마는 그 따위로 궁하여서 모여드는 사람들이 만 명이면 무슨 일을 하겠소? 좀 큰 사람을 얻어야 할 것이 아니요? 큰 사람 얻는 방략은 어떠하겠소?”

하고 새 문제를 내었다.

한명회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마골을 오백금으로 “(死馬骨)(五百金) 사는 것이 천리마를 구하는 법이외다. 범상한 사 람을 비사후례로 맞아들이면 걸출한 사람도 찾아오는 것이외다. 천하사에 뜻이 있는 사람은 항상 사람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는 것이외다. 나으리가 많은 사람을 문하에 모으시면 모인 사람이 비록 모두 다 하잘 것 없는 무리라 하더라도 세상이 다 나으리의 세력을 두려워하고 우러러보게 될 것이외다. 한 번 나으리의 세력이 이만하게 되면 마치 천하의 물이 다 한바다로 모여드는 모양으로 천하의 인절이 다 나으리 세력을 따라 모여들 것이외다.”

하고 한명회는 한층 더 기운을 내고 어성을 높이어,

“지금 황보 인 같은 무리가 국정을 잡았다 하나 그까진 문신(文臣)들은 난시에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것이외다. 난시에는 백 명의 문장지재보다도 한 명 힘쓰는 사람이 힘이 있는 것이외다. 이제 소인을 따라다니는 양정 한 사람에게 철여의(鐵如意)하나만 들려 내어 놓으면 만조 백관은 경각에 끽 소리를 못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외다. 안평 대군이 아무리 문객이 많다 하더라도 그까진 심장적 구(尋章摘句)하는 무리들이야 만 명이면 쓸 데가 무엇이오니까. 하고 보면 소인이 말하는 불평객은 결코 힘 없는 무리가 아닐 뿐더러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실로 큰 힘을 내는 무리외다. 이 불평객들을 하나씩 하나씩 흩어놓으면 아무 힘이 없지요마는 위에서 거느리는 이만 있으면 무서운 힘을 발하는 것이외다. 말씀하기 황송하오나 태조 대왕께옵서 천명을 받으심도 불평객을 모으신 것이 큰 힘이 되신다고 생각하옵니 다.”

하였다. 수양 대군은 더욱 더욱 한명회의 말에 탄복하여 마치 무엇에 취한 이와 같았다.

권람의 말도 매우 지혜로운 데가 있거니와 이처럼 구구절절이 귀신 같지는 못하였다. 한 명회에 비기던 권 람은 예사 선비에 불과한 듯하고 한 명회는 진실로 옛날 장량(張良)이나 제갈량(諸葛亮) 같은 신통한 모략을 가지어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듯하였다. 어떻게 이러 한 사람을 오늘에야 만났던가 하여 수양 대군은 다시금 한 명회의 괴상한 용모를 바라보고 이는 하늘이 자기를 위하여 보낸 사람이라고 기뻐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불평객들을 모을 수가 있겠소?”

하고 한 가지 새로운 문제를 또 꺼내었다.

명회는 수양 대군이 자기의 말을 잘 알아들음과 연해제출하는 문제가 모두 긍경에 맞음을 보고 더욱 기뻐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어렵지 아니하외다. 광활하고 조용한 땅을 택하여 사정(射亭)을 세우고 습사장 (習射場)을 베풀고 나으리가 친히 사정에 임하시어 같이 활을 쏘시고 그 날에 가장 잘 맞힌 사람에게 상금을 내리시고 나으리 친히 그 사람을 부르시어 칭찬하는 말을 주시면 팔도에 활 쏘는 사람이 다 그리로 모일 것이외다.

명회의 말은 절절이 옳았다.

수양 대군은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는 드싱 손을 내어 밀어 명회의 팔을 잡으며,

“이사람, 어찌 이리 만나기가 늦었나.”

하고, 하오 하던 말을 변하여 하게를 하였다. 그만큼 수양 대군은 명회를 천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명회도 수양 대군이 이처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심히 기뻤다.

이로부터 한명회는 거의 날마다 수양 대군 궁에 출입하였다. 한 번 오면 아침이면 해가 지도록, 저녁이면 밤이 깊도록 수양 대군과 단둘이 밀실에 마주앉아 여러 가지 비밀한 의논을 하였다.

권 람이나 명회와 마주앉게 되면 수양 대군은 끼니도 잊을 지경이었었다. 부인 윤씨(후일에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되실 이다)가 화를 내어 흔히,

“또 국 식게 하는 사람이 왔느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부인도 이 국 식게 하는 사람이 장차 자기로 하여금 일국의 국모가 되게 할 모든 계책을 내는 사람인 줄은 아직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날마다 만나고도 유위 부족하여 수양 대군은 명회에 심복되는 임운(林芸)을 궁노를 삼아 수양 대군 궁에 거처하게 하고 무시로 무슨 비밀한 일이 있거든 임운을 시키어 명회에게 통하게 하였다. 그래서 궁노면서도 임 운은 상시로 수양 대군에게 불리어 마주앉아 담화하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궁노들 간에 임운의 세도는 대단하였다. 모두 임 운을 부러워 하였다.

아무러한 한밤 종에라도 수양 대군이 임운을 명회의 집에 보내어 명회를 부르는 일도 있고 또 명회가 첫닭 울 때에 수양 대군 구에 올 때도 있었다. 그러한 때에 다른 사람을 알리지 않고 무상 출입하기 위하여 입운의 팔에 줄을 매어 들창 밖으로 한 끝을 늘여놓았다. 그래서 어느 때에나 그 줄만 잡아당기면 임운은 명회가 온 줄을 알고 곧 일어나 소리 나지 않게 대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이거, 유부녀 보러 다니는 셈인걸.”

하고 명회가 소리 아니 나게 어깨로 대문을 사르르 밀고 들어서면 임운은,

“원체 많이 해보시었거든.”

하고 웃었다. 그러나 한명회는 만족하였다. 자기가 세종 대왕의 아드님인 당당한 수양 대 군 궁에를 무상 출입하는 것이 생각할수록 기뻤다. 그래서 밝는 날 아침에라도 늦지 아니할 일이언마는 아닌 밤중에도적같이 살근살근 걸어 와서 임운으 방 들창으로 늘어진 줄 끝을 톡톡 당기고 그것을 더할 수 없이 낙으로 알았다.

명회의 집은 수양 대군 궁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있었다. 무론 수양 대군이 청해 준 집이다. 그리 크지 아니하나 안채 있고 사랑 있고 행랑 잇고 비록 평대문일망정 이십간은 넘는 집이었다. 명회 평생에 이만한 집에 살아 본 일은 없었다. 비복까지도 두어 사람 수양 대군 궁에서 얻어 왔다. 양식과 나무와 찬수도 부족함이 없고 안방에는 큰마누라 민씨, 건넌방에 는 애첩 정씨를 두고 거드럭거리고 살게 되었다.

사랑에는 예나 이제나 다름 없이 양정과 유수가 문객 모양으로 유숙하며 낮잠과 장기로 세월을 보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눈매 불량한 무리들이 모이어 수군거리었다. 후에 홍달손(洪達孫)이가 더 와 있었다. 송도서 강목을 칠 때와 달라서 명회의 사랑에서는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었고 양정, 유 수도 동정에 때묻은 옷은 걸지 아니하게 되었다.

명회의 사랑에 출입하는 무리는 갈수록 늘었다. 사거리 반찬 가게에서도 한 생원 댁에 웬 사람이 저리 다니느냐고 수군거리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어도 의관이 제법 똑똑한 위인은 하나도 없고 옷에 기름이 묻지 아니하였으면 갓모자가 쭈그러지거나 망건 편자 가 뚫어지거나 하였다. 유시호 동저고릿바람에 갓만 얹고 꽁무니에 목달이 버선 한 켤레 찬 사람도 있고 심지어 땅군 같은 사람도 왕래를 하였다. 국상이 났어야 백림하나 변변히 쓴 사람 없고 백이면 백이 다 갓모자에다가 백지 조각을 오려 붙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누군들이 살마들이 일년이 못하여 좌명(佐命)공신(功臣)이니 익대공신(翊戴功臣)이니 하여 무슨 부원군(府院君), 무슨 부원군하는 대감들이 될 줄을 알았으랴.

문종 대왕이 승하하신지가 벌써 다섯 달이나 지내어 백악으로서 낙엽 날리는 찬바람 부는 시월이 되었다.

명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사고면(賜誥冕)을 사례하여야 한다는 의론이 조정에 일어났다.

그때에는 명 나라 조정에 안면을 익히는 것은 조선에서 세력을 잡는 데 매우 요긴한 일이기 때문에 누가 이번 사신으로 갈까 하는 것이 큰 문제였었다.

어리신 새 왕은 정전에 출어(出御)하시고 삼공육경(三公六卿), 삼사 장관(三司長官) 이하 여러 대관이 모이고 수양, 안평, 금성 등 여러 대군들도 참예하여 정부와 종친과 서로 겨루 다가 마침내 종친 편이 이기어 수양 대군이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이렇게 종친이 세력을 얻게 된 데는 내력이 있다.

애초에 새왕이 등극하신 처음에 대사현 기건(大司懸奇虔)이 상소하여 여러 대군이 권내에 출입하면서 정원(政院)을 거치지 아니하고 국정에 대하여 용훼하기와 문하에 사람을 모아 정치를 의논하기를 금하기를 청하였다. 이것은 임금이 어리신 것을 이용하여 강성한 숙부들이 국정을 휘두를 염려가 있는 때문이니 대사현 기 건의 의견은 뜻 있는 이는 다 옳게 여기었다. 이현로(李賢老)같은 이도 그리하는 것이 옳다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정분을 보고 직접 헌책을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이 뜻대로 확정될 뻔하였다.

만일 그리되었더면 수양 대군 이하 여러 대군들은 다만 궁중에 들어와 어린 임금을 휘두르지 못할 뿐더러 자기 집에 있어도 정치적 의미로 당파를 모으거나 정권 잡은 사람과 서로 왕래하기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적더라도 왕이 어리신 동안에는 이래야만 될 것이라고 황보 인도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황보인 노인은 이것을 끝끝내 실행할 기력이 없어서 그만 수양, 안평 두 분 대군에게 위협을 당하고는 맥 없이 쭈그러지고 말았다. 그 일은 이렇게 되었다.

이 말을 수양 대군에게 밀고한 것은 도승지(都承旨) 강맹경(姜孟卿)이었다.

수양 대군이 대사헌 기 건의 ‘금분경안(禁奔競案)’을 듣고는 곤 권람과 한명회를 불렀다. 한명회는 펄쩍뛰며,

“아무리 하여서라도 이것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만일 기 건의 말대로 된다 하면 종친 은 수족을 얽어매어 가두어 놓음이나 다름없는 것이외다.

하고 수양 대군의 성미를 돋우었다.

“그러면 어찌하나. 기 건의 말을 다들 옳게 여기는 모양이요, 벌써 정부에서도 뇌정(牢 定)이 된 모양이니 이제 어떻게 하면 그것을 막을 수가 있나. 지금 형편에 내가 말한대야 그 말이 설 리도 만무하고---어허, 괴이한 일이로군.”

하고 수양 대군은 한탄하였다.

한명회는 한 번 웃으며,

“그리 염려하실 것은 없는 것 같사외다.

하고 사람들이 다 어렵게 생각하는 일이라도 자기에게는 다 처리할 묘책이 있는 자신을 보이었다---.

“이 일이 심히 어렵기는 하나 반드시 안 될 일은 아니외다. 기 건의 말을 막아낼 기미가 두 가지 있으니 그것을 나으리가 이용하시오.”

“그래, 어찌하면 막아낼까. 세상이 다 기 건의 말을 옳게 여기는 모양이니까 섣불리 반대하다가는 일도 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망신만 할는지 모르니 차라리 내버려 두고 후일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지 몰라.”

수양 대군은 기 건을 두려워하는 모양이다.실로 기건의 명성은 자못 높았었다. 기 건이 대사헌이 된지 일년이 못하여 부정한 생각을 가진 대관들이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그처럼 기 건은 곧고엄한 사람이었다. 또 그는 어린 임금이 위에 계신 이때에 강기(綱紀)를 숙정(肅正)하는 것이 지극히 필요함을 자각하여 목숨으로써 대사헌의 중한 직무를 다하려고 결 신하였던 것이다. 이번 ‘금분경안’은 그가 가장 큰 결심을 가지고 내어놓은 것이니 세력 없는 수양 대군이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명회는 또 한 번 웃으며,

“두 기미는 무엇인고 하니, 첫째로는 안평 대군을 움직이는 것이외다. 지금 형편으로 나 으리 혼자서는 정부를 움직이기가 어려우실는지 모르지만는 안평 대군과 합력하시면 될 수도 있을 듯하외다. 또 듣건데 안평 대군과 김종서와는 서로 친밀히 내왕이 있다 하니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안평 대군의 친당(親黨)은 정부와 각사(各司)에 없는 곳이 없으니까 안평 대군과 합력을 하시겨우.”

하고 가만히 수양 대군의 눈치를 엿보았다.

수양 대군은 안평대군이란 말만 들어도 와락 상기가 되었다. 형님인 자기를 보면 늘 비웃는 듯 불쌍히 여기는 듯하는 그 태도도 밉거니와 문하에 천하 명사를 다 모아 놓고 서슬이 푸른 아우님 안평대군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이 분하였다. 더구나 그러한 안평대군과 합력하라는 한명회의 말은 욕과 같았다. 안평대군과 합력하라 함은 곧 안평대군에게 붙어서 힘을 빌란 말과 얼마 틀리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수양 대군은 눈살을 찌푸리었다.

한 명회는 무른 그것을 다 보아 알았다. 자기의 말에 수양 대군의 휸중이 자못 불평하게 될 줄을 알았으나 그것이 일일 되는 조짐이라고 보기 때문에 명회는 속으로 웃는다.

이윽히 침음하다가 수양 대군이,

“안평이 내 말을 들을 듯 싶은가?”

하고 억지로 얼굴에 화기를 보인다.

“그것은 염려 없을 줄로 생각합니다. 나으리가 안평 대군더러 이렇게 하여라, 저렇게 하여라 하면 자존심이 많으신 안평 대군이 들으실 것 같지 아니하외다마는 기건의 일은 나으리께만 관계 있는 일이 아니라 종친 전체에 관계되는 일이니까 안평 대군의 자존심을 한 번 건드려 두면 그만일 것이외다. 기건이가 종친의 분경(奔競)을 금한다는 것은 종친을 의심하는 것이요, 특별히 종친 중에 가장 세력이 있는 안평 대군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나으리가 안평 대군께 한 번 말씀만 하시면 반드시 안평 대군이 가만히 있지 아니한 것이외다. 그래서 만일 안평 대군이 분해 하시거든 나으리가 안평 대군을 데리시고 황보인 이하 여러 집정(執政)이 모인 곳에 가시어 종실을 의심함은 무슨 까닭이냐고, 이것은 필경 우리를 욕보이려하는 것이니 우리는 상감께 상서(上書)하여 처분을 기다리겠노라고 준절하게 말씀하시면 못난 황보인이가 반드시 겁을 내어 수그러질 것이외다. 그렇게 수그러지는 것을 보시거든 한 번 더 크게 책망을 하시어 그 무리들의 예기를 질러버리시면 후일에도 나으리를 두려워할 것이니 이야말로 일거 양득이외다. 아무 때라도 나으리께서 한 번 위령을 세우시지 아 니하면 아니 될 터인데, 이번이 마치 좋은 기회니 잘하면 차소위 전화 위복이 될 것이외다.”

하는 명회으이 계책을 듣고 수양 대군은 비로소 얼굴에 화기가 돌며,

“자준(子濬)이는 과연 장자방(張子房)이 재생이로세. 과연 자네 말이 묘책일세. 안 그런 가.”

하고 권람을 돌아 본다. 자준(子濬)은 명회의 자다.

“한명회 말이 그럴듯하외다.”

하고 권람도 찬성하는 뜻을 표하였다.

수양 대군은 곧 사람을 보내어 안평 대군을 불렀다. 안평 대군은 일찍 형님인 수양 대군에게서 불러 본 일이 없으므로 처음에는 이상히 여기었다.

“형님이 나를 불러?”

하고 안평 대군은 수상스러운 듯이 좌우를 돌아 보았다.

문객 중에 어떤 사람은 수양 대군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으니 칭병하고 가지 말기를 권하였다. 안평 대군은 듣지 아니하였다.

“우리 형제 우애지정이 부족하여 매양 한이더니 형님이 이렇게 부르시니 아니 갈 수 있나.”

이렇게 말하고 안평대군은 심히 강개한 안색으로 곧 수레를 내어 수양 대군 궁으로 향하였다.

수양 대군은 반가운 얼굴로 안평 대군을 맞아 대사헌(大司憲) 기건(寄虔)의 금분경안 이 야기를 하고 한명회의 말대로 이것은 결국 안평 대군을 의심하는 일이요, 또 기 건 자신의 생각이 이니라 모두시키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만일 이대로 둔다 함녀 종실 의 큰 욕이니, 곧 황보인 이하 여러 집정을 보고 항의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안평대군은,

“그것이 종실에 그리 욕도리 것이 있습니까. 분경을 금하자는 것은 선조(先朝)부터도 말 있어 오는 것이니까 당연한 일인가 합니다.”

하고 수양 대군의 뜻에 찬동은 아니하였으나, 면에 끌리어 굳이 반대도 못하였다.

안평 대군이야 수양 대군과 뜻이 같거나 말거나 함께 황보인한테로 가기만 하면 수양 대군의 목적은 달한 것이다. 안평과 같이 가서 안평은 곁에 앉히어 놓고 수양 대군 자기가 나서서 말을 함ㄴ 결국 안평도 같은 뜻인 것이 표현되는 것이다.

이때에 마침 황보인은 의정부에 앉아 우의정(右議政) 정분과 국사를 말하고 있었다. 좌의정(左議政) 김종서(金宗瑞)는 이날 자리에 없었다.

수양, 안평 두 분 대군이 왔단 말을 듣고 두 대신은 놀라서 계하에 내리어 맞았다.

서로 예가 끝나고 자리에 앉은 뒤에 수양 대군은 노기를 띤 어성으로 황보인을 대하여,

“대감은 무슨 연유로 종실을 의심하시오?”

하고 들이댔다.

황보인은 수양 대군의 말이 무슨 뜻인 줄을 알았다. 그러나 시치미 떼고,

“나으리, 그게 어인 말씀이시오? 소인이 종실을 의심 할 리가 있소?”

하였다. 수양 대군은 황보인의 말에 힘이 부족함을 알고 한층 어성을 높이어,

“그 어찐 말씀이요. 우리들에게 분경을 금한다 하니 그것이 우리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 고 무엇이요? 그렇다 하면 우리가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나선단 말이요?”

하고 수양 대군은 아까 안평 대군이 하던 말을 들어 안평 대군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려고,

“대체 분경이란 세종 대왕께서와 대행 대왕께 섣불가하다고 하신 것이지마는 이제 금상 즉위 초에 먼저 종실을 의심하여 이것을 금하신다 하면 성덕(聖德)에 누가 되심이 아니며 또 고립무조(孤立無助)하게 되심이 아니겠소? 이는 스스로 우익(羽翌)을 자르심과 다름이 없으니 우리가 나라와 휴척(休戚)을 같이 하거든 어찌 가만 있을 수가 있소? 우리 형제로 말하면 이 위난지시(危難之時)를 당하여 심력을 다하여 대신제공(大臣諸公)으로 더불어 공 제간난(共濟艱難)하자는 것 밖에 다른 뜻이 없거든 도리어 우리가 의심을 받는단 말이요?

어디 그럴 수가 있소 우리 ? 형제는 상감께 상서(上書)하여서 진소(陳訴)할 것이지마는 혹 유사(有司)의 잘못이나 아닌가하여 먼저 대감께 말하는 것이요.”

하였다. 실로 그 위풍이 무서웠다.

황보인은 본래 난 대로 있는 노인이라 수양 대군의 호통에 칠분이나 겹이 나서,

“어디 그런 수가 있으오니까. 소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외다.”

하고 정분을 바라본다.

정 분 역시 마음은 착하나 황보인과 별로 다름 없는 호호야(好好爺)다. 태평 시대에 명 군 밑에서 허물 없는 대신 노릇하기에는 맞추임이지마는 수양 대군 같은 이가 한 번 눈을 부라리면 앉은 대로 비슬비슬 뒷걸음 칠 노인이다.

“그렇다뿐이오니까. 아마 사헌부(司憲府)에서 철 없이 그런 소리를 냈나 보외다.”

하고 정분이가 땀 흘리는 영의정을 구원한다. 그러고는 살려 달라는 듯이 안평대군을 바라본다.

곁에 있던 도승지(都承旨) 강맹경(姜孟卿) 역시,

“아아, 대사헌 기 건이가 그런 말을 내었나 보외다.”

하여 승정원(承政院)에서도 그 일은 알지 못한다는 뜻을 말하여 겁난 무 대신을 두호한다.

기실 분경 금한단 말을 먼저 수양 대군에게 일러 바친 이가 강 맹경 자신이면서.

“그렇다면 모르되.”

하고 수양 대군은 적이 노기가 풀리며,

“우리도 그런 줄 알았소. 그러기에 먼저 대감을 보고 말한 것이요.”

하고 크게 뽐내고 돌아 왔다. 안평대군이 형님이 말하는 동안에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나오는 길에 수양 대군을 보고,

“형님, 사랑에 있던 사람이 그 누구요?”

하고 물었다.

“응, 그 사람. 한 서방이라고저 의원이야.”

하고 수양 대군은 좀 부끄러운 듯이 대답하였다.

안평 대군이 물은 뜻은 오늘 수양 대군이 의정부에서 말하는 것이 반드시 어느 책사가 있음이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응, 그것이 수상지인이로군.’ 하고 안평 대군은 혼자 생각하였다.

이 일이 있음으로부터 수양 대군을 무서워하는 생각이 황보인 이하 모든 집정의 머리 속에 들어 가고 수양 대군은 아무 꺼리는 것 없이 일변 궁중에 무상 출입하고 일변 사랑에 많은 문객을 모으게 되었다. 그래도 아무도 감히 논의를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혀 영의정 황보인이가 무능하였던 까닭이다. 황보인만 아귀통이 세어서 대사헌 기 건의 금분경안을 시행하게 되었더면 종실은 다시 거두를 못하였을는지 모른다. 후에 좌의정 김종서가 그 말을 듣고서안을 치며 통탄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만일 김종서가 그 자리에 있었더면 그렇게 수양 대군의 한 번 호통에 움츠러질 리가 만무하였다.

이 일 뒤에 대사헌 기건만 책임을 지고 대사헌이라는 중임에서 연안부사(延安府使)로 폄(貶)되고 말았다.

이번 명 나라에 사사고면(謝賜誥免)하는 사신을 보내는 의론에 대하여도 정부와 육조와 삼사의 장관이 상관할 것이요, 수양, 안평 등 대군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언마는 저번 일이 있기 때문에 수양 대군은 아우님 되는 각 대군을 다 몰아 가지고 들어 와서 참석을 한 것이다.

“그저 무슨 일에나 바싹바싹 대드시어.”

하는 한명회의 헌책도 있거니와 수양 대군 자신도 무슨 일에나 참예하고 말썽을 부리는 것이 세력을 잡는 비결인 줄을 안 까닭이다.

어리신 상감께서는 거의 본능적으로 제숙부(諸叔父), 그중에도 수양 대군을 싫어하시지 마는 부득부득 들어오는 것을 나가라고 내밀 수도 없었다.

“이번 명나라에 사례사(謝禮使)로 누구를 보낼꼬?”

하고 왕이 물으실 때에 제신들은 묵묵히 있어 대답이 없다. 수양 대군이 가고 싶이 하는 줄을 아는 까닭에 섣불리 다른 사람을 거천하였다가 수양 대군의 미움을 받기도 무섭고, 그렇다고 상감이 싫어하시는 줄을 분명히 알면서 또 자기네들도 싫어하면서도 수양 대군을 거천하기도 싫은 까닭이다.

원래 이런 중대한 일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갈 자격은 삼공(三公)이나 대군(大君)이라야 할 것이니, 삼공 중에서 택한다 하면 황보인은 수상일뿐더러 나이 팔십이니 갈 수 없을 즉 좌의정 김종서나 우의정 정분이나중에서 택할 것이요, 그렇다 하면 인물로나 이력으로나 김종서가 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대군 중에 택한다 하면 문장으로나 식견으로나 안평 대군이 가는 것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만일 황보인이 한 마디,

“김 종서가 가감 한 줄 아뢰오.”

한다든가,

“안평 대군이 합당한 줄 아뢰오.”

한다 하면 아무도 감히 반대하지 못할 것이요, 영의정의 말대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보인은 저번의정부에서 수양 대군에게 혼나던 것이 아직도 무서워서 감히 다시 수양 대군의 비위를 거스릴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았는 것이다.

영의정이 이러하거든 다른 사람은 더구나 수양 대군이 무서울 것이다. 어찌될 줄 모르는 세상에---수양 대군의 세상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쉬, 쉬, 입을 닫혀 두는 것이 상책이 다.---이렇게들 생각하는 것이다.

김종서는 수상황보인이 자기를 거천하지 아니하는---아니 함이 아니라 못하는 심리를 알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남의 눈치만 엿보고 감히 개구를 못하는 심리를 알았다. 이러다가는 결국 수양 대군에게 빼앗길 것이요, 수양 대군이 한 번 명나라에를 가면 반드시 여러 가지 수단으로 명 나라 대관을 친하여 후일에 한 세력을 이룰 것을 생각하였다. 수양 대군이 가느니보다는 차라리 안평 대군이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김종서는,

“이번 사신으로는 안평 대군이 가장 합당한 줄로 아뢰오.”

하고 왕께 고하였다.

김종서의 말에 황보인 이하 모든 사람들은 살아난 듯이 한숨을 쉬었다. 위태한 일을 김종서가 대신하여 준 까닭이다.

김종서의 말대로 상감이,

“그러면 숙부가 다녀오시오.”

하고 안평을 향하여 말씀이 계시었더면 일은 그대로 결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매부 되는 남녕위(南寧尉) 정종(鄭悰)을 이 번 사신으로 보내고 싶으신 것이다.

왕은 어리신 마음에 동기지정으로 그 누님 되는 경혜공주(敬惠公主)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시고 따라서 그 매부 되는 남녕위 정종을 사랑함이 비할 데 없었다. 부왕이 승하하시고 궁중 아무 혈족 한 분도 없이 전혀 남들 속에 외로이 계신 어린 왕은 마음과 정이 가는 곳에 누님 부부 뿐이었다. 비록 왕의 어머님되시는 현덕왕후(顯德王后)와 유촉(遺囑)을 받아 왕께 젖을 드리고 친어머니의 다름 없는 자애지정으로 왕을 양육한 혜빈(惠嬪)양씨가 있지마는 그래도 동기지정에 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즉위하신 이래로 상중(喪中)임도 불구하고 벌써 사오차나 남녕위 궁에 거동하시었다. 열두 살 되신 어린 왕으로 허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명나라에 사신가는 일이 중요한 일인 줄은 알기 때문에 왕은 다른 사람을 말고 꼭 정종을 보내고 싶으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정종을 천하는 이는 없었다. 정 종이 비록 공주부마(公主駙馬)로 지위로 말하면 영의정에 비길 수가 있다 하더라도 아직 이십세가 넘지 못한 소년으로 아무 공로도 없고 이력도 없는 사람을 중대한 왕명을 받드는 사신으로 외국에 보낸다는 것은 아무가 보아도 말이 아니 되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의정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거천할 때에 왕은 묵연히 대답이 없으신 것이다.

이윽히 왕이 대답이 없으심을 보고 사람들은 왕의 어린 심중을 살피었다.

이때에 수양 대군이 탕전에 나서며,

“신이 다녀오리다.”

하고 자천하였다.

왕은 옥좌 위에서 놀라는 듯이 작으신 몸을 움직이시었다. 제일 무섭고 싫은 숙부를 명 나라에 보내기는 참으로 원치 아니한 것이다.

그래서 왕은 역시 묵연히 대답이 없으시었다. 왕이 말씀이 없으므로 수양 대군은 잠간 머쓱하여 탑전에서 물러 나왔다.

왕은 이때를 놓지 아니하리라 하고 제신을 돌아보시며,

“남녕위 정종이 어떠하오?”

하고 낭랑한 어성으로 물으시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왕은 용안을 붉히시었다.

왕의 말씀에 제신은 서로 남의 눈치만 보고 말이 없었다. 수양 대군의 관자놀이에는 굵은 핏대가 불끈하였다. 전내(殿內)에는 찬바람이 도는 듯하였다.

이때에 영의정 황보인이가 나서서 결정적으로 한 말만 하면 일은 순순히 귀정이 될 것이 지마는 그는 왕의 편을 들자니 수양 대군의 뜻을 거스르겠고 수양 대군의 편을 들자니 왕의 뜻을 거스르겠고 그래서 조는 듯이 생각는 듯이 가만히 있을 뿐이다.

우의정 정 분 역시 영의정과 마찬가지 심사요, 좌의정 김종서는 한 번 안평대군을 거천하였으니 다시 이 일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에 우참찬(右參贊) 정인지(鄭麟趾)는 민첩하게 일되어 가는 형세를 살피고 수양 대군 편이 되는 것이 가장 유리한 줄을 보아,

“우참찬 정 인지 아뢰오, 대저 이번 사고면(賜誥冕) 사례사(謝禮使)는 상감께옵서 즉위하신 뒤에 처음으로 보냅시는 사신이은즉 식견과 이력이 구비한 사람을 보냅시는 것이 지당하오며 남녕위 정종으로 말씀하오면 아직 연천하옵고 또 일찍 사신으로 갔던 이력이 없사오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후일에는 몰라도 이번에는 어떠할까 하오며 수양 대군은 대행 대왕 즉위 시에도 황조(皇朝)에 간 일이 있사옵고 또 종실 중에 가장 지위가 높사온즉 수양 대군을 보냅심이 가장 옳은 줄로 아뢰오.”

하였다. 인지의 말에 용안은 주홍빛이 되고 수양 대군은 한 번 인지를 바라보았다.

정인지의 말은 당당하였다 정인지는. 앞뒤를 다 헤아려서 꼭 설 말이 아니면 아니한다.

아무도 인지의 말에 반대할 이유도 없고 용기도 없는 듯하였다.

왕은 심히 초조한 듯이 좌우를 둘러보시고 울음이 터질 듯 싶었다.

이때에 좌참찬(左參贊) 허 후(許詡)가 수양 대군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

“수양 대군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신다는 것은 안될 말씀이요. 방금 재궁(梓宮)이 빈전(殯殿)에 계시거든 수양 대군이 나라에 종신(宗臣)이 되어 나라를 떠나신다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외다.”

허후의 반대도 당연한 말이었으나 아무도 허 후를 돕는 이가 없어 결국 정인지의 말대로 수양 대군이 명나라에 가기로 되었다.

수양 대군은 이날에 정인지가 자기를 도와 말하여 준 것을 심히 덕으로 여겨서 그날 밤에 대군이 미행(微行)으로 정인지의 집에 가서 다짜고짜로 안으로 들어가 인지의 손을 잡고,

“대감, 나허고 혼인합시다.”

하였다. 이때에 수양 대군은 아드님이 두 분이나 있었지마는 인지는 당혼한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수양 대군의 말하는 뜻을 알지 못하여 잠간 주저하다가 마침내 그 뜻을 알고,

“네, 그러하오리다.”

하고 허락하였다.

수양 대군은 예전 권람이가하던 말을 기억하고 정인지를 막하에 끌어들인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정인지도 판이 뒤집히어 이 세상이 수양 대군의 세상이 될 것을 보았으므로 수양 대군에게 허락한 것이다. 혼인이라 함은 정말 혼인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일을 같이 하자는 뜻이다.

수양 대군은 공조판서(工曹判書) 이사철(李思哲)로 부사(副使)를 삼고 집현교리(集賢校理) 신숙주(申叔舟)로 종사(從事)를 삼아가지고 연경 삼천리 길을 떠나게 되었다. 종사로 신 숙주를 택한 것은 이번 길에 이 재주 있는 집현 학사를 내 것을 만들리라는 생각을 가진 까닭이다.

이 밖에 영의정 황보인의 아들 황보석(皇甫錫)과 좌의정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金承珪) 도 수원으로 택하였다. 이것은 까닭이 있다.

권람은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가게 된 것을 알고 놀라며,

“나으리, 지금 황보인, 김 종서 패가 잔뜩 나으리를 의심하는 모양인데 이제 만일 나라를 떠나시면 대사가 틀어지지 아니하겠소?”

하고 수양 대군을 만류하였다.

수양 대군은 웃으며,

“걱정 없어. 안평(安平)은 내적수가 아니요, 인이나 종서도 호걸지사(豪傑之士)는 아니야. 종서를 세상이 범이라고 하지마는 요새에는 이도 톱도 다 빠진 모양이데. 그것들이 무얼 하겠나. 또 내가 황보석이, 김 승규를 데리고 가니까 저희들이 더구나 못 움직일 것일세.”하였다.

실상황보인, 김 종서는 이듬해 계유년 이월 수양 대군이 의기양양하게 명나라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도리어 수양 대군이 돌아오는 날에 백관을 거느리고 모악원(母岳院--명나라를 존숭하는 사람들이 ‘홍길동’으로 이름을 고치었다)까지 나아가 맞았다.

명 나라에 다녀온 뒤로 수양 대군의 세력은 흔들 수 없이 되었다. 황보인, 김 종서 정분은 명색은 삼공이나 수양 대군이 두려워 뜻대로 국정을 처리하지 못하였다. 적이 중대한 일을 처리할 때에는 승지를 수양 대군에게로 보내어 그 뜻을 묻도록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수양 대군이 날마다 궐내에 들어와 무론모사하고 아니 참예하는 것이 없었다. 왕도 이를 어찌할 힘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수양 대군의 세력 밑으로 가만가만히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마는 수양 대군의 횡포를 분개하는 사람도 적지 아니하였다. 그중에 두령 되는 이는 그래도 좌의정 김종서였다. 김 종서를 떠받드는 사람들이 수군수군 수양 대군의 횡포를 제어할 꾀를 말하게 되었다.

명나라에서 돌아온 수양 대군은 실로 서슬이 푸르렀다. 권람, 한 명회는 거의 수양 대군 궁에서 살아서 세상엗 이 두 사람이 수양 대군의 칙사인 것을 알게 되었다.

국상 중임도 꺼리지 아니하고 한 달에도 사오 차씩이나 모악원과 훈련원(訓練院)에 습사 장(習射場)을 베풀고 크게 주연을 배설하여 모여든 무사를 먹이고 특별히 용력이 있거나 무 예(武藝)가 있는 사람이면 수양 대군이 친히 불러 술을 주고 상을 주었다.

자핫골 수양 대군 궁 후원에서는 거의 날마다 습사가 있었다. 여기는 모악원과 훈련원에서 뽑아온 무사들을 모아 놓고 활쏘기와 칼 쓰기를 익히는 곳이다. 무사를 택하는 것은 한명회가 맡아 하였고, 한명회는 양정과 유수와 홍달손(洪達孫)을 시켜서 하였다. 천하 잡놈과 팔도 망나니는 다 수양 대군 궁으로 모인다는 동요까지 날만하였다.

힘 쓰는 사람, 키 큰 사람, 달음질 잘하는 사람, 담넘기 잘하는 사람, 사람 잘 치는 이, 거짓말 잘하는 이, 활 잘 쏘는 놈, 칼 잘 쓰는 놈, 말 잘 타는 놈, 돌팔매 잘 치는 작자, 도적질 잘하는 작자, 목소리 큰 사람, 무엇이나 한 가지 재주 있는 무리들, 부모한테도 쫓겨나고 동네에서도 물려난 무리들, 꽁무니에 방맹이 하나를 차고 심심하면 사람깨나 때리고 다니는 무리들, 노름판, 색주가, 선술집으로 다니는 무리들.

한 명회 집 사랑에 어슬렁어슬렁 출입하던 무리는 모두 수양 대군 궁에 상객이 되어 출입하였다.

수양 대군이 무사를 모은다는 소문은 팔도에 두루 퍼졌다. 그래서 힘깨나 쓰는 사람은 다투어 수양 대군 궁에 궁에 출입할 길을 찾았다.

인왕산을 등진 수양 대군 궁 후원은 대단히 넓었다. 활터만 있지 아니하고 말달리는 터까지도 있었다. 마장(馬場)에는 항상 좋은 말 사오필이 매어 있었고, 활터에는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여러 가지 모양의 활과 화살이 걸리어 있었다.

습자를 한다는 날은 대개 사오십 명이 모였으나 어떤 때에는 백명이나 모이는 때도 있었다. 수양 대군도 권람, 한명회, 홍달손, 양정, 유수들을 거느리고 활터에 나와 앉았고 흥이 나면 손수활을 당기어 쏘기도 하였다. 수양 대군의 활은 백발백중이라 할 만큼 유명하였었다. 태조대왕 이래에 처음이라고까지 수양 대군께 아첨하는 이는 찬사를 올리었다. 수양 대군이 열여섯 살 적에 형님 되시는 문종대왕이 대군의 활 잘 쏘는 것을 칭찬하여 활에 써 주신 것을 전에도 말하였거니와 그처럼 수양 대군은 활에 이름이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구나 무사들이 수양 대군을 숭배하게 되었다.

습사가 있는 날에는 수양 대군이 친히 임할 뿐 아니라 대군의 부인 되시는 낙랑부 대부인 윤씨는 몸소 궁인들을 감독하여 무사들을 공케할 음식을 차리고 그것이 끝나면 후원 별당에 임하여 발을 드리우고 활 쏘는 구경을 하였다.

윤씨 부인도 무사들을 좋아하였다.

“오늘은 무사들이 온다.”

하고 습사가 있다는 날에는 마치 명절이나 당한 듯이 기뻐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윤씨도 남편의 야심을 대강 짐작하게 되고 따라서 날마다 이바지하는 무사들이 오늘은 비록 어중이떠중이라 하더라도 장차는 남편의 대사를 도울 사람들인 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후원에서 습사하고 난 끝에는 반드시 한명회 이하 심복 되는 사람들을 모아 데리고 수양 대군이 여러 가지 비밀한 의논을 하였다. 그 비밀한 의논의 대부분은 어찌하면 황보인, 김종서, 안평 대군 같은 무리를 몰아낼까, 무슨 죄명을 씌울까, 암살을 하여 버릴까, 아니다 당당하게 무사들로 대오를 편성하여 서울 장안을 점령할, 그리한다 하면 어떤 모양으로 할까---이런 제목들이다, 그중에도 목하의 중대한 문제는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 대군의 뜻을 아는가 모르는가, 안편대군 궁에 어떤 사람이 출입하며 무슨 일을 의논하는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 종서 등, 문종대왕의 고명을 받은 집정들 사이에 어떠한 연락과 내왕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든 사정을 염탐하여 들이는 것도 한명회가 맡아서 양정, 유수 등을 시키어서 하였다. 장안에 늘어 놓인 끄나플들은 각색 정보를 염탐해 들이었다.

계유년 시월 십일. 첫겨울이지마는 별 잘 나는 따뜻한 날이었다.

인왕산 밑 수양 대군 궁에는 이른 아침부터 문객이 모여들었다. 이 문객들은 수양 대군 궁에서는 ‘무사’라고 통칭하는 사람들이다. 이 골목으로 저 골목으로 하나씩 둘씩 아무쪼록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중에 굵직굵직한 사람들은 그 얼굴과 눈매를 이 무슨 심상치 아니한 일이 있는 것을 보이었다.

이날에 수양 대군 궁에 모인 사람은 강곤(康袞), 홍윤성(洪允成), 임자번(林自蕃), 최윤(崔潤), 안경손(安慶孫), 홍순로(洪純老), 홍귀동(洪貴童), 유형(劉亨), 민발(閔發), 곽연성(郭漣城) 등이었다. 권람(權擥), 한명회(韓明澮), 양정(楊汀), 유(柳)수(洙) 등은 전날 밤을 수양 대군 궁에서 새운 것이다. 임운(林芸)은 수양 대군 궁에 궁노로 있으니 말할 것도 없다.

이날도 후원에서 습사(習射)를 한다 하여 이상에 말한 중요 인물 외에 훈련원 모악원에서 모아 들인 무사란 것들이 백여 명이나 모여 왔다. 이래서 수양 대군 궁은 이날 따라 심히 흥성흥성하였다.

이렇게 모이는 것은 근래에 흔히 있는 일이지마는 이날은 결판을 내는 날이다. 황보인, 김 종서 이하 집정들을 없애버리고 수양 대군이 정난(靖難)이라는 이름으로 국정을 한 손에 총람하기로 정한 날이다.

후원에서는 다른 때와 다름없이 무사들이 술먹고 활쏘고 즐기었다. 이날에는 특별히 술도 많고 안주도 좋았다. 큰 소 한 마리를 통으로 삶은 것이었다. 궁한 무사들은 웬 떡인고 하 고 마시고 먹었다. 무슨 일이 있으려니 하면서도 오늘이 그날인 줄은 어중이떠중이 무사들 은 알지 못하였다. 다만 어렴풋이 ‘얼마 아니하여 우리는 장안 대도상으로 거드럭거리고 다니느니라.’고 속으로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후원에서 무사들은 먹고 마시고 활 소고 하지를 해가 낮이 기울어도 수양 대군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한 명회도 잠간 잠간 빛을 보이고는 들어가버리었다.

“웬일이어? 오늘은 도무지 나으리가 아니 납시니.”

하고 의심하는 축도 있고,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기나 보이.”

하고 가장 아는 체하고 눈을 끔적하는 자도 있었다.

실상 요새 서울 장안에는 유언비어가 성행하여 간 곳마다,

“세상이 뒤집힌대.”

“보기만 해요. 해를 못 넘길테니.”

이렇게 수군거리지 않는 데가 없고 그러면 누가 들어 앉느냐고 물으면 혹은 수양 대군이라고도 하고 혹은 안평 대군이라고도 하고, 또 혹은 고려 왕씨의 후손이 다시 들어앉는다고도 수군대었다.

정부에서도 이런 소문을 안 들었을 리가 없다.

황보인, 김 종서도 수양 대군의 행동을 의심하는지는 어제 오늘부터가 아니다. 근래에 와서 무뢰지배(수양 대군 궁에서 무사라고 일컫는 무리를 세상에서는 그중에서도 대관들은 무뢰지배라고 일컬어 웃어버린다)를 모아 자주 활을 익히고 술을 먹이고 하는 것을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 원, 숭한 일이야.”

“설마 어찌할라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찌하노?”

이것이 늙은 집정(執政)들이 혹시나 모이어 앉으면 하는 소리었다.

“그래도 설마.”

하는 것이 무기력하고 고식적인 그들의 공통한 심리었던 것이다.

오직 김 종사가 이 일을 중대하게 보아 좌참찬(左參贊) 이양(李穰), 병조판서(兵曹判書) 민신(閔伸), 이조판서(吏曹判書) 조극관(趙克寬), 내시 김연(金衍), 한숭(韓崧)등으로 더불 어 수양 대군의 행동을 감시할 것과 만일 불우지변이 있더라도 어떻게 막을 것과 그보다도 만일 분명히 수양 대군이 역모를 하는 눈치만 보이거든 상감께 주달하여 아주 수양 대군을 처치하여버릴 것까지 의논하였다.

원래 김 종서는 정인지의심사를 수상하게 알았다. 그것은 수양 대군을 눌러야 한다는 의논이 날 때마다 정인지는 말이 없음을 본 까닭이다. 그래서 요전번 중대한 비밀 회의에는 정인지를 부르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김종서도 차마 여러 사람을 대하여 정인지는 믿을 수가 없으니 부르지 아니하였단 말은 하지 못하였으므로 원체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호인 이양(태조 대왕의 서형의 아들)이 그만 이 의논을 정 인지에게다 누설하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정 인지는 곧 도승지 강맹경(姜孟卿)을 시키어서 수양 대군에게 통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내력으로 수양 대군에게 일어날 핑계를 준 것이다. 황보인, 김 종서 배가 수양 대군을 배척하려고 한 대서는 핑계가 아니 되지마는 어리신 주상(主上)을 시역(弑逆)하고 안평 대군을 옹립(擁立)하려 함이라 하면 천하에 내어 놓기에 가장 번뜻한 핑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시월 초 열흘날 거사하기로 계교를 세운 것이다.

무사들이 후원에서 해가 늦도록 술 먹고 떠드는 동안에 수양 대군 궁 안방에서는 한명회, 권람, 홍달손, 송석손 등 주요 인물들이 모여 비밀한 의논을 한다. 그의 논에 제목은 이 계획이 대강 누설이 된 듯 싶으니 어찌할까 하는 것이다.

