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뜨려지는 홍등

「여보세요.」

「이야기가 있으니 이리 좀 오세요.」

「잠간 들어와 놀다 가세요.」

「너무 히야까시 마시고 이리 좀 와요.」

「아따 들어오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

저문 거리 붉은 등에 저녁 불이 무르녹기 시작할 때면 피를 말리우고 목을 짜내며 경칩의 개구리떼같이 울고 외치던 이 소리가 이 청루에서는 벌써 들리지 않았고 나비를 부르는 꽃들이 누 앞에 난만히 피지도 않았다.

「상품」의 매매와 흥정으로 그 어느 밤을 물론하고 이른 아침의 저자같이 외치고 들끓는 화려한 이 저자에서 이 누 앞만은 심히도 적막하였다.

문은 쓸쓸히 닫히었고 그 위에 걸린 홍등이 문앞을 희미하게 비치고 있을 따름이다.

사시장청 어느 때를 두고든지 시들어 본 적 없는 이곳이 이렇게 쓸쓸히 시들었을 적에는 반드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이 틀림없었다.

몇백원이나 몇천원 계약에 팔려서 처음으로 이 지옥에 들어오면 너무도 기막힌 일에 무섭고 겁이 나서 몇주일 동안은 눈물과 울음으로 세상이 어두웠다. 밤이 되어 손님을 맡아 가지고 제방으로 들어갈 때에는 도살장으로 끌리는 양이었다. 너무도 겁이 나서 울고 몸부림을 하면 어떤 사람은 가여워서 그대로 가버리고 어떤 사람은 소리를 치고 주인을 부르고 포악을 부렸다. 그러면 주인이 쫓아와서 사정없이 매질하였다. 눈물과 공포와 매질에 차대끼고 나면 몸은 점점 피곤하여가서 나중에는 도저히 체력을 지탱하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병이 들어 누웠을 때면은 미음 한 술은커녕 약 한 첩 안 대려주었다. 몸 팔고 매 맞고 학대 받고……개나 돼지에도 떨어지는 생활을 그들은 하여 왔던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못 받아오는 그들이 불평을 품고 별러 온 지는 이미 오래였다. 학대 받으면 받을수록 원은 맺혀가고 분은 자라갔다. 비록 그들의 원과 분이 어떤 같은 목표를 향하여 통일은 되지 못하였을망정 여덟이면 여덟 사람 억울한 심사와 한많은 감정만은 똑같이 가졌던 것이었다.

유심히도 피곤한 날이었다.

오정때쯤은 되어서 아침들을 마치고 나른한 몸으로 층 아래 넓은 방에 모였을 때에 누구의 입에선지 이런 탄식이 새어나왔다.

「우리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말할 기맥조차 없는 듯이 모두 잠자코 있는 가운데에 봉선이라는 좀 나이 어린 창기가 뛰어나서며 말하였다.

「너나 내나 팔자가 기박해서 그렇지 않으냐? 그야 남처럼 버젓한 남편을 섬겨서 아들딸 낳고 잘살고 싶은 생각이야 누가 없겠니마는 타고 난 팔자가 기박한 것을 어떻게 하니.」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이나 잠자코 있던 부영이라는 나이찬 창기가 이 말에 찬동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항의를 하였다.

「팔자가 다 무어냐? 다같이 이목구비를 갖추고 무엇이 남만 못해서 부모를 버리고 동기를 잃고, 고향을 떠나 이 짓까지 하게 되었단 말이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왜 모두 그런 기박한 팔자만 타고 났겠니?」

「그것이 다 팔자 탓이 아니냐?」

「그래도 너는 팔자구나……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팔자 밖에 우리를 요렇게 맨들어 놓은 무엇이 있는 것 같더라.」

경상도 어느 시골서 새로 팔려와 밤마다의 울음과 매에 지친 채봉이가 뛰어 나서면서 쉬인 목소리로 외쳤다.

「내 세상에 보다보다 ×팔아먹는 놈의 장사 처음 보았다. 문둥이 같은 놈의 세상!」

눈물 많은 그는 제 입으로 나온 이 말에 벌써 감동이 되어 눈에 눈물이 글썽하였다.

부영이가 그 뒤를 이었다.

