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동학-천도교/천도교의 조직
천도교의 조직〔개설〕
편집天道敎-組織〔槪說〕
천도교의 조직체계는 다른 종단뿐만 아니라 일반 조직체계와도 다른 점이 많다. 독특한 조직체계는 때에 따라 적응시켜 일사분란한 체계와 힘을 갖도록 했다. 그 결과 천도교 역사 100여 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대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천도교의 조직체계는 교조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한 1860년 4월 5일부터 1905년 11월 31일까지 45년간은 속인제(屬人制)가 주축을 이루었고, 1905년 12월 1일에 동학이 천도교라 개칭된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기관제(機關制)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교주 최제우 때에는 여러 곳에 접소(接所)를 두어 접주(接主:單一職)가 교화와 포덕(布德)을 하게 하였다. 그후 제2세 교조인 최시형 때에 와서는 교세가 삼남 일대뿐만 아니라 강원·경기지방까지 크게 확장되어 그 수가 방대해졌으므로 단일직인 접주만을 가지고는 도저히 통솔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서 대단위적(大單位的)인 속인제로서의 포제(包制)가 접소 대신 실시되었다. 이 포제(包制)는 대체로 도·시·군·면·리 단위의 행정구역과 비슷한 체제였다. 각 포에는 일개 도내의 교인을 책임지고 교화하는 사람으로 대접주(大接主)가 있었고, 그 밑에는 일개 군을 담당한 수접주(首接主), 면을 담당한 접주(接主), 리동(里洞)을 담당한 접사(接司)가 있어 모든 교인이 종적인 연결을 가졌다. 이와는 달리 교화를 전달하는 교직자를 정하였는데 이 제도는 1884년부터 포제와 같이 부합하여 사용되었다.
이 포제와 6임제는 동학의 교조신원(敎祖伸寃)과 자유신앙(自由信仰)을 얻기 위한 시위운동에 절대적인 바탕이 되었다. 동학혁명 당시 각포의 대접주가 혁명군의 대장이 되었고, 6임을 맡고 있었던 교화 책임자들이 계속하여 군대의 교화를 맡고 있었다. 전혀 군사적인 훈련이 없었던 혁명군이 규율있고 기개있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이 포제와 6임제에 의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비제(聯臂制)란 것이 있다. 이것은 동학에 입도시킨 전도인(傳道人)을 천주(薦主)라 하였고 수도인(受道人)을 피천인(被薦人)이라 하였는데 천주를 연비인(聯臂人)이라 한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 연비제는 인원이나 계열의 확실한 제한이 없었으나 1906년 2월에 천도교 중앙총부가 조직된 후 대헌(大憲)이 제정됨에 따라 동년 2월 27일자로 연비제가 폐지되고(宗令 13號에 의거) 연원제(淵源制)가 실시되었다.
그후 1910년 1월 26일자 종령 22호에 의거, 인원의 직제가 완전 제정 발표되었는데 교호(敎戶) 1500호 이상을 도훈(道訓)이 맡아 교화했고, 300호 이상은 교훈(敎訓)이, 30호 이상은 봉훈(奉訓)이 맡았다.
1912년에 다시 직제를 추가하여 5000호 이상엔 도령(道領)직을 두었다. 이 조직은 직계나 원직명(原職名)이 여러 차례 바뀌었으나 현재까지 정신교화 조직으로 남아 있다.
천도교 조직에 있어서 1905년 12월 1일은 상당히 중요한 날로서 이날을 기하여 완전한 현대적 조직기구로 바뀌었다. 1906년 2월 12일에는 총부를 종로구 홍문석골(現 貫鐵洞)에 설치하고 기관제가 맨 처음 실시되었다.
장실(丈室)에는 대도주(大道主)가 있어 교회의 최고 대표자가 되었고 봉도실(奉道室)에는 좌봉도(左奉道)와 우봉도(右奉道), 고문실(顧問室)에는 고문과 서계원(書計員), 현기사(玄機司)에는 사장(司長)·서계원·진리원(眞理員), 이문관(里文觀)에는 관장(觀長)·서적원(書籍員)과 교육원(敎育員), 서무관(庶務觀)에는 관장(觀長)·서무원과 교섭원(交涉員) 전제관(典制觀)에는 관장과 심계원(審計員), 금융관(金融觀)에는 관장·출납원·서계원, 원직(原職)에는 성도사(誠道師)·경도사(敬道師)·교장·교수·도집·대정·중정 등이 있어 분야별로 책임지고 운영하였으며, 지방은 동년 3월3일자 종령 15호에 의거, 대교구 72교구를 선정하여 일련번호제를 채택하였는데 1개 교구 소속 교인이 10만명 이내였다고 한다.
