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유격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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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소의 삐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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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우리들은 무더운 방으로부터 사다리를 더듬어 지 붕 위로 올라갔다. 펑퍼짐하니 네모진 돌지붕이 한나절 폭 양 아래 달아올라 온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으나 바람이 선들거려 모기도 들어붙지 못한다. 이 지방 사람들은 저녁 을 먹고 나서는 지붕 위로 올라와 담소함이 가장가는 즐거 움이라고 한다. 흡사 발코니에 올라와 앉아 있는 느낌이다.

호궁 소리가 여기저기서 미어질 듯 애타는 듯 들려 오고 골 목길에서도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 온다. 지붕 밑에는 호 박꽃이 주렁주렁 달려서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인다.

등뒤로 겹겹이 싸인 태항산계의 만학천봉은 밤안개 속에 묵화처럼 어른거리고 달도 없는 밤하늘은 창창히 맑아 별바 다를 이루었다. 앞에는 우리 일행이 자갈밭을 걸어온 하상 이 이리저리 굽이쳐 감도는 황야다. 이따금씩 산 위로부터 밤새가 울며 들판을 건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병마곤총의 유격생활에서도 못내 버리지 못하는 퉁소를 꺼 내 한 동무가 구슬프게 고향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귀여운 소년동무로 어지간히 솜씨도 능란하였다. 동무들의 권유에 못 이기는 듯 부끄러운 양 얼굴을 퉁소 위에 수그리 고 불어댄다. 어글어글한 눈이 때로는 흐르는 타는 듯하며 곡조는 애원에 차다. 탄알을 총에 재는 일방 틈틈이 산전까 지 일구는 멍이 진 굵직한 손가락이건만 더듬더듬 헤어치듯 퉁소 위를 달리는 양은 백어(白魚) 같은 손길이 나분거림보 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어쨌든 이방산중(異方山中) 젊은 장부들의 가슴을 제법 설 레게 하는 것이었다.

별바다도 한껏 먼 고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이 삐오넬(소년 개척단:여기서는 용감한 소년이라는 뜻)의 퉁소 소리를 들을 때 나 역시 또한 변방 산채에 나온 병사의 하나가 된 듯 감 개의 사무침이 무량하였다. 멀리 가까이 들려오는 호궁 소 리가 이방인으로서의 향수를 일층 더 자아낸다. 젊은이 하 나가 이에 맞추어 독특한 고음으로 찢어지듯이 노래를 부르 는데 가끔가다 희한스레 떠들썩하니 고아 대는 소리도 일어 난다.

이런 가운데 동무들의 지나온 간고스런 혁명생활과 불꽃이 튀는 듯한 전투 이야기가 두서없이 시작되었다. 티끌 하나 의 사념이 없이 그야말로 임 향한 일편단심으로 오로지 나 라를 찾고자 민족을 건지고자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싸우며 흙을 끓여 마시고 풀을 뜯어먹은 이네들이다. 사랑하는 고 향, 그리고 사람 모두 버리고 반격의 길을 따나온 이래 언 제 한 번 따스한 잠자리를 얻어 보았으랴! 맛나는 음식에 참례하였으랴!

무엇보다도 내 조국을 찾자는 굳은 결심이 맛나는 양식이 요, 불같이 타오르는 적개심이 몸에 지닌 아름다운 무장인 이네들.

전투 또 전투, 공작 또 공작, 생산 또 생산. 전투를 하면서 도 부대를 파면서도 산채국을 뜨면서도 여윈 팔을 쓰다듬으 며 언제나 조국의 장래를 축원하고 우리 민족의 행복을 빌 어 온 이네들이 아닌가”

그러나 어디에 그처럼 우람찬 의지와 용맹이 서려 있으랴 하리만치 모두 수줍은 태도로 자랑삼아 길게 이야기하려고 도 하지 않는다.

우리를 여기까지 마중나온 태항분맹의 최 동무는 무연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우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이였다.

이야기할 때마다 뻐드렁니가 들먹이는 듯하였다.

”백두산의 유격대가 일제의 등시미에, 심장에, 이마빼기에 불을 터치고 있지 않소”…… 우리의 의용군도 바로 그 하나 의 초선입니다.”

동무들을 말없이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무량한 감개에 눈 시울이 뜨거워짐을 의식하였다. 이제 와서 겨우 사내다울 수 있으려고 이 대오를 찾아 만리길 피로써 몸을 씻고자 떠 나온 길이 아닌가.

공작원 현 동무는 그 중 다정스레 지내는 소위 박사 동무 에게 적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중대한 임무를 별 로 허물없이 이행한 뒤에 또다시 무사히 만나게 된 것이 매 우 반갑고 고마운 모양으로 서로 쓰다듬고 어루만지듯 하는 정경이었다. 우리들은 북경 담배를 한 대씩 나누어 피며 이 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에 밤 가는 줄을 몰랐다. 그들은 무 엇보다도 국내의 일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누구는 어떻게 되었느냐”

쌀 시네는 얼마나 하느냐”

옷감이 없어 산중에서도 모두 벗고 산다니 정말이냐”

화폐는 얼마나 팽창되었느냐”

징병, 징용은”보국대의 형편은”

떠날 때 무슨 꽃이 피었더냐”

아니 묻는 말이 거의 없으리만 하다. 이쪽에서도 아는 것 까지 설명을 하고 추축도 늘어놓으나 대개는 이네들이 벌써 부터 번번히 들어 짐작하고 있는 일이었다. 다만 고향 이야 기를 서로 뇌이고 또 뇌이고 싶은 심정에서인 모양이다. 처 음 듣는 소리나 나오면 모두 반색을 하며 눈알을 굴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국내 지하운동의 형편을 궁금히 여겨 소상히 알고자 하였다. 내게는 구체적으로 들려줄 만 한 아무런 밑천도 없었다. 다만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 파시스트들의 최후 발악과 백색테러가 날로 혹독하여 져 국내의 운동이 깊이 지하로 지하로 내려앉을 수밖에 없 어졌음을 미루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나 물가는 살인적 으로 폭등하고 임금은 기아적이요, 수탈은 더욱더욱 강하되 어 전데 인민의 반일 감정이 극도로 첨예화한 것만은 사실 이다. 더구나 징용이니 보국대로 노무를 강제로 공출하여 농민들이 노예와 다름없이 불들려 나가 공장, 광산에서 회 리채로 얻어맞으며, 이에 또한 징병이니 학병제도까지 더 덮쳐 수많은 생명이 전장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깊은 산중에서는 탈주병과 기피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 며 국내 유격전의 전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만치 국외에 있어서 무기를 들고 적에게 육박하는 반일혁명군의 존재는 국내 동포에게 커다란 희망과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국경의 한복판이지……”

”후방기지도 없지……”

역시 군인들의 보는 눈은 다르다.

그 역사의 오래기로 환경과 조건의 가랄하기로 세계 제일 의 빨치산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동북은 반파쇼 전쟁의 일대 활화산이요, 동변도의 밀림은 그 위대한 분화 구다. 더구나 이 불 같은 만주 빨치산 전투에 있어서 조선 사람이 민족연합통일전선을 영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 이 중국인민에게도 커다란 감명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동북으로!”

조선의용군도 이런 구호를 내걸고 기동을 거쳐 동북으로 나가 이 태양대에 배합되어 같이 싸우려 한 시기도 있었으 나 요새는 가랄한 정세에 비추어 눌러앉아 항전역량을 기르 기에 주력중이라고 한다.

이와 동시에 적구 속에 깊이깊이 손길을 펼쳐 지하조직을 공고히 하며 전투진을 지휘하기 위하여 전방본부가 이 태항 산중에 나와 있었다. 여러백 리 첩첩산중의 험로를 걸어 들 어가면 우리 독립동맹과 의용군의 본집에 도착되리라고 한 다. 이 말을 듣고 나니 구태여 연안까지 들어갈 필요를 느 끼지 않게 되었다. 적들이 소위 대토벌전 감행 운운하며 여 러 번 훤전되던 이 태항산계다. 이 속에 정치, 군사상의 우 리 제1선 본부가 진출한 이상 비전구역으로 들어가느니 모 름지기 한 손에 펜을 쥐고 한 손에 검을 들고서 싸우리라 결심하였다. 다행히 우리 의용군에 종군만 할 수 있다면 중 도에서 쓰러져 못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내 평생 영예로 운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한때는 일본 남방군에 종군하라는 위협을 받 은 일도 없지 않았다. 태평양에 도적불을 지른 지 이듬날 새벽 놈들에게 붙들려 나 역시 예방구검수로 철창 신세를 지게 되었다. 비율반이 떨어지면 석방하느니 상가폴이 점령 되면 돌려보내느니 속여 오다가 하루는 불러내 남방군에 따 라다니며 '황군'을 노래하고 전첩을 보도할 결심한 한다면 당장이라도 풀어 놓으리라 달랬다. 이에 응하지 않는대서 놈들은 뺨을 갈기고 얼굴에 침을 뱉고 다시 방으로 덜덜덜 끌고 들어갔다. 이제 이 원수들을 쳐부수려는 우리 의용군 의 뒤를 따라 나서게 될 것이니 얼마나 통쾌하고도 우람찬 일인가”혼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서 하루바삐 들어가 이 동지들의 팔에 안기리라! 내일로라도 곧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말하니까 ”건강에 자신 있소?“ 현 동무가 귀에 반기는 모양으로 돌아보며 되묻는다. 나는 웃으며 끄덕였다. 이리하여 날이 밝는 대로 백 동무를 남기 고 먼저 떠나기로 작정되었다. 병고가 생긴다면 성한 사람 만이라도 먼저 데리고 돌아오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마침 잘 결심하였다고 최 동무도 좋아하며 내일 떠날 길이 바쁘니 어서 내려가 쉬자고 한다.