「그래 채봉이 마따나 문둥이 같은 놈의 세상! 우리를 요렇게 맨들어 논 것이 기박한 팔자가 아니라 이 문둥이 같은 놈의 세상이란다.」

「세상이 우리를 기구하게 맨들었단 말이냐?」

봉선이는 미심한 듯하였다.

「그렇지 않으냐. 생각해 보려므나. 애초에 우리가 이리로 넘어 올 때에 계약인지 무엇인지 해가지구 우리를 팔아먹은 놈이 누구며 지금 우리가 버는 돈을 푼푼히 뺏어내는 놈은 누구냐. 밤마다 피를 말리우고 살을 팔면서도 우리야 돈 한푼 얻어 보았니?」

「그야 그렇지.」

「한 사람이 하룻밤에 적어도 육원씩만 번다고 하여도 우리 여덟 사람이 벌써 근 오십원 돈을 버는구나. 그 오십원 돈이 다 뉘 주머니 속에 들어가고 마니? 하루에 단 오원어치고 못 얻어 먹으면서 우리 여덟이 애쓰고 벌어서 생판 모르는 남 좋은 일만 시켜 주지 않았니.」

한참이나 있다가 봉선이가 탄식하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멍텅구리가 아니냐?」

「암 그렇구말구. 우리는 사람이 아니고 물건이란다. 놈들의 농간으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피를 짜 놈들을 살찌게 하는 물건이란다.」

「니 정말 그런고?」

「생각해 봐라. 곰곰이 생각해 보려므나 안 그런가.」

「그럼 우리가 멀건 천치 아이가.」

「천치란다. 멀건 천치란다. 팔자가 기박하고 이목구비가 남만 못한 것이 아니라 이런 천치 짓을 하는 우리가 못났단다.」

「…………」

「우리가 사람 같은 대접을 받어 왔나 생각해 봐라. 개나 돼지보다도 더 천하게 여기어 오지 않았니.」

부영이의 목소리는 어쩐지 여기서 떨렸다.

「먹고 싶은 것 먹어 봤니, 놀고 싶을 때 놀아 봤니? 앓을 때에 미음 한 술 약 한 모금 얻어먹었니? 처음 들어오면 매질과 눈물에 세상이 어둡고 기한이 되어도 내놓지 않는구나.」

어느덧 그의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로 여전히 계속하였다

「저 명자만 해두 올 때에 계약한 돈을 다 벌어주지 않었니 그리고 기한이 넘은 지도 벌써 두 달이 아니냐. 그런데두 주인은 어데 내놓나 보아라. 한 방울이라도 더 우려내고 한푼이라도 더 뜯어낼려고 꼭 잡고 내놓지 않는구나.」

이 소리를 듣는 명자의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기어코 참을 수 없이 그만 울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채봉이도 따라 울었다.

나어린 봉선이는 설움을 못 이겨서 몸부림을 치면서 흑흑 느끼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윽고 각각 설운 처지를 회상하는 그들은 일제히 울어 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부영이만은 입술을 징긋이 깨물고 울음을 억제하면서 말 뒤를 이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 개나 돼지만도 못한 천대를 너희들은 더 참을 수 있니, 꾸역꾸역 더 참을 수 있겠니?」

「…………」

「참을 수 없으면 어이하노.」

채봉이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한탄하였다.

부영이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좌중을 돌아보면서

「울지들 말아라. 울면 무엇하니.」

하고 고요히 심장에서 울려내는 듯이 한 마디 또렷또렷이 뱉아냈다.

「울지 말고 우리 한번 해보자!」

「무얼 해보노?」

「우리 여덟이 짜고 주인과 한번 해보자!」

「해보다니 어떻게 한단 말이냐?」

눈물어린 얼굴들이 일제히 부영이를 향하였다.

「우리 원이 많지 않으냐. 그 원을 들어 달라고 주인한테 떼써 보자꾸나.」

「우리 원을 주인이 들어준다디?」

채봉이 생각에는 얼토당토 않은 듯하였다.

「그러니까 떼써서 안들어 주면 우리는 우리 할대로 하잔 말이다.」

「우리 할대로?」

눈물에 젖은 눈들이 의아하여서 다시 부영이를 바라보았다.

「모두 짜고 말을 안 들어주면 그만이 아니냐. 돈을 안 벌어주면 그만이 아니냐.」

「그렇게 하게 하겠니?」

「일제히 결심하고 죽어도 말 안 듣는데 저인들 어떻게 한단 말이냐.」

「옳지!」

「그렇지!」

그들은 차차 알아들 갔다.