1914년 6월에는 175개 교구로 급속도로 증가되었다. 이러한 교구제도는 중앙중심체제로서 여러 차례 교헌의 수정으로 인하여 그 직계나 조직이 변경되어 왔으나 크게 변동없이 현재까지 그 정신은 계승되고 있다.
이것은 중의제(衆議制)로서 종교단체에서 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한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며 한국에서 여러 측면으로 효시가 된다.
이 중의제는 모든 교회 지도자들이 대회에서 임기 있는 교역자로서 선출되는데 민주적인 투표방법에 의해 선임된다. 그러므로 제4세 대도주까지 교조가 직접 도통을 계승시키는 임명제였으나 천도교 시대에는 교주제를 폐지하고 기관 대표제로서 선거에 의했다.
이러한 기관제에 따른 여러가지 대의기구(代議機構)가 생겼는데 1914년 8월에는 총인원(叢人院)이 설치되었고, 1920년 12월 25일에는 의정회(議正會),1921년 12월 10일에는 종법사회(宗法師會)가 설치되었다. 또 1923년 4월 31일에는 종리사회(宗理師會), 1955년 1월 13일에는 전국 대의원 대회(全國代議員大會)가 설치되어 이 기구를 통하여 조직이 이루어지고 집행부가 운영되었다.
이 조직체계는 중앙총부에서 말단 교인에게까지 교구를 통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교구 단위의 별개 활동이나 독자운영은 없게 되므로 단합된 조직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
실례로서 1919년 3월 1일 현재 3·1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천도교 조직 현황은 총계 249개 교구로서 서울 2, 경기 21, 충남 12, 전북 24, 전남 25, 경북 6, 경남 7, 강원 21, 황해 21, 평남 24, 평북 23, 함남16, 함북 8, 중국 9, 도(道) 미상 교구 4였다.
이 조직은 1945년까지 일제탄압을 상당히 줄어들게 하였으나 오히려 중국에는 39개 교구, 미국 2, 일본에 4개 교구가 증가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북한의 103개 시군에 350만의 교도를 가질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현재 천도교는 교회 대표자가 교령(敎領)으로서 임기 3년의 선거직이다. 전국대의원대회가 3년마다 열려 교단방향과 여러 가지 기본 약정을 결정한다. 이 대회의 대의원은 각 교구 대회에서 규정에 의하여 선출된 대의원과 교헌에 의한 자동직 대의원으로서 구성된다.
<金 用 天>
속인제
편집屬人制
속인제에는 접주제(接主制)와 포제(包制) 그리고 연원제(淵源制)가 있는데 이것은 동학 초기에 집단적인 기관을 갖지 못하였을 때 지역의 책임자를 정하여 그 지역의 교인을 소속시켰던 제도이다.
접주(接主)가 있는 접소(接所)는 경주(慶州)·영덕(盈德)·영해(寧海)·대구(大邱)·청도(淸道)·청하(淸河)·연일 (延日)·안동 (安東)·단양(丹陽)·영양(英陽)·신영(新寧)·고성(固城)·울산(蔚山)·장기 등이었으며 1893년 3월 11일 보은 장내에 대도소(大都所)를 정하고 포명(包名)이 확정되었는데 대체로 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충의포(忠義包)·충경포(忠慶包)·청의포(淸義包)·문청포(文淸包)·옥의포(沃義包)·관동포(關東包)·호남포(湖南包)·상공포(尙公包)·덕의포(德義包) 등이었다. 연원제는 초기에 도훈(道訓)·교훈 (敎訓)·봉훈 (奉訓)으로 삼종이었으나 도령 (道嶺)이 추가되었으며 1932년에는 도정(道正)·교정(敎正)·신정(信正)·의정(宜正)·종정(宗正)으로 개칭되었다가 1961년 이후로는 도정(道正)·도훈(道訓)·교훈(敎訓)·신훈(信訓) 등 4종으로 구분되어 있다.
기관제
편집機關制
이 제도는 1905년 12월 1일 동학이 천도교로 개칭되면서 중앙총부를 설치하여 실시됨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이로써 교단체제를 갖추고 교단사업과 교인과의 연락이 행정적으로 처리되었다.
이 제도는 직제나 명칭이 여러 차례 변하여 현재는 천도교 중앙총부에 연원(淵源) 조직관 행정조직을 두고 있다. 연원조직은 지역에 구애됨이 없이 전교인(傳敎人)과 수교인(受敎人)이, 또는 정신적 지도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된 포(包) 조직을 말한다. 행정조직은 최고의결기관으로 전국대의원대회가 있고, 그 아래 중간의결기관격인 종의원(宗議院), 집행기관인 종무원(宗務院), 감사기관인 감사원이 있으며, 지방에는 교구(군 단위)·전교실(면 단위)을 두고 있다.