하기는 밤도 어지간히 이슥하여 짙은 어둠 속이었다. 중국 인들의 호궁 소리도 파장인 듯 이따금 생각난 듯이 들려 올 뿐이다. 노랫소리도 끊어졌다. 깊고도 무거운 침묵이 산기를 휩싸도는 것이다. 동무들도 하나둘씩 잠자리에 들려고 내려 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 초소의 한밤을 더욱 뜻깊이 즐기려 는 듯이 엎딘 채 퉁소를 부는 소년동무에게 한 곡조를 더 청하였다. 삐오넬은 하얀 잇새를 드러내고 반짝히 웃으면서, ”그럼 내 우리 의용군의 추도가 들려줄까”나는 이 노래가 제일 좋아…… 동무 들어 볼래요”"

하고 가만한 소리로 노래하듯이 들려주는 가사는 이러하였다.

모진 바람 몰아치는 길가에 못내 풀고 쓰러지는 그 원한 우리들이 갚아 주기 맹세하네 곡조는 우둥우둥 비가 내리고 구슬피 울부짖는 양 가슴을 읊조리게 하는 가운데도 불 같은 노여움과 설움을 뚫고 나 가려는 힘찬 싸움에의 사무침이 있었다.

”누구의 노래요?“ ”작곡은?“ ”것두 모르고요. 어느 동무가 지었는지…… 좋아요”동의 하셔요”…… 언젠가 동무를 잃었을 때 피에 젖은 시체를 걸 머쥐고 걸음걸음 이 노래를 부르며 나가노라니까 모두 엄숙 한 가운데도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제 솜씨가 좋지 못 해 기분이 나지 않지만……”

”동무는 고향이 어디요?“ 하고 물으니까, ”새로 들어오는 동무들은 자꾸 궁금증에 자주 그런 말을 묻곤 한다니까”…… 그런데 동무 부인 계셔요” 어린애는 ”…… 여섯 살”그러면 저와 같군요. 저도 여섯 살에 아버 지를 잃었어요.”

”어디를 가셨는데?“ ”아이 참, 말 실수했네. 저는 아주 잃어버렸단 말이에요.”

”우리 애도 그렇게 될지 뉘 알겠소.”

하며 웃으니까 그는 머리를 저으며 ”아니 염려없어요. 그까짓 왜놈 자식들 몰아내기야 식은죽 먹기지…… 우리 아버지는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거든요. 오 늘이 분명히 음력으로 2월 그믐이죠”"

”글쎄요, 아직도 달이 안 뜨는 걸 보니……”

”내일이 바로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날이에요……”

”아버지가 그리운 게구려?“ 소년 동무는 말없이 끄덕였다. 가벼운 웃음이 입 언저리에 떠돌았다. 서글피 추도가를 불러 대던 심정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듯하다. 이윽하여 깊은 회상에 젖으며 조용히 이야 기를 꺼내는 그의 모습에는 어떤 시인의 풍격이 풍겨돌았 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글쎄 아버지 일이 어제 오늘 유난히도 간절해지니 웬일일 까요”…… 바로 이렇게 달도 없고 고요한 밤이었어요. 감옥 에서 시체가 되어 아버지가 돌아오신 게…… 그때 내 나이 여섯 살이니까 십일 년 전이로군…… 누구나 다 제 부모는 좋다고 하나 우리 아버지는 특별히 좋은 분이었어요…… 눈 물이 많고 착하시고 그러면서도 용기가 있고…… 나를 데리 고 노실 적엔 범놀이, 수박따기, 말놀이 다 해주며 어떤 때 는 동리 애들을 죄 모아 놓고 다리헤기, 원님내기까지 해주 셨구먼요……”

”아버지의 몇 살 적의 일이오”돌아가신 게……”

”서른한 살……”

나보다는 연소하였군……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동무가 이런 이야기를 펴놓을 때 나는 마디마디 내 이 야기를 듣는 듯하여 저절로 신심이 굳어짐을 느꼈다. 앞으 로 내 어린애도 이런 산중에서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날이 오지나 않을까”아직도 십 년 세월 우리 젊은이들이 총대를 들고 이방산채에서 원수와 싸워 피흘리는 날이 계속 된다면 얼마나 아픈 일이랴!

사랑하는 어버지를 먼 기억 속에 더듬어 나가며 아름답게 장식하는 그의 술회처럼은 형용될 것이 아니지만 어쩐지 성 격도 인품도 나와 비슷해 보이는 그의 아버지였다.

”이렇게 좋은 아버지이면서도 공연히 혼자 성이 나시면 더 구나 내가 울기나 하는 날이면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듯이 저를 막 두들기고 하겠지요. 이러다가 저 자신도 그만 슬퍼 져서 혼자 돌아서서 우시는군.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나 를 때리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채찍질하던 것이었어요. 그 러기에 늘상 아버지는 이애가 원 나를 닮아 마음이 약해 서…… 이렇게 한탄하곤 하셨지요.”

”어쩌면 그렇게도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소?“ ”동무도……?“ 의아스레 쳐다본다. 나는 가만히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아버지는 마음이 약해서 옥내 투쟁에 못 이겨 한 번 전향성명까지 하셨더랍니다. 하시고 나서 며칠 안으로 다시 번복했기 때문에 더 심한 악형을 받아 지레 세상을 떠난 셈 이죠…… 언젠가 어머니와 같이 감옥으로 면회를 가니까 아 버지가 원님내기 이야기를 하시겠지…… 나도 이제 몇 해만 더 있으면 나가게 된다, 아버지 나가면 좋겠지 하시기에 끄 덕이니까 어디 그러면 여기랑 집이랑 원님내기로 맞춰 봐 하며 웃으시는군, 그래 우리 집은 어머니 여기는 이 사람하 고 옆에 칼을 차고 권총을 둘러멘 왜놈 간수를 손으로 가리 키고 제발 어머니에게 맞아 줍사고 빌면서 한알똥, 두알똥, 삼재, 염재 이렇게 부르며 나갔는데 분명히 어머니에게서 맞아떨어져야 할 것이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간수에 게서 떨어지거든요. 그래 나는 그만 소리를 내 으앙 울었어 요.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더니 종내……”

계면쩍은 듯이 얼버무리며 잠시 말끝을 맺지 못하다가 ”내 암 오늘 밤 새로 만나는 동무보고 왜 이런 소리를 할 까?“ 나 역시 이 어린 동무가 오늘 밤은 유달리 구슬픈 향수와 추억의 포로가 된가시피 생각되었다. 고국의 티끌도 채 떨 구지 못하고 들어온 나를 대하매 가분재기 옛날 일이, 아버 지 일이, 고향 일이 간절해지는 것일까”

”우리 여기 있는 동무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또……

또…… 하며 웃어 주어 입도 못 벌리는걸요…… 아무래도 저 같은 건 훈련이 부족해서 센티멘탈이 있는가 봐요……

아닌게 아니라 원님내기 점이 실패하여 가슴이 덜컹 내려앉 더니만 역시 신비적인 어떤 암시였던 것처럼……”

”센티멘탈이 아니라 신비주의구려……”

동무는 마주 웃었다.

”글세 말이에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갑자기 소리를 내 엉엉 우니까 간수가 아버지를 끌고 들어가겠지…… 이때부 터지요, 내가 이런 생활을 하러 떠날 결심이 어렴풋이나마 생긴 것이…… 옳지 우리 아버지를 늘 가두어 두는 게 저놈 이요 우리 조선을 늘 노리는게 저 칼이요 총이로구나! 저놈 의 총칼을 빼앗아 왜놈을 죽여야! 감옥에서 며칠 안 돼 아 버지의 시체가 돌아와 웅크리고 그 앞에 앉았을 때 이 결심 을 어린 가슴속에 불길처럼 더 커졌습니다……”

이때에 옆에 길게 누워 잠이 들었던 한 동무가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또 아버지 타령이야.”

하며 선하품을 한다.

”자 어서 내려가 잡시다. 밤이 매우 깊은 모양이니……”

소년 동무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좀더 있다가 보초교대로 나가야 하니까 동무들이 내 려가 편히 쉬어요……”

자리를 떨고 일어나 동무의 뒤를 따라 내려가 백 동무가 쉬는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곤히 잠이 들어 숨소리만 높다.

나는 왜 그런지 가슴이 설렁거려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방 등에 불을 돋우고 어린애들의 사진을 꺼내 들여다보는 나 자신을 의식하였다. 이 삐오넬의 서글프고도 줄기찬 이야기 가 눈앞에 여러 가지의 환영을 그려내 나 역시 가벼운 센티 멘탈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이관 산촌의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지붕 위에는 퉁소 소 리가 다시 처량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서러운 추억을 퉁소 소리에 싣고 홀로 이 한밤을 지새우려는 것일까”

2. 셰퍼드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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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한 뒤에 새벽에 일어나 태항 분맹 최 동무의 공작원 현 동무를 따라 떠나게 되었다. 백 동무는 사선을 넘어 동무들의 따뜻한 포옹에 몸을 맡긴 안 도감에 병석에서 일어나 나의 출발을 마음깊이 축복할 뿐이 었다. 두고 가는 마음이 섭섭은 하나 동무들이 많으니까 차 도 보아 곧 뒤따라 오게 될 것이다.

중국인 길잡이 한 명을 불러 가지고 멜대에 짐을 달아매고 있노라니 한 노파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의원 선생님 큰 일났으니 어서 가자고 야단이다. 동무 하나가 약꾸러미를 들더니 맞받아 뛰쳐 나간다.

며칠 전 이 마을의 젊은 사내가 장을 보려 내려갔다가 일 병에게 붙들려 간 일이 있었는데 그 아내가 번듯하면 울화 증에 정신을 잃고 나가 넘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우리 동무들이 달려가 캄풀주사를 놓아 숨을 돌리게 한 적 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본디 주사 한 대 놓아 보지 못한 동 무들이나 제법 의원 노릇을 하여 근방 산촌에 명성이 자자 하다고 한다. 먼 산촌에까지 모시러 오게끔 되었다고 하니 어지간히 의원으로도 입신양명중인 모양이었다. 그 중 익숙 하여 박사의 별호까지 달린 동무의 말에 의하면 워낙 약이 라고는 써보지 못한 사람들이어서 신통히도 잘 들어 주사는 한 대에 직효요, 약은 한두 봉지로 신효(神效)였다.