“무어, 누설되었기로 무서울 것 있나. 저놈들이야 다 합한대야 아홉 놈 밖에 없으니까.

아홉 놈이라야 그중에 김종서 한 놈이 좀 무섭지 그놈 한 놈만 없이 하면 다른 놈들은 손도 대일 것이 없을 것일세.”

이 모양으로 수양 대군은 뽐내었다. 여간해서 흥분되지 아니하고 그의 얼굴은 술이 반이나 취한 듯이 붉었다. 아홉 놈이라 함은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이양(李樑), 민신(閔伸), 조극관(趙克寬), 윤처공(尹處恭), 이 명민(李命敏), 원구(元矩), 조번(趙蕃)을 가리킨 것이다.

“그까진 김 종서놈이기로 이 주머귀 하나면 늙은 것을 만두 속을 만들고 말지요. 소인 지금 가서 죽여버리고 오리까?”

하고 나시는 것은 홍윤성(洪允成)이란 궐자다.

“아니외다. 나으리, 일이 그러하지를 아니하외다. 저놈들도 말씀하오면 비록 힘은 없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상감마말ㄹ 등집니다. 그런데다가 만일 우리 꾀를 알아채었다 하면 반드 시 무슨 계책이 있을 것이니까 섣불리 하다가는 일은 안 되고 공연히 역적 득명이나 하고 신수이처(身首異處)를 며치 못할 것이외다. 하니까…….”

하는 송석손(宋碩孫)의 말이 끝나기 전에 홍 윤성이가 거무데데한 얼굴에 핏대를 돋히고 팔을 뽐내며,

“아니 여보, 송생원, 어쩐 말이요? 대사를 시작하는 마당에 역적 특명이니 신수이처니 고런 방정맞인 말법을 어디서 한단 말이오. 역적이라니 황보인, 김 종서놈들이 역적이지 그려. 누가 역적이란 말이요? 그래 나으리가 역적이시란 말이요? 응, 어찐 말이요? 어디 말 좀 해 봅시다.”

하고 송석손을 멱살이라도 추켜들 듯이 덤비는 것을 유형(柳亨)과 민발(閔發)이 붙들며,

“이봐, 홍 선달, 그런 것이 아니야. 어디 그런 말인가자 참으로, 참아.”

하고 홍 윤성을 뒤로 물려 앉히고 나서,

“홍선달 기개도 장하오마는 송석사의 말도 이치가 없지 아니한 줄 아오.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字以令諸侯)란 셈으로 저놈들이 취할 길이 상감께 매어달리는 길 밖에 없으니 그놈들에게 좋은 일을 시키지 말고 나으리가 먼저 상감께 저늠들이 역모를 한단 말을 삶고 왕명을 받아 가지고 당당하게 저놈들을 토벌하는 것이 좋을 듯하외다. 모르기는 하거니와 송석사의 말도 이 뜻인가 합니다.”

한다. 유형, 민발의 말은 언성이 순하였다.

홍 윤성의 호통에 분을 참고 얼굴이 푸르락 누르락하던 송석손은 유형, 민발의 말에 겨우 살아나서 고개를 들며,

“누구는 나으리께 향한 충성이 누구만 못한 것이 아니오.”

하고 한 번 홍 윤성을 노려본 뒤에,

“예, 그러하외다. 지금 유 참봉, 민 진사의 말이 바로 소인이 하려던 말이외다. 소인이 어디 역적 득명을 무서워하거나 모가지를 아낄 리가 있사오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라도 내 모가지를 내어놓으라 하시면 선뜻 내어놓을 소인이외다. 어, 홍 선달, 사람을 그리 ㅗ지 마소.”

하고 송석손은 끝으로 한 번 더 홍 윤성을 노려보았다.

홍 윤성은 더하고 싶은 말을 참노라고 넓적한 코만 씰룩거리고 있었다.

홍 윤성의 생각에는 땟국이 꾀죄죄 흐르는 좀선비들이 무에라고 찧고 까불고 하는 것이 다 마음에 맞지 아니하였다. 그저 손에 맞는 철여의 하나를 들고 나서서 황보인, 김 종서의 무리를 모조리 바서 죽이고 모든 공명을 저 혼자서만 가지고 싶었다.

유 형, 민 말의 말에 수양 대군도 마음이 솔깃하였다. 곧 궐내로 들어가서 상감께 황보인, 김 종서의 무리가 역모를 한다는 말을 삷고 당당히 왕명을 받아가지고 천하에 호령한다는 것이 진실로 번듯하였던 것이다.

“그리하는 것이 땅 짚고 헤엄하는 것이외다.”

하고 송석손이가 자기 말을 세우려고 한 번 더 다진다.

이렇게 되면 일등의 마음은 자연 움츠러진다. 아무쪼록 위험을 무릎쓰지 말고 공을 이루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이다.

홍순로(洪純老)가 나서며,

“그게, 일이 그러하지 아니하외다. 만일 이 일이 누설되었다 하면 성사하기는 어려운 일이요, 또 관군이 올 의심도 있으니 아직 북문 밖으로 나가서 재기(再起)를 도모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하고 엄청난 소극론(消極論)을 끄집어내어 입좌를 아연(啞然)케 한다.

이 말을 모두 다 비웃었지마는 속으로는 점점 겁들도 났다. 그래서 이 양, 홍 윤성으로도 아까 모양으로 뽐내지를 못하고 큰 눈을 뒤룩거리고 수양 대군과 한 명회의 눈을 본다. 다른 사람들의 눈도 역시 그리로 모인다.

한 명회는 사기저상(士氣沮喪)하는 눈치가 있음을 보고 수양 대군을 바라보며,

“이거, 이러다가는 안되겠소이다. 작사도방(作舍道傍)에 삼년 불성(三年不成)이라고 이러다가는 해만 다지고 말 터이니 나으리가 뜻대로 결정하시오.”

하고 만좌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의 눈은 수양 대군에게로 모였다. 수양 대군이 눈은 호공을 바라보고 움직이지 아 니하고 숨소리가 점점 힘있게 되었다. 수양 대군도 마음에 이럴까 저럴까 자저함이 있는 것이다. 한 명회의 말에 홍 윤성은 죽었던 기운이 다시 나며,

“이게 다 일이 아니이다. 용병지도(用兵之道)는 최기유예(最忌猶豫)라고 이렇게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이외다. 해보는게지 여기 앉아서 해가 지도록 이렇구 저렇구 말만 하 다가는 그야말로 역적 득명만 하고 신수이처가 될 것이외다.다들 싫거든 소인이 혼자 나가 서 그 늙은 놈들을 모조리 해낼라오.”

하고기고 만장하여 일동을 노려보고 분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방안에 살기가 돌았다.

이 통에 수양 대군도 벌떡 일어났다.

“가자. 활 시위를 떠난 살이 다시 돌아오는 법은 없다.”

하고 수양 대군은 소리치었다.

“나으리,아니 됩니다. 이러시다가는 대사는 안되고 봉면만 할 것입니다.”

하고 송석순, 유 형, 민 발이 수양 대군의 소매를 붙들어 만류하였다.

수양 대군은 마침내 흥분이 극도에 달하였다. 평소에 저마다 앞장 설 듯이 큰소리 하던 자들이 정작 일을 시작할 때를 당하여서는 모두 겁들이 나서 슬슬 꽁무니를 빼는 것이 심히 밉고 분하였다.

“비켜라! 너희들일랑 가서 관사(官司)에 일러바치어라. 내가 억지로 너희들더러 따르라는 것은 아니어.나를 따르기 싫은 놈들은 가. 대장부가 죽으면 나라를 위항 죽는 것이야, 나 혼자 갈테니 놓아라 놓아!”

하고 수양 대군은 벽에 걸린 활을 떼어 어깨에 매고 칼자루에 손을 대며,

“어느 놈이나 집미오기(執迷誤機)하는 놈이면 당선참지(當先斬之)할 터이니 그리 알아라.”

하고 옷을 붙드는 송석손, 유형, 민발 등을 발길로 차제치고 노기가 둥둥하여 중문으로 뛰어 나섰다.

이때에 부인 윤씨는 조금도 겁냄이 없을 뿐더러 도리어가기를 권하는 듯이 손수 갑옷을 내 어다가 입혀드리었다.

수양 대군이 부인이 입히는 갑옷을 받아 입고 임운(林芸)한 사람을 데리고 대문을 향하고 나가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드른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중에서도 한명회가 분별을 하여,

“나으리가 혼자 가시니 가만 있을 수가 있나 누가 뒤를 따라야지.”

하고 홍 윤성더러는 먼저 김 종서 집으로가서 김 종서의 행동을 염탐하라 하고 권언(權偃), 권람(權擥), 한서(韓瑞)귀, 한명진(韓明溍)더러는 돈의문(敦義門) 위에 매복하였다가 수양 대군을 돕게 하고 감순(監巡) 홍달손(洪澾孫)더러는 밤이 들더라도 순군(巡軍)을 헤치지 말고 한 곳에 모여 있어 지휘를 기다리게 하고 양정(楊汀), 유수(柳洙), 홍순손(洪順孫)더러는 미복으로 수양 대군을 따라 김 종서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하고 한 명회 자기는 수양 대군 궁에 남아서 후원에서 무사들을 교련하고 비밀히 감추어 두었던 철여의와 비수와 독 바른 살 같은 것을 나누어 주고 오늘 밤으로 거사할 터이니 각각 힘을 다하여 싸우라.

공을 따라서 높은 벼슬과 많은 녹을 주리라는 뜻을 말하고 또 만일 영을 어기거나 겁내어 달아나거나 적당(賊黨)에게 밀통하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처참한다는 엄한 명령까지 내렸다.

한명회의 말을 듣고 어중이떠중이 무사들 중에는 시호시호 부재래라고 기뻐하는 자도 더러 있지마는 대부분은 눈이 둥글하고 무릎이 덜덜 떨렸다.

‘아이고, 이것이 역적 놈의 소굴이었구나.’ 하고 혼비백산하여,

“엄마 엄마.”

하고 우는 사람조차 있었다.

누가 이렇게 무서운 일 하려고 이곳에 왔던가, 술 먹는 맛에, 옷가지나, 용챗냥이나 얻어 쓰는 맛에, 수양 대군 궁에 문객이라고 자세하는 맛에 왔던 것이다 하고 슬며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려는 작자도 있었다.

한 명회는 이 오합지졸이 겁이 나서 달아날 구멍만 찾는 눈치를 보고 각 문을 굳이 달아 일체 출입을 금하고 만일 담을 넘거나 기타 수단으로 도망하려는 자가 있거든 물어볼 것 없이 죽여버리라고 문을 지키는 심복 되는 무사에게 분부하였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게엄 속에 무사들은 먹고 즐기던 홍도 다 깨어져서 이 구석 저 구석 둘씩 셋씩 모여 앉아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것만으로 안심이 되지 아니하여 한명회는 백여 명 무사의 명부를 들고 돌아가며 일일 이 수결을 무게 하였다. 수결 두는 손들은 떨렸다. 그러나 감히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만일 거절한다 하면 당장에 모가지가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잠시라도 모가지를 몸에 붙여둘 생각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결을 두는 것이다.

수결 두는 것이 끝난 뒤에 명회는 여러 무사를 향하여,

“인제 우리는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게 되었소. 성사가 되면 원훈(元勳)이 될 것이요, 패하면 이 명부록은 역적의 명부록이 될 것이요. 지금 왕자(王子)께서 역적 괴수(逆賊魁首) 김 종서를 잡으러 가시었으니 무사하게 돌아오시면 우리 일은 팔분이나 성사가 된 것이요. 이로부터 성사가 되기까지는 군법을 시행할 것이니 그리 아오.”

하고 격려 겸, 위협 겸 일장의 훈시를 하였다.

사람이란 죽을 죄라도 저지르기 전이 무섭지 저질러 놓으면 겁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겁이 나서 허둥지둥, 쩔쩔매던 무사들도 명부록에 수결까지 두어 놓고 나서는 다들 죽었던 기운이 다시 살아서 얼굴에 푸른 빛이 스러지고 그와 반대로 도리어 기고 만장하여 저절대는 자조차 있었다.

수양 대군 부인 윤씨는 이 무사들을 위하여 손수 음식을 만들어 저녁을 공케 하였다. 한 명회가 이런 무사들에게 전하매 무사들 중에는 부인의 정성에 감동하여 죽기로써 은혜를 갚는다고 맹세하는 자까지 있었다.

해는 인왕산으로 넘어가고 시월 초 열흘 달은 송편보다도 조금 더 배가 불러서 큰 변이 일려는 서울을 비추고 있었다.

서대문 밖 김종서(金宗瑞) 집에는 어느 날이나 문객이 떠날 날이 없었다. 의정부(議政府) 좌의정(左議政)이라는 서슬이 푸른 정승인 까닭도 있거니와 삼척동자나 병문 막벌잇군더러 물어도 지금 우리 조선에 첫째 가는 양반은 김 종서였다. 영의정 황보인은 이름 뿐이요, 사실 영의정은 김 종서라고 다들 말하였고 호랑이 김 정승이 살아 있는 동안 아무 놈도 감히 거두를 못한다고 우부우부(愚夫愚婦)들도 다들 이야기하였다.

안평 대군도 절재(節齋)라면 항상 존경하는 뜻을 가지고 한 달에 한 번씩은 몸소 김종서 집을 찾아 경의를 표하였다. 이것이 수양 대군에게 김종서가 안평 대군을 추대하여 사직을 위태하게 한다는 구실을 줄 연유다.

김종서는 그야말로 출장입상(出將入相)하였다. 두만강 가의 야인(野人)을 물리치어 육진(六鎭)을 완성한 공로는 조선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도 좀것들은 김종서 이 공을 시기하여 여러 가지로 육진 개척이 불가함을 말하여 김종서를 나라를 위태케 하는 무리로 몰아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마침 세종 대왕 같은 밝은 임금을 만났기 때문에 죄를 면하고 공을 온전히 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김종서가 육진성 쌓기를 끝내고 개선하는 날(그 날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신 어린 임금이나시기 바로 전이다)에 세종 대왕은 내전에 잔치를 베풀어 김종서의 공로를 위로하시며,

“내가 아니면 종서가 이 일을 할 수 없고 종서가 아니면 내가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고 칭찬하시었다. 문종 대왕이 승하하실 때에 어린 세자를 부탁하시며 가장 크게 믿기도 김 종서였고 유충재상(幼沖在上)이라 하여 어린 임금이 위에 계신 이 어려운 판국을 진정할 이 도 김 종서라고 상하가 다 믿는 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명회가 가장 큰 적으로 수양 대군에게 일러바치는 이도 김종서였다.

그동안 근 일년을 두고 계획한 것이 말하자면 김종서 하나를 어찌하면 가장 잘 없이할까 함이었다.

수양 대군이 송석손(宋碩孫), 유형(柳亨), 민발(閔發)을 발길로 차고 대장부 죽으면 사직을 위하여 죽는다고 뛰어나선 것도 가는 곳이 김 종서의 집이었다.

근일에는 시절이 하도 수상하여 김종서 집에 출입하던 문객들도 발을 끊어버리었다. 윷이 날지 모가 날지 모르는 이 판국에 섣불리 어느 권문 세가에 출입하느니보다는 가만히 숨어서 시세를 엿보다가 이길 듯한 편으로 가서 달라 붙는 것이 가장 약은 수였다. 더구나 수양 일파가 못 먹어하는 호랑이 김 정승 집 같은 데를 요새 같은 때에 바삐 다니다가는 큰 코 뗄 줄을 다들 아는 것이다. 인정은 바람개비 같았다.

이 날에도 대궐에서 물러나온 후로 아무도 찾는 이가 없이 김 종서는 안에 있어서 어린 자손들을 데리고 희롱하고 있었다.

아들 승규(承珪)가 승규의 심복 되는 신사면(辛思勉), 윤광은(尹匡殷)으로 더불어 사랑 마당과 대문 안팎으로 거닐며 혹 자객 같은 것이나 오지 아니하는가 하여 살피고 있었다.

해가 금화산(金華山) 위에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하여 홍윤성(洪允成)이가 터덜거리고 찾 아 왔다.

승규는 윤성이가 수양 대군 문하에 다닌단 말을 들었으므로 이놈 수상한 놈이다 하고 윤성을 노려보았다.

신사면 윤광은 두 (辛思勉), (尹匡殷) 사람도 한껏 홍윤성이가 쑥 나선 것이 이상도 하고 또 한껏 온종일 짐승하나 못 보던 사냥군이 처음으로 무엇을 본 듯한 호기심도 있어서 홍 윤성을 에워쌌다.

윤성은 그 눈치를 모름이 아니다. 시치미 떼고 가장 호기있게,

“춘부 대감 계시오?”

하고 승규더러 물었다.

“계시어요.”

하고 승규는 데면데면하게 대답하였다. 이 불량하게 생긴 놈이 왜 왔는고 하고 한 번 더 승규는 윤성을 노려보았다.

“내가 춘부 대감을 뵙고 여쭐 말이 있으니 춘부 대감께 그렇게 여쭈시오.”

하고 윤성은 태연하였다.

조금만 수상한 눈치가 보이더라도 홍 윤성 따위 한 두두름은 미친 개 치듯 때려 죽일 결심으로 있던 승규도 홍윤성의 태도가 하도 태연한데 기운이 질리었다.

“가친이 안에 누워 계신 모양이요 마는 무슨 일인지 모르거니와 내게 말하시오. 내가 대 신 여쭈어 드리오리다.”

하고 아까보다는 좀 부드러운 그러나 더욱 의심스러운 눈으로 홍 윤성을 바라보았다.

곁에 있는 신 사면, 윤광은 두 사람도 ‘이놈이 힘쓰는 놈이라는데’하고 꽁무니에 숨겨 찬 철편을 옷 속으로 만져 보아 아무 때에나 내어두를 준비를 하였다.

홍 윤성이가 양화도(楊花渡) 나루에서 배 잘 건너 주지 아니한다고 나룻배에 뛰어오르는 길로 팔따지같이 굵은 사앗대를 엿가락 분지르듯 세 마디에 분질러 배 위에 있는 네 사람을 뱃사공 아울러 순식간에 육장(肉醬)을 만들어 강물에 집어 동댕이를 치고 제 손으로 배를 저어 건너온 까닭에 마침 양화도에서 뱃놀이 하던 수양 대군의 눈에 들어 살인한 대죄도 흐지부지 면하고 도리어 수양 대군 궁에 긴한 식객이 되었다는 홍 윤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검고 왁살스러운 얼굴에 불량한 눈방울만 보아도 여간 사람은 가슴이 서늘한 것이다.

“아니오. 그렇지를 아니하외다. 꼭 대감을 뵙고야 할말이길래 그러는 것이지 그렇지 아 니하면 내가 대감을 뵈려고 할 리가 있소? 또 내가 이렇게 대감을 뵈려고 하는 것은 권문세가에 무슨 청이나 하러 온 것이라고 알지 마시오. 사내 대장부가 영시언정 구구스러이 청을 해서 벼슬깨나 얻어 하겠소? 그럴 내가 아니오. 지금 국가와 대감의 몸에 큰일이 일어날 기미를 내가 보았기 때문에 나는 비록 일개 포외지마는 그런 일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온 것이요. 그 밖에는 아무 다른 뜻이 없는 것이니 만일대감을 뵙지 말고 가라고 하 면 가지요. 그태여 뵈려는 것도 아니오.”

하는 윤성의 말은 넉넉히 승규를 움직이었다.

승규는 윤성을 밖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되는 김 종서 앞에서,

“홍 윤성이란 자가 아버지를 뵙고 긴히 여쭐 말씀이 있다고 와 섰습니다.”하였다.

종서는 어깨에 매어달리는 손자의 볼기짝을 만지며,

“흥, 흥윤성? 그 힘쓴다는 자 말이냐.”

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듯이 웃는다. 나이는 칠십이 가깝지마는 백발 동안에 이빨 하나 지 지 아니하도록 정정하고 몸은 작지마는 어성은 쇳소리같이 쨍쨍하다.

“네, 양화도에서 뱃사공 죽인 자입니다.”

“그자가 수양 대군 궁에 다닌다는데 어째 왔어?”

“글쎄올시다. 수상합니다. 그래도 국가대사요, 또 아버지 몸에 큰일이 나겠기로 그 말을 하러 왔노라고 합니다. 아주 태연하고 몸에 무슨 흉기를 지닌가 싶지는 아니합니다.”

“흉기를 가지었기로 제기 어찌하겠느냐마는, 불러 들이려무나. 어디 그놈이 얼마나 힘을 쓰나 한 번 시험이나 해보자. 어디 우리 만동(萬同)이허고 한 번 힘을 겨루어 볼까.”

하고 유쾌한 뜻이 껄껄 소리를 내어 웃는다. 만동(萬同)이라 함은 지금 네 살 먹는 승규의 둘째 아들이다. 맏아들은 조동(祖同)이다.

종서는 수양 대군이 자기를 가장 큰 원수로 아는 줄을 모름이 아니요, 따라서 자기의 목숨을 엿보는 사람이 가까이 올 줄ㅇㄹ 모름이 아니나 그런 것은 호랑이 김 정승을 두렵게 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빗기 들고 긴 바란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한 노래를 부른 김 종서의 작은 몸뚱이는 일신이 도시의 기요, 담이었다.

“만동아, 너 인제 장사가 하나 들어올테니 대들어서 네 한 번 그 따귀를 붙이어라. 그럴래? 그러면 활주마.”

하고 늙은 영웅은 어린 손자의 등을 만진다.

윤성은 다만 김종서의 행동---김종서가 수양 대군의 계굘ㄹ 아는 모양인가 아닌가, 신변을 경계하고 있는가 아닌가르보러 온 것이 목적이지마는 평생에 처음 당대 영웅을 대하는 것이니 한 번 사내다움을 보이리라는 야심이 있어서 있는 용기와 위엄을 모두 주워 모아 가지고 승규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윤성은 초면이요, 의심스러운 자기를 안방으로 끌어들이는데 아니 놀랄 수가 없어서 혹 자기를 없애버리려고 어디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는 것이나 아닌가 잠간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절재 김종서는 그렇게 사람을 속일 녹록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고 다시 기운과 위의를 수습하여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는 말에 윤성의 눈은 샛별과 같이 광채 나는 종서의 눈과 마주쳤다. 윤성은 그만 호랑이 눈살 맞은 토끼 모양으로 전신에 힘이 빠지어 그 자리에 엎드리어 절을 하였다. 연치로 보나 지위로 보나 절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마는 그처럼 문지방을 채 넘지도 못하여서 당황하게 엎드리지는 아니하여도 좋았을 것을 하고 얼마 뒤에야 윤성은 혼자 부끄러웠다. 그처럼 종서의 눈은 무서웠던 것이다.

“자네가 힘을 쓴다지?”

이것이 종서의 첫말이었다.

“황송한 말씀이외다.”

하고 꿇어앉는 윤성의 망건 편자에 땀방울이 맺히었다.

이때에 종서이 어깨에 매달려서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만동(萬同)이가 쏜살같이 윤성에게로 달려가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윤성의 왼편 따귀를 한 개 떨고는,

“이놈!”

하고 호령을 한다.

윤서은 하도 의욋 일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러나 돌째 순간에는 숨이 막히도록 분통이 가슴에 북받치어 올랐다.

“요것을 원통으로 아짝아짝 씹어버렸으면.”

하고 만동을 홀겨보고 득하고 이를 갈았다. 윤성의 이 분한 마음은 바로 그 이튿날 풀 수가 있었다. 손수 만동을 거꾸로 쳐들고 요녀석! 하고 두 다리를 잡아 찢어 죽여버렸다.

종서는 껄껄 웃으며,

“자네 이런 때에 이기는 법을 아는가.”

하고 만동은 책망도 아니하고 도리어 윤성을 가르치는 듯이 묻는다.

윤성은 분을 참노라고 침만 꿀떡꿀떡 삼키고 말이 없었다.

종서는 한 번 더 눈을 들어 윤성을 바라보더니 윤성의 낯빛이 푸르락 누르락하는 것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떡끄떡하고는 다시 벽에 걸린 활 들을 내어놓으며,

“어디 이거 T당기어 보게.”

하였다. 윤성은 분김에 한 활을 들어 힘껏 당기었다. 활짝 밟아쥐었을 때에 와지끈 소리가 나며 활이 부러지었다. 윤성은 부러진 활을 방바닥에 내어던진다.

종서는 웃으며,

“어, 과연 장사로세.”

하고 다른 활을 집어 주며,

“어디 이것도 분질러보게. 못 분지르면 벌주를 줄테고 분지르면 상으로 술을 줌세.”

하고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술을 내오라고 분부를 하였다.

윤성은 둘째 활을 받아 지그시 당기어 보았다. 윤성의 팔은 떨리고 낯에는 핏대가 섰다.

활은 거의 타원형을 이루도록 벌어지고는 다시는 꼼짝도 아니하였다. 윤성은 두 무릎을 세우고 있느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었다. 그러나 팔이 떨리고 관자놀이에 핏대만 터질 듯이 불뚝불뚝 일어설 뿐이요, 활은 그 이상 꼼짝도 아니하고 도리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 오려하였다.

마침내 윤성은 참다 못하여 활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시생 벌주먹겠습니다.”

하고 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어, 장살세.”

하고 종서는 웃었다.

종서는 사랑하는 어린 첩 도(都)림(林)나(拿)를 나오라 하여 윤성에게 술을 치라 하였다.

도림나는 종서가 야화라고도 부른다.

야화란 두만강(豆滿江)가에서 생장한 야인(野人)외추장(酋長) 외딸로서 함길도 절제사 이징옥(咸吉道節制使 李澄玉)이가 야인과 싸울 때에 포로로 잡아온 것을 윤성이가 꺽으려던 활과 함께 자기의 은인 되는 김종서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야인의 딸이요, 둘에서 주워 왔다 하여야화라고 종서 스스로 부르거니와 절재(節齎)가 애첩을 두었다는 말은 당시 여러 사람의 호기심을 일으키었고 근엄을 숭상하는 선비들에게는 일국의 재상으로 하지 못할 일이라는 비난도 받았던 것이다.

야화는 술을 쳐서 윤성에게 권하였다. 윤성도 야화의 말은 들었던 터이라 감히 정시는 못 하더라도 술을 마시노라고 고개를 드는 체하고 두세 번 야화를 바라보았다. 그 눈같이 흰 살 칠같이 검은 눈 주홍으로 그은 , , 듯한 입---윤성은 뼈가 저림을 깨달았다. 일이 성사가 되어 종서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종서의 집과 처첩을 직물(織物)할 때에 첫째로 만동(萬同)이놈을 찢어 죽이고 둘째로 야화를 첩으로 데려오리라 하였다.

“얘 장사가 작은 잔으로야 양에 차겠느냐. 네 주발을 갖다가 열잔만 가뜩 가뜩 권하여라.”

종서는 이 모양으로 홍 윤성에게 술을 권하고 기뻐하였다.

윤성도 사양 아니하고 주는 술과 안주를 다 받아 먹었다.

“어, 장사다!”

하고 종서는 한 번 더 윤성을 칭찬하였다.

윤성은 종서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왔다고 하였으나 아무 말도 아니하고 가버렸다. 종서도 그런 말에는 관심도 아니하는 듯 그저 윤성이가장사인 것만 무수히 칭찬하고 돌려보내었다. 어린 첩 야화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한다는 것은 극히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가 아니고는 아니하는 일이다. 종서는 윤성을 극히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로 대접하였던 것이다.

“거, 숭한 일입니다. 그녀석이 아버지한테 긴히 여쭐 말이 있다고 하더니 아무 말도 아 니하고 가지 않았음니까? 그런 줄 알았더면 그 놈을 없애버릴걸 그랬습니다.”

하고 햅실에서 가만히 엿듣고 있던 승(承)규(珪)가 분히 여기었다.

“네가 윤성이를 없앨 근력이 있더냐. 이것 봐라 이 야인의 활을 대ㄴ에 분질렀어. 이 거는 못 분지르더라마는.”

하고 종서는 윤성이가 분지른 활을 물어 승규를 보인다.

“그놈만 못해요? 그놈이 못 분질렀다는 것을 제가 분질러 보겠습니다.”

하고 승규는 분개하였다.

종서는 쾌히 윤성이가 가까스로 밟던 활을 승규에게 내어주며,

“어디 분질러 보아라!”

하고 소리치었다.

승규는 활을 아버지에게서 받아서 두어번 퉁퉁 줄을 울려 보고 어깨를 슬쩍 뒤로 제치며 활짝 밟았다. 원형이 되고 타원형이 되고 마침내 탕 소리가 내고 활 시위가 끊어지고 요란한 소리를 내어 활둥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야화는 놀라서 한참 동안은 눈이 움직이지를 아니 하였다. 이 활은 야화의 고향에서도 강하기로 유명한 활이다. 이 활으 ㄹ밟기만 하여도 힘 있다 하거든 하물며 양의 창자로 한 활 시위를 끊는 이는 야화의 아버지 밖에 없었다.

종서는 너무도장쾌하여 파안 일소하며,

“집안에 장사를 두고도 내가 몰랐구나?”

하고 야화를 돌아보며,

“인제도 우리 조선에 장사가 없다고 하느냐.”

하고 술을 내오라 하여 승규에게 상으로 석 잔을 주었다.

야화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종서는 한량없다. 그러나 김종서가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야인을 치는 통에 두 영웅은 조그마한 사사 원협을 버리고 서로 화친하여 동맹군을 이루어서 조선 군사를 막아내었다. 그때에는 야화와 우발라는 아직도 젖 떨어진지 얼마 아니 되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이 두 영웅이 중심이 되어야인들이 큰 단결을 이루어 죽기로써 저항하기 때문에 김종서도 두만강 저쪽에 건너가기를 중지하고 때문에 김종서도 두만강 저쪽에 건너가기를 중지하고 이쪽에나 야인이 더 침입하지 못하도록 육진(六鎭)을 두고 성을 쌓고 돌아온 것이다.

그 후 십 년간 조선과 야인 사이에는 평화가 계속하였다. 조선 군사도 두만강을 건너가지 아니하고 야인도 감히 조선 지경으로 건너오지 아니하였다. 그동안에 우발라와 야화는 평화로운 속에서 모락모락 자라났다.

그러나 야인들은 조선을 믿지 아니하였다. 김 종서는 서울로 가버리었으나 김 종서 대신으로 절제사가 되어 온 이징옥(李澄玉)은 야인들이 보기에 김종서만 못지아니한 영웅이었다.

그래서 야인들은 말없이 자제들에게 말타기와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를 가르치고 언제든지 조선 군사가 쳐들어오거든 막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인의 젊은 사람들은 대개 조선 군사의 손에 죽은 자의 아들이나 동생이나 조카였다. 그들은 살아 남은 어른들에게 조선 군사에게 오래 지키고 살던 고국 강도를 빼앗기고 여러 번 싸움에 김 종서 군사에게 도륙을 당하던 말을 듣고는 언제나 한 번 조선에 원수를 갚는가 하고 이를 갈고 두만강 남쪽을 노려보았다. 우발라도 그런 젊은 사람 중에 하나다.

우발라의 아버지와 야화의 아버지는 더욱 맹세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우발라와 야화와 서로 혼인하기를 약속하였다. 우발라를 모르는 처녀는 있고 야화를 모르는 총각은 있었으랴.

이를테면 가장 잘난 왕자와 가장 아름다운 왕녀와 결혼을 하는 셈이었다.

일년 농사도 다 끝나서 벌판에 술 취한 늙은이 모양으로 고개 숙인 수수도다 걷어들이고 멧가에 콩 먹어 기름진 꿩들이 길 때에 서늘하고 달 밝은 날을 받아 우발라와 야화의 혼인 잔치를 한다 하여 두 부락에서는 큰 명절이 두 개나 세 개가 한꺼번에 닥친 것처럼 술이야 떡이야, 잔치에 쓸 날짐승, 길짐승의 사냥이야 하고 법석들이 났었다.

“인제 다섯 밤 남고.”

“인제 세밤 남고.”

이 모양으로 손꼽아 그날을 기다린 것은 야화의 뛰는 가슴만이 아니었다. 그날에 밤이 맞도록 좋은 술, 좋은 떡, 좋은 고기, 마냥으로 먹고 마시고 북 치고, 제금 치고 처녀들 총각들이 엉클어지어 춤을 출 것을 생각하면 팔다리 못 쓰는 늙은이와 병신들까지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야화는 지금도 혼자 가만히 앉았노라면 생각이 난다.--- 그날 밤에 달도 밝았거니. 달이 너무 밝아서 향내 나는 화롯불도 빛이 없었다. 야화 집 넓은 마당에는 온부락의 남녀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며 밤이 깊는 줄을 모르고 즐기었다.

신랑인 우발라는 그날 따라 더욱 씩씩하고 아름다웠다. 신랑과 신부는 기쁨과 부끄러움으로 야인 풍속대로 교배를 마치고, 신랑,신부가 첫날의 즐거움을 누릴 신방에는 쌍촛불이 커 지어 신랑, 신부가 들어오기를 기다리었다.

그러나 이때에 밖으로부터 난데없는 고함 소리가 진동하였다. ‘조선 군사야! 조선 군사 야!’하고 외치고 우짖는 소리가 들렸다. 즐겁던 연락은 갑자기 수라장으로 이루어버리었다. 술 마시고 춤추고 노닐던 야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칼과 활을 들고 조선 군사와 싸우려고 나섰다.

야화의 아버지와 이날에 아들을 데리고 왔던 우발라의 아버지도 곧 무장을 하고 말 고삐를 잡았다.

“너희들은 아직 몸을 피하여라. 오늘 밤에는 큰 화단이 올 듯 싶으니 너희마저 죽어서야 되겠느냐. 너흴랑 먼 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언제든지 조선놈의 원수를 갚아라.”

하고 야화의 아버지 독목한(禿木汗)은 사위와 딸을 향하여 자애가 가득한 늙은 눈에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야화는 백전백승하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우발라의 아버지 몽극도 도 독목한과(蒙克圖) 같은 말로 아들과 며느리더러 피신하기를 명하였다.

그러나 우발라는 굳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징옥이놈의 간을 내어 들고야 돌아 오겠습니다.”

하고는 아버지와 야화를 한 번 바라보고 말에 올랐다. 그의 눈은 샛별과 같이 빛났다.

밖으로서는 점점 더 고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아버지 두 사람도 젊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말을 달려 나갔다. 야화도 다른 여인들과 함께 문을 굳이 닫고 숨었다.

이날 밤에 야인은 조선 군사에게 거의 몰살을 당하고 야인 부락은 전부 노략을 당하였다.

남자는 눈에 띄는 대로 죽여버리고 젊은 계집만 모두 팔을 묶어서 두만강으로 끌고 건넜다.

야화도 삼백여 명 다른 여자들과 같이 이통에 조선 군중으로 포로가 되어 붙들려 갔다.

그래서 나이와 용모를 따라 혹은 장수의 첩이 되고, 혹은 졸병의 아내가 되고 그만도 못한 것들은 종이 되었다.

야화도 이징옥의 눈에 들어 김종서에게 선물첩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야화는 그 아버지와 남편이던 우발라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어떤 때에는 죽었으려니 하고 울고, 어떤 때에는 살았으려니 하고 혹시 금생에 만날 때나 있을까 하고 멀리 북방을 바라본다.

그러나 야화는 일찍 이런 말을 아무에게도 한 일이 없었다. 그의 슬픔은 오직 그가 혼자만 아는 슬픔이었다.

“내가 죽거든 젊은 남편 얻어 가거라.”

이렇게 종서는 야화를 위로하였다. 그것은 종서가 야화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인 것 같았다.

홍 윤성이가 돌아간 뒤에 종서는 이상하게 비감함을 깨달았다. 청춘의 기운참을 보고 자기의 노쇠함을 슬퍼함인가, 그것도 있었다. 야화가 윤성과 승규의 힘쓰고 남아다움을 유심히 봄을 본 때에 질투에 가까운 일종의 불쾌를 느낌인가, 그것도 있었다. 시국의 뒤숭숭함을 혼자 힘으로 수습하기 어려움을 한탄함인가, 그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만 아니요, 무엇인지 형언할 수 없는 비감이었다.

“야화야, 오늘 하루 나를 즐겁게 해다고.”

하고 늙은 소나무 가지와 같은 손을 내어 밀어 부드럽고 흰 야화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이렇게 종서는 야화더러 술을 치라 하여 평일보다도 술을 많이 마시었다. 그리고는 평일 보다도 더욱 다정하게 은근하게 야화를 어루만지었다. 벌써 방 안이 어두워 야화의 얼굴이 취한 종서의 늙은 눈에 어른어른 컸다 작았다 하게 되었건마는 불을 켜려고도 아니하였다.

야화는 종서를 모신 지 반년이 넘어도 아직까지 이처럼 종서가 취태를 부리는 양을 보지 못하였다. 아무리 술을 먹어도 눕거나 기대는 일이 없고 야화를 보고도 취담을 하는 일도 별로 없었거든 오늘은 야화의 무릎을 베고 허리를 안고 손을 잡고 취담을 하였다.

바로 저녁상을 받았을 때에 문 밖에 인기척이 있는 것을 보고 야화가,

“누가 왔나보아요.”

할 때에 비로소 종서는 야화의 무릎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아버지.”

승규는 아버지가 야화와 같이 있는 줄을 알고 밖에서 두어 소리 불렀다. 승규의 마음에도 늙은 아버지의 심사가 퍽 처량하였다. 인력으로 할 수만 있으면 야화의 마음을 움직이어서 좀 더 정성스럽게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새가 있을까 하고 승규는 한숨을 한번 쉬고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었다.

“오, 왜 그러느냐?”

하는 종서의 소리가 어두운 방에서 들린다.

“아버지, 수양 대군이 오시었습니다.”

“무엇이? 누가 왔어?”

하고 종서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안평 대군은 여러 번 찾아왔지마는 수양 대군은 올 까닭이 없는 것이다.

“수양 대군이 오시었습니다.”

하고 승규는 창 밖으로 더 가까이 온다.

“수양 대군이 오시었어? 안평 대군이 아니요, 수양 대군이?”

하고 종서는 승규더러 방으로 들어오라 하였다.

“수양 대군이야요. 대궐에서 나오는 길인지 관복을 입고 오시었어요. 웬 수상한 놈을 이 삼인 데리고 왔습니다. 모두 눈망울하고 험상스런 놈들입니다. 사랑으로 들어오시라고 하여 도 날이 저물었으니 들어갈 새는 없다고, 아버지께 무슨 긴급히 하실 말씀이 있으니 잠간만 밖으로 나오시라고…… 어째 모두 행동이 수상합니다. 아까 윤성잉놈 왔던 것하고 다 수상 하니 아버지 오늘 조심하셔요.”

하고 승규는 야화와 함께 종서에게 관복을 입힌다.

“그, 왜 오시었을꼬. 그래 무슨 일이라고는 말이 없더냐?”

하고 저녁상도 밀어 놓고 승규의 부액을 받아 종서는 안중문을 나서서 대문 안 넓은 마당으로 나왔다.

바깥은 아직 그처럼 어둡지는 아니하였다. 수양 대군은 양정, 유수, 임운을 뒤세우고 우두커니 대문 안에 서 있었다.

종서는 국궁하여 수양 대군에게 예하고 수양 대군은 읍하여 대신에게 답례하였다.

종서의 좌우에는 승규와 신 사면, 윤광은이 옹위하고 서서 마치 서로 대진한 것 같았다.

“나으리가 이렇게 누옥에 왕림하시니 소인의 생광이 비길 데 없사외다. 대단 황송하오나 잠간들어오시지요.”

하고 종서가 수양 대군을 사랑으로 인도하려 하나 수양 대군은 손을 흔들어 막고,

“이렇게 늦게 찾아 미안하오. 날이 저물어 성문을 닫을 때가 되었으니 들어 앉을 수는 없소. 어, 대감 집 좋으시오. 집은 후일 와서 다시 보려니와 잠간 대감에게 물어 볼 말이 있어서 왔소. 아니 여기 서서 한 마디만 물어 보면 고만이요.”

하고 수양 대군은 어째 말이 두서를 잃었다.

종서가 굳이 권하는 것을 아기지 못하여 사랑 마당에까지 들어왔으나 방에는 들어오지 아 니하고 수양 대군은 겨우 말머리를 찾는 듯이,

“그, 저, 영응부인(永膺夫人)일 말이요. 영응 부인이 동래온정(東來溫井)에 갔다고 해서 종 부사(宗婦寺)에서 말들이 되는 모양인데 대감의향은 어떠시오?”

하고 좀 싱거운 듯이 승규와 좌우에 선 사람들을 바라본다.

영응대군(永膺大君)은 세종 대왕의 아드님 팔 대군 중에 끝의 아드님이요, 또 가장 사랑하던 아드님이다. 영응대군의 부인 송씨가 성태를 못한다 하여 나인을 데리고 동래 온정에 목욕을 갔다고 해서 대간 이 시비를(臺諫) 일으킨 것이 바로 이때이기 때문에 수양 대군이 이 일로 나온 것처럼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수양 대군이 이 일만으로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김종서는 대답할 바를 알지 못하여 잠간 머뭇머뭇하였다.

수양 대군도 자기 말이 우스운 듯하여,

“그래, 마침 궐내에서 그 말이 났기로 대감의 의향을 먼저 듣는 것이 옳을 듯 싶어서 나오는 길에 잠간 들르노라고 이렇게 늦었소이다.”

하여 자기의 말을 증거하는 모양으로 관복과 사모를 만진다.애초에 수양 대군은 부인이 중문까지 내다가 입히는 투구, 갑옷에 활을 들고 말을 타고 궁을 떠나려 하였으나 한 명회의 말을 따라 홍 윤성이가, 김 종서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을 탐지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종서의 집에 여러 사람이 없는 것과 종서가 오늘에 무슨 일 있을 것을 짐작 못하는 모양이라는 보고를 듣고 군복을 벗고 관복을 입고 갔던 것이다. 군복을 입고 가면 노상에서 수상히 알뿐더러 김 종서의 집에서도 반드시 의심을 더욱 깊이하여 방비를 하게 할 것인즉 방금 궐내에서 나온 모양으로 차리는 것이 가장 그런 듯하다고 명회가 아뢴 것이다.

수양 대군은 손을 들어 사모를 바로 쓰려는 듯이 뒤통수를 만지는 서슬에 오른 편 사모뿔에 꽂은 대목이 부러지어 땅에 떨어지었다.

“아차, 이게 웬 일인고? 이게 왜 부러진단 말인고. 어고이한 일이로군.”

하고, 수양 대군은 부러진 사모뿔을 손에 들고 흔들었다.

기실 고이할 것은 조금도 없다. 이것이 다 한명회가 수양 대군에게 준 꾀다. 만일 승규가 종서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거든 사모뿔을 멀어뜨리라, 그리하면 반드시 종서가 승규를 시키어 가져오게 하리라, 이렇게 꾀를 정한 것이다. 승규가 종서의 곁에 있고는 비록 양정, 유수, 임운이 합력을 하더라도 종서를 당하기 어려울 줄 안 것이다.

종서는 무론 그 꾀를 알았을 리가 없다. 그렇지마는 왕자(王子)가 내 집에서 사모뿔을 분지렀으니 일각이라도 주저할 수가 없어서 곧 자기의 것을 매어서,

“그게, 원, 웬일입니까. 엇습니다. 황송하오나 이것을 꽂으시겨오.”

하고 두 손으로 수양 대군에게 드리었다.

수양 대군은 계교가 틀어짐을 보았다. 이렇게 종서가 제 머리에 꽂았던 것을 빼어 주면 승규는 곁을 떠나지 않고 말모양이니 이래서는 아니 될 것이다.

수양 대군은 종서가 받들어 드리는 사모뿔을 받아 들고,

“그 원, 미안하외다.”

하며 사모에 꽂아 보더니,

“허, 이것이 맞지를 않는군 좀 굵은 걸. 원, 들어가야지.”

하고 아무리 꽂으려 하여도 아니 꽂아지는 모양으로 얼굴을 찡그린다.

종서는 이 광경을 보고,

“얘, 네 들어가서 다른 것을 하나 내다 드려라. 원, 그게 왜 그리 굵단 말인고.”

하고 종서는 수양 대군의 손에서 자기의 사모뿔을 받아들고 원망스러운 듯이 끝을 만진다.

승규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지금 자기가 아버지의 곁을 떠나는 것을 마치 아버지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듯하였다.

‘사모뿔이면 다 마찬가지지. 그렇게 굵어서 안 들어가는 법이 어디 있담.’ 하고 승규는 수양 대군과 그 좌우에 모시고 섰는 불량한 작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아버지 말을 못 들은 듯이 발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고 곁에 있는 신 사면, 윤광은 두 사람을 눈질하여 바라보았다.

