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한국 근대미술/한국 근대조각

근대조각의 출발점

편집

近代彫刻-出發點

일제(日帝)가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한 이래 근대화된 일본의 서구식(西歐式) 모방조각(模倣彫刻)이 이땅에 처음으로 이식(移植)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20년대이다. 1919년 김복진(金復鎭)이 처음으로 일본 도쿄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서양식 조각을 연구하고 돌아와서 후배를 양성하기 시작하였고, 또 이 무렵에 선전(鮮展) 조각부가 창설되었다. 김복진이 수입한 서양식 조각이란 소조(塑彫)에 국한되고 있으나 사실상 조각이 새로운 미술로서 작가의식을 가지고 출발하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김복진을 근대조각의 선각자(先覺者)로 보고 있으나 김복진을 전후하여 활동한 김진국, 곽윤모(郭胤模), 김두일(金斗一), 장기남(張基南), 양희문(梁熙文), 구본웅(具本雄) 등 뚜렷한 활동 무대를 마련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보낸 초창기의 조각가들도 있다.

김복진

편집

金復鎭 (1901-1940)

조각가. 충청북도 충주(忠州) 출신. 1917년 배재중학(培材中學)을 중퇴, 도일(渡日)해 1919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했다. 1924년 데이코쿠미전(帝國美展)에 작품 <나상(裸像)>을 출품, 입선하였고 동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하여 모교인 배재중학 교원이 되었다. 한편 토월미술연구회(土月美術硏究會), 청년학관(靑年學館=Y.M.C.A.) 미술과, 경성(京城)여자상업학교의 미술강사 등으로 후진양성에 힘썼다. 1925년 제4회 선전(鮮展)에 작품 <3년 전>을 출품, 3등상을 수상한 것을 필두로 제5회 및 제16회 선전에서는 특선, 제15회 선전에 입선되었다. 1930년 중앙일보 학예부장을 지내는 한편 조선미술원(朝鮮美術院)을 창립했고 1936년 법주사(法住寺) 대불(大佛)을 착공하여 미완성인 채 서울에서 사망했다. 옥고(獄苦)를 치르는 등 불우한 생활 가운데서도 한국의 근대조각을 개척하는 데에 크게 공헌한 선각자이며 연극과 평론활동에도 종사한 다재다능한 조각가이다. 작품 경향은 사실적인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법주사 석가여래입상> <다산 선생상> <소년> <백화>가 있다.

법주사 석가여래입상

편집

法住寺 釋迦如來立像

충청북도 보은(報恩) 법주사 소재. 높이 80여 척(尺)의 철근 콘크리트로 된 대불(大佛). 조각가 김복진의 필생의 대표작으로 심혈을 기울여 1935년경에 제작하기 시작했으나 두부(頭部)와 전체의 비례만을 마치고 자금난(資金難)으로 중지되어 그의 생존시에 완성을 못보고 이후 1949년 윤효중(尹孝重)이 이어받아 추진되었으나 역시 도중에 중단, 장기은(張基殷), 임천(林泉)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1963년 3월에 비로소 완성되었다. 30여년의 제작 기간을 거치는 동안 김복진의 원형(原型)과는 거리가 먼 속(俗)된 것으로 변모되고 말았으나 근대조각으로서 특기할 만한 온건한 안용(顔容)과 풍만한 모델링을 갖춘 기념비적 조상(彫像)이다.

소년

편집

少年

김복진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 일제하에 1940년 제19회 선전에 출품하여 특선을 받은 그의 최후작. 반나(半裸)의 소년 입상(立像)으로 전체적인 인상은 고대(古代) 이집트의 웅휘한 인물 조각을 연상시키는 고졸(古拙)하면서도 패기에 찬 작품이다. 소년의 앞으로 내딛은 왼발, 꽉 쥔 주먹 등이 이집트 조각의 양식에 가깝고 거기에 대담한 수법이 곁들여 조야(粗野)한 힘의 상태를 유도한다. 예리한 사실(寫實)을 넘어 깊은 주관(主觀)의 세계로 이행되는 리얼리티가 보인다.