근거지에 완비된 우리 병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바랑 짐을 풀어 영신환, 안약, 해열제, 주사약 이런 것을 있는 대 로 쏟아 놓았다. 평양서부터 준비해 온 것이었다. 이같이 행 복되게 인도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지향없이 찾아 들어오게 된다면 기나긴 노상에서 이런 의약을 베풀며 중국 촌민들의 호의를 얻고자 함이었다. 이 약과 약봉지 용기 하나하나에 도 나의 꿈이 있었다. 한간이나 내통자의 수중에 빠졌을 때 라도 가슴앓이로 갑자기 뒤채이는 그의 아내를 주사 한 대 로 잠재움으로써 치하를 받아 사지를 면하는 경우며, 어린 애의 눈앓이를 고치고 안약을 베풀기 때문에 안전한 길을 지시받는 행복, 구질구질 고름이 흐르는 다리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 준 덕에 요기하게 되는 고마움…… 이런 일을 꿈 꾸었음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도 필요치 않았다. 동무들은 하도 기뻐 서 약곽을 무더기로 들고 이건 무슨 약이냐, 어떻게 쓰느냐, 식후냐 식전이냐, 주사는 도대체 약 뒤에 놓는 법이냐 전에 놓는 법이냐 연방 질문이었다. 큰일날 의원 선생님들이다.

한 동무는 그래도 박사의 명예에 부끄럽지 않게 의료지식이 풍부하였다. 하나 영신환 봉지를 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더니 ”이게 그 영신환이로군”하며 끄덕인다.

”어째 박사님이 아직 영신환을 몰랐소?“ 하며 웃으니까, ”어려서 나왔기 때문에 말로만 들었지 보기는 이번이 처음 이외다……”

하며 한 알 끄집어 내 질근질근 깨물더니, ”됐군 됐는데, 이거면 인단 뜸떠 먹겠는데. 인단이 이런 산 중에서는 만병통치랍니다. 인단도 은립은 안 되지요. 시뻘건 색도 제법 되었거든.”

우리들이 산길에 오르게 되자 동무들은 멀리 산모퉁이까지 따라 나와 수건을 흔들며 환송하였다. 산 위에서 부르짓는 소리가 들린다. 올려다보니 어젯밤 퉁소를 불던 소년 동무 가 옆산 바위 위에 총을 들고 서 있었다. 우리는 가끔 멈추 어서 손을 흔들어 보이며 길을 재촉하였다. 현 동무는 개를 데리고 앞섰으며 중국인 길잡이는 짐을 메고 뒤에 달렸다.

우리는 일체 편복이고 두 동무가 권총으로 경무장(經武裝)이 었다. 금강상회 셰퍼드 군은 완전히 우리들의 포로가 된 것 이다. 근거지로 데리고 들어가 군용견을 만든다고 좋아하며 현 동무가 이 포로호송의 임무를 맡은 터다.

태항산길은 굽이치는 비탈길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 마르체기를 타고 넘으면 번번한 산봉우리가 앞뒤 좌우에 빽 빽이 들어차 빠져 나갈래야 빠져 나갈 길조차 없어 보인다.

한 굽이 스쳐 돌면 또 새로운 산굽이가 갈피갈피 앞을 막고 옆으로 다가선다. 한 굽이 스쳐 돌면 또 새로운 산굽이가 갈피갈피 앞을 막고 옆으로 다가선다. 때로는 깎아질리운 길이 산봉우리를 기어오르기도 한다. 흡사 우리는 감자덩굴 속을 두루두루 헤매는 개미떼와 같기도 하다.

이렇게 첩첩산이라고는 하나 아름다운 벽암유석의 산취는 찾아볼려도 볼 수 없는 스산한 산악지대였다. 하늘은 높을 대로 높고 일광은 퍼질 대로 퍼지고 산운이 흩어져 남기도 사라지고 다만 멀쑥한 산악만이 싸이고 또 싸였다. 그 중 높은 산을 넘으며 이것이 마천령이라고 일러주는데 조선 산 처럼 그리 그윽한 맛이 없다. 그런 느낌을 이야기하니까 원 체 평원대륙이어서 그런지 태산이란 산도 몸소 올라 보면 조선서 글 배울 때 상상하던 산에 비하여 어림도 없는 조그 만 산이라고 한다. 하여간 끝없는 산악의 연긍(蓮亘). 우리 는 개미떼처럼 이 산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외나 무 그늘만 찾으면 기어들어가 숨을 돌렸다. 깊은 골짜리 속 에 떨어져도 샘터 하나 없고 바람 한점 까딱하지 않는다.

더위와 피로에 나는 좀체로 담배를 피워 볼 기력도 나지 않 았다. 셰퍼드 군도 혀를 뽑고 헐떡이며 길잡이는 연신 수건 으로 비지땀을 훔친다. 그러나 두 동무의 걸음발은 슬렁슬 렁 매우 흥그러웠다. 때때로 돌아보며, ”쉬어 갑시다.”

한다. 마음을 놓아 그런지 한결 걸음발이 더디는 것을 스 스로 느껴 부지런히 따라 가며 비명을 삼가기도 한다. 하나 이렇게 너무도 깊은 산중에 우리만이 빠져들어 헤매거니 생 각하면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누구 하나 지나가는 사람을 볼 수도 없고 개 짓는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다. 길가에 굴러떨어진 수레바퀴를 한 채 보았을 뿐이다. 나무채는 비 에 젖어 썩고 쇠바퀴는 녹이 슬었다. 일군이 토벌 들어왔다 가 버리고 간 포차 바퀴일까”

이렇게 약 30여 리를 걸은 뒤에야 집이라고 산모퉁이에 오 막살이 한 채를 발견하였다. 흙으로 담을 쌓고 지붕도 역시 흙으로 올린 무너져 가는 집이었다. 집 앞에 박우물이 있었 다. 우물가를 호박넝쿨이 기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낯을 씻고 발을 씻은 뒤에 점심 보자기를 끄르게 되었다.

끊인 물을 얻어먹으려고 찾아 들어가니 방안 머리맡에서 꿀꿀거리며 돼지란 놈이 쳐다본다. 대답이 없다. 한참 만에 야 나는 '캉' 위에 쪼들쪼들 늙은 노파가 꿰매던 신발을 든 채 옴츠리고 내다보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듯 방안 은 어둡고 노파는 숨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불의의 침입자 에 놀란 것이다. 조그만 눈이 반딧불처럼 시기와 공포의 빛 을 발하고 있었다. 뒤따라온 최 동무가 웃으며 귀자(왜놈)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일러주며 나를 돌아보더니, ”헬멧을 벗어야 할까 봅니다─이제부터는 두간두간 인가가 있을 테니까.”

이때에 꿀꿀거리던 돼지란 놈이 내 구두를 버쩍 물어뜯는 다. 구도도 벗어야 할 모양이었다.

”할머니, 요새 왜놈 병정 지나간 일이 없는가요”

최 동무가 묻는다. 노파는 눈을 감더니, ”달경 전일까, 원.”

”어디로요?“ ”도로 나가는 모양입데.”

자리로 돌아오며 그럼 앞으로 가는 길에도 일군이 있을 모 양이냐고 물으니까 현 동무는 두 손으로 열 손가락을 서로 엮어 놓으며 바로 이렇게 피차의 군대가 교차되어 노리고 있다고 한다.

최 동무의 말을 듣자면 아마 달경 전에 어떤 토치카의 일 군 대오 하나가 또 걷어메고 본대를 찾아 빠져 나간 모양이다.

헬멧은 볕에 가리기 십상이었고 단장은 산길에 매우 의지 가 되었으나 이 기회에 아무 도회풍을 숙청하기로 하였다.

사민들에게 공연한 의심을 살 필요가 없었다. 그래 헬멧의 흰 헝겊은 붕대용으로 풀어서 옆구리에 넣고 동무들이 하는 대로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단장은 노파네 집에 기부하였다.

”구두까지 갈아 대면 제법 노백성이오……동무도……”

하며 현 동무가 웃었다.

헝겊을 벗긴 헬멧을 바가지로 삼아 목을 얹은 뒤에 다시 길을 떠난다. 여기 또한 산을 끼고 두루두루 감돌아 산등을 굽이굽이 넘어 또 30리 가량 걸어가니 산밑에 손바닥만한 분지가 열리고 조그마한 동네가 깔려 있었다. 뉘엿뉘엿 해 질 무렵이었다. 산에서 내려서니 길도 좀 넓어지고 탄탄하 며 어디서 오는지 나귀 바리들이 방울을 울리며 줄을 지어 몰려온다. 이 산지대에서는 나귀가 유일한 수송기관인 것이 다. 긴 채찍을 등에 꽂고 나귀 잔등에 넌지시 올라앉아 흥 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석양을 안고 돌아가는 풍경은 퍽 멋 지다.

이 행렬 사이를 뚫고 지나가노라면 나귀꾼들이 개를 보고 질겁하여 비명을 지른다. 나귀를 몰고 가는 한 영감은 셰퍼 드 군이 갑자기 옆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화다닥 놀라 비 키다가 엎어지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웃으며 잡아 일으키니 까 그는 낭구(승냥이)인 줄 알았노라고 저도 객쩍은 듯이 웃 으며 옷을 툭툭 턴다. 나귀꾼들은 양구(洋狗)냐 일본구냐고 묻는다. 동무들은 분명히 승냥이라고 말하며 껄껄거린다. 지 나가는 사람들도 놀라 자리를 비키며 공포와 호기심에 물어 본다. 마을로 들어서면서는 개를 보고 애들은 울며 달아나 고 부녀자들은 질겁하여 문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래 현 동무는 셰퍼드 군의 고삐를 바짝 다가쥘 필요가 있었다.

개 없는 마을도 있었던가. 모두 개를 처음 보아 무서워서 그러는가 보다 했더니 실상은 승냥이인 줄 알고 질겁해 하 는 눈치였다. 그만치 우리 셰퍼드 군이 크기도 하였다. 최 동무에게, ”승냥이가 퍽 많은 모양이구려?“물으니 ”맨 승냥이입니다. 전쟁놀음에 시체가 골짜기를 메워 늘기 는 승냥이와 까마귀떼 뿐이지요. 전쟁도 있는데다 매년 흉 년이 지고 보니 승냥이떼의 피해가 상당하군요. 우리 병원 에도 매일 두셋은 승냥이에 물린 부녀자나 어린애들이 찾아 옵니다……그러나 양구냐 일본구냐고 묻는 말에는 딴 의미 로의 절실한 공포증이 없지 않지요.”