종서는 승규가 자저하는 양을 보고 그 뜻을 모름이 아니나 이러한 경우에라도 안 돌아보지 못할 것은 체면이다 더구나 아비의 명령이. 아들에게 시행되지 않는단 말은 죽을지언정 차마 듣지 못할 것이다.

“어서 내어다가 드리려무나. 있는 대로 여러 개를 가져오너라. 그중에는 맞는 것도 있겠지.”

하고 종서는 승규를 재촉하였다.

승규는 심히 난처한 경우를 당하였다. 수양 대군이 온 것이 결코 심상한 일이 아니다.아까 윤성이가 다녀간 것이나 또 지금 수양 대군이 불량하게 생긴 위인을 데리고 와서 들어앉지도 아니하고 게다가 사모뿔을 분지로는 것이나 어느 것이 수상치 아니한 것이 없다.

그러나 부명을 어길 수가 없다. 승규는 사면, 광은 두 사람에게 한 번 더 뜻 있는 눈을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면, 광은 두 사람은 승규의 뜻이 자기네더러 종서의 곁을 떠나지 말라는 것임을 알고 전보다 한 걸음을 다가들어 종서를 옹위하고 섰다.

“글쎄외다. 영웅 대군 부인이 동래 온정에 가신 일은 소인도 들었소이다마는 종실 일이니까 정부에서 마음대로 처단할 수도 없어서 그렇지 아니하여도 나으리께 여쭈려고 하였습니 다.”

하고 종서는 잠시 대답할 기회를 놓지 아니하려는 듯이 말한다.

이러는 동안에도 수양 대군은 연해 기회를 엿본다. 승규가 도로 나오기 전에 해버려야 할 텐데 종서가 그 샛별같은 눈으로 자기의 눈을 마주보는 동안에는 아무리 효용무쌍하다는 수양 대군으로도 수족을 눌릴 수가 없었다. 그처럼 종서의 안광은 사람의 폐부르 꿰뚫는 듯하고 겸하여 그 눈은 매 눈과 사람의 폐부를 꿰뚫는 듯하고 겸하여 그 눈은 매 눈과 같이 잠시도 방심함이 없이 사방을 살피는 듯하였다. 수양 대군은 일생에 이때처럼 어떤 사람의 위엄에 눌려 본 일이 없었다. 저번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는 코끼리들이 수양 대군의 위엄에 눌리어 일제히 부릎을 꿇었다 하거니와 그처럼 위풍이 늠름한 수양 대군도 김종서의 안관에는 헤아릴 수 없는 무거운 무엇으로 내려 눌리는 듯한 압박을 깨달았다.

그 압박은 다만 종서의 안광과 위풍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옳지 못한 것이 옳은 것을 대할 때에 당하는 꿀림이 수양 대군을 겁하게 한 것도 적지 아니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죄 없는 사람---지극히 옳은 사람을 해하러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수양 대군의 마음 속에 번개같이 지나갈 때에는 수양 대군의 등골에 식은 땀이 쭉쭉 흘렀다.

‘대사에, 대사에.’ 하고 수양 대군은 구부러지려는 마음의 허리를 억지로 펴고 신 사면, 윤광은을 향하여,

“대감께 은밀히 할 말이 있으니 자네네들은 잠간 저리로 가게.”

하고 최후의 결심을 하였다.

신, 윤양인은 할 수 없이 물러섰으나 서너 걸음 밖에 더 물러서지 아니하고 우뚝 섰다.

수양 대군은 소매에서 편지 한 장을 내어 종서 앞에 내이밀며,

“여기 편지 한 장이 있으니 이것을 좀 보아 주시오.”

한다.

“그건 무슨 편지오니까?”

하고 종서가 받아 드는 것을 보고 수양 대군은,

“보시면 자연 알지요. 대감께 오는 편지면 청하는 편지 밖에 있겠소?”

하고 껄껄 웃는다.

수양 대군의 우렁찬 웃음 소리는 고요한 밤을 흔든다.

종서는 의심없이 편지를 떼어 달빛에 비치어 읽었다. 시원 초 열흘 달빛은 촛불에지지 않게 밝았다. 왼편으로 돌린 종서의 얼굴에 찬 달빛이 가득히 차고 사모 테가 번쩍번쩍하였다. 실로 갸륵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수양 대군은 달빛에 비치인 종서의 모양의 아름다움을 완상할 여유가 없었다. 수 양 대군은 오른 손을 들었다. 이것은 군호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오른 손을 드는 것을 보고 임운(林芸)은 옷 속에 숨기었던 철여의(鐵如意)를 뽑아 번개같이 김종서(金宗瑞)의 뒤통수를 내려 갈기었다.

김종서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가리우려 하였으나 임운이 둘째번 치는 바람에 사 모 아울러 머리가 갈라지어 붉은 피를 쏟고,

“나으리, 이런 법이 없소.”

하며 수양 대군을 한 번 흘겨보고는 땅에 거꾸러진다.

임운은 한 발로 종서의 허리를 밟고 동과 머리를 난타할 때에 승규가 안으로 뛰어 나왔다.

승규가 나오는 길로 손을 들어 임운의 목덜미를 잡아 한 번 내어두르니 땅바닥에 코를 박고 서너 걸음이나 미끄러진다.

“이놈!”

하고 승규의 발이 한 번 번쩍 들리었다가 임운의 등을 밟을 때에 임운은 쿵 하는 한 소리와 함께 피거품을 부구국물고는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러는 동안에 신사면(辛思勉), 윤광은(尹匡殷)은 양정(楊汀)과 유수(柳洙)에게 모두 허리가 두 동강이 나서 죽어버리었다. 유수는 꿈지럭거리고 일어나려 하는 김종서를 마저 죽여버리려고 달려들 때에 승규는 임운을 버리고 임 운의 손에 들리었던 철여의를 들고 유수를 엄습하였다.

“역적놈아. 너도 고 자리에 꼼짝 말고 가만히 섰어! 하늘이 무심하지 아니한 줄을 알아라.!”

하고 한번 수양 대군을 흘겨 보고는 승규는 대드는 유수의 칼을 슬쩍 몸을 비키어 피하는 서슬에 철여의를 들어 유수의 칼든 팔을 갈기니 어깻죽지 바로 밑에서 유수의 팔이 부러 지어 축 늘어지고 칼은 소리를 내고 땅바닥에 떨어진다.

승규와 유수가 겨루는 틈을 타서 양정은 종서를 엄습한다. 승규가 유수의 팔을 분지른 때는 바로 양정의 칼이 종서의 목을 향하고 내려오는 때다. 승규는 오직 한 길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길을 취하였다---그것은 몸으로 아버지를 덮는 것이다.

승규는 손에 들었던 철여의를 양정을 향하여 내어던지고 몸으로 종서의 몸을 엎으며,

“이 역적놈아. 내가 죽어서라도 너를 그냥 두지는 아니하리라.”

하고 말이 끝나기 전에 양정의 칼이승규의 허리를 잘라버리었다. 이 역적놈아 하고 승규가 원수 갚기를 맹세한 것은 수양 대군이었다.

승규의 독이 오른 상모와 말에 수양 대군도 잠간 몸에 소름이 끼치었다. 그러나 양 정의 칼이승규를 마저 죽여버림을 볼 때에 수양 대군은 만족한 웃음을 빙그레 웃었다. 김 ㅈ오서, 김 승규, 신사면, 윤광은 외 시체가 피에 떠서 가로 세로 넘어지고 유 수도 한 팔이 부러 직 옆고리를 승규에게 채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도 없이 비비 꼬고 꿈틀거리는 양을 한 번 더 돌려보고는,

“어, 되었네. 가세.”

하고 수양 대군은 몸을 날려 말에 오른다. 하얀 관복 자락이 달빛에 펄렁한다.

양정은 승규의 옷자락에 두어 번 칼에 묻은 피를 씻어 칼집에 꽂고 수양 대군의 뒤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황망히 말게 올라 말발굽소리를 내며 대문으로 나간다.

“나를 어찌하고 나들 가오?”

하는 유수의 죽어가는 소리가 수양 대군의 귀에 들리었다. 대사를 앞에 두고 팔 부러진 유 수 따위 하날를 위하여 무서운 곳에서 어름 더듬할 수는 없었다. 양 정은 유수를 두고 가는 것이 좀 더 마으에 걸리었지마는 이 판에 잠시라도 수양 대군을 떨어지었다가는 전공이 가석되고 말는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대문을 향하고 말을 달리었다.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

사람 죽인 자들이 달아난지 이슥한 뒤에야 종서 집 노복들의 빠지었던 혼들이 다시 돌아 와서 혹은 마루 밑에서, 혹은 아궁이 속에서 엉기엉기 기어나왔다. 그제야 온 식구들이 무 슨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다. 그러고도 벼락맞은 사람들 모양으로 얼마 동안 어안이 벙벙하였다.

맨 먼저 종서의 시체 곁에 달려온 것은 야화라는 도림나(都林拿)였다.

종서 부자가 수양 대군의 손에 참살을 당하였다는 말을 들은 종서의 가족들은 오직 입을 벌리고 덜덜 떨뿐이요, 말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였다. 아이들까지도 꼼짝 아니하고 어른이 하는 양만 보았다. 오직 종서의 맏아들인 승벽(承璧)의 맏아들 석대(石臺)가 열 여덟 살이어서 이 모든 일의 뜻을 아는 듯 싶었다. 석대는 곧 편지를 TJㅓ 해주에 감사로 가 있는 아버지 승벽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었다.

부인네들이 모두 덜덜 떠느 판에 오직 하나 태연히 중문으로 튀어나온 것은 야화다. 그는 고국에 있는 동안에 친족과 이웃 사람이 전장에서 죽는 것을 여러 번 보았고, 그뿐더러 자기의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편이 죽으러 나가는 양을 목격한 사람인 까닭에 아무리 무서운 일을 당하여도 눈썹 한 대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야화의 뒤를 따라 야화의 시비가 따르고 다시 그 뒤에 승규의 부인이 따랐다. 이 광경을 보고는 집에 있는 모든 식구와 비복들이 모두 황황하게 뒤를 따랐다.

야화는 종서의 가슴 위에 얹힌 승규의 시체를 손수 제치어 놓았다. 야인의 딸인 야화에게는 그만한 힘과 용기가 있는 것이다.그러고 치맛자락으로 종서의 얼굴의 피를 씻었다. 종서의 얼굴에는 종서의 머리에서 흐른 피와 승규의 목과 허리에서 뿜은 피가 엉기어 달빛에 번 쩍거리었다. 야화의 치맛자락이 한참이나왔다갔다 한 뒤에야 종서의 눈과 코와 입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한 뒤에야화는 손을 종서의 코에 대었다. 숨이 없는 듯하다. 얼른 종서의 앞가슴을 ㅎ치고 왼편 젖가슴에 귀를 대어 본다. 심장 뛰는 소리가 아주 죽지는 아니한 모양이다. 야화는 다시 종서의 코에 손을 대어본다. 숨도 있다!

야화는 물을 가져오라고 외치고 종서의 몸을 안으로 옮기라고 소리질렀다. 사람들은 야화 가 명하는 대로 하였다.

야화는 시비가 떠온 냉수를 종서의 얼굴에 끼얹었다. 소식이 없다. 두 번째 끼얹었다. 그제는 종서가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기운없이 도로 감았다. 야화가 눈에 띄었을 것은 말할 것 없다.

종서가 눈을 번쩍 뜨는 것을 보고 야화는 놀라는 듯이 뒤로 물러 앉았다.

종서는 야화의 원수다. 야화 개인의 원수는 아니나 야화의 동족인 야인 전체이 원수다.

종서만 아니더면 야인들은 수백 년 누리던 옛 땅을 도로 빼앗기지 아니하고 수만 명 목숨이 전장에서 쓰러지지 아니하였을 것이요, 이징옥(李澄玉)이가 두만강에 오지 아니하였을 것이요,이징옥이가 아니 왔더면 자기의 아버지와 남편과(그들이 살았나? 죽었나?) 동족들이 그처럼 악착한 살해를 당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김 종서는 도림나의 원수 다.

도림나의 딸들은 원수 갚을 의무가 있다. 혹은 부모를 위하여, 혹은 형제를 위하여, 혹은 남편을 위하여 원수 갚을 의무가 있다. 만일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좋은 곳을 가지 못하고, 혹은 짐승으로도 태어나고 혹은 벌레로 태어나서 천 만 겁을 지나더라도 그 원수를 갚고야 갈 데로 가는 것이다---이렇게 야인의 딸들은 생각한다.

아버지와 남편이 분명히 죽었으면 야화도 이징옥에게 원수를 갚아야 한다. 김 종서에게도 원수를 갚아야 한다.

누가 김종서를 죽였다 하면 도림나에게 한 원수는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김종서는 자기가 반년간 섬기던 남편이다. 김 종서는 지나간 반년간에 자기를 극진하게 사랑하였다. 원수인 것을 잊어버리리 만큼 극진하게 사랑하였다.

그렇다 하면 야인의 법대로 야화는 김종서의 몸에 박힌 칼이나 화살을 맨 먼저 뽑아야 하고 상처에 흐르는 피를 맨 먼저 씻어야 하고 만일 아직도 숨이 남았으면 마지막 물 한 모금을 손수 떠 넣어 주어야 하고 또 이 남편의 원수도 생전에 갚아야만 하는 것이다.

야인의 딸인 야화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기 생각하는 대로 태연하게 거침없이 행한 것이다.

김종서의 하회가 어찌된 것은 뒤에 말하기로하자.

수양 대군은 김 종서 부자를 죽이고 의기 양양하여 서대문으로 말을 달리었다. 벌써 성문을 닫힐 때언마는 권람(權擥) 일파가 문 지키는 군관을 위협하여 수양 대군이 어명을 받들 고 김 정승 집에 갔다는 것을 이유로 문 닫기를 방해하고 있었다. 비록 아직 이조(李朝)의 기강(紀綱)이 해이(解弛)하지 아니한 때문이지마는 이르납 팔대군이 강성한 때라, 대군이라 하면 안 될 일도 되는 일이 많았다. 하물며 근래에 갑자기 서슬이 푸른 수양 대군이랴. 수 양 대군이 어명을 받들고 호랑이 김 정승 집으로 가시었다니 아무리 강직(剛直)하기 그지 없다는 성승(成勝)의 군사라 하더라도 수그러지지 아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양 대군의 탄 말이 서대문을 들어설 때에는 수양 대군의 의기는 마치 개선 장군의 그것과 같았다. 아까 이문을 나설 때에는 미상블 근심이 많았다. 그것은 실로 호랑이 잡으러 가는 포수의 근심이었다. 김 종서, 김 승규라는 말만 들어도 그들과 겨루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믿지 아니하던 아니 될 줄 아는 때였었다. 비록 불의에 암살하는 길이라 하더라도 까딱 잘못하면 호랑이를 잡으려던 포수는 호랑이에게 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다! 마침내 수양 대군은 큰 호랑이를 잡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 앞은 무인지경이다. 아무도 감히 수양 대군과 겨룰 놈은 없는 것이다.

‘좀 굵직굵직한 놈들은 오늘 밤으로 조처를 해버리고 좀것들은 내일 하루에 쓸어내이면 고만이지. 그러고나면 내 세상이다. 다시는 내어놓지 아니할 내 세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수양 대군은 아무리 참으려 하여도 웃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줄 인 돌이 목마른 듯이 구하는 수양 대군의 권력욕(權力慾)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근심은 김 종서 집에 누가 빠져 나가서 이 일을 황보인에게 벌써 말하지 아니하였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면 황보인은 군사를 풀어 먼저 서대문을 막고 자기를 방어할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마는 순군(巡軍)이 내 손에 있으니---이렇게 기뻤다 근심했다 하면서 수양 대군은 서대문에 다다랐다.

서대문이 환하게 열리었다!

일은 되었다!

서대문에서 기다리던 권람(權擥), 권언(權偃), 한서 귀(韓瑞龜), 한명진(韓明溍)이 수양대군을 나와 맞는다.

수양 대군은 마상에서,

“애썼네.”

한마디를 권람이하네 사람엑 던지고는 이때에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기운차게 말을 달려간다. 양 정도 네 사람을 잠간바라보고 빙긋 한번 웃고는 수양 대군의 뒤를 따랐다. 오늘의 큰 공은 내 것이다. 하는 생각이 양정으로 하여금 모에 날개가 돋히어 공중에 후러후러 날아 오르는 듯이 생각게 하였다. 여덟 말발굽 소리가 초어스름의 장안 대도를 울리며 서궐(西闕) 앞을 지나야주개를 지나 자핫골로 올라갔다.

종침교(琮琛橋) 다리에는 등불이 보였다. 점점 가까이가 보면 그것은 분명히 궁(宮)에서만 쓰는 사초롱이었다. 수양 대군 궁에서 누가 나와서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자는 한명회 (韓明澮)였다. 한 명회는 사 오인의 활 메고 창 든 무사를 데리고 자기는 중추막 백림의 예사 차림으로 마상에 올라 앉아 있었다. 그때에는 아직도 태조 건국 시대의 무풍(武風)이 많이 남아서 자혁으로 말 타는 것이 성풍하였던 것이다.

예정한 시각보다 수양 대군이 아니 돌아오는 것을 보고 명회느 적이 염려가 되어서 이처럼 나와서 기다리는 것이다. 만일에 좀 더 기다려보아도 수양 대군이 아니 돌아온다 하면 일은 패한 것이니, 그런 줄만 알면 명회는 이 길로 강원도 양양(江原道襄陽)으로 달아나려 한 것이다. 말을 탄 것은 이러한 연유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말발굽 소리요.”

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던 무사 하나가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귀를 기울였다.

과연 멀리서 들리는 다듬이 소리와 같은 소리가 야주개편으로 들리는 것도 같았다.

“이 소리도 그 소리가 아니면 큰일이다!”

이것은 다만 명회만의 근심이 아니었다.

“투드락 투드락!”

그것은 진실로 말발굽 소리였다.

달빛에 어른어른 이리로 오는 그림자가 보인다.

명회의 눈은 그 그림자에 박히었다.

“나으리시오.”

하고 한 무사가 나직한 소리로 외친다.

“나으리 같으면 네 사람일텐데.”

하고 명회가 바라본다.

분명히 수양 대군이다. 수양 대군의 흰 관복과 한편 사모뿔 없는 것까지 분명히 보인다.

수양 대군의 말은 탄 주인의 기운을 아는 듯이 네 굽을 안아 뛰었다. 성공한 기쁨으로 띔인 가, 실패하여 도망함인가. 등불 앞에서 말이 우뚝 선다.

한명회는,

“나으리!”

하고 등불빛에 비치인 수양 대군의 얼굴을 근심스러운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빙그레 웃는 낯이었다.

“그놈을 잡았네.”

하고 수양 대군은 의기양양하여,

“새끼까지 잡았네.”

하고 양정을 돌아본다.

양정은 이때로다 하는 듯이,

“그까진 놈 여남은 놈 더 있더라도 이 칼로 다 잡을 것이요.”

하고 찼던 칼을 쏙 뺀다. 칼에는 아직도 거뭇거뭇한 피가 보인다.

수양 대군은 양정의 마음을 만족케 하려고,

“오늘 수공(首功)은 양정이야.”

하고 명회를 보고 웃었다.

명회는,

“그것 보시오. 무사를 데리고가서 엄습한 것보다 일이 수월하지 아니하오니까.”

하고 자기으 계교가 맞은 것을 내어 세운다.

“암, 그렇고 말고. 자네 계교가 여합부절이야. 사모뿔 만으로 안 되어서 그 편지를 내어 주었네.”

하고 수양 대군은 명회를 기쁘게 한다.

“그래, 놈이 그 편지를 봅더니까?”

“응, 모두 자네 계교대로야. 달빛에 비추어 보데그려. 그러는 것을 임 운이가…….”

하다가 수양 대군은 이렇게 한담하고 있을 때가 아닌 줄로 불현듯 깨달은 듯, 말을 뚝 끊이었다가,

“시각이 바쁘니 자넬랑 무사들을 데리고 바로 교동(校洞)으로 가게. 나는 순청(巡廳)으로 가서 순군을 데리고 감세.”

하고 수양 대군은 말을 채치어서십자각을 향하여 달린다. 양 정이 그 뒤를 따르고 명회가 데리고 왔던 무사중에 두 사람이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수야 대군의 그림자가 아니 보이게 된 때에 명회는 달을 향하여 한 번 빙그레 웃었다 이제는 강원도 양양으로 아니가도 된다. 그의 계교는 귀신 같은 듯하였다. 명회는 자기의 계교가 하도 신통한 것을 스스로 찬탄하였다. 자기는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에지지 않는 모사라고 스스로 우러러보았다.

이렇게 요샛달로 하면 자기도취(自己陶醉)의 쾌미를 보면서 명회는 수양 대군 궁으로 말을 달렸다.

“큰일은 이제부터다. 닭 울기 전에 조선은 한 번 뒤집히는 것이다.”

하고 명회는 마상에서 손을 품 속에 넣어 깊이 간직한 조그마한 책 한 권을 만져보낟. 그 책은 생살부(生殺溥)다. 명회가 일년내 두고 꾸민 생살부다. 몇 번이나 명회는 이 생살부를 펴보고 언제나 이것을 시행할 날이 올까하고 기다리었던고. 그런데 그날이 왔다. 오늘 밤이 그 날이다. 죽을 사람의 허두에 이름이 적힌 김 종서는 벌써 죽었다. 나머지는 닭 울기 전에 끝장이 나는 것이다.

명회는 별 많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끝없이 높고 끝없이 오랜 하늘. 자하문으로 북풍이 내려 분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명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직 피흘리고 죽는 대관들의 모양---그것이 유쾌하였다. 그 대관들인 그놈들은 내게 원 한 자리 아니 준 놈들이다.

시월 십일은 왕의 누님 되는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생신이다. 왕보다 사 년 위가 되는 경혜 공주는 지금 열일곱 살이다. 공주의 남편이 영양(薴陽) 위 정종(鄭悰)인 것은 독자도 기억할 것이다 정종은 수양 대군으로 더불어. 명 나라에 가기를 겨루다가 수양 대군에게 진 사람이 아닌가.

왕은 이날을 기억하시어 영양위궁에 거동하시기로 하였다.

열 세 살 먹은 어리신 몸으로 부모도 없고 형제 자매도 없고 그러핟고 마음껏 장난을 같이 할 동무도 없는 궁중 생활은 왕에게는 지긋지긋학 멀미가 났다.

열 세살이면 항창 장난할 때가 아닌가. 내시나 궁녀들을 데리고 간혹 술래잡기도 하고 윷놀기도하며 일시 즐겁게 웃고 뛰놀 때도 있지마는 혹 늙은 신하들의 눈에나 뜨이면 ‘임금 의 몸으로 더구나 거상 중의 몸으로 그리하실 수 없습니다.’하고 매양 파흥을 시키었다. 그러 고 글만 읽으라고 아빙고를 매워 날마다 우참찬(右參贊) 정인지(鄭麟趾)가 들어와서는 보기도 싫은 좌전(左傳)을 펴놓고 제환공(齊桓公)이니 진문공(晉文公)이니 하는 이야기만 하였다. 그중에는 재미있느 이야기도 많으나 재미 없는 것, 알아듣지 못할 것이 더욱 많았다.

아무리 재미있다 하여도 궁녀 시켜 이야기책 보게 하는 데 비길 수는 없었다.

왕이 장난에 미치어 젊은 내시들과 나인들과 가댁질을 하고 즐겁게 놀 때에 김연(金衍), 한숭(韓崧) 같은 늙고 충성스러운 내신는 그것이 물이든지 흙이든지 왕의 앞에 꿇어 엎디어,

“상감 마마, 이리하실 수 없습니다.”

하고 이마를 조아리었다.

그러면 왕은 머쓱하여 장난을 그치고 같이 놀던 내시와 궁녀들은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내전으로 뛰어 들어가서 일부러 소리를 높이어 왱왱 글을 외었다.

글을 싫어하심은 아니었다. 아직 나이 어리시지마는 오언(五言), 칠언(七言)으로 고풍(古風)은 물론이어니와 절귀(絶句) 같은 것도 지으시어 여러 문신(文臣)들의 찬탄을 받았다. 그렇지마는 글도 잠시 잠시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은 장난이었다.

파조(罷朝) 후에 왕은 지긋지긋한 늙은이들의 이야기판을 벗어난 것만 기뻐서 편전(便殿)으로 나오시어서는,

“누가 윷 안 노느냐. 나고 놀자. 나를 이기거든 상주마.”

하고 나인들을 부르신다.

그러면 나인들은 왕을 기쁘시게 하노라고 나도 하고 왕의 앞에 가서 앉는다.

“상감마마께오서 지시면 상을 주시러니와 소인이 지면 어찌하오리까?”

하고 나인이 웃으며 묻는다.

“네가 지면 이야기를 하나 하여라.”

“이야기를 있는 댈 다 상감께 아뢰었으니 어디 남은 것이 있습니까.”

“아따, 그러면 이야기책이라도 보려무나.”

이리하여 윷판이 벌어지면 저녁 수라가 오를 때까지 희희낙락한다.

이런 줄을 또 어떻게 듣고 정인지나 기타 명나라 사람 다 된, 어진 체하는 노신들이 절반 이상이나 한문 문자를 섞어가며,

“전하께서는 일방의 인군이 되시었으니 소의 간식(宵衣肝食)하시옵고, 여한이 있으시옵거든 성경현전(聖經賢傳)이나 상고하실 것이요, 내시나 궁녀로 더불어 희롱하심이 만만 불가 하시외다.”

하고 말썽을 하면 왕은 어떤 때에는 시끄러운 듯이,

“나도 그런 줄 아오마는 편전에서 좀 놀기로 어떻소.”

하시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때에는 맨 먼저 생각되는 것이 누님되는 경혜공주다. 교동(校洞) 영양위 궁에만 가면 아주는 마음을 놓지 못하여도 궁중보다는 적dl 마음을 놓고눌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동기와 한 자리에 모여 왕이 영양위 궁에 거동하시는 때면 반성(班城)위 강자순(姜子順)에게 하가(下嫁)한 수칙양씨(守則楊氏)의 몸에 난 경숙옹주(敬肅翁主)도 반드시 영양위 궁으로 온다--- 노니는 것이 어린 왕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하물며 이날은 겅혜 공주의 생신까지 되니 왕의 기쁨이야 비할 데가 없었다.

왕은 경혜 공주의 생신을 벼르고 별러 이날(시월 십일)파조 후에 영양위 궁으로 거동을 납시었다.

왕의 성미가 원체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미북으로 남녀(藍輿)를 타고 다니시기를 원하여 그렇게 하기도 명번 하였지마는 대간(臺諫)이 그 불가함을 누누이 말한 뒤로는 그렇게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미행(微行)은 있었다.

대간이 이렇게 왕의 미행을 불가하다 한 것은 무론 옳은 줄 알고,

“지도(知道).”

라고 매양 전교를 내리시었다.

그러나 대간이 왕의 미행을 그렇게도 성화하게, 더구나 근래에 와서 불가하다고 상소질을 하고 말썽을 부리는 데는 반드시 그렇게 충성된 동기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왕이 누님 되는 경혜 공주와 영양위를 사랑하시고 임하시는 줄을 알므로 왕ㅇ게 가까이 하려는 자, 왕에게 무슨 뜻을 통하려는 자들은 많이 교동 영양위 궁에 출입하였다. 그래서 영양위는 공주 부마라는 것 밖에 아무 경력도 없는 연쳔한 사람이언마는 당시 정계에 일종의 세력을 이루었다. 영양위가 북경에 가려다가 못 간 것이 반드시 그 세력을 감하지도 아니하였다.

왕은 아직도 어리시지 아니하냐, 비록 이씨 계통이 수를 못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삼사십 년은 왕으로 계실 터이요, 이 양반이 왕으로 계신 동안에는 영양위 궁 세도는 떨어질 리가 없을 듯하였던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왕을 위하는 좋은 동기로나 자기의 벼슬 다리 올라가기를 위하는 개인직 동기로나 왕께 가까이 하려는 자도 먼저 영양위 궁에 출입하였던 것이다.

이리되면 자연 영양위 궁에 가까운 패와 가깝지 못한 패가 생기는 것이요, 그리되면 세력 있는 곳에 가깝지 못한 패는 가까운 패를 시기하는 것이 인정이다. 저도 가까이 하고 싶건마는 그러할 계제가 되지 못할 때에 가이할 계제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잡아먹도록 미운 것이다.

이 미운 무리들을 없이하는 한 방편으로 왕이 영양위궁에 가시지 못하게 하려 하는 것도 간판 중에 어떠한 사람의 동기는 되었던 것이다. 차라리 그 편이 많았을는지도 모른다. ‘영 양위에 자주 거동하시는 것이 옳지 아니하외다.’할 수는 없으니 예(禮)에 djEJㅏ니, 선왕 지법(先王之法)에 어떠하니 하여서 왕이 대궐을 떠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일반론을 첫 조건으로 하고 만일 부득이 거동을 하실 때면 반드시 왕의 위의(威儀)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둘째 조건으로 하고어리신 왕을 성가시게 하므로소기한 목적을 달하려 한 것이다.

이리하여 왕이 영양위 궁에 가시는 것을 아주 막을 도리는 없었으나 심히 불편하게는 만들었다. 내시와 나인들 중에도 왕이 영양위 궁에 내왕하시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이와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의 두 편으로 갈리게 되어 좋지 않게 생각하는 편은 가끔 왕께,

“상감께 아뢰오. 그렇게 자주 민가(民家)에 거동하시는 것이 옳지 아니하외다.

하고 간(諫)하는 자가 있으면,

“구찮다. 너희들까지 나를 못견디게 구느냐. 내가 하는 일이 옳지 않거든 너희가 물러나가 서 보지를 말려무나!”

하고 왕이 발연 변색하여 책망하시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나 하지 아니하면 그 충신인 체하는 작자들이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 영양위 궁 거동에도 너무 굉장하리만큼 거동의 노부(盧賻)가 컸다. 그러고 영양위 궁에 오신 뒤에도 승지(承旨) 최항(崔恒), 선전관(宣傳官) 한회(韓賄), 내금위(內禁衛) 봉석주(奉石柱) 등이 각각 부서를 정하여 입직하고 금군(禁軍) 오십 명은 안에, 순군(巡軍) 오십 명은 밖에 옹위하여 새 새끼, 쥐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하게 하였다. 지존(至尊)이 계시니 이만함도 당연하거니와 이것이 반드시 지존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다만 이날에 왕께 근시하는 내시와 궁녀는 왕의 마음대로 택하신 것이니 늙고 충성스러운 내시 김연(金衍), 한숭(韓崧)이든지 지밀나인 윤연화(尹蓮華),이월담(李月潭)이든지는 다 왕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들이다.

왕은 잠시라도 쓸쓸하고 뒤숭숭한 궁중 생활을 떠나서 하루 저녁으로 사랑하는 동기들과 같이 유쾌히 지낼 양으로 내시들까지도 물리고 극히 조용하게 윷도 놀고 이야기도하고 과일 등속도 잡수시고 혹은 안석에 기대기도 하고 혹은 베개도 말고 팔굽이를 베고 누워서다리도 버둥거리었다. 왕은 이날에 심히 유쾌하신 모양이었다. 경혜 공주, 경숙옹주 두 분 누님도 왕이 기뻐하심을 만족히 여기어 아무쪼록 흥을 깨뜨리지 아니하도록 여러 가지로 장난할 것을 장만하였다.

왕이 등극하시면서 곧 왕과 동갑이거나 한두 살 위아래 되는 계집아이 넷을 나인으로 택하여 항상 왕의 곁에 있어서 시종하고 장난 동무도 하게 하였다. 나인이라 하지마는 이러한 경우에는 큰 세력이 따라다니므로 그 네아이 중에는 양반 집 딸이 둘이나 있었다. 어리신 왕이 장차 왕후를 채립하실 때에 다행히 간택에 들면 그 의 아버지는 국구(國舅)로 한 번 세도를 하여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그 양반 집 두 딸이란 것은 하나는 판돈녕부사 송현수(判敦寧府事宋玹壽)의 딸이요, 하나는 의정부(議政府) 우참찬(右參贊) 정인지(鄭麟趾)의 질녀였다. 둘이 다 상감보다 한 살 위이어서 열 네 살이요, 덕은 자라난 뒤에야 알겠지마느 재색이 겸비하였었다.

이렇게 지체 놓고 세력 있는 집에서 딸을 궁녀로 들여 보내는 것은 그리 흔치 아니한 일이지만는 이때에 있어서는 기실은 왕후 후보자였던 것이다.

이 네 아가씨들은 국상 중이라 비록 채색 옷은 못 입는다. 하더라도 온 장안을 떨어서 골라낸 인물이라 몸가짐일지 목소릴지 꽃송아리와 같이 아름다웠다. 아직 남녀의 정을 알 까닭도 없고 권세도 알 까닭이 없지마는 그래도 저마다 어리고 아름답고 인자하고 다정하신 왕에게 깊이 정이 들어 다투어 왕께 가까이하려 하였다.

왕도 이 어린 궁녀들을 사랑하였다. 아름답다든지, 얌전하다든지, 영리한 것도다 제치어 놓더라도 동갑 사이의 어린 동무로도 깊이 정이 들 것은 자연한 일이었다. 그중에도 왕은 송씨와 장씨(張氏) 두 사람을 더욱 사랑하였다. 정씨는 특별히 미워함은 아니나 까다롭고 쌀쌀한 정 인지를 생각한 때에는 그의 질녀 되는 정씨도 정이 떨어지었던 것이다.

이 네 아기 궁녀도 무론 왕을 따라 영양위 궁에 왔다. 왕이 가시는 곳에는 반드시 이 네 계집아이가 따랐다. 이 네 계집아이(송씨, 정씨, 장씨하고 또 하나는 한씨)는 왕에게 가장 친근한 이로 모든 사람의 부러워함을 받았다. 이날도 왕께 대하여 끝없는 사랑을 가진 경 혜 공주는 아무리 동기라 하더라도 군신지분(君臣之分)이 있으니 그 애정을 직접 왕께 표하지는 못하고 어린 아기 궁녀들에게 대신으로 주는 듯하였다.

이렇게 이날 밤 영양위 궁 안방에는 기쁨과 정다움과 웃음이 차고 넘치어 밤이 깊을수록 더욱 그 즐거움이 깊어가는 듯하였다. 혹시 피차에 몸에 입은 상복을 바라보고는 승하하 부왕을 생각하여 잠시 눈물이 고이는 때도 있었지마는 그래도 은 촛대 휘황하게 밝은 촛불 빛에는 눈물조차 한숨조차 아름답고 즐겁게 되고야 마는가 싶었다.

현실에 멀리 모시고 있는 늙은 상궁들과 내시들도 모두 마음 놓고 하사하시는 술과 음식에 취하고 배불리 가느란 눈으로 어리신성상(聖上)의 만수 무강하시기를 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화평한 시간은 오래 가지를 못하였다. 영양위 궁 대문 밖에는 난데 없는 말발굽 소리가 울리었다. 수양 대군이 감순 홍달손(監巡洪澾孫)의 부하인 순군(巡軍) 이백 명과 한 명회가 거느린 무사(武士) 백명의 옹위를 받아 상감의 행재소(行在所)인 영양위 궁으로 달려온 것이다.

이 삼백여 명 군사의 둘레는 소리는 영양위 궁 안방에까지 들리었다. 방금 어린 데 궁녀가 손을 마주잡고 돌아가며,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 태백이 노던 달아.“ 를 부르던 때다. 왕은 놀라는 듯이 손으 ㄹ들어 궁녀들의 노래를 막으며,

“바깥이 왜 이리 소란하냐?”하시었다.

왕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이만 가지는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며 한 번 더,

“이게 웬 인마의 소린고?”하신다.

공주들도 놀라서 왕과 같이 귀를 기울이고 어린 궁녀들도 노래를 그치고 눈이 둥그레서 왕고 공주를 바라보았다.

“아마 순군들이 순 도는 소린가 보오.”

하는지밀나인 윤연화가 아뢰인다.

“그렇기로 저렇게 요란할까. 승정원(承政院)에 알아올리라 하여라.”

하고 왕은 안심을 못하시는 모양이었다.

나인은 내시에게로 달려가고 내시는 사랑에 임시로 있는 승정원으로 달려갔다.

이때에 수양 대군은 영양위 궁 대문에 와서 시급히 상감께 주달할 일이 있으니 정원을 부르라 하여 입직승지(入直承旨) 최항(崔恒)이 뛰어나왔다 그러나 밤이 깊은 지라 문을 열지 아니하고 문 틈으로 서로 말을 주고 받고 하였다.

최항은 입직하기 전에 벌ㅆ 정 인지에게서 오늘 일의 계교를 들었으므로 내심으로는 수양 대군이 이제나오나 저제나 오나 하고 기다리었던 터이다. 만일 최항이가 아니하려면 이 밤에 수양 대군이 상감께 뵈옵지 못할 것이요, 상감께 뵈옵기 전에 김종서 죽인 소문이 영의정 황보인이나 병조 판서 민 신의 귀에 들어가면 수양 대군의 일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니, 그리되면 지금 거느리고 온 삼백 명 군사로 영양위궁을 들이치고 성즉 군왕 패즉역적(成則君王敗則逆賊)의 최후 수단을 써야만 될 것인 즉 아직 여기까지는 나아갈 용기도 없고 준비도 없는 것이다. 이러므로 이날 최항 한 사람의 향배(向背)는 수양 대군에게는 대단히 큰일이었다.

최항도 비록 정인지의 부탁도 받았고 또 이번 일이 잘만 되면 일신의 부귀도 얻을 줄은 알지마는 그래도 정작 수양 대군을 대하고 보니, 곧 문을 열기가 어려웠다. 만일 수양 대군을 들였다가 일은 틀리고 상감의 노여심만 받으면 어느 귀신이 집어가는지도 모르게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다. 최항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주저하였다.

수양 대군이 문 열라는 재촉이 성화 같을수록 최항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양 대군은 최항이가 주저하는 뜻을 짐작하였다. 만일 김종서가 이미 죽은 줄만 알면 최항도 안심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수양 대군은 대문 틈에 입을 대고 들릴락 말락한 음성으로,

“적괴(賊魁)는 벌써 없애버렸네.”

하고는 다시 소리를 높이어,

“긴급히 친계(親啓)할 일이 있으니 정원은 바삐 문을 열라.”

하고 외치었다.

그제야 최항은 문지키는 군사를 시키어 문을 열게 하였다.

내금위(內禁衛) 봉석주(奉石柱)도 벌써 정 인지의 부탁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삐걱하고 문이 열리며 문 안에 들어서는 길로 수양 대군은 최항의 손을 잡았다. 최항은 황공하여 두 손으로 수양 대군의 손을 받들어 잡고 허리를 굽히었다.

법대로 하면 입직 승지가 먼저 상감께 여짜와 알현(謁見)을 허하심을 받는 것이 옳지마는 수양 대군은 최 항의 손목을 잡아 끌고 자기가 앞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에는 밖에서 무엇이 요란하냐 알아 올리라는 왕명을 받들고 승지한테 나왔던 내시가 뛰어들어가서 수양 대군이 무슨 긴급히 주달할 말씀이 있으니 문을 열라고 한다는 뜻을 아뢰인 후였다.

“이 밤중에 무슨 긴급한 일이 있담. 그렇기로 왜 군사는 그리 많이 데리고 다녀.”

하고 왕은 더욱 의심스러운 듯이 늙은 내시를 바라보았다. 늙은 내시의 낯빛에도 안심 못 되는 빛이 있었다.

왕은 벗어 놓았던 의관을 정제하려 하였다. 무서운 숙부를 이렇게 풀어 헤친 모양대로 대할 수는 없던 것이다. 공주들과 영양위 정종과 나인들 모두 옷깃을 바르고 일어났다.

그러나 방에 흩어지었던 윷가락과 밤, 잣 같은 것을 다 치우기도 전에 퉁퉁하는 소리가 나며 수양 대군이 썩 들어섰다.

왕은 수양 대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 손으로 사모를 바로 쓰며 한 손으로 띠를 바로 잡았다.

수양 대군은 살기 있는 눈으로 방안을 한 번 둘러 보고 왕이 자리에 앉으시기를 기다려 그 앞에 꿇어 엎드리었다---.

“인(仁), 종서(宗瑞) 놈들이 모반을 하옵기로 일이 급하와 미처 여짭지 못하옵고 적괴 종서를 베이옵고 그 연유를 상감께 아뢰오.”

하였다. 수양 대군의 말에 왕이 깜짝 놀라며,

“인과 종서가 모반을 하여?”

하고 소리를 높이시었다.

“그러하외다. 인, 종서가 겉으로는 충성이 있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안평대군용(安平大君 瑢)과 왕래하옵고 광식친당(廣植親黨)하와 분거중외(分據中外)하옵고 음양사사(陰養死士)하 여 비사 후패로 힘쓰고 무예 있는 잡류를 모아들이옵고 변읍(邊邑) 병기를 가만히 서울로 실어들이어 불궤(不軌)를 도모한지 오래외다. 신(臣)은 그 눈치를 안지 오래오나 미리 발설하면 도리어 상감께 위태하심이 있을까 하와 가만히 그놈들의 형세를 살피옵더니 오늘 시월 십일에 상감께서 영양위 궁에 거동하시는 기회를 타서 밤 오경에 영양위 궁을 엄습하려는 꾀를 세운 줄을 아옵고 신이 몸소 종서의 집에 가서 종서를 죽이고 오는 길이오나 아직 여 당(餘黨)이 남아 있사오니 형세가 잠놋 위급하옵니다.”

하고 수양 대군이 아뢰었다.

왕은 더욱 놀라시며, 아니 그럴 수가 있겠소인과 종서가 “, . 무엇이 부족하여 역모를 하다니. 그럴 수가 있겠소?”

“늙은 것들이 심히 음흉하외다. 상감께서 어리신 것을 타서 안평 대군을 세우려 함이외다.”

“안평 대군이라니? 안평 숙부가 나를 반한단 말이요?”

하고 왕은 수양 대군을 바라보았다.

수양 대군은 차마 왕의 눈을 바로바라보지 못하여 고개를 숙이며,

“안평이 담담정(淡淡亭)과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이룩하고 천하의 선비를 모아들이는 것이 다 까닭이 있는 것이외다.

하고 왕의 주의를 안평 대군에게로 끌려고만 하였다.

수양 대군의 말을 들어보면 어린 왕의 생각에 또 그럴듯도 하였다. 더구나 이 밤으로 자기를 해하려 올 계획을 하였다 하니 열 세 살 된 왕에게 겁이 앞설 것도 자연한 일이다. 수양 대군이 이처럼 자기 앞에 부복한 것을 보면 당장 수양 대군이 자기를 해할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그렇다 하면 이 처지에 있어서 왕이 믿을 곳은 수양 대군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더욱이 수양 대군의 용모에 부왕과 비슷한 데가 있는 것을 보고는 왕은 숙부인 수양 대군을 의지하는 생각이 더 나는 듯하였다.

“그러면 인, 종서와 같이 역모(逆謀)에 참예한 놈이 몇 놈이나 된단 말이요?”

하고 왕은 어린 아이답지 아니한 말을 물으시었다.

수양 대군은 옳다구나 하는 듯이,

“좌찬성이 양(左贊成李穰)허옵고.”

하고 꼽기를 시작한다.

“이 양이라니? 이 양이면 종실 아니오?”

하고 왕은 한 번 더 놀라고 의심하는 빛을 표하였다. 이 양은 태조대왕의 서형의 아들이다.

“그러하외다. 이 양도 안평의 패외다.”

“또.”

하고 왕이 재촉하신다.

“병조판서 민 신(兵曹判書閔伸)허옵고, 이조판서 조극관(吏曹判書趙克寬)허옵고…….”

“어, 병조 판서 이조 판서도?”

“예, 그러하외다. 민신, 조극관이 본래 종서의 무리외다.

“그러면 정부와 육조가 다 역모에 들었단 말이요?”

“윤처공(尹處恭), 이 명민(李命敏), 원구(元矩), 조번(趙蕃) 등은 안에서 응하옵고 함길도 절제사 이징옥(咸吉道節制使 李澄玉)은 종서의 심복이옵고 종성부사(鐘城府使) 이경유는 이징옥의 명을 받아 병기(兵器)를 종서의 집으로 실어왔삽고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조수량(趙邃良), 충청도(忠淸道) 관찰사(觀察使) 안 완경(安完慶)은 다 이 무리외다.”

수양 대군이 역적이라고 꼽는 사람을 보니 대개가 부왕이신문종 대왕의 고명을 받은 사람들이라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그래, 그 사람들이 다 역모를 하였단 말이요? 아바마마의 고명을 받은 사람들이?”

하고 왕은 진실로 무서움에 눌리어 몸이 떨림을 깨달았다.