마침내 부영이의 설명과 방침을 잘 새겨 들은 그들은 두 손을 들고 기쁨에 넘쳐서 뛰고 외쳤다.

「좋다!」

「좋다!」

「부영아 이년아 니 어디서 그런 생각 배웠나.」

「그전에 공장에 다니던 우리 오빠에게서 들었단다. 그때 공장에서도 그렇게 해서 월급 오르고 일 시간 적어지고 망나니 감독까지 내쫓았다드라.」

「니 이년아 맹랑하다.」

「우리도 하자!」

「하자!」

「하자!」

수많은 가냘픈 주먹이 꿋꿋이 쥐이고 눈물에 흐렸던 방안은 이제 계획과 광명에 활짝 개어 올랐다. 이렇게 하여 결국 그들은 어여쁜 결심을 한끈에 맺어 일을 단행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이 세상에서 받아온 학대에 대한 크나큰 원한과 분이 이제 이 집 주인과의 대항이라는 한 구체적 형식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처음인 그들은 일의 교섭을 부영이에게 일임하였다. 부영이는 전에 오빠에게서 들은 것이 있어서 구두로 주인과 담판하기를 피하고 오빠들의 예를 본받아서 요구서 비슷한 것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여덟 사람 입에서 나오는 수많은 조목 중에서 대강 다음과 같은 요구의 조목을 추려서 능치는 못하나 대강 읽을 줄 알고 쓸 줄 아는 부영이는 한 장의 종이를 도톨도톨한 다다미 위에 놓은 채 그 위에 연필로 공을 들여서 내려 적었다.

一. 기한 넘은 명자를 하루라도 속히 내놓을 일.

一. 영업시간은 오후 여섯시부터 새로 두시까지로 할 일.(즉 두시 이후에는 손님을 더 들 이지 말일.)

一. 낮 동안에는 외출을 마음대로 시킬 일.

一. 한달에 하루씩 놀릴 일.

一. 처음 들어온 사람을 매질하지 말 일.

一. 앓을 때에는 낫도록 치료를 하여 줄 일.

이렇게 여섯 가지 조목을 적고 그 다음에 만약 이 조목의 요구를 하나라도 안 들어주면 동맹하여 손님을 안받겠다는 뜻을 간단히 쓰고 끝에 여덟 사람의 이름을 연서하고 각각 제 이름 밑에 지장을 찍었다.

다 쓴 뒤에 부영이가 한번 읽어 주었다. 제입으로 한 마디 떠듬떠듬 뜯어들 읽기도 하였다.

다 읽은 뒤에 그들은 벌써 일이 다 되고 주인이 굽실굽실 끌려오는 듯하여서 손을 치고 소리 지르고 한없이 기뻐들 하였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하였던 합력의 공이 끔찍이도 큰 것을 처음으로 안 것도 기쁜 일이었다.

뛰고 붙으고 마음껏 기뻐들 한 끝에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공을 집은 사람이 요구서를 주인한테 가지고 가서 내기로 하였다.

「아 요런 년들.」

「아니꼬운 년들 다보겠다.」

「되지 못한 년들.」

「주제넘은 년들.」

주인 양주는 팔짝팔짝 뛰면서 번차례로 외치면서 방으로 쫓아왔다.

「같지않은 년들 이것이 다 무어냐?」

요구서가 약오른 그의 손끝에서 바르르 떨렸다.

「너이 할 일이나 하구 애초에 작정한 돈이나 벌어주면 그만이지 요꼴들에 요건 다 무어냐?」

한 사람 한 사람씩 노리면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요구서를 쪽쪽 찢어 버렸다.