일군이 소탕(토벌) 때에 몰고 들어온 군용견에 무고한 백성 이 물러 살을 뜯기고 뼈를 갈리고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 재였다. 민병포로들을 나무에 끌어매고 주민들 모아다 놓고 그 아버지 어머니 처자들이 보는 앞에서 피에 주린 군용견 을 풀어놓아 물어뜯어 죽이게 한 몸서리치는 일도 수두룩하 였다. 군중은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하여 돌아서서 두 손 으로 얼굴을 감싸고 사지를 떨었다. 울지도 못하였다. 개는 그 셰퍼드 독특한 컹컹 소리를 내지르며 몰려들었다. 용기 를 내 구해 보려고 뛰어 나오는 자는 동류라고 하여 그 자 리에서 쏘아 죽였다. 씨알머리를 없애고자 함이었다. 울음소 리를 터뜨리는 부인네가 있으면, 보라 우리는 양민을 해치 지 않고 이런 년이나 잡아간다고 붙들어다 씻을 수 없는 능 욕을 주고 나서 환도로 목을 자르거나 총검으로 가슴패기를 찔렀다.

제국주의 일본 군대는 이렇게 잔포스런 교수자들의 떼무리 인 것이다. 이 지구 위에서 말살하지 않는 한 인류의 행복 과 자유는 보장되지 못할 일이다. 그야말로 네째 번의 봉인 을 떼일 때에 보았다는 청황색의 말을 탄 자와 같은 족속이다.

”보건대 청황색의 말이 있는지라 이를 타는 자의 이름을 죽음이라 부르고 음부가 그 뒤를 따르도다……그들은 창과 죽음과 땅 위의 짐승으로써 사람을 죽이는 권세를 보았도 다.”일군의 발길이 이르는 곳에는 반드시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르는 것이다. 악마 일군의 참혹한 행동은 그들의 소위 삼광정책(三光政策)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소(燒), 살(殺), 창(槍)의 삼광─중국인의 것이면 남김없이 불살라라. 중국인 이면 남김없이 죽이라, 그리고 모든 것을 빼앗아 빈탕(光)을 만들어라─이것이다.

이 동네 역시 보잘것없는 조그만 동네지만 거듭되는 일군 의 침공에 황량하고도 쓸쓸함이 폐허나 다름없었다. 쪼들어 빠진 얼굴, 뼈만 남은 팔죽지, 헐벗은 옷, 손에 들고 씹어먹 는 모래알 같은 겨떡, 들이키는 희멀그레한 죽……

참으로 불행하다면 우리에 못지않게 역시 불행한 민족이었 다. 항상 누구와 누구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를 군벌싸움 에 시달리고 앗기고 쓰러지다 못해 간악한 외적에게까지 짓 밟히니……그러나 이미 오늘에 와서는 팔로군의 힘이 여기 까지 내뻗쳐 백성들은 다시 모여들어 쇠잔한 힘을 모아 담 을 쌓고 지붕을 올리고 가마솥을 걸게 되었다. 절망과 공포 와 암흑 가운데 비틀거리며 찾아온 이네들은 무엇을 발견하 였던가”그것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고마움이었다. 빛이었 다. 그야말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고 타협이 없이 적을 때 려눕히려는 구성(求聖)의 군대를 발견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고 거듭 일어나는 내전에 오래오래 울었으며 살육과 겁탈을 자행한 외적을 가장 미워하기 때문 에 그들은 이 새로운 군대를 진심으로 환영케 된 것이다.

전쟁은 인민을 교육하였다. 이네들은 누가 진정 자기네를 도와 주며 사랑하고, 진정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이며 미워해 야 한 것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이 전쟁을 이김이 없이는 진정 평화스레 행복되게 살 수 없 음을 깨닫는 동시에 자기 자신들의 힘을 새로이 느끼고 발 견하여 외적을 물리치고자 총을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이 것이 곧 인민자위군이다. 이 민병의 수효가 실로 2백 20만 이상에 도달하는 것이다(중공 제7회 전국 대표대호 석상의 보고).

찌그러진 성문에, 무너진 담벽에 그리고 기둥마다에 씌어 있는 구호나 표어 속에 다시 일어나는 새 나라 인민의 경륜 과 기개와 포부가 서려 있다.

'견지항전(堅持抗戰)' '견지단결(堅持團結)' '반대투항(反對投降)' '반대도퇴(反對淘退)' '인민의 의사에 배반된 전쟁을 그만두고 연합정부를 세우라 ', '내전정책을 집어치우라', '타도 일본제국주의', '한간을 때 려부수자!' 위대한 중공 영도의 따사로운 손길이 폐허 위에 새로운 씨 를 뿌리고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산간 첫 동네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처음 보는 구호와 표어의 벽서를 읽어 나가며 무량한 감개에 젖었다.

그러나 북은 두만강으로부터 남으로는 해남도에 이르기까 지 무기를 거두고 달아나거나 총을 던지고 투항한 장개석의 국민군! 이들은 오늘날 외적과는 싸우려 하지 않고, 아니 심 지어는 적군과 투항군과 통모연합하여 총부리를 이 항전지 구에 돌리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미국서 공급받은 전차와 대포와 기관포로 거대한 방렬을 짓고─그 대신 팔로군은 피 로써 적의 몸을 물들이고 흙발로 빼앗아 얻은 무기 외에는 오직 정의와 진리와 애국심으로 무장되었을 뿐이다. 이제 와서는 현명한 인민들이 누가 가장 나라를 사랑하며 백성을 위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이에 인민의 역량은 요원의 불길 처럼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항전지대에서도 이 태항구로 말하면 토박하고 낙후한데다 적의 침공까지 가장 가혹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부락에서 우리는 글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학교가 생긴 것 이다. 그리고 이미 여기에도 자위군이 조직되어 민병이 경 비하고 있었다. 지붕 위에 모여 앉아 재잘거리던 어린이들 은 일어나 우리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귀꾼들을 따라 객주집으로 들어가며 무슨 노래냐고 물으 니 <우리들은 반공의 주력군>(我們是反攻的主力軍)이라는 군가라고 한다. 우리의 행색이 어린애들의 민첩한 눈에 군 인으로 단정된 모양이었다.

객주집은 널찍한 몇 채의 마굿간과 지붕과 음식가게로 구 성되어 있다. 나귀를 마굿간에 끌어매고 가게에서는 저녁을 먹고 지붕 위에서는 나그네의 꿈을 드리우는 것이다. 산길 70리에 지쳐 식욕이 전혀 없어져 특별맞춤의 면을 두어 젓 가락 뜨는 둥 마는 둥하고 나는 더운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 노마만리 - 72 -다.

처음에는 혼비백산하게 질겁하여 달아나던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우리 셰퍼드 군을 면회하려고 차차 점두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도 무슨 개냐고 다사스레 물으 며 개가 컹컹거리면 모두 겁이 나서 흠실거린다. 총을 덜렁 덜렁 멘 민병도 두세 명 나타나 멀찍하니 서서 우리의 행색 과 거동을 살피며 여러 가지로 묻는다. 그들 역시 셰퍼드 군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물지 않으니 염려 말라고 하여 비 실비실 눈치를 보며 다가오다가 개란 놈이 달려들려니까 비 명을 지르며 물러나 모두들 웃었다. 일군 앞잡이 금강상호 의 개가 되어 총을 가진 중국인이면 아직도 적으로만 보이 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오느냐”어디로 가느냐”증명서는 있느냐”이런 질 문이렸더니 하였더니 한참 동안 주고받는 말눈치와 동무들 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일이냐고 물으니까, 바로 우 리가 떠나온 뒤 한 시간도 못되어 소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 이었다. 팔로 기마부대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우리 동무 하 나가 경상을 당하고 일병이 시체 둘을 버리고 달아났다는 말에, ”누굴까?“ 우리들은 서로 근심스레 마주 보았다. 퉁소 불던 소년 동 무의 얼굴이 까닭없이 번개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불 행히도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우리들이 도착했다는 보고 를 듣고 얼마 뒤에 팔로 정규병 한 명이 달러오더니 우리들 을 쓸어안으며 천만다행이라고 기뻐한다. 현 동무와는 구면 인 모양으로 한참을 감격적인 이야기가 계속된다. 초소의 동무들이 우리 일행의 안위를 염려하기 때문에 기마대가 사 방에 널려서 우리의 행방을 찾았다고 한다. 산중포대에 있 던 일병 1소대가 야음을 이용하여 후퇴하던 길이었다. 우리 동무들이 있는 초소를 지날 때는 이미 해가 퍼져 보기 좋게 보초 동무에게 발각되었다.

놈들이 허둥지둥 산밑으로 도망쳐 내려가 실상은 전투라고 할 만한 전투도 아니었다. 그러나 동무들은 필경 우리들이 산속에서 맞부딪쳐 놈들에게 봉변을 당한 줄로 알고 악이 받쳐 뒤를 따랐다. 퉁소 불던 소년 동무가 교대하고 돌아오 려던 차에 발견했기 때문에 다행히 우리 편은 두 동무가 동 시에 발화할 수 있었다. 두 놈을 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 르며 막 달려 내려가다가 미끄러지며 넘어져 부상하였다.

그러나 놈들은 산험을 이용하여 탈토(脫兎)와 같이 이리저리 빠져 새기 시작하였다. 부상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니 팔로 동무가 웃으며 하는 말이 ”아 다리가 부러졌어도 고쳐 낼 의원 선생님들인데 정갱이 좀 벗어진 것쯤이야……”

하여간 우리 일행도 매우 신수가 좋았었다. 좁은 산골짜기 에서 만났더라면 필경 무사치는 못했을 것이다. 최 동무가 이 지방 산길에 익숙하기 때문에 일군의 토치카나 망대로 연결되는 길을 골고루 피하여 온 것이었다.

”앞으로도 일군의 토치카가 서너 군데 있지만 원체 요즘은 놈들이 전의를 잃었기 때문에 꽥하기만 하면 무릎을 꿇고 살래살래 빌 지경입니다.”

이렇게 현 동무가 일러주면서 안심하라고 한다.