황보인 김종서 이 양은 말할 것도 , , 없거니와 민 신, 조극관도 어린 생각에나마왕이 잘 알고 믿더 ㄴ바다. 선조께서도 왕의 등을 만지시며 그 사람들의 충성을 말씀하시고 어떤 사람이 참소를 하더라도 결코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으라고 유훈이 계시었다. 아바마마를 가장 믿으시는 왕은 아바마마의 유훈을 한 마디라도 의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늙고 충성스러운 내시 김연(金衍)과 한숭(韓崧)두 사람도 매양 황보인과 김종서 등의 충성을 일 걸었다. 태종 대왕 때부터 충성으로 신임을 받아오는 이 두 늙은이가 여러 대관들의 성질을 잘못 알 리가 없고 또 왕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마는 목전에 친숙부 되는 수양 대군이 있지 아니한가. 오늘 밤으로 나를 해하려고 역모를 하는 것을 이 숙부가 알았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신하들이 충성되기로 부자나 다름 없는 혈족의 친함에 비기랴.

와은 무서움과 의심됨, 놀라움의 엉클어진 정서(情緖)에 얽히어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때에 늘 하던 습관으로 방 한편 구석에 읍하고 섰는 김연, 한 숭 두 내 시를 바라보시며,

“그렇게 너희들이 충신이라고 일컫던 인과 종서가 역모를 한다는구나.”

하시었다. 두 내시는 수양 대군이 들어온 뒤에 얼마 있다가 들어왔으므로 왕은 그들에게 일 변 사정을 알리고 일변 그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는 것이었다.

늙은 내시들은 김종서가 수양 대군의 손에 죽은 줄을 알았고 그렇다 하면 이것이 모두 수양 대군의 음모인 줄도 알았다. 다만 모르는 것은 수양 대군의 야심이 어디까지나 가서 그칠까 함이었다. 만일 황보인, 김 종서나 치어버리고 만다 하면 참을 수도 있으려니와 수 양 대군이 어리었을 때부터 길러내나 다름이 없는 김, 한 두 내시는 수양 대군의 야심이 거기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반드시 용상(龍床)에 올라 앉는 것임을 짐작한다. 그렇다 하면 늙은 목숨이 마지막으로 충성을 다할 때가 이때다. 천하고 늙은 몸이 아무것ㄷ 가진 것이 없고 있는 것이 오직 물 불도가리지 아니하는 한 조각 충성된 마음과 부월로도 능히 굽히지 못할 곧은 혀가 있을 뿐이다.

김연은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도 씻으려 하지 아니하고 두어 걸음 왕의 앞으로 기어 나와 엎드려,

“소인 김연(金衍)이 아뢰오. 소인이 비록 천한 놈이 오나 태종 대왕마마 때부터 지존(至尊)께 가까이 모시와 금상(今上)마마까지 사조(四朝)로 모시오니 이래 사십년이 넘었사옵고 그동안에 들고 난 문무 제신(文武諸臣)을 모르는 이가 없사옵거니와 문장 도덕이라든지 경 국제세지재는 소인 같은 천한 놈이 알배 아니오나 지약 충성하와는 황보인, 김 종서를 따를 사람이 없사온 줄을 벌레 같은 소인만이 아는 것이 아니오라, 동방 요순이옵신 성주(聖主) 세종 대왕께옵서도 매양 칭찬하옵시었고 선조께서도 특히 그 충성을 일컬 으시와 주상 전하를 보좌하옵도록 고명이 계시오니 상전이 벽해가 되옵고 한강에 물이 마를 날이 있사옵더라도 인과 종서 두 대신이 모반을 하리라고는 비단 소인뿐 아니라 천지신명도 생각지 아 니하리라고 생각하오. 수양 대군 나으리께서 상팔 무엇을 잘못 알고하심인 듯하오니 복원 성상께옵서는 밝히 살피시와 뿌리 없는 참소를 가벼이 믿으시고 국가의 동량이 되는 충신들을 잃지 마시옵소서.”

하고 금시에 피라도 날 듯이 이마를 조아리니 뒤에 엎드리었던 늙은 내시 한 숭도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연(衍)의 말이지당하오.” 한다.

실내에는 처참한 기운이 돈다.

수양 대군은 살기 있는 눈을 들어 김연을 노려보았다.

왕은 수양 대군과 늙은 내시 연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하시었다.

연은 이 기회를 타서 한번 더 힘 있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대저 역모란 것은 국가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을 품는 자가 하는 일이외다. 인은 벼슬이 영의정이옵고 종서는 좌의정이옵고 그밖에 이양, 민 신, 조극관 같은 사람들이 벼슬이 공경에 달하여 영화가 극하옵거든 무엇을 더 바라고 천벌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역모를 하오리이까. 이로 보아도 인과 종서가 모반을 한다 하옵은 말이 되지 아니하는 말인가 하오.

또…….”

하고 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숭은 이마를 조아리며,

“상감마마, 과연 연의 아뢰는 말씀이 지당한 줄 아뢰오. 만일 참소를 들으시옵고 충신을 해하옵시면 스스로 우익(羽翼)을 자르심과 다름이 없사외다. 황보인이가 역심을 품는다고 하면 누가 곧이 듣겠소이까. 하물며 김 종서의 충성을 의심하옵신다 하면 백세(百世)에 웃음을 끼치실 줄로 아뢰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수양 대군 나리께옵서는 어느 간사한 무리의 거짓말을 믿으시고 경동하심인가 하오니 복원 성상은 밝히 살피시오.”

한다. 그 말이 마디 마디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듯하였다.

“수양 대군은 참다 못하여 벌떡 일어나 칼자루에 손을 대었다.

“네, 이, 요망한 늙은 것들이! 상감이 어리신 것을 기화로 여겨 역적놈들과 내통한 죄만 하여도 만 번 죽어 아까움이 없거든 하물며 주상 전하 앞에서 무엄한 입을 놀리고 또 나를 잡으니 네, 이 요망한 늙은 것들이 모가지 아까운 줄을 모르느냐.”

하고 수양 대군은 왕을 향하여,

“상감, 이 두 늙은 이 적괴(賊魁) 종서 놈의 심복이외다. 이 능구리 같은 놈들이 또 무슨 흉계를 할는지 알 수 없으니 이 두 놈을 신에게, 내어주시오.”

하고는 왕이 아무 말씀도 하시기 전에 칼을 빼어 들고 김연, 한숭 두 늙은 내시를 어르며,

“냉큼 물러나거라!”

하고 호령을 한다.

김 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수양 대군을 노려보며 소리를 가다듬어,

“나으리가 아무리 나라의 숙부시기로 군신 지분이 지엄하거든 감히 성상 앞에서 무엄히 칼을 빼니 이것도 차마 하거든 무엇은 못하겠소? 나으리가 먼저 물러나가 계하에 대죄하는 것을 보기 전에는 늙은 김 연이 살아서는 상감마마 곁을 아니 떠날 줄 아시오.”

하는 소리에는 마디 마디 서리가 날린다.

“이 요망한 천한 것이!”

하고 수양 대군의 칼은 촛불에 번쩍하며 김연의 늙은 목을 내려 치었다. 목은 방바닥에 떨어지어 굴고 피는 솟아 상감의 옷자락을 붉게 물들였다.

“나으리, 눈을 보니 충신의 피를 많이 흘리게 생겼소. 나으리 손에 죽는 사람이면 충신 아닐 이 없으니 엇소, 나도 죽이시오. 내 늙은 목은 마음대로 베이더라도 부디 외람된 마음 을랑 먹지 마시오. 충신의 피가 어느 때에나 소리를 치는 것이외다.”

하는 한 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양 대군의 칼은 한 숭의 왼편 어깨에서비스듬히 가슴을 내려 베었다.

경혜 공주와 경숙옹주는 기색하여 쓰러지고 궁녀들은 방구석에 달라붙어서 발발 떨었다.

승지 최항도 무릎이 덜덜 떨리고 이가 딱딱 마주치었다.

오직 늙은 궁녀 윤연화(尹蓮華)가 두 팔을 쩍 벌리고 왕과 수양 대군 사이에 썩 나서서 몸으로 왕을 가리우며,

“나으리, 너무 무엄하지 않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수양 대군의 칼이 늙은 궁녀를 범하려 할 때에 왕은 황망히 수양 대군의 칼 든 팔에 매어 달리시며,

“숙부, 날 살리오!”

하고 소리를 내어 울으시었다.

수양 대군은 왕의 우는 얼굴을 굽어보았다. 비록 심히 숙성하신 왕이라 하더라도 우는 얼굴은 더욱이 어리시게 보이었다. 수양 대군은 피묻은 칼을 옷자락으로 씻어 칼집에 넣었다.

수양 대군은 왕께 대하여 잠시 측은한 마음이 생기었따. 그렇지 아니하더면 두 늙은 내시를 베이던 칼로 왕을 해하였을는지 모른다. 그것은 수양 대군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어렵지 아니하외다. 역적 놈의 괴수는 벌써 죽었으니 다른 놈들을 없애기는 여반장이외다. 신이 잘 처치할 것이니 상감은 주무시오.”

하고 승지 최항을 시키어 명패(命牌)를 내어 영의정 황보인, 좌찬성 이양, 이조판서 조극관이하 요로 대관을 부르라 하였다. 좌의정 김종서는 이미 죽었고 우의정 정분(鄭笨)은 전경도(全慶都) 체찰사(體察使)로 아직도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병조판서(兵曹判書) 민신(閔伸)은 현능비석소(顯陵碑石所)에 가 있었기 때문에 이 밤에는 아니 불렀다.

이렇게 수양 대군이 섭정이나 된 듯이 자행자지하는 것을 보고도 인제는 말 한 마디 할 사람도 없었다. 최항은 인제는 수양 대군이 세력을 잡을 것이 분명한 것을 보고 안심하여 족불 부지하게 정원인 사랑으로 뛰어나가 선전관 한 회에게 명패를 내어 주어 제재(諸宰)더러 즉각으로 입내(入內)하랍시는 어명을 전하였다.

상감은 목전에 김연, 한 승두 내시의 피묻은 시체가 놓인 것을 보고 또 수양 대군의 허리에 피붇은 칼이 있는 것을 보니 이 자리에 잠시도 머물러 있을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환궁하실 뜻을 말씀하시었으나 수양 대군은 적도(敵徒)를 다 소멸하기까지는 환궁하시는 길이 위태하다는 핑계로 왕을 붙들었다. 수양 대군이 ‘못하오’하면 왕은 다시 두 말을 할 용기가 없었다.

수양 대군은 영양위와 공주를 불러 상감을 조용한 다른 방으로 옮겨 모시어 주무시게 하기를 부탁하였다. 영양위도 일각이라도 바삐 수양 대군 앞을 떠나기만 원하였으므로 수양 대군의 말대로 왕을 부액하여 별당으로 모시고 공주와 경숙옹주와 나인들도 뒤를 따랐다.

수양 대군도 왕을 호위하여 침소까지 이르러 다시 왕께 안심하고 주무실 것을 말하고 물러나올 할 때에,

“군사를 시켜 밖을 지키게 할것이니 무서우실 것 없습니다. 적도(敵徒)들은 신이 다 처치 하겠으니 상감은 안심하시고 주무시오.”

하고 한 번 더 안심하시기르 청하였다.

왕은 겨우 눈물을 거두시며,

“숙부, 황보인은 선조중신(先朝重臣)이니 죽이지는 마오.”

하시었다. 수양 대군은 못마땅한 듯이 왕을 한 번 노려 보고 물러나갔다.

수양 대군이 물러나간지 얼마 아니하여 군사들이 별당을 에워싸는 소리가 들리고 창부리를 언 땅에 울리는 소리가 사람의 몸에 소름이 기치게 하였다.

그러한 소리가 날 때마다 왕은 깜짝깜짝 놀라시는 모양을 보이시었다. 아까까지는 나라의 모든 군사들은 다 왕 자기만을 위하고 지키는 듯하더니 이제는 그들은 모두 수양 대군의 편이 되어 사방으로서 왕을 해하려는 것만 같았다.

영양위 정종이 왕의 침소에서 물러나가려고 하직 인사를 할 때에 왕은 그 팔을 붙들며, 어디를 “가오? 여기 같이 이어서 어찌되는 양을 봅시다.”

하고 붙들어 앉히고 누님들과 궁녀더러도,

“아무러기로 오늘 밤 잠 자기는 틀렸으니 이렇게 모여 앉아서 세상이 어찌되나 보자.”

하시고 물러가지 말라 하시었다.

이 말씀에 모두 소매로 낯을 가리웠다.

왕은 정종의 말을 들어 훈련(訓練)도감(島監) 성승(成勝)에게 밀서를 내리시려 하였으나 나인 하나만 마당에 나서도 군사가 내달아 어디로 가느냐 무엇하러 가느냐 하여 두 손을 펴 보아라 하고 몸을 뒤지며 안 중문 밖으로는 고양이 하나 얼씬 못하게 하니 그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성승은 성삼문의 아버지다.) 왕의 침소에서는 왕 이하로 칠판이 ㄴ사람들이 마치 같힌 새 모양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맥맥히 서로 바라보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만 기울이었다.

이따금 경혜 공주와 경숙 응주의 참다 못하여 터지는 울음 소리가 방안에 울려 사람들의 분함과 슬픔을 자아내었다.

“그놈 최항 이놈도!”

하고 정종은 이를 갈았다.

수양 대군은 감순(監巡) 홍달손(洪達孫)의 군사로 대문과 뒷문과 담 밖을 에워싸 제일문을 삼고 내금위(內禁衛) 봉석주(奉石柱)의 군사로 첫 중문을 지키게 하여 제이문을 삼고 수양 대군 궁에서 사사로 기른 소위 무사로 안 중문을 지키어 제삼문을 만들어 쥐 한 마리, 물 한 방울 샐틈 없이 철통감이 짜놓고 다른 일대 군사로는 상감을 시위한다는 명목으로 별당 인 상감의 침소를 에워싸 아무도 뒷간 출입 외에는 들고 나지를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홍달손이 첫문에 지키어 있어 대관이 부르심을 받아 들어오는 대로 첫 문에서 종자(從者)를 떼게 하고, 봉석주가 들째 문을 지키어 들어오는 대관의 벼슬과 이름을 큰소리로 외우리고 하고 그리하면 문 안에는 한 명회가 생살부(生殺簿)를 들고 앉았다가 봉 석주가 부르는 이름이 사부(死簿)에 있는 자면 일어나 맞는 체하고 손을 들어 죽이라는 군호를 하고 그리하면 문 뒤에 숨어 섰던 홍 윤성(洪允成), 양정(楊汀) 및 함귀(咸貴) 등의 역사가 철여의를 들어 단개에 박살하도록 하고 만일 이름이 생부에 오른 자면 인도하여 제삼문을 들어가 수양 대군이 입직 승지 최항을 데리고 앉은 대청으로 불러 들이어황보인, 김 종서 등이 과연 역모를 하였다는 다짐 책에 이름을 두게 하고, 만일 듣지 아니하면 문밖으로 내 치어 철여의로 끝장을 내도록 작정하여 놓았다.

밤은 점점 깊어 가는데 영양위 궁 안 마당과 바깥 마당과 후원은 조롱불로 마치 불난 집 같고 그 불빛에 군사들의 든 창 끝이 무섭게 번쩍번쩍하였다.

“이게 어디 오나. 어느 놈이 먼저 내 철여의 말을 보려는고.”

하고 손으로 시커먼 철여의를 한 번 만지는 것은 양정이다.

“압다이 사람, 자네는 벌써 종서 놈을 하나 잡지 아니하였다. 생각하면 분하이. 내가 아까 그놈의 집에를 갔다가 왜 그저 돌아온담. 그놈은 꼭 내 손으로 잡았어야 할 게야.”

하고 홍윤성은 목전에 누구를 보는 듯이 무섭게 노려보며,

“이놈! 하고 그놈을……그놈을…….”

하며 이를 득 간다. 윤성은 종서의 손자에게 뺨을 얻어맞던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 살마, 사람 다치리. 자네 따위가 종서 앞에 가면 고양이 본 쥐같이 기운을 못 썼을 것일세. 지금 여기서나 큰소리를 하지.”

하고 빈정대는 것은 구치관이다.

한 명회는 이 작자들의 말은 들은 체 만 체하고 갓을 푹 수그려 쓰고 초롱불에 생살부를 펴놓고 책장을 넘기며 어떤 이름을 사부에 옮기기도한다. 오늘 밤으로 대관의 죽고 살기는 전혀 한 명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명회는 과연 소원대로 염라대왕이 된 것이다.

“한 놈들어왔으면 좋을 텐데.”

하고 홍윤성이 철여의를 번쩍 들어 사람 치는 연습을 하는 모양으로 한번 허공을 내려친다.

명회도 어서 그 젠 체하는 고관 대작들이 들어와서 자기의 군호 한 번으로 미친 개 맞아 죽 듯이 맞아 거꾸러지는 양을 보고 싶었다.

“흥, 그 아니꼬운---조가놈. 이놈 내가 그만치 청을 했건만 원한 자리도 아니 주고 이놈이 오늘 나를 보고 살려달라는 꼴을 보았으면 속이 다 시워하겠다.”

하고 철여의 든 세 사람을 향하여,

“자네네들 중에 누가 그 조가놈을 아나?”

하고 그 사팔뜨기 눈을 부릎뜬다.

“조가라니. 장안에 조가가 한 사람뿐인가.”

하고 홍 윤성이가 웃는다.

“아, 그 이조판서(吏曹判書)조극관(趙克寬)이놈 말이야.”

명회의 이 말에 윤성과 양정은 서로 바라본다. 시골서 올라와서 벼슬도 못하는 놈들이 이조 판서의 얼굴을 먼발치 우러러 볼 기회라도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중에 오직 구치관이 벼슬은 아직 전적(典籍)에 지나지 못하였으나 과거한지 이십년이나 되도록 각 마을로 미관말직을 다니었기 때문에 대관들의 얼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벼슬 아니 올려 준다고 평생에 미워하던 조극관. 황보인의 얼굴을 그믐 밤에라도 못 알아낼 리가 없었다. 오늘 밤 이 중임을 맡은 것도 그 덕이었다.

“구전적(具典籍) 나으리가 중방 밑 귀뚜라미니까 갈알겠군.”

하고 홍 윤성이가 웃는다.

구치관(具致寬)도 한명회의 이른바 불평객 중의 하나다. 그가 수십 년 환로(宦路) 옥(玉) 관자(貫子)하나 못 얻어 붙이고 매양 불평한 눈치를 보고 명회가 수양 대군의 이름을 팔아서 끌어온 것이다. 구치관은 신숙주, 박팽년, 성삼문 등 과거의 동시에 즉 세종 갑인에 문과에 오른 사람이다.

수양 대군 휘하에 들어가서는 각 마을의 내정과 대관들의 언동을 염탐하는 일을 맡았고 오늘 밤에는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직분을 맡은 것이다. 구치관이가 보기에 저보다 벼슬이 높은 놈은 다 자기의 원수연마는 그중에도 미운 것은 황보인과 김종서와 민시노가 조극관이였었다.

“이놈들이 나를 괄시하고…….”

이렇게 그는 대관들을 원망하였다. 황보인, 김 종서가 특별히 구치관을 괄시한 것도 아니었건마는 자기를 특별히 사랑하여 원한 자리도 아니 시키어 주는 것은 곧 자기를 괄시함이었다. 오늘 밤에 그는 이십년래에 쌓이어온 분풀이를 한 번 실컷 하게 되었다. 이점으로 구치관은 한명회와 동지였다.

“조극관이면 내가 길러내었네.”

하고 치관은 명회를 보고 웃었다.

“응, 자네가 잘 알겠네그려. 자네도 어지간히 그놈한터 청도 해보았을 터이지.”

하고 명회가 붓대를 서안에 던진다.

“군자(君子)가 그만 애자지원(睚眦之怨)을 염두에 두겠나.”

하고 치관은 소매를 들어 콧물을 씻는다.

“군자!”

하고 홍 윤성이 껄껄 웃으며,

“군자 다 집어치위라 얘. 쇠몽둥이로 사람 잡는 놈이 군자는 무슨 빌어먹다 죽을 군자야, 군자.”

하고 아니꼬운 듯이 땅에 침을 퉤 뱉고는 발로 쓱쓱 비빈다.

윤성의 말에 치관은 부끄러운 듯이 머쓱하고 명회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코웃음을 한 다. 명회도 윤성의 말이 좀 듣기가 거북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밖에서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명회는 무엇이 자기의 얼굴을 들여다 볼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얼른 한 손으로 망건 편자를 만지고 한 손으로는 붓을 들어 생살부 껍데기에다가 되는 대로 글자를 그적거렸다. 그 글자 중에는 공경 경자와 도울 양자가 많이 있었다. 무심히 그적거리는 중에도 경덕궁(敬德宮)이란 것과 양양(襄陽)이란 것이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이렇게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의 목숨을 많이 죽이어서라도 일신의 부귀 영황의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는 겨얻꿍에 궁직으로 기왓장이나 벗겨 팔아 먹고 사는 것이, 또는 양양에도적 두목의 편지나 써 주고 얻어 먹고 사는 것이 편안할걸 하고 명회도 모르는 사이에 명회의 마음이 뉘우치는 것이나 아닌가.

명회만 아니라, 그렇게도 팔을 뽐내던 홍 윤성, 양 정도 담 밑에 착 달라 붙어서 눈이 멀뚱멀뚱하고 구치관은 더구나 안절부절을 못하는 듯이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무릎이 떨리ㄴ 가보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잘하지 아니하면 일생 영화는 아주 달아나고 마는 것이다. 그저 눈 꽉 감아라! 쓴 약 먹는 모양으로 눈 꽉 감고 꿀떡 삼켜라! 이렇게 스스로 편달하면서 구치관은 정말 무엇을 삼키는 듯이 눈을 꽉 감고 꿀떡 삼키었다. 그렇게 마음을 맵게 먹으면 적이 무릎 떨리는 것이 덜 하는 듯하였다.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이 양(李穰)!”

하고 봉 석주가 홀기(笏記)부르듯이 길게 부르는 소리가 나자 백발이 성성하고 키꼴 큰 점잖은 늙은 대관 한분이 사모 관복에 손을 읍하고 머리를 약간 숙이고 바로 상감 앞에 있는 듯한 조심하는 태도로 중문 안으로 들어선다. 유덕하기로, 근엄하기로 이름 높은 이 양이다.

이 양이면 명회의 손에 있는 사부(死簿)에 셋째로 이름이 오른 사람이다. 첫째가 김종서, 둘째가 황보인, 셋째가 우의정 정문이라야 옳을 것이언마는 정문은 전경도 도체찰사로 밖에 있기도 하려니와 그렇게 중요하게도 보지 아니한 것이다.

한명회는 손에 들었던 붓으로 이 양이란 이름 위에 점 하나를 치고는 벌떡 일어나며 손을 들었다.

그제야 이 양도 좀 수상하게 생각하였다. 행재소(行在所)면 변 시 궁중이어늘 중문 안에 웬 불량스러운 선비 같기도 하고 한량 같기도한 것들이 헌 망건 때묻은 중추막으로 구석구석이 늘어서고 게다가 웬 괴물 같은 작자가 사팔뜨기 눈을 번쩍거리며 자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번쩍 드니 이것이 수상하지 아니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 양은 잠간 거릉ㅁ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보려 하였다.

‘이것이 분명히 이야이다.’ 하는 뜻이다. 치만은 관복을 입었었다.

이 양은 치만을 어렴풋이 알아보고 적이 의혹을 푼 듯이 다시 걸음을 옮겨 놓았다.

그러나 이 양이 두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홍 윤성과 양정의 철여의가 이 양의 머리와 등을 동시에 내려치었다.

이 양은 소리도 없이 땅에 거꾸러지어 입으로 피를 토하였다.

치만도 가만히 있어서는 공이 깎일 것 같아서 눈을 뜨고 피거품 문 입을 움직이려 하는 이 양의 양미간을 철여의로 내려 부수었다. 얼굴은 알아 보지도 못하게 으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점잖고 엄숙하던 이양은 피투성이 송장이 되어 누웠다. 진실로 “아이고”소리 한 마디 아니 나고 사람의 목숨 하나가 끊어지었다.

“이 사람.”

하고 윤성이가,

“한림학사 사람 치는 법은 그러한가. 그렇게 낯바닥을 바숴버리면 누군지 알 수가 있나.”

하고 우 치만을 보고 픽 웃는다.

‘이놈이, 이 종의 자식 놈이 인제는 사뭇 허게를 하려 드는구나.’ 하고 치만은 분하였다. 그래서 한 번 윤성을 흘겨 보았다.

다음에 들어온 것은 우참찬정인지(右參贊鄭麟趾)다. 집현전(集賢殿) 교리(敎理) 신숙주(申叔舟)가 뒤를 따랐다.

명회는 일어나 공손히 인지에게 읍하였다. 인지는 곁에 놓인 시체를 보고,

“누군가?”

하고 명회에게 묻는다.

“이 양이오.”

하고 명회와 치만이 일제히 대답한다. 서로 대답을 경쟁하는 듯하였다.

“인제 겨우 하나야?”

하고 인지는 불만한 듯하였다. 그러나 명회를 위로하는 듯이 한 번 웃어 보이고 이 양의 흘린 피를 아니 밟을 양으로 사뿐사뿐 골라 디디며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숙주는 명회는 본체 만체하고 치만이더러면 웃음을 바꾼다. 그리고는 명회와 윤성, 양정을 경멸하는 눈으로 한 번 슬쩍 둘러보고는 역시 땅바닥에 고인 이 양의 피를 피하여 피 없는 데를 골라 디디면서 인지의 뒤를 따른다.

“주리를 할 녀석.”

하고 명회가 숙주의 뒤를 흘겨본다.

“흥, 이녀석 모든 일은 다 네가 하는 것 같지. 흥, 모두 내님의 계교야. 네까진 놈 백 놈 있어 보아라. 김 종서 발가락 하나나 건드리나.‘이렇게 명회는 숙주를 원망하였다. 명 나라에 종사(從事)로 데리고 갔다 온 이래로 수양 대군은 신 숙주를 사랑할 뿐더러 신복을 만들었다. 정인지를 완전히 수양 대군 편을 만든 것도 신 숙주의 공이 많은 것이다. 숙주는 수양 대군과 정인지 사이의 혀와 같았다.

그렇지마는 한명회가 보기에는 신숙주는 자기가 세운 공을 가로채어 먹는 도적놈같이만 보였다. 가만히 앉아서 오늘 일이 패하면 나는 모르오 하고 여전히 벼슬을 다니고, 만일 성사가 되면 남보다 먼저 나서서,

“이 일은 모두 내 공이요.”

하려는 것만 같았다.

“흥, 국밥 다 지어 놓으니까 먹으러만 살랑살랑.”

하고 명회는 인지와 숙주가 문 안에 들어가고 안 보일 때까지 노려 보았다.

다음에 들어온 것이 좌참찬(左參贊) 허 후(許詡)다.

마당에 홍건한 피를 보고 깜짝 놀라 땅에 발이 붙은 듯이 우뚝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피 있는 곳에서 사 오보동쪽으로 허옇게 엎어 놓은 이 양의 시체가 등불의 춤추는 빛을 받아 마치 들먹들먹 움직이는 것 같다.

천생 감격성이 많은 허 후는 좌우에 벌리어 있는 것이 누군 줄로 보지 아니하고,

“이게 웬 일이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역적 이양이요.”

하고 치만이가 읍한다.

허 후는 보니 평소에 아는 우 치만이다. 허 후는 치만의 위 아래를 훑어보더니,

“역적 이 양이라니? 이 양이가 언제 역적이 되었던가.”

치만은 더 할 말이 없었고 명회는 나른 데를 돌아보고 픽 웃었다.

허 후도 당연히 죽을 것이지마는 작년 시월 수양 대군이 명나라에 간다고 할 때에,

“지금 재궁이 빈전에 계시고 백성이 의심 속에 있거든 나으리가 나라에 종신이 되어 나라를 떠나시다니 될 말이오.”

한 것이 수양 대군의 비위에 맞아서 이름이 사부에 오르기를 면한 것이다.

허 후는 장히 못마땅한 듯이 서너 번 고개를 흔들더니 한 명회, 홍 윤성 등을 한 번 노려 보고 도로 나갈까 들어갈까를 결정하지 못하는 듯이 잠간 주저하다가 안으로 들어간다. 허후의 그림자가 수양 대군 있는 대청 앞에 다다르려 할 때에,

“이조판서(吏曹判書)조극관(趙克寬)!”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었다.

허 후는 무슨 일이 생기나 보자 하고 휙 돌아섰다.

중문을 통하여 우 치만이가 조극관 앞에 읍한 모양과 한명회가 한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서는 양이 불빛에 비치어 마치 귀신과 같았다.

허 후는 발을 돌려 안중문까지 나와서 가만히 내다보았다.

그중에 한 놈이 길다란 그림자를 끌고 어두운 속에서 내달으며 철퇴를 들어 조극관의 뒤통수를 갈기는 모양이다. ‘아이쿠’소리도 들리는 듯 마는 듯 조극관의 관복 자락이 펄럭거리며 땅에 거꾸러지는 것이 보이고, 그러자, 우 치만이가 발을 들어 극관의 가슴을 서너 번 차는 양이 보이고 그중에 한 놈이 허리를 굽히어서 극관의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몸을 흔들며 끼득끼득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또 한 놈이 철여의를들어서 조극관의 면상을 내려치는 것이 보이고는 다른 두 놈이 달려들어 극관의 몸(아마 시체일 것이다)을 발길로 굴리어서 이양의 시체 있는 곳에 밀어다 놓고 그중 한놈이 극관의 발목을 잡아 한 편 구석으로 홱 내어던지고는 미친 놈의 웃음 모양으로 깔깔깔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도로 아까 모양으로 조용해지고 여러 놈의 그림자는 그늘 속으로 사라지어버리고 만다.

허 후는 이 광경을 다 보고 나서 “응 찝찝”하고 입맛을 두어 번 다시더니 모든 의미를 알았다는 듯이 대청을 향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김종서 부자가 수양 대군의 손에 맞아죽었다는 소식은 성문이 열리기 전에는 장안에 들어 올 수가 없었다. 또 서대문, 남대문, 서소문을 지키는 군사가 이미 수양대군 편이 되어버린 홍달손의 군사고보니 더구나 김 종서 피해된 소식을 문안에 들여보낼 리가 없었다.

김종서가 기절하였다가 다시 살아나서 원구(元矩)를 시키어서 대신이 암살을 당할번하였단 뜻과 상처가 중하니 내의를 하송하실 것을 상감께 아뢰려 하였으나 서대문, 남대문이다 굳이 닫히고 아무리 하여도 열어 주지를 아니하였다.

그래서 영의정 황보인은 김종서 집에 생긴 일도 알지 못하고 저녁 후에 사랑에 앉아 한담하고 있었다.

이때에 선전관 한 회가 와서 즉각으로 입시하라는 명을 전하고는 다른 데 갈 길이 바쁘다 하여 당에 오르지도 아니하고 말을 달리어 가버리었다.

이 뜻하지 아니한 부르심에 황보인 집은 내외가 다 놀래었다. 황보인도 방ㅇ 들어가려고도 아니하고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눈을 감았다. 희고 길다란 수염이 가슴에 빛난다.

“초헌(軺軒) 내어라.”

하고 인은 마침내 명령하였다.

“아버지 들어가십니까?”

하고 근심스러운 빛을 띠고 한 걸음쯤인의 뒤에 모시고 섰던 석(錫)이 한 걸음 나서며 아버지에게 묻는다.

인은 잠간 아들을 보고는 그 시선을 피하는 듯이 고개로 하늘을 바라보며,

“부르시니 아니 들어가겠느냐. 내가 오래 국온을 입고 한 일이 없으되 또 큰 허물도 없나니라. 어느 때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낭패하지 아니하도록 하여라.”

하고는 초헌에 올랐다.

인의 이 말은 최후의 유언같이 들리어 석, 흠(欽) 이하로 오지 꼬개를 숙일 뿐이요, 말이 없었다.

인은 이 밤중에 위로서 부르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대문을 나서매 자연히 이번 길이 마지막 길인 것같이 생각되어서 비감함을 금치 못하였다.

지금까지 해로하여 은 부인도 한 번 더 보고 싶었고 어린 손자들도 한 번 만지고 싶었다.

그러나 인은 왕명(王命)을 받아서 감을 생각하고 다만 사당을 향하여 잠간 읍하여 혹 영결이 될는지 모르는 하직을 고하였다. 그러나 초헌에 흔들리는 인의 허연 수염에는 눈물이 굴러 내렸다.

뒤에는 인의 아들 석이 종자 두어 사람을 데리고 머리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석은 이 밤에 부르시는 것이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의심하였고 그 의심 속에는 수양 대군의 모양이 번쩍 나타났다. 석은 작년에 종서의 아들 승규와 같이 수양 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갔었다. 신 숙주를 심목으로 사랑하면서도 승규와 자기와를 누구나 알아보게 미워하던 것을 기억한다.---그 수양 대군의 살기 있는 눈이 석에게는 분명히 보이는 것이다.

의심스러우니 가지 말라고 만일 자기가 아버지를 만류하면,

“신자(臣子)로서 군부(君父)의 명을 의심하는 법이 없나니라.”

하고 자기를 책망하여버리고 말 것을 석은 잘 알았다. 그러므로 감히 가지 말라고도 못하고 다만 뒤만 따라올 뿐이었다.

종묘(宗廟) 앞을 당도하여 사인(舍人) 이예장(李禮長)을 만났다. 그는 황황히 황보인의 초헌을 붙들고 말한다.

“대감,가시지 마시오. 지금 영양위 궁에는 안팎으로 순군과 금군으로 들러쌌습니다. 그것도 상관없지마는 수양 대군 궁 무사란 것들이 들락날락하고 안마당에서는 사람을 때려 죽이는지 아이쿠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지금 대신을 부르는 것이 다 수양의 농간인 듯하니 이 편에서도 막아낼 도리를 하는 것이 옳을 듯하외다.”

사인 이 예장이 황보인의 초헌을 붙들고 만ㄹ하는 사이에 뒤를 따르던 황보석도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왔다. 와서 이 예장의 말을 듣고석은 인을 바라보며, 아버지 제가 먼저 영양위궁에 가서 “, 보고 올 것이니 아버지는 아직 집으로 돌아가시오.

암만해도 일이 수상하외다.” 하였다.

“어찌 그리할 수 있느냐. 임금이 부르시거든 어찌 일각인들 지체할 수가 있느냐. 설사 무슨 흉계가 있다 하더라도 군자는 가기이방이니라.”

하고 예장의 손을 잡으며,

“무슨 일이 나고야 마는 모양이니 나 같은 늙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야 대순가마는 만 일 수양 대군이 무슨 흉계를 꾸민다 하면 선조(先朝) 고명 받은 사람을 다 없애버릴 모양이니 그리 되면 어리신 상감께서 어찌하시나. 모두 내가 어두워 이리 된 것이니 지하에 영묘(英廟)와 선조를 뵈올 면목이 없는 죄인일세.”

하고는 눈을 감아 눈을 흐리게 하는 눈물을 떨어뜨리고나서,

“자네는 이 길로 절재(節齎)한테 가 보게. 다행히 만나거든 좋고 벌써 들어왔으면 무가내 하지. 만일 절재를 못 만나거든 성승(成勝)과 유응부(兪應孚)를 보고 후사를 부탁한다고 하게. 그 사람들은 죽지 아니할 듯하니까.”

하고는 아들 석을 보고,

“따라올 것 없으니 너는 집으로 가거라.”

하고 두어 걸음 가다가 초헌을 멈추고,

“병조 판서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묻는다.

석이 달려가서,

“어저께 비석소(碑石所)에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하는 대답을 듣고는,

“오, 아직도 비석소에 있느냐. 어서 집으로 가거라. 남 웃기지 말아라.”

하고 종묘 앞에서 내리지도 아니하고 살같이 영양위궁을 향하여 달려간다. 초롱불이 가물가물하는 것도 아들에게는 슬펐다.

이러한 말을 아들 석에게는 부탁하지 아니한 것은 아들의 목숨도 내일을 지내기 어려울 듯한 까닭이다.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부탁이 남 웃기지 말라는 것이다. 온 집안이 도륙을 당하더라도 비겁한 빛을 보이지 말고 당당하게 태연하게 당하라는 뜻인가.

영의정 황보인이 영양위 궁 문전에 다다른 때에는 그래도 다른 때와 달랐다. 군사들은 더욱 정숙하고 홍달손은 이마가 땅에 닿으리만큼 허리를 굽히고 대문은 활짝 열리었다.

그러나 황보인은 대문 밖에서 초헌을 내리었다. 그러고 유심하게 좌우를 돌아보았다.

“좌상(左相)들어왔느냐?”

하는 어성은 높지 아니하나 그래도 일국을 호령하던 수상(首相)다운 힘과 무거움이 있었다.

“아직 아니 오시었소.”

하는 홍달손의 등에는 자연 물이 흘렀다. 그리고 김종서가 죽은 줄도 모르고 자기가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철여의 바람에 두 골이 으스러지어 죽을 줄도 모르는 늙은 영의정이 우습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였다.

“수양 대군 듭시었느냐?”

하고 인이 다시 물으 때에는 달손은 대단히 거북하였다.

“예 벌써부터 듭시어 계시외다.”

하면서도 달손은 까닭 모를 위압(威壓)을 깨달았다.

“그 밖에 누구 누구 와 있느냐?”

달손은 잠간 말문이 막히었다.

대문에 영의정 황보인이 온 줄은 곧 둘째 문 셋째 문까지 알려지었고 인이 달손과 이야기하는 동안에 수양 대군이 앉았는 안방에까지 알려지었다.

“인이가 왔어?”

하고 수양 대군도 놀라는 빛을 보이고 정인지, 이사철 한 확(韓確), 신숙주의 무리는 얼굴빛이 해쓱하여지는 듯하였다.

그중에 태연한 이는, 오직 허후(許詡) 한 사람뿐이었다. 그의 주름 많은 얼굴에는 우는 듯 비웃는 듯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빛이 떠돌았다.

후는 인지를 이윽히 보더니,

“이 살마, 저 늙은이야 무슨 죄 있나. 자네겐들 무슨 원협 있나. 앗게, 죽이질랑 말게.

한다. 후가 황보인 죽이지 말자는 말을 수양 대군에게 하지 아니하고 인지에게 하는 것은 은연중인지가 이 일에 깊이 관계된 것을 빈정대는 것이다.

인지는 후의 말에 미상불 낯에 쥐가 나는 듯하였다. 허 후는 좌참찬이요, 인지는 우참찬으로 가깝다 하면 심히 가까워야 옳은 일이요, 또 죽마고우로, 글벗으로 수십 년간 친지다.

황부인으로 말하던 두 사람에게는 다 절친하다 할 만한 존장이요, 선배다. 비록 인지가 수양 대군의 수하가 되어 이번 정란계획(靖亂計劃)에 가장 중요하게 (무론 남 모르게) 관계는 하였다 하더라도 대해놓고 이렇게 하는 말을 들으면 얼굴에 쥐가 아니 날 리가 없다. 더구 나 다소 여자다운 편심을 가진 인지는 소긍로 허 후의 오늘 욕보임을 단단히 치부하여 둔 것이다.

“거 원 무슨 말인가. 날더러, 내가 누구를 죽이고 살리고 한단 말인가.”

하고 인지가 그 가느단 눈으로 허 후를 노려본다. 신 숙주, 최항, 이계전 등 젊은 무리들은 면난한 듯이 인지와 후를 번갈아 본다.

수양 대군은 못마땅한 눈으로 후를 노려보나 후는 못본 체하고,

“나으리, 김 종서 하나만 죽이면 고만 아니요. 글쎄 이 양은 무엇하러 죽이며 또 황보인은 무엇하러 죽이시오. 뜻에 아니 맞거든 어디 먼 곳으로 귀양이나 보내시지. 죽이지는 마시오. 역사삼세(歷事三世)한 노신이 아니오니까. 그리 마시겨오.”

하고 인지를 노려본다.

수양 대군은 후의 말을 안 들으려는 듯이 몸을 이러저리로 움직이더니,

“어, 웬 여러 말이요?”

하고 후를 향하여 소리를 질러버린다. 대대 충효가 자손으로 더구나 그 부모상에 효성이 지극하다는 명성이 높은 허 후는 과히 귀찮게만 아니 굴면 살려 두어 자기가 어떻게 충효를 존중하는가를 세상에 보이는 증거를 삼오려 하는 것이 수양 대군의 생각이었다. 허 후는 정치적 수완으로 그리 용할 것도 없었고 더구나 정치적으로는 극히 야심히 없었다. 그것이 수 양 대군이 허 후를 살려 두려는 또 한 가지 이유도 된다. 그는 살려 두어야 해될 것은 없는 까닭이다. 오직 그의 어리석다 하리만큼 곧은 입이 염려였으나 그것이야 못 참으랴 하였다.

수양 대군이 주는 핀잔을 후는 꿀떡 삼키었으나 자기의 힘이 도저히 황보인은 살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밖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린다. 황보인이 둘째 문을 들어오는 모양이다. 허 후는 참다 못하여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는 것을 보고 수양 대군은 너털웃음을 치며,

“허 참찬, 황보인의 감참(監斬)이나 잘하오.”

하고 허 후가 들으리만큼 큰 소리로 외친다.

인지는 이맛전만 씰룩거리나 다른 사람들은 수양 대군의 비위를 맞추어서 다 웃었다. 그렇게 웃음으로 밖에서 노재상황보인이 철퇴에 맞아 시방 피를 흘리려니 하는 생각에서 오는 형언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살인죄에 관계한 사람만이 경험하는 무시무시함을 약간 잊어버리려는 생각도 있었다.

흔들리는 촛불 그늘에 방안 구석구석이 혹은 김종서의 키 작은 모양이, 혹은 이 양의 부대한 몸이, 혹은 황보인의 허연 수염이 보이었다. 스러지었다 하는 듯하여 황보인의 ‘아이쿠’ 소리를 이젠가 저젠가 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수양 대군 이하 여러 사람들은 서로 바라보고 몸에 소름이 끼치었다.

허후가 안중문에서 내다볼 때에는 바로 황보인이 한명회 앉았는 둘째 문을 들어설 때였다. 감격성 많은 허후는 아무리하여서라도 황보인을 구해내어야 할 것 같이 생각하여 걸음을 빨리 하였다. 자기가 간대야 죽을 황보인을 살릴 수 없는 줄을 미처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명회의 옷 소매가 들리고 그늘 속에서 철여의 든 놈들이 뛰어나서는 양이 보이었다.

“낯바닥을랑 성하게 두어라!”

하는 한명회의 우렁찬 음성이 들리자 뚱뚱한 홍윤성의 철여의가 황보인의 뒤통수를 향하고 내려오는 것을 후가 보았다. 그때에 황보인은,

“오, 그러더냐. 다 알았다.”

하는 듯이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서 한명회를 노려보며,

“어, 여기가 어디라고 이 웬 잡인들이냐.”

하고 호령하였다.

그러나 그 호령이 끝나기 전에 홍윤성의 철퇴에 맞아 황보인은 마치 큰 나무의 뿌리가 뽑히어서 넘어지는 모양으로 땅 위에 쓰러지었다. 영의정 잡은 공로에 나도 나도 참예하겠 다고 좌우에 벌려 섰던 무사들이 우르를 뛰어 나선다. 그중에는 강곤(康袞), 민발(閔發), 유 형(柳亨), 곽연성(郭連城), 홍귀동(洪貴童), 홍순로(洪純老), 송석손(宋碩孫)등도 있었다.

황보인이 땅에 쓰러지자 좌우로서 어중이떠중이가 와 모여드는 것을 보고 허 후는 억제할 수 없는 의분을 느끼어,

“이놈들아, 글쎄 이 도적놈들아, 그 양반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누냐. 이놈들아, 그 양반께 손을 대지 말아라.”

하고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웬 일인고 하고 잠간 물러섰다.

명회는 허 후를 노려보았다. 사람들이 잠간 물러선 동안에 허 후는 땅에 쓰러진 황보인의 곁에 앉아 두 손을 피 흐르는 황보인의 머리 밑에 넣어 머리를 좀 들고,

“나를 보시오? 나를 보시오? 후외다. 허 후이요. 글쎄 이게 무슨 변이란 말인고. 뒤통수가 이렇게 으스러졌으니 살아날 수가 있나.……날 좀 보시오. 대감, 좀 보시오. 눈은 떴는데……정신을 못차리시나 이게 원 무슨 일이람.”

하고 소매를 들어 앞을 가리우는 눈물을 씻는다. 씻고는 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보고는 또 씻고 하는 동안에 후는 우후후 하고 소리를 내어 운다.

“글세, 무슨 인의 눈이 움직이는 듯하더니,

“오, 자넨가. 자네는 아직 안 죽었나?”

하고 반가운 듯한 표정까지 보인다.