「되지 못한 년들 일일이 너희들 시중만 들란 말이냐? 돈은 눈꼽만큼 벌어주고 큰소리가 무슨 큰소리냐?」

분은 터져 오르나 주인의 암팡스런 권막에 모두들 잠자코 있는 사이에 참고 있던 부영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이 그럼 우리를 사람으로 대접해 왔단 말요?」

「이년아 그럼 너희들을 부자집 아가씨처럼 대접하란 말이냐?」

「부자집 아가씨구 빌어먹을 것이구 당신이 우리를 개나 돼지 만큼이나 여겨왔오?」

「그렇게 호강하고 싶은 년들이 애초에 팔려 오기는 왜 팔려 왔단 말이냐?」

「우리가 팔려오고 싶어 팔려 왔오?」

「그러게 말이다. 한껏 이런 데 팔려오는 너이년들이 무슨 건방진 소리냐 말이다.」

「이런 데 팔려오는 사람은 다 죽을 거란 말요. 너무 괄세 말구려.」

「요꼴들에 괄세는 다 무어냐 같지않게.」

「같지않다는 건 다 무어야?」

「아 요런 년 버릇없이.」

팔짝 뛰면서 그는 부영이의 따귀를 찰싹 갈겼다.

순간 약오른 그들의 얼굴에는 핏대가 쭉 뻗쳐 올랐다.

「이놈아 왜 치니?」

「무슨 재세로 사람을 함부로 치느냐?」

「너한테 매어만 지낼 줄 알었더냐?」

「발길 놈아.」

「죽일 놈아.」

그들은 약속한 바 없었으나 약속하였던 것같이 일제히 일어서서 소리 높이 발악을 하였다.

「하 같지않은 것들.」

주인은 같지않아서보다도 예기치 아니한 소리 높은 발악에 기를 뺏겨서 목소리를 낮추고 주춤 물러섰다.

「이때까지의 너희들 먹여 살린 것이 누구냐. 은혜도 모르고 너희들이 그래야 옳단 말이냐?」

「은혜? 같지않다. 누가 누구의 은혜를 입었단 말이냐?」

「배가 부르니까 괜듯만 싶으냐. 밥알이 창자 속에 곤두서니까 너희들 세상만 싶으냐?」

「두말 말고 우리 말을 들어줄려면 주고 안 들어줄려면 그만이고 생각대로 하구려.」

「흥 누가 몸이 다나 두고보자. 굶어 죽거나 말거나 이년들 밥 한 술 주나봐라.」

이렇게 위협하면서 주인은 방을 나가 버렸다.

「원 나중엔 별것들 다보겠네.」

한쪽 구석에 말없이 서 있던 주인 여편네도 중얼거리며 따라 나갔다.

이렇게 하여 주인과 대전한 지 사흘이었다. 식료는 온전히 끊기었었다.

사흘 동안 속에 곡식 한 톨 넣지 못한 그들은 기맥이 쇠진하였다.

오늘도 명자는 이층 한구석 제 방에서 엎드려 울기만 하였다.

며칠 동안 손님을 안받으니 몸이 거뿐하기는 하였으나 그대신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공연히 이 짓을 했지. 이 탓으로 나갈 기한이 더 늦어지면 어떻게 하나.」

고픈 배를 부둥켜 안고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면서 그는 걱정하였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설워지면 품에 지닌 사진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꺼내 보았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는 때없이 한바탕 울고야 말았다. 그러나 눈물이 마를 만하면 그는 또다시 사진을 꺼내보았다.

이 지옥에 들어온 지 삼년 동안 그 사진만이 그의 유일한 동무였고 위안이었다. 그것은 정든 님의 사진이 아니라 그의 어렸을 때의 집안 식구와 같이 박은 것이었다.(그의 집안은 그때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뒤에 서고 그는 어린 동생들과 손을 잡고 앞줄에 서서 박은 것이다. 추석날 읍에서 사진장이가 들어왔을 때에 머리 빗고 새옷 입고 박은 것이다. 벌써 칠년 전이다. 그후에 어찌 함인지 가운이 기울기 시작하여 집에 화재가 난다, 땅이 떠내려간다 하여 불과 사년동안에 가게가 폭삭 주저앉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삼년 전에 서리서리 뒤틀린 괴상한 연줄로 명자가 이리로 넘어오게까지 되었었다. 고향을 끌려 나올 때에 단 한 가지 몸에 지니고 나온 것이 곧 이 한장의 사진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생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는 사진을 내보고 실컷 울었다. 집도 절도 없는 고향에 지금 아버지 어머니가 있을 리 만무 할 것이다. 그릇 이고, 쪽박 차고, 알지 못하는 마을을 헤매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저것도 고향에 가야 알 것이다. 얼른 고향에 가야 그들의 간 곳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는 하루도 몇번 사진과 눈씨름하면서 얼른 삼년이 지나 계약한 기한이 오기만 고대하였다. 그러나 삼년이 지나 기한이 넘어도 주인을 그를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분하고 원통하여서 오늘도 종일 그는 사진을 보며 울기만 하였다.