선전 조각부

편집

鮮展 彫刻部

일제(日帝)의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의 조각부. 선전에 조각부가 신설된 것은 1925년 제4회전 때부터였으며 제2부인 서양화부에 부설되어 아직 완전한 독자적인 활동발판을 이루지는 못했다. 1932년 제11회전부터 조각부가 일시 없어져 제12회, 제13회전까지 이르고 있으나 1935년 제14회전 때에 다시 부활되었다. 1944년 제23회 선전으로 막이 내려질 때까지 여기서 활동한 중요한 조각가로는 초기의 김복진, 그리고 김경승(金景承), 윤승욱(尹承旭), 이 전(李銓), 윤효중(尹孝重) 등이 있다. 조각의 경향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의 관학파(官學派) 아카데미즘이 지배적인 사실주의가 태반이었고 개성적으로는 아사쿠라 후미오(朝倉文夫), 도바리 코간(戶張孤雁), 후지이 코유(藤井浩祐), 그리고 1935년 이후의 시미즈다카시(淸水多嘉示) 등의 영향이 보인다. 소조(塑彫)를 주축으로 하고 얼마간의 목조(木彫)가 곁들인 이 조각부의 대부분의 주제도 습작 정도의 것으로 마스크나 흉상 같은 소품을 통해 기술연마를 의도한 흔적이 보인다.

◇ 선전의 조각 상황 鮮展-彫刻狀況

제4회전:총 2인 3점 출품. 김복진(金 復<鎭여) <3년 전> 3등상.

제5회전:총 4인 4점 출품. 김복진 <여인> 특선.

제6회전:총 5인 5점 출품. 구본웅(具本雄) <얼굴습작> 특선.

제7회전:총 2인 2점 출품.

제8회전:총3인 3점 출품

제9회전:총 4인 4점 출품.

제11회전-제13회전:출품작 없음.

제14회전:총 4인 4점 출품.

제15회전:총 7인 11점 출품.

제16회전:총11인 13점 출품. 김복진 <나부(裸婦)> 특선.

제17회전:총 8인 8점 출품.

제18회전:총 3인 4점 출품.

제19회전:총10인 10점 출품. 김경승(金景承) <목동(牧童)> 무감사 특선, 김복진 <소년> 특선. 조규봉(曺圭奉) <얼굴> 특선.

제20회전 (이하 미상) 김경승 <어떠한 감정> 무감사 특선.

제21회전 (이하 미상) 김경승 <여명(黎明)>무감사 특선.

제22회전:총 8인 9점 출품. 이국전(李國銓) <소년> 특선, 조규봉 <얼굴> 특선, 윤효중(尹孝重) <천인침(千人針)> 특선, 김경승(추천).

제23회전:총 9인 12점 출품. 조규벙 <부인 입상(婦人立像)> 특선, 윤효중 <현명(弦鳴)> 특선, 김경승(추천).

◇ 선전 출품 조각가 전봉래(田鳳來) 제1회전, 김복진(金復鎭) 제1,2,15,16,17, 19회전, 양희문(梁熙文) 제5,6회전, 장기남(張寄男) 제5회전, 안규광(安奎廣) 제5,6,7회전, 장기남(張基南) 제6,7,8,9회전, 문석오(文錫五) 제8,9,10,14회전, 임순무(任淳戊) 제8,9,10회전, 원희연(元希淵) 제9,10회전, 나문규 제10회전, 이병삼(李炳三) 제14,15,16회전, 홍순경(洪淳慶) 제15,16회전, 김두일(金斗一) 제15,16,17,19회전, 한재홍(韓在弘) 제15,16회전, 이국전(李國銓) 제15,16,19,23회전, 장익달(張翼達) 제16,17회전, 이성화(李聖華) 제16회전, 안영숙(安榮淑) 제16회전, 김경승(金景承) 제16,18,19,20,21,22,23회전, 현호철(玄鎬喆) 제16회전, 윤승욱(尹承旭) 제17,19회전, 김갑수(金甲洙) 제17회전, 김정수(金丁洙) 제17회전, 현성각(玄聖珏) 제17,22회전, 최상환(崔相煥) 제17회전, 주경(朱慶) 제18,19회전, 채남인(蔡南仁) 제18회전, 조규봉(曺圭奉) 제19,22,23회전, 이응세(李應世) 제22회전, 염태진(廉泰鎭) 제22회전, 안명진(安明鎭) 제22회전, 김선작(金先作) 제23회전, 김남표(金南杓) 제23회전, 윤경렬(尹京烈) 제23회전, 김정수(金丁洙) 제23회전(제20,21회전은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