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또 걸렸어?”

불안과 절망에 떨리는 소리이다.

그 말속에는 비정에 담뿍한 음조가 반향되어 있다.

내가 걸린 것은 아니다 하는 얼마간의 안심하는 빛을 엿볼 수 있었으나 자기들도 장차 숙명적으로 한번은 꼭 잡힐 것이요, 또 그것이 멀지 않다는 것을 의식할 때에 역시 암담한 기색이 돌았다.

그만큼 산림기수의 횡포는 그 동리 사람들에게 불안의 과녁이 되고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늘밤에도 그것이 그들 사이에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아 또 걸렸어?”

“그렇다네.”

“누가?”

“아랫말 김서방이.”

“그 노인 말이지?”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그 노인이란 말의 놀람――보다도 걱정하는 듯한 애정哀情이 담뿍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들 머리 속에는 극도로 초조한 노인의 자태가 마치 전류같이 떠올랐다.

수십 년 무거운 짐에 못 이겨서 꼬부라진 허리, 쓴 약이나마 마실 때같이 찡그린 오랫동안의 신고를 그대로 새겨 놓은 얼굴, 거미줄같이 잡혀있는 주름, 그리고 정년 멀리 공중으로 가고 보기에도 무서우리만큼 파리한 허약한 체구體軀――그것이 늙도록 맛보아온 구로의 선물이요, 노력의 전 보수이다――가 눈앞에 완연히 떠올랐다.

“얼굴에는 상처가 나고 피흔적이 군데 군데 보이던데, 양편 다리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노인의 참태를 목격한 박서방은 절실히 그것을 설명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고,

“이렇게 늙도록 살아왔었야 그런 변은……분하고 원통하고……”

하던 노인의 목소리까지 일일이 전하였다. 그것을 일과로 하는 노인은 오늘도 또 뒷동산에 가서 마른 나뭇가지와 검불을 주우러 다녔다. 또 나무나 하는 줄만 알았던 산림기수는 좋은 미끼나 본 듯이 달려오더니 다짜고짜로 그를 난타하였다. 발길로 차고, 주먹으로 치고, 과도의 놀람에 노인은 한마디 말도 못하였다. 하물며 반항? 아니, 사실 그는 맥 있는 조상彫像이었다. 그럴 수 밖에. 사나운 사자 앞 양처럼 죽도록 맞고 나중에는 나뭇짐까지 뺏겼다.

이런 이른 결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 매일과 같이――그래 어저께는 이서방이 잡히고 접때는 금동이가 잡혀 들어갔다.

교활한 산림기수의 눈은 미우리만큼 명확하였다. 가혹한 산림기수! 이 사람 때문에 촌인의 생활이 얼마나 동요하여 가고 불안에 전율하여 가는지 모른다.

넓은 방안에는 산림기수를 저주하고 원망하는 빛이 가득하였다.

“그러니 이 어데 살아갈 수 있다. 나중에는 나무도 못하게 하니…… 참 흉악한 놈의 세상일세. 점점 못살게 되니 어찌하면 좋을지. 산림기수집이 그렇게 껍죽대고 제 세상으로, 아니 기막히는 세상일세. 무호동중이 작호라 하더니 꼭 옳다.”

박서방은 여전한 구변으로 탄식하면서 또 계속한다.

“그렇게 제도니 무에니 야단법석을 하고, 백성을 위하느니 살게 하느니 하지 말고 위선 사람을 골라 써야 하겠데. 그 따위가 있기 때문에 될 일도 안될 테야.”

고요하던 이야기가 점점 높아져 나중에는 연설 같이도 되고 토론 비슷하게도 되었다. 그러나 짧은 밥이 점점 깊어 감에 따라 그들의 눈도 저절로 감겨져 왔다. 마침내 넓은 방에는 낮 동안 피로를 아주 일ㅈ어버린듯한 안식의 코고는 소리가 고요히 울린다. 유리 같은 하얀 달은 파란 웃음을 띄우고 올빼미 우는 소리는 무섭게도 동리를 진동시켰다. 처참한 밤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뒷동산 소나무 밑에서 교사絞死하여 세상을 마친 노인의 시체를 발견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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