사진 보고 생각하고 울고 하는 동안에 오늘 하루도 다 가고 어느새 밤이 되었다.

명자는 눈물을 씻고 일어나서 카텐을 열었다.

창 밖에는 넓은 장안이 끝없이 깔렸고 암흑의 거리거리가 층층의 생활을 집어삼키고 바다같이 깊다.

그 속에 수만은 등불이 초저녁의 별같이 쏟아져서 깜박깜박 사람을 부르는 듯 하였다.

명자는 창을 열고 찬 야기를 쏘이면서 시름없이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 속은 어쩐지 자유로울 것 같았다. 속히 이곳을 벗어나 저 속에 마음껏 헤엄쳐볼까 하고도 그는 생각하였다.

매력 있는 거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그는 다시 창을 닫고 카텐을 쳤다.

새삼스럽게 기갈이 복받쳐 왔다.

그는 그 길로 바로 곧은 층층대를 타고 내려가 층 아랫방으로 갔다.

넓은 방에는 사흘 동안의 단식에 눈이 푹 꺼진 동무들이 맥없이 눕기도 하고 혹은 말없이 앉았기도 하였다.

「배고파 못 살겠다.」

명자는 더 참을 수 없어 항복하여 버렸다.

말없는 그들도 따라서 외쳤다.

「속쓰리다.」

「배고프다.」

「이게 무슨 못할 짓인고.」

「×을 팔면 팔지 내가 배곯구는 몬살겠다.」

누웠던 부영이가 일어나서 그들을 진정시키고 쇠진한 의기를 채질하였다.

「사흘 동안 굶어서 설마 죽겠지. 옛날의 영악한 사람은 한 달이나 굶어도 늠실하였다드라.」

「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지금이 아니냐!」

「지금 사람이 더 영악해야 하잖겠니. 저의가 아수운가 우리가 꿀리나 어데 더 참어 보자꾸나.」

부영이가 이렇게 말하면,

「죽든지 살든지 해보자!」

「더 참어 보자!」

하는 한패와 그래도,

「못 살겠다.」

「못 견디겠다.」

하는 패가 있었다.

「그다지도 고프냐?」

부영이는 이제 더 달래갈 수는 없었다.

「눈이 뒤집히는 것 같고 몸이 뒤틀리는 것 같애서 못 살겠다.」

「그럼 있는 대로 모아서 요기라도 하자꾸나.」

부영이는 치마춤을 뒤지더니 백통전을 두어 닢 방바닥에 던졌다.

「자 너이들도 있는 대로 내놓아라, 보자.」

치마춤에서들 백통전이 한 닢 두 닢씩 방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손님을 받을 때에만 가외로 한 닢 두 닢 얻어둔 것이었다.

볼 동안에 여남은 닢 모인 백통전을 긁어 모아서 부영이는 채봉이에게 주었다.

「자! 너 좀 가서 무엇이든지 먹을 것을 사오려므나.」

채봉이는 돈을 가지고 건너편 가게에 나가서 두 팔에 수북이 빵을 사들고 들어왔다.

「년들 맹랑하거든.」

하루도 채 못 가 항복하리라고 생각한 것이 사흘이나 끌어 왔으니 주인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년들의 소행이 괘씸하기도 하였으나 애초에 잘 달래 놓을 것을 그런 줄 모르고 뻗대 온 것이 큰 실책인 듯도 생각되었다. 하룻밤이 아까운 이 시절에 사흘 밤이나, 문을 닫치는 것은 그에게 곧 막대한 손해를 의미한다. 더구나 다른 누보다도 유달리 번창하는 이 누이니만치 손해는 더욱 큰 것이다. 숫자적 타산이 언제든지 머리속을 떠날 새 없는 주인은 한 시간이 아까와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밤이 시작됨을 따라 밖에서 더욱 요란하여지는 사내들 노래를 들으려니 한시도 더 참을 수 없어서 그는 또 방으로 쫓아 왔다.

「얘들 배 안 고프냐?」

목소리를 힘써 부드럽게 하였다.

「우리 배고프든 안 고프든 무슨 상관이요?」

용기를 얻은 봉선이는 대담스럽게 톡 쏘아부쳤다.