밤이슬에 젖으며 지붕 위가 자기가 불편하여 방이라고 찾 아 들어가 보니 불도 없고 무더운 냄새가 고약하다. 동무들 의 권고대로 역시 지붕 위에 자리를 펴기로 하였다. 나귀꾼 들이 옆 지붕 위에서 그득히 앉아 무어라고 떠들며 이야기 한다. 이쪽 지붕 위도 그득하다. 때때로 부싯돌을 뜩뜩거린 다. 우리들은 그래도 특별 대접으로 두 칸 지붕을 독차지하 였다. 길잡이는 벌써부터 올라와 곯아 떨어져 잠이 들고 있 었다. 셰퍼드 군도 따라 올라와 꼬리를 저으며 휘휘 사방을 둘러본다.

최 동무가 연락참에서 얻어 온 것이라면서 이불을 굳이 권 하는 것이다. 사실은 최 동무 자신이 공작 나올 때에 언제 나 짊어지고 다니는 이불이었다.

이날 밤도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 별바다가 천정이었 다. 바람이 없어 모기가 성화스레 들어붙기 때문에 우리도 쑥을 피워 놓았다. 자리에 누우며 퉁소 불던 소년 동무의 부상을 걱정하니까 염려 없다고 동무들은 스스로 위안삼아 이야기한다. 오늘이 그의 아버지의 11주기였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펴놓던 서글프고도 줄기찬 아버지의 이야기, 처량 한 퉁소 소리, 하얀 잇새로 반짝히 웃음짓던 얼굴……이런 것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머릿속에 되살아 오르는 듯하였 다. 본인은 아버지의 옥사 기념일에 적을 쏘았으니 필시 만 족일 것이다.

”그 동무가 누구라구요, 불가사리입니다. 지금까지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모르지요……”

최 동무와 나란히 누워 나는 이 소년 동무에 대한 이야기 를 듣게 되었다.

”언제 들어왔던가요?“ ”1942년 가을이지요. 열네 살에 참가했습니다. 열네 살이 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려 열두어 살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북간도 태생으로 군관학교에 가려고 떠나오다가 전쟁판에 휩쓸려 들어온 것을 신사군이 구호하여 보내 왔습니다.”

”어느 지방에서?“ ”이 동무도 어린 마음에 왜놈과 싸우려면 중경에 가야겠거 니 생각하고 떠났더군요. 그러나 이때는 벌써 장개석 정부 가 중점(重點)을 외적에 두지 않고 내전에 두었을 때입니다.

말하자면 대일전쟁은 집어치우고 작전의 부담을 해방구(팔 로지역)에 떠지우고 일군을 시켜 해방구로 진공케 하면서 자기네는 옆집 불구경하듯 하는 판이지요……아니 도리어 자기네 군대로써 일군과 협력하여 해방구를 전격까지 합니 다. 일군과 공동전선을 취하여 완남신사군 1만을 협공한 사 실은 그 유명한 실례지요. 이렇게 혼란한 전장에 이 동무가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중경을 찾아 들어 가다가…… 바로 이때 우리는 전선에서 일군에게 유격전을 일으키고 있었습 니다. 여기에 이 소년이 인도되어 들어와 우리는 눈물을 흘 리며 기쁘게 맞이했지요. 이후부터 우리의 잔다르크가 되었 습니다. 아무리 위험한 싸움에도 총을 메고 선두에 서서 나 갑니다. 신기하게도 승전이 거듭됩니다. 중요한 통신연락도 도맡다시피 합니다. 중국말이 아주 능란한데다 기지와 용기 가 또한 비길 데 없는 걸요……급하여 우리가 이 동무를 업 고 달아난 적도 없지는 않지만……”

”퉁소는?“ ”본시부터 좋아하던 모양입니다. 한창 바쁜 유격 시절에야 나뭇잎을 불기도 하고 버들피리를 불기도 했지요. 우리는 이 피리 소리에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 피리에 대해서 는 내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군 요……언젠가 왜놈에게 연일연야 포위공격을 받게 되어 뿔 뿔이 빠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 동무들을 모조리 잃었지 요. 몹시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습니다. 어떤 민가로 기어 들 어가 허기진 배를 부등켜 쥐고 쓰러져 있노라니 어디선가 귀에 익은 피리 소리가 들려 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 나 보니 비는 이미 개이고 씻은 듯이 맑은 하늘에 으스러진 달빛이 비끼었습니다. 소리 나는 방향을 찾아 더듬더듬 기 어가니까 조그만 그림자가 재빨리 담뒤로 숨어 버립니다.

분명 우리의 잔다르크인 줄 알았기 때문에 ×동무! 하고 소 리를 죽여 부르니까 이 동무가 고양이처럼 얼굴을 들고 숨 죽인 소리로 어디어디로 가라 그리고 동무들이 모이고 있다 고 알려줍니다. 어쩌면 이때의 인상이 이렇게도 잊혀지지 않는지……”

별똥이 멀리 남쪽 하늘 밑으로 줄을 그으며 떨어진다.

3. 유격전의 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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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내리는 밤이슬이 젖어 오기 때문에 기분이 매우 좋지 못하다. 더구나 대륙의 산지대여서 밤중에 기온이 철 모르게 내려앉아 감기가 들리기 쉽다더니 그럴 사라 해서 그런지 신열도 좀 나는 듯하였다. 온 밤을 뜬눈으로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으나 이번은 어수 선한 꿈을 번거로이 꾸게 되었다. 산비탈길에서 일병과 마 주치는 무시무시한 장면, 산 위로 쫓아가며 터지는 동무들 의 권총 소리, 풀 섬 풀 속을 앞뒤로 푹푹 쑤셔 대는 기관 총탄, 멀리 가물가물 달려오는 의용군의 대오……

어린애들의 얼굴이 새로운 광채를 띠고 나타난다. 애들이 꿈에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란을 피하고자 새로 짐을 옮겨다 놓은 버드나무 우거진 장광도인 모양이다. 평 양성 내로부터 30리 물길을 굽이쳐 내려온 꿈과 물과 태양 의 나라. 별장섬, 민바리섬, 두루섬, 두다니 이렇게 하도 많 은 섬들이 한틀에 널린 다도하로 그림처럼 아름답고도 장쾌 한 풍경이다. 초록 비단을 씌운 듯이 섬마다 낟알이 기름지 고 강가에서는 소가 풀을 뜯으며 꼬리를 젓고 밭고랑을 타 고 김을 매는 농부의 노랫소리는 안연히 퍼져 흐른다. 물살 사이로 흰 돛을 올린 풍선이 미끄러지듯이 바람을 팽팽히 안고 오가며 고깃배는 여기저기 떠간다. 이 얻기 어려운 풍 경을 사랑하여 연약한 몸을 이런 섬에서 보양하리라고 전부 터 그리워하던 김이라 고국을 떠나며 늙으신 어머니와 처자 를 이 장광도로 옮겨 놓은 것이다.

개 언덕에 큰 애놈이 겨우 지척지척 거니는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 서서 흰 돛을 가리키며 무엇이라고 종알거리며 좋아 한다. 발밑에는 바로 만조된 물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 렇게도 물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였더니 어린애들을 강가로 내보냈다고 질겁하여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는 차에 개 언덕 이 무너지며 앗! 하는 사이에 물거품이 뛰어올랐다. 오르는 가 하였더니 펄펄 흰눈이 휘날려 눈앞이 막막해진다. 신음 소리를 지르는데 동무들이 흔들어 깨운다.

놀라 일어나 앉으니까 어서 짐을 꾸리라면서 분주히 신끈 을 졸라 매고 있었다.

”적정이외다. 왜놈들이 오는 모양이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15분.

”꿈이 사납더니만……”

”아마 꿈이 맞는가 보지요.”

하며 최동무가 이불을 뚤뚤 말아 노끈으로 끌어매며 어서 내려가자고 한다. 난데없이 총소리가 서너 방 요란히 울린 다. 숨을 죽이고 사방을 휘휘 들러보나 아직도 찾은 어둠속 으로 구름이 흐르는 하늘에 별이 몇 송송하다. 두 동무는 권총을 꺼내 알탄을 재우고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무엇이라 고 수선거리는 말소리와 호령 소리, 발소리가 긴장을 아로 새긴다. 중국인 길잡이는 사죽을 펴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한다.

이때 군인 한 명이 우리 일행을 찾아 올라오며 과히 놀라 지 말라고 한다. 50가량의 일병이 20리 밖의 산중을 출몰하 다가 이곳을 향하여 떠나는 모양이라는 정보가 들어왔기 때 문에 만일에 염려하여 피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문 밖으로 나가 보니 총을 둘러멘 민병 5, 6명이 나귀를 끌어다 놓고 등대중이었다. 우리 일행을 호위하여 안전한 곳으로 끌고 들어갈 사람들이었다. 두 동무가 염려하지 말 라고 여러 가지로 사양이나 그들은 우리의 짐을 빼앗아 나 귀 위에 실으며 상부의 명령이라고 한다. 군민의 따뜻한 호 의와 동정이 뼛속에 스며든다. 중국인 길잡이를 돌려보내는 대신에 나귀가 짐을 싣고 우리의 뒤를 따르게 된 것이다.

거리에 나서니까 민병들이 이리저리 달려다니며 떠짓거리 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부터 보퉁이를 낀 난민들이 어린애 를 이끌고 늙은이의 등을 밀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몰려 나 온다.

이 일행을 또한 민병들이 소리소리 지껄이며 끌고 간다.

울음 소리, 비명, 함성, 검은 그림자, 흰 그림자, 그림자 그 림자…… 이따금 유별히 굵직한 바리톤 목소리가 덤비지 말 라, 떠들지 말라고 외친다. 어떤 홰나무 아래에서는 착검하 고 정렬한 민병들에게 정규군인이 명령을 전달하고 있었다.

별빛에 서리 비낀 칼날이 번쩍거린다. 갑자기 질그릇이 떨 어지며 깨지는 소리가 일어나니까 모두 쉬쉬 소리를 지른 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찾아들어 배치에 서려고 민병들이 4, 5명씩 달려가기도 하였다.