“예, 웬일인지 나는 아직 살았소이다. 정신이 좀 나시오?”

하고 후가 자기 얼굴을 더욱 인에게 가까이 댄다.

“좌상 어찌 되었누?”

인은 김종서의 말을 묻는 것이다.

“좌상은 벌써 죽었어요. 이 양도 죽고요. 조극관도 죽고 웬만한 사람은 다 죽겠지요.”

“인지(麟趾)는 살았나?”

인은 정인지(鄭麟趾) 말을 묻는 것이다.

“살아도 잘 살았나 봉외다. 머리가 이렇게 으스러졌으니 사실 수야 있나. 무슨 부락하실 말씀은 없으시오? 원 낸들 언제 죽을지 아나. 그래 무슨 하실 말씀이 있거든 하시오. 어, 고 만 정신을 못차리시나보군.”

황보인은 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에 생기가 없어진다.

허 후는 두어 번인의 머리를 흔들며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인의 머리를 자기 무릎 위에 놓으며,

“어뿔사, 고만 운명을 하시는군. 이 사람들아, 자네네들이 더 때리지 아니하여도 벌써 운명하였네. 일생에 아무 죄 없는 양반을 시체나 성하게 가만 두소.”

하고 오른 손을 들어 인의 눈을 감긴다.

명회는 황보인이 완전히 절명한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수양 대군 이하 여러 사람이 마치 무슨 무서운 기별을 기다리는 듯이 명회를 바라보았다.

명회는 그 사팔뜨기 눈으로 한 번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둘러본다. 내 얼굴을 잘 익혀 두어라 하는 듯하다. 그리고 난 뒤에 수양 대군을 향하여,

“나으리, 인(仁)을 잡았소.”

하고 한 번 웃어 보인다.

수양 대군은 명회의 이 보고가 아니라도 황보인이 지금 죽는고나 하고 이미 알고 있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래도 영의정 황보인까지 그렇게 쉽사리 자기 뜻대로 잡아 질 것 같지 아니하여 마치 어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집어오는 어린아이와 같은 걱정이 없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명회의 보고를 들으매 인제는 황보인을 잡은 것이 사실인 것이 분명하였다.

“어, 인(仁)이놈을 마저 잡았어?”

하고 수양 대군은 성공의 기쁨으로 다만 눈이 번쩍번쩍 빛나고 입 근육이 씰룩씰룩 움직일 뿐이었다. 수양 대군뿐 아니라 정인지, 신숙주, 이계전, 최항이하 이 일에 무서운 생각을 가지고 며칠 동안 밤잠을 잘 이루지 못하던 무리들도 가슴을 저질러 놓았던 무거운 바둑돌이 금시에 제치어진 모양으로 부지불각에 휘유 한숨을 쉬고 또 부지불각에 인제는 되었다 하는 숨길 수 없는 웃음이 입 가으로 떠돌았다. 그중에도 정인지, 신숙주가 회불자승하는 태도가 더욱 눈에 띄었다.

“우스운 일이 있소이다.”

하고 명회가,

“허 참찬이 인의 머리를 무릎 위에 놓고, 이놈들아 죄 없는 양반을 왜 죽이느냐고 소인을 보고 호령을 하고 울고불고 야단이외다. 어찌 하오리까, 그냥 두오리까. 좀 아픈 맛을 보이 오리까.”

하고 웃는다. 아까 당장에는 허 후가 때려 죽이고 싶도록 미웠으나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자기가 가장 공이 커서 장차 허 후보다 높아질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허후가 가엾고 우습기만 하였다.

응 사람이 “, 어깨 그 모양이야. 아무리 일러도 그 모양이람.”

하고 정인지가 귀찮은 듯이 고개를 흔든다.

“워낙 괴벽하니까.”

하고 수양 대군이 웃는다.

“아니외다. 괴벽이 아니외라 졸해서 그러외다.”

하고 신숙주가 책망하는 듯이 말한다.

“그래도 사람은 진국이어.”

하고 수양 대군이 아낀다.

저편 구석에서 눈을 깜작깜작하고 말할 기회를 기다리노라고 몸을 옴짝옴짝하던 이계전(李季甸)이가 상큼 나 앉으며,

“아니외다. 일이 그렇지를 아니하외다. 아무리 허 후라 하더라도 역적인을 두호한다 하면 변시 역적이니까 가만두는 것이 옳지 아니하외다. 마땅히 내어 베어야 합니다.”

하고 소리를 높이고 낯에 핏대를 돋히며 외친다. 이 계전은 고려 충신목은 이색의 손자다.

이 계전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서운 기운이 돌고 눈들은 수양 대군을 향하였다.

수양 대군의 낯빛도 긴장이 되며 이 계전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아니, 그럴 수 없어.”

하고 허 후 죽이자는 이 계전의 발론을 물리친다. 그러나 마음에 이 계전의 자기에게 대한 충성은 만족하게 여기었다. 이러하면 계전의 목적도달한 것이다. 허 후를 살려두면 선비들 의 뜻을 살 것이다 하고 생각한 것이다.

수양 대군이 허 후을 살리려는 뜻을 보고 인지는 얼른 딴 문제를 끌어내었다.

“나으리, 이미 밤이 늦었으나 국가 대사온즉 지금 곧 황보인의 수급(首級)을 가지시고 나으리께서 상감께 정란수말(靖亂首末)을 주달하는 것이 옳을 듯하외다.”

황보인의 머리를 가지고 상감께 정란 수말을 주달하여야 한다는 인지의 말이 수양 대군에게 무척 기뻤다. 적장(賊將)의 머리를 베어 들고 탑전(榻前)에 공을 아뢰는 장쾌한 맛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수줍기도 하였다.

“그래야 할까?”

수양 대군은 탄식하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기를 두 말씀이오니까. 이번 정란(靖亂)은 막비나으리의 공이온즉, 적괴의 수급을 가지고 주공(奏功)하심이 마땅하올 뿐더러 또 그러하심이 성려(聖慮)를 덜으심인가 하오.”

하는 인지의 말은 정히 수양 대군의 비위에 맞았다.

이미 다 죽은 인의 머리를 베는 것이지마는 이것을 배는 절차를 어찌할까 하는 것이 꽤 문제가 되었다. 워낙 조 찾기와 말썽 많기로 세종 대왕 시절부터 유명한 이 계전은 적괴를 참(斬)하는 모든 형식과 위의를 메물기를 주장하였으나 만사에 그리 흥미를 가지지 않는 이 사철(李思哲)은,

“그것은 그래 무엇하나. 이왕 다 죽은 것이니 아무렇게나 목을 자르면 그만이지그려.”

하고 시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었다.

이계전은 자기가 황보인 감참(監斬)하는 명예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명예보다도 공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체 수양 대군이 무슨 정당한 직임을 가지고 이를테면 정당한 자격을 가지고 하 는 것이 아니라 모든 비공식(非公式)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자연 서투렀다. 조를 찾자 하니 찾을 조가 없고 찾자 하니 너무 싱거워서 얼마 동안 예문 토론을 하다가 마침내 정인지의 발외로 자기가 임시로 판의금(判義禁) 격이 되고 신숙주가 동의금(同義禁) 격이 되어 황보인, 이양, 조극관 이하 오늘 밤에 죽은 사람 십여 명의 목을 베기로 하였다.

이렇게 결정이 되매 이 계전은 실망하였으나 한확(韓確),이사철(李思哲), 최항(崔恒)의 무리는 안심하는 한숨을 쉬었다. 대개 사람의 목 자르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마는 더욱이나 오늘 아침까지 자기네 상판으로, 동료로, 또 사정으로 보면 세외의 어른으로, 친구로 웃고 대하던 황보 인 이하 여러 사람들의 죄 없는 목을 자르는 ---그것도 철여의에 맞아 으스러진 시체의 목을 자르는 직책을 맡는 것은 그들에게도 그리 재미있는 일은 아닌 까닭이었다.

인지와 숙주는 명회를 따라 황보인의 시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이때까지 황보인의 머리를 무릎 위에 놓고 울고 앉았던 허 후는 인지와 숙주가 오는 것을 보고 소매로 눈물을 씻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글세, 이 살마, 이 늙은이가 무슨 죄가 있나.”

하고 아까 방에서 하던 말과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인지는 귀찮은 듯이 낯을 찡그리며,

“일어나게. 이게 무슨 꼴이람. 땅바닥에 펄쩍 주저앉아서, 시체는 우리가 처리할테니 자넬랑 일어나 들어가게. 대군께서 기다리시네.”

하고 허 후의 소매를 들어 일으킨다. 허 후를 이 자리에 두어 황보인의 목 베는 광경을 보게 하면 또 무슨 말썽이 생길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시체를 처치하다니 어떻게 처치한단 말인가. 설마 효수(梟首)는 아니할테지?”

하고 후는 인지의 손을 뿌리치려고도 아니하고 애원하고 눈으로 묻는다.

“어서 일어나게.”

하고 인지는 후가 반항 아니하는 것을 기화로 여기어 한번 더 후의 소매를 끌며,

“지금 나으리가 자네를 찾으시니까 아마 그런 일을 의논하시려는 모양이니 얼른 가 보게.”

하는 말을 믿고 후는 그래도 의심스러운 듯이 인지와 숙주와 명회와 기타 둘러선 무사의 무리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이놈들, 그 양반이 무슨 죄가 있어?”

하고 한 번 눈을 흘기고 안으로 들어간다. 가서 수양 대군에게 황보인 이하 오늘 밤에 죽은 사람들의 시체나 온전히 자손에게 내어 주어 장사하게 하도록 청하려 한 것이다.

후가 안 중문을 들어가고 다시 보이지 아니하기를 기다려서 인지는 좌우를 시켜 쟁반에 백지 한 장을 깔아 오라고 명하였다. 이윽고 영양위 궁 종이 쟁반을 들고 나와서 이 광경을 보고 ‘아마니!’하고 쟁반을 동댕이를 친다. 뎅그렁뎅그렁 소리를 내며 쟁반이 땅바닥에 떨어져 구른다. 그것이 무시무시했다.

양정은 굴러가는 쟁반을 발로 막아 붙들어 땅에 떨어진 백지를 집어 깔아서 두 손으로 들어다가 인지 앞에 놓았다.

인지는 아무쪼록 인의 시체를 아니 보려 하면서 누구를 향하는지 분명치 아니하게,

“인의 목을 베어라.”

하고 명을 내렸다. 인지의 어성은 약간 떨리는 듯하였다.

사람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마당은 잠잠하였다. 윤성, 정조차 서로 바라만 보고 머뭇머뭇하였다.

“어찌 항 베지 아니하느냐?”

하고 인지는 위엄있게 소리를 질렀다.

“소인이 베오리다.”

하고 칼을 빼어 들고 나서는 것은 홍 윤성이었다.

윤성은 소매를 걷고 나와 발길로 황보인의 가슴패기를 한 번 탁 차서 반듯이 누인 뒤에 양 정더러 두 귀를 잡아 인의 머리를 땅에서 좀 들리게 하게 하고 칼날을 한 번 손으로 쓸어 만지고 나서 인지와 숙주와 좌우를 돌아보며 왼편 손을 허리에 대고 오른 손으로 칼을 머리 위에 높이 들고 이윽히 인의 목을 내려다 본 뒤에 ‘에익’하는 소리도 기운차게 허리가 잠간 굽으며 번개같이 칼이 내려온다. 어느덧에 찍히었는지 소리도 났는지 말았는지 모르건마는 인의 머리는 몸에서 떨어져서 양정의 손에 두 귀를 붙들려 공중에 달려 있다.

양정은 인제는 제가 나설 차례라 하는 듯이 두 팔을 번쩍 들어 인의 머리를 한 번 내어 두르고는 쟁반 위에 올려 놓아 인지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인지의 붉은 빛나는 얼굴은 해쓱하게 되고 그 조그마한 눈을 아무리 인의 머리에서 피하려 하여도인의 허연 수염이 눈에 달리어서 인지를 따르는 듯하였다.

이 양 이하의 머리는 명회더러 맡아 조처하라고 분부하고 인지는 윤성으로 하여금 인의 머리 담은 쟁반을 들게 하고 무서운 곳에서 도망하는 사람 모양으로 숙주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윤성은 인의 머리 담은 쟁반을 들어 수양 대군 앞에 바싹 갖다가 놓았다.

허 후가 감기었던 인의 눈이 저절로 떠지어 수양 대군을 바라보는 듯하였다. 수양 대군은 무서운 생각이 아니 나도록 담력을 모으려 하였으나 인의 눈이 춤추는 촛불 빛에 번쩍번쩍할 때에는 전신에 찬 기운을 깨닫고 머리가 띵한 것 같았다.

“이래서 될 수 있나.”

하고 수양 대군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편달하여 눈앞에 밀려 들어오는 무서움을 쓸어버리는 듯이 손을 내어 두르며,

“이것을 여기 놓아 두면 어찌하느냐. 아직 어디 안 보이는 데 갖다 두려무나.”

하고 안 보려면서도 안이 머리를 한 번 더 보았다. 보고는 눈을 다른 데로 돌리려 하나 눈이 인의 머리에 붙이서 떨어지지를 아니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만히 인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앉았노라면 그 허연 수염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머리가 컸다 작았다 하는 것도 같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응, 보기 흉한 것이로군!’ 하고 수양 대군은 속으로 중얼거리고 등골에 찬 땀이 흐름을 깨달았다.

허 후는 마치 기색한 사람 모양으로 입을 반쯤 벌리고 눈으로는 수양 대군을 바라본 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인지도 전신에 땀이 흐름을 깨달았다. 손 끝과 발이 싸늘하게 얼어 들어옴을 깨달았다.

말 많은 이 계전도 아무 말 없이 작은 몸을 좌우로 흔들고 겁난 듯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 사철은 천정을 바라보고, 신숙주는 붓을 들고 종이에 무엇을 그적거리고, 최항은 자리를 못 잡고 대청으로 들락날락하였다. 오직 가만히 있는 것은 피투성이 된 황보인의 머리뿐이었다.

“어찌된 모양이냐?”

하고 왕은 바깥 형편을 엿보고 들어오는 궁녀더러 애타는 듯이 물으신다.---.

“아직 사람을 죽이는 모양이냐? 대관절 몇 사람이나 죽였어?”

“인제는 아이구구 하는 소리가 좀 뜸한 모양이요. 벌써 닭이 울었으니 아마 고만 죽이려는가보오 또 그만하면 죽일 만한 사람은 . 다 죽였을 것이니 더 죽일 사람도 없을 것이요.”

하는 것은 역시 밖에서 할 수 있는 대로는 사정을 염탐하고 들어오는 영양위 정종의 말이다.

“그래 황보인(皇甫仁)도 분명히 죽었소?”

하고 왕은 근심스럽게 종에게 묻는다.

“아마 분명한가 보오.”

“죽을 뿐 아니라,”

하고 늙은 궁녀가,

“황보 정승의 목까지 잘랐다 하오.”

하고 몸서리치는 듯이 몸을 한 번 떤다.

“목을 잘러? 죽였으면 고만이지목은 무엇하러 잘러.”

하고 왕은 혼잣말 모양을 하시고 낯을 찡그리신다. 이

“입직승지 최항이 아뢰오.”

하고 최항이 왕의 앞에 들어와 부복한다.

왕도 놀라시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놀랐다. 입직승지가 들어온다고 놀란 것도 없지마는 오늘 저녁에는 사람이란 사람은 다 나의 목숨을 엿보는 원수와만 같았던 까닭이다.

그래도 왕은 곧 위의를 수습하여,

“무슨 일이냐?”

하고 분명한 음성으로 물으시었다.

“야심하옵거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수양대군(首陽大君) 유와 우참찬(右參贊) 정인지(鄭麟趾)가 적괴인(仁), 양(穰) 등을 국문한 전후 수말을 탐전에 주달하올 줄로 계하에 대령하였소.”

하고 최 승지가 아뢰었다.

왕은 주저하는 듯이 눈을 들어 잠간 영양위를 바라보았으나 곧 결심한 듯이,

“들라 하여라.”

하고 수양 대군과 정 인지의 알현을 허하시었다.

늙은 궁녀들의 주선으로 왕의 자리를 방의 정면으로 옮기고 몇 사람 안되는 근시하는 궁녀들이 왕을 옹위하는 듯이 좌우로 늘어섰다. 힘껏은 왕의 위의를 갖추자는 늙은 궁녀의 정성이다. 그러고 영양위 부처는 현실로 물러나갔다.

이렇게 자리가 정돈되기를 기다려 수양 대군이 정 인지와 최항을 뒤에 달고 들어와 왕의 앞에 부복하여 예한 후에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 꿇어 앉고 그 뒤에는 정인지, 최항이 역시 팔을 짚고 꿇어 앉았다.

“적괴 종서를 제하온 것은 벌써 상주하였사옵거니와 신이 아까 어명을 받자와 남은 적괴도 일일이 불러 국문 하온 바 개개 실토하였소.”

하고 수양 대군은 잠간 고개를 들어 왕을 우러러 본다.

“신토하였소?”

하고 왕은 놀라는 듯이 묻는다.

“실토하였소. 인, 종서 등이 안평 대군 용을 받들어 유충하옵신 상감을 폐하려고 흉계를 꾸몄고 오늘 상감께옵서 영양위 궁 거동 게 오실 때를 타서 거사하기로 하였더란 말을 개개 실토하였소.”

이러한 수양 대군의 말을 이어,

“우참찬 정 인지 아뢰오.”

하고 정 인지가 슬행(膝行)으로 한 걸음 왕의 앞으로 가까이 나아와 거의 이마가 땅에 닿을 듯이 엎디어 아뢴다---.

“진실로 수양 대군의 충성과 공로는 옛날 주공(周公)에 비길 것인 줄로 아뢰오. 만일 수양 대군이 아니었던들 저 흉악한 적도를 뉘 있어 제하였사오리까. 인, 종서의 무리가 선조의 황송하옵신 고명을 받았으니 국궁진췌하여 충성으로 성상을 보좌하옴이 지당하오려든 한갓 세도를 믿어 감히 불퀘한 뜻을 품었사오니 신인공노(神人共怒)할 일인 줄 아뢰오. 그러 하오나 수양 대군의 충성으로 대난을 미연에 방지하였사온즉 막비 성덕인가 하옵거니와 논공행상(論功行賞)을 밝히 하시와 수양 대군의 충성과 공로를 표창하심이 지당한 줄로 아뢰오.”

이렇게 정인지가 수양 대군의 공을 칭송하고나서 앉은 대로 고개를 돌리어 뒤를 돌아보며 최 항더러 귓속말로,

“그것 들여 오게”

한다. 최항은,

“제가요?”

하고 원치 않는 뜻을 보인다.

“달리 누구 있나.”

하고 인지가 재촉한다.

최항은 이런 일까지 왜 날더러 하라는고 하고 마음에 심히 불평하였으나 인지의 말을 어길 수도 없어서 일어나 나아갔다.

최항이 놋쟁반에 담긴 황보인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들어다가 인지의 앞에 놓으려 하였으나 인지가 손가락으로 수양 대군을 가리키므로 무릎 걸음으로 수양 대군의 머리 앞에 놓았다. 수양 대군의 앞이면 곧 왕의 앞이었다. 놓고 나서 백지를 걷었다. 하얀 백지, 붉은 피, 해쓱한 얼굴. 아무리하여도 감기지 아니하는 눈, 망건도 벗기고 풀어 헤친 백발.

왕은 벌떡 일어나시며,

“이게 무에야?”

하고 놀라는 소리를 치시었다. 누군들 이런 광경을 가끔 보랴마는 열 세 살 되신 어린 왕은 일찍 이런 것을 생각하신 일도 없었던 것이다.

“상감, 놀라실 것 없소. 역적 괴수 황보인의 머리요.”

하고 수양 대군도 따라 일어나서 읍하였다.

왕은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다시 자리에 앉으시며 쟁반에 놓인 황보인의 머리를 이윽히 보시었다.

이때에 정인지가,

“상감께 아뢰오.”

하고 그 여무진 목소리로 아뢴다. ---.

“이제 역적 괴수는 다 멸하였사온즉 국가에 큰 근심을 덜었사오나 군국 대사가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많사온즉 가장 충성 있고 어진 사람을 택하시와 정사를 맡기심이 지당합신 줄 아뢰오. 그러하온데 수양 대군 유는 종실에 머리뿐더러 이번 인, 종서의 무리를 토멸하는데 원훈이 온즉 복걸 성명께오서는 수양 대군 유로 영의정(領議政) 부사(腐史)판 이병조겸내외(內外)명마도통사를 하이시와 군국 중사를 맡기심이 옳을 줄로 아뢰오. 이것은 유독 노신의 뜻만 아니옵고 백관의 뜻이다 그러한 줄 아뢰오.”

이것은 무른 오래 전부터 수양 대군과 정인지와 서로 의논하고 짜 놓았던 계획이다. 이래 보아서 만일 왕이 옹하시지 아니하거든 위협을 하여 보고 위협으로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거든 왕이야 어찌 생각하시든지 어린 아이로 제치어 놓고 수양 대군과 정 인지 뜻대로 국사를 맡아 하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할 필요는 없었다. 왕은 어리시지마는 그 총명으로 대세가 어찌할 수 없음을 통찰하시었다. 그래서 제왕의 특유한 지혜와 권위로 웃는 낯을 지으며,

“숙부 공로를 내가 아오. 앞으로는 군국 대사에 어린 나를 갈 도우오.” 하시었다.

이리하여 즉석에서 수양 대군은 영의정 이조판서 병조 판서 겸내외병마도통사라는 전무후무한 겸직으로 일국에 중요한 권세를 혼자 맡게 되었으니 이것은 또한 정인지의 공이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수양 대군은 즉석에서 왕께 청하여 정인지로 좌의정(左議定), 한확(韓確)으로 우의정(右議政)을 삼고, 허 후(許詡)로 좌찬성(左贊成)을 삼고, 최항(崔恒)으로 도승지(都承旨)로 삼았다.

이리하여 밤새도록에 국가의 정권을 전혀 수양 대군과 정 인지 일파의 손에 거두어버리고 밝는 날 아침에 일변 소위 적도(賊徒)여당(餘黨)을 잡아 들이며, 일변 육조(六曹), 삼사(三司)와 수령 방백 중에 황보인, 김 종서 계통이라고 인정하는 자를 잡고 정인지 계통인 자와 수양 대군의 문객들을 동용하였다.

이날에 좌의정 정인지가 백관을 거느리고 수양 대군을 포양하자는 뜻으로 상소를 하였다.

수양 대군을 포양하는 요지의 그 공이 주공(周公)과 같다고 함이었다. 주공이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잘 도와서 성인(聖人)이란 존치을 듣거니와 수양대군도 어린 조카되는 왕을 충성으로 도움이 주공과 같다는 것이다.

수양 대군의 공과 덕이 주공과 같고 아니 같은 것은 어찌 되었든지 우선 왕의 이름으로 수양 대군이 한 일을 옳게 여긴다. 합법(合法)하게 여긴다는 뜻을 중외에 선포하는 것은 가장 긴하고 가장 급한 일이다. 왜 그런고하면 수양 대군이 황보인, 김 종서 이하 선조(先朝)의 고명(顧命)받은 중신(重臣)들을 일일지내에 죽여버리었다 하면 이것은 큰 충신이 되거나 큰 역적이 되거나 둘중에 하나일 것이니, 이 일에 대하여 최후의 판단을 하는 것은 결국 민중의 양심이려니와 당장에 가부를 결정할 이는 오직 왕이 있을 뿐인 까닭이다. 왕이 수양 대군의 일을 옳다 하고 말하면 수양 대군은 옳고 그의 손에 죽은 자들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그 집과 자녀들까지도 적몰을 당하여야 하는 것이다.

정인지가 무엇보다도 시급히 수양 대군의 공을 포양하기 위하여 백관을 거느리고 상소하는 뜻을 알 것이다.

왕이 이것을 거절할 리가 없다.

인지는 왕께 청하여 집현전(集賢殿)으로 하여금 교서(敎書)를 기초(起草)하게 하였다. 이것은 곧 집현전이 수양 대군의 공을 승인하는 결과가 되는 까닭이었다.

집현전에 사람을 보내었더니 마침 입직한 유성원(柳誠源)이 있다가 이 교서 짓는 일을 맡게 되었다. 유성원은 이 교서를 짓고 나서, 집에 돌아가서 통곡하였다 한다.

그 교서의 대략은 이러하였다.

이 교서의 대의를 우리 말로 쓰면 이러하다.

“숙부(叔父)는 천성이 충효롭고 기운과 날램이 세상에 으뜸이며 부귀성색은 거들떠 보지도 아니한다.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기니 편안하나 험하나 처음이나 나중이나 어찌 그 절조를 변할 줄이 있으랴.……내 어린 사람으로서 집안이 불행하여 용(瑢=안평 대군)이 지친의 자리에 있으면서 외람된 마음 ㅇ르 품고 황봉인, 김 종서, 이 양, 민신, 조극관, 윤처공, 이 명민 같은 무리가 그윽히 한 패가 되니 내가 외로이 서서 어찌할 수 있으랴. 숙부가 용단과 의용을 분발하여 번개같이 대번에 쓸어 버리고 말았거니와 숙부가 아니런들 내가 어찌 이처럼 할 수 있었을까.……옛날 주공이 관채를 메고 왕가를 편안히 하였거니와 이번 숙부의 일이 그와 같다. ……경은 주공의 재주와 아름다움을 갖추었고 게다가 주공의 큰 공까지 겸하였으며 나는 성왕과 같이 어린 데다가 또 성왕과 같이 어려운 판국을 당하였으니 나는 성왕이 숙부를 믿던 듯이 하려니와 숙부도 주공이 성왕을 돕던 듯이 나를 도우라…….”

이 교서는 무론 수양 대군에게 내린 것이다. 수양 대군의 지극히 갸륵하고 높은 공을 왕께서 가상히 여기심을 표한 것이다. 그렇지마는 이 교서에는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뜻이 있으니, 그것은 첫째 안평대군 용(安平大君瑢)을 역적의 괴소루 몬 것이요, 둘째 황보인, 김 종서 이하 문종의 고명을 받아 섭정하던 제신이 다 안평대군의 당이 되었다 함이요, 셋째는 이번 수양 대군이 질풍신뢰적으로 김종서, 황보인 등을 암살한 것이 가장 충성되고 갸륵한 공이라 하는 것이요, 나중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하니까 수양 대군에게 군국 대사를 들어 맡긴다는 것이었다.

이 교서는 쓰기는 유 성원이가하였으나 글의 내용과 요점은 정인지가 불러 준 것이다.

“어떠하오니까?”

하고 인지는 이 교서 초를 수양 대군에게 보이었다. 수양 대군은 그것을 받아서 읽다가 잠간 얼굴을 붉히며,

“과하지 아니하오?”하였다.

왕은 근정전에 출어하시와 문무 백관의 하례(이번 정란에 대하여)를 받으시고 손수 이 교 서르 수양 대군에게 내리시고 도승지 최항은 탑전에 서서 이 교서를 낭독하였다. 그리하는 동안에 수양 대군은 부복하여 고개를 들지 아니하고 백관들은 과연 그 교서의 뜻이지당하 외다하는 듯이 가만히 한 번씩 고개를 끄떡이는 듯하였다. 이제부터 수양 대군이 세도로구나 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수양 대군을 한 번 가까이 할까 하고 속으로 인아 친척의 반연을 찾아 보았고 그보다도 어찌하면 고명 받은 제신이 다 죽는 판에 정 인지 하나는 죽지 아니 하였을 뿐더러 우참찬에서 껑충 뛰어 좌의정이 되었는고 하고 다시금 인지의 조그마한 몸과 꾀 있을 듯한 얼굴을 치어다보며 부리워하는 침을 삼켰다.

수양 대군이 이렇게 정식으로 영의정이 되매 궐내에는 하례하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이 날에 하례 받는 주인은 무론 수양 대군이지마는 버금으로 하례를 받을 이는 우참찬으로 대번에 좌의정에 올라띈 정 인지와 예조 판서로서 대번에 우의정에 올라 띈 한 확과 집현 교리로서 대번에 좌찬성(左贊成)에 올라 띈 신 숙주, 경덕궁 궁직으로서 군기사(軍器寺) 녹사(錄事)가 된 한명회(韓明澮) 등일 것이다. 그뿐일까, 면칠만 지나면 정란 공신으로 군(君) 이 되는 것이다.

과연 이날에 가장 기쁜 빛을 보이는 이도 정인지, 한 혹, 신숙주, 이계전 등이었다. 어제까지 모르는 체하던 사람들도 오늘에는 다투어 그들에게 요공의 말과공의 잔을 권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그 요공의 말과 술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받았다. 술이 얼근하게 취하매 모두 무릎을 치고 소리를 내어 웃고 떠들었다. 태평 성대가 일시에 임한 듯하였다. 수양 대군도 거의 체면을 차리지 못하리만치 회불자승하였다. 만인의 우러럴보는 시선이 일신에 모임을 깨달은 때에 그는 전신이 가려운 듯한 기쁨을 깨달아서 웃고 웃고 또 웃었다.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수양 대군이 웃으면 웃고 무릎을 치면 같이 치고 애써 그의 비위를 맞추는 이는 물어 볼 것도 없이 이계전(李季甸)이었다. 신 숙주는 과도하게 기쁜 빛을 보이지 아니 하였다 그는 그 속에 든 . 글 구절이 창자를 굵음을 깨달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때에 한편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 술도 아니 먹고 고기도아니 먹고 말도 아니하고 웃지도 아니하는 이가 있으니, 그는 허 후(許詡)다. 허 후는 이번 통에 목숨을 부지하였을 뿐더러 좌참찬이란 벼슬 자리도 메우지는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수양 대군의 특별한 생각이다. 자기의 차석이던 정인지가 좌의정이 되어 까맣게 위로 뛰어 올라간 때에 좌참찬이라는 옛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다지 명에스러운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이 처지에서는 허 후 같은 사람으로는 목숨과 벼슬을 아울러 떼우리 아니한 것만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쁜 잔치에 그는 또 무슨 궁상을 피우노라고 저 모양을 하는고.

그렇지마는 이 기쁜 판에 한 편 구석에 허 후 한 사람이 뚱딴지로 있는 것을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자부심이 강한 수양 대군은 오늘 같은 날에 이 자리에 감히 기뻐하지 아 니할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주목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 계전의 눈이 자주 허 후에게로 쏠렸다. 이 계전은 이러한 좋은 기회를 자기가 수양 대군에게 긴하게 보이는데 이용하지 아니할 사람이 아니다.

“나으리!”

하고 이 계전은 수양 대군의 소매를 끌었다.

“저기를 보시오. 저 허 참찬을 보시오.”

하고 그는 곁눈으로 허 후 앉은 곳을 한 번 흘겨보며 손가락으로 허 후 있는 방향을 가리킨다.

수양 대군은 무슨 일인가 하고 몽롱한 취안으로 계전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는 허 후가 잔뜩 양미간에 내천자를 쓰고 앉아서 좌중에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광경이 눈에 뜨일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몸을 좌우로 흔들고 앉았는 양이 보인다.

“응, 또 저러는군.”

하고 수양 대군은 한 번 허 후를 노려보고는 그거 내버려 두어라 하는 듯이 여전히 술을 마시고 담소하더니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듯이 다시 허 후를 바라보며,

“여보 허 참찬, 왜 술도 안 자시고 그렇게 찌루리고만 앉았소? 거 원, 무어란 말이요?”

하고 술 치는 기녀(妓女)를 가리키며,

“이애, 저기 저 대감께 잔 가득 부어 드리되 잡수시게 하지 못하면 네가 벌을 쏠 테다.……자, 그 잔을 받으시오. 오늘같이 국가에 경사가 있는 날에 그 이맛살이 무엇이란 말요.

거 원.”

하고 껄껄 웃는다. 만좌의 시선은 허 후에게로 모인다.

허 후는 술잔을 들고 곁으로 오는 기녀를 무서운 것이나 막는 듯이 손을 들어 막으며,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조부 기일(忌日)이 있어서 재계를 하는 것이요.”

하고 머리를 흔든다.

“그러면 몰라도.”

하고 수양 대군은 더 추구하려고도 아니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취할이만큼 술도 취하고 부를이만큼 배도 불러 화재는 황보인, 김 종서 등의 머리를 효시하고 그 자손들을 죽이고 가산을 적물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돌아갔다.

“아, 효수를 하다 뿐이요? 신인(神人)이 공노(共怒)할 대역부도(大逆不道)여늘 단불용대(斷 不容貸)하고 외률처단할 것이지. 다시 여러 말이 있을 리가 있소? 안 그렇소오니까.”

하고 계전은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는 나중에는 수양 대군과 정 인지를 번갈아 본다.

수양 대군과 정인지는 다만들을 뿐이요, 말이 없었다. 그러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는 듯이 웃음을 머금은 눈으로 좌중을 둘러볼 뿐이다.

이 눈치를 보고는 저마다 제 의견을 세워볼 양으로, 제 의견을 세워본다는 것보다도 수양 대군과 정 인지의 원하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아맞히려고, 그래서 자긱가 가장 긴히 보이려고 한마디씩 의견을 말하였다. 그런데 그 의견들은 마치 어떻게 하면 황보인, 김 종서들의 죄를 가장 크고 흉악하게 만들까 하는 것을 경쟁하는 듯하였다.

“그제야 원형리정(元亨利貞)이 아니요. 그놈들을 그놈들을.”

할 뿐이요, 누구도 감히 황보인, 김 종서 등의 죄를 고만하고 말자는 이는 없었다.

“그럴 것은 없어. 이미 저희들이 제 죄에 죽었고 또 일을 미연(未然)에 방지(防止)하였으니까 그렇게 자손까지 죽일 것이야 있나.”

하는 것은 수양 대군이다.

“어, 안될 말씀이요.”

하고 이 계전은 가슴을 떡 벌리고 어성을 가다듬어,

“나리께서는 비록 성인의 마음으로 궁흡 극악한 그놈들의 자손지도 어여삐 여기심이거 니와 어디 국법을 문란 할 수야 있소오니까. 인, 종서 등 이 번역모에 참에하였던 놈들은 효수노륙(梟首孥戮)하여 만세 난신적자에게 경계를 삼는 것이 지당한 줄 아뢰오.”

하고 요두 전목한다.

계전이 수양 대군을 가리키어 성인(聖人)이라 한 메는 정 인지도 속으로 웃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누가 감히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가 사람이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이 가장 잘 수양 대군의 마음을 알아맞춘 것인 까닭이다.

수양 대군도 계전의 말에 마음이 흡족하였다.

‘오, 네 소원대로 병조 판서 한 자리 주마.’ 하고 수양 대군은 속으로 웃으면서 계전을 본다.

‘잘고 잔망하고 경망하건마는 비위를 잘 맞추거든. 보기를 시킨단 말야.’ 하는 생각으로 수양 대군은 계전의 조그마한 몸을 본다.

계전은 의기 양양하여 ‘오늘 수훈은 내다’ 하는 듯이 일좌를 한 번 둘러본다. 그러다가 눈이 한편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에 계전의 얼굴에는 발끈하는 불쾌한 빛이 보인다. 그것은 그 의 조카 이개(李塏)와 이 개의 매부 허조를 본 까닭이다. 허조는 허 후의 아들이요, 집현전 학사요, 수찬(修撰)이다.

“아니꼬운 놈들이!”

하고 계전은 자기를 천착스럽게 부정한 수단으로 공명을 탐한다고 공격한ㄴ 조카와 조카 사위를 흘겨본다.

‘너희 놈들이 미워서라도 후(詡)란 놈은 없애고야 말걸.’ 하고 통쾌한 듯이 한 번 웃는다.

“그러면.”

하고 마침내 인지가 수양 대군을 향하여,

“백관의 뜻이 다 저러하니 무가내하외다.”

하여 황보인과 김종서 이하 이번 사건에 관계된 자는 효수하고 자손을 멸하는 죄를 아니 쓸 수 없다는 뜻을 말하였다.

수양 대군이 장히 마음에 대견하여 그리하라는 명령을 내리려 할 때 허 후ㅏ 나앉으며, 글세 이 사람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철여의로 때려죽이고도 유위부족항 효수노륙(梟首孥戮)을 한단 말이요? 종서는 소인이 친분이 없으니까 그 심지를 잘 안다고 할 수가 없소마는, 지어 인(仁)하여는 소인이 그 위인을 잘 알거니와 다른 일은 몰라도 역모를 할 리는 만무한 것이요. 황보인의 위인이 어떠한 것은 천하가 다 알겠지마는 오래 그 권고(眷 顧)를 받은 좌의정 정 정숭이 소인보다 잘 알 것이요. 하니까……”

하고 정 인지를 정정숭이라고 부를 때에는 정정승의 얼굴은 주홍 같이 빨갛게 되었다.

그러나 정 정승의 이마에 찬 땀방울이 맺히기 전에 수상(首相)인 수양 대군의 눈에는 살기가 서며 눈초리가 쭉 위로 올라 뻗고 관자놀이가 들먹들먹한다. 폭풍이 일어나려고 검은 구름이 뭉개뭉개 수양 대군의 눈에서 일어나는 듯하였다. 만좌는 다 자기가 무슨 벼락을 당하는 듯하여 귀밑으로 찬바람이 휙휙 지나감을 깨달았다.

“그래 네가.”

하고 수양 대군의 홍종 같은 소리가 터지며 불을 뿜는 듯한 눈살이 바로 허 후를 쏜다. 존장이 넘는 허 후를 보고 ‘너’라고 나오는 것이 벌써 여간한 진노가 아니다.

“그래 네가 오늘 고기를 아니 먹는 것이 이 때문이로구나. 응?”

“그러하오. 조정원로(朝廷元老)가 한날에 다 죽었거든 허후(許詡) 홀로 살아난 것만 끔찍 하지. 차마 고기야 먹을 수가 있소.”

하고 두 눈에서 눈물이 좔좔 흐른다.

‘이놈을, 이놈을, 이놈을 내어 베어라!’ 하는 말이 목까지 나오는 것을 수양 대군은 꿀떡 참고,

“어, 괴이한 손 같으니. 물러가오. 보기 싫의.”

하였다. 어제부터 허 후의 하는 언행이 일일이 자기를 거역하는 일이언마는 수양 대군은 그의 재덕을 아끼어 기어코 자기 사람을 만들고야 말려 한 것이다.

사람들은 허후의 목이 몸에 불어서 집에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도 생각하였다.

이렇게 궐내에서는 연락이 벌어진 때에 밖에서는 이번에 수난한 제신의 자손이 참혹하게 학살을 당하였다. 여자는 목숨은 살려 관비(官婢)를 삼고, 남자로 생긴 이는 젖먹이 어린것 까지도 목을 잘라 죽이었다.

이날에 죽은 사람을 어찌 이루 헤아리랴마는 그중에 중요한 몇 만 꼽자면---, 황보인(皇甫仁)의 아들 석(錫), 흠(欽) 형제와 손자 갓난이, 경근(京斤)들.

김종서(金宗瑞)의 손자석대(石臺), 대대(大臺), 조동(祖同), 만동(萬同)(승벽(承壁)은 수일 뒤에 해주에서 죽었다), 이양의 아들 승윤(承胤), 승효(承孝)와 손자 계조(繼祖), 소조(紹祖), 장군(將軍).

민신(閔伸)의 아들 보창(甫昌), 보해(甫諧), 보석(甫釋)과 손자 돌이(石伊).

윤처공(尹處恭)의 아들 경(逕), 위(渭), 탁(濁), 식(湜)과 손자 갯동(㖋同), 효동(孝同).

이 모양이다. 이렇게 죽은 사람 중에는 삼십, 사십된 어른도 있거니와 두 살, 세 살 되는 젖먹이도 있고 난지 백날이 못 찬 핏덩어리도 있었다.

어른들은 잔뜩 뒷짐 결박을 지우고 상투를 풀어 입이 하늘로 향하도록 잔뜩 고개를 뒤로 제처 붙들어매어 수레에 싣고 역적 아무의 아들 또는 손자 아무개라고 대서특서한 패를 달고 장안 대도상으로 끌고 돌아다닌 뒤에 남대문 밖 새남터에서 목을 베어 죽이고, 어린 아이들은 어떤 이는 어른 탄 한 수레에 실어 어미를 아니 떨어진다 울고, 어떤 이는 바로 그 집에서, 그 부도의 앞에서 혹은 모가지를 비틀어서도 죽이고, 혹은 발목을 들어 댓돌 위에 던지어서도 죽이고 금부나졸의 마음대로 장난삼아 죽여버렸다.

민신(閔伸)은 현릉(顯陵) 비석소(碑石所)에 가 있는 것을 새벽에 양정(楊汀)을 보내어 세수하는 것을 뒤로 살살 돌아 목을 베어 죽이고 윤처공(尹處恭)은 집에 누워 앓는 것을 달려들어 병석에서 죽여버렸다.

이야기가 좀 뒤로 돌아간다.

김종서는 수양 대구 이 돌아간 뒤에 식경이나 있다가 도로 살아나서 사랑하는 야화의 손에 물을 받아 먹었다.

종서는 정신이 들매 곧 일이 어떻게 되는 것임을 분명히 보았다.

“내가 지금 궐내에 들어가야 할 터이니, 보교를 하나 불러라.”

하여 가족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못하십니다 하고 만류하는 이가 없었다.

이보다 먼저 원구(元矩)가 종서의 집에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곧 성문에 다다라,

“정부(政府)에 아뢰어라, 정승이야래(夜來)에 자객에게 맞아 기지사경이니 상감께 주달하여 약을 내리시게 하라!”

하고 소리를 치나 문을 지키는 군사들은 벌써 한 명회의 지휘를 받았으므로 못 들은 체하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래서 원구는 돈의(敦義), 소덕(昭德), 숭례(崇禮) 삼문을 다 돌아도 대답이 없으므로 황망히 종서의 집에 돌아오니 이때에 마침 종서가 소생하여 머리의 상처를 싸매고 부인네 타는 가마를 타고 성내로 들어가려고 집을 떠나는 길이었다.

“대감, 어디로 가시오?”

하고 원구는 놀라서 가마채를 붙들었다.

“오, 자넨가.”

하고 종서는 가마 문으로 손을 내밀어 원구의 손을 잡으며,

“지금 수양(首陽)이 작란(作亂)을 하는 모양이니 아무리 하여서라도 내가 입궐을 해야겠네. 국가에 대변이 날 모양이니 모두 내 불찰일세. 자네게 뒷일을 맡기네. 시각이 바쁘니 지체할 수는 없네……어서 가자.”

하고 교군을 돌아 나간다.

그러나 원구의 말과 같이, 또 원구가 당한 바와 같이 처음에 돈의문에, 다음에 소덕문에 나중에 숭례문에 가서 문을 열어 달라 하여도 대답이 없어서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로 종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었다. 야화와 승규의 처 허씨(許氏)는 밤을 새워 애통과 정성으로 종서를 간호하였다. 야화의 정성도 끔찍하거니와 승규의 처 허씨는 죽은 남편도 잊어버린 듯이 오직 시아버니를 위하여 애를 썼다. 그는 잠간 잠간 승규의 시체를 누인 방에 다녀와서는 시아버니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종서는 혹시 눈을 떠서 야화와 며느리를 바라도 보고 혹시 헛소리도 하거니와 대부분은 혼수 상태에 있었다.

두골이 그렇게 갈라지고도 아직 생명이 붙어 있는 것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승규 있느냐?”

하고 종서는 홍동 중에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승규는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다.

“초헌 내오너라. 상감께서 부르신다.”

이러한 말도 하고는 아마 눈앞에 상감의 모양을 보는지 두 손을 들어서 읍하였다.

“내가 죽거든 야화를 제 나라로 돌려보내 주어라.”

이런 말도 하였다.

“이애들 불러라.”

하여 손자 넷을 불러 세우고(제일 어린 만동이는 네 살, 제일 위 되는 석대가 열 여덟 살)

“내가 죽은 뒤에 아마 나를 역적으로 몰고 너희들을 다 자아 죽일는지도 모르니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대장부답게 웃고 죽을지언정 아녀자와같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빛을 보이지 말아라.”

하고 훈계도 하였다.

아직 채 밝기도 전에 이흥상(李興商)이 군사 수신인을 거느리고 종서의 집을 습격하였다.

이흥상은 김종서 집 사랑에 다니다가 수양 대군 궁으로 옮아간 무뢰한이니, 홍달손부하의 군관이다. 수양 대구이 황보인까지 때려 죽인 뒤에 생각난 것이 김종서가 다시 살아나 지나 아니하였나 하는 것이었다. 김종서를 가리우는 승규를 죽인 것은 분명하지마는 김종서는 임운의 철퇴에 머리를 맞고 땅바닥에 쓰러진 것은 확실하나 꼭 죽었는지 아니 죽었는지는 분명치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보낸 것이 이흥상이다.