「공연히 그렇게 악만 쓰면 너이만 곯지 않느냐? 이를 때에 고분고분이 잘 들으려므나. 나중에 후회 말구.」

「우리야 후회를 하든지 말든지 남의 걱정 퍽 하우.」

이제 빵으로 배를 다진 그들은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제발 그만들 마음을 돌려라.」

「그럼 우리의 원을 들어주겠단 말요.」

「아예 그런 딴소리는 말고 밥들이나 먹고 할 일들이나 해라.」

「딴소리가 다 무어요. 우리의 원을 들어주겠느냐 안 들어주겠느냐 말요.」

「자 일어들 나거라. 벌써 사흘밤이 아니냐?」

「사흘 아니라 석 달이래도 우리는 원을 이루고야 말 테예요.」

「글쎄 너이들 일이 됐니. 밥먹여 살리는 주인한테 이렇게 대드는 법이 세상에 어데 있단 말이냐?」

「잔소리는 그만 두어요. 우리의 원을 들어 주겠으면 주고 싫으면 그만이지 딴소리가 웬 딴소리요.」

부영이가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캐서 들이 밀었다.

「너이년들 말 안 들을 테냐?」

누그러졌던 주인이 별안간에 발끈하였다. 노기에 세모진 눈이 노랗게 빛난다.

「얼리니까 괜듯만 싶어서 년들이.」

「아따 얼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 테요. 어떻게 할 테야?」

「그래도 그년이.」

「그년이란 다 무어야.」

「아 요런 년.」

주인은 팔짝 뛰면서 부영이의 볼을 갈겼다. 푹 고꾸라지는 그의 머리통을 뒤미처 갈기고 풀어진 머리채를 한 순에 감아 쥐면서 그는 큰소리로 위협하였다.

「이년들 다들 덤벼 봐라.」

그러나 악오른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동무가 이렇게 얻어 맞고 창피한 욕을 당하는 것을 보는 그들은 일시에 똑같이 분이 터져 올랐다. 전신에 새빨간 핏대가 쭉 뻗쳤다. 그러나 너무도 악이 복받쳐서 한참 동안은 벌벌 떨기만 하고 입이 붙어 말이 안나왔다.

「이년들 다들 덤벼라.」

놈은 머리채를 징긋이 감아 쥐면서 범같이 짖었다.

「이놈아 사람을 또 친단 말이냐.」

「너 듣기 싫으면 피차 그만이지 왜 사람을 치느냐.」

「몹쓸 놈아!」

「개같은 놈아!」

맥은 없으나마 힘은 모자라나마 그들은 악과 분을 한데 모아 일제히 놈에게 달려 들었다. 놈의 옷자락도 붙들고 놈의 따귀도 치고 놈의 머리도 뜯고 놈의 다리에도 매달리고 놈의 살도 물어 뜯고 그들은 악나는 대로 힘자라는 대로 벌떼같이 놈의 몸에 응겨 붙었다.

나이 찬 몸에 힘이 좀 부치기는 하였으나 원체 뼈대가 단단하고 매서운 사나이라 놈은 몸에 들러붙은 그들을 한 손으로 뿌리쳐 뜯기도 하고 발길로 차서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여전히 부영이의 머리채를 휘어 잡은 채 이 구석 저 구석 넓은 방안을 질질 몰고 다녔다.

밑에서 밟히고 끌리는 부영이의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이리저리 끌리는 대로 넓은 방바닥에 핏줄이 구불구불 고패를 쳤다.

이윽고 한쪽에서는 분을 못 이기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몹쓸 놈아 쳐라.」

「너도 사람의 종자냐?」

「벼락을 맞을 놈아!」

「혀를 빼물고 꺼꾸러져도 남지 않을 놈아!」

「사람을 죽이네!」

「순사를 불러라!」

그들은 소리를 다하고 악을 다하였다. 나중엔 주인 여편네가 기겁을 하고 쫓아왔다.

옷이 찢기고 멍이 들고 피가 흘렀다.

그것도 저것도 다 헤아리지 않고 그들은 온갖 힘을 다하여 이를 악물고 놈과 세상과 접전하였다.

「문 열어라.」

「자고 가자.」

밤이 익어감을 따라 문밖에서는 취객들의 외치는 소리가 쉴새 없이 높이 났다.