최 동무는 나에게 귓속말로 노상에서 절대로 조선말을 하 지 말며 담배도 피울 생각 말고 제 뒤를 꼭꼭 따라서라고 한다. 민병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군인의 인도대로 이 거리 를 빠져 나가 좁은 길을 택하여 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 였다. 동구 밖에서는 요소에마다 지뢰를 묻는 모양으로 민 병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셰퍼드군도 역시 긴장하여 짖을 생각도 않았다.

이슬에 젖은 풀밭 속을 황망히 내달리기 때문에 바짓가랑 이가 젖어 다리에 철철 휘감겼다. 적이 발견되면 유격전을 일으키려고 여기저기에 매복하고 있던 민병들이 '서라! 누구 냐”'고 갑자기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때로는 큰 소리로 외 치며 달려와 거기에는 지뢰를 묻었으니 이리 오라고 하며 언덕길을 혹은 산비탈로 끌고 가기도 하였다. 이런 데는 10 여 명의 민병들이 사방에 널려 몸을 감추고 주위를 보살피 고 있었다. 어떤 산에는 불이 달린 화승(쑥으로 꼬아 엮은 것)을 휘저어 보이며 먼 곳에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귀도 심상치 않은 곳임을 예감하는지 이끄는 대로 뒤뚝거리며 부 지런히 좇아온다. 동안이 떠 우리는 적이 으슥한 곳의 산골 짜기 속의 외딴 집으로 찾아들게 되었다. 늙은이 부처가 놀 라 나오며 또 어디서 전쟁이냐고 묻는다. 팔로군으로 안 모 양인지 한사코 들어오라고 권하나 우리는 마굿간으로 기어 들어가 거적을 펴고 앉았다. 물이라도 끊인다는 것을 불빛 이 보여서는 안된다고 군인이 말렸다. 우리들한테도 마음놓 고 한잠씩 눈을 붙이라고 하나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를 데리고 온 군병들은 이미 군인의 지시에 이하여 요 소요소를 경비하고 있었다. 20리나 멀리서 들려 온다는데 이렇듯 서둘 필요가 있느냐고 최 동무에게 물으니까 난처한 듯이 웃음을 지으며, ”팔로군에서는 국제 동지의 일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돌보 아 줍니다. 외려 이쪽에서 미안하리만치.”

퍽 의젓한 군인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요즘 일병이 출 몰하는 이유는 깊이 들어와 있던 독립포대나 경비대놈들이 철퇴하는 것을 엄호하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출몰보다도 이런 철퇴병을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르므로 만전을 기함과 같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몸을 아껴 두었다가 장차 동북땅에서 벌어질 결전기에 같이 진격하자고 하였다.

동북땅은 그의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 지대의 일에 비하면 이런 싸움은 떡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라면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난다.

”첫째 우리에게는 수백만의 병사가 있고 군중이 있고 병기 가 있지 않소”없는 것은 오직 '근심'뿐……”

하며 웃는다.

”그러나 만우유격대에게 있는 것은 수백만의 적군뿐이 오……”

”우리의 삼천만 인민이 그 뒤에 있죠!”

하니까 ”옳소, 옳소.”

군인은 통쾌하게 웃었다.

이때에 재너머 골짜기에서 요란한 총성이 일어난다. 지뢰 가 터지는 쿵쿨 소리도 연달아 들려 온다. 민병들이 황망히 달려 들어와 북쪽으로 2리 가량 떨어진 산골짜기 속에서 충 돌중이라고 보고하였다. 우리는 지시에 의하여 다시 행장을 수습해 가지고 이와 반대 방향으로 총총히 길을 떠나게 되 었다. 매복중이던 민병들이 정규군인의 지휘를 받아 가며 걸핏걸핏 충돌지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콩볶듯하는 기관총 소리도 들려온다. 일병의 반격일까”동천에는 그믐 달이 녹슨 낫을 던지고 있었다. 새벽녘에 뒤를 돌아 우리는 일병이 뚫고 지나간 부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동구 밖에 서 있는 보초들에게 물으니까 민병들이 삼면으로 포위를 하 고 내모는 바람에 방화(防火)할 사이도 없었으나 무고한 난 민을 세 명이나 쏘아 죽이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래 막 구름떼처럼 몰려서 그 뒤를 따라갔다고 하며 자기네도 기관 총만 있었더라면 문제 없었을 것이라고 매우 분해 한다. 새 벽 아지랑이 속에 휩싸인 부락 안은 쥐죽은 듯이 고요하였 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피비린내를 맡았는지 우 리의 셰퍼드란 놈이 몇 번인가 컹컹 짖어대 애꿎은 나귀만 놀라게 한다. 죽음을 실은 청동색의 말(馬)이 지나간 새로운 자취는 역연치 않으나 안개 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부락은 밤이슬에 젖어 호젓이 땀을 흘린 듯하였다. 난민이 이따금 두셋씩 어슬렁어슬렁 돌아오고 있으나 도무지 사람이 사는 마을 같아 보이지 않는다. 시들어 죽은 나뭇가지 위를 까마 귀떼가 까욱거리며 날고 있을 뿐이다.

흙담장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우겨 든 비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가노라니 어떤 집 문간 앞에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어린애 하나가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어 느껴 울고 있었다.

중국애들에게 흔히 볼 수 있듯이 앞이마 위에 메추라기의 관처럼 머리털이 달린 귀염성스런 어린애였다. 가없이 깊고 도 막막한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숨이 턱에 닿아, 허덕허덕 거리기만 한다. 이애를 둘러싸고 갖가지로 달래며 물어 보 나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부근 집들을 조사하고 돌아온 민병의 보고는 가마솥까지 뽑아 가지고 그림자 하나 없이 모조리 달아난 것으로 보아 이 골목 안의 어린애가 아닌 성 싶다는 것이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우성을 치며 피 난을 하는 수라장 속에서 어버이를 잃은 것일까”혹시 놈들 에게 어머니라도 앗기고 우는 애나 아닐까”

군인은 민병 두 명을 시켜서 어린애를 민병본부로 보내 보 호하도록 하였다. 버들가지가 실개천에 늘어진 우물가에 이 르자 그는 우리에게 작별인사의 악수를 청하였다. 우리는 심심한 호의에 충심으로 사의를 표하며 민병들과도 뜨거운 악수를 교환하였다. 무엇이고 하나쯤씩 기념품을 주고 싶었 으나 가진 것이 없어 북경서 사 넣었던 담배를 한 갑씩 나 누었다.

일병들이 산골짜기 속에 포위진에 빠져 거의 전원이 쓰러 지고 나머지 몇 명이 포로되었다는 보고에 접하기는 이 부 락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서였다. 분구 사령부로 보고하러 말을 달리고 가는 군인으로부터 듣고 알았다.

4. 학도병 S의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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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유격전 놀음에 무안현에 들어섰던 것을 다시 사 하현 내로 되돌아 들어온 것이다. 조반은 가다가 먹기로 하 고(실상 부락이란 부락은 모두 피난하여 먹을 만한 곳도 없 었다)그냥 우리는 새벽길을 나귀를 몰려 떠났다. 이왕이면 나귀 위에 올라타라고 하여 마음이 넘실거리기는 하나 몸을 단련해 두느라고 같이 보행키로 한다. 대낮에는 숨이 턱턱 막혀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에 해가 퍼지기 전에 되도록 많이 걸어 두자는 것으로 말 엉덩이에 채찍질을 하며 중국 나귀꾼 식으로 ”따 따 따따─”

역시 산길은 산길이지만 그래도 이미 험준한 산등성이를 넘은 뒤여서 길이 비교적 좋은 편이며 가다가다 민가도 찾 아볼 수 있었다. 때로는 도중에 우거진 감나무 숲이며 호두 나무 그늘 사이를 지나가게도 되었다. 감나무와 호두나무 외는 이렇다 할 나무 한 그루 없고 다만 단구를 이루어 층 층히 널린 뙤약밭에 강냉이, 콩, 메밀등속의 서곡이 산야를 장식한다. 호두나무는 담록색의 넓죽넓죽한 잎사귀며 허엽 스레한 줄바른 밑둥이가 플라타너스와 흡사해 보여 더욱이 이국적이다. 이런 것이 뭉실뭉실 숲을 이루면서 연달린 풍 경이 자못 맑고도 향기로운 인상을 주어 살풍경스러울 이 산지를 부드럽게 수놓는 것이었다. 이 일대는 호두나무와 대추의 명산지여서 대추로 술을 빚고 호도로 방등이 기름까 지 짠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만치 거의 숲이 연달렸다.

이 숲 사이로 적토마를 타고 군모 위에 농립을 눌러 쓴 군 인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광경은 매우 흥취 있었다. 지 나칠 때에는 반드시 무어라고 정답게 이야기를 걸지 않으면 농담이라고 붙인다. 어떤 군인은 말을 멈추고 서서 우리의 셰퍼드 군을 기부하라고 진심으로 조른다. 전선에 데리고 나가 써먹겠다는 것이다. 최 동무는 웃으며 설명하였다.

아직 이놈의 개가 의식을 개변치 못했기 때문에 전쟁마당 에 나서면 도리어 일군을 위해 복무하던 버릇을 낼 것이니 우리는 동무에게 사나운 개를 동반시키지는 못하겠다고─군 인은 히덕히덕 웃었다.

”그러면 데리고 들어가서 어서 혁명을 시키시오.”

”그건 간단하오. 굶으며 고생하노라면 혁명구(革命狗)가 될 테니까.”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엔 내가 나귀 위에 오르게 되었다. 구 두가 터져 발이 나오게 된 것이다. 말이라고 이름 붙은 것 을 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나 방정맞게 되뚝되뚝거려 엉둥 이가 편치 않고 마음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나귀의 몸뚱이 가 나보다 작으니 산초판사 그대로다. 이런 우리 일행이 길 목이며 산 모퉁이 혹은 동구 밖에 다다르면 반드시 부인이 나 노인 어린애들이 앉아 있다가 증명서를 내놓으라고 요구 한다. 만약 이런 때에 어름어름하여 의심스레 보이면 곧 뒤 로 연락하여 군인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리하여 간첩과 한 간들의 침입을 방지하는 것이다. 또 이러므로 보아 일군의 앞잡이와 장개석과의 파괴공작이 얼마나 적극적인지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듯하다.