“가 보고 아직도 살았거든 끌어오고 죽었거든 모가지만 잘라 오라.”

하는 명을 받아가지고 이 흥삼은 자기의 은인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길을 떠난 것이다.

대문이 부서지어라 하고 두드리며,

“문 열어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을 보고 허씨는 알아차렸다. 그러나 황망한 빛도 없이 손수 종서의 몸을 안아 종서의 침실에서 승규의 방으로 옮기어 승규의 시체와 가지런히 눕히고 홑이불로 얼굴까지 가리워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이 하고 소병풍을 둘러 놓았다.

흥상은 군졸들로 사방을 지키게 하고 자기는 칼 베어든 장사 삼사인과 함께 종서의 방으로 달려들었다.

“이놈 종서야, 나오너라.”

하고 흥상은 때를 만난 듯이 날뛰었다.

흥상은 종서가 평상시에 거처하는 방에 없음을 보고 방방이 문을 열어 제치고 ‘이놈 종서 야!’하고 날뛰다가 마침내 승규의 방 앞에 다다라 문 고리를 잡아채며,

“문 열어라.”

하고 소리를 치었다. 집에 있던 개와 닭들이 모두 부쩝할 곳을 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종서의 손자, 손녀 되는 아이들은 마치 무슨 구경터에나 있는 듯이 가만히 그들이 날뛰는 양만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어떤 놈들이완대 대신 댁 내정에 돌입하여 이 야료란 말이냐. 이놈들 목숨이 아깝거든 냉큼 물러나 가거라.”

하고 승규의 처 허씨가 방 안에서 호령을 한다. 이 의외의 호령에 흥상 이하로 여러 군졸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히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이흥상이 기운을 내어,

“허, 이년 보아라. 호령하는 구나.”

하고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가 달려드는 허씨와 야화를 머리채를 끌어 문 밖에 끌어내고 나중에 종서를 끌어내어 마당에 굴리고,

“이놈, 일어나서 가자.”

하고 발길로 수없이 냅다 질렀다.

종서는 눈을 번쩍 떠서 흥상을 보더니,

“내가 걸어갈 수 있느냐. 초헌을 들여라.”

하고 곁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쓰러진 야화와 면리를 바라보았다.

“흥, 초헌. 에라 귀찮다.”

하고 이흥상은 칼을 들어 종서의 목을 잘랐다.

종서 이 목을 베어가지고 홍상의 무리가 종서 집 안팎을 뒤져 값기는 물건을 노략하고 돌아간 뒤에 승규의 처 허씨는 마당에서 일어나 야화와 함께 종서의 목 없는 시체를 들어 안방으로 모시고 전부터 준비하였던 수의를 내어 서투른 솜씨로, 그러나 가장 정성스럽게, 가장 슬프게 엄습을 하였다.

야화도 허씨를 도와 가장 침착한 태도로 이 모든 일을 하였다.

허씨는 오늘 안으로가문이 멸망할 줄ㅇㄹ 잘 알았다(허씨는 허 후(許詡)의 당질녀다). 시아버니가 손자들을 불러 놓고 한 유훈이 없더라도이 일이 어떠한 일인지는 알만한 허씨였다.

어떻게 이날ㅇ 사랑하는 아들들까지도 모두 죽여버리고 딸들은 관비의 천역을 하게 될 것을 잘 알면서도 가장 태연하였다. 허씨 부인은 아들 딸의 머리를 풀리고 무색 옷을 벗기고 만 일에 어령ㄴ 일이 생길 때에 어떻게 할 것을 분부하고 또 아직도 도망하지 아니하고 집에 남아 있는 비복들을 불러 종 문서와 아울러 약간 재물을 분급하여 속량을 시키고 만일 뜻이 있거든 후일에 선대감 이하 가족들의 해골이 가는 곳이나 알아서 흙이나 깊이 묻어 달라 하였다.

비복들은 다 눈물을 흘리고 땅바닥에 이마를 조아리며 어떤 늙은이는 상전댁이 대대로 적공적 덕을 하였거든 이렇게 될 수가 있느냐고 통곡하다가 댓물에 머리를 부딪쳐 기진하였다.

그리고 허씨 부인은 늙은 종 충남(忠男)이 내외를 불러 약간의 금은 패물을 주며 그것을 팔아 노자를 삼아가지고 야화를 야인의 나라에 데려다 주라는 뜻을 말하였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선대감 유언이시니 부디 그대로 해라.”

이렇게 허씨 부인은 충직한 충남이 부처에게 야화를 부탁하였다.

비복들 중에는 젖먹이 도련님들은 감추어 기르기를 원한다는 이도 있고, 혹은 자기네 자식과 바꾸어 죽게 하기를 원하는 이조차 있었다.

이러한 모든 분부를 하는 동안에 야화는 별로 슬퍼하는 빛도 없고 가장 태연하게 아주 무 심한 사람 모양으로 우두커니 종서의 시체 곁에 앉아 있었다. 언제까지라도 그 곁을 떠날 뜻이 없는 사람같이.

그러나 오래지 아니하여금부도사(禁府都事)가 십여 명 부하를 거느리고 종서 집에 달려들었다. 나졸들은 도망할 근심 있는 짐승들이나 붙들려는 듯이 불량한 눈방울을 굴리고 말 소리를 유난히 쾅쾅 울리면서,

“이놈들아, 꼼짝말고 있던 자리에 죽은 듯이 있으렷다. 연이나 놈이나 꼼짝만 하거든 모 가지나 허리나 두동강 날 줄 알아라.”

하고 소리소리 외치며 방망이로 이문 저문 두들겨 부순다.

무론 아무도 도망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식구들은 모두 머리를 풀고 시체 있는 방에 모여 있어서 지극히 고요하게 모든 생기는 일을 기다렸다.

금부나졸들은 시체 있는 방으로 달려들어 석대(石臺), 대대(大臺), 같은 큰 남자들과 조동(祖同), 만동(萬同) 같은 세 살, 네 살 된 아이들까지도 머리채를 끌어내어 잔뜩잔뜩 결박을 지우고 그리고도 유위 부족하여 공연히 발길로 차고 굴리었다.

“엄마, 엄마.”

하고 목이 매어 우는 세 살 먹은 만동을 어떤 나졸 하나가 마당에서 흙 한 줌을 쥐어 우는 그 입에 틀어막아버리니 꺽꺽하고 숨이 막히어 울지를 못하였다. 이것을 보고 나졸들은 좋아라고 웃었다.

“앗게, 뒈지리. 고것은 흥 윤성이가 통으로 아작아작 먹는다고 산 채로 가져오라데.”

한 놈은 이렇게 말하였다.

“고고 이쁜데. 내나 주었으면.”

이 모양으로 무지한 나졸들은 야화와 승규의 딸 소저를 보고 희롱하였다. 그러고 달려들어 결박하려 할 때에 허씨 부인과 소저는 나는 듯이 품에서 비수를 끄내어 새파란 그 끝을 물고 땅에 엎어지었다. 야화도 그보다 더디지 않게 품에서 칼을 내어 허씨 부인의 뒤를 따랐다.

죽일 사람도 서울 안에 있는 사람은 거의 다 죽이고 시골 있는 사람은 비밀한 명령을 띈 사람들이 떠나가고 귀양 갈 사람들은 귀양길을 떠나고 귀양 보낸다 칭하고 뒤로 자객을 보내어 길에서 없이해 버릴 사람은 또 그렇게 하기로 작정이 되었다.

종로 네거리 한복판에 무슨 장막이나 치려는 듯이 드문드문하게 둥그렇게 들려 박아 놓은 길 반씩이나 잔뜩넘는 소나무 말뚝 끝에는 이번 정난 통에 역적으로 물려죽은 이들의 머리가 눈을 부릅뜨고 데롱데롱 매달려 있고 그 밑에는 말뚝이 패를 달아 희게 만들고는 그 모가지 입자의 죄명과 성명을 대자로 썼다---.

“대역부도(大逆不道)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 적괴(賊魁) 황보인(皇甫仁)”

“내역간흉 김종서(金宗瑞)”

이 모양으로 사람 따라 조금씩 직함이 다르고 또 인물의 대소문 따라 직함이 장단이 있었다. 김 종서는 황보인과 같이 직함이 길어야 할 것이지만는 아마 미운 것이 지나치어서 ‘대역간흉’ 넉 자만으로 그친 모양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 앞을 지날 때에 눈을 감았고 더러는 눈물을 흘렸다.

이제 남은 것이 안평대군(安平大君) 용(瑢)이다. 안평대군은 독자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세종 대왕의 셋째 아드님(대군으로)이요, 금상의 숙부요, 수양 대군과는 아버지도 같고 어머니도 같고 또 항렬로 바로 다음 되는 아우님이다. 그러하건마는 황보인, 김 종서를 역적을 만들자면 어느 세력 있는 대군(큰 뜻을 품으려면 품을 수 있는 대군) 하나는 희생하지 아니 할 수 없고, 그렇다하면 전국 선비의 숭앙을 받는 안평 대군을 두고는 달리 구할 이가 없을 것이다. 이래서 안평 대군은 자기도 영문도 알지 못하는 동안에 그만 조카님 되시는 금상마마를 없이하고 자기가 왕이 되려는 불궤한 뜻을 가지고 역모를 하던 괴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안평 대군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서강 담담정에서 시를 읊고 술을 마시는 동안에 소위 정란이 끝나고,

“간신 황보인,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 용과 어울어지어 널리 당파를 모아 안과 밖에 나누어 응거퀘 하고 그윽히 결사대를 양성하며 몰래 번읍 병기를 실어 들여 역모를 하는도다.

간악한 무리들이 이제 다 죽음을 당하였거니와 안평 대군 용은 지친인지라 차마 법대로 할 수 없이 밖에 안치(安置)하노라.”

는 전교(傳敎)가 내리어 그 아들 우직(友直)과 함께 집을 쫓겨나고 서울을 쫓겨나서 강화(江華)로 귀양 가는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인지는 후환을 끊기 위할 것을 목적으로 안평 대군을 죽여버리기를 주장하였으나 수양 대군은 형제지정에 차마 죽이기까지 할 수는 없다 하여 안평 대군 부자가 겨우 목숨을 부지 하게 되었다.

안평대군의 죄를 결정하는 교서는 정인지가 부르고 권람이 붓을 들어 이 계전, 최항이 도와서 지은 것이니, 밤이 깊도록 이것을 지은 것이 수고롭다 하여 수양 대군은 왕께 여짜와 내관을 시키어 술상을 내리시게 하였다.

이튿날 새벽에 금부도사(禁府都事) 신선경(愼先庚)이 십여 명 나졸을 대동하고 안평 대군 궁을 엄습하여 아직 침실에 있는 안평 대군에게 대역죄로 강화로 귀양하게 되었으니 시각을 지체말고 곧 발정하라는 명령을 전하였다. 아무리 금왕의 숙부되는 귀한 이라도 역적이라면 한 죄인에 불과하다.

이 청천벽력에 안평대군 궁은 일시에 울음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안평 대군은 아무리하여도 믿기지 아니하였다. 자기도 모르는 죄를 누가 지어 주었는가.

“그래, 이 일을 좌상(左相)도 아오?”

하고 도사에게 물었다---.

“좌상이 알면서 나를 이 지경을 말들 수가 있나.”

하고 안평 대군은 종서가 아직도 살아 있는 줄만 알고 혹시나 자기를 구해 줄까 한 것이다.

안평 대군은 굵게 제복에 방립 하나를 쓰고 짚신을 신고 첫째로 대궐을 향하여 세 번 절 하고 다음에 양부되는 성녕대군(誠寧大君) 사당에 하직하고 나중으로 양모되는 성녕대군 부인께 하직하고 울며 따라나오는 부인과 가권들을 한 번 둘러본 뒤에,

“왕명이어든 지체해서 쓰겠느냐. 어서 가자.”

하고 같은 죄로 가는 아들 우직과 금부 도사 일행을 재촉하였다.

금부 도사 신 선경은 정인지에게 친히 받은 명령이 있다---.

안평 대군은 문객도 많을 뿐더러 그 문하에는 부용이 과인하는 사람도 있으니 아무쪼록 안평 대군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할 것이요, 또 안평 대군이라면 무지한 백성들까지도 사모하는 못된 버릇이 있으니 비록 길 가는 행인이나 길가 주막 사람에게라도 그가 안평 대군이라는 눈치를 채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평 대군을 강화적소 까지 데리고 가기까지는 극히 조심하되 만일 무슨 일이 생기어서 놓치어버릴 근심이 있거든 마음대로 처치해 버리라는 것이다.

이 마지막 부탁을 할 때에 인지는 신 선경을 보고 유심하게 웃었다. 신 선경도 알아차리었다. 인지가 웃는 뜻은 할 수 있는 대로 가는 도중에서 핑계를 얻어서 안평 대군을 없애 버리라, 그리하면 네 공로는 알아주마 하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니 신 선경이가 이 눈치를 못 챌 리가 없었다.

추운 아침. 남대문을 나서매 안평 대군은 다시 돌아올 길 망연한 장안을 다시금 한 번 돌아보고 독수리 같은 형님과 병아리 같은 조카님을 생각하매 삼연히 눈물이 흘렀다. 마치 뒤에서 무엇이 마음을 잡아 끄는 듯하여 몸은 끌리어 나와도 마음은 남대문 안에서 헤매는 듯 하였다. 본래 호탕한 천품이어서 부귀 영욕을 뜬 구름같이 보건마는 오늘은 울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숭례문(崇禮門)’이라고 남대문 현판 글씨는 안평 대군이 부왕이신 세종 대왕의 명을 받자와 쓴 것이다. 천하 명필로 조자앙, 왕우군(王友軍)보다도 승하다는 칭찬을 받는 아드님의 글씨를 사랑하여 조선 안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보는 남대문 현판을 쓰게 하신 아버지 뜻이 다 수양 대군의 활에 찬하는 글을 써 . 주신문종 대왕은 당시 동궁으로 세종 대왕 곁에 모시어 안평 대군이 글 쓰는 것을 보다가 손수 먹을 갈아 주시고,

“참 천하 명필이다.”

하고 칭찬하시었다.

그러한 숭례문 석자 다. 안평 대군은,

“흥, 이것이 내가 세상에 왔던 표더냐.”

하고 빙그레 웃었다.

육로로 가면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하여 양화도(楊花渡)에서 배를 잡아 타고 수로로 한 강을 흘리지어 강화로 가기로 하였다.

이렇게 안평 대군을 시골로 내어 쫓기는 하였으나 그를 살려 두어서는 후일에 근심이 된 다 하여 정인지는 아무리하여서라도 안평 대군이 천하 인심을 수습할 새가 없이 하루바삐 없애려 하였다.

그래서 즉일로 자기의 심복되는 권준(權蹲)으로 대사헌(大司憲)을 삼고 이 계전으로 대사 간을 삼아 그들로 하여금,

“용은 역적 괴수라 불공대천지수오니 어찌 한 나라에 같이 처하오리까. 청컨대 죄를 나로 아 베이소서.”

라는 장계(狀啓)를 하게 하였다. 이 글은 상소 잘하기로 유명한 이 계전이가 지었다. 안평 대군의 죄를 올리는 도도 수천 언의 대문장이었다.

이 장계가 오르 매도승지 최항은 인지의 뜻을 왕께 그 장계대로 허락하시도록 말씀하였으나 왕은 노기를 띠시어,

“안평 숙부가 무슨 죄가 있길래 죽인단 말이냐.”

하시고 붓을 당기시어 커단 글자로 “불윤(不允)=안된다”이라고 쓰시어 밀어 던지시었다.

곁에 모시었던 수양 대군과 최항은 얼굴 빛이 흙빛이 되어 물러나왔다.

“어떻게 하시려오?”

하고 좌의정 정인지가 영의정 수양 대군을 향하여 묻는다. 여태껏 말하여 오던 문제를 재촉하는 모양이다. 곁에는 좌찬성 신숙주, 도승지 최항, 대사간 이계전이 있다. 문제는 무론 안평대군에 관한 것이다.

“어?”

하고 수양 대군은 어떤 상소를 읽다가 고개를 들어 인지를 보며 귀찮은 듯이,

“서울서 내어쫓았으면 고만이지 더 무엇을 한단 말이요?”

하고 도리어 불쾌한 빛을 보인다.

정인지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

“그렇지를 아니하외다.”

하고 신숙주가 정인지를 도와서 나선다---.

“안평 대군의 명성으로 어디를 있든지 반드시 인심이 따를 것이외다. 천하 인심이 안평 대군에게로 돌아가 놓으면 그때에야말로 막을 도리가 없을 것이외다. 화단을 미연에 방두하 지 아니하면 반드시 큰일이 생길까 저어합니다. 지금 한 사람을 살려 두면 나중에는 만 사 람을 죽이지 아니하면 아니될 터이니 이것은 국가에 큰 불행이외다. 비록 나으리께서 인자 하신 마음에 골육의 정을 차마 못하여 그러시는 일이지마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이외다---.

국가 대사를 위하여는 사정을 못 돌아보는 것이외다.

“신찬성 말씀이지당하외다.”

하고 대사간 이계전이 무슨 말을 끄내려는 것을 다 듣지 아니하고 수양 대군은, 그렇기로니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죽인단 말이야.”

하고 괴로워하는 빛을 보인다.

잠시 아무도 말이 없다.

“죄가 없길래 죽여야 하는 것이외다.”

하고 정인지가 감았던 눈을 뜬다. 감았던 눈을 뜰 때마다 정인지의 입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꾀가 나오는 것이다---.

“안평 대군이 진실로 죄가 있다 하면 백성의 마음이 따르지 아니할 것이니 무슨 두려워할 것이 있겠소오리까마는 죄가 없는지라, 죄가 없이 누명을 쓴지라, 백성의 마음이 그리로 돌 아가는 것이요, 백성의 마음이 안평 대군으로 돌아가면 자연히 나으리를 원망하게 되는 것 이외다. 그러니까 백성의 마음이 안평에게로 돌아가기 전에 화근을 끊어버리는 것이 지당한 가 하오.”

“과연 그러하외다. 좌의정 말씀이지당하외다.”

“과연 지당하외다.”

“그렇기를 두 말씀이오니까.”

이 모양으로 우의정 한 확, 도승지 최항 등이 한 마디씩 찬성하는 말을 할 때에 이계전이 아까 말 끝맺지 못한 무안을 회복하려고 어성을 높이어,

“좌의정 말씀이 지당하외다. 도리어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불구하외다. 나으리께서는 안평 대군이 죄없는 것을 말씀하시거니와 어찌 죄가 없다고 할 수가 있소오니까. 아우가 되어 형의 뜻을 순종치 않는 것이 첫째 큰죄요, 또 왕자로 앉아서 많이 문객을 양성하면 조정을 비훼하는 것이 둘째 큰 죄요, 또……”

하고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을 참는 듯이 잠간 참았다가 빙긋 웃고,

“그 밖에 죄를 꼽으려면 부지기수일 것이요. 죽을 죄를 꼽더라도 죄목이 부족할 것은 아니외다. 무죄하기로 말하면야 황보인, 종서는 무슨 죄 있었던가요. 그렇지마는 다 죽을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니까 안평 대군도 죽을 죄가 있는 것이 분명하외다.

이계전의 말에 정인지 이하로 다 픽 웃었다. 수양 대군도 입술에 잠간 웃음이 들다가 얼른 괴로운 빛으로 변한다.

수양 대군은 뜻을 결정치 못하는 듯이 벌떡 일어서며,

“모두 상감 처분이시지.”

하고 유심하게 정인지 이하 여러 사람을 한 번 바라보고 밖으로 나간다. 상감의 입으로 안평대군을 죽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라는 뜻인 줄을 정인지는 알아차리었다.

정인지는 수양 대군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 도승지 최항과 대사간 이계전을 데리고 왕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며 우의정한 확더러는 대사헌 권준을 불러가지고 뒤따라 들어오라 하였다. 이리하면 의정부와 사헌부와 사간원과 또 인지 자신, 이계전, 최항 등이 집현전 사람들이기 때문에 집현전과---다시 말하면 정부와 삼사(三司)와 아울러 상감께 조르는 셈이다. 여기다가 육조 판서만 가하면 소위 백관을 거느리고 상소하는 형식이 될 것이니 오늘 만일 왕이 안평 대군 죽이기를 윤허하지 아니하시면 내일은 정인지가 솔백관하고 조를 작정이다.

왕은 날이 따뜻함을 택하시와 경회루에 납시었다. 어린 임금이니 어려운 판국을 당하여 지나간 동안을 지낸 것이 마치 이십년이나 지낸 듯이 지긋지긋하였다. 누구하나 정답게 말 할 사람이나 있나, 들어가나 나오나 쓸쓸한 빈 집. 시끄러울이만큼 안팎에 수종 드는 나인들과 내시들은 마치 허수아비와 같아서 줄 정도 없고 받을 정도 없었다. 어머니같이 정든 혜빈 양씨도 동궁으로 계실 때와 달라 왕이 되신 뒤에는 명절이라든지 탄신이라든지 특별한 일이 있기 전에는 자유로 만나기가 어려웠다.

‘심심해’, ‘쓸쓸해’, ‘귀찮아’---이것이 어린 왕의 심중이었다.

“아이구 지긋지긋해.”

이제 오늘 무시로 수양 대군, 정 인지, 최항의 무리가 무상 출입으로 쑥쑥 들어올 때마다 왕은 이렇게 부르짖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방에 앉았으면 또 누가 들어와서 무슨 귀찮은 소리를 할는지 아나. 경회루로 가자.”

이리하여서 왕은 두어 궁녀를 데리고 경회루로 나오신 것이다.

내려치는 서리에 연잎사귀는 다 말라서 찬물 위에 떠있는 것이 슬펐다. 헤엄치는 잉어의 몸에 흔들리어 아깝지도 않게 수없는 진주를 굴려 떨구던 여름 이슬이 어디 남았나. 그 한 아름 되는 불그레한 꽃송아리, 전 세계를 다 덮을 듯하던 향기, 다시 찾을 곳이 없다.

왕의 어리신 마음에는 까닭 모를 슬픔이 솟아올랐다.

“이애, 너희들은 기쁘냐?”

하고 불현 듯 왕은 젊은 궁녀들을 돌아보시었다. 궁녀들의 얼굴은 꽃같이 젊고 아름다웠다.

궁녀들은 무엇이라고 대답 여쭐 바를 몰라서 서로 바라보았다.

“얼음이 얼거든 핑구나 돌릴까.”

하고 왕은 핑구채를 두르는 시늉을 하며 웃으시었다. 웃음이 스러지려 할 때의 왕의 옥같이 흰 얼굴은 과연 아름다우시었다.

왕이 연당골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계실 때에 좌의정 정인지가 왕의 교의 뒤에 와서 허리를 굽히고 섰다.

“좌의정 정인지 아뢰오.”

왕은 꿈이나 깨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한숨을 지시었다. 정인지를 보면 웬일인지 뱀을 볼 때와 같이 몸에 소름이 끼치시었다.

그러나 왕은 대신을 공경하는 에로 일어나 자리를 돌리어 놓게 하시고 인지와 정면으로 대하시어 앉으시었다.

“삼감께 아뢰오. 안평 대군 용은 지친이면서 불궤(不軌)한 뜻을 품어 수양 대군의 충성이 아니더면 그 대역부도하고 흉악한 손이 하마터면 성상을 범할 뻔하였사오니, 이런 대죄인을 살려 두옵시면 장차 난신적자를 어떻게 다스리오며 또 안평 대군 용은 사당(私黨)이 많사온즉 목숨이 있는 날까지는 또 무슨 흉계를 꾸미어 나라를 어지럽게 할지 모르오니 아직 뿌리가 생기지 아니하여서 제하는 것이 지당한가 하오.”

하고 정인지가 아뢴다.

왕은 인지를 흘겨 보시며,

“그러면 어찌하란 말이요?”

하고 떨리는 어성으로 소리를 치시었다.

“안평 대군 용은 죽음이 마땅하오.”

하고 정 인지는 조금도 서슴치 아니하고 힘있게 말한다.

왕은 인지의 수그린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시었다. 인지는 왕의 시선이 닿는 편 뺨이 간질간질함을 깨달았으나 아무리하여서라도 안평 대군은 없애지 아니하여서는 아니될 줄을 깊이 믿는다. 안평 대군을 살려 두었다가는 그 손에 정 인지 자기 목이 날아갈 날이 멀지 아니하리라고 그가 믿는 까닭이다.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이라고 “할 수는 없고. 또 설혹 안평숙부가 무슨 죄가 있다 하더라도 내 숙부를 내 손으로 죽일 수는 없소.”

하고 왕은 준절하게 인지의 청을 거절하였다.

“좌찬성 신 숙주 아뢰오. 지친을 차마 법에 두지 못하심은 성덕이시오나 사정은 사정이 요, 국사는 국사오니 사정이로써 국사를 그릇하지 아니하심이 더욱 크신 성덕인가 하오.

안평 대군 용은 신인이 공노하는 대죄인이옵고 지금 천하가 다 가살 이라 하옵거든지친의 사정에 거리끼시와 이러한 국가의 대죄인을 살려두시면 장차 국가에 큰 화단이 있을 뿐더러 또한 성덕에 누가 될까 저어하오.”

하고 신숙주가 안평대군을 죽여야 할 것을 아뢰었다. 신 숙주도 정인지의 생각과 꼭같다. 숙주와 인지와는 과연 동지였다. 숙주 없이 인지 되지 못하고 인지 없이 숙주되지 못하였다. 인지, 숙주, 람, 명회는 수양 대군의 팔 다리다--- 네 기둥이다.

숙주의 말은 조리가 꼭 닿았다. 그러나 왕은 고개를 흔드시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죄없는 숙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아니하고 또 성덕이 될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내 숙부가 나를 배반하리라고 나는 생각지 아니하오.

내가 안평 숙부를 사모하고 믿으니 안평 숙부도 나를 위하리라고 믿소. 경들은 뉘 말을 잘 못 듣고 염려하는 모양이나 내가 다 알아 할 테니 더 염려 마오. 공연히 이 일로만성화하지 말고 나아가 다른 일이나 보오. “ 하고 왕은 귀찮은 듯이 고개를 돌리시어 연당물을 바라보신다.

인지 이하로 여러 사람들은 왕의 말씀에 놀랐다. 그 말씀이 노성함이 열 세 살 되는 어린 사람의 말이라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인지의 눈은 한번 빛난다. 그는 왕의 뒤에 이러한 말을 가르쳐 드리는 누가 있는가고 의 심한 것이다. 그러고는 물러나가는 길로 왕께 가까이 모시는 나인이나 내시나중에 말마디 나 할 만한 사람은 모두 골라서 내어쫓기로 작정하고 또 아무리 지친이라도 함부로 궐내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길을 꼭 막아야 할 것이라고도 작정하였다.

‘양씨가 미워’ 인지는 왕의 말씀에서 받은 부꾸러움과 분함에 가슴이 자못 불평하여 혜빈 양씨에게 그 분풀이를 한다.

‘양씨도 치어버려야.’ 하고 인지 혼자 결심한다. 왕의 혜빈 양씨를 믿고 존경하심을 알므로 그 양씨가 인지의 마음에 미운 것이다.

‘양씨가 왕께 여러 가지 꾀를 일러바치는지 모른다.’ 왕이 불쾌하신 빛으로 고개를 돌리시니 아무리 인지라도 더 말할 수가 없어서 마치 물러 가라는 처분이나 가디리는 듯이 멋없이 읍하고 서 있었다.

이때에 우의정한 확이 이조 판서 정창손과 대사헌 권준을 데리고 들어와 왕께 보인다.

인지와 숙주는 이 기회를 타서 한 번 더 졸라 보려 하여 한 확과 권준에게 곁눈질을 하였다.

한 확이 무슨 말씀을 아뢰려 할 때에 왕이 먼저 선수를 쓰시어,

“안평 숙부 일을 다들 잘못 듣고 경들이 공연히 염려하는 모양이나 숙질간의 일은 숙질간에 서로 잘 알 것이니 염려 말라고 하였소.”

하고 한 확의 말을 막아버리신다.

이때에 대사헌 권준과 대사간 이계전이 땅바닥에 넓적 엎디어 이마를 조아리며 우는 소리로, 임금이 잘못하심이 있으시거든 신하된 “자 죽기로ㅆ 간함이 마땅하오. 대역부도 안평 대군 용을 죽이랍시는 전교가 내리실 때까지 소신 등은 아니 물러나겠사오니 안평 대군 용을 아니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소신 등을 죽여 줍소서.” 한다.

권준, 이계전이 이렇게 지성으로 안평 대군의 목숨을 끊을 고 하는 것은 수양 대군과 정 인지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다. 더구나 이 계전은 불일간에 병조 판서를 시켜 준다는 내약을 수양 대군에게서 얻었었고 사실상 오늘 일 때문에 이튿날 곧 병조 판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왕은 권준, 이계전의 엄살에 겁내지 아니하시고 더리어 조롱하는 듯이 웃으시며,

“안평 숙부도 죽을 죄가 없거니와 경 둥인들 무슨 죽을 죄가 있나. 물러나라.”

하시었다. 이것은 무론 권준, 이 계전 두 사람에게 내리시는 처분이다.

정인지, 한 확이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었으나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고 오늘은 이 이상 더 말해야 무익할 줄 깨닫고 정인지 이하로 다 물러나가 버리었다.

정인지는 이날에 매우 심사가 불쾌하였다. 둘러나온 길에 이 계전을 은밀한 데로 불러,

“자네 이 길로 수양 대군 궁에 가 보게. 가서 오늘 상감께서 하시던 말씀 하고 우리 말만 가지고는 상감의 뜻을 움직이기가 어려울 듯하니 나으리가 한 번 단단히 서두르시어야 한다고 그러게. 어, 고이한 일이로군.”

하고 입맛을 다신다. 어린 왕에게 욕을 당한 것 같아서 아무리하여도 분한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계전도 정인지의 마음 속을 알고 분해서 못견디는 듯이 조그마한 몸을 풀 곳이 없는 듯이 팔팔 뛰었다.

이 계전은 곧 수양 대군 궁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긴하고 은밀한 일에 자기가 참견하는 것이 계전에게는 크게 만족하였다. 며칠이 안 지나면 병조 판서가 아니냐. 정경(正卿)이 아니냐. 대감이 아니냐. 상감도 하오 하는 지위가 아니냐. 생각하면 금시에 날개가 돋치어서 공중으로 날아 오를 듯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다 수양 대군의 은혜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 아무리 하여서라도 수양 대군이 가장 미워하는 안평 대군을 하루바삐 없애드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수양 대군 궁을 향하여 마음으로 수없이 절을 하였다.

이계전은 첫째로 좌의정 정인지와 자기가 어떻게 간절하게 안평대군을 죽여야 할 것을 상감께 말한 것이며 자기는 죽여 줍소사까지 한 것이며, 그러나 상감은 ‘안평 숙부가 무슨 죄가 있나’ 하여 안평대군이 죄 없는 것을 누누이 말씀하시던 것을 말한 뒤에 이계전자기의 의견으로,

“그러면 말씀이요, 안평 대군이 무죄하다 하면 나으리가 죄인이 되신단 말씀이요. 안 그렇소오니까. 하니까 소인은 죽더라도 안평을 없애고야 말려오.”

하고 자못 자기 말에 스스로 흥분이 되어 얼굴이 붉고 어성이 높아진다.

그러다가 비로소 자기가 정인지에게 받아가지고 온 사명이 생각이 나서 제 말만 하노라고 심부름 온 것도 잊어버리었던 자기의 경망을 스스로 웃고,

“하니까, 나으리께서 몸소 상감게 뵈옵고 안평 대군의 죄상이 용서할 수 없는 것을 말씀 하여 놓으시면---오늘 안으로 말씀이야요---그리 하시며 내일은 좌의정 이 솔백관(率百官) 하고 안평 대군 용의 목을 줍소사고 상소를 할 것이니까, 그리만 되면 안평 대군의 목이 쇠로 되었기로 견딜 장사 있소오니까.”

하고 한 번 웃어 보인다.

수양 대군은 계전의 말을 듣고 불쾌한 빛을 보인다. 수양 대군의 진정은 동기되는 안평대군을 죽이기까지 할 생각은 없는 것이나. 상감 말씀마따나 안평대군이 무슨 죄 있나. 한명회 말과 같이 여러 형제 중에 뛰어나게 잘난 죄밖에 없는 것이다. 안평대군이 미운 것도 사실이요, 누가 죽여 주었으면 다행일 것도 진정이지마는 형되는 자기 손으로 아우를 죽여서 후세에라도 동기를 죽이었다는 누명을 듣기는 그리 원치 아니하는 바였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상감 앞에 가서 자기 입으로 안평대군을 죽여 줍소사 하는 말은 하기사 싫었다.

수양 대군의 생각에는 어디까지든지 자기는 안평 대군 죽이는 일에서는 발을 빼고 싶었다. 다만 발을 뺄 뿐 아니라 수양 대군은 어디까지든지 지친의 정리에 안평 대군을 죽일 수는 없다고 반대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싶었다.

“어, 안되지. 안평이 아무리 죄가 있기로 죽이다니 말이 되나.”

이렇게 한 번 힘있게 말하고 싶었다. 수양 대군의 본심은 이렇게 말하기를 졸랐으나 수양 대군의 욕심이 훼방을 놀았다.

‘안평을 살려 두고 내 뜻을 이룰까.’ 하고 수양 대군은 눈을 감는다. 뜻을 이룬다 힘은 일극의 정권을 내 손에 잡는 욕심을 채운다는 말이다.

수양 대군이 아무리 안평 대군을 못 죽인다고 뻗대더라도 정인지가 죽여 주었으면 고런 맞추임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마는 만일 수양 대군이 안평 대군을 살리고 싶어 하는 빛을 조금만 보이고 말면 정인지도 그것이 한 면치레인 줄 알고 ‘어 안되오. 죽여야 하오’하겠지마는 그 부량이 조금 지나치었다가는 정인지로 하여금 ‘에키’하고 물러서게 할 것인즉 그랬다가는 안평 대군은 살아나고 말 것이다.

수양 대군의 마음은 잠간 괴로웠다.

“그렇지마는 내 말은 사정이요, 제상(諸相)의 말은 공론이니까 만일 공론이 그렇다 하면 나도 공론을 막을 바는 아니어.”

하고 한참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계전을 바로 보며,

“다 상감 처분에 달렸지. 내야 알겠나. 알아 하소.”

하고 더 말하기 거북한 빛을 보인다.

이 계전은 수양 대군의 그 심사를 못 알아볼 사람이 아니다. 아무렇게 하든지 왕의 입으로 안평 대군을 죽이라는 말씀이 나오도록 하라는 뜻이다.

“소인 물러가오. 염려 마시겨오.”

하고 이계전은 수양 대군 궁에서 나와 곧 정인지에게로 갔다.

정인지는 아직도 아까 경회루에서 상감의 말씀으로 생긴 분함이 가라앉지 아니하여 어찌 하면 안평 대군을 죽이는 목적을 달하고 또 어찌하면 왕으로 하여금 정인지가 무서운 사람인 줄을 알게 할까 하는 생각에 애를 쓰고 있었다.

계전이 돌아와 전하는 말을 듣고 인지는 자기가 예기하였던 생각과 같았다는 듯이 눈을 사르르 감고 입을 한일자로 다물고 소리없이 웃는다. 이것은 무슨 계획을 얻어가지고 되었다 하는 뜻이다.

인지는 곧 사인(舍人)을 불러 내일 아침에는 솔배관계(率百官啓)할 일이 있으니 정부(政府), 정(政)원(院), 삼사(三司), 육조(六曹)할 것 없이 육품(六品) 이상은 한 사람 빠지지 말고 근정전에 모이라고 분부를 내렸다.

때는 신시초(申時初)나 되어 각 마을 대소 관인들은 그날 사무를 끝내고 사퇴하려 하는 때다. 이때에 솔백관계라는 말을 듣고 모두 무슨 큰일이나 보는 듯이 서로 바라보며 두런두런하였다.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상소한다는 것은 과연 큰일이다. 여간한 국가 대사가 아니고는 못 하는 일일 뿐더러 만일 이렇게까지 하여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면 대신은 백관을 거느리고 벼슬을 버리고 조정에서 물러나오는 책임까지도 져야 할 것이니 여간 대사가 아니다. 이를테면 왕에게 대한 시위 운동이요, 최후 통첩이다.

수양 대군의 의향을 안정 인지는 이 어마어마한 최후수단을 가지고 어리신 왕을 위협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왕은 아니지지 못할 것이다. 정인지의 입에는 쾌한 승리의 웃음이 떠돌았다.

비록 상소할 내용은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도 이것이 안평 대군의 생명에 관한 것인 줄은 다들 짐작하였다. 누구나 안평 대군이 살아 있고는 수양 대군의 세상이 얼마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런데 백관이라는 사람들 중에는 안평 대군 궁에 출입하던 사람도 적 지 아니하고 또 설사 직접으로는 안평 대군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도 마음으로 안평 대군을 사모하던 이는 부지기수요, 그뿐더러 안평 대군이 아무 죄도 없이 아주 애매한 것은 한 사 람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들은 장차 이 일에 어떠한 태도를 취할는고.

원동성총관(成摠管)집사람이다. 성총관이라 함은 성삼문(成三問)의 아버지 오위(五衛) 도총부(都摠府) 도총관(都摠管) 성승(成勝)의 말이다. 주인 대감은 도총관이요, 맏아들 삼문은 집현전 학사로 승정원(承政院) 우승지(右承旨) 곧 예방(禮房) 승지(承旨)요, 삼문의 아우되는 삼고(三顧), 삼빙(三聘), 삼성(三省)도 다 진사(進士) 대과(大科)로 한림(翰林), 검상(檢詳)의 청관(淸官)을 지내고 있다. 비록 세도하는 집은 못된다 하더라도 인물이나 문한(文翰)으로는 당시 일류로 일세가 부러워하는 바였었다.

그중에도 성삼문이라면 집현전 학사 중에도 가장 이름이 높은 사람중에 하나였었다. 그와 비견할 만한 이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신숙주(申叔舟) 등이 있었을 뿐이다.

세종 대왕께서 말년에 피부병이 계시어 누차 온천에 행행(行幸)하실 때에도 성삼문은 이 개, 신 숙주 등으로 더불어 평복으로 왕의 곁에 모시어 무시로 왕의 구문을 받았다. 이처럼 성 삼문과 신 숙주는 세종 대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지을 때에도 성삼문, 신숙주가 중심이이었던 것은 누구나 다 알 바이다.

세종 대왕이 승하하시고 문종 대왕이 즉위하신 뒤에도 성 삼문은 집현전 모든 학사 중에 가장 왕의 사랑하심을 받았다. 성삼문이 입직하는 날 밤이면 가끔 왕이 ‘근보(謹甫)’하고 부르시며 입직청에 무시로 찾아 오시기 때문에 밤이 깊어 왕이 취침하심이 확실하다고 생각된 뒤가 아니면 성삼문은 관복을 벗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은 전에도 한 번 한 말이다.

당시 이름 높던 집현전 팔학사 중에서 경학(經學)과 인격으로는 박팽년(朴彭年)이 으뜸이요, 책론(策論)으로는 하위지(河緯地)가 으뜸이요, 시로는 이개(李塏)가 으뜸이요, 사학(史學)으로는 유성원(柳誠源)이 으뜸이요, 이학과 교제(交際)와 모략으로는 신숙주가 으뜸이요--- 이 모양으로 다 각기 특색이 있는 중에 찬란한 문장과 풍류해학(風流諧謔)으로는 성삼문이 으뜸이었다.

술 잘 먹고 잘 떠들고 웃은 소리 잘하고 세상 이면 경계 같은 것은 돌아볼 줄 몰랐다. 그러하면서도 그에게는 추상열일(秋霜烈日)과 같은 엄연한 절개(節槪)가 있었다.

그가 북경 가던 길에 백이숙제묘(伯夷叔齊廟)에 써 붙이었다는 시--- 를 보든지, 또 그가 지은 단가(시조)---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한 것을 보든지, 다 그의 열사적 반면을 보이는 것이다.

아니다, 열사적 반면이랄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파탈하고 웃고 떠든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무엇으로도 굽힐 수 없는 송죽 같은 맑고 매운 절개가 있던 것이다.

또 성 삼문이 북경 갔던 길에 어떤 사람이 조선 문장 성삼문이 온다는 말을 듣고 묵화(墨畵) 백로도(白鷺圖) 한 폭을 가지고 와서 화제를 청하였다. 삼문은 그림을 보자마자,라고 불러서 명나라 사람들을 놀래었다고 한다. 아무리 성 삼문이 시는 잘못 짓는다 하더라도 이만큼은 그 도시인이다.

성삼문은 이번 수양 대군으 ㅣ소위 정란에 의분을 금하지 못하나 일개 승지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내일은 안평 대군을 죽이기 위하여 좌의정 정인지가 솔백관계한단 말을 듣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하여 그 아버지승의 허락을 얻어가지고 평소부터 믿던 집현전 친구들을 모아 명일에 할 대책을 토론하기로 하였다.

삼문은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시회를 빙자로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이개, 이석형(李石亨), 기건(奇虔)등을 청하였다. 신 숙주, 최항을 청하고 아니 청하는 것은 여러 사람이 모인 뒤에 의논하기로 하였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대로 비분강개한 언론이 나왔다. 이번 수양 대군의 정란이 생 긴 뒤에 이렇게 모여서 토론하기는 처음인 까닭이다.

“당초에 어찌된 셈을 알 수 없어---자네는 정원에 있으니 잘 아나?”

이것은 하위지가 성 삼문에게 물은 말이다. 하 위지의 이때 벼슬은 집의(執義)다. 청천벽력이어서 어찌된 셈을 모르는 것은 하위지뿐이 아니었다. 수양 대군이 이상한 뜻을 품었다는 것은 문종대왕 승하 이래로 소문난 일이지마는 설마 이렇게도 벼락같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 정부에서는 깜깜히 몰랐더람. 지봉(芝峯)은 몰랐다 하더라도 절재(節齋)까지라도 몰랐더람. 다들 낮잠만 자고 있었더람.”

하고 주인 되는 성삼문이 도리어 먼저 분개하였다. 지봉이란 황보인의 당호요, 절재란 김종서의 당호다.

다른 사람들 모두 정부의 무능을 문개하게 여겼다.

그런게 아니라, 절재가 수양 대군의 흉계를 먼저 알기는 알았으나 저편이 수양 대군이고 보니 일이 생기기도 전에 잡아 가둘 수도 없어서 기회를 기다리기로 다 계획을 정하였더래.

그런걸 지봉이란 양반이 정가에게 말을 했더라네그려. 그래서 모두 이 꼴이 된게래.“ 하고 이 개가 픽 웃는다.

황보인이 정 인지에게 말하였다는 것은 잘못 안 말이다. 수양 대군이 조금만 꿈쩍하면 사정없이 처치한다는 계획을 정인지에게 누설한 것은 황보인이 아니라 이양이었다.

“응, 자네 말이 그럴듯한 말일세.”

하고 박팽년이,

“그러면 정가는 애초부터 수양의 편이더란 말인가.”

하고 놀라는 빛을 보인다.

“참말 오활한 선빌세 그려.”

하고 하 위지가 박팽년을 보고 웃으면서, 그럼 무엇으로우참찬에서 껑충 뛰어서 “ 좌의정이야? 정가의 눈에 아비 죽일 살이 있다더니 이제 그 눈이 큰일 낼걸.”

정가라 함은 무론 정인지다.

“벌써 큰일을 내지 아니하였나. 그놈이 사실 전부터 수양허구 통하였다 하면 그놈 살려 두겠다고. 그놈이 지봉에게 수학(受學)을 하였다네.”

하는 것은 박팽년이다.

“무부무군(無父無君)한 이 세상에 스승인들 있겠나. 뭐 이것, 이 앞에 무슨 일이 있을는지 아나. 아직 시초 일세 시초여.”

하고 세상을 비관하는 뜻을 보이는 것은 하위지다. 과연 하위지의 얼굴에는 상심하는 빛이 보이었다.

“그런데 이 살마이 왜 아니 와.”

하고 성삼문은 유성원을 기다린다.

“그 반교문(頒敎文)을 지어 놓고는 여태 밤도 아니 먹는데.”

하는 것은 김질(金叱)이다. 김질은 정창손(鄭昌孫)의 사위요, 장차 육신의 계획을 세조 대왕에게 일러바칠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수양 대군의 일에 분개하는 지사(志士)다.

한 번 더 유 성원 집에 사람을 보내어 어서 오기르 재촉하였다.

유 성원은 ‘내 무슨 면목으로 다시 그대들을 애하랴’ 하고 여러 번 거절하다가 마침내 마지못하여 왔다. 원래 뚱뚱한 편이던 그 얼굴이 그렇게 보는 탓인지는 몰라도 하루 사이에 눈에 뜨이게 초췌한 듯하였다.