그리고 교령(敎領)을 비롯한 교구장·전교사 및 각종 임원은 3년 임기제로 전국대의원대회나 교구·전교실 회의에서 투표로 선출된다. 유지재단(維持財團) 산하에는 90년 현재 용담수도원 등 9곳의 수도원, 교육기관인 종학원(宗學院:서울 우이동 소재)과 봉황각(鳳凰閣)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신도수는 1989년말 현재 108만 명에 이른다.
6임제
편집六任制
1884년 11월에 해월신사가 손병희 및 15인의 도제와 함께 전라도 익산에 있는 가섭사(迦葉寺)에서 49일간의 공부를 마친 후 강서(降書)로써 6임제를 정하였는데 교장(敎長)에는 건실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하고, 교수(敎授)는 성심으로 도를 닦아 가히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 도집(都執)은 위풍이 있고 기강(紀綱)이 밝고 경계(經界)를 아는 사람, 집강(執綱)은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 판단을 내릴 사람, 대정(大正)은 공평하며 무사(無私)하고 근후(謹厚)한 사람, 중정(中正)은 직언(直言)할 수 있는 강직한 사람으로 정하여 교인들의 교화와 기강을 바로 잡으며 교인들의 지도자로서 수범이 되게 하였다. 이 6임제는 동학혁명 당시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총인원
편집叢仁院
1914년 8월에 설치되었는데 천도교대헌(天道敎大憲:천도교의 敎規를 정한 법) 제17·18·19조에 의한 것이었다. 총인원은 총부내에 설치하여 교무에 대한 중의(衆議)를 채용하는 기관이며 공선(公選)된 의사원(議事員)으로 구성하여 매년 두 차례 정기 소집하기로 되어 있다. 의사원은 ① 성령수련(性靈修練), ② 진리연구, ③ 강도(講道) 설교의 방법연구, ④ 교리연구, ⑤ 교무발전의 방책제시, ⑥ 각 교구업무의 상황 및 교인의 수도현황을 조사하여 중앙총부에 보고, ⑦ 중앙총부 사관원(司觀院)에서 견습을 해야 한다.
의정회
편집議正會
1920년 12월 25일 총부 직원과 지방두목으로 구성된 부구총회(部區總會)에서 총인원을 의정회로 고치고 의정원(議正員)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동년 7월 26일에 의정회 규정이 반포되고 그 규정에 의거하여 전국을 60개 선거구로 분할하여 60인의 의정원을 각 선거구에서 투표 공선(公選) 하여 동년 12월 10일에 제1차 의정회가 개최되었다.
이 의정회는 당시 300만 교도의 의사를 발표하는 대의원으로서 교단의 예산 및 결산의 심의결정과 기타 중요안건을 결의하였다. 이 의정회의 결정은 만능으로서 현대 대의기구와 동일한 성격을 가졌다고 하겠다.
종법사회
편집宗法師會
1922년 8월 15일에 개최된 교구대표위원회에서 제정되어 예결산의 심의 등 의정회가 하던 중요사항을 결의하는 기구로서 65개 선거구에서 48명의 종법사가 선출되어 구성되었다.
종리사회
편집宗理師會
1923년 4월 31일에 개최된 종법사회의에서 종법사회를 종리사회로 개칭하고 종법사회가 가졌던 기능을 그대로 발휘하였다.
전국대의원대회
편집全國代議員大會
1955년 1월 13일에 개최된 전국대회에서 천도교 교헌(天道敎 敎憲)이 제정 통과됨으로써 교인들의 대의기구로서 성립되었다.
현재 이 대회의 구성은 각 교구의 교구장과 비례대표, 종의원(宗議院)의원, 연원회 대표 중 도정(道正)·도훈(道訓) 그리고 선도사(宣道師)가 되어 있다. 이 대회에서는 교헌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교단의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데 3년마다 개최하도록 되어 있다.
천도교 교헌
편집天道敎敎憲
천도교 교헌은 1905년 천도교가 새로 출발하면서 제정된 천도교 대헌에서부터 시작하여 1921년 12월 10일 대헌을 폐지하고 종헌(宗憲)으로 바꾸었으며, 1928년 12월에 종헌을 폐지하고 천약(天約)으로, 1940년 4월에 천약을 폐지하고 현행 천도교 교헌으로 되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교헌은 수차의 수정을 거쳤으며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전문 10장 84조로 되어 있으며 제1장 교회(敎會), 제2장 교인(敎人), 제3장 연원(淵源), 제4장 연원회(淵源會), 제5장 대회(大會), 제6장 중앙총부(中央總部:敎領司·玄機司·宗務院·宗議院·監査院·財政), 제7장 상훈 및 징계, 제8장 지방교회, 제9장 교직(敎職), 제10장 교헌수정(敎憲修正), 부칙으로 되어 있다. 이 외에 교헌에 따라 각종 규정을 갖고 운영해 나가고 있다.