들어갈수록 나귀 바리가 떼무리를 지어 길을 막을 듯이 오 가며 방울 소리만 요란히 산기를 흔든다. 양털로 짠 포대에 다 낟알을 싣고 혹은 면포를 지우고 장거리로 찾아가는 것 이다. 우리는 이 나귀 바리들과 같이 어떤 조그마한 장거리 에 도착하였다. 역시 이 장거리도 전화(戰禍)를 입어 형지없 이 파괴되었으나 마침 장날이어서 거리가 흥성흥성하였다.

길가의 음식점에서 조반을 먹은 뒤에 동무들은 응달에 거적 을 깔고 늘어지게 잠이 들었다.

나는 파리 성화에 잠이 들 수 없기에 차라리 더듬더듬 장 마당 구경차로 나갔다. 긴 거리 양쪽에 노점이 늘어선 사이 를 산사람들이 오르내리며 분주하게 떠들어댄다. 지저분하 고 너절한 먼지투성이의 골목길이었다. 어디선지 땡그랑거 리는 쇳소리, 동고 소리, 호궁 소리도 들려 온다. 잎담배, 가 루담배, 궐련 이런 담배장수가 많다. 비누, 성냥, 손거울, 붓, 먹, 밀가루, 조 그리고 약장수, 신기레, 땜장이, 이발사……

과일은 살구, 복숭아, 능금, 참외, 수박, 호도 거의 없는 것 이 없다. 지구의 삼분지 일도 안 되는 헐값으로 매매되며 화폐가치는 또한 날로 오르고 있었다. 자작자급에 의하여 모든 부족을 참고 이겨 나가려는 정부의 시책 때문에 일본 제품은 좀체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으나 가다가다 찾아 볼 수 있는 적자구산(産)의 칫솔, 만년필 이런 것은 엄청나 게 비싸다. 중국 장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옛말장수, 점 장이 이런 것은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대신 '타도 일본 제국주의'니 '반대 국민당 전정(專政=독재)'등의 구호가 집집 마다 담벽에, 기둥에 씌어 있다.

소담한 복숭아를 서너 알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이 오 구수수 모여 서서 떠드는 곳을 기웃이 들여다보니 군복을 입은 단발의 여병이 탁자 위에 올라서서 연설을 하고 있다.

옥을 깨치는 듯 줄기차고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청중의 심금 을 울리고 있었다. 때때로 대담한 제스처를 써가며 부르짖 는 얘기 속에 연방 팔로군, 모택동 선생, 주덕 장군 이런 소 리가 튀어나온다. 정치연설이 아니면 시사해설인 모양이었 다. 청중들은 가끔 끄덕이기도 하고 박수도 울리며 떠나가 게 폭소도 터뜨린다. 여병도 조그마한 눈을 지리 감으며 웃 는다. 뒤에 섰던 눈곱이 낀 얽음뱅이 영감이 다가와서 부채 를 부쳐 주니까 여병은 고맙다고 생긋이 웃어 보인 뒤에 다 시 몰아치는 소리로 연설을 계속하였다. 머리가 바람곁에 나폴거리며 행금한 목덜미가 간들먹이는, 군복만 입지 않았 다면 분명 여학생이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노라니 정말로 새로운 땅, 미지의 나라 에 왔다는 느낌이 더욱 간절해진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정 의의 세계에 연결되는 이 땅이요, 새 시대의 올리닫는 역사 와 결부되는 이 시간인 것이다. 각박하고도 빈곤하고 스산 한 산 지대이건만 작열하는 힘이 엉키고 서리어 드는 화산 의 힘이 지류를 이루어 굼실거리고 있는 듯하였다.

한참 동안 절절한 감회 속에 우러러보다가 발을 돌려 돌아 서 나오려는데 마주 지나치려던 청년 하나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멈춰 선다. 불기하고 나도 발을 멈추었다. 일순간 마 주보며 서로 먹먹하였다. 청년이 다가서며, ”조선 사람 아니 오?“한다. 은근한 목소리였다.

나는 감격에 겨워 말없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꺼멓게 볕에 그을은 얼굴을 홍조로 물들이며 내 손을 부여잡은 채 놓을 줄을 모른다. 그의 뒤에 섰던 팔로 군인도 눈치를 채 고서 내 손을 잡으며 반가이 무어라고 이야기한다. 청년도 나와 매한가지로 중국말이 좀처럼 통하지 못하는 모양이기 에 그들을 이끌고 동무들이 쉬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청년은 대동 근방의 제일선으로 끌려 나왔다가 해방구로 탈주하여 팔로군의 보호를 받으며 근거지로 찾아 들어가는 길이었다. 중국에 와서 전선에 나온 이래로 동포라고 처음 만나는데, 처음 만나는 동포가 전야의 꿈에도 그리던 혁명 가 동무들이라면서 감개에 사무쳐 눈물이 글썽해진다. 우리 도 그의 다행을 같이 기뻐하였다. 벌써 두 달포나 길 위에 서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과일을 나누며 환담한 뒤에 이 청년을 최 동무가 책임지고 동행하기로 하여 팔로 군인은 안심하고 들어가게 되었다. 청년은 새로 배운 몇 마디 안 되는 중국말을 모조 리 늘어놓으며 여태까지의 동행에게 감사를 드린다. 군인과 작별하고 나서 청년은 두 달 동안 걸어오는 도중에 그들이 친절하게 돌보아 줄 뿐더러 군구에서 양표(糧表)도 떼어 주 고 매일 용돈까지 후히 지급해 주어 지금까지 처음으로 돈 도 많이 써보았노라고 어린애처럼 떠들어댄다.

구두를 버리고 여기서 산 신으로 갈아 대어 완전한 중국 산골사람이 되면서 나는 나귀를 새로 맞이한 청년에게 사양 하기로 하였다. 넓적다리를 부상당하여 절름거리는 품이 보 행에 자못 거북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장거리를 돌아 서남 쪽을 향하여 산길을 다시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였다.

이 지방은 지층이 여러 갈피로 단구를 이루어 낟알밭이 층 계층계 쌓여 올랐기 때문에 산길이라고는 하나 비단 방석 사이를 스쳐 도는 느낌이었다. 드높은 산허리에는 흰 산양 이 구름처럼 떼무리를 지어 밀려다닌다. 양을 지키는 사냥 개가 이따금 방울을 울리며 바위 위에 올라서서 우리 셰퍼 드 군을 향하여 컹컹 짖어 보고 하였다. 길가에는 역시 가 도가도 끝없이 호두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이런 것이 늘어 서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차차 산야 광경의 색조와 아름다 움이 짙어 가는 듯하였다.

나귀 위에 올라탄 청년은 흐믓한 행복 속에 머리를 꺼뜩꺼 뜩거리며 전선에서 지내 온 이야기를 조용히 펴놓기 시작한다.

이 청년 S군은 역시 원수의 융의(戎衣)를 입고 총알받이로 끌려 나온 학도병이었다. 충청북도 태생. 온유한 인품으로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요, 사회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선량한 백성이었노라고 한다. 수인들처럼 무장병에게 감시를 받으 며 중국관내로 들어와 이리저리 바꾸어 타고 갈아 오른 뒤 에 당도하여 보니 열하(熱河)땅 대동 근방이었다. 여기서 일 년 정도 훈련을 받고 나서 기름때에 젖은 총검을 짊어지고 전선으로 배치되었다. 침침하고도 깊은 산중의 어떤 조그만 경비대였다. 조선인 사병은 도합 세 명으로 그 중에는 현재 도지사를 지내는 자의 영식 군도 끼여 있었다. 묻지 않아도 지사 선생 솔선수범의 표본으로 아들을 사지로 보냈던 모양 이다. 또 하나는 지원병 명색으로 붙들여 나온 일어도 잘 모르는 농촌 청년이었다. 그러나 영식 군은 산중 포대로 나 오자부터 절망의 심연에 떨어졌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짐작치 못했던 것이다. 사실인즉 내쫓은 본부인의 소생이어서 그리 탐탁치 여기지 않았다. 지사 선생은 신문 에 이름을 내어 영전의 재료로나 삼기 위해 몰아냈을 뿐, 일단 내보낸 뒤에는 도리어 눈앞에 보이지 않아 천만요행으 로 아는 눈치였다. 이런 내용은 모르고 영식 군은 아버지가 떠날 때 내가 있고서야 너를 위험한 데로 보내겠느냐던 말 만 하늘처럼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배치된다는 곳이 그것 도 유분수련만 날마다 총소리가 들리는 전선산중이고 보 니……

훈련기간만 지나면 자기는 후방 근무로 옮아 간다고 노상 뻐기고 있었기 때문에 여느 두 동무는 밉살스럽게 보아 슬 그머니 마음 한 귀퉁이로 고소하게 생각하였다. 그래 그들 사이에 야릇한 감정의 틈바퀴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영 식 군 외의 두 사병은 최전선에 배치된 것을 도리어 심중으 로 고마워 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왕의 선량한 신민이요, 훌 륭한 모범생인 S군은 일본 군대 안에서 온갖 박해와 모욕을 받는 동안에 고귀한 생명을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바쳐 야 옳은지를 똑똑히 가슴속에 새기게 된 것이다.