유성원은 방에 들어서서 성삼문, 박팽년 이하 여러 친구들을 대하는 길로 눈물을 흘리며 느껴 울었다.

“내가 무슨 낯으로 제공(諸公)을 대하겠나.”

하고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성삼문이하로 모인 사람들이 다 삼연히 눈물을 머금고 유성원의 손을 잡아 위로하였다.

“자네가 죄라면 우리가 다 동죄(同罪)야.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 남지 아니하면 대의(大義) 를 뉘 있어 지키겠나.”

하고 성삼문이 특별히 유 성원을 위로하였다.

유 성원의 눈물은 여러 동지(同志)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유 성원이가 수양 대군에게 내리는 교서를 지은 것이 그의 일생에 가장 큰 유한이 아닐 리가 없고 또 가장 공평하게 말하더라도 유 성원의 일생에 큰 오점(汚點)이 아닐 리가 없다. 만일 유 성원으로 하여금 절개가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려면 반드시 그로 하여금 교서 짓기를 거절하게 하였어야 할 것이다. 그 결과로 수양 대군의 노함을 사서 목이 몸에 붙어 있지 못하게 될 것은 분명하지마는 그것이 의기 남아가 밟을 가장 옳은 길일 것이다.

유 성원에게는 칠십이 넘은 병석에 누운 노모가 있었다. 자기는 결코 목숨을 아낀 것이 노모를 위한 것이란 말을 하지 아니하나 성삼문, 바 팽년 등 지기지우들은 그의 충성과 효성을 잘 알았다. 그렇지마는 아무리 정인지가 불러주다시피 교서에 쓸 요령을 명령하였다 하더라도 자기 손으로 아무 죄도 없을 뿐더러 충의가 일월과 같은 황보인, 김 종서 등을 궁흉극악한 역적을 만들어 놓은 것을 생각하면 천지 일월이 부끄럽고 금수 초목이 부끄럽고자 기 그림자가 부끄러웠던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이 사람과도히 슬퍼 말게 우리 목숨이 “, . 열이라도 장차 다 쓰고도 부족한 날이 있을 것일세. 아직은 억지로라도 살아야 해. 못 참을 것을 참더라도 살아야 하네.

자네 진정을 천지심명이 알고 우리 몇 친구가 아니 무슨 걱정인가. “ 하고 손을 잡고 유 성원을 위로하는 것은 박팽녕이다.

“그렇기를 두 말인가. 자네 이번 일이 잘한 일은 아니지. 실순는 실수지마는 장차 벗을 날이 있으니까.”

하는 것은 하위지다. 하 위지는 앞 일을 내다보는 듯이 말하였다.

친구들의 진정으로 하는 말이 일변 가슴을 찌르는 듯이 아프기도 하고 일변 고맙기도 하였다.

유 성원 때문에 좌중에는 말할 수 없이 비창한 기운이 충만하였다.

“자, 이 말은 고만하고 내일 일을 의논하세.”

하고 화제를 돌리려는 것은 성 삼문이다.

“내일 솔백관하고 상소를 한다니 그게 무슨 일이겠나. 생각건대 안평 대군 일인 듯하여.”

하고 성 삼문은 정원에 있으므로가장 이런 일에 기미를 알아야 할 처지이므로 먼저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최항(崔恒)이는 그 일을 알 듯하기로 물어보았지마는 잡아데어. 도승지가 되었다고 교가 났는지, 우리를 대하기가 부끄러운 일이 있는지 나를 보면 피해.”

“영양위 궁에서 수양 대군을 불러들이고 제신들을 속이어서 불러들이고 상감을 속이고 한 것이 모두 최항이 놈의 농간이야.”

하고 격하기 쉬운 이 개의 핏기 없는, 연약해 보이는, 병색있는 얼굴이 감정으로 빨개진다.

“최항이가정인지 문하에 긴히 다니느니. 사람이 재승박덕해. 재주는 있지마는 원체의 리가 박하고 물욕이 있어.”

하는 것은 전 대사헌(大司憲) 기건(寄虔)의 말이다. 기건은 수양 대군 이하 왕자들이 궁중에 분경(奔競)하는 것을 탄핵(彈劾)하다가 수양 대군에게 밀리어 쫓겨난 사람이다.

“최항이 아니기로 모르겠나. 내일 상소야 빤하지. 수양 대군이 안평 대군을 싫어하는 줄 아니까 안평을 아주 죽여버려서 수양의 마음을 기쁘게 하자는 정 정승의 충성에서 나온 일이겠지.”

하는 것은 하위지다.

문제의 중심은 내일 아침 정인지가 백관을 거느리고 근정전에서 상감께 안평대군 죽여야 할 것을 아뢸 때에 그 옳지 못함ㅇㄹ 한 번 다투어 볼까 함이다.

“간신(奸臣)의 무리가 무죄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죽이는 것을 볼때에 묘당(廟堂)에 한 사람도 다투는 이가 없다. 하면 의(義)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또 이때에 한 번 수양과 정가의 예기를 지르지 아니하면 장차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것이니까 이때에 우리가 불가 불 목숨을 내어놓고 다투어야 할 것일세.”

하고 강경론을 하는 것은 이 개다. 이렇게 말하는 이개의 심중에 항상 수양 대군과 정 인지 의 주구(走狗)가 되어 껍죽대는 그 숙부 계전의 모양이 보이었다.

이 개의 강경론에 성 삼문, 김질도 찬성하였다. 어전에서 한 번 정 인지와 흑백을 다툴 것을 주장하였다---.

“우리가 아니하면 누가 한단 말인가. 만약 이 일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무소불위할 것이니까, 우리 몇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연명을 하여가지고 한 js 정가에게 하늘 높은 양을 보여야 하네.”

하고 김질은 연명 상소라는 구체안까지 내어 놓았다. 김질의 말에 여러 사람은 그럴 듯이, 그러나 결정 못한느 듯이 서로 바라보고 앉았다.

김질은 풍세가 좋은 듯하면 더욱 기운을 내는 사람이다. 자기의 의견이 설 듯한 눈치를 보고는 더욱 기운을 내어,

“이렇게 한단 말이야. 내일 조회에 정 인지가 말을 낼 때까지는 아무 소리 말고 가만히 있거든. 정 인지가 의기 양양해서 안평 대군 죽여야 한다는 뜻을 상감께 상주하고 물러나지 않겠나. 그러면 아무도 감히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어든. 그러면 정 인지의 득의가 오죽 하겠나. 그때에 우리가 나선단 말이야. 우리가, ‘상감께 아뢰오. 좌의정 정인지의 말이 옳지 아니하외다.’ 하고 나서는날이면 제가 간담이 스늘하지 않고 배기겠나. 이것도(하고 왼손 엄지손가락을 우뚝 내세운다. 수양 대군을 가리키는 뜻이다)에끼하고 가슴이 꿈쩍할 것일세.

그렇다구 우리가 무서워서 하려면 일을 못하지는 않겠지마는 설사 우리 본 뜻은 실패한다 하더라도 어쨌든지 한 번 크게 예기는 질러 놓는단 말이야. 망신도 한 번 톡톡히 시키고, 안 그런가?”

김질의 눈가에는 회심의 웃음이 돈다.

박팽년, 하위지같이 마음이 무거운 패는 김질의 말을 듣고,

“응, 왜 그리 말이 교묘하고 자리할꼬.”

하여 김질의 태도가 군자답지 못함을 불쾌하게 여기었으나 성삼문, 이 개와 같이 외분이 앞서는 사람들은 수양 대군, 정 인지 등을 한번 망신을 시키는 것만 해도 어떻게나 통쾌한지 몰랐다.

“됐네 됐어. 꼭 됐어.”

하고 성 삼문은 무릎을 치며 김질의 꾀를 칭찬하였다.

유 성원은 말없이 가만히 듣고만 앉았다.

이렇게까지 하여서라도 안평 대군을 위한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결코 안평 대군이 무죄한 사람이란 이유만은 아니다.

이러한 어수선한 판에 무죄한 목숨ㅇ르 위해서 여러 사람이 목숨을 내어놓고 다들 여유가 있을까?---없다. 안평 대군을 살려야만 할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에 첫째로 가는 것은 안편 대군이 살아 있지 않고는 감히 수양 대군을 당해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니, 안평 대군마저 죽여버리면 수양 대군 일파에 대하여서는 정히 무인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치적 이유로 보아서 아무리하여서라도 안평 대군은 죽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다.

또 안평 대군을 살려야 할 둘째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도덕적 이유다. 성삼문 등이 생각하기에 수양 대군은 불의를 대표한 세려깅요, 안평 대군은 의를 대표한 세력이었다.

안평 대군이 밤낮에 시와 술과 풍류에 묻히어서 비록 적극적으로 하여 놓은 일은 없었다.

하더라도 그는 옳은 일을 알아보고 옳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알므로 천하 옳은 사람의 돌아가는 박 되어 은연중 천하 인인지사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안평 대군이 죽는 것은 안평 대군 개인이 죽는 것이 아니라, 실로 의를 대표하는 세력이 죽는 것이다. 이르므로 안평 대군은 아니 살리지 못할 것이다.

안평 대군을 아니 살리지 못할 셋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어리신 상감을 위하여서다. 고명 받은 유력한 제신이 다 죽어버린 이때에 어리신 왕을 보호할 가장 큰 힘은 안평 대군이다. 성삼문 일파의 눈에 수양 대군은 아무리 자기가 그렇지 않다는 것, 자기의 목적이 성왕에게 대한 주공이 됨에 있는 것을 누누이 성언한다 하더라도 상감에게 호의를 가진 보호자가 아닌 줄로 보이었따 그러므로. 왕을 안전하게 함---그것은 성 삼문 일파 자기네의 문명 고명에 대한 최대한 의무다---에는 안평 대군을 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안평 대군에게 개인적으로 받은 지우(知遇)에 대한 정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어느 편으로 보든지 안평 대군을 살려내는 것은 현하시국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이 목적을 달하려면 그 가장 첩경은 수양 대군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지마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오직 남은 길은 여론을 일으켜서 수양 대군으로 하여금 체면에 안평 대군 죽이기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마는 정 인지는 이것을 ---여론이 일어나면 이롭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극비밀리에, 질풍신뢰적으로 해버리려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솔백관하고 왕을 위협해 왕께서 부득이 수야 대군에게 물으시어, 수양 대군이 가장 부득이한 듯이 백관의 의향을 막을 수 없다고 상주를 하여, 그리하면 아마 일주야가 지나지 못하여 안평 대군의 목숨은 벌써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평대군을 살리려는 편에서는 어떻게 조수족할 여유가 없다.

사정이 이러하고 보니 인제는 김질의 말과 같이 내일 아침 묘당에서 한바탕 풍파를 일으켜 보는 수밖에는 아무 도리도 없다.

감정에 격한 이개, 성삼문 등은 전후를 돌아볼 새 없이 김질의 말에 찬동하였으나 비교적 냉정하고 이지적인 하위지, 박팽년 같은 이는 또 그 결과엑까지 생각이 미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일은 안되고 목숨은 잃고 그렇지마는 의리상 아니 그러할 수는 없고……”

실로 난처한 딜렘마( 경우)다.

“이번에도 목숨은 하나 내어놓아 하겠고 또 후일을 위하여서도 목숨은 하나 남겨 두어야 하겠고.”

하고 마침내 박 팽년이 탄식하는 소리를 발하게 되었다.

사실상 그러하였다. 수양 대군이 정권을 잡은지 사흘이 다 되지 못하여서 벌ㅆ 벼슬하는 사람들은 그 밑으로 돌아가 붙으려고 애를 썼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의리와 임금에게 충성되기보다 권세 잡은 수양 대군, 정인지에게 충성도기를 힘쓸 것이다. 만일 이번 안평 대군일로 하여 ‘우리네’가 다 죽어버리면 뒷 일은 누구에게 부탁하랴 하는 것이 오늘 밤 모인 몇 사람의 진정의 근심이었다.

이때에 성 삼문이 신 숙주 문제를 끌어내었다.

“내가 그 사람을 청하려다가 또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아니 청하였다. 이번에 갑 자기 벼슬이 높이 오른 것을 보면 수양이나 정가에게 긴히 보이기도 한 모양이지마는 그런 들 설마 아주 환장이야 하였겠나. 설사 환장이 되었기로니 우리 말이야 제가 안 듣겠다. 또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네 중에 신 숙주가 가장 수월한 듯하니까 아마 그 마음을 사노라고 높은 벼슬을 주었는지도 알 수 없어. 아무리 세상이 뒤집히었기로 설마 신 숙주가 어디 그럴 리야 있을라고.”

신 숙주는 이른바 집현전 팔 학자 중에 하나로 여기 모인 사람 중에 어느 누구와는 친하지 아니하라마는 특히 성 삼문과는 성이 다를 뿐이지 죽마고우요, 동문수학이요, 동포 형제 나 다름이 없이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 남들은 닷 신 숙주를 의심하여도 성 삼문만은 아직도 그를 의심하고 싶지 아니하였다.

“아니야 아니야.”

하고 성 삼문의 말에 이 개가 손을 내어두르며 굳세게 부인하였다---.

“신숙주가 이번 일에는 제일 가는 모사래. 첫째 한명회, 둘째 신숙주라네. 내 삼촌 말을 들으니까 신 숙주는 벌써부터 수양 대군과 통한 모양이요, 정인지를 수양 대군에게 갖다가 붙인 것도 신숙주라나보데. 내 삼촌은 수양 대군 문하에 밤낮 다니기나 하지마는 신숙주는 수양 대군 궁에 한 번 발도 안 들여놓고도 내 삼촌보다는 더 긴 했던 모양이니 알아 볼 것 아닌가.”

사람들의 눈은 성 삼문에게로 옮았다. 그러나 삼문도 이 개의 말을 반박할 아무 재료도 가지지 못하였다---.

“그래도 신 숙주가 나서면 혹시 안평 대군을 살려낼지도 모르니 한 번 말이나 해볼까.”

“안 될 말이야! 안평대군을 죽여야 한다는 꾀도 신숙주놈의 속에서 나왔기가 십상팔굴세. 내 삼촌의 말눈치가 신숙주놈부터 때려죽일 놈이야.”

하고 이 개는 흥분을 못이겨 그 가냘픈 몸이 떨린다. 이 개가 삼촌이라는 것은 무론 이 계전이다.

명일 조회에 한 풍파 일으키기로 마침내 작정이 되었다. 의리소재에 주저할 바가 아니라고 보았다.

“뒷 일을 생각해서 목숨을 아껴 둔다는 것은 의가 아니어. 보지 못하는 장래를 위하여 목전에 다닥친 대의를 저버리다니 말이 되나. 우리네가 이번 의에 죽으면 후일에 그때의에 죽을 사람이 자연 또 있을 것이어.”

하는 이 개의 말은 여러 사람의 뜻을 결정하는데 가장 힘이 있었다. 이석형(李石亨), 기건(奇虔)의 자중론(自重論)은 이 대외를 앞에 자연히 소면되고 말았다.

오륙인이관말직의 의롭고 약한 힘으로 일국 정권을 마음대로 놀리는 수양 대군과 정 인 지를 대항한다는 것은 실로 당랑거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의를 위항 죽는다’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였다.

술이 나왔다. 아마 이 세상에서 마지막인지 모를 주회다. 권커니 잡거니 여러 순배에 이르러도 내일 일이 관심이 되어 술이 취하지는 아니하였다.

“누구 유력한 사람을 하나 장두(狀頭)로 세우는 것이 어떠한가. 우리네 미관말직만이 나 서는 것보다 그래도 재릴에 참예한 사람이 한둘 있었으면 더 소리가 크지 않겠나.”

하고 하 위지가 술잔을 놓고 말을 낸다.

“그래, 내 뜻도 그러이.”

하는 것은 박팽년이다.

박팽년이 예조참의(禮曹參議), 성삼문이 우승지(右承旨), 이 개가 직제학(直提學), 유 성원이 사예(司藝), 김질도 유성원과 같이 사예, 이 석형이 교리, 그중에 기건이가 대사헌(大司憲)을 지냈으니 가장 벼슬자라거 높다 하려니와 현직은 없고 그 나머지는 조정에 나서서 힘있게 말할 만한 지위에 있는 이가 없다. 현재 대사헌 권준(權蹲), 대사간 이계전(李季甸)이 동지였으면 대단히 소리가 클 것이언마는 이 두사람은 수양 대군의 심복이다. 그런즉 내일 조정에서 정 인지와 다툴 때에는 적어도 정경(正卿)의 지위는 가진 사람이 두목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 말을 낸 뒤에는 아무나 나서서 말할 수가 있겠지마는 처음 말을 낼 사람은 지위나 명망이 족히 정인지와 비둥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누가 좋을까 하며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이 한 사람을 택하였다. 그 사람이 누구 인 것은 독자도 벌써 짐작할 것이니 그것은 의정부(議政府) 좌참찬(左參贊) 허 후(許詡)다.

허 후 집에 가는 교섭 위원은 성삼문과 이 개 두 사람으로 정하였다. 이 개와 허 후와는 관계가 있다. 허 후의 아들 교리 허조가 이 개의 매부였다. 이렇게 이 개와 허조와는 다만 남매의 분의가 있을 뿐더러 또한 자기상적하는 동지였다.

성삼문이 개가잿골 허 후 집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야심하였었다. 그러나 인제 어떠한 벼락이 내릴지 모르는 허 후 집에서는 내외가 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개만 짖어도 금부 도사나 아닌가 하고 마음을 조리고 있었다.

성삼문, 이 개는 우선 허조와 만나서 내일 일을 말하였다. 허조는 대번에 승낙하였다.

“그런데 여보게.”

하고 성삼문은 허 조더러,

“춘부 대감께서 앞장을 서시어야 하겠네. 우리네 미관말직배들만으로야 무슨 말이 설 수 있겠나. 그래서 춘부 대감을 우리 두령으로 추대하기로 의논들이 되었네.”

하고 허 후가 두목으로 나서지 아니하면 안될 뜻을 말하였다.

허조는 아버지의 명운이 실로 절박한 것을 깨닫고 한참이나 침음하더니,

“잠간 기다리게. 내 아버지한테 자네 말은 전함세. 자식된 도리에 늙은 아버지를 죽을 길로 들어가시라고 권하기는 차마 못하겠네그려.”

학 큰사랑으로 올라갔다.

허 후는 이때까지도 옷도 끄르지 아니하고 편지축을 내어놓고는 이번에 순난(殉難)한 여러 친구들에게서 받은 필적들을 골라서 꿇어 앉아서 두 손으로 받들고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내려는 뜻을 보인다.

허후는 아들 허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오, 너 잘 왔다. 이리 오너라.”

하고 서안 위에 골라 놓은 몇 뭉텅이 종이를 가리키며,

“이것이 지봉(芝峯), 이것이 절재(節齎) 관적이야. 충신 열사의 괼적은 분향단좌하여 보는 법이야. 이것은 내가 죽은 뒤에라도 자손에게 전해야 한다.”

하고 또 다른 뭉텅이 하나를 내어놓으며,

“이것은 안평 대군 필적이야. 다 잘 두어라.”

한다. 아무리 의에 대하여는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아는 허 후라도 불출일년에 아들 손자가 다 도륙을 당하고 허 후의 집이 영원히 멸망해 버리리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의 눈앞에는 둘째 손자 구령(九齡)이 할아버지 곁에서 놀다가 아랫목에 곤하게 자는 양이 보인다. 큰 손자 연령(延齡)은 명춘에 과거를 보려는 나이다.

허조는 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예’ ‘예’하기는 하면서도 마음은 슬펐다. 그렇게도 좋은 아버지--- 좀 괴벽하다고 할 만은 하지마는 일찍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제 몸이나 제 집을 위하여 무엇을 생각하거나 일하는 것을 보지 못한 그러한 아버지 ---별로 능력은 없으나 나라 일만을 자기 일로 생각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해하던 아버지---그러한 아버지가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금부 도사를 기다리게 된 정경을 생각하면 전래 효서을 타고난 허 조의 가슴은 메어지는 듯하였다. 더구나 성 삼문, 이 개가 청하는 대로 한다면 아마도 이 늙고 좋은 아버지의 생명은 내일 하루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는 허조는 말문이 막히었다. 죽고 사는데 대하여 무서워하거나 슬퍼할 허 조가 아니언마는 모든 사정이 허 조의 슬픔을 폭발하게 한 것이다.

허후는 안평대군의 편지 한 장을 들고 보다가 아들의 말에 놀라는 듯이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아들을 바라본다.

“아버지!”

하고 허 조는 남아의 의기로 복받치어 오르는 울음을 눌러버리고,

“성 삼문이가 왔습니다.”

하고 말문을 열었다.

“성 삼문이가 왔어? 혼자?”

“이 개허구요.”

“응, 어찌해 이 밤중에?”

하고 허 후는 손에 들었던 안평 대군의 편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내일 아침에 솔백관계한다고 아니 합니까.”

“응, 그렇지. 정가가.”

허조는 방 안에 누가 듣지나 않나 하는 듯이 휘 한번 둘러보고는 소리를 낮추어,

“오늘 저녁에 성 삼문의 집에 몇 사람이 모였더래요.”

“누구 누구?”

“그 사람들이지요---박 팽년, 하 위지, 이 석형, 기건, 유 성원…….”

하고 말도 끝나기 전에 허 후가 눈을 크게 뜨며,

“무어? 유 성원이가 무슨 낯을 들고 나와 뎅겨?”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제야 협박을 받아서 그런 것입니다.유 성원이가 마음이야 변할 리가 있어요?”

하고 허조는 유성원을 두남 둔다.

“협박만 받으면 아무런 것이라도 한단 말이냐.”

하고 허 후의 소리는 더욱 커진다.

허조는 아버지 뜻을 거스르기가 어려워 잠간 잠자코 앉았다.

허 후는 유 성원 문제보다 더 중대한 문제를 잊었떤 것을 생각하고 성난 것을 거두고,

“그래 그 사람들이 모여서 어찌 했단 말이냐?”

“내일 아침 정 인지가 안평 대군 죽여야 할 것을 주장하거든 안평 대군을 죽이는 것이 옳 지 않다고 크게 박론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합니다.”

하는 허 조의 말에 허 후의 고개가 저절로 번쩍 들리고 눈이 크게 떠지더니 숨길 수 없이 기쁜 빛이 드러나며,

“그렇기로 작정을 했어? 조정에서 정 인지와 한바탕 다투기로?”

하고 참을 수 없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어, 장하다. 아직도 의가 살았구나.”

허 후는 유 성원 때문에 일어났던 분한 마음도 다 스러지고 가장 유쾌한 듯이,

“왜 이리 들어오라고 아니한단 말이냐. 귀한 손님들이로구나. 이리 들어오라고 하여라.”

하고 서안 위에 늘어 놓인 종이 뭉텅이를 주섬주섬 주위서 문갑 속에 집어 넣는다.

“그런데 아버지가 앞장을 서라고요.”

하고 허 조가 아버지를 우러러본다.

“내가 나서라고? 나서기를 두 말이냐. 하늘이 도와서 인제 내가 죽을 곳을 얻었다. 어서 다들 이리 들어오라고 하려무나.”

하고 허 후는 마치 오래 그리워하던, 대단히 반가운 사람이나 만나려는 듯이 기뻐하였다.

처네를 들어 손자 구령의 곤히 자는 몸을 덮어 주었다.

이리하여 허 후와 내일 일을 다 짜 놓고 허 후 집에서 나오는 길에 성 삼문은 이 개더러,

“여보게, 우리 범옹(泛翁)이헌테 들러 가세.”

하였다. 범옹은 신숙주의자다.

“그건 무엇하러?”

하고 이 개는 냉랭하였다.

“가서 그 사람이 환장을 했나 아니했나 보세그려. 보아서 정말 환장을 했거든, 한바탕 호령이나 해주고 그렇지 않고 예전 신 숙주대로 있거든 안ㅍ여 대군 위해 힘을 좀 쓰라고 해 보세그려. 사리 여보를 알아보지도 아니하고 친구르 버린다는 것이 어디 친구의 도린가.”

하고 삼문은 이 개를 끌었다.

성삼문의 말은 이치에 합당하였다. 이 개는 마음으로는 싫지마는 성삼문의 말을 그렇게 거절할 수도 없고 또 신 숙주 집이라야 허 후 집과 같이 잿골이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서 얼마 돌지도 아니하겠기로 성삼문을 따라 섰다.

신 숙주 집 대문은 굳이 잠겨 있었다. 문을 열 때에는 전에 보지 못하던 관노(官奴)같은 자 사오인이 성삼문, 이 개에게 대하여 교만한 태도로 수하(誰何)하였다. 이 개는 대토하여,

“이놈들! 눈이 삐었느냐. 우리를 몰라보고 웬 버르장머리야.”

하고 호령을 하였다.

이 개가 하도 톡톡히 호령하는 바람에 관노 같은 놈들은 뒤로 물러섰다. 이 소리에 뛰어 나온 종 하나가 성 삼문을 알아보고 허리를 굽신하며,

“원골 영감마님 입시오.” 한다.

“오, 영감 계시냐?”

하고 성삼문의 말에 종이,

“네, 대감 마님 계시오.”

하고 곁에 무엇이 있으면 둘러치기라도 할 드이 잔뜩 성이 난 이 개를 힐끗 본다.

“오, 따는 영감이 아니라 대감이시로구나.”

하고 성삼문은 신숙주 집 기구가 갑자기 변하였구나 하면서 사랑으로 들어갔다.

“법옹이!”

하고 길게 부르는 성 삼문의 소리---그것은 거의 날마다 귀에 익히 듣던 옛 친구의 소리나 ---에 신 숙주는,

“어, 근보(謹甫)인가.”

하고 전보다 더욱 반가운 듯이 뛰어나와 맞았다. 숙주의 등 뒤로 흘러나오는 불 빛에 전에 보던 커다랗고 넓적한 옥관자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자그마한 환옥관자를 붙인 것이 눈에 띠었다.

“소인 문안 아뢰오.”

하고 성삼문이가 시치미 떼고 신숙주 앞에서 읍하는 것으 ㄹ신 숙주가 한 손으로 성삼문의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이 개의 팔을 잡으면서,

“이 사람 미치었다. 이건 다 무슨 짓이야.”

하고 픽 웃고,

“이리 들어오게.”

하며 두 사람을 방으로 끌어다가 앉히고,

“그런데 이게 웬 일이야? 이 밤중에?”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이 방 한 편 구석에 피석하여 앉은 사람을 바라본다. 성삼문, 이 개의 눈도 그리로 향하였다. 거기는 사팔뜨기 눈에 광대를 쏙 내솟고 허위대 큰 작자 하나가 있다.

‘저게 웬 것이야?’ 하고 성 삼문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 괴상하게 생긴 작자는,

“대감 안녕히 주무시오. 소인 물러갑니다.”

하고 일어나 나갔다.

한명회가 사팔뜨기라더니 저것이 한명회라는 것인가 하고 성삼문은 일어나 나가는 한명회의 뒷모양을 흘겨보고 한명회 유가 이 야심한데 신 숙주와 단둘이 무슨 은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대단히 마땅치 못하였다.

“이사람 그것 웬 작잔가?”

하고 삼문은 한 명회가 마당에 내려설까 말까 한 때에 듣겠거든 들어라 하는 듯이 큰소리로 물었다. 이 개도 책망하는 듯한 눈으로 이 질문을 받는 신 숙주를 바라보았다.

“응, 그 사람, 저 뉘 심부름 온 사람이야.”

하고 숙주의 어음은 분명치 못하였다. 숙주는 어찌해 등에다가 모닥불을 퍼붓는 듯함을 느끼었다.

여태껏 한 명회에게 또박또박 대감을 바치고 경대함을 받을 때에는 자기의 지위가 높음을 깨달아 만족한 기쁨이 있더니 성 삼문, 이 개 두 친구의 들여다보는 눈을 볼 때에는 몸이 무엇에 눌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음을 깨달았다.

“뉘 심부름 온 사람이라니 그 눈하고 흉악하게 생겨먹은 폼이 수양 대군 궁에 드나든다는 한가 아닌가. 이번에 영양위 궁 사람 죽이는 일에는 원훈이라지?”

하고 이 개가 칼날같이 날카로운 말로 숙주를 쏘았다.

숙주는 웃고 손으로 턱을 만질 뿐이요, 대답이 없다.

“그런가, 그것이 한 명횐가.”

하고 삼문도 곁에서 재촉한다.

“그래, 한 명회야. 그렇게 흉악한 사람은 아닐세. 외양은 그렇지마는 마음은 그닥지는 아 니한 모양이야. 저민 대생의 사위 아닌가.”

하고 우리네가 사귀어도 관계치 않다는 듯이 숙주가 억지로 쾌활한 빛을 보인다.

숙주가 한 명회의 변명을 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는 더욱 불쾌하였다. 더구나 이 개는 당장에 숙주의 낯에 가래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도록 명회를 변명하는 숙주의 낯이 빤빤하였다. 오직 숙주를 가장 믿고 사랑하는, 본래 친구를 믿으면 거짓말까지도 믿으려 하여 의심할 줄을 모르는 성 삼문만이 어떻게 하여서도 숙주가 변심하지 아니한 것을 이 깨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으로,

“여보게 우리가 이렇게 야심한데 온 것은 자네헌테 물어볼 말이 있어서 온 것이야. 세상에서 말하기를 자네가 변심하였다네그려---우리네를 버리고 정 인지 편이 되었다니 그런가. 정 인지라고 본래부터 그리된 것은 아니겠지마는 정 인지야말로 단단히 변심을 하였어.

세상이 다 지봉, 절재를 배반한다기로니 정인지야 어디 그럴 수가 있겠나. 저는 그럴 수가 없지. 그런데 듣는 바로 보면 지붕, 절재를 죽이게 한 것이 한 명회, 정 인지의 소위라 하니 정인지가 환장이 안되었으면 그러 수가 있겠나. 그런데 자네는 이 계전, 최항과 함께 정인지 패가 되었다고 하니 그게 있을 말인가. 어디 자네 입으로 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여 보게. 이번 자네 벼슬이 갑자기 뛰어 오른 것이 수상하다고들 하지마는 그것이 혹 자네를 환장시키려는 정인지의 계책인지 몰라. 그렇지만 어디 세상에서야 그렇게 생각해 주나. 다 자네가 정인지 편이 되었다고 그러지. 아무려나 자네가 청백한 것을 보이려거든 우선 자네 입으로 이 자리에서 시원히 말을 해보게.”

하고 숙주를 바라보았다.

숙주의 관자놀이는 쉴새 없이 들먹거리었다---.

“어디 변심이고 말고가 있나.”

하고 숙주는 겨우 불분명한 외마디 대답을 한다.

“아니, 이 사람.”

하고 이 개가 고개를 숙주에게 내어밀고 살기 있는 눈으로 숙주의 옥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노려보며 묻는다---.

“그러면 자네는 이번 수양 대군의 일에는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인가. 집현전에서 영묘(英廟)와 현릉(顯陵)의 고명을 받던 신 숙주 고대로 있단 말인가. 그렇거든 그렇다고 분명히 말을 하게.”

성 삼문, 이 개의 말은 구구절절이 신 숙주의 폐부를 찔렀다. 신 숙주는 ‘죽을 죄로 잘못 했으니 살려 줍시오’ 하고 그만 방바닥에 엎드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리할 수가 있을까---그리한 수는 없다.

숙주는 얼음같이 차디찬 욕심의 들로 설레는 양심의 병아리를 꽉 눌려 질식을 시키고,

“글세, 이 사람들이 오늘 웬 일인가. 자네네들까지야 나를 이렇게 의심해서 쓰겠나.”

하고 슬쩍 농치어 버린다.

이때에 종이 주안상을 들고 나왔다.

이 주안상은 숙주를 살리었다. 숙주에게 잠시 피신할 곳을 준 셈이다.

“자, 한 잔 먹세.”

하고 숙주는 예쁜 종으로 하여금 술을 치게 하였다. 이 젊은 종은 삼문이나 이 개가 일찍 숙주의 집에서 보지못한 바다. 그렇기로 벼슬이 오른지 사흘이 다 못되어 이대도록 숙주 집 기구가 굉장하게 변할까.

신 숙주 아버지는 참판 신장(申檣)이다. 그렇게 호화로운 집은 되지 못한다. 아버지 신참판이 치산하는 재주가 있는 덕에 가난치는 않다 하더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종을 둘 처지가 못 된는 줄은 성삼문이 가장 잘 아는 바다. 이 종은 수양 대군한테서 선물 받은 종이다.

술도 수양 대군 궁에서 온 술이다. 그런 줄을 알았더면 성삼문, 이 개는 아니 먹었을는지 모르거니와 그들은 출출한 김, 흥분한 김, 으스스 추운 김에 이 따뜻하게 데운 달고 매운 향긋한 청주를 따라 놓는 대로 아니 마실 수가 없었다. 이리하는 동안에 신숙주는 두 친구의 무형한 단근질에 부대끼던 몸을 잠시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이 술에 대하여 신숙주의 부인 윤씨(尹氏)에게 감사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윤씨는 재와 색과 덕이 겸비하기로 동배간에 유명한 부인이다. 그는 남편의 친구가 사랑에 오면 가만히 종을 시켜서 그가 누구인지를 탐지하여서 적당하게 대접을 한다. 그것은 남편과의 친 불친을 표준으로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결코 그 뿐은 아니다. 덕행과 명성에 흠이 있는가 없는가를 스스로 판단하여서 대접할 만한이는 하고 못할 이는 아니한다. 윤씨의 이 총명에 대하여서는 신숙주도 신임하고 간복하는 터이다.

윤씨 부인은 한명회가 왔을 때에는 아무 대접도 아니하였다.

“왜 그런 소인을 사귀시오?”

하고 직접 남편에게 말한 적까지 있었다.

“아니, 그 사람이 그렇게 소인은 아닌걸.”

하고 그때에도 숙주는 아내에게 어물어물해버리었다.

성삼문이 윤씨부인의 가장 환영하느 손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성삼문 올 때에 나오는 술상이 가장 좋다 좋은 안주가 생긴. 때에는 윤씨는 성삼문 오기를 기다려서 다락 속에 감추어 둔다. 오래 감추어 둘 것 없이 성삼문이 찾아온다. 아내의 이 뜻을 신숙주도 기뻐한다. 아내 윤씨는 남편 신 숙주의 뜻을 다 알아 두고는 남편이 말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바를 다하여 준다. 참 알뜰한 며느리요, 아내라고 칭찬 받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러면 자네 뜻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단 말인가?”

하고 성삼문은 한 번 더 숙주에게 묻는다.

“두 말인가. 신 숙주가 설마권세를 따라서 마음 변할 사람이겠나. 자네들헌테 이러한 의심을 받는 것이 내가 박덕한 탓일세마는 내 마음은 그렇지를 않아.”

하고 숙주는 잠간 휴양하는 동안에 새 기운을 얻어서 서슴치 않고 대답하여버린다.

“글세, 그러면 그렇지. 우리 범옹이가 설마 절개를 팔아 먹을리야 있나. 여보게 백고(伯 高) 안 그런가.”

하고 성삼문은 그만 마음이 탁 풀려서 좋아라고 무릎을 치며 이 개를 바라본다. 숙주가 무죄한 것이 그렇게 기뻣던 것이다. 백고(伯高) 안 그런가. “ 하고 성삼문은 그만 마음이 탁 풀려서 좋아라고 무릎을 치며 이 개를 바라본다. 숙주가 무죄한 것이 그렇게 기뻣던 것이다. 백고(伯高)는 이 개의 자다.

그러나 이 개는 그러헤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맵고 맺힌 사람이다. 숙주의 말이 그대로 믿어지지를 아니하였나.

“자네가 진실로 청백하거든.”

하고 이 개는 폐간을 꿰뚫어보는 듯한 무서운 눈으로 신 숙주를 들여다보며 명령하는 듯한 어조로 들이세운다---.

“진실로 자네가 청청백백할 것 같으면 그러한 표를 보이게.”

하고 이 개가 요구한다.

“어떻게 하면 그 표를 보이는 것인가.”

하고 신숙주도 청백한 표를 보이고 싶은 태도를 보인다.

“첫째도 자네 벼슬을 내어 놓게. 자네 벼슬이 너무 엽등이야. 까닭이 없는 엽등에는 바르지 못한 속살이 있는 짓이라고 남이 말한들 자네가 무엇이라고 발명할 터인가. 자네가 아무리 청청백백하다고 하더라도 일개 승지로서 일약에 좌참찬이 되었다 하면 아무도 자네를 이번 일에 가장 공이 큰 사람으로 아니 볼 수가 있나. 정 인지가 우참찬에서 좌의정으로 뛰어 오르고 한 명회가 백면으로서 군기사(軍器寺) 녹사(綠事)된지 이틀 만에 이조참의(吏曹參議) 가 된 것 이상일세. 그러니까 자네가 진실로 청백하거든 내일 아침으로 자네 벼슬을 내어놓게.”

이 개의 이 말은 참으로 신 숙주에게는 아픈 말이었다. 일년내로 친구를 속이고 아내를 속이고 양심까지 속이고 애를 쓴 것이 무엇 때문인데? 권세 때문인데. 이 개의 말은 큰일날 소리었다.

“자네 말이 옳기느 옳의. 그렇지마는 너무 서생론(書生論)이야.”

하고 신숙주는 이제는 조금도 면난한 빛이 없고 도리어 이 개를 지도하는 태도다.

“어찌해 자네 말이 서생론인고 하니 우리가 다 청렴한 듯이 발을 빼고 물러나오면 나라 일은 어찌한단 말인가. 영릉, 현릉께서 고명하신 것도 결코 물려나와서 독선기신이나 하라고 하신 뜻은 아닐 것일세. 자네들이나 내나 다 같이 이 몸과 목숨을 나라에 바치지 아니하였나. 한 번 바친 몸과 목숨을 늙어서 폐인이 되거나 죽어서 해골이 되기 전에 다시 찾을 수가 있나. 그것은 도리가 아니야. 하물며 오늘날같이 국가 다사한 날에 우리가 일심의 명예나 안락을 위해서 몸을 피하다니 될 말인가. 백고(伯高)! 자네가 잘못 생각한 말일세. 안 그런가 이 사람 근보(槿甫)?”

신 숙주의 말은 과연 당당하다. 과연 충신의 말이요, 국사(國士)의 말이었다.

“옳의, 범옹(泛翁)이, 자네 말이 옳의. 우리가 물러나와서 쓰겠나. 우리가 나오면 그야말로 권 람이 한 명회같은 유의 판이 되게. 안 그런가 백고?”

하고 성삼문은 의심이 다 풀리었다 하는 만족한 표정으로 이 개이 동의를 구한다.

그러나 이 개도 성 삼문 모양으로 그렇게 단순하게 신숙주의 말에 넘어갈 사람은 아니다.

도리어 이 그럴듯한 신 숙주의 말 속에 더욱 가증한 속임이 있는 듯이 깨달았다. 그렇지마는 그것을 폭로하여 뻔뻔한 신 숙주가 부끄러워 죽도록 윽박지를 방법이 없는 것이 분하였다. 이 개의 해쓱한 얼굴은 더 해쓱하고 여자의 손가락같이 가늘고 흰 손가락들은 흥분으로 떨리었다. 숙주가 싸워 이긴 기쁨으로 빙그레 웃는 낯으로 이 개를 보는 것이 더욱 가증하고 분하였다.

“자네 속은 시워학 알았네.”

하고 성삼문은 기쁜 듯이,

“언제는 내가 자네를 의심하였겠나마는 하도 세상에서들 자네가 이번 일에 원흉(元兇)이라고 그러니까 자네 입으로 한 마디 안 그렇단 말을 시원히 들어 보려고 왔더니……어, 속이 다트이는 걸. 안 그런가 백고.”

하고 이 개의 팔을 잡아 끌며,

“자, 한 잔 더 먹게.”

하고는 자기부터 혼자 잔을 들어 마신다.

“그러며 자네는 벼슬을 내어 놓을 수 없단 말일세 그려?”

하고 이개가 다시 채찍을 들어 신 숙주의 피나는 양심을 후려갈긴다.

곤경이 다 풀리었거니 하였떤 숙주는 가슴이 꿈쩍하였다. 이 사람이 내가 죽는 양을 보고야 말려는가 하고 잠간 망연자실 아니할 수 없었다.

“이 사람, 고만하게. 더 말할 것이야 있나.”

하고 성삼문이 민망한 듯이 손으로 이 개를 막는 모양을 한다.

이 개가 다시 다지는 바람에 신숙주는 몸에 소름이 끼치고 등골에 땀이 흘렀다. 그리고 결코 뜻이 변하지 아니한 것을 중언부언 말하였으나 그 말에는 도시 힘이 없었다. 성삼문이 새에 나서서 이 개를 무마하여가지고 신숙주 집을 나섰다. 그날 밤 신숙주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개의 말과 같이 벼슬을 내어 놓을 생각은 없었다.

이튿날 조회다. 영의정 수양 대군 유,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좌찬성 신 숙주, 좌참찬 허후 이하로 정부, 삼사, 육조의 백관이 품질 찾아 근정전에 보이었다.

이날 조회에 첫째로 한 일은 수양 대군 궁을 호위하는 일이다. 정인지의 상주대로 금군진무(禁軍鎭撫)두 사람이 갑사(甲士) 오십, 별시위(別侍徫) 오십, 총통(銃筒) 이십 방패(防牌) 이십으로 수양 대군 궁을 호위하기로 되었다. 이것은 황보인, 김 종서 등 역적의 잔당(殘 黨)이 혹시 수양 대군을 엿볼까 하는 근심이 있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기실은 정인지 의 수양 대군에 대한 충성을 표한 것이다.

둘째 일은 이번 일에 공 있는 사람들을 정란(靖亂)공신(功臣)이라 하여 정인지 이하 삼십육인에게 일등훈(一等勳), 이등훈(二等勳), 삼등훈(三等勳)으로 나누어 군(君)을 봉한다는 것을 발표한 것이다. 그중에 중요한 사람 몇을 들면,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한 확(韓確)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 신숙주(申叔舟)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람(權擥)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인 산부원군(仁山府院君) 홍윤성(洪允成)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 홍달손(洪澾孫)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 최항(崔恒) 한성부원군(韓城府院君) 이계전(李季甸) 강성부원군(江城府院君) 봉 석주(奉石柱) 서부원군(西府院君) 양정(楊汀) 여기 적힌 이름들은 독자도 벌써 다 아시는 바다. 한명회, 홍윤성, 양 정도 인제부터는 부원군 대감이 되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박팽년, 성삼문 두 사람이 그날 밤에 집현전 입직을 하였다 하여 정란공신 삼등훈에 들어 군을 봉함을 받은 것이다. 무론 이 두 사람은 한 번도 군 행세를 한 일이 없었고, 또 공신들이 돌아가며 한턱씩 낼 때에는 두 사람은 가난하다는 것을 핑계로 내지를 아니하였다. 그러나 청천벽력으로 한명회, 홍 윤성 등과 같이 정란 공신 명부에 이름이 오른 것을 볼 때에는 두사람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성삼문, 박팽년 두사람을 정란 공신에 집어넣은 것이 수양 대군, 정 인지 등의 고등 정책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될 수 있으면 집현전 학사들 중에 누구누구 하는 사람들을 다라도 정란공신 속에 집어넣고 싶었다. 이러하므로 이번 소위란난의 누명을 조금이라도 감할 수가 있고 적어도 말많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가 있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핑계가 없었고 성삼문, 박팽년은 그날 밤에 입직했다는 핑계가 있었던 것이다. 또 이 두 사람을 공신에 넣는데 신 숙주가 정인지엑 많이 힘을 쓴 것은 사실이다.

삼십 육 인정란 공신이 탕전에 사은숙배한 뒤에 정인지는 안평 대군 용과 전(前) 우의정(右議政) 전(全) 경(慶)도(道) 도체찰사(都體察使) 정분에게 사사(儩死)하여야 할 것을 백관의 뜻이라 칭하여 탑전에 아뢰이었다. 그 요지는 이러하다---.

안평 대군 용은 수악(首惡)이라 종사(宗社)의 대죄인인즉, 비록 지친(至親)이라 할지라도 단정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요, 또 백관과 민심이 다 이 불공대천지수를 살려 두기를 원치 아니하니 왕은 사정을 버리시고 공론을 쫓아 단연히 안평 대군을 죽이소서 함이요, 또 전우의정 정 분에 대하여는 정분이 비록 도체찰사로 밖에 있었었으나 황보인, 김 종서와 같은 봉당인 것이 의심 얹은즉, 그도 죽임이 마땅하다 함이다.

정 인지가 충성을 다하는 듯, 죽음을 무릅쓰는 듯, 어린 왕을 효유하는 듯, 위협하는 듯 도도 수천언을 늘어 놓을 때에 백관 중에는 숨소리도 없는 듯하였고, 왕은 다만 어찌할 줄 모르는 듯이 좌우를 돌아보시었다.