「다들 죽었니.」

「명자야.」

「부영아.」

「채봉아.」

문 두드리는 소리가 새를 두고 들렸다. 그래도 안에서 대답이 없으면 부서져라 하고 난폭하게 한참씩 흔들다가는 무엇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이렇게 한 떼 가버리고 나면 다음에 또 한 떼가 나타났다.

「문 열어라.」

「웬일이냐, 사흘이나!」

「봉선아.」

「채봉아.」

「봉선아.」

방에서는 모두들 맥을 잃고 누웠었다.

극렬한 싸움 뒤에 피곤―하였다느니보다도 실신한 듯이 잔약한 여병졸들은 피와 비린내와 난잡 속에 코를 막고 죽은 듯이 이리저리 눕고 있었다. 분이 나서 쌔근쌔근―하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기맥이 쇠진하였다. 말없이 죽은 듯이 그들은 다만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도 아직 그들이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피곤할 따름이다. 맥이 나면 놈과 또다시 싸워야 할 것이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봉선아.」

「내다. 봉선아.」

「너 이년 나를 괄세하니?」

「봉선아.」

「봉선아.」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하도 시끄럽기에 봉선이는 일어나서 방을 나가 문을 열었다.

「봉선아 너 이년 나를 몰라보니?」

하면서 달려드는 사내는 자기를 맡아 놓고 사주는 나지미였다. 그러나 봉선이는 오늘만은 그를 반가운 낯으로 대하지 않았다.

「아녜요. 오늘은 안돼요.」

하면서 그를 붙드는 사내를 밀치고 문을 닫으려 하였다.

「안되긴 왜 안된단 말이냐? 사흘이나.」

사내는 그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주인 녀석과 싸우고 벌이 않기로 했어요.」

「주인과 싸웠어?」

사내들은 새삼스럽게 그의 찢긴 옷, 헝클어진 머리, 피 흔적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자, 다음날 오구 오늘들은 가세요.」

「아니 왜 싸웠단 말이냐?」

「주인놈이 몹쓸 녀석이라우……우리말을 들어 주기 전에는 우리가 일을 하나봐라.」

「주인이 몹쓸 놈이어서 싸웠단 말이냐?」

봉선이는 주춤하고 뜰을 내려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을 굶기고 그 위에 죽도록 얻어 맞고 피를 토한 동무들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우.」

하면서 방을 가리키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봉선이의 높은 목소리에 이웃집 문전에서 떠들고 흥정하고 노래하던 사내와 계집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옹기종기 이리로 모여 들었다.

봉선이는 설워서 견딜 수 없었다. 맡길 곳 없는 설움을 이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마음껏 하소연하여 보고 싶었다.

그는 뜰에 올라 서서 두 손을 들고 고함을 쳤다.

「들어 보시오! 당신들도 피가 있거든 들어 보시오! 우리는 사람이 아니요? 우리가 사람 같은 대접을 받아온 줄 아오? 개나 돼지보다도 더 천대를 받아왔오. 당신네들이 우리의 몸을 살때에 한번이나 우리를 불쌍히 여겨본 적이 있었오? 우리는 개만도 못하고 돼지만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 먹어봤나, 놀고 싶을 때 놀아봤나, 앓을 때에 미음 한 술 약 한 모금 얻어 먹었나, 처음 들어오면 매질과 눈물에 세상이 어둡고 계약한 기한이 지나도 주인 놈이 내놓기를 하나. 한 방울이라도 더 우려내고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려고 꼭 잡고 내놓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구 물건이다. 애초에 우리가 이리로 넘어올 때에 계약인지 무엇인지 해가지고 우리를 팔아먹은 놈 누구며, 지금 우리의 버는 돈을 한 푼 한 푼 빨아내는 놈은 누군가? 우리는 그놈들을 위해서 피를 짜내고 살을 말리우는 물건이다. 부모를 버리고 동기를 잃고 고향을 떠나 개나 돼지만도 못한 천대를 받게한 것은 누구인가? 누구인가?」

그는 흥분이 되어서 그도 모르게 정신없이 이렇게 외쳤다. 며칠 전 부영이에게서 들어 두었던 말이 이제 그의 입에서 순서는 뒤바뀌었을망정 마치 제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같이 한 마디 한 마디 뒤를 이어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장황은 하나 그는 이것을 다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흥분된 어조로 계속하였다.

