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에게 4

기림 형

형의 글 받았소. 퍽 반가웠소.

북일본 가을에 형은 참 엄연한 존재로구려!

위밍업이 다 되었건만 와인드업을 하지 못하는 이 몸이 형을 몹시 부러워하오.

지금쯤은 이 이상이 동경 사람이 되었을 것인데 본정서(本町署) 고등계에서 '도항을 허락할 수 없음'의 분부가 지난달 하순에 내렸구려! 우습지 않소?

그러나 지금 다시 다른 방법으로 도항 증명을 얻을 도리를 차리는 중이니 금월 중순―하순경에는 아마 이상도 동경을 헤매는 백면의 표객이 되리다.

졸작 〈날개〉에 대한 형의 다정한 말씀 골수에 스미오. 방금은 문학 천년이 회신(灰燼)에 돌아갈 지상 최종의 걸작 〈종생기〉를 쓰는 중이오. 형이나 부디 억울한 이 내출혈을 알아주기 바라오!

〈삼사문학〉 한 부 저 호소로(狐小路)[1] 집으로 보냈는데 원 받았는지 모르겠구려!

요새 〈조선일보〉 학술란에 근작시 〈위독〉 연재 중이오. 기능어. 조직어. 구성어. 사색어. 로 된 한글 문자 추구 시험이오. 다행히 고평을 비오. 요다음쯤 일맥의 혈로가 보일 듯하오.

지용, 구보[2] 다 가끔 만나오. 튼튼히들 있으니 또한 천하(天下)는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아직도 계속될 것 같소.

환태[3]가 종교예배당에서 결혼하였소.

〈유령 서부로 가다〉[4]는 명작 〈홍길동전〉과 함께 영화사상 굴지의 잡동사니입니다. 르네 클레르, 똥이나 먹으라지요.

〈영화시대〉라는 잡지가 실로 무보수라는 구실하에 이상 씨에게 영화소설 〈백병〉을 집필시키기에 성공하였소. 뉴스 끝.

추야장(秋夜長)! 너무 소조(蕭條)하구려! 아당(我黨) 만세! 굿나잇.


오전 네시 반 이상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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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림이 유학 중이던 센다이의 지역명으로 보임.
  2. 박태원의 필명.
  3. 문학평론가 김환태(1909~1944)를 가리킴.
  4. 프랑스의 영화감독 르네 클레르(1898~1981)가 만든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