안평 대군의 목숨이 쇠줄로 되었더라도 견디어날 것 같지 아니하였다. 어리신 왕은 이 사람들이 어찌하여 한사코 안평 대군을 죽이고야 말려는고 하고 그 속을 알 수가 없으시었다.

왕은 정 인지를 바라보고 다시 마치 동정을 청하는 듯이 수양 대군을 바라보았다.

이 경우에 왕이 취할 길이 셋이다. ‘윤(允)’이라 하거나, 그와 반대로 ‘불윤(不允)’이라 하거나, 또 ‘영유보정 군국(軍國)중사(重事) 실위총치(總治) 이(以)데여(余)친(親)정(政)지(之)일(日)’이라 함과 같이 나라 일은 모두 수양 대군에게 위임해 버리었으니 안평 대군을 죽이고 살리는 판결을 수양 대군에게 밀어버리시든지. 실로 위기 일발이다.

이때에 허 후가 나섰다.

“좌참찬 허 후 아뢰오.”

하는 힘있는 늙은 음성이 조용하던 절내에 울릴 땡 사라들의 귀와 눈이 다 허 후에게로 향하였다.

“저것이 또 무슨 객담을 하려고 나서.”

하고 수양 대군은 허후를 흘겨보았다. 아무리하여도 길들일 수 없는 허 후가 미웠다.

왕도 눈을 허 후에게 돌렸다.

허 후는 탑전에 부복하였다.

성삼문, 이개, 박팽년, 유성원, 김질, 하위지 등은 언제나 나설 차비를 하고 뒷줄에서 허 후와 함께 가슴ㅇ르 뛰게 한다.

“상감께옵서 좌의정 정인지를 파직하시와 금부(禁府)로 내려 가루시오!”

이것이 허 후의 말 허두다. 누구는 이 말에 놀라지 아니하였으랴마는 그중에도 정인지는 낮빛이 종잇장같이 되었다.

“안평 대군 용은 종실의 지친이어늘 정 인지는 신자가 되어 지친을 모하하여 골육지변을 일으키려 하니 기죄가 살이옵고, 그 뿐 아니라 ‘안평은 지친이라 불인치법이라 하옵신 전교를 내리신 것이 어저께 일이어늘 이러한 전교가 계실지 하루가 못하여서 또 솔백관계한다 칭하고 지존(至尊)을 번기로 우시게 하니 이는 지존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제 사사로운 뜻을 이루려고 지존을 위협함이오니 더욱 기죄가살(基罪可殺)이옵고, 또 영의정이 자제하거든 좌의정의 몸으로 솔백관계를 한다 하니 이는 관기(官紀)를 문란(紊亂)하는 것이라 역시 기죄가 살이외다. 만일 지금 정 인지를 엄벌하시와 그 화근을 끊지 아니하옵시면 위로는 지존과 종실을 엄수이 여기고, 아래로는 백관을 농락하여 무수부지할 염려가 있사오니 당장에 삭탈관직(削奪官職)하옵시고 금부에 내리어 가두게 하심이 지당한가 하오.”

허 후의 말은 실로 청천벽력이었다. 사람들은 너무도 그 말이 의외인데 아연하여 다른 자기네의 귀를 의심하였다.

정인지는 돌로 깎아 세운 듯이 가만히 있었다. 오직 그 입술과 손가락이 분한 것으로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아무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이윽히 있다가 왕은,

“안평 대군을 죽이는 것이 불가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반렬 밖에 나서라.”

하시었다. 성삼문, 박팽년, 이 개, 유성원, 하위지, 김질, 기건, 이석형, 권절(權節)등 삼십여인이었다. 애초에 짠 사람은 칠팔 인밖에 아니 되지마는 나머지 이십여인은 불기 이동으로 의사를 같이한 사람들이다. 허 후의 말이 그들을 움직이는데 가장 힘있는 것은 무론이다.

이렇게 삼십여인이 정 인지를 반대하고 나서보니 조정에는 불온한 기운이 돌았다.이대로 가다가는 더욱 불온한 일이 생길까 하여 수양 대군은 상감 앞으로 가까이 나와,

“고만 파조(罷朝)하시옵고 정 인지와 허 후가 아뢴 말씀은 파조 후에 재결하심이 지당할까 하오.”

하였다. 왕은 이 자리에서 좀 더 두 파로 하여금 흑백을 다투게 하고 싶으시었으나 군국대사를 전부 위임하신 영의정 수양 대군의 말을 모른다 할 수 없으시어 곧 파조하시고 편전으로 입어하시었다.

이리하여 어찌하였으나 정인지의 솔백관계를 복주머니를 만들기에 성공하였다. 이날에,

“안평대군용을 강화(江華)에서 교동(郊棟)으로 옮기라.”

하시는 전교가 계시었다.

안평대군 부자를 교동으로 옮긴다는(喬棟) 것은 한 구실에 지나지 못하였다. 허 후의 야단이 있은 날 정인지는 수양 대군을 보고 이렇게 하다가는 큰일 날 뜻을 말하였다. 그 뜻은 이러하다.

지금 수양 대군의 신정부(新政府)가들어선지 날이 얕고 또 이번 정란에 대하여 민간에 시비가 많을 뿐더러 일반 민심은 도리어 황보인, 김 종서를 옳게 여기고 안평 대군이 그릇도 니 세상을 바로 잡을 유일한 사람인 것같이 생각하니 이때를 당하여 한 가지 믿을 것은 오직 위력뿐이라 무엇이나 한 번 말을 내면 그대로 하고 터럭끝만치라도 어기는 자는 단불용 대고 엄벌함으로써 인민으로 하여금 무서워서 감히 입을 벌리지 못하게 함이 아니면 이구석 저 구석에서 쑥쑥 나오는 수 없는 허 후를 낱낱이 접응할 수 없다 함이다.

“그러면 어떡헌단 말이요?”

수양 대군도 오늘 허 후의 변에는 두통이 났다.

“단정코 안평 대군에게 사사(儩死)를 하여야지요. 그러고 우선 허 후와 그 연루자를 일변 엄벌하고 또 성화같이 내외에 퍼지어 있는 황보인, 김 종서의 잔당을 사실(査實)하여서 모조리 소멸(消滅)하여야 하지요. 지금에 순을 자르지 아니하면 나중에 큰 나무를 꺾어야 하 게 될 것이외다.

이렇게 정 인지의 의견은 심히 고압적 무단적이었다.

“그렇지마는 상감께 윤허가 아니 계시니 어찌하오. 내 생각에는 아직 그대로 두고 후일에 인심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을까 하오.”

하는 수양 대군은 정 인지에게 비기어 온건한 의견을 가지었다.

그러나 마침내 정인지의 의견이 채용되어 ‘군국중사를 다 위임한다’는 구절을 적용하여 재래에 하던 모양으로 일일이 왕에게 묻거나 조정에서 말할 것 없이 수양대군이 옳다고 생 각하는 대로 독단하여 행하고 난 뒤에 왕께 그 연유를 아뢰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그렇지 아니하면 허 후 같은 자가 말썽 부릴 기회가 많을 것이요, 또 어리신 왕이 못하리라 하시면 억지로 할 수 없을 것이니 차라리 말썽 생길 근본을 끊어버리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한 것 이다.

그래서 금부진무 이 백순(李伯淳)을 보내어 안평대군에게 약을 내리고 그 아들의 춘군 우직(宜春君友直)을 멀리 진도(珍島)로 보내게 하고, 전우의정(右議政) 정분(鄭笨)을 낙안(樂安)에, 지정(池淨)은 영암(靈岩)에, 조수량(趙邃良)은 고성(固城)에, 이석정(李石貞)은 연일(延日)에, 안완경(安完慶)은 양산(簗山)에, 유중문(柳仲門)은 거제(巨濟)에, 혹은 유배(流配)하고 혹은 안치(安置)하고 파직(把直)을 당하고 충주(忠州)에 돌아가 있는 교리(敎理) 이현로(李賢老)는 사람을 보내어 죽이고 그 아들 건옥(乾玉), 건철(乾鐵), 건금(乾金) 삼형제를 연좌(緣坐)하고 가족과 가산을 적몰(籍沒)하였다. 이는 독자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맨처음 대사헌 기건과 함께 수양 대군의 말호를 막으려던 죄에 인함이다. 또 동의금(同義禁)구치관(具致寬)을 보내어 종성부사이 경유(鍾城府使 李耕蹂)와 그 아들 물금(勿金), 수동(秀同) 형제를 죽이고 또박(朴)호(好)문(問)으로 함길도 절제사(咸吉道節制使)를 삼아 본래부터 함길도 절제사로 있던 이징옥(李澄玉)을 죽이려다가 실패하여 이징옥의 난이라는 것이 일어나게 하였다. 이징옥은 김종서가 세종대왕께 거천하여 십팔세에 함길도 절제사가 된 명장이다.

이런 모든 일을 할 때에 한 번도 조의(朝議)에 묻거나 왕의 재가를 받음이 없이 모두 수양 대군이 정인지, 한확, 신숙주, 권람, 한명회 등 심복 파만 상의하여 처결하고 혹 그 후에 왕이 물으시는 일이면 대강 대강 상주할 뿐이었다.

안평 대군을 죽인 죄목 중에 양모를 붙었다는 무섭고 더러운 죄목이 들어 있었다. 안평 대군은 그 삼촌, 즉 세종 대왕의 아우님 되는 성녕대군(誠寧大君)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런데 성녕대군부인성씨(成氏)가 대군의 후실이 되어 안평 대군과 연치가 상적하고 또 자색이 있으므로 이러한 죄목이 생긴 것이니, 안평 대군은 오직 ‘하늘이 내리다 보소서’, 한 마디를 부르짖고 죽었다 한다. 이 일에 대하여 왕이 수양 대군에게 그 증거를 물으실 때 더 수양 대군은 말이 막히었다.

정인지는 허 후 이하 삼십여인을 엄벌하기를 주장하였으나 수양 대군은 이에 반대하여 허후 한 사람은 거제(巨濟)로 귀양보내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용서하여 죄를 묻지 않기로 하였다. 이 일은 수양 대군의 명성을 대단히 높게 하였다.

안평대군이 더러운 죄를 쓰고 죽었단. 말을 듣고 그 양모되는 성녕대군 부인도 목을 매어 자진하였다. 안평대군에게 이렇게 말 못할 누명을 씌운 것은 백성들이 누구나 이를 갈고 분하게 여기었다.

안평 대군도 죽고 이징옥, 이 경유도 죽었으니 이제는 천하 태평이었다. 아무도 감히 수 양 대군의 신정부에 거역할 자가 없었다.

이렇게 되매 수양 대군은 정란 사건으로 하여 잃어버렸던 명성을 회복하기로 힘을 썼다.

관기진숙(官記振肅)과 제정쇄신(諸政刷新)---이것은 수양 대군이 새로 정사하려는 첫 목표였다. ㅅ종 대왕 어우 삼십년, 태종과 문종 대왕 삼 년간의 거상과 병약으로 미상불 중앙 지방을 물론하고 기강이 해이하고 저우가 직체하여 일대 쇄신을 요구함이 컸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수양 대군은 자기의 할 일이 어느 곳에 있는 줄을 알았고, 또 정인지, 신숙주가 다 제도(制度)와 행정(行政)에 대하여는 귀재라 할 만한 재주있는 사람들이었다. 수양 대군의 무단적용단력과 정 인지, 신 숙주의 행정적 재능과 수완과 또 권람, 한 명회 등의 고등 정책적 모략과 이렇게 삼함이 갖추므로 불출 삼월에 내외 정치의 면목이 일신하였다. 만일 김종서 여당이라, 안평 대군 여당이라 하는 명목으로 많은 사람을 무시로 죽이는 일만 없었더면 전국 백성은 수양 대군의 선정을 칭송하고 태평을 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양 대군에게는 자기가 한 일에 약점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일에는 다 냉정하고 공평하려 하면서도 안평 대군이나 황보인, 김 종서를 변호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만 눈이 뒤집혀 전후를 돌아보지 못하여 반드시 그를 죽여버린 뒤에야 비위가 가라앉았다.

수양 대군은 정치를 새롭게 하는 것 밖에 아무쪼록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수양 대군은 조카님되시는 왕께 대항 근래에 깊은 애정까지도 깨달았다. 왕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왕까지도 미웠거니와 이제 자기 수중에 있게 된 때에는 왕을 미워하는 마음은 없어지고 어떻게 이 어리신 왕을 잘 보좌하여서 자기가 진실로 주공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수양 대군은 왕의 뜻을 생각하여 혜빈 양씨(惠嬪揚氏)로 하여금 무시로 궁중에 들어와 왕의 곁에 있기를 허하였다(그동안은 임시 혜빈 양씨의 궁중 출입을 금하였었다). 이것은 외로우신 왕에게는 더할 수 없이 기쁜 일이었었다.

둘째로 수양 대군은 군국 대사를 자기가 다 맡아 하기 때문에 왕에게는 실제 정치으 ㅣ번거로움과 누를 끼치지 아니하고 공부나 하고 마음대로 노시도록 하였다.어리신 왕에게는 그 것도 기쁜 일이었다. 근래에는 왕이 정전에 출어하는 일저차별로 없으시었다. 그래서 수양 대군을 미워하고 무서워하는 생각도 훨씬 줄었다.

전에는 수양 대군이 좋지 아니한 뜻을 품었다는 말과 결코 그를 믿지 말라는 말을 왕에게 은밀히 아뢰는 이도 있었으나 지금은 왕의 주위에는 그런 말 하는 사람도 없었다. 수양 대 군 정란 후에 제일착으로 궁금을 숙청할 때에 수양 대군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자는 궁녀나 내시를 물론하고 다 내어쫓은 까닭이다. 혜빈 양씨도 그때 통에 출입 금지를 받았다가 이번에 정인지, 한명회 동의 반대함도 듣지 아니하고 다시 출입을 허하였으니 왕의 귀에 수양 대군을 반대하는 말이 들아갈 기회가 있다 하면 그것은 혜빈 양씨를 통하여서일 것이다.

셋째로, 수양 대군이 왕을 위하여 하려는 일은 왕후를 택하는 것이다. 비록 아직 양암(諒 闇)중이라도 왕이 궁중에 외로이 계신 것이 딱하고 또 하루라도 속히 후사를 얻음이 ㄹ요 하다 하여 이 역시 정인지, 한 명회 등의 반대함도 불구하고 단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전 같으면 국혼(國婚) 문제 같은 큰 문제요, 겸하여 옛법을 무시하고 양암 중에 하자는 것이니 마땅히 조정의 공의에 내어 놓아야 할 것이요, 그러하면 갑론을박으로 해가 늦도록 다투어 여러 날이 되어도 끝날 줄을 모를 것이요, 그러한 끝에는 조정은 가부 양편으로잘리어 일종의 정치적,사상적 당파를 이루어 심각한 싸움을 계수 할 것이다. 수양 대군은 국인(國人)의 이 흠점을 잘 알기도 하고 목격해 보기도 하였기 때문에 더구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심지어 좌우 대신에게도 미리 의논함이 없이 다만 혜빈 양씨에게 알리고는 독단적으로 다 정해버렸다. ‘조정에서 왕비 책립하기를 여러 날 하여 마지 아니하거늘 이라고 실록(實錄)에 있지마는 그것은 다 그럴듯하게 쓴말에서 지나지 못한다.

갑술년 정원, 왕의 나이 열 네 살. 풍저창(豊儲倉) 부사(副使) 송현수(宋玹讐)의 딸을 왕비로, 김사우(金師禹)의 딸과 권완(權完)의 딸을 후궁(後宮)으로 간택하여 놓았다. 송현수의 딸은 왕보다 한살이 많아 열다섯 살이었다. 왕비 간택은 수양 대군의 부대부인 윤씨가 주장하여 하고 후궁 인선은 혜빈 양씨가 주장하였다.

내일같이 왕(王)후 책립(冊立)의 의를 행하기로 다작정해 놓은 뒤에야 수양 대군이 사인 (舍人) 황효원(黃孝源)을 좌의정 정 인지에게 보내어, ‘명일 왕후를 세울 터이니 일찍 들어 오라’는 뜻을 전하였다.

정 인지도 이 일을 몰랐을 까닭이 없다. 전하는 말로 누구누구를 간택하였단 말지 들어서 알았지마는 설마 사전에 자기에게야 의논하지 아니하랴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양으로 다 작정해 놓은 뒤에 ‘일찍 오라’ 하고 부름을 받으니 그는 아니 노할 수 없었 다.---.

“거상 중에 혼인하는 법이 어디 있어? 자네도 유자(儒者)면서 내게 그런 소리를 전하려 다닌단 말인가.”

하고 소리소리 질러서 다시 입도 열지 못하게 하였다.

정인지가 어렇게 노한 데는 자기를 무시하였다는 것 밖에 또 한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자기 손녀로 왕후를 삼도록 평소에 생각도 하여 왔고 직접 수양 대군에게 말은 못하여도 그러한 눈치는 넉넉히 비추어 두었었다. 자기의 공로를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들어 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수양 대군 편에서도 정인지의 뜻을 잘 알았으나 그에게 국구(國舅)의 권세를 주는 것이 싫어서 모른 체하고 아무쪼록 세력도 없고 또 장차 세력을 잡을 근심도 없는 사람을 택하노라고 송현수의 딸을 택한 것이다.

사인 황효원은 정인지에게 호령을 받고 돌아가서 차마 정인지가 하던 말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하고 다만,

“좌상(左相)이 채신지우(採薪之憂)가 있는가 보아요. 아무 말이 없습니다.”

하고 거짓말로 전하였다.

수양 대군은 정 인지의 뜻을 알고 속으로 옷은 뒤에, 사재명일 이어든 “(事在明日) 불가불급(不可不急)이야. 자네 다시 가보게. 그러고 이렇게 말하게---혜빈도 어서 납비(納妃)하기를 청하니 아니 좇을 수가 없다고.”

하고 다시 황효원을 정인지에게로 보내었다.

효원은 인지에게 수양 대군이 시키던 대로 말하고 또 혜빈이 재촉하니 아니 좇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혜빈이란 말에 인지는 낯을 붉히고 노하였다. 자기가 주장항서 대궐 밖으로 내어쫓았던 것을 수양 대군이 자외로 다시 불러들은 것이 분한 까닭이다. 혜빈이 수양 대군은 고맙게 생각하리라, 자기만을 원망하리라, 하면 더욱 분하였다. 근래에 수양 대군이 매사에 자기를 무시하는 것도 분하였다. 정 인지는 사랑이 떠나갈 듯한 음성으로,

“혜빈이란 다 무엇이야. 양씨로 말하면 비록 세종께서 봉빈(封嬪)을 하시었다 하더라도 고시천녀(固是賤女) 여든 제가 무엇이라고 국가사에 입을 놀린단 말이야. 양씨 말이 나라 일이란 말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벼락맞은 황효원을 물러나 꿇어 앉으며,

“소인 가서 무슨 말씀으로 회계(回啓)하오리까.”

하고 울려고 들었다.

“내일 일찍 예궐한다고 그러게.”

하고 인지는 씩 웃었다.

정인지도 정인지어니와 제일 걱정이 왕이다. 내일로 날짜까지 정한 뒤에 수양 대군은 왕께, ‘종권납비’하실 것을 아뢰었다. 수양 대군의 이 말에 왕은 펄쩍 뛰며,

“숙부, 웬 말이요? 거상 중에 납비가 말이 되오?”

하고 고개를 흔드시었다.---.

“오월이면 탈상을 할 터인데 무엇이 급하여서.”

하고 왕은 거절하시었다.

수양 대군은 혜빈과 힘을 합하여 가까스로 왕의 뜻을 움직이었다. 왕은 비록 어리시지마는 효성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이리하여 정월 갑술일---이를테면 갑술년 갑술일이다---에 왕은 거상 중이건마는 길복으로 근정전에 출어하시와 왕에게는 종조부되는 효녕대군보(孝寧大君補=이 양반에 관한 이야기는 이 위에 한번 나온 일이 있다)와 호조판서(戶曹判書) 조혜(曹惠)를 풍저창(豊儲倉) 부사(副使) 송현수(宋玹壽)의 집에 보내어 그 딸로 왕비를 책립한다는 뜻을 정식으로 전하고 옥책문(玉冊門)을 내리시니 그 글은 이러하였다---.

“하늘과 땅이 덕을 합하여 만물을 생성하나니 왕된 이는 하늘을 법받아 반드시 원비를 세우나니 써 종통을 받들고 풍화를 터잡는 바니라. 내 어린 나이로 나라를 이으매 경계함으로 서로 이룰지니 마땅히 내조를 힘 입을지라. 이에 널리 좋은 가문을 찾고 두루 아름다운 사람을 구하더니 자(咨)흡다, 너 송씨! 성품이 은유하고 덕이 유한하여 진실로 정위중곤(正位 中壼)이라 한 나라의 어미될 만한지라. 이제 사자를 보내어 옥책보장을 주어써 왕비를 삼노 니 오희라 몸이 합하고 즐김을 같이하여써 종묘를 받들고 관저의 화와 종사의 경이 다 오늘부터 비롯도다. 삼가지 아니할소냐.

이라하여 왕비 채림이 끝나고 후궁으로 택함이 된 권완(權完)의 딸 권씨와 김사우(金師禹)의 딸 김씨도 동시에 궁중에 들어오게 되어 혈혈단신이던 왕은 갑자기 두 가족을 가지게 되 고 대군 중에도 외숙되는 예조판서(禮曹判書) 권자진(權自嗔) 외에 이번에 지돈녕(知敦寧)이 된 장인 송현수가 왕의 받드는 사람이 되게 되었다.

왕비 책림과 동시에 문제가 된 것은 ‘단상(短喪)’ 문제다. 단상이라 함은 거상하는 기간을 줄여버리자는 것이다. 상중에 혼인하였으니 벌써 거상은 그만둔 것이라, 이제 다시 거상한다는 것도 더리어 우스우리 아누 탈상 해버리고 길복을 입는 것이 옳다 함이다. 문종의 거상이 오월 십 사일인즉 아직 다섯 달이 남은 상기를 잘라버리자는 것이다.

이 주장의 중심은 무론 수양 대군이다. 수양 대군은 형님되시는 문종 대왕의 삼년 거상에 너무도 효도의 노예가 되어 국정까지도 돌아보지 아니하신 것에 반감을 가지어 일년 거상이면 족하다는 의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기회를 타서 이 의견을 실행하려 한 것이다.

여기 항의한 것이 예조참의(禮曹參議) 어효첨(魚孝瞻)이다. 그의 항의하는 요점은,

“왕비를 세움은 종사 대제를 위하여 부득이하여 할지언정 무슨 부득이함이 있어서 단상을 구태여 하랴.”

함이었다.

어효첨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으나 수양 대군의 위권이 두려워 감히 입 밖에 내어 말하는 이는 없고, 상중 납비를 그렇게 반대하던 정인지조차 부질없읍을 알고 입을 닫치어버리었다. 그 뿐더러 어효첨이가 감히 이러한 항의를 하는 것은 그의 상 장관되는 예조 판서 권 자진이 시킨 것이나 아닌가. 왕의 외숙되는 권 자진이 어효첨을 시키어서 이 문제를 내어 은연히 수양 대군과 자기와 한 번 겨루어 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강경하게 여러 번 항의함이 있음도 불구하고 어효첨의 말은 마침내 채용되지 아 니하였다.

그런 뒤, 한 반년 동안에는 아무 일이 없이 평화로운 날이 계속되었다.

수양 대군은 그렇게도 소원이요, 무엇보다도 즐기던 정권을 잡아 마음대로 자기의 수완을 두르되 거칠 것이 없었고, 한명회, 권람, 신숙주, 홍 윤성, 이 계전 같은 사람들은 모두 정란공신으로 지위와 재산과 노비를 받아 갑자기 부자가 된 가난뱅이 모양으로 영화와 교만을 마음대로 누리게 되었다. 그중에도 한 명회는 반년이 못되어 이조참판(吏曹參判)이 되 고 홍 윤성도 병조참의(兵曹參議)가 되고 이 계전은 소원대로 병조 판서가 되었다.

그러되 누구 하나 감히 정부를 비방하지 못하고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남은 문제, 소위 ‘청제용여당(請除瑢艅黨)’이란 것이다.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에서는 밤낮에 생각하는 일이 어찌하면 안평 대군의 여당을 찾아내어---찾아낸다는 것보다도 만들어내어 청제용여당이라는 문제로 상소를 할까 함인 듯하였다. 어제는 무슨 장령(掌令), 오늘은 무슨 사간(司諫)하는 작자들이 배운 글재주를 다 짜내어서 ‘청제용여당’을 부르짖었다. 오직 이 일에 참예하기를 수양 대군, 정 인지 등이 바라건마는 참예 아니하는 것은 집현전 학사 패들이다. 그들 중에도 ‘청제용여당’이라는 염불만 부르면 수가 날 줄을 알고 침을 삼키는 자가 없지도 아니하지마는 원체 박팽년, 성삼문, 하 위지, 이개, 유 서원등의 세력이 크기 때문에 눌리어서 꿈쩍을 못한 것이다.

안평 대군 여당이라 하면 낙안(樂安)에 있는 정분(鄭笨) 거제(巨濟)에 있는 허 후(許詡). 진도(珍島)에 있는 의(宜)춘( 春 )군(君) 우직(友直)이다. 허 후를 못먹어 애절을 하는 이는 정인지, 이 계전이요, 정분을 없애려고 하는 이는 권람, 한명회요, 안평 대군의 아들되는 우직을 살려 두어서 마음이 아니 놓이는 이는 수양 대군 자신이다.

허 후에 대하여 수양 대군은 까닭 모를 일종의 애착심을 품고 있었다. 원체 수양 eornsd 인재를 자기 수하에 넣으려는 욕심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별히 허 후에게 대하여서는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아무리 하여서라도 그를 살려서 자기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정인지는 본디 허 후를 미워하였을 뿐더러, 허 후에게 큰 망신을 당한 뒤로부터는 더욱 허 후를 하루라도 살려 둘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래서 허 후의 배소(配所)인 거제에 염탐군을 보내어 허 후의 일언일동을 염탐케 하고 진즉 허 후와 가까이 사귀게 하여 허 후의 입에서 수양 대군을 원망하거나 모욕하는 말이 나오게 만들기를 힘쓰고 또 시사를 비방하는 시나 편지나 이러한 필적을 얻어 내어 그를 죽일 새 증거를 얻으려 하였다.

이리하여 염탐군에게서는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허 후의 목숨에 관계를 보고가 정 인지와 이 계전의 손에 들어오고 두어 자, 서너 자 그적거려 버린 꼬깃꼬깃한 수지까지도 허 후의 필적이라면 무슨 보물이나 되는 듯이 싸서 거제에서 오는 관문서와 같이 소중하게 정 인지, 이 계전에게로 보냄이 되었다.

그렇게 원체 근엄한 허 후는 남에게 책잡힐 말이나 글을 함부로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노력에도 예기한 수확이 없었다.

정분을 죽여야 한다고 권람, 한명회가 주장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고명 중 신 중에 살아 남은 자가정 분 일뿐더러 정분은 당시의 우의정이었었고 또 정란 당시에 전경도 도체찰사로 밖에 있었은즉, 설사 황보인, 김종서가 죄가 있다 하더라도 정분은 애매하다 하는 민간의 동정을 받을 뿐더러 안평대군까지 죽은 오늘날에는 정분은 수양 대군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떠받들 중심 인물 될 것이 분명한즉 미리 죽여버려서 후환이 없게 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정분은 최근 삼사 개월래로 민간에 볼일 듯하는 동정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처지에도 말미암음이어니와 또한 그의 덕행과 절개에도 말미암음이 있다. 그는 수완 있는 사람은 아니다. 덕은 있는 사람이요, 또 마음이 변할 사람은 아니다. 그가 조금만 수양 대군에게 호의를 표하면 수양 대군은 기쁘게 그를 중용할 것이지마는 그는 그것을 아니한다. 이런 것이 다 그의 명성과 동정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 정 분이 전경도 도체찰사로 전라도, 경상도로 순회하고 회로에 충주(忠州) 지경에 이르러 전 교리 이현로(李賢老)를 만나 서울서 일어난 소식을 자세히 듣고 오늘인가 내일인 가 자기의 죽을 날이 앞에 다닥치는 것을 기다리면서 이 현로와 동행하여 서울을 향하고 말을 몰았다. 비록 죽음이 앞에 기다린다 하더라도 자기의 할 일은 궐하에 복명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중로에서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이 현로도 무론 자기의 생명이 남으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하였다. 평소에 안평 대군과 절 재 김종서 문하에 다닌 것으로 보든지, 또 수양 대군이 궁중에 무상 출입하는 것을 불가하다고 극언한 것으로 보든지, 수양 대군이 세도만 잡으면 자기의 생명은 없어질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있는 터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서울로 가까이 갈수록 두 사람에게는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이다. 한 고개 넘고 한 굽이 돌아 두 사람은 말없이 말없이 간다. 멀리 앞에 말 탄 사람만 번뜻 보여도 경관(京官)인가 경관인가 하면서.

충주(忠州)에 이르러 황보인, 김 종서 등의 머리를 만났다. 마음 같아서는 이 좋은 친구요, 동류요, 또 충신들의 머리를 안고 울기라도 하고 싶건마는 그러할 수도 없어 오직 고개를 돌리고 늙은 눈에 눈물을 씻을 뿐이었다. 이 현로는 소리를 내어 통곡함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벼슬을 버린 자유의 몸이니 그러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 사람, 이런 일도 있나?”

하고 사람 없는 데를 당도하여서 정분은 이 현로를 돌아 보았다.

“대감마저 돌아가시면 어리신 상감을 뉘 있어 도웁니까?”

하고 이 현로는 다른 말로 대답하였다.

용안역 조금 못 미쳐서 두 사람은 (用安驛) 어떤 사람이 산굽이로 말을 달리어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저것이 경관 아닌가?”

하고 정분이 물었다.

“이번에는 짜장 경관인가 보외다.”

하고 이 현로는 밤을 멈추려 하고 앞을 바라보았다. 검은 전복을 입은 모양이 금부 관원인 듯한 것이다.

“어서 말을 몰아라.”

하고 정분은 관노를 재촉하였다. 정분에게는 이 현로외에 사인(舍人), 서리(書吏), 영리(營吏) 등 사오 인의 종자(從者)가 있었다. 그들도 다 말없이 앞에 달려오는 인마만 바라보았다.

경관이다 금부도사다 하는 생각들이 번개같이 사람들의 머리로 지나갔다.

이편 사람들의 얼굴이 보일 만하게 가까이 온 때 그 말 탄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내달아,

“전지(傳旨)야!”

하고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보니 그 사람은 전에 정분이 이조 판서로 있을 때에 정랑(正郞)을 다니던 사람이었다.

정분은 곧 말에서 내려 전지를 받든 관원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노중에서 죽는 것이 모양이 숭하니 역관(驛館)에 가도 관계치 아니하오?”

하고 물었다. 정 분은 자기가 죽음을 받을 줄 믿었던 것이다.

“아니요, 소인은 전지를 받아 대감을 적소(謫所)로 압송하려 왔소이다.”

하고 그 말이 매우 공손하였다.

정분은 다시 두 번 절하며,

“그러면 나를 살리시는 것이요?”

하고 말에 올라 말머리를 들이키어 낙안(樂安)으로 향하였다.

경관은 가장 정분에게 친절한 체하고 심복인 체하고 때때로 여러 가지로 조정 일과 수양 대군에 관한 말을 물었다. 그 묻는 말이 다 정분의 처지로는 심히 대답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이것은 무론 정분의 마음을 떠 볼고, 또는 그를 죽일 구실을 얻으려고 하는 일이다.

낙안에 온 뒤에도 십여 일 동안이나 경관이 기거를 같이 하면서 교언영색으로 정분에게 여러 말을 물어도 정분은 한 번도 개구를 아니하였다.

이현로(李賢老)는 용안역(用安驛)에서 교살(絞殺)을 당하고 정분만 낙안으로 압송되었다.

낙안 서 정 분과 같이 기거하기 십여 일에 마침내 경관은 아무 소득이 없이 서울로 떠나버렸다.

정 분은 낙안 배소(配所)에 있는 동안 독서로 소원을 삼았다. 얼마 뒤부터는 탄선(坦鮮)이라는 늙은 중이 와서 동무를 하고 있었다. 이 중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므로 처음에는 서울서 보낸 염탐군인가 하고 의심하였으나 얼마 아니하여 정분은 그를 믿게 되었다.

정 분 내외가 다 칠십이 가까운 노인이요, 또 귀양살이에 노복이 있을 리도 없어서 흔히 탄 선이가 물을 긷고 부엌일을 하였다. 정 분의 부인은 정경 부인의 귀한 몸이지마는 가난한살림에는 결코 힘있는 주부가 될 수 없었다.

혹시 지방 사람들이 정분의 처지에 동정하여 생선깨나 닭마리나 가져오는 이도 있고 또 명절이나 잔치가 있을 때에는 동네 늙은이에게 하는 예로 술과 안주로 찾아오는 일도 있으 나 그것도 감시하는 관원의 눈에 띄어 군수(郡守)가 알게 되면 재미 없는 까닭에 매우 어려웠다. 중 탄선도 행색을 숨기고 머슴 모양으로 있었다.

군수는 아무쪼록 정분을 못 견디게 구는 것이 직책인 줄로 아는 듯하였다. 사흘에 한 번씩 수형리(首刑吏)를 시켜서 정분의 거처하는 곳을 적간(摘奸)하였다. 이것은 정분에게 가장 큰 모욕이었다. 그러고 무시로 사령이 들락날락하였다. 이렇게 정분에게 가혹하게 하는 것이 상관의 비위를 맞춤인 줄을 아는 까닭이다.

정 분은 배소에 있는 동안에도 조상의 신주를 만들어 두고 반드시 제사를 궐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별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어니와 효성과 충성은 지극하였다. 헌 소반에 밥 한 그릇, 나물국 한 그릇, 술 한 잔, 이러한 재물로라도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고, 삭망에도 반드시 분향하고 문종 대왕의 영연을 향하여 요배하며, 또 국기일(國忌日)에도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종묘에서 제향 잡술시각을 보아 복향하여 절하기를 잊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그는 불평도 없이, 원망은 물론 없이 근 일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러한 생활이 도리어 사림(士林)과 일반 민중의 존경과 동정을 끌어서 정 분의 명성은 정승으로 있을 때 보다도 더욱 높아지었다. 이 명성이 정분의 목숨을 재촉한 것이다.

팔월 어느 날, 정경부인의 유일한 말동무 되는 이웃집 노파(그는 기실 정분을 감시하는 사령의 어미다)가 와서 경관(京官)이 내려왔다는 말을 전하였다. 이것은 그 아들이 정 분에게 동정하여 그 어미를 시켜서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미리 안애야 무엇하랴마는 그래도 호 의다.

이때에 정 분은 동네 코 흘리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 좋은 늙은이를 즐겨하여 식전부터 이 ‘서울 영감’의 오막살이에 모여들었다.

정분은 일이 있으니 있다가 오라 하여 아이들을 들려 보내고 탄선더러 밥을 지으라 하고 목욕하고 관대를 갖추고 조상에게 하직하는 제사를 지내 뒤에 손수 신주를 다 불살라 버리고 그러한 뒤에는 관음복 벗고 부인더러 우장(雨裝)을 내어라 하여 갈모를 쓰고 유삼을 입고 수건을 들고 단정히 앉아서 관차(官 次)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비도 아니 오는데 우장은 왜 하는가 하고 부인은 수상히 여기었으나 다 무슨 생각하심이 있음이려니 하여 감히 묻지 아니하고 다만 눈물을 머금을 뿐이었다.

이윽고 관차 사오인이,

“정분이 나서라!”

하고 소리를 치며 달려들어 한 놈은 정분의 바른 팔을 잡고 한 놈은 왼팔을 잡고 한 놈은 등을 밀고 한 놈은 앞을 서고 한 놈은 뒤를 지키어서, 가자 빨리 가자 하고 버릇없이 덜렁거렸다.

부인은 참다 못하여 정분의 옷소매를 잡고 울며,

“대감 어디로 가시오? 칠십 평생에 해로하다가 나를 두고 어디로 가시오?”하였다.

“조명(朝命)이니 할 수 있소? 나 죽은 뒷일은 부인이 다 알아 하시오.”

하고 태연히 말을 하나, 부인의 울음소리가 뒤에 들릴 때마다 가슴이 아니 아플 수가 없었다.

정 분이 사령들에게 끌려갈 때에 동네 아이들이 어디를 가느냐고 뒤를 따랐다. 그들은 정든 친구, ‘서울 영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까왔던 것이다.

“언제 와요?”

하고 아이들은 정분이 다시 돌아올 줄만 믿었다.

정 정승이라고 부를 줄 아는 동네 사람들도 문밖에 나와서 허위대가 커다란 노인이 이 별 나는 날에 우장을 하고 사령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먼 발치에 바라보고 아깝게 여기었다.

“경관이 내려왔대.”

“정 정승이 역적에 물려 죽는대.”

이 만큼은 낙안 백성치고는 아무리 무식한 사람들까지도 알았다. 또 정 정승이 흉악한 사 람이 아니요, 도리어 충신이란 것도 누구의 선전인지는 모르나 다들 생각하게 되었다.

“정 정승은 아무 죄도 없대. 김 정승 모양으로 간신한테 물려서 죽는게래.”

김 정승이란 김종서를 이름이다.

충신이 간신한테 물려서 죽는다는 것은 전제 군주시대의 공식(公式)이어서 무식한 백성을 사이에도 용이하게 이해함이 되었다.

조그마한 고장이라 정 정승이 객사 앞 장터에서 오늘 죽는다는 말이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낙안 읍내와 금촌에 들리자 수백 명 사람이 객사 앞 장터로 모여들었다. 감히 큰 소리로는 말은 못하나 숙덕숙덕하는 소리는 아니 들리는 데가 없었다.

우장을 입은 정분이 사령들에게 끌려 장터 한복판으로 와서 우뚝 섰다. 미시(未時)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 정승이다!”

“갈모 쓴이가 정 정승이다, 충신이다.”

“충신을 죽이고 천벌이 없을까.”

이러한 소박한 분개와 비평이 민중 사이를 돌아간다. 이 백성들은 지난 동짓달에 바로 이 자리에서 황보인, 김 종서 등의 순수(循首)를 보았다. 그때에는 창졸간이라 아마 황보인, 김 종서가 역적질을 하였나 보다 하였으나 정 분이 이 고을에 와 있는 뒤로 각처 선비들이 많이 출입하고 또 민간에서 수양 대군 정란 사실의 내용을 어지간히 자세히 알게 되매 백성들의 동정은 황보인, 김종서 등에게로 물려 그들을 충신으로 추앙하고 수양 대군과 정 인 지에게 대하여 격렬한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정분에게 향하는 존경과 동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만일 이 민중의 감정을 알아 보아 그들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자가 있었더면 이 백성은 폭동을 일으켜 정분을 빼앗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할 줄 모르는 백성이었다.

형벌을 행한다는 미시(未時)가 가까우매 사람들은 더욱 많이 모여들었다. 정 분은 내려쬐 이는 볕 밑에 나무로 깎아 새운 사람 모양으로 갈모를 쓰고 가만히 서 있었다.

군수와 감형관도 백성들 중에 불온한 기운이 있는 줄을 알아 행형(行刑)을 명일로 밀려고 하였다. 겁이 난 것이다. 그러나 정 분은 준절하게 거절하였다.

“거 무슨 말이요. 조명(朝命)이 지엄하시거든 어찌 마음대로 기한을 변할 수가 있소. 나는 죽으러 여기 나선 사람이니까 관에 들어가 무엇한단 말이요?”

하루 동안 관에 머물기를 감형관이 청한 까닭이다.

정분의 사색은 추상 같았다.

감형관(監刑官)은 하릴없이 을개미를 손에 들어 정 분의 목에 씌우려 할 때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거든 하라.”

하고 정분에게 여유를 주었다.

정 분은 감형관의 허락을 얻어 가지고 북으로 서울을 향하여 어리신 상감께 하직하는 절을 하고 다시 눈앞에 지봉(芝峯), 절재(節齎) 같은 먼저 죽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한 번 읍하고 난 뒤에 인제는 할 일을 다하였다는 듯이 두 팔을 늘이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

“자, 그 올개미를 이 목에 씌우라. 죽는 것은 같지마는 절개는 다른 법이야. 내가 만일 이 심이 있었그든 하늘이 맑은 대로 있으려니와 하늘이 만일 내 충성을 알거든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야.”

정 분의 숨이 끊기자 보던 백성들이 통곡을 하고 갑자기 구름이 일어나 소나기가 퍼부어 감형관과 군수가 우산을 받고 뛰어들어갔다.

허후와의 춘군 우직(許詡) (宜春君友直)이 죽음을 받은 모양도 정분과 대동소이하였다. 다만 의 춘군 우직은 원통하게 죽은 안평대군의 아들인 만큼, 또 인제 겨우 열 다섯 살밖에 아니 도니 어린 소년인만큼 그가 초립을 쓰고 형장에 나설 때에 보던 사람들이 측은한 눈물을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

정분과 허후와 우직까지 죽으니 인제는 수양 대군이 미워하는 사람은 거의 다 죽었다.

이제 수양 대군은 왕께 청하여,

“다시는 적도(賊徒)에 관하여 말을 말라.”

하는 전교르 내리시게 하였다. 지평, 장령패들이 칭찬 받으려는 상소가 귀찮은 까닭도 있거니와 또 금도(襟度)가 넓은 것을 보이려는 수양 대군의 정책도 있는 것이다. 아무려나 이 전교가 내리기 때문에 아직 목이 붙어 있는 사람은 제 목이 한참은 견딜 줄을 믿게는 되었다.

이번 수양 대군의 정란 통에 원통하게 죽은 사람을 아는 대로 적어 보자---.

안평대군(安平大君)용(瑢)의 춘군 우직(宜春君友直) 황보인(皇甫仁) 황보(皇甫) 석(錫) 황보(皇甫)흠(欽) 황보(皇甫) 갓난이 황보(皇甫)경(京)근(斤) 김종서(金宗瑞) 김(金) 승벽(勝癖) 김(金) 승규(僧規) 김석대(金石臺) 김(金)목대(木臺) 김(金) 조동(粗銅) 김만동(金萬同)이 양(李穰) 이승윤(李承胤)이 계조(李繼祖)이 소조(李紹祖) 이 장군(李將軍) 이승효(李承孝) 허 후(許詡) 정분(鄭笨)민신(閔伸)민보창(閔甫昌) 민보해(閔甫諧)민보흥(閔甫興) 민석보(閔釋甫)민(閔)들이( 伊) 조극관(趙克寬) 조수량 윤처공(尹處恭) 윤경(尹經) 윤위(尹渭) 윤탁(尹濁)윤식(尹湜) 윤갯동 윤효동(尹孝同)이 명민(李命敏)이 현로(李賢老) 이건 금(李乾金)이 건옥(李乾玉)이건철(李乾鐵)이 경(李耕) 유이 물금(李勿金)이 수동(李秀同) 원구조번(蕃) 조연동 조향동조귀동 김연(金衍)--내시 김(金)대(大) 정(丁)한 숭(韓崧)-- 내시 이석정(李石貞)이징옥(李澄玉)이 자원(李滋源) 이윤원(李潤源) 이철동(李鐵同)이 성동(李成同)안 완경(安完慶) 지정(池淨) 지신화(池信和) 하석(河碩)이 보인(李保仁)-- 이양의 종제 화성군 해(花城君諧) 화산군(火山群) 심(諶)화 능군모(花陵君謀) 화남 군사문(花南君沙門) 화평군 주명(花平君住命)한산군이의산(韓山君 李義山)해녕군 우경(海寧君友璥) 김말생(金末生) 김산호(金珊瑚) 김정(金晶) 김갯동(金㖋同) 박이녕(朴以寧) 박하(朴夏)이 차(李差)최로(崔老) 김상충(金尙忠) 김득천(金得千) 김복천(金福千) 양옥(梁玉) 조석강(趙石崗) 황귀존(黃貴存)안 막동(安寞同)안 장손(安長孫) 안경손(安儆孫) 조완규(趙完奎) 조순생(調馴生)조불련(趙佛連-- 안평대군의 사위) 고덕칭(高德稱) 황의헌(黃義軒) 황석동(黃石同) 이식배(李植培)이 귀진(李貴珍)이은중(李銀仲) 김유덕(金有德) 김죽(金竹) 김신례(金信禮) 유세(劉世) 강 막동(姜寞同) 정효강(鄭孝康)정 백지(鄭白池) 정효전(鄭孝全) 정원석(鄭元碩) 박계우(朴季愚) 이름에 한 자 떨어뜨려 쓴 것은 자손을 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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