영식 군에게는 다만 군대생활이 괴롭고 죽음이 무서울 뿐 이었다. 그러나 S군은 파선한 사공에 머물지 않고 가없이 먼 수평선의 짙은 안개 속에 흰 돛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이 흰 돛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로 하여금 괴로움과 모욕속 에 닦아 온 무기를 어디에 살려야 할지를 절실히 알게 하였 다. 그 총부리 향할 곳이 어디며 그 칼을 들어 쳐부술 것이 무엇인지를……

더구나 동족의 지원병을 놈들이 놀이개감으로 여겨 치다루 고 볶아 대기 때문에 적개심이 더욱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 다. 지원병으로 끌려 나온 농촌 청년은 워낙 순박하고도 어 진 청년이었다. 이 지원병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머믓거리 기라도 하면 윗놈들이 들어붙어 따귀를 갈기고 꽁무니를 걷 어차며 심지어는 모두 둘러싸고 요보니 센징이니 야단이었 다. 그러다가 한번은 이 유순한 청년이 후기생에게까지 조 롱을 당함에 울화가 터졌는지 주먹으로 후려갈긴 일이 있었 다. 하니까 놈들은 독수리떼처럼 달려들어 넘어뜨린 다음 내리밟아 초죽음을 시켰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분대장놈은 연신 칼을 뽑겠다고 으르렁거려 S군이 제발 하고 겨우 제지 한 것이다. 치가 와들와들 떨리며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 뒤에 놈들은 이 청년을 방안으로 끌고 들어가 천여 명이 모 여 서서 일으켜 세우고 번갈아 가며 발길로 차고 뺨따귀를 갈기고 연방 기착(起着)의 호령을 질렀다. 인사불성이 되면 또 잡아 일으키고 호령에 복종치 않는다고 또다시 난타폭행 을 하는 것이다. 정신이 혼미해지니까 그제는 끌어다가 빈 방안에 던지고 나서 열흘 동안 근신이라면서 군복을 벗기고 무장을 빼앗았다. 이렇게 되자부터 S군은 이 청년을 데리고 달아날 방법을 골똘히 연구하며 그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그러나 같이 시달림을 받는 동족이건만 영식 군에게는 도저 히 토진간담(吐盡肝膽)을 할 수가 없었다. 제게는 반드시 좋 은 소식이 오려니, 자기의 배치가 달라지려니 하는 덧없는 희망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줄창 아버지에게 편지를 띄워도 답장에는 언제든지 홍대무변한 황은에 일사보답하라 는 말뿐이었다. 실망한 나머지 그는 비굴스레 일병에게라도 곱게 보이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하게 되었다. 노복처럼 양말 도 빨아주고 밤에는 다리도 주물러 주는 추태까지 연출한 다. 그뿐인가 S군으로부터 체신머리 없다는 꾸지람을 들은 뒤로는 이것을 가슴에 얹어 두고 외려 그의 동정을 살펴 웬 만한 일이라도 고자질하려는 눈치였다.

이러면서도 영식 군의 불면증과 신경쇠약은 나날이 심해졌 다. 하루는 역 부근으로 연습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순간적인 발작으로 군복을 벗어 던지고 기차에 뛰어오른 일 이 있었다. 붙들려 들어가 반사지경(半死之境)으로 두들겨 맞고 본 부대의 영창에 감금되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지 사 선생은 만약 앞으로라도 아들의 탈주가 정작 실현된다면 자기에게까지 영향이 미칠까 두려워한 모양이다. 어떻게 교 섭을 했는지 마침내 영식 군은 안전한 후방지대로 옮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미 때는 늦어 그가 발광한 뒤였다.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뒤에 지원병 청년이 풀려 나와 보초 를 서게 된 어느 날 밤이었다. S는 밤중에 소리없이 일어나 모두가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하게 되자 조심조심 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재꺽재꺽 울리는 시계 소리만이 깨어 있을 뿐 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여러 날 두고 계획했던 대로 우선 기둥시계로 가까이 다가가 바늘을 두어 시간 뒤 로 돌려 놓았다. 그리고는 포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기관총 의 안전장치를 비틀어 부속품을 빼놓고 탄알을 뽑아 주머니 에 넣은 뒤 보총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가슴을 조이는 순 간의 일이었다.

미리부터 방향과 시간을 짜 두었기 때문에 보초를 섰던 지 원병 동무는 한걸음 앞서 철조망을 뚫고 나가 기다리고 있 었다. 포대 위에서 망을 보는 감시초의 눈도 감쪽같이 피하 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드나드는 한간들의 보고에 의하 여 서남으로 사십 리 가량 산을 넘어 비탈길을 내려가면 유 격지구에 조그만 부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어 시 간 여유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래 시계 를 돌려 놓은 것이다. 하기는 한 시간 동안만 알려지지 않 는 대도 그 사이에는 큰 산을 넘어설 수 있음직하였다. 서 로 어둠 속을 더듬으며 바위투성이의 험한 산길을 달렸다.

엎으러지기도 하고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하였다. 나무뿌리 를 부여잡고 서로 소리를 죽여 마주 부르며 끌어다니기도 하였다. 온몸이 땀에 젖으며 숨길은 가량없이 가쁘다.

그러나 삼십 분도 못 돼서였다.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난데 없이 요란히 울리는 경적이 고요한 산속을 흔들기 시작했 다. 그들은 큰일이 나서 서로 붙들고 달음박질로 산길을 올 랐다. 좀 있어 포대 위로부터 조명광이 두 줄기 내리끼더니 서로 엇바꿔 돌며 사방을 비추기 시작이다. 푸른빛 기둥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들은 풀숲속에 엎드렸다가 지나치면 또다시 어둠 속으로 달려 올라갔다. 푸른빛이 휙 스치고 지 나갈 때 잔등에 서리 비낀 시퍼런 칼이 선뜻 내려덮치는 것 같았다. 경적 소리는 산중에 산울림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위잉위잉 계속해 울린다. 뒤로 수색대가 따라 오는 듯하였 다. 두간두간 무어라고 놈들이 서로 고함치며 신호하는 소 리도 들려 온다.

그러나 이런 소란 속에 군네는 무사히 산을 넘었다. 사십 리는커녕 오십 리 육십리 그냥 막 내달린 성싶었다. 새벽 안개가 희멀그레하니 젖빛으로 풍겨 도는 산밑에 조그만 부 락을 발견하고서야 언덕에 앉아 갈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 고 동쪽 하늘이 훤히 밝아 오를 무렵 그들은 총 끝에 셔츠 로 백기를 만들어 달고 부락으로 내려갔다.

촌장을 찾아 필담으로 도망해 온 이유를 말하고 있노라니 팔로 공작원이 나타나 흔연히 그들을 맞아 주었다. 몇 십 리 길을 걸어 분구 사령부로 찾아갔다. 거기서 고기를 다져 만두를 빚어 술을 놓고 환영회까지 베풀어 주었다. 여기서 사오 일 묵은 뒤에 우리의 근거지를 향해 전체(轉替)로 인도 되어 들어오는 길이다. 한 동무는 도중에 열병에 걸려 치료 차로 떨어지게 되었다.

전장으로 몰려나온 동포 젊은이들의 뼈아픈 눈물의 투쟁!

부상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부락에 내려오니까 농군들이 곡괭이나 부삽을 메고 밭으 로 나가다가 몰려들어 우리를 포위하고 귀자, 귀자 하며 막 떠들어대는군요……순종의 뜻을 표하기 위해 우리는 귀자가 아니라면서 총을 내어 맡겼지요. 그러니까 한 사내가 떠벌 리자 이 말을 신호로 늙은이 부인네 젊은이 할 것 없이 모 두 아우성을 치며 달려들어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총장 이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해방된 지 얼마 안 되는 부락이었던 모양이오.”

”팔로 군인도 그러더군요. 정치교육이 아직 충분치 못한 탓으로 적개심만 발동되었던 게라고……경비대에서 나올 때 기관총으로 그저 그놈들을 모조리 몰살시키고 나올 것 을……뛸 생각에만 골똘해서……”

적이 분해 한다.

”그만하기도 좀한 용기가 아니오.”

”여기 들어와서야 의용군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마는 지원 병으로 나왔던 그 동무는 언제든 그 경비대를 제 손으로 들 부수어 복수를 하겠노라고 이를 갈고 있습니다.”

”혹시 H동무를 모르겠소?“ 현 동무가 이렇게 물으니까 S군은 자못 놀리는 기색을 짓 는다.

”H”R 말입니까”네, 그 동무 알고말고요. 제 친우입니다.

어떻게 아세요?“ ”지금 우리 군정학교에 들어와 있소.”

”옛”들어왔어요, 죽지 않고?“ ”죽기는……”

S는 어쩔 줄을 모르게 기뻐한다.

”그럼 그때 같이 동무해 들어간 이는 없었던가요?“ ”H 동무와 같이 줄을 타고 성벽을 넘기는 넘었으나 불행히 그 동무는 십자포화에 걸려서 희생되었다더군요……”

”그럼 역시……정소리였군……H군네 일이 각 경비대로 통 첩이 온 뒤부터 우리 조선 사람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아주 단단했습니다. 일거수 일투족을 유심히 살폈지요. 꼭 감옥이 었습니다. H군네는 지푸라기를 주워 새끼를 조금씩 꼬아 이 어 가지고 성벽을 타고 넘었다면서요……한명은 뛰다가 맞 아 죽고 H군은 팔로에 잡혀서 눈깔을 빼고 코를 때운 뒤에 총살되었다고 놈들이 막 악선전을 하며 도망치다가는 모두 그렇게 된다고 엄포하였더랍니다. 군이 살아 들어갔군요.”

”동무가 들어가면 H군 외에도 아마 알아볼 동무가 많을게 요……”

”도중에 뜻하지 않은 왜놈 상관을 한 놈 만나지 않았겠어 요. 제가 훈련을 받던 시절의 소대장이었는데 토벌을 나가 여덟 명을 찌르고 명예의 전사를 한 검객이라고 바아루 신 문까지 떠들렸던 녀석입니다. 연안 가는 길이라나요. 저를 알아보더니 여─자네도 들어오나 하겠지요.”

모두 웃었다.

”하기는 이 녀석 비교적 사람은 좋았습니다. 포로가 되었 느냐고 물으니까 아니 혁명하러 들어왔어!……”

또 한바탕 웃었다.

”밤낮 군인칙유를 잘못 왼다고 들볶던 녀석인데 이번은 저 를 붙들고 '여보게 대학생, 이 구절을 좀 해석해 주게나'하 며 뒤적이는 걸 보니까 <일본 병사에게 고함>이라는 오까노 스스무(岡野進=野坂參三) 씨의 팜플렛이겠지요……연안서 발행된……”

”그래서……”

”그래 저는 이 자식아, 나는 일본 병정이 아니라 조선 의 용군이로다 하고 고함을 쳤지요. 하니까 아니 이제는 팔로 군이나 조선 의용군이나 일본인 해방연맹원이나 매한가지라 나요.”

”포로되어 들어온 중위나 대위 또래도 많소……우리 근거 지 가까이에도 해방연맹 지부가 있으니까 이번은 중대장도 만나게 될지 모르지요.”

”아, 하기는 중대장도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쾌한 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