「다같은 이목구비를 갖추고 무엇이 남보다 못나서 이 짓을 하게 되었나. 이 더러운 짓을 하게 되었는가. 남처럼 버젓하게 살지 못하고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의 팔자가 기박해서 그런가. 팔자가 무슨 빌어 먹을 놈의 팔잔가?」

사흘 전에 부영이에게 반대하여 팔자를 주장하던 그가 이제와서 확실히 팔자를 부정하였다. 그는 벌써 사흘 전의 그는 아니었다. 사흘 후인 이제 그는 똑바로 세상을 볼 줄 알았던 것이다.

「이 문둥이 같은 놈의 세상이, 놈들의 농간이, 우리를 이렇게 기구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봉선이가 주먹을 쥐고 이렇게 높이 외치자 사람 숲에서는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오고 가운데에는 감동하여 손뼉 치는 사람도 있었다.

「옳다 !」

「고년 맹랑하다.」

「똑똑하다.」

같은 처지에 있으니만큼 그 중에 모여 섰던 이웃집 창기들에게는 봉선이의 말이 뼈속까지 젖어 들어가서 그들은 감격한 끝에 길게 한숨도 쉬고 남몰래 눈물도 씻으면서 얕은 목소리로 각각 탄식하였다.

「정말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개만도 못한 천대를 받아오지 않았니?」

「몹쓸 놈의 세상같으니.」

맡길 곳 없는 설움을 이제 이렇게 뭇 사람 앞에서 마음껏 하소연한 봉선이의 속은 자못 시원하였다. 동시에 여러 사람 앞에서 한 번도 지껄여 본 적 없고 남이 하는 연설 한 마디를 들어 본 적 없는 무식하고 철모르던 그가 어느 틈에 이렇게 철이 들고 구변이 늘었는가를 생각하매 자기 스스로 은근히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높은 구변으로 계속하였다.

「우리는 이 천대를 더 참을 수 없다. 천치같이 더 속아 넘어갈 수 없다. 우리는 일제히 짜고 주인놈과 싸웠다. 놈은 우리의 말을 한 마디도 안들어 주고 우리를 사흘 동안이나 굶기면서 됩데 우리를 때리고 차고, 죽일 놈 같으니. 지금 저방에는 죽도록 얻어맞은 동무들이 피를 토하고 누워 있다. 저방에, 저방에.」

하면서 가리키는 그의 손을 따라 사람들은 그쪽을 향하였다.

정신없이 지껄인 바람에 잠간 사라졌던 분이 이제 또다시 그의 가슴에 새삼스럽게 타올랐다. 그는 악을 다하여 소리쳤다.

「주인놈이 죽일 놈이다. 우리가 다시 일을 하나봐라. 다시 이 짓을 하나봐라. 우리는 벌써 너에게 매인 몸이 아니다. 깍정이 같은 놈 다시 돈 벌어 주나봐라.」

주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는 눈을 노리고 욕을 퍼부었다.

분통이 터져서 전신이 바르르 떨렸다.

「다시 일을 하나봐라. 이놈의 집에 이 더러운 놈의 집에 다시 있는가봐라.」

그는 이제 집 그것을 저주하는 듯이 터지는 분과 떨리는 몸을 문에다 갖다 탁 부딪쳤다.

문살이 부서지면 유리가 깨뜨러졌다.

미친 사람같이 그는 허둥지둥 다시 일어나 땅에서 돌을 한 개 찾아 들더니 「봉학루」라고 쓰인 문 위에 달린 붉은 등을 겨누었다.

다음 순간 뎅그렁 하고 깨뜨려지는 홍등이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으싹 하고 조밥이 되어 버렸다.

해끗한 유리 조각이 주위에 팍삭 날고 집 앞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하였다.

잠시 숨을 죽이고 그의 거동을 살피던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수물거리기 시작하였다.

「봉선아 너 미쳤구나 !」

「주인놈을 잡아내라 !」

「잘깼다. 질내 이놈의 짓을 하겠니?」

「동맹파업이다.」

「잘했다 !」

「요 아래 추월루에서도 했다드라 !」

깨뜨러진 홍등, 어두운 문전을 중심으로 이 밤의 거리, 이 저자는 심히도 수물거리고 동요하였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